신문을 참조해 봅시다.
우선,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의 투고자는…… 여성에게 자유가 너무 많다는 의견에 관한 이 논의를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다. 소위 이 자유는 전쟁으로 인해 여성이 이전에는 알지못했던 의무를 떠맡으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그들은 그 당시에 훌륭하게 봉사했다. 불행히도 그들은 그들이 이룬 업적의 가치와 전혀 걸맞지 않는 칭찬과 총애를 받았다.

서두로는 꽤 괜찮은 편입니다. 그러나 계속 읽어봅시다.

나는 사회의 이 부문(성직자 집단)에 만연한 고통의 상당 부분은 가능하면 어디에서나 여성이 아닌 남성을 고용하는 정책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관청,우체국, 보험회사,은행, 그 밖의 다른 사무직에서 남성이 할수 있는 일을 수천 명의 여성들이 대신하고 있다. 반면에 자격을 갖춘 젊은이나 중년의 남성 수천 명은 일거리를 전혀 구하지 못하고 있다. 가사에 있어서 여성의 노동에 대한 수요가 크다. 노동력을 다시 분배하는 과정에서, 성직으로 흘러 들어간 많은 여성들이 가사 노동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도 동의하시겠지만, 고약한 냄새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 P256

그리고 다시 한 번,

수천 명의 젊은 여성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남성들이 대신한다면 남성들은 그 여성들을 훌륭한 집에서 부양할 수있다. 이 말은 틀림없이 수천 명의 젊은 남성들의 견해를 대변할 것이다. 지금 남성들을 빈둥거리도록 내몰고 있는 여성들이 진정으로 있어야 할 곳은 가정이다. 더 많은 남성들에게 일거리를 주도록, 그리하여 그들이 지금은 접근할 수도 없는 그 여성들과 결혼할 수 있도록, 정부가 고용주들에게 압력을 넣을 때가 되었다.

자, 이제 그 고약한 냄새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고양이가 자루에서 튀어나와 정체를 드러냈고, 그 이름은 톰입니다.
이 세 가지 인용문에 담긴 증거를 고려한다면, ‘미스‘라는 단어가 사적인 가정에서는 아무리 달콤한 향기를 풍긴다 하더라도 화이트홀에서는 칸막이 저편의 코에 불쾌감을 주는 어떤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미스‘가 부착된 이름은 이 냄새 때문에 급료가 상당한 높은 영역으로 오르기보다는 급료가 낮은 저급한 영역에서 맴돌 거라고 생각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미시즈‘로 말하자면, 그것은 오염된 단어입니다. 역겨운 단어이지요. 그 단어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냄새가 그처럼 고약하게 화이트홀의 콧구멍을 찌르고 있기에, 화이트홀은 그것을 전적으로 배제합니다. 천국에서와 - P257

마찬가지로 화이트홀에서는 결혼도 불가능하고 결혼을 공표하는 것도 불가능하지요. - P258

거기에서 우리는 전문직 여성의 급료가 아직도 무척 낮은 이유뿐 아니라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유포된다면 양성에 똑같이 해악을 끼칠 것이지요. 거기 그 인용문들에는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바로 그 동일한 벌레의 알이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그 생물의 유충이 들어 있지요. 그 생물이 이탈리아인이거나 독일인일 때 우리는 그것을 ‘독재자‘ 라고 부릅니다. 그 독재자는 다른 인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할지를 명령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그 권리를 신이 부여했건, 자연이 주었건, 아니면 성이나 인종에따라 받았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 인용해보기로 하지요. "지금 남성들을 빈둥거리도록 내몰고 있는 여성들이 진정으로 있어야 할 곳은 가정이다. 더 많은 남성들에게 일거리를 주도록, 그리하여 그들이 지금은 접근할 수도 없는 여성들과 결혼할 수 있도록, 정부가 고용주들에게 압력을 넣을 때가 되었다." 이 옆에 다른 문장을 인용해 봅시다. "국가의 삶에는 두 가지 세계, 즉 남성의 세계와 여성의 세계가 있다. 자연은 현명하게도 남성에게 그의 가족과 국가를 보살피도록 위탁했다. 여성의 세계는 그녀의 가족과 남편, 아이들과 가정이다."* 전자는 영어로 기록되었고 후자는 독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슨차이가 있습니까? 이 두 가지가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에서 발췌. 《선데이 타임스》, 1936, 9. 13, 23쪽, (옮긴이) - P259

