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사실과 신화
제3부 신화
2장 3장

몽테를랑Henry Millon de Montherlant(1896~1972)은 피타고라스류의 오만한 이원론을 나름대로 이용한 남성들의 긴 전통에 이름을 새기고 있다. 니체의 뒤를 이어 그는 허약한 시대만이 영원한 여성을 찬양했고, 영웅은 위대한 어머니에 반기를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 P299

유치하고 어리석으며,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자들만 선택한다. 그는 여자들에게의식을 부여하는 것을 철저히 회피한다. 만일 그 흔적을 조금이라도 발견하면 격분해 자리에서 떠나 버린다. 여자와 어떤 주체 간의 상호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여자란 남자의 왕국에서 살아 숨 쉬는 단순한 물건에 지나지 않아야만 한다. 여자는 결코 주체로서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여자의 관점은 절대 고려되지 않을 것이다. 몽테를랑의 남주인공은 기세가 등등한 것 같지만 실은 편리할 뿐인 도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걱정할 뿐이다. 그가 여자에게 애착을 가지는 것은 아니 그보다는 자기에게 여자를 붙들어 매는 것은 여자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즐기기 위해서다. 절대적으로 열등한 여자의 실존은 남자의 실체적이고 본질적이며 파괴할 수없는 우월성을 드러내 준다. - P307

몽테를랑은 애벌레들에게 오줌을 깔기면서 그중 몇 마리는 살려두고, 나머지는 박멸시켜 버리며 즐거워한다. 그는 악착스럽게 살려는 애벌레들에게 조소 어린 동정심을 보내고, 그것들이 살 기회를 얻도록 너그럽게 내버려 둔다. 이 유희가 그를 매혹한다. 애벌레들이 없었다면 소변의 방출은 기껏해야 배설 행위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것은 생사여탈의 도구가 된다. 기어가는 곤충 앞에서 자기의방광을 비우는 남자는 신의 전제적 고독을 맛본다. 보복받을 걱정도 없다. 이처럼 여자라는 동물 앞에서 남자는 높은 곳에 자리해 때로 잔인하고 때로 부드럽게, 차례로 공평하다가도 변덕스럽게 주고 다시 빼앗았다가 만족시켜 주기도하고, 동정하다가 화를 내기도 한다. 남자는 오직 자기 멋대로 즐길 뿐이다. 남자는 유일하고 자유로운 지배자다. 그러나 남성 앞에 나타나는 모든 동물은 오직 동물이어야만 한다. 남자는 일부러 그런 동물을 골라 그것들의 약점을 어루만져 주며 끈질기게 동물 취급을 한다. 그러면 그것들은 결국에 자기들의 조건을 수락하게 된다. 그래서 루이지애나주와 조지아주의 백인들은 흑인들이 하는 사소한 도둑질과 거짓말에 즐거워한다. 백인들은 자신들의 피부 색깔로부터 자신들에게 부여하는 우월성이 확인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만일 이 ‘검둥이’ 중 한 명이 자신은 정직하다고 고집을 피우면 그를 한층 더 박해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강제수용소에서도 인간의 타락이 조직적으로 시행되었다. 군주 족속은 이런 비열함 속에서 자기들이 초인간의 본질을 갖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 P312

"채권자 앞에 있는 것처럼 의무감 같은 동요를 느낀다."
그러나 이 약함은 힘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 결혼으로 아내는 그녀를책임지는 남편에게 자기를 준다. 라라는 쾨브르 앞에서 바닥에 눕고, 그는 그녀몸에 발을 올려놓는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아버지에 대한 딸의, 오라버니에 대한 누이의 관계는 군신의 관계다. 시는 조르주의 수중에서 봉건 군주에게 하는기사의 서약을 한다.
"당신은 영주요, 나는 불을 지키는 천한 무녀입니다." - P339

그래서 여자는 자기를 타자로 만들면서 - 나는 주主의 여종이다-자기를 주체로 실현한다. 그리고 여자가 타자가 되는 것은 자기의 대자속에서다. - P342

어떤 의미에서는, 여자가 이 이상으로 찬양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사실상클로델은 약간 현대화된 가톨릭 전통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현세에서 여자의 소명은 그녀의 초자연적 자율성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거꾸로 여자에게 초자연적 자율성을 인정함으로써 가톨릭은 이 세상에서 남성의 특권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를신 안에서는 숭배하면서도 이 세상에서는 하녀로 취급한다. 게다가 여자에게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면 할수록 그만큼 확실하게 여자를 구원의 길로 향하게 하는것이 된다.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가정에, 토지에, 조국에, 교회에 헌신하는 것은여자의 몫이며, 또한 부르주아 계급이 여자에게 언제나 할당해 온 운명이다. 남자는 자기의 활동을 제공하고 여자는 자기의 인격을 제공한다. 신의 의지라는 이름으로 이런 계급제도를 신성화한다는 것은, 그런 차별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원 속에 고착시키도록 주장하는 것이다. - P342

