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라
토니 모리슨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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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230페이지가 아니라 2,300페이지로 풀어내야 할 소설 아닌가. 술라 할머니에 관해, 술라가 떠났던 10년에 대해, 술라와 넬의 관계 속에, 생략된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 강렬한 우정 캐릭터인 릴라와 레누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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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1-31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300페이지의 이야기라는 데 공감합니다.

햇살과함께 2023-02-01 15:22   좋아요 1 | URL
이야기 뼈대가 대하드라마급인데 작가님이 너무 압축하신 것 같습니다. 최소 백년의 고독 정도는 되야죠!
 

그러나 세 아이들을 먹여살릴 일이 너무나 절박해서, 화낼 수 있을 시간과 정력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2년 동안 분노를 참고 여야 했다. - P45

오래도곡미워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녀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것을 알고 그 행복한 조짐을 기다릴 때와 같은 유쾌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보이보이를 미워하면서 그 미움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으리라. 그리고 자신을 정의하고 강화하기 위해, 혹은 일상의 상처받기 쉬운 일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미움이 필요한 이상, 그 미움은 안전하게 지속적으로 전율을 줄 수 있으리라. (언젠가 흑인들을 미워한다고 한나가 그녀를 비난했을 때도 에바는 오직 한 사람, 한나의 아버지 보이보이만을 미워한다며, 그에 대한 마음이 자신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며 행복하게 한다고 말했다.)
행복한 일이었든 아니든 보이보이가 방문한 후 그녀는 집의 일층을 그곳에 사는 사람들, 지나치던 사촌들, 뜨내기들, 살림살이와 함께 방을 빌려주었던 수많은 신혼부부들에게 더 자주 맡기며 자신의 침실에 칩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0년 이후로 그녀는 불을 지르기 위해서 딱 한 번 계단을 밟았을 뿐이었고, 그때 자욱했던 연기가 그후 몇 년 동안이나 그녀의 머리카락에 배어 있었다. - P51

아이의 어머니나 그 누군가가 아이를 내다버릴 당시, 아이들이 뒤집어쓰고 있던 고치가 어떤 것이었든지간에, 각각의 아이들은 자기고치에서 벗어났고, 그리고 이름도 듀이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듀이가 되면서 이름 하나를 셋이 함께 쓰고…………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자기네 외에 어떤 것도,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그러한 삼위일체가 되기 위해 다른 둘과 합치면서 에바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냉장고 손잡이가 떨어졌을 때는 듀이 셋 다 매를 맞았으며, 매를 맞기 위해 엉덩이를 높이 치켜들면서 그들 메마른 눈동자로 말없이 자신의 발들을 내려다보았다. 황금빛 눈의 듀이가 학교갈 나이가 되었을 때 그는다른 듀이들과 함께가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일곱 살이었고 주근깨투성이는 다섯 살 그리고 멕시코계 듀이는 네 살밖에 되지않았다. 에바가 그들 모두를 함께 학교에 보내면서 그 문제는 해결되었다. - P53

외부 사람들이 보기에 게으르다거나 나태하다거나 심지어 관대하다고까지 생각했던 것도, 그들은 선한 힘이 아니라 어떤 힘들이 분명히 합법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고 그것을 완전히 인정했다. 그들은 의사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는 것까지도 믿지 않았다. 여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사람을 아무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역시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들에게 삶은 우연일수 있으나, 죽음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자연이란 불편한 것일 뿐 비뚤어진 것이 결코 아니라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역병과 가뭄은 봄철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우유가 굳어질 수 있다면, 개똥지빠귀들도죽을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있다. 불운의 목적은 그것을 이겨내는 데 있는 것이며,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은것조차 모르면서) 홍수, 백인, 폐결핵, 기근, 그리고 무지를 이겨내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분노는 잘 알고 있었지만 절망은 몰랐으며, 자살 - P118

하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죄 지은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그들답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 P119

