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상실감이 빚은 예민함
조지 엘리엇의 숨겨진 비전

조지 엘리엇의 100페이지도 안되는 중편 <벗겨진 베일>에 무려 한 장을 할애한다. 예지력을 가진 ‘여성적인’ 남성 주인공과 남편인 그를 독살하려는 부인(무려 이름이 버사!! 이 책 읽을 때는 인지 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버사라는 이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조지 엘리엇의 분열적인 모습, 자기혐오. 조지 엘리엇의 인생이 궁금하다.

에덴의 여자들은 어두운 무덤 속에 자신들을 감추기 위해 손수 짠 부드러운 비단 베일 속에서 겨울잠을 잔다.
그러나 남자들은 여자의 죽음을 통해 부활해 영원한 삶을 산다.
- 윌리엄 블레이크!

…분별력과 훌륭한 감식력은 순수과학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룩한 여자로 하여금 일반적인 관찰자들이 자신을 알아볼 수 없도록 항상 베일을 쓰게 만들었다. 그런 성취는 여자의 성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 두걸드 스튜어트

천천히, 머뭇거리며, 기어서,
여자는 여기까지 왔다! -
그녀는 베일을 쓴 채 졸면서 걷는다,
자신의 힘을 알지 못하므로.
- 샬럿 퍼킨스 길먼 - P767

샬럿 브론테의 소설은 여성문학에 나타난 폐쇄라는 문학적 형상과 분신 사용의 관련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가 그녀의 작품에서 보았듯이, 이 둘은 여성의 희생을 나타내는 상보적인 기호다. 불편한 공간과 불편한 자아에 갇혀 있는 브론테의 여자주인공들은 그들 자신이 두려워하는 충동을 대체하거나 가장하는 대행자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그녀들은 존 어윈이 남성 소설에서 최근에 탐색했던 ‘운명의 손아귀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죽음에 직면해서, 모든 힘 있는 아버지의 손 안에서 무력감을 경험할 때조차‘ 프로이트가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고 말했던 것을 반복해서 견뎌야 한다. 여자들의 이런 무력감은 여성 정체성의 수수께끼에 대한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적절한 해결책으로 처방되는데, 이 사실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예를들면 루시 스노는 스스로 수동적 상태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려 애쓴다. - P768

여성들이 정치, 사회, 교육 분야에서 그들의 영향력과 활동을 확대해가던 19세기 중반까지, 역설적으로 여성 작가들은 반항하기보다는 한 발 물러나 내면화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19세기 중반의 여성 작가들은 천사 같은 순종과 괴물 같은 자기주장이라는 쌍둥이 같은 유혹에 붙잡혀 있는 가운데 남성 지배 문화에서 문제적인 여성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그들은 모두 오스틴,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 브론테의 열렬한 독자였기 때문에 여성의 하위문화에 의식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이름을 들자면 영국의 조지 엘리엇과 크리스티나 로세티, 이탈리아의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미국의 에밀리 디킨슨과 해리엇 비처 스토가 있는데, 이들 사이에 감지되는 끈끈한 유대를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여성의 하위문화다. - P769

또한 래티머 이야기의 초기 무대를 제네바의 알프스로 설정하고, 죽은 시체를 다시 살려낸 영국 과학자 친구를 등장시키고, 늙어가는 래티머가 ‘악마를 숭배하는 것 외에는 어떤 숭배도 신앙도 불가능하다‘고 말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래티머를 외로운망명자로 묘사함으로써, 엘리엇은 자신이 메리 셸리에게 신세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 P787

이런 판단은 엘리엇이 자신을 한 여자인 동시에 암암리에 여성 혐오자로도 인식했다는 점에서 매우 타당하다. 엘리엇이 낭만주의에 양가적 반응을 보인 것은 빅토리아적이지만, 그것은 여성에게 특히 위험하다고 생각한 전통을 내면화하지 않으려는 여성의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798

낭만주의 전통의 비평가이자 계승자로서 엘리엇은 특히 여성선구자들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벗겨진 베일이 반향하는 또다른 그물망이 이 점을 논증한다. 이 이상한 단편이 메리 셸리의 소설을 상기시킨다면, 엘리엇이 반복해서 영국의 조르주 상드라고 옷차림만 덜 도발적일 뿐이다‘ [편지 2]) 칭송했던 한 여성 작가의 걸작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샬럿 브론테의 소설은 「벗겨진 베일」의 집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브론테 - P798

의 소설은 엘리엇에게 여성으로 확인된 여성과 여성 혐오자 사이에서 엘리엇이 경험했던 자기 분열을 극화하도록 허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샬럿 브론테는 미친 여자를 통해 그녀의 분노는 자신과 자신의 유순한 분신에게서 사랑을 빼앗아간 남성적 권력의 상징을 찢고 불태우고 파괴한다) 메리 셸리와 에밀리 브론테의 인물들이 경험하는 자기 분열과 살인적인 물질성, 섹슈얼리티로의 추락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엘리엇은 분노에 찬미친 여자를 ‘버사‘로 명명함으로써 「벗겨진 베일」이 여성의 복수 시도에 관한 이야기임을 제시한다. - P799