진리, 아름다움, 시로서의 여자는 전체다. 다시 한번 타자의 모습 아래 전체이며, 자기 자신을 제외한 전체다. - P351

남자와 여자 사이의 눈에 띄는 차이는 그들 각각의 상황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여자들은 어째서 그녀들의 연인보다 더 몽상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수틀 앞에 앉아 있는 여자는 따분한 일에 기계처럼 손만 움직이고, 머릿속으로 자기 애인을 꿈꾸고 있다. 한편 자기의 기병 대대와 함께 평원을 달리는 애인은 동작 하나라도 실수하면 영창에 갇혀 버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여자들이 양식이 없다고 비난한다. "여자들은 이성보다 감성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 습관에 따라 여자들이가정에서 어떤 중요한 책임도 맡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성은 여자들에게 전혀 소용이 없다. (…) 당신의 소유지 중 두 자리쯤 선별해서 당신의 아내에게 관리를 맡겨 보라. 나는 그녀가 당신보다 장부를 더 잘 처리할 것이라 장담한다." 역사상여자 천재가 극히 적은 이유는 사회가 여자들에게 자기를 표현할 수단 일체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여자로 태어나는 모든 천재는 공공의 행복을 위해 사라진다. 우연히 능력을 발휘할 수단이 주어진 순간, 여자들이 가장 어려운 재능에 도달하는 것을 보라." 여자들에게 최악의 핸디캡은 그녀들을 바보로 만드는 교육이다. 억압자는 언제나 피억압자를 쓸모없는 존재로 약화하는 데 몰두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고의적이다. "우리는 여자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의 행복에 도움이 될 가장 탁월하고 풍부한 자질들을 여자들 속에서 그냥 잠자게 내버려 두고 있다." - P354

클렐리아가 성모 마리아에게 파브리스를 더는 보지 않겠다고 약속하고는, 눈을 감고 있는 조건으로 2년 동안 그의 키스와 포옹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습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하다. - P360

그녀는 자기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 어울리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그녀는 타인의 평가보다도 자기 자신의 평가를 더높게 놓았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의 절대로서 실현한다. 메아리 없는 이 고독한 내부 갈등은 내각의 위기보다도 더 중대한 심각성을 띤다. 샤스텔레 부인이 뤼시앵 뢰방의 사랑에 응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자문하는 것은 자기와 세계에 관해서 결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자기 마음을 믿을 수 있을까? 사랑의 가치와 인간의 맹세 가치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믿고 사랑한다는 것은 미친 짓인가 아니면 고귀한 일인가? 이러한 질문들이 인생의 의미를, 각자와 모두의 삶의 의미를 문제 삼고 있다. 사실 분별력 있다는 인간은 자기 인생에 대하여 기존의 정당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천박한 것이다. 반면에 열정적이고사려 깊은 여자는 매 순간 기존의 가치를 재검토한다. 그녀는 의지할 데 없는자유의 지속적인 긴장상태를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자신이 항상 위험에 처해 있다고느낀다. 즉, 그녀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얻거나 혹은 잃어버릴 수 있다. 불안 속에서받아들인 위험성은 여자의 이야기에 영웅적인 모험의 색채를 부여한다. - P361

그러나 이것은 여자가 온전한 타성性이 아닌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여자는자기 자신이 주체다. 스탕달은 자기 여주인공들을 결코 남주인공과의 관계에 따라서만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그녀들에게 독자적인 운명을 부여했다. 그는 어떤 소설가도 전혀 시도하지 않은, 한층 더 드문 기획을 시도했다. 즉, 그는 자기 자신을 여자 인물 속에 투사했다. - P363

스탕달이 그렇게 대단하게 소설적인 동시에 결연하게 페미니스트라는 것은놀랍다. 페미니스트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것에 보편적인 관점을 취하는 합리적인 정신이다. 그러나 스탕달은 단지 일반적인 자유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행복도고려해서 여성의 해방을 주장한다. 그는 여자들이 해방된다고 해도 사랑은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남자와 동등한 여자는 더 완전하게 남자를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더욱더 진실한 사랑을 하게 된다. 여자들 안에 있는 자질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질들의 가치는 여자들에게서 표현되는 자유로부터 오고, 이 자유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다른 상황에 놓여 있는 별개의 두 존재는 자유 속에서 상충하며, 상대방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으면서 언제나 위험과 약속으로 가득 찬 모험을 감행할 것이다. 스탕달은 진실을 신뢰한다. 진실을 피하는 즉시 인간은 산 채로 죽지만, 진실이 빛나는 곳에는 의미를 지닌 아름다움과 행복과 사랑과 기쁨이 빛을 발한다. 그 때문에 진실을 가장한 기만을 물리침과 동시에 신화의 거짓된 시詩도 거부한다. 그에게는 인간의 현실만으로 충분하다. 그에 의하면 여자는 단지 인간일 뿐이고, 어떤 형태의 꿈도 그보다 더 매혹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 - P364

이 관념은 절대적 진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신화적 사고는 여자들의 분산되고 우연적이며 다양한 실존에 대하여 유일하고 고착된 영원한 여성을 대립시킨다. 이미 정해진 여자에 대한 정의가 현실의 살아 숨 쉬는 여자들의 행동으로 반박된다면 잘못은 이 여자들에게 있다. 여성성이 하나의 실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이 여성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경험은 부정될 수 있으나 신화는 결코부정될 수 없다. - P369

신화를 의미의 파악이라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의미는 대상에 내재적이다. 그 의미는 살아 있는 경험에서 의식에 드러나는 것이다. 반면에 신화는 의식이 아무리 도달하려 해도 끝까지 달아나는 초월적 이념이다. - P371

