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특권 - 여성혐오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케이트 만 지음, 하인혜 옮김 / 오월의봄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성 특권이라 쓰고 여성 혐오라 읽는다. 부부나 연인 사이 섹스에서의 ‘동의’라는 함정에 대해 수긍하지 않을 수 없고, 여성 정치인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뜨끔하지 않을 수 없고, 내가 가진 특권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3-03-29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다 읽으셨네요. 축하합니다!
햇살과함께 님도 엄청 부지런히 읽으시네요.
우린 4월에 또 합께합시다!

햇살과함께 2023-03-29 21:18   좋아요 0 | URL
요즘 물오른(?) 시기인가봐요 ㅋㅋㅋ
4월 책도 기대됩니다!!

건수하 2023-03-29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햇살과함께님 쭉쭉 나가시는군요! 👍👍👍

햇살과함께 2023-03-29 23:26   좋아요 0 | URL
언제 브레이크가 걸릴지 모르니 갈 때까지 가보려구요 ㅎㅎ
 

7장 사소하지만 거대한 불의: 가사노동의 문법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8장 앎의 소유자들: 맨스플레인, 진술 억압, 가스라이팅

9장 ‘당선 가능성’이 말하지 않는 것: 여성 그리고 권력

10장 다음 세대의 여성들을 위하여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양육노동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75년(맨케어MenCare라는 부성애 캠페인 추정치)에서 더 절망적이게는 200년(UN 산하 국제노동기구의 추정치)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이런 연구들은 여성이 풀타임으로 일하고 남성이 비고용 상태일 때 유일하게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가사노동 분담에 근접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여기서 핵심은 ‘근접하다approach‘라는 단어에 있다. 여성은 여전히 더 많은일을 감당한다. 평등하다고 추정되는 미국 사회에서도 평등이란 말은 실체가 없다. - P179

남성들이 더 일하지 않는 것은 건망증 때문이다. 고의적인, 상대적으로 행복한 무지의 상태 말이다. 캠프 더시는 자신의 연구에 관해 논평하며 이렇게 썼다.

흥미롭게도 새로 아버지가 된 사람들은 파트너의 늘어난 노동량을 자신이 따라잡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가 질문했을 때 남성과 여성 모두 부모가 된 이후 일주일 동안 수행하는 총 가사노동량이 30시간 정도 늘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한 시간 사용 일지는 그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양육자가 된 후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은 일을 추가로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P180

이 내면의 대화는 감정노동이 요구하는 대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감정노동이란 각종 챙김과 어떤 기대치를충족시키는 일을 포괄한다. 바로 이것이 여성에게 부과되는 일들이다. 여성은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장 볼 목록, 가족 예산, 주요 가족 행사 일정 등등을 알아야 한다. 기저귀 가방부터 여행 가방까지 끝도 없이 짐을 싸고 챙기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로크먼이 더 이상 도움주기를 거부한 이후 남편이 딸들의 잠옷 챙기는 것을 깜빡한 나머지 아이들은 수영복을 입고 자야 했다.)
이 모든 종류의 노동을 감정노동이라는 항목에 넣는 것이 이제는 꽤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남성 독자에게 제공되는감정노동에 관한 최신 가이드에서 감정노동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었다.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추적하기 위해 여성이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임금노동. [그 자체로는] 사소한 일들이지만 합쳐지면 어마어마하게 큰 것들. 가정은 물론, 더 나아가 올바른 사회를 지탱하는 아교. - P182

