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체험
제2부 상황
6장 어머니

7장 사교 생활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8장 매춘부와 고급 창녀
허무주의
에밀 졸라 <나나>

합법적 낙태에 반대하는 실제적 이유는 전혀 타당성이 없다. 도덕적 이유로 말하자면, 가톨릭교의 낡은 논법으로 귀착된다. 즉, 태아에게도 영혼이 있는데 세례도 받지 않고 죽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때에 따라서 성인 남자의 살해를 허용한다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전쟁이나 사형수의 경우가 그러한데, 태아에게는 대단히 인도주의적이다. 태아는 세례를 통해 정화되지 않았다. 이교도에 대항한 성전 시대에 이교도들 역시 정화되지 않았는데, 그들을 학살하는 것은 공공연하게 장려되었다. 종교재판의 희생자들은 아마도 모두 죄가 없지 않았고, 오늘날 사형당하는 범죄자들과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경우를 교회는 신의 은총에 맡긴다. 교회는 인간을자기 수중에 있는 도구로, 한 영혼의 구제를 신과 교회 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신이 태아를 하늘로 맞아들이는 것을 막는 것일까?종교회의가 그것을 허용한다면, 경건한 인디언 학살의 호시절과 마찬가지로 신은 항의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여기서 사람들은 도덕과는 아무 관계없는 완고하고 낡은 전통에 맞닥뜨리게 된다. - P681

"낙태 금지는 부도덕한 법이다. 그것은 날마다 시간마다 필연적으로 위반될 수밖에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 P689

분만은 경우에 따라서 매우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어머니는 자기 자아의 귀중한 일부인 보물 같은 아이를 배 속에 지니고 있기를 바라는 동시에 귀찮은 것을 떨쳐내 버리기를 희망한다. 오랫동안 꿈꿔 오던 것을 두 손안에 쥐고 싶다가도, 그꿈의 실현이 만들어 낼 새로운 책임이 두렵다. 두 욕망 중 어느 하나가 이길 수 있지만, 대개 그녀는 분열되어 있다. 또 그녀가 불안한 시련에 단호하게 임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그녀는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 - 어머니나 남편에게 도움받지 않고도 불안한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에게 가해진 고통에 대해 세상이나 인생 혹은 측근들을 원망한다. 그리고 항의하는 의미로 수동적 태도를 보인다. 독립적 여자들 - 모성형이나 남성적여자들은 분만에 이르는 시기나 분만하는 동안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데 열렬한 관심을 기울인다. 대단히 유아적인 여자들은 산파나 어머니의 보살핌에 수동적으로 자기를 맡긴다. 어떤 여자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에 자부심을 품는다. 다른 여자들은 모든 수칙을 거부한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해산의 위기에서대체로 세상에 대한, 특히 모성에 대한 자기의 본질적 태도를 표현한다고 말할 수있다. 즉, 그녀들은 의연하든가 체념적이든 권리주장을 하든가 강압적이든가반항적이든가 무기력하든가 긴장되어 있다・・・・. - P706

예전에는 아주 빈번했던 사고를 현저하게 감소시킨 - 그리고 거의 근절시킨 것은 의학과 외과수술이라는 인간의 개입이다. "너는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으리라"라고 한 성서적 확언을 부정하고 있다. - P707

그녀는 빠져나가려는 딸의 의지를 ‘꺾어 버리는 데‘ 열중한다. 자기의 분신이 한 명의 타인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자가 여자들에게서 맛보는 쾌감, 즉 자기가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 이런 쾌감을 여자는 자기 아이들, 특히 딸들을 통해서만 경험한다. - P724

여기서 나이 든 여자가 다 자란 아이들과 맺는 관계로 되돌아가 보자. 아이들이 어머니의 인생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히 처음 20년 동안이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두 가지 편견의 위험한 오류가 이제까지 한 서술에서확연히 드러난다. 우선, 모성이라는 것이 여하한 경우라도 여자를 충족시키는 데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불행하고 실망과 불만으로 신경이날카로워진 어머니들이 많이 있다. 열두 번도 더 출산한 소피아 톨스토이의 예는의미심장하다. 그녀는 일기를 쓰는 동안 내내 세계에서나 자신 속에서나 모든 것이 무용하고 공허하게 보인다고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녀에게 일종의 마조히즘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더 이상 젊지않다는 느낌이다. 나는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다" 자기의 젊음, 아름다움, 개인적인 생활을 단념하는 것이 그녀에게 약간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그녀는 자신이 - P726

나이가 들었고, 자기 삶의 의미가 정당화되었다고 느낀다. "아이들에게 내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나에게는 커다란 행복이다." 아이들은 그녀에게 남편의 우월성을 거부할 수 있게 해 주는 무기다. "우리들 사이에 평등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편, 유일한 무기는 아이들, 활력, 기쁨, 건강이다……" 그러나 권태가 갉아먹는 생활에 의미를 주기 위해서는 아이들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1875년 1월 25일, 한순간 감정이 고양된 뒤에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 역시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감정이 일단 지나가 버리면, 곧 내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단지 아기를 돌보고 먹고 마시고 자고,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이것이 요컨대 행복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나를 슬프게 하고, 어제처럼 울고 싶게 한다.

그리고 11년 후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힘차게 잘하겠다는 열렬한 욕망을 가지고 아이들 교육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아! 나는 얼마나 인내심이 없고 성마르고, 얼마나 소리를 질렀던가! (……)아이들과의 이 영원한 싸움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 P727

결혼을 짓누르는 저주는 대개 두 사람이 그들의 힘이 아닌 약함 속에서 결합해 있다는 것이고, 서로 상대에게 주는 것을 싫어하고 받기만을 원했을 때라고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자기 자신이 창조할 수 없었던 충만함, 열정, 가치를 아이를 통해 얻겠다고 꿈꾸는 것은 기대에 한층 더 어긋나는 환상이다. 아이가 안겨주는 기쁨은 타인의 행복을 사심 없이 바랄 수 있는 여자만 얻을 수 있고, 자기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기 존재를 초월하려고 노력하는 여자만이 누릴 수 있다. 확실히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여자가 온 힘을 기울여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일이다. 그러나 그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이미 만들어진 정당화를 나타내지않고, 확실치 않은 이익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 바람직해야 한다. 이에 대해 슈테켈이 아주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사랑의 대용품이 아니다. 그들은 망가진 인생의 목표를 대신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인생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마련된 물질도 아니다. 아이들은 책임이며 무거운 의무다. 그들은 자유로운 사랑의 가장 관대한 꽃무늬 장식이다. 부모의 장난감도 아니고, 삶에 대한 부모의 욕구 실현도 아니며, 충족되지 않은부모의 야망을 대신하는 대용품도 아니다. 아이들은 행복한 존재로 만들어야 하는 우리의 책무다. - P728

오늘날 여자를가정 밖에 오랜 시간 붙잡아 놓고 모든 힘을 빼앗는 직업과 아이의 양육을 양립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은, 한편으로 여자의 일이 아직도 노예 노동이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가정 밖에서 아이들의 보살핌, 보호, 교육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 태만이다. 하늘이나 땅속 가장 깊은 곳에 기록되어 있는 법에 따라 어머니와 아이가 전적으로 서로에게만 속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사회적 태만을 정당화하는 것은 궤변이다. 이러한 상호간의 구속은 이중으로 해로운 억압을 구성할 뿐이다.
여자는 어머니가 됨으로써 남자와 구체적으로 동등해진다는 주장은 하나의 기만이다. - P731

