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품 해설에 다락방의 미친 여자 언급. 왜 이리 반가운지!

하지만 두 사람이 "다른 것은 모두 이것을 위해서"라고 말할만한 것이 없었다. 아이들은 생활의 중심이자 존재의 이유가 될수 없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헤아릴 수 없는 기쁨과 재미와 만족을 안겨줄 수는 있지만, 삶의 원천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도 안 되고, 수전과 매슈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매슈의 일이 ‘이것‘일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흥미로운 일이긴 해도, 존재의 이유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매슈는 자신의 일솜씨에 자부심을 느꼈지만, 신문 그 자체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애독하는 신문은 그가일하는 곳의 신문이 아니라 다른 신문이었다. - P280

두 사람은 이렇게 자기들의 결혼생활을 시험하고 돌봤다. 심한 폭풍이 치는 바다에서 무기력한 사람들을 가득 태운 작은 배를 돌보듯이. 물론, 그러니까∙∙∙∙∙∙ 세상의 폭풍이 심하기는 했지 - P282

만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었다. 두 사람이 이기적으로 굴었다는 뜻은 아니다. 수전과 매슈는 모두 아는 것이 많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폭풍과 모래 구덩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 문제도 없었다. 모든 것이질서 있게 잘 굴러갔다. 그래, 모든 것이 그들의 손안에 있었다. - P283

정원이 있는 커다란 하얀 집에서 건강한 네 아이를 기르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려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 P287

"매슈가 말했다. "애들도 이제 학교에 다니니까 당신 손을 떠났잖아."
수전은 속으로 말했다. ‘억지로라도 꼭 말해야 돼. 그 말은 맞지만, 내가 자유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걸 아느냐고. 앞으로 30분뒤, 한 시간 뒤, 두 시간 뒤에 꼭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 한다고 매순간 계속 생각하고 있다고.‘
하지만 수전은 이렇게 말했다. "몸이 좋지 않아."
매슈가 말했다. "당신도 휴가가 좀 필요한 것 같네."
수전은 경악했다. "나더러 혼자 가라는 건 아니지?" 수전은 남편 없이 혼자서 어딘가로 떠나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이런 뜻이었다. 수전의 표정을 보고 매슈가 웃음을 터뜨리며 팔을 벌렸다. 수전은 그 품으로 들어가면서 생각했다. ‘그래, 그래, 내가 왜 그 말을 못하는 거지? 그런데 내가 해야하는 말이 도대체 뭐야?‘
수전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을 남편에게 하려고 시도해보았다. 매슈는 그녀의 말을 들은 뒤 이렇게 말했다. "수전, 도대체 어떤 자유를 원하는 거야? 그런 건 죽기 전에는 불가능해! 나라고 자유로운 줄 알아? 나는 매일 10시까지 반드시 출근해야 돼. 그래, 뭐, 가끔 10시 반에 갈 때도 있지만 어쨌든 나도 이런저런 일들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그러고 나서 일정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야 하지. 내 말을 오해하면 안 돼. 알지? 6시까지 집에 돌아 - P298

오지 못할 것 같으면 당신에게 미리 전화하지. 그러니 나 역시 앞으로 여섯 시간 동안 책임져야 할 일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있는 순간이 있겠어?"
이 말을 듣고 수전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행복한 결혼생활, 이 집, 아이들을 지탱하는 데에는 이곳에 자발적으로 속박된 매슈가 그녀 자신만큼이나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왜 갑갑함을 느끼지 않는 걸까? 매슈는왜 초조하게 안달하지 않는 걸까? 이것이야말로 그녀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증거였다.
게다가 ‘속박‘이라는 단어…… 수전은 왜 이 단어를 썼을까?
그녀는 결혼생활이나 아이들을 단 한 번도 속박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매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12년동안 결혼생활을 한 두 사람이 지금 서로의 품에 안겨 만족스럽게 누워 있지 않았을 것이다.
- 19호실로 가다 - P299

영국에서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여성들의 행동범위가 가정에 국한되었다. 이른바 ‘가정 속의 천사‘로 남도록 강요된 것이다. 여성들이 지적인 바깥일을 하거나 - P337