진실은 물론 권위 또한 여성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여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도구적 이유를 제외하고는 불필요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상대의 화를 누그러뜨리거나 아니면자신의 미덕을 드러내기 위한 제스처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이 문제는 중층적인 억압을 겪는 여성들에게 더욱 심각하게, 때로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다. 트레시 맥밀런 코텀은 뛰어난글 〈6인의 흑인 여성Girl6>에서 데이비드 브룩스와 조너선 채이트라는 두 남성의 트위터 팔로우 목록에서 흑인 여성의 수를세어본 일에 대해 썼다. 각각 총 322명과 370명의 팔로우 가운데 흑인 여성은 고작 여섯 명뿐이었다. 맥밀런 코텀은 이렇게 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소위 스마트한 사람이라 불리는 이들조차 흑인 여성의 글을 읽지도, 흑인 여성을 인터뷰하거나팔로우하지도, 심지어 흑인 여성의 존재에 대해 생각조차해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의 직업적 전문성과 능력은※ 그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 흑인 여성들은 그저 무시당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인식적 특권을 과도하게 부여받은 집단 때문에 그들은 우선시되지 않는다. - P209

특히 그들은 여성들이 지금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무엇이 변하고 진보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당한 인식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여성들의 의견을요하게 반박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상 그들은 여성들의 의견에 반박할 기술이나 의지를 결여하고 있는 듯하다. 그대신 그들은 여성을 입 다물게 하거나, 여성들이 반박할 수 있는 여지를 떡잎부터 잘라버리고 싶어 한다. 여성의 발언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부정하면서 말이다. (상대 여성이미쳤다거나 악하다고 말하는 것이 전형적인 방식이다. 두 경우 모두여성의 발화를 논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또한 이들은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남성들이여성의 발언을 애초에 차단하는 세상을 꿈꾼다. 무언가로 여성의 목구멍을 틀어막음으로써 여성을 영원히 침묵시키는 그런 세상 말이다. 놀랍게도 남성은 자신의 모든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다거나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믿는다. - P228

최종 결과는 이렇다. 성별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남성이 지배해온 직위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더 뛰어난 업무 능력을 발휘할 거라고 가정한다. 그런 가정을 명쾌하게 반박하는 다른 추가적인 정보들이 없다면 말이다. 그런가정이 반박될 때 여성들은 특히 "대인관계에 적대적인 존재로 인식되며 더욱더 비호감의 대상이 되거나 무시당한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진행된 여성 인사에 대한 평가에서 "대인관계에 적대적"이라는 것은 불의를 묵과하고, 위압적이며, 이기적이고, 까칠하고, 교활하며, 불신을 일으키는 존재로 인식 - P232

되는 것을 모두 포괄한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극적"이라고 설명했는데, ‘우리를 낙담시키는 결과’라는 설명을함께 덧붙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토록 편견이 만연한데 어떻게 여성이 선출직에 당선될 수 있단 말인가? - P233

좀 더 섬세한 차원에서 연대란 부당한대우를 받거나 억압받고 주변화된 사람들을 대신해 분노를자유롭게 표출하는 행위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엘리자베스 워렌Elizabeth Warren은 "나는 화가 났고, 그 사실을 잘 알고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보냈다. 워렌이 사사건건 과도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암시한 조 바이든측 내용에 대한 응답이었다. 워렌은 바로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발생하는 불의라며 우리가 이 점에 비분강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워렌의 지적에 따르면, 우리는 "여성들이 분노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게 된다. "우리가 조용히 있기를 바라는 남성 권력자들은우리를 못난 존재로 여긴다. - P2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장 통제되는 몸: 낙태금지법의 진짜 욕망

세계적으로 저명한 부인과 전문의이자 《질에 대한 모든 것 The Vagina Bible》의 저자 젠 건터 Jen Gunter는 이처럼 비과학적 견해(나팔관 파열의 치사율이 극도로 높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와 어떻게든 죄책감을 조장하려는 심리가 결합하는 현상에 대해 트위터에 이렇게 언급했다. "자궁이 아닌 곳에 착상된 태아도 아이다‘라는 진술을 대단한 무언가로 만들지 마라. 자궁외임신으로 인해 복부에 피가 가득 들어찬 여성들을 치료해본 적이 없다면, 누군가를 죽게 만들지 말고 입 닥치고 가만히 앉아서 배워라." 바로 이거다.
여성의 신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배울 생각도 없으면서 임신한 신체를 통제할 특권을 갖고 있다고 믿는 남성들이 너무 많다. 또한 임신을 규제하고 강제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이들을 비정한 인간으로 몰아가려는 여성들도 일부 분명 존재한다. - P156