그렇다면, 이런 사실들로 인해서 우리는 침울한 기분과 다소 변화된 관점을 가지고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당신도 기억하시겠지만, 우리는 전쟁을 방지하도록 도와달라는 당신의 호소를 전문직에서 생계비를 벌고 있는 여성들에게 돌리려 하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그들에게 호소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우리의 새로운 무기, 독립적 수입에 근거한 독자적 견해의 영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그들이니까요. 그러나 이런 사실들은 다시 한 번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우선,우리의 잠재적 원조자 범주에서 결혼이 직업인 대규모의 집단을 배제해야 한다는 점이 명확 - P266

해집니다. 그것은 보수를 받지 못하는 직업이고, 남편 급료의 절반에 대한 정신적 몫은 실제적 몫이 아님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독자적 수입에 입각한 공평무사한 영향력은 제로입니다. 만약 남편이 무력을 선호한다면 그녀 역시 무력을 옹호하게 되겠지요. 두 번째로, 이러한 사실들은 "수년간의 경험이 있고 고도의 자격을 갖춘 여성에게도 연간 250파운드를 버는 것은 대단한 성취였다."라는 진술이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라 상당히 그럴듯한 진실임을 입증하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현재 돈을 버는 능력으로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이란 그다지 높이 평가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도움을 요청해야 할 사람이 바로 그들이라는 점이 전보다 더욱 명백해졌으므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그들밖에 없으니까—그들에게 호소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론으로 인해서 우리는 앞서 인용했던 편지 -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전문직에 고용되도록 원조하는 단체에 기부를 요청한 명예 회계원의 편지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당신도 동의하시겠지만, 우리가 그녀를 도우려는 데에는 강한 이기적인 동기가 있습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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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2-12-02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기만의 방>에 이런 내용이...? 했는데 이 책 뒷부분에 ‘3기니‘ 가 들어있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인가보네요.
전 3기니는 읽어보지 못했는데 궁금해집니다. 읽어보고 싶네요.

햇살과함께 2022-12-02 21:46   좋아요 0 | URL
네 수하님 <3기니>에요~
3기니가 거의 300페이지에요^^
자기만의 방도 그렇지만, 아주 빡치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부인, 당신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실은 어떤 의문점들이 생겨서, 기부금을 보내기 전에 당신에게 그에 대한 답변을 요청해야겠습니다. 우선 당신은 돈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임대료를 내기 위한 돈이지요. 하지만 친애하는 부인, 당신이 이처럼 비참할 정도로 가난한 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에게 전문직이 개방된 지 거의 이십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당신이, 케임브리지에 있는 당신의 자매처럼 모자를 손에들고 서서 돈을 간청하고, 돈이 여의치 않다면 바자회에서 팔 과일, 책, 입지 않는 옷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요?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분명 공동의 인간성과 공동의 정의 또는 공동의 상식에 어떤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아니면 당신은 길모퉁이의 거지처럼 슬픈 얼굴을 하고과장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집의 침대 밑에 몰래 숨겨둔양말 속에 금화를 안전하게 가득 쌓아두고 있는 걸까요? 어떤 경우든 이처럼 끝없이 돈을 요청하고 가난을 하소연함으로써 당신은 대단히 심각한 비난의 표적이 됩니다. 수표에 서명하기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싫어하는 나태한 아웃사이더뿐 아니라 교육받은 남성도 당신을 비난하니까요. 당신은 확고한 명성을 누리고 있는 남성 철학자와 소설가 조드 씨와 웰스 씨 같은 남성의 질책과 경멸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 P241

"만약 그렇다면, 여성은 공무에 집적거리면서 내세우는 구차한 핑계들을 집어치우고 빨리 개인 생활로 돌아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하원에서 잘 해낼 수 없다면, 최소한 그녀 자신의 가정이라도 훌륭한 곳으로 만들도록 하라. 만약 구제할 수 없는 남성 특유의 사악한 장난기로 인해 남성에게 닥쳐올 파멸로부터 그를 구하는 법을 여성이 배울 수 없다면, 남성이 스스로를 파괴하기 전에 최소한 그에게 음식이라도 제공하는 법이라도 배우도록 하라." 이 부분에서 멈추어, 여성이 참정권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조드 씨 스스로가 구제할 수 없다고 인정한 것을 여성이 어떻게 구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도록 합시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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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비밀스러운 마음의 상처
<교수>의 학생

역시 읽은지 얼마되지 않아 기억이 생생하니 몰입도 잘 되고 이해도 좀 잘 되는 듯? 그런데, 샬럿 브론테의 다른 소설보다 화자와 작가가 신중하게 구분되었나?