버사의 관점을 고려하기 위해 래티머의 시각을 벗어나면, 래티머가 버사를 통해 어떻게 욕망의 거세와 활력의 포기를 나타내고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래티머가 지옥 같은 버사와의 결합을 점차 수동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버사는 자신의 생명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으로 래티머의 죽음을 열렬히 욕망하는 것이다. 버사는 래티머에게 남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하며, 래티머에 대한 ‘공포에 끊임없 - P800

이 시달리고, 이 공포는 한 번씩 그에 대한 반항으로 표출되었다. 어떻게 하면 자기 삶에서 이 악몽을 떨쳐낼 수 있을지, 자신이 한때 바보라고 경멸했고 이제는 심문자처럼 두려워진 존재의 이 가증스러운 속박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버사는 계속 생각했다.‘ 버사의 공포는 자신이 래티머의 플롯에 따라 움직여왔다는 깨달음, 심지어 래티머에 대한 자신의 원한조차 자신을 섬뜩한 눈을 가진 괴물로 보는 그의 통찰에 따라 예견되고 만들어졌다는 깨달음의 산물이다. - P801

엘리엇은 자신 안의 분열을 여성 혐오주의자 남성과 남성을 증오하는 여성 사이의분열로 간주하고, 자기 자신의 문제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기혐오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상속받은 전통에서 벗어난다. 상호적이면서 상반되는 두 인물인 여성적인 래티머와 거세하는 버사는 삶에서 자유를 강탈해간 그들 자신의 한 측면으로서 서로를 경험한다. 더 나아가 래티머의 초월적 신통력과 버사의 정열적 욕망 사이의 투쟁은 일레인 쇼월터가 말한 매기의 ‘여성적인‘ 정열과 톰 털리버의 ‘남성적인‘ 억압 사이의 갈등을 상기시킨다. 이런 투쟁과 갈등은 또한 『미들마치』의 결혼관계에서도 (엘리엇이 이런 결혼 관계를 통해 자신의 무력감과 자신의 성을 약화시키고 폄하하는 태도를 내면화했다는 죄책감을 극화할 때조차 나타난다. - P803

젠더의 한계를 비상할 정도로 초월한 작가로서 엘리엇은 자신의 노력과 성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중요한 소설에서 여성적 체념의 신조와 복종의 서약에 자주 의지한다. 그런 신조와 서약은 공격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쌓아나갔던 엘리엇 자신의 삶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따라서 엘리엇은 ‘나의 책들이나를 괴롭힌다‘고 소리쳤던 것이다. [편지 5] 버지니아 울프도 엘리엇에 대해 ‘오랫동안 그녀는 차라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우리·엘리엇이 ‘영원히 여성적인‘ 고귀함을 찬미하면서도 자기 이야기를 쓰는 일은 거부함으로써 두통에 시달렸으며, 두통 때문에 괴테의 마카리에 같은 유형, 즉 작가에게는 결코 기분 좋지않은 유형의 인물이 되어버렸음을 알게 된다. 더 나아가 「벗겨진 베일」에서 엘리엇은 타락의 신화와 여성적 악의 신화에 양가적 태도를 견지하는데, 이로써 그런 신화를 영속시켜 여자를 ‘타자‘로 규정하는 가부장적 문화를 엘리엇 자신이 내면화하고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엘리엇은 전 생애 동안 이런 내면화의 - P804

징후들(사회적 승인을 받지 못한 일에 대한 계속된 죄책감, 남자 친구를 더 좋아한다는 공언, 여성의 반페미니즘, 여성의 예속보다 다른 형태의 불의 전체가 더 중요한 자기 예술의 주제라는 자기 변명 같은 주장, 격려와 인정을 받기 위해 루이스에게 극도로 의존했던 모습, 작가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었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가장 호의적인 비평조차 읽을 수 없었던 무능력)을 보여준다. - P805

소설에서 엘리엇은 베일에 담긴 이 모든 의미를 불러낸 것이 분명하다. 래티머는 허영의 베일을 걷어올리는 셸리의 성직자처럼 ‘사랑할 대상‘을 찾지만, 그 결과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 발견할 따름이다. 태양이 ‘아침 안개의 베일‘을 걷어올리는 것을 볼 때, ‘미래의 커튼‘을 꿰뚫어볼 때, ‘[가까운 관계에 있는] 인물들의 관계망이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조각조각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보일 때‘, ‘또 다른 어두운 베일‘인 죽음을 꿰뚫어볼 때, 래티머는 어떠한 차이도 발견하지 못하고 ‘숨겨진 것을 보고 싶은 영혼의 욕구가 너무 절대적이어서‘ 장막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안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베일은 충분히 두꺼워야 한다.‘ 다시 말해 「벗겨진 베일」은 사람들이 기대할 법한 무시무시한 비밀을 전달하거나 악의 관념을 견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포, 디킨스, 호손의 이야기와 다르다. - P810