마테를링크Maurice Macterlinck(1862-1949)의 말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그런 것처럼 신비스럽다." 각자는 자기에게만 주체이며, 각자는 자기의 내재 속에서 자기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타자는 언제나 불가사의하다. - P372

여자가 신비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여자가 침묵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자는 거기에 있으나 베일 속에 숨겨져 있다. 여자는 이 불확실한 외관 저편에 존재하고 있다. 여자는 누구인가? 천사인가, 악마인가, 무녀인가, 배우인가? 사람들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찾을 수 없다거나, 그보다는 여성 존재에게는 근본적 모호성이 있으므로 어떤 대답도 꼭 들어맞지 않는다고 추정한다. 여자는 자기 마음속에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 정의할 수 없는 스핑크스다. - P373

확실히 대부분의 신화는 자기의 실존과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남자의 자연발생적 태도에 뿌리박고 있다. 그러나 경험을 초월적 이념으로 높여 놓은 것은 가부장제 사회이며, 이는 자기 정당화의 목적으로 결연히 실행되었다. 그리고 그 사회는신화를 통해서 법칙과 풍습을 다채롭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개인들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 P376

여자들을 가장 진정성 있게 소중sastop히 여겼던 시대는 궁정풍 사랑의 봉건 시대도 여자의 환심을 사려 한 19세기도 아니다. 그것은 - 예를 들면 18세기처럼 - 남자들이 여자들을 동류로 보았던 시대다. 바로 이때 여자들은 진정 몽상적으로 보였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험한관계』, 『적과 흑』, 『무기여 잘있거라』를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밀어내는 겁니까?”

경찰관 한 명이 말했다.

"낸들 알겠습니까. 법이 그렇다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당신을 체포합니다." - P12


로자 파크스는 버스에서 백인 운전기사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말을 거부하였으며, 이에 운전기사가 부른 경찰에 의해 경찰서로 연행되어 구치소에 수감된다. <정희진의 공부> 2월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정희진 샘이 언급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라는 말도 오버랩된다. 정말 흑인들에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왜 이렇게까지 흑인들을 벼랑 끝까지 밀어내는 것인가.



모두가 내가 당한 일에 대해 분노했고,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을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앞으로 다시는 흑백 분리 버스를 타지 않기로 결심했다. 설사 일터까지 걸어서 가야 할지라도 두 번 다시 그런 버스를 타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번의 내 사건이 흑백 분리 버스탑승 제도에 대한 테스트 케이스(test case, 판례가 되는 소송사건, 또는 어떤 법률의 합헌성을 묻는 소송 - 옮긴이)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닉슨 씨가 내 사건을 테스트 케이스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어머니와 남편과 상의해보겠다고 말했다. 파크스는 처음에는 펄쩍 뛰며 반대했다. 클로데트 콜빈 사건 당시 다중의 지지를 얻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처절하게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논의했고 또 논쟁했다. 마침내 어머니도 파크스도 닉슨 씨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들도 흑백 분리 버스제도에 반대했고, 그것과 싸울 결심을 굳혔다. 고소인이 없는 한 판결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바로 그 고소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 P143~144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에서 내향인이지만 강인하게 자신의 의지를 실천하는 인물로 로자 파크스가 언급되어 있다. 로자는 의도하지 않은 본인의 사건을 통해 법을 바꾸고자 하는 변호사 및 활동가의 의견에 본인의 사건을 테스트 케이스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로자는 본인으로 인해 촉발된 몽고메리 버스 흑백분리 반대 운동을 진행하면서도 절대 앞에 나서지 않고 연설을 하지도 않지만, 본인을 필요로 하는 회의가, 어떤 도시에서 개최되든 참석하여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본인의 이름이 계속 언급되고 유명해지는 것이 부담스럽고 백인들의 폭언과 협박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녀는 숨지 않는다. 그녀가 필요한 일이라면 조용하게 무엇이든 한다.



나는 유권자 등록을 하기로 결심했다. 처음 등록을 시도한 것은 1943년이었다. 사무소에서는 매일이 아니라 어쩌다 한 번 등록 업무를 보기 때문에 날짜를 미리 알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언제 유권자 등록 업무를 보는지 미리 공개하지도 않았다. 개인이 전화를 걸어 물어야만 알려주었다. 따져보니 그들은 어쩌다 한 번, 그것도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등록 업무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시간에는 대부분의 흑인들이 일을 하느라 사무소에 갈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 터였다. 설혹 짬을 내어 사무소에 간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그들은 즉시 사무소 문을 닫아버렸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이모든 것이 흑인을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무사히 사무소 안에 들어가는데 성공해도 등록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전에는 재산을 소유한 흑인만 등록을 해주었었다. 내가 등록할 무렵에는 재산을 소유하거나 문해 시험에 통과한 사람만 등록이 허락되었다. – P87~88