1970년대의 낙태 반대 운동은 낙태에 대한 공격이 (태아의 생명을 중단시켜서가 아니라) 전통적 성역할을 붕괴시키는 것에 대한 우려로 촉발된 것임을 보여준다. 그린하우스와 시걸은 악명 높은 반여성주의자 필리스 슐래플리Phyllis Schlafly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슐래플리는] 임신중단을 공격하면서 단 한번도 살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슐래플리는 낙태를 성평등 헌법 수정안Equal Rights Amendment, ERA 그리고 육아와 연결시켜 맹비난했다". - P161

여성이 남성에게 언제든 제공해야 하는 것은 분명 인적 봉사다. 여성은 단순히 아이를 임신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Atwood의]《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에 등장하는 유의 인간의 새끼를 낳고 사육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출산후 여성은 자기 자신을 지워내는 방식으로 아이를 보살펴야한다. (자신의 남성 파트너에게 기대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강도로 말이다.) 그러나 여성이 자신의 인간 됨됨이를 의심받지않을 때조차 그것은 타인의 덕택으로 여겨진다. 여성은 인간존재가 아니라 인간 증여자의 위치를 배정받는다. 즉 감정노동, 물질적 지원, 성적 만족뿐 아니라 재생산노동까지 제공하는 존재 말이다. 그리고 남성은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 제공하는 이런 재화들을 받고 누릴 권리뿐 아니라 포기할 권리 또한갖는다고 여겨진다. 권력을 가진 수많은 남성 공화당 의원들이 낙태 금지를 외칠 때, 가장 중요한 예외 대상은 상대 남성이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한 소위 정부(남성의 외도 상대)일 것이다. - P164

현실에서 양성 화장실에 접근하고자 트랜스여성 행세를 한 시스젠더 남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최근의 연구에서 드 - P170

러났듯, 2004년 이래로 그런 범죄로 고발된 경우는 미국 내에서 1년에 한 건 정도에 불과하다. 한편 굳이 트랜스여성 행세를 하는 수고조차 하지 않은 시스젠더 남성이 화장실에서 여성을 공격하는 사례는 훨씬 더 정기적으로 발생한다. 바넷 연구팀은 이런 사건이 동일 시간대에 150배나 더 많이 일어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트랜스여성의 (혹은 다시 말하지만, 트랜스여성을 가장하려는 시스젠더 남성의 잠재적 위협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되는 걸까? 그리고 왜 시스젠더 남성들이 모든 여성들에게 가하는 실질적인 위협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들을 수 없는 걸까? 트랜스포비아transphobia, 특히 여성혐오와 트랜스포비아가 위험천만하고 유해하게 교차하는 장인 트랜스여성에 대한 혐오가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이 될 것이다." 이러한 혐오가 트랜스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 P171

많은 사람들이 이 청년들에게 살인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커녕 공감과 지지를 표했다. 그들이 맥도날드에 들르기 전 구타당한 아라우호의 몸을 [살인을 자행한 장소에서] 150마일 떨어진 시에라 황무지에 묻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말이다. 베처가 언급했듯, 사람들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논리에 기대 범죄자들을 위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한 범죄자의 모친은 "당신과 함께 밤을 보내는 아름다운 여성이 실제로는 남성이었다고 생각해보라. 어떤 남자도 미쳐 날뛰지 않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재크 칼레프Zach Calef라는 이름의 학생 기자는 "아라우호는 그 남자들에게 자기자신에 대해 솔직히 밝 - P174