아이는 왁스칠한 마룻바닥의 적이다. - P732

여자가 정당하게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이런 승리와 함께 멋 부리는 행위에는 - 가사 돌봄과 같이 - 시간과의 싸움이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몸 역시 세월이 좀먹는 하나의 물체이기 때문이다. 콜레트 오드리는 가정주부가 집에서 먼지와 다투는 싸움과 맞먹는 이 투쟁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더 이상 젊은 시절의 탄탄한 몸이 아니었다. 그녀의 팔과 넓적다리를 따라서 근육이 약간 늘어진 피부와 지방층 아래로 유난히 드러나 보였다. 불안해진 그녀는 다시 한번 일과를 뒤엎어 버렸다. 그리하여 하루는 반 시간의 체조로 시작될 것이고, 밤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15분간 마사지를 할 것이다. 허리둘레를 관리하기 위하여 의학서나 유행잡지를 참조하기 시작했다. 과일주스를 준비하고, 이따금 설사제를 복용했으며, 설거지는 고무장갑을 끼고 했다. 그녀의 두 가지 근심은 결국하나로 귀결되었다. 즉, 열심히 몸을 젊게 하고, 열심히 집을 닦다가 결국 언젠가는일종의 휴식기, 일종의 죽음과 같은 지점에 다다르는 것이다. (…) 그때 세상은 노쇠와 소모를 잊은 듯 멈추고 중단될 것이다. (・・・) 지금 그녀는 스타일을 개선하기 위하여 제대로 된 수영 강습을 받고 있다. 미용잡지들은 무한정 새로워진 처방으로 그녀를 숨 가쁘게 했다. 진저 로저스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아침마다머리를 백 번씩 브러시로 빗어요. 정확히 2분 30초가 걸려요. 그래서 비단결 같은머릿결을 가지고 있답니다………" 발목을 예쁘게 다듬는 법은 매일 발뒤꿈치를 바닥에 대지 않고 발끝으로 삼십 번씩 일어서는 것이다. 이런 운동은 1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루에 1분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른 때는 발가락을 향유에 담근다. 손에는 레몬을 넣은 밀가루팩을 하고, 뺨에는 딸기를 짓이겨 바른다. - P742

여자들 간에 형성되고 유지되는 우정은 여자에게 귀중하다. 여자들의 우정은남자들이 경험하는 관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남자들은 자기들의사적인 생각이나 계획을 개인 자격으로 자기들끼리 소통한다. 여자들은 여자의운명이라는 일반성 속에 갇혀 있어서 일종의 내재적 공모의식으로 결합해 있다. 우선 여자들이 저마다 다른 여자에게서 찾는 것은 자기에게 공통된 세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녀들은 의견을 두고 토론하지 않는다. 자기의 속내와 대처 방안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여자들은 일종의 반세계世界를 창조하기 위해결속한다. 그 반세계의 가치는 남자들의 가치를 날려 보낸다. 이렇게 결합한 여자들은 자기들이 받는 억압을 뒤흔들어 버릴 힘을 발견한다. - P750

여자들의 관계는 저마다의 유일성에 근거해 구축된 것이 아니라, 여자라는 일반성 속에서 직접적으로 경험된 것이다. 그래서 적의라는 요소가 곧 개입된다. - P754

경제적 관점에서 매춘부의 상황은 결혼한 여자의 상황과 대칭을 이룬다. "매춘으로 자기를 파는 여자들과 결혼으로 자기를 파는 여자들 간의 유일한 차이는계약의 금액과 기간에 있다"라고 마로Marro는 말한다.143 양쪽 모두에게 성행위는 하나의 서비스다. 후자는 한 남자와 종신계약하는 것이고, 전자는 돈을 지불하는 여러 명의 고객이 있는 것이다. 후자는 한 남자를 통해 다른 모든 남자로부터 보호되고, 전자는 모든 남자를 통해 각 남자의 배타적 횡포에 대해 방어된다. 아무튼 그녀들이 자기 육체를 제공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경쟁을 통해 제한된다. 남편은 자기가 다른 남자의 아내와 계약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부의 의무’의 이행은 은혜가 아니라 계약의 실행이다. 매춘에서 남자의 욕망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종種의 본능이므로, 그 어떤 육체에 대해서나 만족할 수 있다. 아내나 창녀는 둘 다 남자에게 독특한 영향력이 없으면 남자를 활용하는 데성공하지 못한다. 양자 간의 차이라면 합법적인 아내가 결혼한 여자로서 억압당하기는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존중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존중은 실제로 억압을 저지하기 시작한다. 한편 창녀는 한 인격체의 권리를 갖지 못하며, 그녀 속에여성 노예제의 모든 양상이 동시에 요약되어 있다. - P769

오히려 아직도 많은 여자에게 이 직업이 그다지 혐오스러워 보이지 않는 사회를 단죄한다. 그녀에게 왜 그것을 택하느냐고 묻기보다는 차라리 그녀가 왜 그런 직업을 선택하지 않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 P770

매춘부들의 생활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도덕적·심리적 상황이 아니다. 대부분 그 물질적 조건이 비참한 처지에 있다. 기둥서방이나 포주에게 착취당하는 그녀들은 불안 속에서 살고 있고, 그중 4분의 3은 돈이 한 푼도 없다. 그 일을 하고 5년이 지나면, 약 75퍼센트가 매독에 걸린다고 비자르 박사는 말한다. 그는 다수의 매춘부를 치료해 왔다. 특히 그 가운데 경험이 없는 미성년자들은 무서운 속도로 감염된다. 임질 합병증으로 인해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경우가 25퍼센트 가까이 된다. 스무 명 가운데 한 명은 결핵을 앓고 있으며, 60퍼센트는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중독자가 된다. 40퍼센트는 마흔 살 이전에 죽는다.
여기서 덧붙여야 할 것은 신중을 기하는데도 이따금 임신하는 여자들이 생기고, 일반적으로 악조건에서 수술을 받는다는 것이다. - P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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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체험
제2부 상황
5장 결혼한 여자

소피아 톨스토이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도로시 파커 <너무 나쁘다!>
샤리에르 부인

결혼의 양상은 항상 남자와 여자에게 철저하게 다른 방식으로 존재해 왔다. 남녀 양성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지만, 이런 필요성이 그들에게 상호성을 가져다준 적은 없다. 여자들은 남성 계급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환과 계약을 성립시키는 하나의 계급을 구성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회적으로 남자는 자율적이고완전한 한 개인이다. 그는 무엇보다 생산자로 생각되며, 그의 존재는 그가 집단에 제공하는 노동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여자에게는 그녀가 갇혀 있는 생식과 가사의 역할이 어떤 이유로 동등한 존엄성을 부여해 주지 않는지 앞에서 이미 보았다. 확실히 남자는 여자를 필요로 한다. 어떤 원시 부족들의 경우에 혼자서 자기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독신 남자는 일종의 천민이 되는 수가 있다. 농촌에서농부에게는 여자 협력자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대다수 남자는 어떤 힘든 일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배우자에게 떠넘긴다. 개인은 안정적인 성생활과 자손을 욕망하며, 사회는 개인이 사회를 영속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의 사회가 구성원 각자에게 남편이자아버지로서 자기를 실현하도록 허용한다.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이 지배하는 가족 집단에 노예나 가신으로서 통합된 여자는 언제나 결혼을 통해 한 남자 집단에서 다른 남자 집단에게 주어졌다. 원시 시대에 부족이나 부계의 씨족은 여자를거의 물건처럼 마음대로 처분했다. - P580

사실 모든 인간 존재는 초월인 동시에 내재다. 자기를 초월하기 위해서 자기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통합시켜야만 하고, 타인과 소통하면서 자기 내부에서 자기자신을 확인해야만 한다. - P583

그러므로 결혼은 일반적으로 사랑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는 "남편은 말하자면 사랑하는 남자의 대용품이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분리는 조금도 우연이 아니며, 결혼제도의 성격에 내포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의 경제적이고 성적인 결합은 집단 이익을 향해 초월하는 게관건이지 그들의 개인적 행복을 보장하는 데 있지 않다. 족장 체제 안에서는 어떤 회교도 집단에서는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 부모의 권위에 의해서 선택된 약혼자들이 결혼 당일까지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사회적 측면에서 고려해 볼 때개개인이 감정이나 성적 자의에 기초해 자기의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있을 수없는 일이다. 몽테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현명한 거래에서 욕망은 그렇게 쾌활하지 않다. 그것은 침울하고 한결 무디다. 사랑은 자기와는 다른 관점에서 자기를 붙잡아두는 것을 증오한다. 그리고 예컨대결혼과 같은 사랑이외의 다른 명목으로 이루어지고 유지되는 관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관계에는 친족관계나 재산 따위가 우아함이나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시된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다. 자손이나 가족을 자신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생각해서 결혼한다. - P590

여자는 개별성 속에서 선택된 남편과의 관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일반성 속에서 여성적 기능의 행사를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여자는 개별화된 형태가 아니라 오로지 종의 형태하에서만 쾌락을 알아야 한다. 이로부터 여자의 에로틱한 운명에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결과가 나온다. 우선, 여자는 결혼 이외의 성적활동에 어떤 권리도 없다. 부부에게 육체적 거래는 제도화되어 있으므로 욕망과 쾌락은 사회적 이익을 위해 희생된다. 그러나 노동자와 시민으로서 보편적인 것을 향해 초월하는 남자는 결혼 전에도, 부부생활 밖에서도 우연적인 쾌락을 맛볼 수 있다. 어쨌든 그는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기의 욕망을 채운다. 반면에 여자가 본질적으로 암컷으로 규정된 세계에서 여자는 어디까지나 온전히 암컷으로서 정당화되어야만 한다. 한편, 이미 보았듯이 일반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관계가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서로 다르다. - P591

피신처, 은신처, 동굴, 태내로서의 가정은 외부의 위험을 막아준다. 비현실적으로 되는 것은 혼란스러운 외재성이다. 특히 저녁에 덧문이 닫히면 여자는 여왕처럼 느낀다. 정오에 온 세상에 퍼진 햇빛은 그녀를 불편하게 한다. 밤이 되면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가 소유하지 않은 것은 모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등갓 아래서 오로지 자기 집만을 밝히며 빛나는 자기의 불빛을 본다. 자기집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V. 울프의 한 텍스트는 외부 공간이 붕괴되는 동안 집안에 집중한 현실을 보여 준다.

