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파괴의 천사 조지 엘리엇
<성직 생활의 장면들>
<애덤 비드>
<급진주의자 펠릭스 홀트>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미들마치>
<로몰라>
<대니얼 데론다>
모순, 분노, 파괴의 천사, 살인 본능, 생매장, 바느질, 거미줄..

이번 장 읽은 책도 없고, 너무 많은 책이 언급되어 있고, 그리고 이불 속에서 졸며 읽었네. 이젠 더 모를 ‘시’ 챕터…

성직 생활의 미덕에 대해 쓰려고 하는 불가지론자로서, 아내의 봉사를 찬양하는 ‘타락한‘ 여자로서, 모성을 찬양하는 아이 없는 작가로서, 여성적 감수성을 기꺼워하는 의미로 스스로 ‘삶의 실험’이라[편지 6] 부른 소재를 다루는 지성인으로서, 엘리엇은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자기 소설 인물들에게 복수하고(그녀가 고백한 소설가의 의도와 견주면 더 두드러지는) 가혹한 징벌을 내림으로써 그런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정신과 마음 사이의 이 긴장이야말로 엘리엇이 초기 필명 중 하나(파괴의 천사 폴리언)의 역할에 헌신했던 이유이며, 또한 매우 다른 미국의 두 동시대인인 마거릿 풀러와 헤리엇 비처 스토에게 매력을 느낀 이유다. 엘리엇은 엘리엇 자신의 예술 안에서 싸우는 충동을 두 사람이 구현했다고 본 것 같다.
조지 엘리엇과 마거릿 풀러는 성취한 업적이 매우 다르긴 하지만 여성적 힘에 대한 불안을 공유했다. 또한 이 둘은 다수의 지적 개인적 목표를 공유했다. 마거릿 풀러의 삶이 엘리엇 자신의 인생에 ‘구원과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을 때[편지 2], 엘리엇은 그런 사실을 인식했던 것 같다. 엘리엇처럼 무섭고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풀러는 부도 사회적 지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풀러는 돈 때문에 글을 쓰는 경우도 빈번했다. 학식이 높다는 이유로 비정상으로 여겨졌던 풀러는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무녀처럼 취급되었다. - P825

‘선머슴’ 같은 조가 발끈하는 성미 때문에 결국 누군가 죽이고 말 거라고 걱정하자 어머니는 자신도 40년 동안이나 못 고친 성질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거의 날마다 화가 나지만, 티를 내서는 안 된다고 배웠지.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것을 느낄 수 없게 하는 법을 배웠으면 해. 그러려면 또 40년이 걸리겠지만‘ 하고 조에게 말한다.

- 작은 아씨들 - P832

만약 그녀가 존재의 평온한 위엄에서 행위의 끊임없는 불안으로 타락한다면 당신은 분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장] - P834

여자 주인공들이 자신의 분노를 누르고 체념의 필요성에 순종하는 동안, 작가는 네메시스가 되어 여자 주인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그의 창조자를 위해’ 행동했던 방식이나 버사 메이슨 로체스터가 제인 에어를 ‘위해‘ 행동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이다. 따라서 『성직 생활의 장면들』에서 미친 여자는 바로 (남성 화자가 아니라 장면들 뒤에 있는 여성 작가로서) 소설가라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 P843

『안티고네』 개정판에 대한 소론에서 엘리엇이 ‘자연적인 성향과 수립된 법 사이의 투쟁‘으로 묘사했던 것은 매기 털리버의 비극에 그녀가 기울인 관심의 극히 일부일 따름이다. 엘리엇은 여성 혐오자 크레온 왕에 반항한 안티고네에게 몹시 이끌렸다. 그녀의 반항은 오빠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충절 때문이었고, 그것이 결혼 거부라는 형식을 띠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티고네 - P848