히지 않았고, 만일 솔직하게 밝혔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라우호의 성별을 착각함으로써 아라우호를 도덕적으로 비방하고, 더 나아가 끔찍한 모욕까지 보탠 것이다. 이 네 남성들의 변호사 중 한 명은 이들이파티에서 아라우호를 살해하기 며칠 전에 이미 아라우호의성기 형태에 대해 유추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홧김에" 그리고순간적으로 "극도의 충격과 놀라움, 당혹스러움"을 느껴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들은 "너무나 강렬한, 거의 동물적인" 살해 욕구를 느꼈는데, 아라우호의 "성적기만, 속임, 배신"이 그런 욕구를 촉발했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들에는 이 남성들에게 옷차림 너머의 성기 형태에 대해 알아낼 권리는 물론 "미친 듯이 분노할 권리, 심지어는 (그들의 성적 특권의식에 도전한 아라우호를) 살해할 권리가 있었다는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 P1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방대한 책을 이 많은 역사적, 신화적, 생물학적, 정신분석학적, 문학적 사례 인용과 분석 - 그래서 한 문장으로 요약해봐, 하면 제대로 정리를 못하겠다. 그냥 나에게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언급한다.



사춘기 불안


소녀의 불안은 그녀를 괴롭히는 악몽과 그녀를 떠나지 않는 환상으로 나타난다강간에 관한 생각이 대개 강박적이게 되는 것은 그녀가 자기 안에서 은밀한 쾌감을 느끼는 때다강간에 관한 생각은 꿈과 행동 속에서 다소 분명한 많은 상징을 통해서 나타난다녀는 수상한 의도를 가진 도둑이 자기 방에 숨어들지 않았나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두려움 속에서 방안을 뒤져 본다소녀는 집안에 강도가 들었다고 믿는다침입자가 창문으로 들어와 칼로 그녀를 찌른다고 생각한다남자들은 다소 날카로운 방식으로 소녀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 P453


사춘기 시절 월경에 대한 저주, 몸에 대한 거부감, 현실에 대한 걱정과 불만,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 그 중에서도 나를 괴롭히던 불온한 상상들. 끊임없이 떠오르는 그 불온한 상상에 내가 미친 것이 아닐까, 미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그 부분을 짚어주어 해방감을 맛보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불안하고 불안정한 미친 사춘기일 뿐이야. , 다시 10대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사춘기와 월경에 대한 파트가 가장 강한 인상을 주었다.



시지프스의 형벌


다수의 여자가 이처럼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전투에서 무한히 다시 시작되는 피로밖에는 제 몫으로 가져가는 것이 없다더 특권적인 혜택을 누릴 때도 승리는 결코 결정적이지 않다주부의 일만큼 시지프스의 형벌을 닮은 것도 별로 없다날이면 날마다 그릇을 씻고 가구의 먼지를 털고 속옷을 기워야 한다이런 것들은 내일이면 다시 더러워지고 먼지가 앉을 것이며 헤져 버릴 것이다주부는 그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느라 지쳐 버린다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단지 현재를 영속시키고 있을 뿐이다그녀는 긍정적인 선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항해 끝없이 싸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날마다 되풀이되는 싸움이다주인의 장화를 닦는 것을 우울하게 거부한 하인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닦아서 뭐합니까내일 또 닦아야 하는데요"라고 하인은 말했다. - P618


요리는 하면(그러나 하지 않는다) 음식이라는 결과물이 생기고, 설거지도 배불리 음식을 먹었으니 하는 것이고, 빨래도 옷을 입었으니 하는 것인데, 이 놈의 먼지, 먼지, 먼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정확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지만), 숨만 쉬어도 생기는 먼지들. 책장에, 책상에, 선반에, 옷장에 생기는 먼지를 닦을 때마다 아, 내가 시지스프의 벌을 받고 있는 것인가 푸념했는데, 또 나를 건드린 주부의 일상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2013년에 〈뉴욕매거진>의 조너선 체이트는 ‘페미니스트의 가사 노동 문제에 대한 진짜 쉬운 해결책‘이라는 짧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
집안일을 줄여라." - P205 <아내 가뭄>