9장 앞에 나오는 실비아 플라스의 무화과 나무에 관한 글을 읽다가 어제 읽은 무화과 요리에 관한 글이 생각남. ㅎㅎ 우리가 먹는 무화과가 과일이 아니라 사실 꽃이라니!

무화과(無花果)는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지만,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 많은 꽃을 피우고 있어요. 열매처럼 생긴 껍질이 꽃받침이며, 그 속에 융털처럼 보이는 빨간 부분 하나하나가 모두 꽃이랍니다. 바로 우리가 과일이라 생각하고 먹는 부분이지요. 무화과 특유의 작은 알갱이가 씹히는 식감은 무수한 꽃들이 만들어 내는 하모니라고 할 수 있어요. 엄밀히 따지면 무화과는 과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무화과 꽃을 먹고 있는 거지요.

- 김수향의 제철 담은 병절임, 개똥이네 집, 202호(2022년 9월)



나는 눈앞에서 나의 인생이 이야기 속 초록빛 무화과나무처럼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모든 가지 끝에서, 통통한 자줏빛 무화과처럼, 찬란한 미래가 손짓하며 윙크했다. 어떤 무화과는 남편이고 행복한 가정과 아이들이었다.
어떤 무화과는 유명한 시인이었고, 다른 무화과는 뛰어난 교수였으며, 어떤 무화과는 에제, 그 대단한 편집자였다. […]
어떤 무화과를 선택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나는 나 자신이 무화과 나무 등치에 앉아서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 그리고 내가 결정하지 못하고 거기 그대로 앉아 있자 무화과들은 쭈그러들더니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땅으로, 내 발치에 툭 하고 떨어졌다.
- 실비아 플라스 - P557

브론테의 어휘와 상상력 대부분은 그녀가 몰두했던 19세기 초의 작가들(워즈워스, 콜리지, 스콧, 바이런)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그녀가 무아지경이 될정도로 빠져서 썼던 반복적인 주제와 은유는 우선 자신의 젠더에 의해, 즉 험난한 자신의 성적 운명에대한 의식과 세계 속에 처한 이상한 ‘고아 같은‘ 위치에 대한 불안에 의해 결정된 것 같으니 말이다. - P559

이런 점에서 브론테의 작업은 19세기 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집과 ‘여성의‘ 역할에 갇힌 채 느끼는 감정에 대해, 그리고 그런 집과 역할에서 도망치고 싶은 자신들의 열렬한 욕망에 대해 강박적으로 글을 썼던 방식, 대개 (은유적으로) ‘무아지경‘ 상태라고 부를 수 있는 글 쓰는 방식의 모범을 제공한다. - P561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샬럿은 천국과 지옥, 천사와 괴물이라는 이분법에 대해 에밀리보다 훨씬 더 모순되는 모습을 보인다. - P561

표면적으로 보면 샬럿 브론테는 ‘바이런을 덮고, 괴테를 펼치라‘는 칼라일의 충고를 따라 자신의 수정 충동을 철저하게 수정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샬럿의 소설 네 권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자신의 괴테와 자신의 바이런을 어느 정도 동시에 읽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P562

우리가 살펴보았듯 남성이 지배하는 문학적 전통에서 글을 쓰는 많은 여자들은 처음에는 남성을 모방할 뿐 아니라 은유적 남성으로 분장함으로써 자신들의 모호한 상황을 해결하려 한다. - P565

여자가 남성 사회에서 상속권이 없는 고아 신세이듯, 크림즈워스도 ‘상업의 바닷가에서 난파당해 좌초된‘ [4장] 여자처럼 무력하다. 이런 무력감은 샬럿 브론테 자신이 일찍이 경제적인 독립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을때 느낀 심정과 같다. - P570

‘기숙학교! 그 단어는 나를 뒤숭숭하리만치 흥분시켰다. 그것은 억압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7장] 그 단어는 확실히 크림즈워스 자신보다 크림즈워스의 창조자에게 훨씬 더 큰 억압을 의미했을 것이다. 사실상 크림즈워스의 브뤼셀 시절 직업에 초점을 맞춘 『교수』의 중요한 중반부에서 브론테는 2년 동안 굉장히 고통스럽게 갇혀 지냈던 기숙사의 좁은 여자의 세계를 점검하기 위해 그를 일종의 렌즈로 사용한다. - P572