결국 베일 뒤의 존재를 기록하는 일은 분명 여성적인 작업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베일 뒤에 존재하며, 공적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사적인 영역에 거주하는 자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이에 엘리엇은 워즈워스 시에서 알아본 소리 없는 괴로움과 기록되지 않은 고통을 탐색하기로 결심한다. 엘리엇은 포프 류의 시인이 택한 올림포스 신 같은 육중한 시각을 왜 인간은 현미경과 같은 미세한 눈이 없는가? / 이것이 바로 인간이 파리가 아닌 이유다’) 거부했다. 왜냐하면 엘리엇은 일반 렌즈로는 보이지 않는 세밀한 것을 보기 위해 ‘배율이 큰 렌즈’를 사용해 래 - P816

티머의 ‘현미경적인 시각‘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가정에서 전통적인 여성의 자리를 유리하게 이용해 공적인 태도 뒤에 가려져 있는 사적인 연약성을 폭로하며 남성적 신화를 반박하는데,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라면 엘리엇의 이런 방식을 전형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양적 전통과 베일로 가린 여성의 얼굴을 통해 가부장이 성공적으로 다루었던 악은 과연 어떤 종류의 악인가? 만약 민첩하고 확실한 본능과 정직하고 순수한 눈을 가진 가모장이 그 가부장을 흘깃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 그들을 손쉽게 추방한다면 어떻게 될까? - P817

엘리엇은 꽤 최근까지 거의 전적으로 남성 문학사의 차원에서만 주목받았지만, 「벗겨진 베일」은 그녀가 강력한 여성 전통의 일부임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여성 작가들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자의식, 남성적 문학 관습에 대한 비판, 예지력과 영적 교감 능력에 대한 관심, 감금 이미지, 파편화에 대한 정신분열적인 인식, 자기혐오, 에밀리 디킨슨이 그녀의 ‘가려진 비전‘이라 불렀던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전통에 엘리엇을 자리매김해준다. - P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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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2-12-13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빌레뜨>만 읽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벗겨진 베일>도 읽어야 하네요.
갈 길이 머네요.... @_@

햇살과함께님 화이팅입니다 ^^

햇살과함께 2022-12-13 11:15   좋아요 1 | URL
수하님도 빌레뜨 화이팅입니다!! 저 빌레뜨 안읽고 12장 읽어서 망했어요 ㅎㅎ
벗겨진 베일은 그나마 100페이지도 안되요~ 다행히 5월에 민음북클럽 버전으로 읽었네요.
이제 다음 장 미들마치와 플로스강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네요:;;
 

12장 루시 스노의 파묻힌 삶

<빌레뜨> 궁금하다. <제인 에어>와는 다른 느낌.

평등한 삶을 요구했던 프랜시스 앙리와 제인 에어를 비롯해 저항하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았던 캐럴라인 헬스턴에 이르기까지, 용기와 활력이 점차 쇠퇴해가는 과정은 루시에 이르러 비로소 복종과 침묵으로완성된다. 이것은 마치 샬럿 브론테가 여성들에게 질식할 것 같은 절망감만 안겨주는 늙어가는 과정을 성숙의 과정과 동일시하는 것 같다. 사실 소설들이 진전됨에 따라 여성들은 파괴적인가부장 사회의 구속을 내면화하고 이로써 점차 도피가 어려워진다. 여성들은 자신 안에 갇힌 채 출발 시점부터 패배하는 것이다. 루시 스노는 결코 충만하게 존재할 수 없었지만 그 대가로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루시는 단조롭고 진지한 위장된모습 뒤로 물러남으로써 고통을 피해왔다는 사실을 자각하고고통받는다. 자신이 될 수도 있었던 모습 때문에 괴로워하는 루시는 의미와 목적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힘도 박탈당해왔다. 어떻게 그녀가 현재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 P699

브론테는 이 마지막 소설에서 자아 속으로 물러남으로써 도피할 수도 없고(그런 은둔은 유아론적인 것으로 거부당하기 때문에) 타자를 영적인 대상으로 비인간화함으로써 해결할 수도 없는 여성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삶의 구원이 아니라 파괴적인 결과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어떤 반가운 축하도 없고 풍성한 보상도 있을 수 없다 하더라도, 브론테는 『빌레트』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살아갈 의지를 빼앗긴 모든 여성을 위한 정직한 비가를 제공했다. 동시에 『빌레트』는 작가의 탈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P703