"집안일은 조금 덜 하고 신경을 끊는 게 답인 유일한 정치 현안일 것이다집안일을 대하는 가장 혁신적이고 분별 있는 태도가 바로 무관심이라는 얘기다. 50년 전에는 이불보를 다리고 커튼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는 일이 100퍼센트 정상적인 일이었다꼭 필요한 일이었다는 얘기다하지만 청소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청소 일을 분담하는 게 아니라 먼지를 아예 털지 않으면 된다." - P207 <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의 <아내 가뭄>에서 뼈때리는 처방으로 집안일을 줄여라라고 했는데먼지를 외면하고 먼지에 의연해지는 굳건한 심지(?)를 가져야 하고 청소를 최소화한다주말에도 집 밖으로 나간다나간다.




철학 에세이라는 무거운 분류에 비해 생각보다 잘 읽혔다. 번역도 기여한 부분이 클 것 같다. 1권은 다소 어렵고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지만, 2권은 다양한 임상사례나 소설 인용, 생활밀착형 묘사들로 소설 읽는 것 같은 부분이 많다. 다만 너무 많은 예시와 반복적인 설명으로 약간 질리는(?) 면도 있다.


레즈비언에 대해 언급한 파트는 시대적 한계가 있을 것이며, 중산층/부르주아의 시선에서 중산층/부르주아 여성이 처한 상황을 기준으로 설명하는 계급적 한계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또한, 방대한 수준의 현상 분석에 비해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짧은 대안 제시로 결론을 맺는다는 한계도 있다(보부아르도 인정했듯이). 그럼에도 한 인간이 여성이 되어지는 과정을 이렇게 세밀하게 처절하게 묘사한 책은 없을 것 같다.

보부아르는 여자에게 타자로 살도록 강요하는 남성 중심의 세계를 단죄함과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완성하여 스스로 자기 존재를 책임지는 것을 회피하는 여성 주체에 대해서도 윤리적 엄격성을 보여 준다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가 지속되는 것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이다여성의 상황에 관한 보부아르의 분석과 비판은 일관되게 이 두 층위에서 이루어진다그렇다면 보부아르와 함께 확인한 이런 비대칭적이고 불평등한 젠더 관계즉 남자에 대한 여자의 복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보부아르에 의하면 애초에 남자가 자기의 우월성을 여자에게 강요하는 데 성공했으며여자는 유사이래 남자에게 내내 종속되어 있었다앞서 인용한 것처럼 여자의 종속은 역사의 한 시점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운명처럼 보인다는 것이 보부아르의 주장이다하지만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는가? - P995


여자의 무능력과 몰락은 남자가 치부와 팽창이라는 계획을 통해 여자를 다루었기 때문에 나타났다고 보부아르는 보고 있다그리고 이것만이 여자가 압박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역설한다어쩌면 성에 의한 노동의 구분도 양성의 우호적인 협조가 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다만약 인간과 그 동류와의 근원적인 관계가 오로지 우호적인 관계라면 어떠한 노예적 유형도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따라서 보부아르는 인간의 인간 지배 현상은 객관적으로 자기의 우월성을 성취하려하는 인간 의식의 제국주의적 결과라고 설명한다인간의 내부에 타자라는 근원적 범주와 타자를 지배하고자 하는 근원적 의지가 없었더라면 청동 도구의 발견도 여성의 압박을 초래할 수는 없었으리라는 것이다결론적으로 팽창과 지배에 대한 남자의 의지가 여자의 무능력을 저주로 변모시킨 것이다. - P998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원시 사회에서도 "공적 또는 단순히 사회적 권위는 항상 남자들에게 속해 있었다." 그는 모든 사회에서 남녀 간에 기본적인 불균형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이러한 불균형은 결정적으로 남자의 생물학적인 특권, 즉 남자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여자에게 위치를 배정하기 위해 사용한 특권인 그의 완력에 근원을 두고 있다. - P1000