"10년 동안 보지 못한 사람에게 잘 지냈냐는 인사말조차 안 하시나요?"
"어디 있다든지, 언제 온다든지를 알려준다면 사람 맞을 준비라도할 수 있을 게다. 알려주지 않고 갑자기 툭 튀어나오듯 나타나면 생각지도 못했던 분위기에 맞닥뜨려 생기는 모든 감정을 그대로 감수할 수밖에 없지."
"할머니, 그래,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저 그렇게 지냈다. 물어주니 정말 고맙구나. 넌 뭘 한번 원하면 곧바로 행하는 성격이지. 네가 약간의 변화가 필요할 땐……………" - P120

"지옥 중에서도 정말로 지옥인 것은 그것이 영원하다는 점이야."
술라가 이 말을 했지. 어떤 일이든 영원히, 그리고 한결같아야 한다는 것은 지옥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넬은 그 말의 뜻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제 욕실에서 느끼려 애쓰며, 이렇게 생각했다.
‘더러운 타일이 있고 파이프 속에서 꼬르륵 물소리가 나는 이 조그마한 하얀 방에서 머리를 욕조의 차가운 가장자리에 대고 지낼 수 있으며, 문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난행복할 텐데. 만약 일어나서 화장실을 물로 씻어내리지 않아도 되고, 부엌으로 가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이 자라서 죽는 모습을 지켜보지 않아도 되고, 내 접시 위의 음식이 씹히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된다면…………. 술라가 잘못 생각한 거야. 사물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지옥일 수는 없어. 변화가 지옥이지‘ - P141

"보이라고? 누구에게? 이봐, 난 내 마음을 갖고 있어. 그리고 그마음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을 갖고 있지. 말하자면, 난 나를 갖고있어."
"외롭지 않니?"
"외롭지. 그러나 내 외로움도 내 것이잖아. 그렇지만 네 외로움은 네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 것이야. 다른 사람이 만들어서 너에게 넘겨준 거야. 그것도 괜찮은 거 아냐? 중고품이긴 하지만, 외로움은 외로움이니까."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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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레즈비안 페미니즘과 퀴어이론

래드클리프 홀 - 외로움의 우물
에이드리언 리치 -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안의 존재
모니크 위티그 -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주디스 버틀러 - 젠터 트러블: 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
지넷 윈터슨 - 벚나무 접붙이기

수행성, 훼손

리치는 여성 동성애를 성적 행위와 욕망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에, 여성에 중심을 두는 정치적인 입장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입장은 동성애 여성과 이성애 여성들을 연결시켜 이들 모두가 강제적인 이성애의 희생자임을 강조한다. 즉 동성애 여성을 동성애 남성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리치는 "모든 여성은 스스로 레즈비안 정체성을 갖든 갖지 않든지 간에, 모두 레즈비안 연속선상에서 존재한 - P301

다" (650-1)고 주장한다. 또한 여성의 에로틱한 선택은 "심화되고 확장되면서 의식적으로 여성과 동일시-레즈비안/페미니즘-하게된다"(659). 리치는 모든 여성이 레즈비안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보고, 여성 동성애야말로 강제적인 이성애와 가부장제가 뒤엉켜있는시스템에 대한 진정한 페미니스트적 대응이라고 본다. - P302

위티그는 페미니즘 제1물결과 제2물결이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페미니즘 운동은 하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유물론자로서 위티그는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물질적인 요인을 선행하는 뭔가가 있다는 관념적인 가정에 반대한다. 위티그는 여성을 자연적인 그룹이기 보다는, 억압된 계급으로 재정의한다. 위티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성이란 계급, 남성이란 계급을 타파하고, 새로운 개인 정체성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새로운 정체성은 계급 정의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목표가 달성되기까지, 여성이란 계급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레즈비안이 되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 P303