인두세는 일 년에 1.5달러였고, 모든 등록 유권자들은 반드시 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두세를 소급해서 내야 한 사람들은 거의 다 흑인들이었다. 스물한 살이면 유권자 등록을 하는 백인들은 그 때부터 매년 1.5달러씩 내면 그만이지만 유권자 등록을 거부당했던 흑인들은 등록 즉시 스물한 살 때부터 소급해서 적용된 금액을 내야 했다. 1945, 즉 내가 서른두 살에 등록 유권자가 되었으니 11년 치의 인두세를 한꺼번에 내게 된 것이다. 당시 돈으로 16.5달러면 엄청난 금액이었다. – P89~90


그리고 이 책을 통해 흑인들이 유권자 등록을 하는 것에도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선거권을 획득했다고한들 실제 투표를 위한 유권자 등록에서 포기하는 흑인들이 다반사였다. 심지어 유권자 등록은 그렇게 방해하면서 일단 유권자 등록이 되면 법적으로 유권자 등록이 가능한 21살때부터 실제 등록한 시점까지의 밀린 인두세를 10년치든 20년치든 한꺼번에 내야 한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흑인들에게 밀린 인두세를 내게 하는 것도 선거권을 포기하게 만드는 한 방편이었으리라.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악랄한 것인지.



미스 화이트에서 배운 것 중 최고를 뽑으라면, 나도 존엄한 한 인간이라는 것, 흑인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주눅 들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우리가 꿈과 야망을 갖도록,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갖도록 가르쳤다. 물론 학교를 통해서만 그것을 배운 것은 아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나의 조부모님과 어머니를 통해서 익히 배운 바 있다. 미스화이트 선생님들은 내가 집에서 배운 이러한 지식을 거듭 일깨우고 강화시켜 주었다. - P59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로자의 사건이 아주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고, 버스 탑승 거부 운동이 우연히 들불처럼 일어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로자는 이미 준비된 사람이였다. 로자는 나도 존엄한 한 인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흑인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버스 탑승 거부 운동이 장기적으로 정착되어 마침내 법이 바뀔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사람과 협회가 조직적으로, 긴밀하게 움직였는지, 이미 준비된 사람과 조직이 기회를 기다렸고, 마침내 로자라는 적절한 기회가 왔기에 이루어질 수 있는 성취였다.



우리에겐 마틴 루터 킹도 필요하지만 로자 파크스도 필요하다.




















<사라, 버스를 타다>는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사라라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이다. 이 책이 집에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첫째가 알려주어서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3-03-02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마틴 루터 킹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수많은 로자 파크스가 있기 때문이죠. 기사로만 읽었던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햇살님덕분에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햇살과함께 2023-03-03 11:31   좋아요 1 | URL
맞아요~
로자 파크스나 참정권, 흑백 분리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 많네요! 책은 너무 좋네요! 마틴 루터 킹 전기도 읽어보고 싶고요.
 

사라라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로자 파크스의 버스 자리 양보 거부 사건과 버스 보이콧, 흑백 차별법 폐지를 풀어낸 그림책이다. 로자 파크스의 서문이 실려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당시 니그로(negro)라는 말은 흑인들을 존중해 부르는 호칭이었다. - P63

너무나 많은 흑인들이 스스로를 미스터 찰리(Mr. Charlie)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갔다. 미스터 찰리란 흑인들이 백인을 가리킬 때 쓰던 용어이다. 그들은 백인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큰일나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에 반해서 파크스는 흑인도 어엿한 한 인간이고, 백인과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파크스는 백인들에 대해, 우리가 ‘톰 아저씨 태도‘(Uncle Tom Attitude)라 부르는 흑인 특유의 온순한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의 그런 면이 아주 좋았다. 그는 성격이 좋고, 재미있고,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몇 시간이라도 멈추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파크스는 또한 내가 만나본 최초의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NAACP(the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것은 1931년이었고, 마침 스카츠보로 소년 사건(the Scottsboroboys)이 세간이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사실 내게 그 사건에 대해 처음 알려준 사람도 파크스였다. 그는 스카츠보로의 아홉 명의 흑인 소년들에게 기가 막히게 억울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 그 소년들이 전기의자에서 사형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른 몇몇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위 - P70

한 재판 비용 모금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등을 말해주었다. 파크스와 그의 동료들은 비밀리에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동료들의 이름조차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모든 동료를 래리(Larry)라고 부를 뿐이었다. - P71

1941년, 나는 근처 공군기지인 맥스웰 필드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그 기지는 흑백 분리주의를 시행하지 않았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모든 군사기지 내 공공장소와 버스에서의 흑백 분리주의를 금지하는 명령을 발효시켰기 때문이다. 군사기지 관내를 운행하는 버스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따로 앉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기지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때면 또다시 흑인과 백인이 엄격히 분리된 버스를 타야 했다. 내가 일하던 기지 내 건물에 살던한 백인 여자가 생각난다. 기지 안 버스에서 그녀와 나는 마주보며 앉곤 했다. 그녀는 아홉 살 난 아들과 함께 앉고 나는 로즈라 - P76

는 이름의 동료직원과 맞은편 의자에 함께 앉았다. 우리 셋은 내릴 때까지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일단 기지를 벗어나시내버스를 갈아탈 때면 그 백인 여자는 앞자리에, 우리는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것을 본 그녀 아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백인 여자는 미시시피 출신이었지만 우리와 나란히 앉아 가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 P77