자신의 욕구를 표출할 때에는, 산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의<다락방의 미친 여자: 19세기 여성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이들은 미친 여자로 간주되어 다락방에 갇힐 수도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인 1960년대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기존 사회규범에 대해 재고하게된 시대로, 특히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관련된 사회적 터부taboo를 타파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즉, 긍정적으로 보면 혁신 혹은혁명이 범람하는 활기찬 시대였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무책임한과잉, 현란함, 사회질서 붕괴의 시대였다. 이 책의 서문에서 레싱이 냉소적으로 표현했듯, 이 시대는 "성적인 관습의 코미디 같은시기였고 "예의 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규칙 같은 것도 없던"시대였다. - P338

레싱의 단편소설들은 얼핏 보면 출구가 없는 듯 암울해 보이지만, 실상 레싱은 불안증, 정신분열을 포함한 신경쇠약, 즉 ‘브레이크다운 breakdown‘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자신의 무의식 속 깊은 곳에 있는 적과 대면한 후에야 자신의 치유에 이를수 있고 이 과정을 겪은 사람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남들까지도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레싱의 소설은 현실의 문제들을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치유의 씨앗을 품고 있다.
- 작품 해설 민경숙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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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1-11 0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거 보고 반가웠어요 ㅎㅎ

햇살과함께 2023-01-12 11:40   좋아요 0 | URL
그죠~~ 이 책을 알게되니 자주 눈에 띄는 걸까요? ㅎㅎ 너무 좋네요

다락방 2023-01-11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이론과 비평> 에서도 다락방의 미친 여자 언급되더라고요. 각주로 나오는데 너무 반갑고 좋았어요. 난 읽었지롱~ 하면서요. 껄껄.

햇살과함께 2023-01-12 11:41   좋아요 0 | URL
저도 지난주 서문만 읽었는데 나와서 너무 반가웠어요~ 심지어 이번주 시사인에서도 발견!! ㅎㅎ
 

레니가 말했다. "의사한테 진찰은 받아봤어, 찰리 형?"
"응. 나더러 마음을 편안히 먹으래. 그래서 집에 온 거야."
"너무 열심히 노력하다가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야."
"아냐,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아. 의사는 그냥 마음을 편안히 먹으라는 말만 했어."
레니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찰리는 레니가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뭐라고 말할지 알 것 같았다. "찰리 형한테 무슨 걱정이 있나 봐요." 그러면 어머니는 얇게 저민 감자를 끓는 기름에 넣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끔 찰리를 보면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있나 생각하는 것 같더라. 게다가 찰리도 네가 자기와는 달리 돈을 벌고 있다는 걸 아니까." 어머니는 레니와 조심스럽게시선을 교환한 뒤 다시 말할 것이다. "여기에 와서 보내는 시간이 찰리에게는 힘들 거야. 모든 게 다르잖니. 그런데 여길 떠나서 그쪽에 가면 또 모든 게 다르고."
"걱정 마세요, 엄마."
"걱정 안 해. 찰리는 잘할 거야." - P161

"엄마는 다 눈치채고 있어. 지난번 형이 떠난 뒤에 엄마가 울었어."
"뭐라고?" 찰리는 죄책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잔소리를 늘어놓는 내면의 목소리가 적절하게 치고 들어왔기 때문에, 찰리는 그 목소리를 통해 말할 수 있었다. "우리한테는 어머니를 무슨 하인처럼 대할 권리가 없어. 베티는 음식이맛이 있네 없네 떠들어대고, 아버지는 이런 음식이 싫네 좋네 잔소리를 늘어놓는데 어머니는 부엌에 서서 우리 비위를 맞춰주잖아. 하인처럼."
"어젯밤에 고기에 기름이 붙은 게 싫다고 엄마 거랑 바꾼 사람이 누구더라?" 레니가 말했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나무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나는 다른 식구들이랑 똑같이 굴었을 뿐이야." 찰리가 말했지만, 마치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가 화가 나거든." 이번에는 진심 같았다. 그리고 타이르듯이 말을 이었다. "마을 여자들은 전부 그런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누군가가 여자들의 일을 질서 있게 정리해서 여자들이 가끔 반나절 정도 쉴 수 있게 해줘도 여자들은 그걸 모욕으로 받아들이겠지. 일을 그만두질 못해. 어머니를 봐. - P165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사실 의사 말이 옳았어요. 좋은 뜻에서 한 말이니까. 그런데요 마이크, 난 해내지 못할 거예요. 실패할 것 같아요."
"뭐, 그런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잖아."
"세상에, 내가 그래서 아저씨를 좋아한다니까요. 인생을 넓게 바라보시니까."
"금방 올게." 마이크가 손님을 맞으려고 가면서 말했다.
일주일 전 찰리는 등사기로 찍은 전단을 손에 쥐고 의사를 찾아갔다. 전단에는 ‘학부생들의 신경쇠약 증가에 대한 보고서‘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찰리는 제목 아래의 본문 중 다음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노동계층과 중하층 가정 출신으로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특히 취약하다. 그들에게 학위는 몹시 중요하다. 또한 그들은 낯선 중산층 관습에 적응하느라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들은 기준의 충돌과 문화적 충돌의 희생자이며, 자신의 출신 계급과 새로운 환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 P169