여자란 무엇인가? 브론테가 의식적으로 이 문제에 천착하고 있지는 않긴 해도, 크림즈워스라는 도구를 통해 그녀는 여자란자주성이 없고 ‘정신적으로 타락한‘ 피조물로, 천사이기보다 노예이고 꽃보다 동물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크림즈워스/브론테는 암시하지 않을지라도)이 작품이 암시하는 바에 따르면, 여자가 그렇게 되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런 존재가 되는것이 그녀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거짓말하기, ‘점수를 얻을 수 있을 때 정중하게 말하기‘, 소문 퍼뜨리기, 뒤에서 험담하기, 새롱거리기, 추파 던지기. 이 모든 것은 결국 노예의 특성, 즉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복종하지 않는 방식, 남자의 권력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또한 도덕적으로 ‘괴물적인‘ 특성이며, 따라서 다시 한번 천사 같은 여자의 외관 뒤에 괴물-여자가 나타난다. 브론테가 『제인 에어』에서 검토한 천사와 괴물의 연관성에 비추어보면, 『교수』에서 여성 괴물/노예의 특징에 지나치게 공포심을 품고 반응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 P575

그뿐만 아니라 조라이드가 겸손하다고 가정되지 않는 모든 것에 반감을 갖는다는 것은 젊은 스위스계 영국인 레이스 수선가 프랜시스 앙리를 사악한 계모처럼 대하는 데서 강하게 표현된다. 이 소설에서 프랜시스의 진정한 본성만이 여성성에 대한 남성의 이상화를 모순적이거나 거슬리는 방식으로 깨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 P578

『교수』는 크림즈워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프랜시스 앙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이 이 두 인물의 생애는 마치 각각이 서로를 반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병치되어 있다. 윌리엄처럼 프랜시스도 가난한 고아에 가톨릭 국가의 프로테스탄트이며, 물질주의 사회에서 이상주의자로 살아가며, 자수성가한 인물로 남자 교수와 동등한 지위라 할 수 있는 전문가인 ‘여자 교장‘이다. 한편 이 둘의 인격 차이는 유사성만큼 중요하다. - P578

이 비우호적인 우정은 무엇 때문인가? 왜 브론테는 『교수』의 시작과 결말에서 그들의 우정을 극화시키는가? 헌스든의 빈정거림과 (처음에 나타나는) 크림즈워스의 빈정거림 사이, 헌스든의 반항성과 (나중에 나타나는) 프랜시스나 빅터의 반항성 사이에 점점 뚜렷한 유사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해답에 가까운 무언가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헌스든은 『교수』에서 불만이 많은 사람처럼 보인다. 헌스든은 (찰스 웰즐리, 자모르나, 또는 노생거랜드의 공작처럼) 샬럿 브론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의 무의식적인 이미지다. 그의 이름 헌스든 요크 헌스든은 기존의 제도를 전복하려는 야만적 의지뿐만 아니라 프랜시스 앙리와 크림즈워스가 되돌아가고자 열망하는 ‘어머니의 나라‘ 영국과의 밀접한 관계를 암시한다. 헌스든은 분노로 가득한 ‘터의 기운‘이기도 하면서 어딘가 양성적인 인물이다. - P591

어떤 의미에서 헌스든은 반항의 목소리이기도 하지만 플롯의 조종자이자 위장한 화자이고, 줄거리를 나가야 할 방향으로 진행시키며 일어나는 사건을 논평하는 자다. - P592

그 사건은 이야기를 진전시키기보다는 브론테의 상징성을 명료하게 밝히는 역할을 한다. 크림즈워스는 개를 죽이고 싶어할 뿐만 아니라 개가 나타내는 것을 죽이고 싶어한다. 이제 완전한 가부장이자 교수가 된 그는 요크 헌스든과 개 요크를 그의 삶에 있어서 병들고 광적인 요소로 보는 것이다. - P594

이 작품은 샬럿 브론테의 작가 전체 이력에 걸쳐 점점 중요해질 주제를 처음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은유적으로 눈을 감은 채 글을 쓴 브론테는 여기에서 자신의 소명과 상처를 탐색했고, 완전성을 향한 다른 길을 발견하려고 마치 꿈속에서처럼 더듬거리며 노력했다. - P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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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반대로 보기
에밀리 브론테 지옥의 바이블 <폭풍의 언덕>
앞부분 <폭풍의 언덕>과 <프랑켄슈타인> 유사점 설명
설명은 어렵고, 인물들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서로를 향한 강렬하고 지독한 연결성은 기억난다.