나는 유권자 등록을 하기로 결심했다. 처음 등록을 시도한 것은 1943년이었다. 사무소에서는 매일이 아니라 어쩌다 한 번 등록 업무를 보기 때문에 날짜를 미리 알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기마련이었다. 그들은 언제 유권자 등록 업무를 보는지 미리 공개하지도 않았다. 개인이 전화를 걸어 물어야만 알려주었다. 따져보니 그들은 어쩌다 한 번, 그것도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등록 업무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시간에는 대부분의 흑인들이일을 하느라 사무소에 갈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 터였다. 설혹 짬을 내어 사무소에 간다 하더라도, 그것 - P87

이 곧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그들은 즉시 사무소 문을 닫아버렸다. 아무리많은 사람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이모든 것이 흑인을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무사히 사무소 안에 들어가는데 성공해도 등록에 실패하는경우가 많았다. 그 이전에는 재산을 소유한 흑인만 등록을 해주었었다. 내가 등록할 무렵에는 재산을 소유하거나 문해 시험에통과한 사람만 등록이 허락되었다.
1943년 첫 유권자 등록일에는 내가 직장에 나가야 하는 날이어서 갈 수 없었다. 닉슨 씨와 메디슨 변호사가 그 지역 흑인들에게 날짜를 미리 알려주었기 때문인지 그날 법원 건물 주변에는흑인들이 긴 행렬을 이루었다. 내 어머니와 사촌도 그 안에 있었다. 그 두 사람을 포함한 많은 흑인들이 얼마 후 유권자 등록증을우편으로 배달 받았다. 백인들은 사무소에서 즉시 등록증을 받지만, 흑인들은 나중에 우편으로 받았다. - P88

인두세는 일 년에 1.5달러였고, 모든 등록 유권자들은 반드시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두세를 소급해서 내야 한 사람들은 거의 다 흑인들이었다. 스물한살이면 유권자 등록을 하는 백인들은 그 때부터 매년 1.5달러씩 내면 그만이지만 유권자 등록을 거부당했던 흑인들은 등록 즉시 스물한 살 때부터 소급해서 - P89

적용된 금액을 내야 했다. 1945년, 즉 내가 서른두 살에 등록 유권자가 되었으니 11년 치의 인두세를 한꺼번에 내게 된 것이다. 당시 돈으로 16.5달러면 엄청난 금액이었다. - P90

당시에는 흑인들에게만 적용되는 특별한 규칙들이 있었다. 일부 운전기사들은 흑인 승객들을 일단 앞문으로 올라와 버스요금을 지불한 뒤 다시 내려가 뒷문으로 승차하도록 요구했다. 요금을 내고 하차한 뒤 뒷문으로 가는 동안 버스가 그냥 떠나버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몽고메리 시내버스에는 서른여섯 개의좌석이 있었다. 앞쪽 좌석 열 개는 백인전용 좌석으로, 백인승객이 전혀 없을 때에도 항상 비워두어야 했다. 뒤쪽 좌석 열 개는, 법률에 명시된 것은 아니었지만, 통상 흑인 좌석으로 간주되었다. 흑인들은 버스 뒤편에 앉도록 요구됐고, 앞쪽에 빈 좌석이있어도 절대로 앉지 못했다. 흑인 좌석이 다 차면 나머지 흑인들은 서서 가야했다. 반면에, 어떤 버스기사들은 백인 좌석이 다 찰경우 흑인들에게 좌석을 백인에게 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가운데 열여섯 개 좌석에 누구를 앉힐 것인가는 운전기사들의 재량에 달렸다. 운전기사들은 총을 휴대하고 다녔고, 좌석 배치를 비롯한 버스 내 다른 모든 흑백 분리 규정들을 집행하는데있어서 경찰과 맞먹는 권력을 지녔다. 비교적 너그러운 기사들도 있었고 유난히 성질 고약한 기사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운전 - P91

기사들 모두가 사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흑백분리주의라는 제도 자체가 문제였다. 조금 더 아량 있는, 혹은 조금 더 친절한 흑백 분리주의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 P92

나는 닉슨 씨 및 조 앤 로빈슨 교수와 함께 클로데트를 만나그녀의 사건을 연방 법원에 제소하자고 했다. 그녀가 동의했다.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클로데트의 연설회를 몽고메리 곳곳에서 개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모든 일이 잘 진행되어가는가 싶었는데, 클로데트가 임신 상태라는 걸 닉슨 씨가 알아챘다. 클로데트는 미혼이었다. 따라서 소송도 물 건너갔다. 백인언론들이 클로데트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 그야말로 그들의 잔칫날이 될 것이 뻔했다. 클로데트를 부도덕한 여자라고 비난할것이고, 그러면 재판에서도 질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패배가 분명한 소송을 위해 더 이상 많은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들이지 말고 좀 더 적절한 고소인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 P129

모두가 내가 당한 일에 대해 분노했고,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을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앞으로 다시는 흑백 분리 버스를 타지 않기로 결심했다. 설사 일터까지 걸어서 가야 할지라도 두 번 다시 그런 버스를 타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번의 내 사건이 흑백 분리 버스탑승 제도에 대한 테스트 케이스(test case, 판례가 되는 소송사건, 또는 - P143