그의 살이 거부감으로 딱딱하게 굳은 것을 느낀 부인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나지 않고 말했다. "자, 봐요, 그렇게 흥분할 필요가 없어요, 그렇죠? 내 말은, 힘든 일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에요. 다른 방법은 없어요."
그녀는 걱정스러우면서도 확신이 있는 표정으로 그를 마주보며 기다렸다.
얼마 뒤 찰리가 말했다. "네, 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빙긋 웃으며 객실로 돌아갔다. 곧 찰리도 그 뒤를 따랐다.
- 영국 대 영국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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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시각이 상당히 부정확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혹시 ‘우리의‘라고 말해도 될까?) 시각은 누구나 반드시 찰칵 하고 마음이 맞아떨어질 만큼, 바람직하거나 공감이 가는 특징들을 지닌 A 또는 B 또는 C 또는 D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물을 담은 접시처럼 자신 위에서 상대가 둥둥 떠다닐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옆구리에 불타는 창 같은 것을 하나 꽂은 채 돌아다니며 그것을 뽑아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사람들은 상처처럼 고통스러운 어떤 것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어 안달하고 있다.
-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 P89

"넌 어때?" 스텔라가 물었다.
"아기를 낳고 나니 내 안의 창의성이 전부 죽어버렸어. 임신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 도로시가 말했다. 하지만 투덜거리는기색은 없었다. 임신 중에 그녀는 미친 듯이 작업에 매달렸다.
"가엾게 생각해." 잭이 말했다. "녀석은 이제 막 태어났잖아."
"글쎄, 그게 무슨 상관이야." 도로시가 말했다. "그게 바로 웃기는 점이야.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내가 생각한다는 점." 그녀가 단조롭고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잭과 스텔라를 또다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며 고민에 잠긴 것 같았다.
- 한 남자와 두 여자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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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가져올 테니……… 저기 계세요." 그녀는 고갯짓으로 하얀 문을 가리키고는 자리를 떴다. 그는 아주 깔끔하고 길쭉한 하얀 방으로 들어갔다. 한쪽 구석에 좁은 침대가 있고, 탁자 위에는 스케치와 연필이 잔뜩 흩어져 있었다. 벽에는 색색의 견본 조각들이 압정으로 꽂혀 있었다. 둥글고 나지막한 탁자와 작은 의자 두 개가 있는 공간은 이 작업실의 휴식공간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아내한테 이런 방이 있다면 나는싫을 것 같은데, 바버라의 남편은 어떨지・・・・・・? 지금까지 그는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 P43

이렇게 시작된 일은, 그가 나중에 생각해보았을 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창피한 일이 되었다. 그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를 그녀에게 돌렸다. - P49