내가 궁금했던 왜 최초에 남성은 주체가 되고 여성은 타자가 되었나에 대해, 이정순 번역가의 해제에서 설명하기를, 결론적으로 보부아르는 인간(여기서 인간이란 남자를 얘기하겠지) 의식의 제국주의적 결과, 팽창과 지배에 대한 남자의 의지가 여자를 타자로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남자의 생물학적 특권인 신체적 차이도 언급한다. 그렇다면 태초부터 여성은 팽창과 지배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것인가? 있었지만 남성보다 약해서 발현되지 않은 것인가? 없거나 약하다면, 과거보다 남성 지배의 비중이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앞으로도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인가? 여성의 지배력, 아니, 지배 욕구도 점점 강해질 것인가? 지배가 아닌 공존으로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는 것일까?? 아직 이런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페미니즘 철학 입문><페미니즘 이론과 비평>의 보부아르 부분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꺼내두었다.




















<Who? 시몬 드 보부아르>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ㅋㅋ 이런 학습만화 싫어하는데 보부아르의 생애가 궁금해서 속성으로 알기 위한 꼼수 ㅋㅋ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제2의 성>뿐만 아니라 이 책은 언급되는 책이 많아 언젠가, 죽기 전에 읽어봐야 겠다.





















보부아르가 자주 언급한 페미니스트 스탕달 책도 읽어야지.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수하 2023-03-24 13: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짜 읽어도 읽어도 끝이 안나고 방대하다는 점에 공감입니다 ^^
레즈비언 부분에 대한 아쉬움, 시대적 한계에 대해서도요.

1권 읽으면서
‘왜 최초에 남성은 주체가 되고 여성은 타자가 되었나‘ 궁금했고
그에 대한 답을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신자유주의 이후의 현재 사회에서 그 답이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당장 읽어보고자 하는 마음은 접었어요.

나머지 마저 잘 읽고 저도 글 쓸게요 :)

공쟝쟝 2023-03-24 15:43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접었대요 ㅋㅋㅋㅋㅋㅋㅋ 메롱!! 좌파의 길 수하님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3-24 15:51   좋아요 1 | URL
읽을 책 너무 많아요 엉엉….
책먼지님 말대로 3일만 혼자, 책과 함께 있고 싶음..

공쟝쟝 2023-03-24 15:51   좋아요 2 | URL
나 … 그 3일을 잠자고 술마시는 데 다 썼어요….. 후.. ㅎ후련했는데… 다시 노동이 시작되고….

건수하 2023-03-24 15:52   좋아요 1 | URL
책은 못 읽었어도 잠자고 술마시고 충전했으니깐? 힘냅시다..!!!

공쟝쟝 2023-03-24 15:53   좋아요 2 | URL
책은 평일에 읽는 걸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3-24 16:00   좋아요 1 | URL
사장님…. (먼산)

공쟝쟝 2023-03-24 16:02   좋아요 2 | URL
노동에 매인 사장 수치스럽다… (햇살님 댓글놀이 죄송합니다 ㅋㅋ 노동외면중이라 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03-24 16:10   좋아요 2 | URL
수하님/이 책 정말 쪽수가 어찌나 안 줄던지요. 망망대해 였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망망대해도 건너갈 수 있다는 자신감^^

공쟝쟝님/요즘 바쁘신 듯 하던데 잠시 쉬는 시간이시군요 ㅎㅎ
댓글놀이 좋습니다요~ 언제든 환영

다락방 2023-03-24 14: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오 햇살과함께 님, 완독하신 겁니까! 고생 많으셨어요. 그리고 이 책은 확실히 읽어두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읽으면서 느껴지는 공감과 동의도 그렇지만 일단 읽어두면 내 안에 어떤 식으로든 새겨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여성학 책들 읽을 때에도 근육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읽느라 고생하셨고 또 다 읽으셨다니 축하드려요. 파티하세요!! ㅎㅎ