버틀러는 누구보다 쥘리아 크리스테바와 모니크 위티그가 혁명적 정치학을 수행할수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비판한다. 대신에 버틀러는 남성성과여성성 모두 동성애를 완전히 거부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증명한다. 동성애적 욕망은 주체의 애석한 상실이나 슬픔으로 남아있는 그 무엇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는 이성애를 창조해내는데 내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젠더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깊이 뒤엉켜있다. 동성애는 "문화 내부에 충만하게, 그러나 ‘지배‘ 문화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어있다" (77). - P307

sj동성애 여성이 완전히 성범주의 바깥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리치처럼 레즈비안을 여성과 동일시하는 여성의 연속체로 상상하든, 아니면 위티그처럼 "비여성의 집단"으로 상상하든지 간에 말이다. 제아무리 ‘성‘(sex)을 강제적 이성애가 정의한 경제적 범주임을 받아들인다 해도, 동성애 여성이 성 범주의 바깥에 존재한다고? 이성애자들이 여성 동성애와 남성 동성애로 인해 그 특징이 규정되는 것 만큼이나, 동성애 여성들도 이성애자들로 인해 그 특징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여러 면에서 『벚나무 접붙이기』는 버틀러가 『젠더 트러블에서 주장했던 상호 연관성을 상기시킨다. - P316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좋아한다"(77). 그러므로 어떤 이분법이든지간에 뭔가를 감시하고 배제하려고 할 때, 그 시도는 필시 실패하고 만다. 왜냐하면 배제된 것은 결코 애초부터 부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318

즉,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수행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해답이 될 것이다. - P320

그러나 벚나무 접붙이기』를 살펴본 결과, 섹슈얼리티와 젠더는 학문 분야 (fields of study)이고,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은 탐구 양식(modes ofinquires)인데, 이 둘은 서로 뒤엉켜있다. 이들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들을 합쳐버리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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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

앨리스 자딘 - 가이네시스
세일라 벤하비브 - 자아의 위치 중 7장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질문
앤젤라 카터 - 써커스의 밤

포스트구조주의 보다 더 어렵네. 뭔 소리인지 더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고 있다. 즉, 역사적으로 근대(moderm)시대 이후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근대의 시기를 정확하게 결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1750년에서 1950년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포스트"라는 접두어는 근대와는 상당히 다 - P248

른 차이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 차이란 1950년대 이후 특징적인 철학, 이데올로기, 사회적 경제적 구조에서 일어난 매우 중요한 변화와 관계가 있다. 근대성(modernity)과 포스트근대성(postmodernity)을구분함으로써 이 시대에 일어난 변화들, 즉, 경제와 사회를 구성하는 방식과 신념(함축적이든, 명시적이든)의 변화를 규명하고 설명하려는 것이다. - P249

그러나 자딘은 페미니즘이 포스트모더니즘과 공통점이 있는데, 공통점은 둘 다 계몽주의적 사유의 특징인 배타적이고 지배적인 서사를 비판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믿을 만한 신조어 ‘가이네시스‘ㅡ즉, ‘여성‘의 담론을 모더니티의 조건에 내재하는 과정으로서 표현하는 것의 과정"에 매료되어 있다. 즉, "여성적인 것과 여성‘을 새롭고 필수적인 사유, 쓰기, 말하기의 양식에 내재적인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25). - P255

"알레고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소설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되어버릴 수가 있다. - P269

자딘의 주장에 따르면, 페미니스트 작가들은 개념적/이데올로기적 변화가 일어나는 역사적인 시기에 페미니스트 이슈가 일반인 의식의 전면에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카터가 소설 속에서 19세기말 죽어가는 정신을 탐색하면서 반복된다. 19세기말은 "세속적인 시대에 진정한 기적이 세상에서 신뢰를 얻으려면 거짓말이 되어야 하는 시기"(17)다. - P271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많은 논쟁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모든 논쟁이 제1세계에서만 해당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주체의 죽음, 역사의 죽음, 형이상학의 죽음과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별의미가 없다. - P278