이렇듯 다른 점도 있지만, 『프랑켄슈타인』과 『폭풍의 언덕』은 많은 중요한 점에서 유사하다. 한 가지는 둘 다 수수께끼 같고 당혹스러우며, 어떤 의미에서 총체적으로 문제적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각각의 경우, 소설의 미스터리는 (많은 비평적 논란의 중심이 된) 형이상학적 의도와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하나는 스릴러이고 또 하나는 로맨스인) 두 ‘대중‘소설은 많은독자들에게 소설의 카리스마 넘치는 표면적 이야기가 복잡한 존재론적인 심오함, 정교한 비유의 구조, 모호하지만 강렬한 도덕적 야망을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숨기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 점은 두 작품이 공유하는 좀 더 단순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두 작품 다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에서 ‘증거적 서사 기법‘이라고 불렀던 것을 사용하고 있다. 이 기법은 낭만주의적 이야기 구사 방법으로, 똑같은 사건을 보는 서로다른 관점의 아이러니한 괴리뿐만 아니라, 표면적인 드라마와 작가가 감추어놓은 의도 사이에 내재하는 아이러니한 긴장을 강조한다. 사실 이런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폭풍의 언덕』은 『프랑켄슈타인을 의도적으로 모사했다고 볼 수 있다. - P459

『폭풍의 언덕』과 『프랑켄슈타인』은 증거, 특히 문자화된 증거에 공통으로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대부분의 소설보다 훨씬 더 의식적인 문학성을 보여주며, 상징적이면서도 극적인 플롯 조성) 활동으로서 책과 독서에 가끔은 거의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 P460

메리 셸리를 연구할 때도 똑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울스턴크래프트-고드윈-셸리 집안처럼, 책을 매개로 현실에 접근하는 것, 친족의 책을 읽고 자신의 독서와 자신이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을 품는 것이 브론테 집안의 습관이었다. 따라서 외롭지만 야심에 찬 요크셔의 가정교사 세 명을 커러, 엘리스, 액턴이라는 엄연하게 양성적인 3인조로 변모시킨 것은 공동의 행동이자 가족정체성의 주장이었다. - P461

우리는 브론테 자매들에게 문학 활동과 문학적 증표 둘 다 매우 중요했다는 사실을 통해 그들이 메리 셸리와 공유했던 또다른 문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불안한 창조자처럼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와일드펠 홀의 거주자』를 쓴 저자들도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었다. 셸리처럼 에밀리와 앤 브론테도 너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들의 증언이나 문서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머니에 대해 알 수 없었다. 고아와 무일푼 상태를 강조하는 『프랑켄슈타인이 어머니가 없는 책인 것과 마찬가지로, 에밀리 브론테의 모든 소설도 어머니의 부재, 고아 신세, 결핍에 대한 강렬한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프랑켄슈타인』과 마찬가지로 『폭풍의 언덕』에서도 문학적 고아라는 문제는 작가로 하여금 증거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기원의 문제에도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따라서 가부장적 문화에서 은유적으로 고아라고 할 수 있는모든 여성 작가들이 ‘우리는 어떻게 추락했는가? 잘못된 법칙에 의해서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문학적인 해답을 찾고 있다면, 메리 셸리와 에밀리 브론테 같은 어머니 없는 고아들은 그질문에 대한 사실적인 답변을 대체로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소설들은 여성 특유의 문학적 강박관념을 강렬하게 재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 P462

『폭풍의 언덕』은 사실상 (『프랑켄슈타인이 형이상학적 스릴러인 것처럼) 형이상학적 로맨스이기에 때로는 사람이 아니라 힘이나 존재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 P463

위니프리드 제린에 따르면 밀턴은 패트릭 브론테가 즐겨 읽던 작가 중 하나였다. 따라서 셸리가 밀턴을 비판한 사람의 딸이었다면, 브론테는 밀턴을 찬양하는 이의 딸이었다. 그러니헤겔의 정/반의 법칙에 비추어보았을 때 셸리가 밀턴의 성 혐오적 이야기를 반복하고 재진술하는 길을 선택한 반면, 브론테는 그런 이야기를 수정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어울린다. 사실상 『폭풍의 언덕』과 『프랑켄슈타인이 공유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낙원』의 문제이고,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밀턴의 신화에 대한 작가들의 태도다. 셸리가 밀턴의 충실한 딸로서 그의 이야기를 명료하게 다시 말했다면, 브론테는 반항적인딸로서 밀턴의 신화적인 서사를 과격하게 수정(심지어 번복)한다. - P464