따라서 해리엇 마르티뉴가 『빌레트』의 등장인물들은 사랑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빌레트』를 비판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정확하게 브론테의 요점이기 때문이다. ‘비비드호‘를 타고 가면서 루시는 여성의 핵심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는 여성들 몇 명과 마주친다. 루시는(기름통처럼 생긴 남편과 함께한) 어느 신부를 보고 그녀의 웃음소리가 절망의 광기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한다. 빌레트로 떠나는 들떠 있는 여학생인 지네브라 팬쇼는 돈 많은 늙은 신사와결혼해야 하는 다섯 자매 중 하나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객실승무원의 편지에 등장하는 샬럿이라는 여성은 경솔한 결혼을저지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결혼은 외로운 고립의 삶만큼이나고통스러운 복종으로 보이지만 루시는 ‘감옥을 만드는 것은 돌벽이 아니며 / 새장을 만드는 것도 쇠창살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갑판에서 기뻐한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승리의 순간은 즉시 사라진다. 루시도 뱃멀미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아래로 내려가야 하고, 루시의 시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는다. 감옥에 갇힌 죄수를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는 것이 마음이라면, 육체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벽과 창살을 제공할 수 있는 것도 마음이기 때문이다. - P710

루시의 존재는 살아 있는 죽음이었다. 루시는 의식하지 못한 채 죽어가는 이방인이고, 의심하지 않는 손님을 살해하는 가정부이기 때문이다. 폴리이자 루시이고 지네브라이자 마담 베크인 루시는 이런 내적 갈등으로마비된 수녀다. 루시가 자신을 마담 베크의 거미집에 걸린 파리, 달팽이, 혹은 위태로운 거미줄에서 튕겨 나오는 거미로 상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아라는 집 내부의 갈등 속에서 루시안의 서로 대립하는 존재들은 루시의 내면이 파편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 파편화는 루시를 완전한 신경쇠약으로 내몰고 말 것이다. - P179

루시가 자신의 불만을 늘어놓는 불가해한 방식은 놀라울 정도다. 사실상 이 소설을 좌절 장면부터 거꾸로 해석하지 않는이상, 루시의 고충은 거의 이해할 수 없다. 루시의 갈등은 감추어져 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 루시는 자신의 갈등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화자인 동시에 소설 속 인물인 루시는 자신의 이야기만 아니라면어떤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듯 보인다. 폴리 홈, 미스 마치몬트, 마담 베크, 지네브라는 각각 루시 자신보다 훨씬 더 상세하고 더 분석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 때문에 여러 세대에 걸쳐독자들은 이 작품이 반쯤 끝날 때까지 브론테가 이 소설의 주제를 자각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는 또한 작품의 신화적 요소들을 비록 인식했다 해도, 일반적으로 오해받아왔거나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으로 거부당해왔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째서루시의 정신분열은 모든 여자가 직면하는 일반적인 문제로 간주되는가? 브론테가 『빌레트』의 막간에서 직면한 문제가 (그것이 암시하는 모든 것과 함께) 바로 이 질문이다. - P725

분명 루시의 설명에는 현저하게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어린 시절의 공포, 부모의 상실, 존 박사에 대한 짝사랑, 긴 방학 동안 이어진 악몽의 공포는 이상할 정도로 암시적으로만 제시된다. 예를 들면 실제 사건을 묘사하는 대신 루시는 이런 고통의 순간에 자신이 느낀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물의 이미지를 빈번하게 활용한다. - P726

다가올 구원에 대해 논할 때 루시는 결코 가정이나령, 의문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구원에 대한 루시의 욕망은 항상 희망과 기원으로 표현될 뿐 결코 신념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상의 삶은 불평등에 기초하고 있으며, 자신보다더 큰 힘이 불평등을 묵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루시는 냉소적이고 거의 풍자적으로 ‘우리가 자신을 낮추어 순종을 하든안 하든‘ 신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인정한다. [38장] - P728

만약 마담 발라펜스가 루시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면, 루시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환영인 다락방의 수녀는 그녀와 어떤관계인가? 기독교에서 계속 나타나 노파-까마귀 여신의 모습은 로스가 주장하듯 자애로운 성자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노파‘를 의미하는 켈트어인 카일리아크cailleach는 ‘수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화려한 색깔의 옷과 반지로 장식한 채, 이 곱사등이가 집 꼭대기에서 내려와 죽은 수녀, 폴의 매장된 사랑인 잃어버린 저스틴 마리의 초상화를 통과해 나타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루시는 그 그림이 슬픔, 나쁜 건강, 순종적인 습관의 우울함을 나타내는 창백한 어린 얼굴에 수녀 복장을 한 성모 마리아같은 모습을 그렸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이미 제인 에어의 순종의 결과로 버사 메이슨 로체스터의 공격성이 나타나는 방식을 보았고, 캐럴라인 헬스턴의 여성적인 수동성 때문에 셜리 킬다의 남성적인 힘이 나타나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마찬가지로『빌레트』에서 마담 발라펜스의 악의도 저스틴 마리의 자멸적인수동성의 다른 면이다. 디킨슨의 시(「우리 뒤에 숨겨져 있는 우리가 - / 가장 놀라게 한다-」)의 핵심적 진실을 극화하는 양, 브론테는 그 마녀가 바로 수녀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미스 마치몬트의 초기 판단이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 - P750