의 반항은 순수한 자신을 자발적으로 매장하는 것이다. 엘리엇은 크레온과 폴리네이케스를 한 인물, 즉 톰으로 결합시켜 여자가 자신을 정의하고 자존감을 갖기 위해서는 남자에게 완전히 의존해야 한다는 여성 노예화를 분석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끌어들이고 있다. 『로몰라』 (1862~1863)에서 콜로노스의 안티고네 초상화 모델을 서는 여자 주인공이나 『미들마치에서 기독교적 의미의 안티고네로 보이는 도러시아의 경우도 분명 이에 해당하며, ‘헤카베와 헥토르 시대 이래‘ 여자들은 ‘성문 안에서 […]멀리 떨어져 세상의 싸움을 바라보고, 길고도 공허한날들을 기억과 공포로 채우고 있는데, 남자들은 밖에서 신과 인간의 일로 격렬하게 투쟁한다‘고 [5부 2장] 『플로스강의 물방앗간』의 화자는 추론한다. 국가의 법적 요구보다는 가족의 사적유대에 더 헌신하는 현대의 안티고네들은 자신의 충절 행위가 늘 자살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고독하고 무력한 존재들이다. - P849

이 화술은 무시할 수도 없고 폄하할 수도 없다. 타락한 여자의 분노는 작가의 플롯에 감추어진 변증법 속에서 미친 여자와 성모 마리아를 연결하며 극화되지만, 결국 화자의 여자 주인공으로 살아남은 자는 이타적인 성모마리아다. - P855

샬럿 브론테가 저항했던 모든 부정적 전형이 조지 엘리엇에 의해 미덕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브론테는 여자가 지적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저주하는 반면, 엘리엇 - P855

은 지적인 결핍이 초래할 무서운 결과는 인정하지만 이 결핍 덕분에 여자에게는 감정적인 삶이 더 풍부해진다고 암시한다. 브론테는 여자가 자기주장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반면, 엘리엇은 남성적 경쟁이 아닌 서로 돕는 동지애에 기초한 고유한 여성 문화의 미덕을 극화한다. 브론테가 여성의 감금이 불러일으키는 숨 막히는 구속의 느낌을 극화한다면, 엘리엇은 『미들마치』의 마지막에 인용한 던의 말마따나 자신의 사랑으로 ‘어디에든 작은 방‘을 만들 수 있는 여성의 창의성을 칭송한다.[83장] 브론테는 남자들이 소유한 권위 있는 자유를부러워하는 반면, 엘리엇은 그 권위 때문에 사실상 남자들이 그들 자신의 육체적 심리적 진정성을 경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P856

엘리엇은 자신의 후기 소설 전반을 통해 인자한 여자주인공들에 대한 화자의 존경과 작가의 복수충동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우리가 이 투쟁의 의미 전체를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마도 엘리엇의 가장 위대한 소설 『미들마치』일 것이다. - P857

(로체스터가 제인 에어에게 행실이 의심스러운 프랑스 배우와 사귄 경험에 대해 설명한 것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플롯전개로 보더라도 불필요하기 짝이 없는 이 이상한 사건을 포함해) 『미들마치』에서 묘사한 결혼 관계와 여자의 연기가 은연중에 드러내는 살인 본능에 대한 엘리엇의 관점은 흥미롭다. 「벗겨진 베일』과 『성직 생활의 장면들과 같이 엘리엇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남성적 정신‘과 ‘여성적 가슴‘으로 규정한 대립적인 두 측면에 내재한 폭력 가능성에 관심이 있었다. - P858

그때도 도러시아는 ‘단지 시시한 길들의 미궁처럼 보이는,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는 벽으로 꽉 막힌 미로처럼 보이는 사회생활에 에워싸인 채, 편협한 교육의 굴레 속에서 몸부림쳤다.‘ [3장] - P868

도러시아의 딜레마는 한 미국 여자가 겪은 곤경을 기이하게 반향한다. 그녀의 가족은 19세기 후반 미국 인문학을 대표했다. 앨리스 제임스는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나 자신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거나, 은백색 머리카락의 자비로운 아버지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을 때 그의 머리를 부숴버리고 싶은 격렬한 충동이 갑자기 온갖 형태로 나의 근육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모든 공포와 고통을 느꼈지만, 다만 광인과 다른 점이라면 내몫의 의사나 간호사의 의무와 구속복이 있다는 것이었다.