햇살과함께 2023-03-24 16:16   좋아요 2 | URL
읽는 건 지난주 토요일에 끝냈는데 이제야 몇 자 끄적끄적했네요~
파티는 지난주 토요일에 했습니다 ㅎㅎ
마음에 머리에 근육 계속 새기기 위해 다른 벽돌책도 부지런히 읽어야 겠어요~
읽을 체력을 위해 몸에도 근육을 좀 새기고요..
감사합니다^^

공쟝쟝 2023-03-24 15: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축하포카드립니댜 🎉🎉🎉🎉 힘들지만 즐거운 여정이셨기를!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ㅋㅋㅋ 개인적으로 비슷한 질문에 가장 아하 💡했던 책은 거다 러너의 <가부장제의 창조>였습니다! 그 책의 결론은 …..

건수하 2023-03-24 15:49   좋아요 2 | URL
역시 그 책에 답이…
궁금해서 안되겠다 결론부분을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공쟝쟝 2023-03-24 15:50   좋아요 3 | URL
추측하셨듯 신자유주의에는 필요 없습…

햇살과함께 2023-03-24 16:23   좋아요 4 | URL
오~ 역시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까요?
답은 없겠지만 답답함은 조금 풀어줄까요? 더 답답해질까요??
솔직히 <제2의 성>은 읽고 나서 그 부분에 더 의문이 생겼달까요....
그 책은 사두었으니 곧(?)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3-03-24 18: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햇살님 완독에 이어 훌륭한 리뷰까지 쓰시다니… 부럽드아아앙 😖😖😖
여성에 관해 모든 걸 망라한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2권 좀 질린다는 말씀에 공감 ㅋㅋㅋ
가부장제의 창조는 강추 드립니다(이미 읽었다고 으쓱으쓱~)

햇살과함께 2023-03-24 22:37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도 곧 제2의 성 읽은 여자에 합류 기다립니다^^
저도 곧 가부장제의 창조 어깨뽕을 넣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03-24 18: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멋지게 읽고, 멋지게 리뷰를 써버리신 햇살님!!^^

햇살과함께 2023-03-24 22:38   좋아요 1 | URL
저도 제2의 성 읽은 여자라고 으쓱거려요^^!! 감사해요
 

5장 통증을 둘러싼 불신: 몸의 기본값에 관하여

<시크> 트레시 맥밀런 코텀
<보이지 않는 여자들>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이 장은 논리적 연결성에 좀 갸우뚱?

더 나아가 이 연구자들은 의학서가 여성에 대해 "히스테릭하고 감정적"이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탓에 여성이 유독 더심인성 질환이나 감정적 변덕을 진단받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만성 통증을 겪는 여성 환자의 경우 동일 질환을 가 - P124

진 남성 환자에 비해 감정 "과잉과 관심을 끄는 행위를 특징으로 하는) "히스테리성 인격장애"로 진단받을 확률이 높았다. - P125

** 자폐증과 같은 신경질환이 있는 상태를 일컫는 용어로, 그러한 신경질환이 없는상태를 가리키는 ‘신경전형‘과 대비를 이룬다. 1990년대 초반 자폐권리운동가들은 (이른바 신경비전형에 해당하는) 자폐증을 비롯한 여러 신경질환을 비정상적 상태나 치료대상으로 여기는 기존 담론에서 벗어나 뇌신경의 차이/다양성의 관점에서 존중해야
한다는 신경다양성 담론을 펼치며 ‘자폐-비자폐‘ 대신 ‘신경비전형-신경전형‘의 개념을 제안했다. - P1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