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그리고 가정 -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 2023 노벨경제학상
클라우디아 골딘 지음, 김승진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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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여성이 대학진학률도 더 높고, 전문직 진출 비중도 과반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적게 버는가 하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1878년 출생한 여성부터 1978년 출생한 여성까지를 모집단으로 하여 5개 집단으로 나누어 시대별로 여성들이 커리어(또는 일자리)와 가정을 어떻게 유지하였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문제의 원인을 파악한다.


분석 대상은 전체 여성이 아니라 대졸여성이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의 일자리가 아닌 장기적인 노력과 직업적 성취에 기반한 커리어의 관점에서 분석하기 위함이다. 또한, ‘커리어와 비교하는 가정이란 단순히 결혼이나 남편유무가 아니라 아이가 있느냐를 기준으로 한다.


시대별로 대졸여성들이 커리어(또는 일자리)’를 우선시했는지, ‘가정을 우선시했는지, ‘커리어가정을 조화롭게 유지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집단별로 연령대별 결혼율, 출산율, 고용율 등을 분석했고, 시대별 상황, 산업 및 기술의 발전, 여성의 의식변화, 제도적 변화 등의 원인을 파악하였다.


흥미로운 지점은 첫번째, 여성들의 커리어 쟁취에 정부의 제도적 변화로 인한 효과는 미미하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가장 늦게 변화하는 부분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따라서, 남녀고용평등법이나 동일임금법 등 법에 의해 여성의 권리를 쟁취할 수 없다. 여성의 권리 쟁취가 필요불가결할 때에야 비로소 법이 제정되거나 법이 실제 효력을 발휘한다.


두번째,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노동 수요 증가나 테크놀러지 발달로 인한 가정 일에서의 시간 절약, 피임약의 합법화로 인한 계획적인 결혼과 임신 조절 등 외부적인 상황이나 조건이 여성의 권리 쟁취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특히, 피임약은 조용한 혁명의 대표주자로 시끄러운 혁명만큼이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세번째, 집단 5를 넘어서 거의 구조적인 평등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현재의 시점에도, 여성들이 대학 진학이나 대학원, 박사과정 등에 남성보다 더 많은 비율로 진학하고 전문직 진출에 있어서도 차이가 없거나 과반의 비중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과 남성의 임금이(동일 직군에서도) 차이가 나는 원인을 밝히고 있다. 단순히 직종 분리에 의해서도, 직업현장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차별이나 선입관의 효과를 제거하더라도 설명되지 않는 높은 비율의 차이를 저자는 탐욕스러운 일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장 쉬운 예시로 변호사를 들고 있다.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는 클라이언트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제약없이, 주중이든 주말이든 클라이언트를 요구에 응해야 한다. 이렇게 24시간 일에 준비된 온콜상태로 일할 수 있어야 10년 내지 15년 정도되어 로펌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만약 부부가 모두 변호사라면 입사 초기에는 임금의 차이가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결혼 이후 일정기간 지나서 아이를 갖기로 하면 이때부터 여성과 남성의 임금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여성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양육을 하면서, 직장에서의 온콜상태가 아니라 가정에서의 온콜상태가 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온콜을 여성이 맡고 있다. 따라서, 이런 직장에서의 온콜상태로 일하지 못하므로 파트타임 근무를 하거나, 좀더 작은 로펌으로 옮기거나 규칙적인 시간 동안 일할 수 있는 일반기업의 사내 변호사 등으로 이직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풀타임 근무를 하더라도 한번 벌어진 남성과의 임금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저자는 이런 직업을 탐욕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변호사, 회계사, 금융, 컨설팅 등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다른 직군에서는 상대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가 크지 않으나, 이러한 탐욕스러운 근무환경을 가진 직군의 임금은 점점 높아지고, 그에 따라 다른 직종의 남성과도 임금 격차가 커지고, 더불어 동일 직군에서의 남성과 여성간 임금 격차도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탐욕스러운 노동을 유발하는 구조를 변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유연성, 온콜을 선택하는 것이 유발하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들이 회사가 탐욕스러운 노동 구조를 바꾸도록 함께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약사의 사례와 변호사의 사례를 비교를 통해, 노동 구조를 변경하는 부분을 대안으로 언급하지만 그게 대안일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약사가 개인사업자였을 때는 응급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온콜 상황으로 업무 강도가 높았지만, 지금은 프렌차이즈화, 거대기업화가 되면서 순환으로 24시간 근무를 하면서 온콜 대응이 없어졌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결국 그 거대기업화의 이득을 가져가는 것은 누구인가. 대부분 부유한 남성 자본가가 아닌가 하는 삐딱한 생각이 든다.


대안은 다소 수긍이 어렵지만, 100년간의 방대한 자료 분석을 통한 여성의 가정과 커리어의 변천에 대한 다양한 분석은 탁월하고 흥미롭다.