그것은 마치 에밀리가 샬럿에게 ‘너는 낭만적 사랑에서 남자가 지배적인 요소라고 생각하지? 지배적인 것은 여자임을 보여주겠어‘ 하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샬럿 자신은 에밀리의 수정적 성향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다. 래치퍼드보다 100년도 더 앞서, 『셜리』의 여자 주인공 (‘에밀리가 더행복하게 살았다면 그런 모습이었을‘ 이상적인 인물)은 밀턴에 대해 영국 소설에서 최초의 의도적인 페미니즘 비평이라 할 수있는 말을 한다. - P470

샬럿은 『폭풍의 언덕』 저자가 (브론테의 찬미자인 에밀리 디킨슨을 인용해 말한다면) ‘천국의 왕국을 찾아서 / 반대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470

이 문단은 심리극 같은 ‘연극‘이란 삶에 필요한 것임과 동시에 집안일처럼 일상적인 활동임을 제시한다. 다리미질과 대안적 삶의 탐험이란 똑같은 종류의 ‘업무‘다. 그것은 아마 앤 브래드스트리트와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환상을 쫓는 그 밖의 다른 주부들이 인정했을 법한 독특한 여성적 사고다. - P473

전체성, 존재의 충만함, 양성성 같은 말이 불가피하게 떠오른다. 앞으로 드러나겠지만 이 셋은 다 캐서린에게, 더 정확하게는 캐서린-히스클리프에게 적용된다. - P484

그럼에도 캐서린의 개인적인 천국은 밀턴의 에덴처럼 캐서린이 규정한 ‘지옥‘의 위협으로 둘러싸여 있다. 예를 들면 캐서린이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천국의 수평선에 떠 있던 유일한 구름인 어두운 가부장제의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늙은 언쇼의 죽음과 함께 에덴처럼 ‘다소 야만적이고 무모하고 자유로웠던‘ 캐서린의 소녀 시절도 끝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한때 양성적이었던 아이가 처음으로 ‘홀로 놓이게될’ 분열된 세계를 열어놓는다. 하지만 장자 상속이라는 가부장적인 법에 의해 아버지의 죽음은 진정한 상속인인 힌들리의 권력을 증대시켰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이 새로운 아버지는 소설 속에서 캐서린의(그리고 히스클리프의) 타락과 그로 인한 몰락을 불러온다. - P487

사춘기에 이른 아이들은 왜 부모를 의붓아버지, 의붓어머니처럼 보기 시작하는가? 사춘기의 위기를 다루는 동화에 양부모가 어김없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런 현상이 뿌리 깊게 널리 퍼져 있음을 시사한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성적인 존재로 의식할 만큼 성장하면 부모는 실제로 ‘본래‘ 부모 자신들보다 더 사납고 (힌들리와 프랜시스의 경우처럼) 좀 더 어려 보이기조차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캐서린 언쇼의 경험을 뒷받침해준다. 이제 진정으로 이해할수 있게 된 부모의 섹슈얼리티가 아이를 괴롭히는 만큼 아이 자신의 성적인 자각이 부모를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에 부모는 확실히 점점 더 위협적으로 (말하자면 더 ‘짜증내고‘ ‘폭군처럼‘) 되어간다. - P491

이 단순하지만 폭력적인 에피소드의 이미지들은 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 캐서린이 성숙한 여자의 섹슈얼리티로 내던져짐과 동시에 거세되었음을 암시한다.
어떻게 소녀가 ‘여성이 됨과 동시에 거세될 수(다시 말해서 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위의 이미지들이 의미하는 바가 상당히 프로이트적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바보 같은 질문이리라. 엘리자베스 제인웨이와 줄리엣 미첼이 말했듯, 프로이트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적 의미에서도 (음경 선망을 암시하는) 여성성이 거세를 의미한다는 주장은 매우 적절해보이기 때문이다. 제인웨이는 프로이트의 중요한 논문인 「여성의 섹슈얼리티」(1931)를 논평하면서, ‘어떤 여성도 음경을 빼앗기지 않았다. 여성은 처음부터 그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 P496