밤은 이제 유리창 너머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유리창은 외부 세계를 정확하게보여 주는 대신에 질서, 안정, 견고한 지면이 집안에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게끔 이상한 방식으로 외부 세계를 뒤틀어 버리고 있었다. 반대로 밖에는 유동성이 된사물이 흔들리고 사라지고 하는 단 하나의 반사가 있을 뿐이었다. - P615

다수의 여자가 이처럼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전투에서 무한히 다시 시작되는 피로밖에는 제 몫으로 가져가는 것이 없다. 더 특권적인 혜택을 누릴 때도 승리는 결코 결정적이지 않다. 주부의 일만큼 시지프스의 형벌을 닮은 것도 별로 없다. 날이면 날마다 그릇을 씻고 가구의 먼지를 털고속옷을 기워야 한다. 이런 것들은 내일이면 다시 더러워지고 먼지가 앉을 것이며헤져 버릴 것이다. 주부는 그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느라 지쳐 버린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단지 현재를 영속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긍정적인선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항해 끝없이 싸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싸움이다. 주인의 장화를 닦는 것을 우울하게 거부한 하인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닦아서 뭐합니까? 내일 또 닦아야 하는데요"라고 하인은 말했다. - P618

세탁하고 다림질하고 비질하고 어두운 장롱 아래 숨어 있는 먼지를 찾아내는일은 삶을 거부하면서 죽음을 막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단번의 동작으로창조하고 파괴하기 때문이다. 주부는 거기에서 부정적인 면만을 포착한다. 그녀의 태도는 마니교도의 태도다. 마니교의 특성은 선과 악의 두 원리를 인정하는것만이 아니다. 선이 긍정적 운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악의 소멸을 통해 도달되는것을 상정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악마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별로 마니교적이지 않다. 신에게 자기를 바침으로써 악마와 가장 잘 싸우는 것이지, 악마를 무찌르기 위해서 악마에게 몰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월과 자유의 모든 교리는 악의 패배를 선을 향한 진보에 종속시킨다. 그러나 여자는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 데 초대받지 못했다. 집, 방, 더러운 속옷, 마루는 응결된 사물이다. 여자는 거기에 스며드는 나쁜 원리를 끝없이 쫓아내는 일만 할 수밖에없다. 그녀는 먼지, 얼룩, 찌꺼기, 때를 공격한다. 여자는 죄와 싸우고 사탄과 싸운다. 긍정적 목표를 향하는 대신에 적을 쉴 새 없이 격퇴해야 한다는 것은 서글픈 운명이다. 흔히 주부는 그 운명을 격렬한 분노 속에서 참아 낸다. 바슐라르는그에 대해서 ‘심술‘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이 단어는 정신분석학자들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그들에게 주부의 편집증은 사도마조히즘의 한 형태다. 편집증과 악행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원하도록 하는 특성을 지닌다. 소극성·불결함·악이 자기 몫이 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편집증적인 주부는 자기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세를 투덜대고 외쳐 대면서 맹렬한 기세로 먼지에 달려든다. 팽창하는 온갖 생명이 만들어 내는 쓰레기를 공격하면서 그녀는 인생 자체를공격한다. 살아 있는 존재가 그녀의 영역 안으로 들어서는 즉시 그녀의 눈에서는험상궂은 불꽃이 튄다. "신발을 닦아. 어지르지 마라. 그것에 손대지 마라."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숨도 못 쉬게 한다. 가장 작은 숨결도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건 지금까지의 노동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다. 아이들의 난장판은 회복시켜야 할 오점이다. - P620

그러나 가사노동은 현상유지를 확보하는 데만 이바지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온 남편의 눈에 무질서와 태만은 쉽게드러나지만 질서와 청결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 P629

많은 아내가 어린애 같은 것은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상 아주 젊기 때문이다. - P640

그녀들이 제대로 추론하지 못하는 것은 지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 P646

만약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하면, 그녀는 눈물을 터뜨리거나 히스테리를 부리고 자살 소동을 일으키는 등의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나 너무 잦은 싸움과 비난은 남편을 가정 밖으로 내몰게 된다. 아내는 남편을 매혹할 필요가 있는 가장 긴급한 때에 자기를 참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내기에서 이기려면 마음을 움직이는 눈물, 영웅적인 미소, 공갈 협박과 애교를 능란하게 조합해야 할 것이다. 본심을 드러내지 않을 것, 계략을 쓸 것, 침묵 속에서 증오하고 두려워할 것, 한 남자의 허영심과 약점에 기댈 것, 남자의 허를 찌르고 남자를 속이고 조종할 줄 알 것, 이런 것들은 아주 서글픈 지식이다. 여자의 커다란 변명은결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도록 강요당했다는 것이다. 즉, 여자는 직업도 능력도 개인적 인맥도 없으며, 자기 이름조차 더는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그녀는 남편의 ‘절반‘이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남편이 버리면, 대개 그녀 안에서도 밖에서도 어떤 구원의 손길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 P655

부부 사이에 성실함과 우정이 존재하려면 서로에 대해 자유롭고 구체적으로 평등해야 한다. 남자만이 경제적 자주성과 남성성이 부여하는 특권을-법과 풍습을통해 - 쥐고 있는 한 당연히 그는 폭군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이는 여자에게 반항하고 책략을 꾸미도록 부추긴다. - P656

물론 톨스토이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순조롭게 잘 되어 가는’ 가정도 얼마든지 많다. 그런 가정에서는 부부가 타협에 도달해 서로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거나속이지 않으면서 사이좋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도 웬만해서는 피할 수 없는 불운이 하나 있다. 바로 권태다. 남편이 아내를 자신의 메아리로 만드는 데 성공하든가, 각자가 자기 세계 속에 피신해 있다 하더라도, 몇 개월 혹은 몇 년 후에그들은 더 이상 서로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게 된다. 부부란 구성원이 자기의 고독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각자의 자율성을 상실한 공동체다. 그들은 상대와 역동적이고 살아 있는 관계를 지탱하는 대신에, 정지상태로 서로에게 동화된다. 그 때문에 정신적인 영역에서나 에로틱한 영역에서나 서로에게 무엇 하나 줄 수 없고, 교환할 것이 없다. - P658

얼마나 많은 여자가 결혼생활에 매몰되어 스탕달의 말처럼 ‘인류를 위해 사라졌던가!‘ 사람들은 결혼이 남자를 작아지게 한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결혼은 여자를 거의 대부분 소멸시킨다. - P671

결혼의 비극은 약속한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 행복에 관해서는 보장이란 것이 없다 - 여자를 불구로 만든다는 것이다. 결혼은 여자를 반복과 매너리즘에 빠뜨려 버린다. 여자 인생의 최초 20년은 실로 대단히 풍요롭다. 여자는 월경, 섹슈얼리티, 결혼, 모성이라는 경험을 통과한다. 여자는 세계와자기의 운명을 발견한다. 그러나 스무 살에 한 가정의 주부가 되어 평생 한 남자에 매이고 아이를 품에 안으면, 그녀의 삶은 그것으로 영원히 끝난다. 진정한 행동, 진정한 일은 남자의 전유물이다. 여자에게는 종종 몹시 지치게 할 뿐 마음을결코 채워 주지 못하는 일거리만 있을 뿐이다. 세상은 그녀에게 체념과 헌신의 미덕을 찬양했다. 그러나 ‘생애 마지막까지 부부 두 사람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자기를 바친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대단히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자기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대단히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가장 고약한 것은 여자의 헌신이 성가신 것처럼 생각된다는 것이다. 남편의 눈에는 아내의 헌신이 압제로 바뀌어 남편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헌신의 태도를 최고의 유일한 정당성으로서 아내에게 강요한 것은 남편이다. 그는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그녀의 모든 것을 자기에게 주도록 강제한다. - P673