어떤 법률의 합헌성을 묻는 소송 - 옮긴이)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닉슨 씨가 내 사건을 테스트 케이스로만들면 어떻겠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어머니와 남편과 상의해보겠다고 말했다. 파크스는 처음에는 펄쩍 뛰며 반대했다. 클로데트 콜빈 사건 당시 다중의 지지를 얻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처절하게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논의했고또 논쟁했다. 마침내 어머니도 파크스도 닉슨 씨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들도 흑백 분리 버스제도에 반대했고, 그것과 싸울 결심을 굳혔다. 고소인이 없는 한 판결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있었다. 나는 내가 바로 그 고소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 P144

IN 나는 증언대에 서지 않았다. 내 변호인인 찰스 랭포드와 프레드 그레이는 나의 ‘무죄‘를 주장하긴 했지만, 내 혐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변호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우리의 전략이었다. 내 사건을 테스트 케이스로 만들기 위해서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그 판결에 대해 상급법원에 항소해야 했다. 오직 상급 법원을 통해서만 분리주의 법들이 폐지될 가능성이 있었다. 지방법원의 판사들은 변화를 거부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데에만 급급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흑백 분리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과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벌금 10달러와 재판 비용 4달러도 내야했다. 재판을 지켜본 사람들은 크게 분노했지만, 조직적인 시위는 없었다. - P157

닉슨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사람들이 서둘러 보이콧을 끝내고자 할까봐 몹시 우려했다. 그는 흑인들을 결집시켜 투쟁하도록 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두려우십니까. 그렇다면 모자와 외투를 걸치고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이번 일은 하루 이틀 안에 끝나지 않을 겁니다. 아주 오래, 지난하게 이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저는 말하고 또 말해왔습니다. 제 자식들만큼은 절대로 제가 겪어온 이 숱한 모욕을 겪지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자식들뿐 아니라, 제 스스로도 조금이나마 자유를 누려야겠다고 말입니다." - P162

많은 백인 여자들은 가정부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가정부나 요리사들을 직접 자신의 차에 태워 데려오고 또 데려갔다. 몽고메리 시장은 그런 행위는 보이콧을 도와주는 격이 되므로 중지하라고 호소했다. 그는 버스 보이콧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이유는 바로 백인 여자들이 자신의 가정부들을 출퇴근시켜주기 때문이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백인 여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시장님이 직접 우리 집에 와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내 아이들을 돌보고, 요리해주고 싶다면야 말리진 않겠어요. 하지만 내 가정부는 절대로 내보내지 않을 겁니다." - P170

그날 무엇이 나를 그렇게 폭발하게 만들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앨라배마 주립대학을 흑백 통합 대학으로 만드느라 애썼던 오서린 루시도 그와 비슷한 신경쇠약을 겪었다는 얘기를들은 적이 있다. 그녀가 만성 신경쇠약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를일이다. 하지만 내가 정신적으로 무너졌던 것은 그 때 한 번 뿐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한때는 사람들이 나를 그 버스 사건 한 가지로만 관련시켜 바라보는 것이 꽤 힘들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수많은 사람들을 결집시켜 버스 보이콧 운동을 벌여나갈 수 있도록 한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다. - P179

뿐만이 아니었다. 게일 시장은 흑인들이 길가에 모여 교회 차량을 기다리는 행위를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모인 흑인들이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등 소란을 일으켜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시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흑인들의 집단 대기 행위를 금지하는 명령서를 발부했다. 그러나 몽고메리 법원이 그 명령서를 발부한 바로 그날, 연방대법원이 우리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발표했다. 몽고메리의흑백 분리 버스탑승 제도는 위헌이라는 판결이었다.
그날은 1956년 11월 18일이었다. 킹 목사가 대규모 공개회의 - P180

를 열어 우리에게 그 소식을 알렸다. 모두가 환희의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MIA는 흑인들에게 이제 버스를 타도 좋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명령서가 공식적으로 몽고메리 시에 전달되려면 한 달 이상이 더 걸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기다렸다. - P181

1964년 시민권법은 우리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흑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보호막은 되어주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바로잡을 수 있는 근거가 되어주었다. 아직도 쟁취해야 할 권리는 많았고, 시민권 운동도 계속됐다. - P194

1964년의 시민권법과 1965년의 투표권법은 흑인들 및 우리와뜻을 같이 하는 백인 지지자들의 비폭력적 저항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킹 목사는 비폭력주의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인도의 모한다스 간디가 비폭력적 저항을 통해 영국을상대로 독립운동을 벌인 것에 대한 많은 책을 읽었다. 간디는 상대가 폭력을 휘두를 때 똑같이 폭력으로 맞서지 말라고 말했다. 킹 목사도 역시 그렇게 말했다. 나는 미국의 흑인들이 분리주의와 싸우면서 많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싸움이 그러한 비폭력주의에 기반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 P2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1권 사실과 신화
제3부 신화
1장

월경에 대한 혐오가 이렇게 심한 줄은…
처녀성에 대한 신화
양면적, 대립적?