캐서린이 나중에 넬리에게 말하듯, 캐서린에게 히스클리프는 ‘나 자신보다 더 나같은‘ 사람이다. 히스클리프의 실질적인 굶주림은 더 위험한, 그래서 더 무서운 캐서린의 정신적인 굶주림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에서 캐서린이 당한 부상은 히스클리프의 건강과 힘에 가해진 치명상을 의미한다. 한때는 양성적이었던 히스클리프-캐서린은 이제 서로 격리된 채 가부장제가 합의한 힘, 즉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린턴 집안과 그들의 밀사인 하이츠의 힌들리와 프랜시스가 합의한 힘에 의해 정복당하기 때문이다. - P501

남성적 교양소설의 최종적인 목표가 성공적인 자아 발견이듯이, 여성 교육의 최종 산물은 불안한 자기 부정임을 브론테는 암시하고 있다. 캐서린, 혹은 모든 소녀들은 자기 이름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될 운명인지알 수 없다는 것만을 배운다. - P502

도덕성이란 유효한 선택의 기회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캐서린에게 유의미한 선택의 기회란 없다. 캐서린은 오빠의 결혼 때문에 워더링 하이츠에서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로 쫓겨난다. 캐서린은 그곳에서 이성과 교육, 예의범절의 아가리에 갇힌 채, 선택의 여지 없이 에드거와 결혼해야했다. 에드거 외에 결혼 상대는 없으며, 숙녀는 결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캐서린이 에드거에 대한 사랑을 정당화시키는 장면은 ‘나는 그의 발아래 있는 대지를, 그의 머리 위에 있는 공기를, 그가 만지는 모든 것을,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사랑한다‘[9장]) 우아하고 낭만적인 고백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 P503

이런 풍자는 캐서린이 받은 교육이 젊은 숙녀에게 적절한 문학적낭만주의를 주입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든 에너지를 아버지/연인/남편의 카리스마와 동일시하는연약한 ‘여성성’이 문학적 낭만주의다.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자신이 ‘격하될 것이라는 캐서린의 변명도 캐서린이 받은 교육의 불가피한 산물이다. 캐서린이 숙녀로 추락하는 동안 히스클리프 역시 여성의 무력함에 해당하는 위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여자 되기가 타락이라면 여자처럼 되기는 더 심한타락임을 정확하게 배운 것이다. 따라서 밀턴의 이브가 이미 타락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 있는 선택도 할 수 없었던 것같이 (물론 밀턴은 이브의 선택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캐서린에게도 진정한 선택이란 없다. 문화가 본질적으로 가부장적이라면 여성은 타락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그들은 타락할 운명이기 때문에 이미 타락한 것이다. - P504

앞으로 나오겠지만 히스클리프가 ‘천국 같은‘ 응접실 안으로 들여오는 사탄적인 반항은 가부장제에 해롭고 가부장제가 불편해하는 무시무시한 병원균을 가지고 있다. 그 병원균은 캐서린과 이저벨라 같은 여자들이 도주와 굶주림, 끝내는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자신들의 역할과 집 안에 감금된 상황에서 도망치게 하는 원인이다. - P509

『폭풍의 언덕』곳곳에 편재한 굶주림의 모티프와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이미지가 담고 있는 의미에 주목한다면, 에드거와 히스클리프의 핵심적인 대결이 부엌을 배경으로 벌어진다는설정은 우연 이상의 의미를 띤다. 어떻든 이 에피소드 바로 다음에 C. P. 생어가 캐서린의 ‘단식 투쟁‘이라고 부른 장면과 캐서린의 유명한 광기 장면이 나온다. 플라스의 또 다른 시행은자아 축소의 느낌을 묘사하는데, 이런 느낌은 자신이 하나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일종의 걸어 다니는 복장으로 축소되어버렸다는 캐서린의 깨달음과 일치한다. ‘나는 얼굴도 없다. 나는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광기의 장면에서 캐서린이 거울에비친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세상과 캐서린을 연결해주던 끈이 헐거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서린은 넬리에게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말하며 만일 자신이 미쳤다면 ‘나는 네가 정말로 시들어버린 노파고, 나는 페니스톤 절벽 아래있다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지금은 밤이고, 탁자 위에 있는 촛 - P512

불 두 자루가 까만 찬장을 흑석처럼 빛나게 한다는 걸 알고 있어‘라고 말한다. 그런 뒤 ‘이상해. 저기에 얼굴이 보여‘ [12장] 하고 덧붙인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에는 ‘까만 찬장‘이 없고 거울만 있을 뿐, 캐서린은 거울에 나타난 자신의 이미지를부인하는 것이다. 이제 캐서린의 분열은 히스클리프와 떨어져있을 때 겪었던 심리적 분열을 훨씬 넘어서 몸과 이미지(또는 몸과 영혼)가 분리되는 지경에 이른다. - P513