남편은 아내가 침대에서 뜨거운 동시에 쌀쌀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를완전히 바치되 그 무게로 짓누르지 말기를 주장한다. 그는 아내에게 자신을 지상에 안착시키되 자유롭게 놓아둘 것을, 그날그날 단조로운 반복을 거듭하면서도자신을 무료하게 하지 말 것을, 언제나 옆에 있되 결코 성가시게 굴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는 그녀를 전적으로 소유하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은 그녀의 소유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부부로 살면서 홀로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이처럼 그는 그녀와 결혼하는 순간부터 그녀를 기만하고 있다. 그녀는 이 배신의 범위를 가늠하는것으로 인생을 보낸다. - P674

그러나 부부의 경제적 책임을 남자가 유지하는 한,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 P675

남녀 간의 커다란 차이는 여자에게 의존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자유를 가지고 행동할 때조차 여자는 노예이다. 반면에 남자는 본질적으로 자율적이고 구속을 외부로부터 받는다. 남자가 희생자는 자기 쪽이라는 인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견뎌 내는 부담이 더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기생충처럼 남자가 먹여 살린다. 그러나 기생충은 자신감넘치는 주인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수컷과 암컷은 결코 상대의 희생물이 아니라 다 같이 종種의 희생이 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부 역시 본인들이 만들지 않은 제도의 억압을 함께 견디고 있다. 누가 남자들이 여자들을 억압한다고말하면 남편은 분개한다. 억압받는 쪽은 자기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억압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남성적 민법, 즉 남성에 의해 남성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가 오늘날 남녀 모두에게 고통의 원천이 되는 형태로 여성의 조건을 규정해 버린 것이다.
남녀 모두의 이익을 위해, 결혼이 여자에게 하나의 ‘직업‘이 되는 것을 지양하면서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안티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자들은 ‘여자는 이미 충분히 넌더리 나는 존재다‘라는 구실로 당치않은 이론을 늘어놓고 있다. 결혼은 여자를 ‘사마귀 암컷‘으로, ‘거머리‘로, ‘독’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결혼의 형태를 바꾸고 여성의 조건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세상이여자의 자립을 금하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게 그토록 무거운 짐이 된다. 여자를 해방함으로써, 다시 말해 여자에게 이 세계에서 할 일을 부여함으로써 남자는 해방될 것이다. - P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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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체험
제1부 형성
3장 성 입문
남자 내민다 던진다
빼앗는다 꺾는다 소유했다 가졌다 먹었다
이사도라 덩컨 <나의 생애>

4장 레즈비언
레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

여자의 에로티시즘은 여자가 처한 상황의 복잡성을 반영하기에 훨씬 더 복잡하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암컷은 종으로서의 힘을 자기의 개별적인 생활에 통합시키는 대신, 그 개별적 목적과 분리된 이해관계를 가진 종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이율배반은 인간 여자에게서 그 정점에 이르고 있다. 그것은 특히 음핵과 질이라는 두 기관의 대립으로 표현된다. 유아 단계에서는 음핵이 여성 에로티시즘의 중심부이다.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어떤 여자아이들의 경우 질의 감각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의견이다. 아무튼 질은 부수적인 중요성밖에 갖지 못할 것이다. 음핵 체계는 성년기에도 변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는 일생 이 에로틱한 자율성을 보존하고 있다. 음핵의 경련은 남자의 오르가슴과 마찬가지로 거의 기계적으로 얻어지는 일종의 붓기와 가라앉기다. 그러나 그것은 정상적인 성교에 간접적으로만 연결되어 있으며, 생식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여자가 침투되고수태되는것은 질을 통해서다. 질은 남자의 개입을 통해서만 비로소 에로틱한 중심부가 되고, 이런 개입은 언제나 일종의 폭행 성질을 띤다. 옛날에 여자가 자기의 어린이세계에서 뿌리 뽑혀 아내로 사는 삶에 던져진 것은 실제 또는 위장된 유괴에 의해서다. 그녀를 소녀에서 여자로 바꾸는 것은 폭력이다. 그래서 처녀성을 ‘빼앗는다‘거나 처녀의 꽃을 ’꺾는다‘거나 하는 말이 있다. 이런 처녀성의 상실은 지속적 발전의 조화로운 결말이 아니라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이며, 새로운 시기의 시작이다. 쾌락은 이때 질의 내부 표면이 수축함으로써 일어난다. 이런 수축이 명쾌하고 결정적인 오르가즘으로 이어지는가? - P512

한 주기는 어린 시절의 독립성을 영속시키는 것이지만 다른 주기는 그녀를 남자와 아이에게 바치는 것이다. 정상적인 성행위는 사실상 여자를 남자와 종에 예속시킨다. - P513

여자는 객체이기 때문에, 그녀의 무기력은 그 본래의 역할을 심하게 변화시키지 않는다. 많은 남자가, 잠자리를 함께하는 여자가 성교를 원하는지 혹은 그저거기에 복종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남자는 죽어 있는 여자와도 동침할수 있다. 성교는 남자의 동의 없이 일어날 수 없으며, 자연적 종료도 남자의 충족에 의해서다. 여자가 아무런 쾌감을 느끼지 않아도 수태는 이루어질 수 있다. 한편, 여자에게 수태는 성적 과정의 완성을 나타내는 것과 거리가 멀다. 반대로 종이 여자에게 요구한 봉사는 이때부터 시작되는데, 서서히, 고통스럽게 임신, 출산, 수유 속에서 실현된다. - P514

결혼의 구조가, 매춘부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로 상호성 없는 관계의 증거다. 여자는 자신을 주고, 남자는 여자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그녀를 취한다. 남자가 열등한 존재들을 지배하고 소유하는 일을 금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녀와의 정사는 언제나 허용됐지만, 운전기사나 정원사에게 자기를 내맡기는 부르주아 여자는 사회적으로 지위를 박탈당한다. 그토록 맹렬한 인종주의자인 남부 미국인들은 남북전쟁 이전이나 오늘날이나 변함없이 관습에 의해 흑인 여자들과 동침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권리를 귀족처럼 위풍당당한 교만함으로 행사한다. 백인 여자가 흑인 남자와 성관계를 하면 노예시대에는 살해당했을 것이고, 오늘날에는 집단폭행을 당할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와 동침했다고 말하는 대신에 그녀를 ‘소유했다‘거나 ‘가졌다‘고 말한다. 역으로 사람들은 누군가를 ‘가졌다‘고 말하는 대신에 때로 속된 말로 ‘먹었다‘라고 말한다. - P514

남자들의 섹스 용어는 군대 용어에서 착안한 것이다. 연인은 병사처럼 혈기가 왕성하고, 그의 성기는 활처럼 팽팽하며, 사정할 때는 ‘발사한다‘. 그것은 기관총이며 대포다. 그는 공격이니, 습격이니, 승리니 하는 말을 지껄여 댄다. 그의 성적 흥분에는 알 수 없는 어떤 영웅주의적 취미가 있다. "한 존재에 대한 다른 존재의 점령으로 이루어지는 생식 행위는 한편으론 정복자라는 관념을, 다른 한편으로는 정복된 물건이라는 관념을 부과한다. 그래서 가장 문명화된 사랑 관계를다룰 때도 사랑의 관념에 전쟁의 관념을 선명하게 투사해서 정복, 공격, 습격, 공방전, 패배, 항복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 의해 오염되는 것을 허용하는 이 행위는 오염시키는 쪽에는 일종의 자부심을, 오염당하는 쪽에는 비록 동의했을지라도 다소의 굴욕감을 준다"고 방다는 쓰고 있다. 이 마지막 문장은 새로운 신화를 도입시킨다. 즉, 남자가 여자를 더럽힌다는 신화다. - P515

자기를 객체로 만들고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은 수동적 객체인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잠자는 여자도 죽은 여자도 아니다.
??? - P520

발자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에서 정신적인 것을 별개로 하고, 여자는 칠현금처럼 그것을 켤 줄 아는 남자에게만 자기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 P529

여자가 그 욕망을 자기의 욕망으로 인정하지 않는 커다란 이유는 그 속에서자기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욕망은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표현된다. 남자는 ‘팽팽해지는‘ 반면에 여자는 ‘적신다‘. 단어에는 젖은 침대나 소변을 잘못 보아 야단을 맞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들어 있다. - P529