여자는 반투명한 의식에까지 이른 자연이며, 당연히 순종하는의식이다. 그리고 남자가 흔히 여자에게 갖는 꿈같은 희망이 바로 그것이다. 즉, 남자는 육체적으로 한 존재를 소유함으로써 자기를 존재로서 실현하기를 희망하고, 한 유순한 자유를 통해 자기 자유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한다. 어떤 남자도 여자가 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남자가 여자들이 있기를 바란다. - P225

시민들이 자기들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부유한 나라에서 여자가 신격화되는것은 이해된다. 미국에서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반면에 모든 인간의 동일시를 주장하는 사회주의 이념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어떤 범주의 인간도 객체나 우상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마르크스가 예고하는 진정으로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타자를 위한 자리가 없다. - P226

모든 신화는 자기의 희망과 두려움을 초월적인 하늘을 향해 투사시키는 주체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여자들은 자신들을 주체로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들의 계획이 반영될 남성 신화를 창조하지 못했다. 여자들은 자신에게 속해 있는 종교도, 시詩도 없다. - P226

여자에게 성적이고 육체적인 존재가 남자라는 사실은 한 번도 포고되지 않은 진실이다. 왜냐하면 그 진실을 포고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세계의 표상은 세계 자체와 마찬가지로 남자들이 만든 것이다. 남자들은 세계를 자기들의 관점에서 묘사하고, 자기들의 관점을 절대 진리와 혼동하고 있다. - P227

내가 전체에 도달하는것은 타자를 통해서이나, 나를 전체에서 분리하는 것도 타자다. 타자는 무한으로가는 문이자 나의 유한성의 척도이기도 하다. - P228

모든 문명에서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자는 남자에게 혐오감을 준다. 남자는 여자에게 자기 자신의 육체적 우연성에 대한 혐오감을 투사한다. 아직사춘기에 이르지 않은 소녀는 위협적이지 않고, 어떤 금기의 대상도 아니며, 어떤 신성한 성격도 가지고 있지 않다. 많은 원시사회에서는 소녀의 성기조차도순진무구한 것으로 여겨져 유년기부터 소년과 소녀들 사이에 에로틱한 놀이가 허용된다. 여자가 불순해지는 것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그날부터다. 원시사회에서 초경 중인 어린 소녀에게 행해진 엄격한 금기에 대한 기록은 흔하다. 여자가 특별한 배려를 받았던 이집트에서조차 월경 중인 여자는 내내 갇혀 지낸다. 그 여자를 보아서도 만져서도 안 되기 때문에 흔히 여자를 지붕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마을 밖에 있는 오두막에 감금하기도 한다. 월경 중인 여자는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스쳐서도 안 된다. 머릿니 잡기를 일상적으로 하는 종족들의 경우, 여자에게 작은 막대기를 주고 그것으로 몸을 긁도록 한다. 여자는 손가락으로 먹을 것을 만져서도 안 된다. 때로 그녀에게 먹는 것을 완전히 금지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어머니와 자매가 도구를 사용해 그녀에게 음식을 먹여 주는 것이 허락된다. 월경 기간 동안 그녀의 몸에 닿은 물건은 모두 태워려야만 한다. 이 최초의 시련이 지나가면 월경의 금기는 조금 완화되지만 여전히 견디기 힘들다. - P234

그러나 부권제의 등장 이후로는 여성의 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그 수상한 액체에 대해 불길한 영향력밖에 인정하지 않았다. 플리니우스Plinius (24년경~79)는 『박물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월경을 하는 여자는 수확물을 망치고, 밭을 황폐화시키며 싹을 죽이고, 열매를 떨어뜨리며 꿀벌을 죽인다. 여자가 포도주에 손을 대면 포도주는 식초가 되고, 우유는 시어진다…………." - P235

공포와 욕망,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사로잡힌다는 두려움과 그 힘을 휘어잡으려는 의지 사이에서 남자의 망설임은 처녀성에 관한 여러 신화 속에 놀라운 방식으로 반영되어 있다. 남자가 때로는 무서워하고, 때로는 희망하거나 요구하기도하는 처녀성은 여성 신비의 가장 극단적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장 불안한 동시에 가장 매혹적인 양상이다. - P241

그러나 처녀성은 젊음과 결합해야만 이런 에로틱한 매력을 지닌다. 그렇지 않으면 처녀성의 신비는 다시 불안한 것이 된다. 오늘날에는 결혼이 너무 늦은 처녀들 앞에서 성적 혐오감을 느끼는 남자들이 많이 있다. ‘노처녀들‘을 신경질적이고 심술궂은 부인네처럼 바라보는 것은 단지 심리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저주는 그녀들의 육체 그 자체에 있다. 어떤 주체의 대상도 아니고, 어떤 욕망이 탐내지도 않았으며, 남자들의 세계 속에 자리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 채 꽃처럼 피었다가 져 버린 육체, 목적지에서 빗나간 그 육체는 기괴한 대상이 되어, 미친 사람의 소통 불가능한 사고가 사람을 불안하게 하듯이 남자를 불안하게 만든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처녀라고 추정된 마흔 살의 어떤 여자에 대해서 한 남자가 무례하게 "그 속에는 거미줄이 잔뜩 쳐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처녀 사 - P244

적이 있다. 사실, 아무도 더는 들어가지 않고, 무엇에도 사용되지 않는 지하실과다락방은 불결한 신비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귀신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곳이다. 인간에게 버려진 집들은 유령들의 거처가 된다. 여자의 처녀성이 신에게 바쳐지않았다면, 그것이 악마와의 어떤 결합을 내포하고 있다고 믿기 쉽다. 남자가 제압하지 못한 처녀들, 남자의 권력을 피해 간 나이 많은 여자들은 다른 여자들보다 한층 더 마녀로 보이기 쉽다. 왜냐하면 여자의 운명이 다른 자에게 바쳐지기로 되어 있는 까닭에, 만일 여자가 남자의 구속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악마의 구속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 P245