[1장] 가장 교양 있는 여자도 무력하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에 여자들은 록우드는 히스클리프든 똑같이 남자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 P523

건강하게 양육하는 넬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상적인 여자, (에밀리 브론테의 시각이 아니라 말하자면 밀턴의 시각에서) ‘일반적인 어머니‘로 보인다. 샬럿 브론테의 『셜리』에서 셜리/에밀리가 밀턴을 비판한 핵심 구절을 다시 살펴본다면, 우리는 틀림없는 넬리 딘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밀턴은 최초의 여자를 보려고 했다‘고 셜리는 말한다. ‘그러나 캐리, 그는 그녀를 본 것이 아니었어. […] 그가 보았던 것은 그의요리사일 뿐이야. […] ‘최상의 진미를 위하여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로 골치 아팠을 요리사일 뿐이야. - P527

히스클리프가 ‘여성적‘이라는 주장은 처음에는 미친 소리처럼, 또는 터무니없게 들릴 것이다.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듯, 히스클리프의 외형적인 남성성은 운동선수 같은 체격과 군인 같은 자세뿐만 아니라 숙녀다운 이저벨라에게 어필한 바이런적인성적 카리스마로도 확실하게 논증된다. 우리가 알고 있듯 에드거는 분명히 연약함에도 사실은 가부장적이지만, 히스클리프가차남의 남성성이나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이단아와 같은 대안적인 남성성에 해당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에드거가 기존의 천사의 방식으로 남성적이듯, 히스클리프도 분명 사탄적인 추방자의 방식으로 남성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좀 더 뿌리 깊은 연상의 측면에서 (차남, 서자, 악마 들이 여성들과 연합하여 천상의 폭정에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고아는 여성이고 상속자는 남성이라는 점에서, 육체는 여성이고 정신은 남성이며 대지는 여성이고 하늘은 남성이며 괴물은 여성이고 천사는 남성이라는 점에서) 히스클리프는 ‘여성적‘이다. - P531

사르트르적인 의미에서 여자의 남자와 자율적인 여성은 하나의 완전한 여자가 된다. - P533

소설의 후반부에서 히스클리프의 개략적인 목표는 합법성을 전복시킴으로써 문화에 자연의복수를 가하는 것이다. - P535

‘메리 셸리는 브론테가 전복시키려고 애썼던 밀턴의 여성 혐오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녀 또한 추방당한 사람의 의지가 내포하는 위험한 잠재력을 이해하고 있었다. 메리 셸리의 잃어버린 이브는 괴물이 되었고, ‘그’ 또한 사회 구조에 파괴적이었다. 19세기 후반에 다른 여성 작가들도 밀턴의 악령과 싸우면서, 이브의 억누를 수 없는 의지를 말살하겠다고 위협했던 가부장제와 그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 수단이었던 마녀 같은 분노를 검토했다. 예를 들면 조지 엘리엇은 『플로스강의 물방앗간』에서치명적인 양성성을 그리는데, 이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성취한, 죽음을 통한 사랑을 기이하게 패러디하는 것 같다. ‘죽음 - P552

을 통해’ 매기와 톰 털리버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들이 달성한 결합은 엘리엇이 그들을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것 중 유일하게 믿을 만한 결합이다. 왜냐하면 삶에서 매기는 단념의 천사가 되었고, 톰은 근면의 단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문화의 풍경 절반을 휩쓸어버리는 홍수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여성적인 자연은 저항하고 있으며 계속 저할 것이다. - P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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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 두번 째. AI 성우의 띄어읽기가 약간 거슬린다. [경희]나, [모 된 감상기]가, 오히려 [이혼고백서]보다 더 임팩트 있다. 나혜석은 대단한 여성이다. 텍스트로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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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11-23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경희‘ 되게 좋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괜히 나혜석 나혜석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인식했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11-23 23:12   좋아요 1 | URL
그쵸~ 대단한 사람~!!
종이책으로 다시 읽어야겠어요! 이북도 거의
안보는데 오디오북 익숙하지 않아 책 읽은 것 같지 않아요 ㅎㅎ 저는 아직 종이책파!

서곡 2022-11-24 0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석화 배우 낭독 경희가 있더라고요 저는 나중에 그거 들어보려고요 오늘 잘 보내십시오!

햇살과함께 2022-11-24 10:14   좋아요 1 | URL
오 그건 땡기는데요 ㅎㅎ 서곡님도 좋은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