사실 여성에게 관능의 양상은 남성의 경우와 전혀 같지 않다.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질의 쾌감이 결정적 오르가슴에 도달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점에 관해서는 여성들의 고백이 흔치 않고, 정확성을 기하려는 경우에도 그녀들은 지극히 모호한 채로 있다. 반응은 개개인에 따라서 매우 다른 것 같다. 확실한 것은, 남자에게 성교는 명확한 생물학적 목적인 사정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 P542

그리고 대단히 복잡한 수많은 다른 의도를 통해 이 목적이 조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목적이 달성되면 그것은 결말처럼 보이고, 그렇지 않으면 욕망의 충족이나 적어도 그것의 소멸처럼 보인다. 이와 반대로 여자에게는 목표가 처음에는 불확실하고, 생리학적이라기보다 심리학적 성격을 띤다. 여자는 일반적으로흥분과 관능적 쾌감을 원하지만, 그녀의 육체는 사랑 행위의 어떤 명확한 결론도투사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여자에게 성교는 결코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런 목적을 수반하지 않는다. 남자의 쾌감은 화살처럼 상승하다가 어떤일정한 문턱에 다다르면 완성된다. 그리고 오르가슴 속에서 불시에 죽어 버린다. 성행위의 구조는 완결되고 중단된다. 여성의 쾌락은 생식 체계에 늘 집중된 것이아니라 온 육체에 퍼져 있다. 진정한 오르가슴보다는 오히려 질의 수축이 리듬에맞추어 사라졌다가 다시 형성되고, 때때로 극점에 도달했다가 그다음 헝클어지지만, 결코 완전히 죽지 않은 채 만들어지는 파동 체계를 형성한다. 여성에게는어떤 최종 단계도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쾌락이 무한을 겨냥한다. 여성 에로티시즘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은 뚜렷한 만족감보다는 흔히 신경이나 심장의피로 혹은 심리적 포만 상태다. 만족하거나 또한 기진맥진하더라도 여자는 결코완전히 해방되는 일이 없다. - P543

여성의 유순함은 대단히 애매한 개념이다. 대부분 젊은 처녀는 상상계 속에서반신이나 영웅이나 한 남자의 지배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아직 나르시시즘적 유희에 불과하다. 그녀는 현실에서 이런 권위의 육체적 표현을 감내할 준비가 전혀되어 있지 않다. 그와 반대로 대개 자기가 숭배하고 존경하는 남자를 거부하고, 보잘것없는 남자에게 몸을 맡긴다. 구체적인 행동의 열쇠를 환상에서 찾는 것은오류다. 왜냐하면 환상이란 주체가 환상으로서 만들어 내어 마음속에 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포와 흐뭇함이 뒤섞인 상태에서 강간을 꿈꾸는 어린 소녀는 강간당하기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런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견딜 수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 P546

한편, 여자의 성적 역할이 대부분 수동적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자의정상적인 공격성이 사디즘적인 게 아닌 것처럼, 이런 수동적인 상황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이 마조히즘적인 것은 아니다. 여자는 자기 주체성의 확립을 유지하면서 애무나 흥분이나 삽입을 자신의 쾌락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또한 연인과의 결합을 추구할 수도 있고 그에게 자신을 맡길 수도 있는데, 이것은 자기 초월을 의미하는 것이지, 자기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타인의 의식意識을 통해 자기를 순수한 물체로 만들고, 또 자신에게도 물체로 표상하며 물체인척할 때 마조히즘이 나타난다. "마조히즘은 나의 객체성으로 타자를 매혹하기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나의 객체성에 나 스스로가 매혹되기 위한 시도다." 사드의 쥘리에트 『규방철학 에서 젊은 처녀는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남자에게 몸을 내맡기지만, 그것은 그녀들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기 때문에두 사람은 전혀 마조히스트가 아니다. 채털리 부인이나 케이트는 전적으로 자기를 상대방에게 내맡기는 데 동의하고 있으므로 마조히스트가 아니다. 마조히즘을 말할 수 있으려면 자기가 자기의 밖에 놓여 있어야 하고, 이 소외된 제2의 자기가 타인의 자유에 의해 확립된 것처럼 생각해야 한다. - P547

이런 관대함은 남자의 경우에 흔히 그 허영심 때문에 저지되고, 여자의 경우는 수줍음 때문에 저지된다. 여자가 자기에 대한 억제를 극복하지 않는 한 그녀의 관대함은 충분히 발휘될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자에게서 성적인 만개가 상당히 늦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여자의 성적 성숙은 서른다섯 살 무렵에 절정에 이른다. 불행하게도 만약 여자가 결혼했다면 그때쯤엔 이미 그녀의 남편이 아내의 불감증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녀는 아직 새로운 애인들을 유혹할수 있지만, 곧 시들기 시작한다. 그녀의 앞날은 길지 않다. 많은 여자가 성적 매력을 잃어 갈 즈음에야 겨우 자기의 욕망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 P550

그리고 만약 사람들이 자연을 원용한다면, 본래 모든 여자가 동성애자라고 말할수 있다. 레즈비언은 확실히 남성을 거부하고 여성의 육체를 좋아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모든 사춘기 소녀는 남자의 성기 삽입이나 지배를 두려워하며, 남자의 육체에 대하여 어떤 혐오감을 느낀다. 반면에 여자의 몸은 남자에게서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서도 욕망의 대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말한바와같이 남자들은 자신들을 주체로서 설정하면서 동시에 분리된 존재로서 설정한다. 다른 남자를 취해야 할 하나의 물건으로 간주하는 것은 그 남자 안에서 그리고 그와 맞물려 자기 안에서 남성적 이상을 해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신을객체로 인정하는 여자는 같은 여자들 안에서나 자기 안에서 일종의 먹잇감을 보고 있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이성애 남녀에게 적대감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이성애 남녀는 남자가 지배적 주체일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반 남녀는 자발적으로 레즈비언들을 너그럽게 대한다. 틸리 백작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그녀들은 내 기분을 조금도 상하게 하지 않는 경쟁자들이다. 오히려 나를 즐겁게 하고, 나는 부도덕하게도 그녀들에 대해 웃어 버리고 만다." 콜레트도 클로딘과 레지 커플 앞에서 르노가 이와 같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묘사했다. 남자는 공격적이지 않은 동성애 여자보다도 활동적이고 독립적인 이성애 여자로 인해 더 짜증을 낸다. 남자의 특권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런 이성애 여자뿐이다. 여성 동성애는 양성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형태를 반대하지 않는다. 대개 여성 동성애는 여성성의 인수이지 거부가 아니다. 이미 본 바와같이, 여성 동성애는 흔히 사춘기 소녀들에게 아직 경험할 기회나 대담성이 없는이성애 관계의 모조품으로서 나타난다. 그것은 인생의 한 과정이자 수업이며, 가장 열렬하게 동성애에 빠진 여자가 장래 가장 열렬한 아내나 애인이나 어머니가될 수도 있다. 따라서 동성애 여자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것은 그 선택의 긍정적측면이 아니라 부정적 면이다. 동성애 여자의 특징은 여자를 사랑한다는 데 있는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여자만을 사랑한다는 데 있다. - P555

남성적‘인 레즈비언을 ‘남자를 모방하려는 의지로 정의하는 것은 그녀를 진짜가 아닌 것으로 규정짓는다. 정신분석학자들이 현 사회가 정의하는 대로 남녀의 범주를 받아들임으로써 얼마나 많은 애매함을 초래하는지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오늘날 남자는 적극적인 것과 중립적인 것, 다시 말해서 남성과 인간을나타내지만, 여자는 단지 소극적인 것과 여성일 뿐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인간으로 행동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가 남자와 동일시한다고 말한다. 여자의 스포츠적·정치적·지적 활동이나 다른 여자들에 대한 욕망은 ‘남성적 항의‘로 해석된다. 사람들은 여자가 자기를 초월해 여러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을 고려하기를 거부하며, 이것은 당연히 여자가 주관적 태도로 비본질적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도록 이끈다. 이런 해석 체계가 근거하고 있는 커다란 오해는 인간 여성은 여자다운 여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세상이 인정하는 데 있다. 이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성애자인 것으로도, 어머니인 것으로도 충분치 않다. ‘진정한 여자‘는 예전에 거세된 남자들이 만들어졌던 것처럼 문명이 만들어 내는 인공적산물이다. 교태나 온순함 같은 이른바 여자의 ‘본능‘은 남근의 자존심이 남자에게불어 넣어진 것처럼 여자에게 불어 넣어진 것이다. 남자가 언제나 남성적 소명을받아들이지 않듯이 여자는 자기에게 지정된 소명을 그보다 한층 덜 순종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당연한 이유가 있다. - P556