콜레트sidonic-Gabrielle Colette(1873~1954)는 『암고양이』에서 자기의사랑을 자기 암고양이에게 고정시킨 젊은 남편을 묘사하는데, 그가 그러는 이유는 이 야생적이고 온순한 짐승을 통해서 자기 아내의 인간 육체가 자기에게 주지못하는 감각적인 세계를 정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246

굽 높은 구두, 코르셋, 파니에panier, 고래 뼈의테vertugadin, 페티코트petticoat는 여성 육체의 곡선미를 강조하기보다는 그것의 장애를 증가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지방질로 무거워지거나 혹은 반대로 너무파리해서 힘을 쓰지 못하거나, 불편한 옷과 예의범절 의식으로 인해 몸이 굳어지면, 그때 여자의 육체는 남자에게 자기 물건처럼 보인다. - P248

자위에 몰두하는 많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끔찍한 불안 속에서 그것을 할 수밖에 없다. 고독한 쾌락을 악덕으로 만드는 것은 사회의 간섭이며 특히 부모의 간섭이다. 그러나 최초 사정에서 본능적으로 겁을 먹은 어린 소년들이 적지 않다. 혈액이든 정자이든 자기 실체의 모든 유출이 염려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자기의 생명, 자기의 마나가 자기 몸에서빠져나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P253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는 오줌과 똥의 중간에서 태어난다"라며 혐오감을 가지고 성기와 배설기가 섞여 있다고 강조한다. - P261

남자는 여자가 자기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사랑하고, 타자로 머물러 있는 한 여자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가 가공할 타자인 한에서 여자를 더욱더 열렬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려 애쓴다. 바로 이것이 여자를 인간의 존엄에까지 끌어올리고 자신의 동류로 인정하도록 남자를 이끈 것이다. - P263

사물의 어둠 속에 파묻힌 이 진실은 하늘에서 빛나기도 한다. 완벽한 내재성인영혼은 동시에 초월자인 관념이다. 도시들과 국가들뿐만 아니라 추상적 실체나 제도도 여성적 특징을 띠고 있다. 즉, 가톨릭교회·유대교회·공화국 인류는 여자들이며, 평화·전쟁·자유·혁명 승리도 그러하다. 남자는 자기 앞에 본질적 타자로서설정하는 이상想을 여성화하는 데, 그 이유는 여자가 타성의 감각적 형상이기 때문이다. 도상집圖像集에서처럼 언어에서도 거의 모든 비유가 여성이다. - P275

남자들은 협력과 투쟁의 관계에 너무 몰두해 있어서 서로에게 관중이 되어 줄 수 없다. - P279

이처럼 남자는 자기를 기부자, 해방자, 속죄자로 꿈꾸면서 여전히여자의 예속을 바라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깨우기 위해서는 그녀가 잠을 자야 하고, 사로잡힌 공주들이 있으려면 식인귀나 괴물용怪物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어려운 기도圖에 대한 취미를 가지면가질수록 여자에게 더욱더 독립을 부여하기를 좋아할 것이다. 정복하기는 해방하는 것이나 주는 것보다 한층 더 매혹적이다. 보통의 서양 남자의 이상형은 남자의 지배를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토론 없이는 남자의 생각을 수락하지 않으나 남자의 이성에 양보하고, 남자에게 지적으로 저항하다가 마침내 설복당하는 그런 여자다. - P282

여자는 남성 나르시스가 자기를 바라보는 거울이기 때문에 그토록 자주 물에 비교되어 왔다. 그는선의로 또는 악의를 가지고 여자 위에 몸을 숙인다. 그러나 어쨌든 남자는 여자에게 남자의 바깥에서 남자가 자기 내부에서 포착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되어 달라고 요구한다. 왜냐하면 실존자의 내면은 무無일 뿐이고, 자기 자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어떤 대상에 투사시키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자가 자기 육체 속에 타인의 형태로 소유할 수 있는 자기의 극치이기 때문에 남자에게최고의 보상이다. 남자를 위해 세계를 요약해 주고 남자가 자기의 가치와 법칙을 강요했던 그런 존재를 자기 두 팔에 안을 때, 그가 포옹하는 것은 이 ‘비할 바 없는 괴물‘ 즉 자기 자신이다. - P284

남자는 자기가 욕망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사랑하는 것과 증오하는 것을 여자 속에 투사한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에대해서 무언가를 말하기가 어려운 것은 여자에게서 자신의 전부를 추구하며, 여자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여자는 비본질의 양태로 모든 것이다. 즉, 여자는완전히 타자다. 그리고 타자로서 여자는 그녀 자신 외의 다른 것이고, 여자에게서기대되는 것과 다른 것이다. 여자는 모든 것이기 때문에 정확히 그녀가 그래야만 할 이것이 결코 아니다. 여자는 영속적인 빗나감이다.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기에도, 존재자들의 전체와 화해하기에도 성공하지 못하는 실존의 빗나감 그 자체다. - P2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