카터의 소설이 신체적 물질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빈번하게 경제적 유물론이 함께 따라 나온다. 이 점은 리찌의 분석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리찌 왈, 결혼은 "많은 남자 대신에 한 남자에게 행하는 매춘" (21)이라고 정의한다. - P285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이 과연 나란히 병치될 수 있는 개념인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는 불가피하게 정의를 내리고 범주화하는 근대적 거대 서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동참한 셈이다. 이런 근대적 사유가 심각하게 의문시되고 도전받는 포스트근대 세상에서 소설가와 비평가들은 거대 이론의 위험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대신에 흑인, 탈식민주의, 레즈비안, 게이 서사와 같은 지엽적이고 구체적인 서사에 눈을 돌리고 있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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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1-20 0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3장 중인데 지금 이 페이퍼 보니까 6장 읽기가 암담할 것 같네요 ㅎㅎ

햇살과함께 2023-01-20 09:46   좋아요 0 | URL
5장, 6장 너무 어렵네요 ㅎㅎ

건수하 2023-01-20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꾸준히 하고 계신 햇살과함께님, 저도 곧 따라갈게요!

햇살과함께 2023-01-20 09:49   좋아요 0 | URL
내일부터 시간 없어서 오늘까지 달리고 있으나,
눈 감고 달리는 수준입니다;;;;
아 8장 읽기 전에, 사둔 <술라>도 읽어야 할텐데요...
수하님도 화이팅!
 

5장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

엘렌 식수 - 메두사의 웃음
루스 이리가라이 - 우리 두 입술이 함께 말할 때
쥘리아 크리스테바 - 한 정체성에서 다른 정체성으로
버지니아 울프 - 올랜도

프랑스 출신 아닌 ’프렌치 페미니스트‘ 언니들 이름도 어렵고 ‘포스트’도 어렵고 ‘구조주의’도 어렵다.. ‘몸과 언어는 함께 수렁에 빠져있고(- 232p)’는 지금의 나의 상태를 말하는 건가.

독자들은 특히 울프의 『올랜도』와 크리스테바의 글이 읽기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해서 오로지 분노와 체념을 느낄 뿐이다. - 237p
올랜도는 읽기 쉽지 않네요. 다락방님 잘못 아님 ㅋㅋㅋ

"프렌치 페미니즘"의 "프랑스성"에 문제가 있다면,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를 페미니스트라고 분류하는 것도 실은 문제가 있다. - P198

세 사람 모두, 페미니스트라는 용어에 불편함을 표현해왔다. 부분적으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프랑스의 맥락에서 페미니스트의 의미가 그들 맘에 들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그들은 페미니스트가 남성적 사유의 부분을 구성한다고 믿기 때문에 별로 유용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199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가 공유하는 뭔 가가 있다면, 그것은 국가, 젠더, 정체성 개념들이 잠재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감각이다. 국가, 젠더, 정체성 개념에대한 회의적인 접근은 구조주의와 구분된다. 구조주의는 개념들이기본적으로 안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페르디난드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언어, 친족 관계, 정신 심리에 있어서 구조 관계 자체가 의미를 결정한다고 보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뭔가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제했다. - P199

그러므로, 구조주의 언어학이 기저에 존재하는 대립쌍을 밝혀냄으로써 언어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포스트구조주의는 언어의 최종적 의미는 항상 고정되지 않고 미끌어진다고(elude)고 주장한다.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 모두 그들의 저서에서 말장난, 인유, 인용, 신조어, 복합어, 시어들을 장치로 사용한다. 그 목적은 단어 혹은 개념이 다른 대립되는 단어나 개념과의 관련 하에서 ‘구성‘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해체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어의 의미는 끊임없이 다른 의미를 생산해내기 때문에 절대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원적 대립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대립쌍의 위계가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예로 되돌아간다면, 여성성은 특정한 종교적 혹은 신비적 담론에서와 같이 언제든지 남성성보다 더욱 우세해질수 있다). 혹은 제 3의 뭔가가 나타나서 대립쌍의 구분을 넘어서면서 불안해질 수 있다. - P201