"내가 데려다주지." 그가 곧바로 말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눈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죽을 만큼 지루하다는 듯, 어둠이 빛을 집어삼켰다. "내가 데려다줄 거야." 그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난 혼자 가는 편이 좋은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빙긋 웃었다. "그래도 굳이 데려다주고 싶다면야. 그리고 극장에서 당신은 꼭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죠. 제임스랑 다른 사람들이다 볼 수 있게. 그래서 날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거죠?"
그는 그녀를 증오했다. 순전히 그녀의 뛰어난 머리 때문에. 그녀는 언제나 그의 속내를 알아차렸다. 어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그녀를 향해 작업을 거는 것을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는 통제할 수 없는 일종의 운명 또는 내적인 충동 때문에 감상적으로 말을 이었다. "이런, 적어도 당신을 일터까지 데려다주고 싶은 마음은 진짜라는 걸 알 텐데."
-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 P58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열기 속에서 태양이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동료들과 함께 일하던 옥상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런 데서 일을 하라고 하다니!‘ 정당한 분노가 그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여자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뜨거운 바람 한 줄기가 검은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리자 머리카락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였다. 어젯밤 꿈에서 그가 어루만지던 머리카락이었다.
그녀에 대한 분노가 마침내 그의 발을 움직여 사다리를 내려가게 했다. 그는 건물 계단을 내려와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그녀를 증오하며 술에 취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하늘이 회색이었다. 비를 품은 회색 하늘을 보며 그는 못된 생각을 했다. ‘그래, 하늘이 당신 버릇을 고쳐놓았군, 그렇지? 아주 제대로 고쳐놓았어.‘
- 옥상 위의 여자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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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서문에 나온 표제작 <19호실로 가다> 설명을 보니 궁금해서 먼저 읽고 싶지만, 표제작이 가장 마지막 순서네. 꾹 참고 순서대로 읽기.
첫번째 단편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에 나오는 이 남자 뭐지? 엄청 재수없다! 왕재수!!

〈19호실로 가다> 역시 많이 번역된 작품이다. 최근 홍콩의 대학에서 이 작품을 가르치던 교수가 내게 이 작품의 요점을 학생들에게(그리고 분명히 교수 자신에게도)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 작품을 개인의 공간을 너무나 원한 나머지 목숨까지 거는 여자의 이야기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개인적인 공간에 대한 욕구가 중국 문화권에서는 낯선 개념이라고 말했다(하지만 곧상황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최근 베이징의 한 여성이 버지니아 울프《자기만의 방>에서 영감을 받은 소설을 써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교수와 나의 대화에서 저 유명한 문화적 차이는 메울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사실 나도 <19호실로 가다>를 이해하지 못한다. 수전 롤링스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단 한순간만이라도 알고 있었을 것 같지 않다. 그녀는 어딘가로 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그녀를 몰아붙였을까? 그녀가 죽음을 사랑한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성적인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그녀가 왜? 베를린에서 독일 학생 두 명이 내게 물었다. 지적이고 사회적으로 책임을 질 줄 아는 이 사람들이 왜 가정문제 상담가를 찾아가지 않는 거냐고. 작가인 나의 대답. 그랬다가는 독자들뿐만 - P9

아니라 내가 보기에도 경박한 이야기는 존재할 수 없게 될 겁니다. 그렇다. 그 학생들은 본인들의 지식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학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나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많은 여성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장소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작품이 여성들에게 그토록 인기를 얻었을 리가 없다. 나는 하디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수 브라이드헤드를 이 작품과 함께 떠올린다. 그녀는 사람들이 살아가지 않는 편을 선택할 때가 올 거라고 말한 인물이다. 올리브 슈라이너의 여주인공도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난 이제 아주 질렸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도 지긋지긋해." 일종의 도덕적 피로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이런 감정의 파도가 밀려오는 이유를 생각만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때로 나는 우리의 영리한 피임방법들이 남녀 모두의 자신감에 깊은 타격을 입힌 것이 아닌가, 달콤한 이성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더 깊고 원시적인 부분을 건드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서문 - P10

그는 결혼생활 20년째였다. 처음에는 폭풍처럼 고통스럽고 비극적이었다. 헤어짐, 배신, 그리고 달콤한 화해로 가득했다. 적어도 10년이 흐른 뒤에야 그는 마음과 오감으로 그토록 많은 놀라운 일들을 겪으며 살아낸 이 결혼생활이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의 결혼생활이, 그것이 초혼이든 재혼이든 세 번째 결혼이든 상관없이, 그의 결혼생활과 똑같았다. 젊은 여자와의 진지한 연애조차 전형적이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아내와 이혼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마지막 순간에 생각을 바꿔 그 아가씨를 실망시켰다. 그래서 항상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 극적인 일이 자신의 상상과 달리 전혀 독특한 경험이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굴욕감을 느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같은 경험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어쩌면 다른 무리에 속한 사람들도 모두 같은 일을 겪었을 것 같았다.
어쨌든 결혼생활 10년째가 되던 무렵에 그가 많은 점들을 분명하게 깨닫고 나자, 감정적으로 모험을 추구하던 성향이 어느정도 사라지고 결혼생활이 완전히 바뀌었다.
-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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