- 앨리스 인 베드!! - P877

‘시간이 흐른뒤에는 어떤 이야기도 똑같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읽는 우리가 더는 똑같은 해설가가 아닌 것이다.‘ [『애덤 비드』 54장] - P888

로저먼드는 어떤 면에서 여성으로서 자기 역할을 수용한다는 표시로 바느질을 한다. 그녀는 이 점에서 엘리엇의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자 주인공들과 현저한 차이가 있다. 다른자 주인공들은 기예가 부차적이고 전적으로 보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에 대해 느끼는 혐오감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바늘이나 물레에서 떨어지는 세 방울의 피가 여성적 젠더로 추락하 - P889

는 것을 의미하고, 잠에 빠져들거나 임신하는 상황을 상징하는모든 동화에서 바느질은 여성이 집 안에 갇히거나 축소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기 털리버는 조각보를 만들기 위해천을 조각조각 찢는 행위를 경멸하면서도 마침내 밋밋한 바느질을 완성시킨다. 그 바느질은 스스로를 고행의 길로 밀어넣고자 하는 열의에서 나온 것이다. 반면에 궨덜린 할레스는 어머니와 자매들과 함께 테이블보나 성찬식 식탁보를 만든다는 생각만으로도 치를 떤다. 매기와 궨덜린은 응접실을 꾸미려고 응접실에서 작업하는 여성적 예술에 반항한다는 점에서 도러시아를닮았다. 그러나 도러시아는 ‘성경 속 여성 인물들을 연구함으로써, [・・・] 그리고 안방에서 수를 놓기보다는 자신의 영혼을 돌봄으로써‘ 축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배제되어 있다. [3장] - P890

많은 비평가들은 『미들마치』가 사회를 서로 다르지만 서로 관련된 삶들로 짜인 직물로 묘사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이 마을의 역사는 도시적인 마을과 시골 교구 사이에 만들어진 ‘새로운 연결의 실‘이라는 측면으로 묘사된다.[11장] 반면 시골 생활의 개인 관계들은 일종의 실로 꼬아 만든 듯한 창조물이 된다. 화자는 ‘이 대부분의 내면의 삶이란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갖고 있다고 믿는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그의견들로 짠 천이 파멸의 위협을 받을 때까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하고 묻는다. [64장] 다만 이보다 덜 명확한 것은 연결의 실을 바느질하는 것이 여자들이기 때문에 공동체를 구성하는 의견의 천을 짜는 사람들도 여자들이라는 점이다. - P892

우리는 앞으로 에밀리 디킨슨이 그녀 자신을 전복적인 주문의 실을 조용히 잣는 거미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보이지 않는도구로 / 비밀리에 싸우는지‘ 탐색할 것이다. 가장 작은 틈과 균열 안에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일하는 거미의 모습은 일찍이 매기 털리버가 풍요로운 하얀 가루로 뒤덮인 플로스의 물방앗간에서 만들어진 마술 같은 레이스 세공품을 떠올렸을 때 그녀의 생각을 지배했다. 실제로 거미줄은 자연이 보여주는 기예의 사례이며 누에고치 솜floss도 마찬가지다. 엘리엇이 - P897

그 강을 플로스라 불렀을 때, 그 이름은 강물의 흐름과 실 사이의 은유적인 관계에 우리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물론 앤 핀치의인용구가 말해주듯 거미줄은 엘리엇과 디킨슨 훨씬 이전부터 중요한 상징으로 쓰여왔다. 상징으로서 거미줄은 여성의 권위추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제로 마거릿 캐번디시는 자신의 시의 서문에서 ‘손가락으로 실을 잣는 일이 시를 공부하거나쓰는 일보다 (이는 두뇌로 실을 잣는 일이다) 여성에게 더 적절하다는 것은 진실‘이라고 인정한다. 그런 만큼 캐번디시가 어느 시에서 ‘거미줄을 잣는 거미의 가사 노동은 자기 옷이 아니라날벌레 잡을 밧줄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쓴 것은 결코 놀랍지 않다. - P898

엘리엇이 『미들마치』에서 분노를 넘어서고, 초기 작품에서 드러나는 남성 역할의 전유를 넘어서 작업하고 있듯, 스토 역시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해방의 고유한 여성적 형태를 그린다. - P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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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21 0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13장 읽었는데 조지 엘리엇 하나도 안읽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ㅠㅠ 그래서 <벗겨진 베일>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어요 ㅠㅠ

햇살과함께 2022-12-21 09:2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역시 빠르다~! 벌써 13장이요?!
14장은 조지 엘리엇 종합선물세트입니다:;;
벗겨진 베일은 100페이지도 안되서 금방 읽을 수 있으실듯요~
 