다음의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즉, 자기를 객체화하는 데 대한 거부가 여자를 언제나 동성애로 이끄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다수 레즈비언은 반대로 자기의 여성성이라는 보물을 자기 소유로 하려고 한다. 자기를 수동적인 물체로 변신시키는 데 동의하는 것이 주체적인 주장을 모두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는 - P565

이처럼 즉자 존재의 형태로 자기를 발견할 것을 염원한다. 그러나 그때 그녀는자기의 타성에서 자기를 되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혼자 있을 때 그녀는 현실적으로 자기를 둘로 나눌 수 없다. 그녀는 자가 가슴을 애무하지만, 그 가슴이 다른사람의 손에는 어떻게 그 모습을 드러낼지 또한 다른 사람의 손 아래서는 어떻게 살아 있음을 느낄지 알지 못한다. 한 남자는 그녀에게 그녀의 살의 대자적 실존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그 살이 타자에게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직 그녀의 손가락이 한 여자의 몸을 어루만지고 확인할 때, 또 그 여자의 손가락이 자기 몸을 애무할 때 비로소 거울의 기적이 완전히나타난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사랑은 하나의 행위다. 각자는 자기를 떠나서 타자가 되어 버린다. 사랑에 빠진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그녀 육신의 수동적인무기력이 남성적 격정의 모습 아래 반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에 빠진 여자는 발기한 성기에서 그 매력을 너무나 막연하게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여자들 간의 사랑은 관조다. 애무는 상대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상대를 통해서 서서히 자기를 재창조하기 위한 것이다. 분리는 사라지고, 투쟁도 승리도 패배도 없다. 서로 정확히 주고받음으로써 각자는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고, 지배자인 동시에 노예다. 이런 이중성은 암묵적 합의다. 콜레트가 말하기를, "꼭 닮은 것은 성적 쾌감을 안정시키기도 한다. 여자 친구는 자신이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육체, 자기 자신의 육체가 선호하는 상대의 육체를 확신에 차서 애무하기를 좋아한다"라고 했다. - P566

사실 동성애는 심사숙고한 성도착도, 숙명적인 저주도 아니다. 그것은 상황에 맞게 선택된, 다시 말해 정당한 이유가 있는 동시에 자유롭게 채택된 하나의 - P575

태도다. 주체가 이러한 선택 때문에 받아들이는 요인들 - 생리적 조건, 심리적 역사, 사회적 상황 - 이 모두 그런 선택을 설명하는 데 이바지한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결정적이지 않다. 동성애는 여자에게 일반적으로 그녀가 처한 조건, 특히 에로틱한 상황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다. 인간의 모든 행위와 마찬가지로 동성애는 기만과 나태와 허위 속에서 사느냐, 아니면 명석함과 관대함과 자유 속에서 사느냐에 따라서 희극과 불균형, 실패와환상을 초래하기도 하고, 반대로 풍요로운 경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 P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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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체험
서론

제1부 형성
1장 유년기
수치의 감정, 월경 발작, 관통, 위선, 강간
카슨 매컬러스 <결혼식 멤버>

2장 젊은 처녀
비본질, 몸, 폭력, 딜레마, 불확실성, 먹이, 사디즘적 마조히즘, 삶
조지 엘리엇 <플로스 강의 믈방앗간>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캐서린 맨스필드 <서곡>
크리스티 빈슬로 <제복의 소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학교에서의 클로딘>
에밀리 디킨슨

그러므로 여자의 전통적인 운명을 면밀하게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여자가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어떻게 학습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세계 속에 갇혀 있는지, 그리고 여자에게 어떤 탈출이 허용되는지 서술하고자 한다. 우리는 오직 그런 연후에만, 무거운과거를 물려받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여자들에게 어떤 문제들이 제 기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자‘나 ‘여성적‘이라는 단어를사용할 때 당연히 어떤 원형도, 어떤 불변의 본질도 참조하지 않는다. 나의 주장 대부분에는 ‘현재의 교육과 풍습에서‘라는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여기에서 관건은 영원한 진리를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별적인 여성 존재가 살아가는 공통된 배경을 서술하는 것이다. - P385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생물학적·심리적·경제적 운명도 사회 속에서 인간의 암컷이 띠고 있는 모습을 규정하지 않는다. - P389

자기에게서 멀리 있게 할 수 있다. 확실히 그는 자기 페니스에서 위험을 느끼고거세를 두려워하지만, 여자아이가 자기 ‘내부‘에 대하여 느끼는 걷잡을 수 없는두려움, 흔히 여자의 일생에 영속하게 될 두려움보다는 통제하기가 더 쉬운 공포다. 여자아이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극도의 불안을 느끼고, 자기가 보기에도 여자가 애초부터 남자보다 훨씬 더 불투명하며 생명의 불가사의한 동요에 의해 훨씬 더 깊이 둘러싸여 있다고 여긴다. 남자아이는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분신 하나를 가지고 있어서 대담하게 자아를 감당할 수 있다. 그 속에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는 대상 자체는 자율성, 초월성, 힘의 상징이 된다. 즉, 자기페니스의 길이를 재고, 동무들과 오줌 줄기의 길이를 비교한다. 나중에는 발기와사정이 만족감과 도전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자기 몸의 어떤 부분에서도 자신을 소외시킬 수 없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여자아이에게는 그 곁에서제2의 자아 역할을 하도록 외부의 물체인 인형 하나를 손에 쥐여 준다. 여기서 상처난 손가락에 감긴 붕대도 ‘인형‘으로 부른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옷을 입힌분리된 손가락은 흥겹게 일종의 자랑이 되고, 아이는 거기에다 소외의 과정을 시도해 본다. 그러나 페니스라는 분신이자 자연적인 장난감을 가장 만족스러운 방법으로 대신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조그만 상-그것이 없으면 옥수수술 또는 나뭇조각 하나-이다. - P401

「이처럼 ‘여성적‘ 여자를 무엇보다 특징짓는 수동성은 그녀 안에서 생애 초기부터 전개되는 특질이다. 그러나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이라 주장하는것은 잘못이다. 이는 교육자들과 사회가 그녀에게 강요한 운명이다. 남자아이는그 존재 방식이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도록 격려한다는 엄청난 행운을 가진다. 그는 세계를 향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자기 존재에 대한 훈련을 쌓아 나간다. - P402

사실 여자아이가 성인 단계와 더 가까이 있다면, 이는 전통적으로 성인 단계가 대부분 여자에게서 더 어린이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자아이는 자신이 조숙하다고 느끼고, 갓난아이 곁에서 ‘작은 엄마‘의 역할을 하는 것을좋아한다. 그녀는 기꺼이 중요한 사람이 되고, 이치를 따져 가며 말하고, 어린이세계에 갇혀 있는 남자 형제들에게 우월감을 느끼며, 어머니에게 대등한 처지에서 말한다. - P410

여자아이들은 세계에 대한 자신들의 힘을 확립하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욕망을 갖는 동시에 자신들에게 강요된 열등한 상황에 대해 항의한다. 그녀들은 특히 나무, 사다리, 지붕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것에 몹시 분해한다. 아들러는 많은 영웅신화에서 보는 것처럼, 공간적 상승 관념은 정신적 우월성을 내포하므로 높은 것과 낮은 것의 개념이 커다란 중요성을 가진다고 지적한다. 나무나 바위 꼭대기 혹은 산 정상에 도달하는 것은 주어진 세계를 넘어 절대적 주체로 떠오르는 것이다. - P410

여자아이가 여자로서의 소명을 처음에 받아들인다는것은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군림하기 위한 것이다. 주부들의 세계가 여자아이에게는 특권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아이는 주부가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교제, 학업, 놀이, 독서를 통해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되면, 그녀는 여자들이 아니라 남자들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페니스의 발견보다 훨씬 더 - 그녀가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의식을 절대적으로 변화시킨다. - P411

프로이트가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적 욕망이 아니라고 내가 이미 말한바 있다. 그것은 복종과 숭배에서 자기를 객체화하는 데 동의하는 주체의 철저한 자기 포기다. - P412

유희와 몽상은 여자아이를 수동성으로 향하게 한다. 그러나 여자아이는 한 사람의 여자가 되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다. 그리고 자신을 여자로 받아들이는것이, 자기를 포기하고 훼손하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만약 자기 포기가 매력적이라 한다면 자기 훼손은 불쾌한 것이다. - P421