서 마녀나 수녀가 되지 않은 여자들은 루시처럼 마녀와 수녀 모두에게 시달린다. 사랑과 남자에 대한 루시의 양가적 감정은 이제 충분히 설명되었다. 루시는 자신의 세계에서 자아실현이 가능한 유일한 형식으로 감성적 성애적 관계를 추구하지만, 그녀는 그런 관계가 자신을 순종이나 파멸, 자살, 또는 살인으로 이끌고 가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 P752

다른 사람의 관찰대상으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보는 대신, 루시는 스스로 자신을 바라본다. 루시는 점점 더 자신을 그녀 자신의 몸과 동일시할 수 있음으로써 자신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사람이 자신을 모순적이며 무능력하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정의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리하여 루시는 존 박사, 홈 씨, 지네브라, 폴리조차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자신을 보았는지 이해하기 시작한다. 브론테는 드디어 루시가 ‘진리‘에 대한 상상적인 ‘투사‘와이성적인 ‘이해‘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거울은 실재를 반영하지 않는다. 거울은 실재를 해석함으로써 실재를 창조한다. 그러나 해석의 행위는 지각의 행위로 남아 있을 때만 포학성을 피할 수 있다. 결국 ‘작은 방어들이 축적되는 곳에서만 […]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27장] - P760

동시에 브론테는 사랑의 끝은 삶의 끝이 아니라는 점도 말한다. 『빌레트』의 마지막 장은 ‘공포는 가끔 헛된 상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우리에게 인지시키며 시작한다.[42장] 소설의 끝에서 루시는 확실하게 결론 내리기를 거부한다. ‘찬란한 상상력이 희망하게 놔두라.‘ [42장] 브론테는 삶을 떠받치는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 이외의 어떤 명확한 메시지도 삼가는 애매하게 열린 결말을 남겼다. - P762

가부장적 예술을 전복하기 위해 브론테가 사용한 것은 수용의 행위다. 최근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브론테가 여자 주인공들 - P763

을 수동적인 인물로 그렸다는 이유로 불편해한다. 우리가 살펴보았듯 브론테의 작품들은 남성성을 권력과 동일시하고 여성성을 굴종과 동일시하는 폐해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브론테는 순종의 습관이 여성에게 중요한 통찰(여성들이 저항할 때 그들의 주인처럼 되지 않도록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공감의 상상력)로 이끌었음을 알고 있었다. 여자들은 자신을 대상으로서 경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죽음에서 깨어날 필요성과 깨어날 수 있는 능력을 둘 다 이해한다. 여성들은 그 능력과 필요성이 마술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마력이며, 박해하는고백적인 참회가 아니라 부활하는 고백적인 예술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탈출했던 장소에 또 다른 타자를 옭아매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예술이다. 시학의 정치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브론테는 어떤 의미에서(이성과 상상 사이의 간극을 공격하고, 객관적인 예술 작품의 주관성을 주장하며, 그녀 소설의 주제로 대상화된 희생자들을 선택하고, 그녀와 함께 타자화된 사람의 내면성을 경험하도록 독자를 초대하는) 현상학자다. 이 모든 이유 때문에 브론테는 끊임없이 고통받았고, 그녀의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예술의 정직성 덕분에 힘을 얻었던 모든 여성들의 강력한 선구자로 남아 있다. - P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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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굶주림의 기원, [셜리]를 따라

하지만 우리는 『셜리』에서 감금으로 겪는 여성의 고통이 브론테에게 단순한 주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예술성의 척도이자 양상이었다고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다. - P657

많은 독자들은 비유기적으로 전개되는 플롯 때문에 『셜리』를 계속 비판하지만, 가부장적 사회의 강제가 개별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며 오염시킨다고 브론테가 암시할 때, 성차별과 상업 자본주의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예증하려는 것이 그녀의 의도임을 알아챌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탈출의 길을 제공하거나 묘사하기가 쉽지 않다. - P661

캐럴라인이 자제력과 순종으로 완전히 꼼짝 못 하게 되었을 때 셜리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면, 버사 메이슨 로체스터가 자신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을 제인 에어에게 탈출 수단이 되어주었던 방식이 생각난다. - P672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과 그녀의 ‘수정위원회‘가 1890년대에 신의 말씀을 페미니즘적으로 논평하며 시도했던 것은 위 문단을 ‘정반대로 돌려놓는‘ 바로 이 ‘재능‘이었다. 몇몇 목사가 ‘여자들과 악마의 작품‘이라고 간주했던 여자의 성경』에서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과 그녀의 ‘수정위원회‘는 ‘바울이 이 말을 할 때 무한한 지혜의 영감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고 겸손하게 설명함으로써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 쓰인 바울의 명령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스탠턴과 페미니스트들은 계속해서 바 - P676