아~ 베시 이렇게 대놓고 팩폭을 ㅎㅎ

나는 그동안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나는 다만 내가 손실한 것을 섭섭히 여기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보충할 수 있을까만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오랜 명상 끝에 얼굴을 들었을 때 이미 오후도 지나고 밤이 된 것을 깨닫게 되자 나의 마음에 새로운 것이 떠올랐다. 말하지만 나는이때 변화하는 과정에 있었다. 나의 마음이 선생으로부터 빌리고 있던 것을 버리고 말았다기보다는, 선생의 옆에서 숨 쉬고 있던 그 조용한 분위기가 선생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타고난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돌아가 버려, 옛날의 불안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기둥이 없어져 버렸다기보다는 원동력 그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평온해 있어야 할 기운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평온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나의 온 세계는 로우드에서 지낸 과거의 몇 년간이었다. 경험한 것이라고는 학교의 규칙이나 제도에 관한 것뿐이었다. 나는 실제 세계는 넓고 넓으며 희망과 두려움, 감동과 흥분 등의 다양한 영역이 그리로 들어가 위험 가운데서 삶의 참된 지식을 찾으려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 P148

"아니, 제인 아가씨, 그렇지도 않아. 고상하고 숙녀같이 보여요. 그 정도는 될 줄 알았으니까요. 아가씬 어렸을 때도 미인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베시의 솔직한 대답을 듣고 미소 지었다. 분명히 베시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으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말에 무관심할 수는 없었다. 대개의 여성은 나이 열여덟 살이 되면 남의 마음에 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용모가 그런 소망을 이루어 주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조금도 기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아가씨는 총명하시지"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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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12-19 2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12-20 17:15   좋아요 1 | URL
베시 이렇게 솔직할 필요는 ㅋㅋㅋ
제인도 외모에 신경쓸 10대 인데 말입니다 ㅋㅋㅋ

다락방 2022-12-20 0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2-12-20 17:15   좋아요 1 | URL
베시랑 대화에서 둘 다 충청도 스탈 사투리 써서 더 웃겼어요 ㅋㅋㅋ
 

"제인, 조용히, 넌 인간의 사랑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해. 너무 충동적이고 너무 격렬한 것 같아. 네 몸뚱이를 창조하시고 거기다 생명을 불어넣으신 하느님의 손은 가냘픈 네 육체 이외에, 아니 너와 같이 연약한 사람들의 육체 이외에 의지가 될만한 것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셨단다. 이 지구 이외에, 이 인류 외에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영혼의 세계가 있는거야. 그 세계는 우리의 주위에 있는 거야. 왜냐하면 그것은 있을 장소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천사들이 우리를 지켜주시는 거야. 천사는 하느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도록 사명을 띠고 있으니 말이지. 그리고 설사 우리가 고통과 치욕에 눌려 죽어도, 사방에서 받은 조롱이 우리를 못살게 굴어도, 증오가 우리를 짓밟아도 천사들은 우리의 고통을 지켜보고 있다가 우리의 결백성을 알아주신단 말이야. 우리가 결백하기만 하면 말이지. 마치 브로클허스트 씨가 리드 부인에게 얻어들은 것을 과장해서 되풀이하고 네가 억울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듯이 말이야. 난 네 빛나는 눈이나 - P120

맑은 얼굴을 보면 네가 성실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어. 그래서 하느님은 풍족한 상을 주시려고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만을 기다리고 계셔. 그런데 어째 넌 비통에 잠겨 있니? 사람의 생명은 쉬 끝나는 것이고, 죽음은 행복으로, 영광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게 이처럼 확실한데?"
나는 잠자코 있었다. 헬렌이 나의 마음을 진정시켜 준 것이다. 그러나 헬렌이 날 안정시켜 주었지만 아직도 내 마음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가 말했을 때 나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어째서 슬프게 느껴졌는지나로서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말이 끝나자 그녀의 숨이 조금 가빠지고 잔기침을 했을 때 나는 그녀에 대해 막연한 불안을 느끼고 나 자신의 슬픔을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머리를 헬렌의 어깨에 기대고 그녀의 허리를 내두 팔로 감았다. 헬렌은 나를 끌어당겼다.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이때 딴 사람이 들어와서 오래 그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두운 구름이 바람에 흩어지고 달만이 남았다. 그 달빛이 창문으로 흘러 들어와 우리와 다가오는 사람의 모습을 환히 비춰 주었다. 곧 템플 선생이라는 걸 알았다. - P121