그녀 내부에서 초월성이 내재성의 부조리함을 단죄하는 것이다. 그녀는 예의범절의 규칙에 억압되고 의복에 의해 구속받고 가사에 얽매이고 모든 도약이 정지당한 데 대해 분개한다. - P423

자기를 주체며 자주체이자 초월로서 또한 하나의 절대로서 느끼는 개인에게, 자기 안에서 열등함을 주어진 본질로써 발견한다는 것은 기이한 경험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일자 설정하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이 또한 타자로서로 보인다는 것은 기묘한 경험이다. 이것이 바로 인생 수업을 쌓아 가는 과정에서자기를 여자로서 파악하는 여자아이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녀가 속해 있는 영역은 남자의 세계에 의해 사방이 막히고 제한되며 지배되고 있다. 그녀가 제아무리 높이 기어 올라가도, 위험을 무릅쓰고 제아무리 멀리 간다고 할지라도 그녀의머리 위에는 언제나 천장이 있고, 그녀의 길을 가로막는 벽이 있을 것이다. 남자의 신들은 아주 먼 하늘에 있으므로, 사실 남자에게는 신이 없다. 하지만 어린 소녀는 인간의 얼굴을 한 신들 가운데 살고 있다. - P425

여자와 흑인의 커다란 차이는, 흑인들은 반항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감내한다는 것이다. 즉, 어떤 특권도 그 혹독한 상황을 보상하지 않는다. 반면에 여자는 남자와의 공모를 권유받는다. - P425

여자아이는 자기 몸이 자기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느낀다. 그녀의 몸은 이제 더는 그녀 개인 - P436

의 명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녀의 몸은 그녀에게 낯선 것이 된다. 그와 동시에그녀는 타인에 의해 하나의 물체로서 파악된다. 즉, 거리에서 사람들은 그녀를눈으로 좋으며 그녀의 몸매에 대해 논평한다. 그녀는 자신이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녀는 육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육체가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 P437

사춘기는 남녀에게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띠고 있 - P445

다. 왜냐하면 사춘기는 그들에게 같은 미래를 예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 P446

하지만 몇몇 정신과 의사들은 생식기가 배뇨 이외의 다른 용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소녀가 아직도 많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그녀들은 자기들의성적 흥분과 생식기 존재 사이의 관련성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남성의 발기처럼 어떤 뚜렷한 표시로 그녀들에게 그 관련성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나 사랑에 관한 그녀들의 낭만적 몽상과 그녀들에게 드러난 몇 가지 노골적인 사실 간에 그처럼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녀들은 둘 사이에 어떤 종합도 이루어내지 못한다. - P451

그래서 그는 거기에서 자기를 인정한다. 이와는 반대로, 여자아이의 성적 생활은 언제나 은밀한 것이었다. 그녀의 에로티시즘은 변화하고 그녀의 온 몸을 침범하며, 그 비밀은 불안한 것이 된다. 그녀는 그 동요를 수치스러운 병처럼 감내한다. 그 동요는 능동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상태로, 상상 속에서조차 그녀는 어떤 자율적인 결단으로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할 수 없다. 그녀는 붙잡고 짓이기며 짓밟는 것을 꿈꾸지 않는다. 그녀는 기다림이자 호소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의존적 존재로 느끼고, 소외된 자신의 몸속에서 위태롭게 느낀다.
왜냐하면 그녀의 막연한 희망과 행복한 수동성의 꿈은 그녀의 몸이 다른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물체같이 그녀에게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녀는 성적 경험을 자기의 내재성 속에서만 알고 싶어 한다. 그녀가 청하는 것은 손과 입의 접촉, 또 하나의 육체의 접촉이지, 손과 입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몸 자체가 아니다. 그녀는 상대의 이미지를 모호한 채로 내버려 두던가 아니면 이상의 안개 속에 잠기도록 한다. 하지만 그녀는 상대의 이미지가 자기에게 들러붙는 것을 막을수 없다. 남자에 대한 그녀의 소녀다운 공포나 혐오는 이전보다 더 모호한, 또그 때문에 더욱 불안한 성격을 띠고 있다. - P452

그녀는 자신이 타인에게 소유될 운명인 이유가 스스로 그것을 청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의 욕망에 반항한다. 그녀는 요구에 응하여 먹이가 되는 수치스러운 수동성을 희망하는 동시에 꺼린다. 한 남자 앞에서 나체가 된다는 생각만 해도 그녀는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녀가 속수무책으로 남자의 시선에 넘겨진다는 것 또한 느낀다. 붙잡고 만지는 손은 눈보다도 한층 더 위압적인 존재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무서워한다. 그러나 육체적 소유의 가장 명백하고 가장 고약한 상징은 남성 성기에 의한 침투다. 소녀는 자기 자신과 하나인이 육체를 남자가 가죽을 뚫듯이 뚫고, 천을 찢듯이 찢을 수 있다는 것을 증오한다. 그러나 상처와 그에 수반되는 고통보다 소녀가 더 거부하는 것은 그 상처와 고통이 타인에 의해 가해진다는 사실이다. "한 남자에 의해 내 몸이 관통된다는 생각은 끔찍해요"라고 어느 날 어떤 소녀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페니스에 대한 공포가 남자에 대한 혐오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 확증이며 상징이다. 관통이란 관념은 더 일반적인 하나의 형태 속에서 외설적이고 굴욕적인 의미가 있다. 그 반면 공포는 그런 의미의 본질적 요소다. - P453

소녀의 불안은 그녀를 괴롭히는 악몽과 그녀를 떠나지 않는 환상으로 나타난다. 강간에 관한 생각이 대개 강박적이게 되는 것은 그녀가 자기 안에서 은밀한 쾌감을 느끼는 때다. 강간에 관한 생각은 꿈과 행동 속에서 다소 분명한 많은상징을 통해서 나타난다. 소녀는 수상한 의도를 가진 도둑이 자기 방에 숨어들지 않았나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두려움 속에서 방안을 뒤져 본다. 소녀는 집안에 강도가 들었다고 믿는다. 침입자가 창문으로 들어와 칼로 그녀를 찌른다고생각한다. 남자들은 다소 날카로운 방식으로 소녀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 P453

사춘기가 여자아이에게 고통스러운 혼란의 시기라는 것은 이해된다. 그녀는어린아이로 남고 싶지 않으나, 어른의 세계도 공포감을 일으키거나 따분하게만보인다. - P454

이제 우리는 어떤 비극이 사춘기 소녀의 가슴을 찢어놓고 있는지 이해한다. 소녀는 자기의 여성성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어른‘이 될 수 없다. 그녀는 자기의 성性이 자기를 거세되고 응고된 삶에 처하게 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그 사실을 불순한 병과 이해하기 힘든 죄의 형태로 발견하고 있다. 그녀의 열등함은 처음에는 오직 상실로서만 파악되었다. 그런데 이제 페니스의 결여는 치욕과 결함으로 바뀌었다. 상처를 입고 수치심을 느끼며 불안과 죄의식을지닌 채, 그녀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 P458

타자가 남자에게는 여자 속에 구현되어 있듯이 그녀의 눈에는 남자 속에 구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 타자는 그녀에게 본질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그녀는 그 앞에서 자기를 비본질로써 파악한다. 그녀는 부모의 집에서, 어머니의 세력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능동적인 쟁취를 통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주인의 수중에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자리로 옮겨 감으로써 자신의 미래를열게 된다.
여자가 이런 자기 포기를 감수하는 것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소년들보다 열등하고 그들과 경쟁할 수 없게 된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흔히 주장한다. 헛된 경쟁을 포기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책임지는 책무를 우월한 계급의 일원에게떠맡기는 것이라 한다. 사실상 여자의 겸양은 선천적 열등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러한 겸양이 그녀의 모든 무능을 낳는다. 그 겸양의 근원은 사춘기소녀의 과거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그리고 그녀에게 제시된 바로 그 미래 속에 있다. - P460

이처럼 세계는 자기 자신에 대해 표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허용된 소년과, 즉각적 효과를 박탈당한 감정을 지닌 소녀에게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남자는 끊임없이 세계를 재검토하고, 매 순간주어진 것에 대해 항의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이 세계를 받아들일 때는 능동적으로 확인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여자는세계를 그저 감내하기만 할뿐이다. 세계는 그녀 없이도 정의되고, 변함없는 모습을하고 있다. 이런 신체적 무력함은 더 일반적 소심함으로 나타난다. 여자는 자기신체 안에서 시험해 보지 않은 힘을 믿지 않는다. 그녀는 감히 기도도 반항도 창조해보지도 않는다. 순종과 체념에 바쳐진 여자는 사회에서 이미 다 만들어진 자리 하나 - P462