울의 여성 혐오가 여자들의 말뿐만 아니라 그들의 재산과 인격까지 통제하려는 남성적 시도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폭로한다. - P677

그러나 캐럴라인에게는 ‘마치 정원의 석상처럼 가만히‘ [22장] 체념한 듯 앉아 있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대안도 없다. 자기가 알고 있는 미혼 여성들을 밀폐된 방, 수의 같은 긴 옷, 관처럼 좁은 침대에 갇혀 있는 수녀로 여기는 캐럴라인은 ‘독신녀는 집 없고 일자리 없는 가난한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 어떤자리와 직업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회에 의해 내쳐진다.[22장] 또한 캐럴라인은 상업적 시장의 노동자들처럼자신을 상품화해야 하는 ‘결혼 시장‘에 진입하려다 계략을 꾸미게 만드는 여자들의 ‘편협한‘ 운명 때문에 병이 든다. 물론 여성문제에 대한 캐럴라인의 생각은 측은하게도 ‘영국 남자들‘을 향한, 열정적인 청원으로 끝난다! 여자의 정신을 계속해서 ‘속박하는 것‘은 그들이며, 그 사슬을 풀어줄 힘이 있는 자도 오로지 그들뿐이다. - P682

사실상 이 연인들은 처음에 『제인 에어』에서 활용한 연인의 유형을 뒤집는 것처럼 보인다. 셜리가 갖추어야 할 모든 장신구를소유한 귀족적인 영웅인 반면, 루이스 무어는 젊은 사원 윌리엄 크림즈워스처럼) 여자 가정교사에 해당하는 남성이라 할 수있다. 눈에 띄지 않고 배고픈 가정교사인 무어는[36장] 자신의 능력과 감정이 갇혀 있고 벽으로 차단되어 있다고 느낀다. [26장] 한때 열병을 앓게 한 절망적인 정열을 기록한 일기를 그는 잠가놓은 책상 서랍 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 자신도 ‘전도된 세멜레 신화‘를 기억하면서 이 전통적인 역할의 교환에 대해 언급한다.[29장] 그러나 이 분명한 역할 전도에도 불구하고, 루이스는 셜리에게 그의 지배, 충고, 감독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녀를사랑한다. 더 나이 들고 더 현명한 교사인 그는 그녀에게 구속이 필요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녀 안에 있는 완벽한 숙녀를소중히 여긴다. 따라서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셜리는 ‘영웅과 가부장‘의 손아귀에 든 한 명의 ‘여자 노예‘가 된다. [35장] - P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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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신은 찬사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인용문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지요. 분명 침울한 당신의 표정으로 보아, 전문직 생활의 특징에 관한 이 인용문들은 당신에게서 어떤 우울한 결론을 이끌어낸 게 분명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우리 즉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악마와 심해(深海) 사이에 놓여 있다고 당신은 간단히 대답합니다. 우리 등 뒤에는 가부장제가 있습니다. 무의미하고 비도덕적이며 위선적이고 굴욕적인 사적 가정이 있지요. 우리 앞에는 공적 세계가 있습니다. 소유욕이 강하고 시기심이 많으며 호전적이고 탐욕적인 전문직의 세계이지요. 전자는 우리를 하렘의 노예처럼 감금합니다. 후자는우리에게 벌레처럼 머리부터 꼬리까지 오디나무, 그 신성한 자산의 나무를 맴돌도록 강요합니다. 그것은 해악들 중의 선택입니다. 어느 쪽이라 할 것 없이 나쁘지요. 차라리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들어 그 게임을 끝내고, 인간의 삶 자체가 착오라고 선언하며 끝장을 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 P293

이번에는 19세기 남성의 생애가 아니라 여성, 직업을 가진 여성의 생애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하지만 당신의 서고에는 빈 곳이 있어 보이는군요, 부인, 전문직에 종사한 19세기 여성들의 전기는 한 권도 없습니다. 톰린슨, F.R.S. (영국 학술원 회원), F.C.S. (화학 협회 회원)이라는 어떤 사람의 부인이 그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젊은 숙녀들의 보 - P294

육직 취업을 권고하려고‘ 책을 쓴 이 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정교사로 일자리를 얻는 것 외에 미혼 여성이 생계비를 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성격적으로나 교육으로 인해서 또는 교육의 결핍 때문에 여성이 그일에 부적합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글이 쓰인 것은 1859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채 백 년도 되지 않은 과거이지요. 이것이 당신 서고의 빈 곳을 설명해 줍니다. 가정교사를 제외하고는 전문직을 가진 여성들이 없었으므로, 그들의 생애를 기록한 책도 없습니다. 그리고 가정교사의 전기 즉 기록된 생애는 한 손으로도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가정교사의 생애를 연구함으로써 우리가 전문직 여성의 삶에 관해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다행히 오래된 상자들이 옛 비밀들을 꺼내놓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1811년경에 쓰인 그러한 문서 하나가 기어 나왔지요. 무명의 위턴 양이라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나면 다른 무엇보다도 직업 생활에 대한 자기 생각을 휘갈겨 쓰곤 했지요. 그런 생각들 가운데 한 가지는 이런 것입니다. ’아, 라틴어,프랑스어, 예술, 과학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종종걸음 치듯 바느질하고 가르치고 베껴 쓰고 설거지하는것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든 왜 여성은 물리학, 신학, 천문학 등등과 그에 따른 화학, 식물학,논리학, 수학 등을 모두 배울 수 없는 것일까?‘ 가정교사의 생애에 대한이 논평,가정교사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이 질문은 암흑으로부터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 P295