라캉의 "상징계"란 그가 "아버지의 법"이라고 명명했던 것, 바로 상징적 "팔루스"(phallus)에 의해 지배되는 어른의 세계, 규범적이고 이성적인 가부장적 세계를 의미한다. 상징계는 자아와 타자(특히 엄마)가 분리되고, 언어를 습득하고, 욕망이 만들어지는 특징을 지닌다. 상상계는 전외디푸스단계와 동일하다. 이 단계에서 아이는 자아와 타자와의 구분을 알지 못하고, 언어도 없고, 상실감도 없다. 따라서 욕망도 없다. 정체성의 형성은 언어를 습득하고 상징계로 진입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런 과정은 상상계의 한 부분을 형성하는, 엄마와 하나였던 느낌, 바로 그 느낌을 억압함으로써 무의식이 함께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징계에 진입하더라도 상상계는 쉽게 극복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은 상상계와 상징계를 직선적인 연속의 과정으로 보는 대신, 다른 대립쌍들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고 주장한다. - P203

데리다와 라캉 모두에게, 여성성은 ‘배제된 것’이고, 동시에 어떤 본질이다. 데리다는 여성성을 언어학적 불고정성에 대한 비유로 사용한다. 라캉은 여성을 상징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타자(엄마)에 대한 욕망을 억압함으로써 무엇보다 상징계를 창조해낸 그 무엇으로 여긴다. - P204

‘대립’(opposition)과 ‘차이’(difference)를 구분하는 것은 참 중요하다. 정신분석학은 여성이 단지 팔루스가 없다고 말하면서, 여성 몸의 진짜 차이들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부장제 기계(patriarchal machinery)의 기능을 방해하고 변화시키려면 바로 긍정적인 차이들이 여성적 글쓰기에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추방된 것처럼 글쓰기로부터 추방당했다. 여성은 여성 자신을 글로 써야한다. 여성에 대해서 써야 하고, 여성을 글쓰기로 도입해야 한다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법으로, 똑같은 치명적인 목표를 가지고" (244). 식수는 가부장제가 남성들에게 제공했던 권리와 특혜를 여성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자유주의 혹은 개혁주의 아젠다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여성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식수가 여성의 몸과 여성의 글쓰기를 동일선상에서 비유하는 목적은 성별화된 몸의 신체적/물질적 사실이 글이나 문화와 언듯 무관해 보일지라도, - P206

사실은 함축적으로 (여성의 몸의 경우) 문화를 창조하는데 여성들이 배제되는 근간으로 늘 작용하고 있다는 역설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 P207

대신에 언어와 사회 모두 서로 상호 침투하는 담론이며, 언어와 사회 모두 텍스트로써 읽고 해석하고 다시 쓰기하는 과정에 열려 있다. 쓰기와 문화가 서로 간섭하게 되면 결국 불가피하게 사회가 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둘을 분리하는 것은 잘못된 대립이기 때문이다. 전설 속 남자들을 돌로 변하게 만들었던 메두사는 프로이트 같은 남성에게 거세 불안의 메타포였다. 그런 메두사를 다음과 같이 씀으로써 식수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메두사를 보려면 그냥 똑바로 보기만 하면 된다. 메두사는 무섭지 않다. 그녀는 아름답게 웃고 있다" (255). - P210

식수의 첫 시작을 보자. "나는 여성의 글쓰기에 대해 말할 것이다. 여성의 글쓰기가 무엇을 할지에 대해 말할 것이다"(식수 245). 그런가 하면 이리가라이는 "우리가 함께 똑같은 언어를 계속해서 말한다면, 우리는 똑같은 역사를 재생산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 P211

식수와 이리가라이의 주요한 차이는 이리가라이가 레즈비안적 사랑을 환기한다는 점이다. 이리가라이의 에세이에서 말하는 목소리는 특정되지 않은 "너"에게 말한다. "너"는 화자와 욕망, 쾌락, 감정적 접촉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두 사람의 성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특정되지는 않지만, 이리가라이는 두 개의 입술이라는 이미지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두 개의 입술이란 말 그대로 입술일 뿐만 아니라, 여성 질의 입술을 의미하고, 자신과 다른 여자의 입술을 의미한다. - P212