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녀는 사물의 질서를 주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 P463

자기 몸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신뢰를 잃는 것이다. 모든 주체가 자기 몸을 객관적 표현으로 파악한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젊은이들이 자기의 근육에 부여하는 중요성을 보면 된다. - P463

월경의 속박이 무거운 장애가 되는 것은그것이 초래하는 심리적 태도 때문이다. - P463

여자의 몸을 괴롭히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다. - P464

이런 패배주의의 근본 원인은 소녀가 자기 미래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 그녀는 자기의 운명이 결국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해 봤자 소용없다고 판단한다. 자기가 남자보다 열등하다는것을 알기 때문에 남자에게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남자에게 바쳐졌기 때문에 스스로 열등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여 그렇게 되는 것이다. - P466

G. 엘리엇George Eliot(1819~1880)이 지적하는 것처럼 소설에서는 보통금발의 멍청한 여주인공이 남성적 성격의 갈색 머리 여자를 이긴다.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에서 매기는 역할을 뒤집으려고 헛되이 노력하다가 결국 죽어 버리고, 스티븐과 결혼하는 사람은 금발의 루시다. - P467

이와 반대로 젊은 처녀에게는 문자그대로 그녀의 인간 조건과 여성적 소명 간에 불일치가 있다. 그 때문에 청소년기는 여자에게 무척이나 어렵고 결정적 시기이다. 지금껏 그녀는 자율적인 개인이었으나, 이제 자기의 주권을 포기해야만 한다. 그녀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남자 형제들처럼 그리고 그들보다 더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주체이자 능동적이며 자유로운 존재로서 살아가고자하는 그녀의 본래적인 권리 주장과, 그녀에게 수동적 객체가 될 것을 요구하는 그녀의 에로틱한 성향 및 사회적 압력 사이에서 갈등이 폭발한다. - P467

젊은 처녀에게 에로틱한 초월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기를 먹이로 삼는 것이다. 그녀는 하나의 객체가 되어 자기를 객체로 파악한다. 그녀는 자기 존재의이 새로운 면을 뜻하지 않게 발견한다. 자기가 둘로 나뉜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자신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대신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기 시작한다. - P469

젊은 남자 역시 꿈을 꾼다. 그는 특히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모험을 꿈꾼다. 젊은 처녀는 모험보다경이로운 것을 선호한다. 그녀는 사물과 사람들 위에 몽롱한 마법의 빛을 내뿜는다. 마법에 관한 생각은 수동적 힘에 관한 생각이다. 그녀가 수동성에 바쳐졌어도힘을 갖기를 바라기 때문에 마법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남자들을 자기 지배하에두는 자기 몸의 마법, 그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욕망을 채워 줄 운명의마법을 믿어야만 한다. 반대로 현실 세계에 관해서는 망각하려 애쓴다. - P473

중요한 것은 어떻든 간에 성적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두뇌적 사랑은 에로티시즘이 타자의 현실적 존재 없이 그녀의 내재성 속에서만 나타나는 나르시시즘적 태도를 연장하고 확인시켜 준다. - P483

그녀는 자기의 유치함과 여성으로서의 체념을 번갈아 자책한다. 그녀는 거부의 태도를 지속적으로 고수하고 있다.
이것이 젊은 처녀를 특징짓는 특성이며, 그 행위의 대부분을 이해하는 열쇠가거기 있다. 그녀는 자연과 사회가 자기에게 할당하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운명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세상과 싸움을 벌이기에는 내적으로 너무 분열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혹은 현실에 대해 상징적으로 이의 제기하는 데 그친다. 그녀의 각각의 욕망은 불안으로배가되고,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손에 넣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자기의 과거와단절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녀는 한 남자를 ‘소유하기‘를 바라지만, 그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혐오한다. 그리고 공포의 배후에는 욕망이 숨어 있다. 강간은 그녀를 소름 끼치게 하지만 수동성은 동경한다. 그래서 그녀는 기만과 온갖 술책을동원하게 되고,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강박관념의 성향을 지닌다. 이것은 욕망과 불안의 양면성으로 나타난다. - P489

너무나 육적인 자기 몸과 월경, 어른들의 성행위와 자기가 바쳐진 남자에 대하여 혐오를 느끼고 있는 소녀는 자기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모든 것과 친숙해짐으로써 그 혐오감을 부인하는 것이다. - P490

사춘기 처녀를 비난받게 하는 모든 결점이 단지 그녀가 처한 상황을 표현할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희망에 부풀고 야심으로 가득찬 나이에, 삶에대한 의지와 지상에 자리 하나를 차지하려는 의지가 왕성한 나이에, 자기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여자는 자신감이 충만한 시기에 자기에게는 그 어떤 정복도 허용되지 않고 자기를 부정해야만하며, 자기의 미래가 남자들의 뜻에 달려 있다는 점을 터득한다. 성적인 면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갈망에 눈을 뜨지만, 그녀는 그 갈망을 채우지 못한 채 살아가도록 강요당한다. 생명이나 정신적 차원의 약동은 모두 곧 저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가 자기 균형을 회복하기는 힘들다는 것을이해할 수 있다. 그녀의 불안정한 기분, 눈물, 신경의 발작은 생리적 허약함의 결과라기보다 심각한 부적응의 표시다. - P498

완전한 경제적 평등이 실현되지 않는 한, 그리고 풍습이 일부 남자들이 쥐고 있는 특권의 득을 아내나 정부의 자격으로 보는 것을 허용하는 한, 수동적인 성공의 꿈은 여자 안에 그대로 유지될 것이고, 여자의 성취를 억누를 것이다. - P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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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외부회의 전 1시간 정도 짬이 있어서 카페에서 <2의 성>을 읽었고 드디어 1권을 끝냈다!! 만세!!


도대체 1권에서 이렇게 많은 말을 하고도 2권의 분량이 1권보다 1.5배는 더 많다니, 2권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하다.


1권 초반부 생물학적 관점이나 역사 부분은 그나마 잘 읽혔으나 신화와 문학으로 갈수록 더 난해하고, 문학 부분은 특히 <다락방의 미친 여자><페미니즘 이론과 비평>을 읽을 때처럼 어려웠다. 나에게 문학 비평의 산은 높고도 높은 것인가.



월경에 대한 혐오감


월경에 대한, 월경하는 여자들에 대한 혐오감이 이렇게 심한 줄은 몰랐다내 안에 있던 월경에 대한 저주, 부끄러움이 그냥 생긴 게 아니었구나. 나의 잠재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힌 관념이구나.



스탕달의 재발견


보부아르가 1권에서 비판하는 몇몇 작가들(몽테를랑, 로런스, 클로델, 브르통 )과는 달리 스탕달에 대해서는 페미니스트로 지칭할 정도로 그의 문학작품 속의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위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스탕달은 고등학교 때 아마도 축약본인 <적과 흑> 밖에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아니 최근에 읽어봤어도 다른 작가와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아무튼 스탕달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보부아르는 1권 서론에서부터 여성은 타자라고 명명한다. 여성은 왜 타자가 되었는가. 공고한 남성의 카르텔에 의해 타자가 될 수밖에 없었나. 그런데 최초에 왜 남성은 주체가 되고 여성은 타자가 되었나. 결국 재생산을 하는 여성의 신체가 문제인가. 2부를 읽으면 여성이 어떻게 타자로 형성되어졌는지 알 수 있을까.


사무실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2권 앞 부분 몇 페이지를 읽었는데, 유년기 부분 흥미롭게 잘 읽힌다. 서서 오줌 누는 남성에 대한 부러움은 여성이라면 다들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샤워할 때나 바다에서 놀 때(워터파크나 수영장은 No No!!) 서서 오줌 누기 한 번 씩 시도해보지 않나요. 엉덩이를 드러내는 부끄러움과 불편함에도 공감.


, 이제 600페이지 남았다.


<남성 특권>31일 아침에 집으로 맞아들였으나, 책상에 모셔두었다. <2의 성>을 다 읽은 후에(?)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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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3-04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월경에 대한 혐오감은 왜 그렇게 커졌을까요? 아 진짜 이해 안되지 않나요?
어쨋든 화이팅입니다. ^^

햇살과함께 2023-03-05 21:15   좋아요 2 | URL
월경하는 여자들 접촉하면 불결한 듯 방에 가두거나 심지어 지붕위에 올라가게 하기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