전기에서는 완곡하게 간접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의 여지없이 명확하게 드러나는바, 이 교사들은 가난, 순결, 조롱이었고, 그리고ㅡ하지만 ‘권리와 특권의 결핍‘ 을 함축하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그 구태의연한 단어, ‘자유‘에 압력을 가해 확장시켜 다시 한 번 사용할까요? 그렇다면, ‘비실재적 충성심으로부터의 자유‘가 그들의 네 번째 교사였습니다. - P299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교육과 교육이 낳은 결과를 비판한 그 유명한 단락을 다시 한 번 인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그녀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느끼며 크림 전쟁을 환호한 것도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다른 원전들(유감스럽게도 그 원전들은 무수히 많지요.)에 제시된 양성의 생애에서 아주 풍부하게 입증되듯이, 그 교육이 만들어낸 공허 - P300

함, 치졸함,원한, 폭정, 위선, 비도덕성을 예시할 필요 역시 없을 것입니다. 어떻든 그 교육이 한 성에 가혹했음을보여주는 마지막 증거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전쟁‘ 에 대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의 병원, 수확기의 들판, 군수공장에는 대체로 그 교육에 대한 끔찍한 공포에서 달아나 비교적 마음에 맞는 곳으로 피신한 여성들이 몰려들었지요. - P301

되풀이하여 요약하자면 성, 계급 혹은 피부색과 관계없이 적절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전문직에 들어가도록 돕는다는 조건으로 당신은 1기니를 받게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당신이 전문직에 종사하면서도 가난,순결,조롱, 비실재적 충성심으로부터의 자유와 결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이지요. - P302

그 밖에 비록 조건이 많아 보이고 기니는 유감스럽게도한 닢밖에 없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그 조건들을 달성하기란 대부분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첫번째 조건―생계를 유지할 만큼 충분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을 제외하면, 다른 조건들은 영국의 법률에 의해서 - P305

대체로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영국의 법은 여성이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규정해 놓았습니다. 영국의은 우리에게 국적이라는 정식 낙인을 찍지 않았으며, 바라건대 앞으로도 오랫동안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허영심과 자만, 과대망상증이라는 현대의 커다란 죄악을방지하는 데 있어서 매우 귀중한 것, 정신의 온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 말하자면 조롱과 질책, 경멸ㅡ을 우리의 남자 형제들이 지난 몇 세기 동안 그러했듯이앞으로도 몇백 년 동안 우리에게 제공하리라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영국 국교회가 여성을 고용하기를 거부하는 한―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를 배제하기를!ㅡ그리고 유서 깊은 학교와 대학교들이 그 기금과특권의 한몫을 우리에게 허용해 주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 편에서 조금의 노력도 들이지 않고 그러한 기금과 특권의 소산인 특정한 충성심과 신의의 맹세에서 면제될 것입니다. 더욱이 사적인 가정의 전통 즉 현재의 이면에 놓인 대대로 내려온 기억은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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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자아와 영혼의 대화
평범한 제인의 여정
<제인 에어> 다시 읽기

여기까지 읽은 챕터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재밌게 읽은, 상대적으로 이해가 잘 되는 챕터였다.
더더욱 제인 에어를 다시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진 리스의 책도 읽어야 하는데.

걱정 마. […] 어느 날 갑자기, 네가 예상도 못하고 있을 때 나의 짙은 색 외투 안에 감추어둔 망치를 꺼내 너의 작은 머리통을 달걀 껍데기처럼 부숴줄 테니까. 네 머리는 달걀 껍데기처럼 부서져서 피와 뇌수로 흥건해질 거야. 언젠가, 언젠가. […] 언젠가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사나운 늑대가 너에게 달려들어 너의 징그러운 내장을 찢어버릴 거야. 언젠가, 언젠가. […] 지금, 바로 지금, 부드럽게, 소리 없이, 소리 없이
- 진 리스 - P597

또한 올리펀트 부인도 ‘10년 전에 우리는 소설 작법의 정설이 있다고 공언했다. 우리의 연인들은 겸손하고 헌신적이었다. […]소유할 가치가 있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사랑은 모든 여성을 신성시하는 기사도적 사랑이다. […] 그때 갑자기 경고도 없이 『제인 에어』가 이 무대에 들이닥쳤고, 이후 현대의 가장 놀라운 혁명이 『제인 에어』의 침입에 뒤따랐다‘고 1855년에 말했다. - P599