식수나 이리가라이와 마찬가지로, 크리스테바는 언어에 대한 재현이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또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 혹은 ‘쓰는 주체‘ (writing subject)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이 에세이가 쓰인 1975년 가장 영향력 있는 언어 이론이었다. 크리스테바의 목적은 구조주의 언어학이 예상 외로 과거의 언어 이론과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크리스테바가 보기엔 그들 사이에 분명히 공통점이 있다. 왜냐하면, 구조주의 언어학은 아직도 "단정적인" (thetic) 주체와 언어라는 전통적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정적인" 주체와 자아란 자체 안에 들어있는 다름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아다. 즉, "단정적인 주체는 단일성, 정체성, 행위할 수 있는 능력, 언어학적으로 말해서 서술할 수 있는 능력(긍정하고, 거부하고, 주장할 수 있는 능력), 진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런 의미의 주체와 언어 개념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언어의 그런 측면이 사회적 힘을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 P215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처럼 울프는 몸과 언어는 함께 수렁에 빠져있고, 그러므로 언어는 정치적 무기가 되어 단순히 재현하거나 은유하는 기능 이상을 수행하는 것이다. 올랜도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법이라는 단정적 언어를 통해서 언어학적으로 결국 확인된다. "나의 성은 반박의 여지없이 여성으로 결정되었다"(243). 올랜도가 성을 바꾼 후 곧바로 대명사가 변화하는 것은 "우리는 전통을 위해서 ‘그의’(his)를 위해 ‘그녀의‘(her)로 바꾸고, ‘그‘를 위해서 ‘그녀‘로 바꿔야한다"(133)) 이원론적 젠더 시스템의 만들어내기 위해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해 준다. - P232

비슷하게 올랜도』의 위반적인 측면은 오로지 그것을 찾는 사람에게만 보였다. 즉, 아이러니는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 P235

모호하고, 반어적이고, 복잡한 언어가 독자들에게 생산적인 질문을 만들어낸다는 견해에도 문제가 있다. 독자들은 특히 울프의 『올랜도』와 크리스테바의 글이 읽기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해서 오로지 분노와 체념을 느낄 뿐이다. 이 장에서 논의되는 네 명의 작가들은 모두 특히 남성적인 문학적, 철학적, 문화적 유산을 폭넓게 논의할 때엔 특히 난해한 언어를 사용한다. 남성들의 유산에 대해 존경심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아도 원전을 모르는 상태에서 농담을 알아듣기는 힘들다. 정신분석학적 선조들 [프로이트와 라캉]을 다룰 때 특히 그렇다. 프로이트와 라캉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의 어휘를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 그들이어휘가 얼마나 유희적이고 창의적으로 이전의 교리를 혁신하는지이해하는 것은 참 어렵다. - P237

이것은 정확하게 『올랜도』에서 동성애에게 할애되는 위치와 닮아있다. 즉 동성애는 양성성이나 여성 해방과 같은 명시적인 서사 아래 감춰져 있을 뿐이다.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가 동성애를 모성과 연결시키고, 모성을 강조하는 것은 거세게 비판되어 왔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모성적 몸은 모든 의미화의 감춰진 근간이거나, 모든 문화의 암묵적인 원인도 아니다. 오히려 모성적 몸은, "여성의 몸은 필시 엄마가되어야 한다는 시스템, 모성은 자아의 본질과 욕망의 법이라고 규정하는 섹슈얼리티 시스템이 만들어낸 영향과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 버틀러는 이렇게 말한다. 문화적으로 ‘타자‘로 구성된 것은 ‘여자‘가 아니라 ‘레즈비안‘이라고 말한다. 레즈비안은 정신/물질, 젠더/섹스의 구분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의 상징 질서에 필수적인 구분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여성 동성애는일단 전략적 효과가 목표(몇몇 논평가들이 지적하듯이 이리가라이는 최근이성애적 사랑에 목표를 둔다")에 도움이 되면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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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1-19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세!! 내 잘못이 아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01-19 17:11   좋아요 0 | URL
올랜도가 잘못 했네요 ㅋㅋㅋ
버지니아 울프 다 읽을 계힉인데, 올랜도는 젤 마지막에 읽는 것으로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