솔로몬이 그럴듯하게 표현한 말이 있다. "채소를 먹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찐 소를 잡아먹고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낫다."
나는 이제 곤궁하기 짝이 없는 로우드의 생활을 게이츠헤드의 사치스러운 생활과 맞바꾸고 싶지가 않게 되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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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을 속이지 않아요. 만약 속이기가 일쑤라면 아주머니를 좋아한다고 말할 거예요. 그러나 저는 분명히 말하겠어요, 아주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 세상에서 존 리드 말고는 아주머니가 제일 싫어요. 거짓말쟁이에 관한 이 책일랑 조지아나에게 주세요. 거짓말쟁이는 제가 아니라 조지아나니까요." - P60

복수 비슷한 감정을 내가 맛보기는 그것이 처음이었다. 복수는 향기 좋은 포도주와 같아서 마실 때는 따뜻하고 독특한 맛이 돌았다. 그러나 뒷맛은 쇠붙이 맛이 나고 입 안이 얼얼해서 흡사 독이라도 마신 것 같았다. 나는 당장 리드 부인에게로 달려가서 용서를 구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렇게하면 그녀는 이중의 멸시로 나를 물리칠 터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성깔을 북돋우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절반은 경험으로 절반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 P63

"그래, 너 나와 헤어지게 되어서 좋으냐?"
"아니에요, 베시. 지금 어쩐지 마음이 언짢은걸요."
"지금 어쩐지라고! 아주 쌀쌀한 말씨구나. 작별의 키스를 해 달라고 해도 너 안 해 주겠구나. 어쩐지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
"키스하겠어요. 자, 고개를 내려요." 베시는 허리를 굽혔다.
우리는 서로 끌어안았다. 나는 포근한 기분으로 그녀를 따라 저택으로 들어섰다. 그날 오후는 평화와 조화 속에 지나갔다. 밤이 되자 베시는 내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일 좋은 노래도 불러 주었다. 내게도 인생이 햇빛을 번뜩여주었던 것이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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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첫장부터! 가엾은 제인.

크나큰 소용돌이가 치는 북해가
세상 끝 벌거숭이 외진 조막섬들을 씻고
대서양의 파도는 폭풍 휘몰아치는
헤브리디스섬 사이로 밀려든다. - P9

"억울해! 정말 억울해!" 괴로운 나머지 순간적이긴 하지만 올된 힘에 밀려 내 이성은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같은 투로 자극을 받은 결단력도 견딜 수 없는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엉뚱한 비상수단이라도 쓰라고 부채질하는 것이었다. 도망쳐 나가든가, 아니면 식음을 전폐해서 자살을 하든가 하라고. - P22

"그 오래전 옛날에" 부분은 장송곡 중에서도 가장 슬픈 가락처럼 울려 나왔다. 그러더니 베시는 다른 담시를 노래했는데 그것은 정말 구슬픈 노래였다.

내 발은 아프고, 내 몸은 지쳤다.
갈 길은 멀고, 산은 험하구나.
가여운 고아가 가는 길 위로
달도 없이 황혼은 내리는구나.

바윗돌 우뚝우뚝한 황야로
어찌 나 홀로 멀리 가야만 하는가.
인정은 메마르고, 오직 천사만이
가여운 고아의 발길을 지켜보는구나.

소슬바람 불고 밤하늘에 구름 없고
별빛은 총총한데, 자비로운 신은
가여운 고아에게
희망과 위안을 내려 주시네.

망가진 다리로 떨어질까, - P34

헛보고 늪에 빠질까
아버지는 축복과 약속으로
가여운 고아를 안아 주시네.
집도 절도 일가친척 없어도
굳은 마음 내 속에 있어라.
천국의 나의 집, 안식도 거기 있으니
신은 가여운 고아의 친구여라. - P35

이 침대 속으로 나는 언제나 인형을 가지고 들어갔다.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법이다. 달리 애정을 쏟을 만한 그럴듯한 것이 없었던 나는 조그만 허수아비처럼 초라하고 퇴색한 우상을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가운데서 즐거움을 구했다. 그 조그만 인형이 살아 있어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바보같이 고지식하게 그것을 사랑했던가를 회상해 보면 내가 생각해도 묘한 느낌이 든다. 인형이 포근하고 따뜻하게 누워 있으면 나는 얼마간 행복스러운 기분이 되는 것이었고 인형 또한 그러리라고 여겨졌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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