『제인 에어』는 명백한 페미니즘 논문이고, 여자 가정교사의 사회적 처우 개선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논쟁서’라고 리처드 체이스는 1948년에 다소 불만스러운 태도로 인정했다. 하지만 리처드 체이스는 다른 대부분의 현대 비평가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의 힘은 제인과 남성 섹슈얼리티의 대결을 신화화한 데서 나온다고 믿었다. - P600

억압된 분노를 신화화하는 것과 억압된 섹슈얼리티를 신화화하는 것은 유사할지라도, 억압된 분노를 신화화하는 것이 사회질서에 훨씬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 P601

그녀 자신의 감금된 ‘굶주림, 반항, 분노’와의 대결과 만남이며 자아와 영혼의 내밀한 대화다. - P602

그리고 ‘견딜 수 없는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상한 방법, 즉 도망가기, 만약 이것이 성공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아 자신을 죽게 내버려두기‘를 상상한다. [2장] 도망쳐서 탈출하거나 굶어죽어서 탈출하는 것 외의 다른 방법은 『제인 에어』 전체에 걸쳐 되풀이될것이며, 실제로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 19세기와 20세기에 여성이 쓴 다른 많은 작품에서도 반복되었다. 어린 제인은 붉은방에서 훨씬 더 무서운 대안인 제3의 방법, 즉 광기를 통한 탈출을 선택한다(또는 선택을 강제당한다). - P605

세상과 직면하는 제인의 방식은 템플 선생의 숙녀다운 자제나 헬렌번스의 성자 같은 자기 포기가 아니라 여전히 불처럼 반항하는 프로메테우스의 방식이다. 제인은 두 어머니로부터 최소한 외면적으로 타협하는 법을 배운다. 순수한 자유가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새로운 노역을 나에게 내려달라‘고 외친다. [10장] - P615

로체스터도 위장을 한 꺼풀 벗어던지고 자신이 블란치에 대해 제인을 속인 사실을 고백하며, 그들 사이의 동등성과 유사성을 인정한다. ‘나의 신부는 여기에 있소. 나와 동등한 자, 나의 닮은꼴이 여기 있으니‘ 하고 로체스터는 시인한다. 두 사람의 말속에 성적인 에너지보다는 정신적인 에너지가 흐른다는 사실은의미심장하다. 릭비 부인이 말했듯이 말은 도덕적인 면이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 잘못되었다. 샬럿 브론테는 여기에서 왕자와 신데렐라가 민주적으로 동등하고, 파멜라도 미스터 비만큼훌륭하고, 주인과 하인이 매우 비슷한 세상을 상상하는 듯 제시하기 때문이다. 또 이처럼 진정한 마음으로 맺어진 결혼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걸림돌을 인정할 수 없다. - P626

그녀의 세계에서는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의 평등한 사랑조차 결혼을 통해 불평등과 사소한 독재로 나아갈 수 있음이 감지되는 것이다. - P630

그 적대감은 실크상점에서 명확해진다. 그곳에서 제인은 ‘그가 나에게 많은 것을 사줄수록 나의 뺨은 괴로움과 모멸감으로 더욱 달아올랐다. […] 그의 웃음은 힘있는술탄이 기쁘고 기분 좋은 순간에 그의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노예에게 주는 웃음이었다‘ 하고 말한다. [24장] - P631

버사는 자신의 욕망뿐만 아니라 제인이 품은 욕망의 대리인이기라도 하듯, 손필드 저택을 태우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제인은 ‘너는 오른쪽 눈을 잃게 될 것이다. 너의 오른손을 잘라낼 것이다‘ 하고 스스로 무서운 예언을한다.[27장] 이런 예언으로 요약되는 로체스터에 대한 제인의 위장된 적대감은 기이하게 버사의 개입을 통해 실현된다. 버사의 멜로드라마 같은 죽음은 로체스터가 눈과 손을 잃는 원인이 원칙을 된다. - P637

이 충동은 제인이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버사의 죽음을 통해 자신을 괴롭히는 분노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동등한 결혼을 가능하게 만들고 나서야, 다시 말하자면 그녀 안에서 온전한 자아가 가능해진 다음에야 비로소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다. 제인 안에 있는 버사가 손필드의 폐허가 된 벽에서 떨어져 죽는 바로 그 순간에, 의미심장하게도 제인의 꿈이 예언한 것처럼 고아 아이도 제인의 무릎에서 굴러떨어질 것이며, 제인의 과거의 짐이 제거되고 제인도 깨어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로체스터가 말한 대로, ‘이렇게 약하면서도 꿋꿋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없었소. […] [제인의] 눈에서 나오는 단호하면서도 거칠고 자유로운 것을 보시오. […] 갇혀 있는 새장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하든, 나는 그 야만적이고 아름다운 피조물을 잡을수 없소.‘ [27장] - P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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