한국은 지금 어디 있는가. 남녀간 임금 격차가 가장 심하고, 직종간 소득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 그래서 모든 부모가 의대에 올인하는 나라. 그래서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는, 현명한 대안을 선택하고 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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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4-17 0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온콜의 의미가 그런 것이었군요. 그쵸.. 아이가 생긴 후로 여성은 항상 가정에 온콜 상태로 ㅠㅠ

진짜, 결혼이 문제가 아니고 출산이 관건입니다..

햇살과함께 2023-04-17 17:42   좋아요 1 | URL
‘온콜‘ 용어를 보자마자 너무 적확한 표현! 했네요. 엄마들의 뇌 한쪽엔 항상 ‘온콜‘ 불빛이 깜박거리면 대기 중이죠...

손영수 2023-06-24 0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정말로 잘 읽으신 것 같습니다. 댓글을 읽으면서 책의 흐름이 다시 한번 정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대안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조금 동의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유연성 제고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바는 노동자가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달성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고 그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별간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햇살님이 말하시는 기업에 이익이 다 가지않을까라는 우려는 전체 인구 중에서 남성 자본가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얼마 안되지 않을까란 점에서 평균적인 성별 임금격차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책에서 저자가 한 말 중에 유연성이 높은 일자리가 생산성이 더 높아지게 해야한다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럴 수 있다면 노동자가 워라밸도 찾을 수 있고 가정에서 성평등도 달성하고 더 높은 임금(시간당)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게 저의 의견입니다!

햇살과함께 2023-06-24 22:23   좋아요 1 | URL
손영수님, 저의 부족한 글 읽고 긴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의 삐딱함에 걸리셨군요?! ㅎㅎ

손영수 2023-07-09 14:10   좋아요 1 | URL
다른 분들은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찾아보다가 좋은 감상문을 찾아서 반가웠네요 ㅎㅎ 책 리뷰를 너무 잘 적으셔서 저도 제 의견을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ㅎㅎ 이렇게 잘 기록하면서 책을 읽으시는 분도 있다는 걸 알고는 제 독서 방식에 대해서 돌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더 자극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잘 읽었습니다!

햇살과함께 2023-07-10 10:00   좋아요 0 | URL
아 과찬이시네요!
저도 책 읽고 글로 남기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여기 계신 오랫동안 꾸준히 잘 쓰시는 분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어요^^
아직 제 생각을 정리해서 긴 글 쓰기는 어렵네요. 저도 연습 중입니다^^
 

3장 불행한 퀴어

빈 패커 <스프링 파이어>
래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
낸시 가든 <내 마음의 애니>
사라 슐만 <감정이입>
리타 메이 브라운 <루비프루트 정글>
아바 도워사 <베이비지>
영화 [길 잃은 천사들]
영화 [이 벽들이 말할 수 있다면 2]

그렇게 해서, 좀 역설적이게도, 불행한 결말은 정치적 선물이 된다. 즉, 불행한 결말 덕분에 퀴어 소설이 출판될 수 있었다. 불행한 결말은검열의 결과이긴 하지만, 검열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 P163

불행한 퀴어 아카이브(이것이 유일한 퀴어 아카이브는 아니다)를 읽을 때 우리는 이런 직역주의에 저항해야 한다. 행복한 것과 좋은 것의필연적인 일치를, 나아가 좋은 것 자체의 도덕적 투명성을 적극적으로 의심해야 하는 것이다. 불행한 결말을 퀴어의 삶에 대한 도덕적 승인을 보류하는 기호로 읽기보다, 불행이 이 아카이브 내부와 주변에서 어떻게 순환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게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 P164

이탈이란 늘 한세계를 걸고 감행하는 일이다(당신이 건 그 세계를 늘 잃게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퀴어와 페미니스트들의 역사는 이탈의 결과를 기꺼이 걸고 감행한 사람들의 역사다. - P167

어떤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항상 역설적이다. 만약 당신이떤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면, 그 말은 보통 그것이 중요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인정함으로써 중요한차이가 중요하지 않은 차이가 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인정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 P172

우리는 또한 우리의 희망을 단순히 행복한 퀴어 같은 대안적 형상에 걸기보다는, 불행한 퀴어들을 포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불행한 퀴어는 퀴어들을 불행하다고 보는 세상과 불화한다. 행복한 퀴어를 진작할 때 우리는 이 세계의 불행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우린 이런 세상과 계속 불화해야 한다. - P191

이 절에서는 행복하게 퀴어 되기(행복한 퀴어가 되는 것이 아니라)가 꼭 전통적 범주에서 빌려 온행복 이미지를 촉진하는 것은 아님을 생각해 보기 위해 "나쁜 대상 선택‘에 의한 퀴어 행복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엘리자베스 프리먼이 말하듯 우리의 아카이브는 "제도적 형태에 들어가지 않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쾌락 형태들"을 보여 준다(Freeman 2005: 66). 행복하게 퀴어 되기는행복하게 불행의 원인이 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불행을 야기함으로써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해도 적어도 불행의 원인이 되는 데는 동의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행복 대본에 있는 이성애의 선을 넘어간다 해도 그곳에서 행복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 P211

그녀는 그런 소망을가질 수 없거나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자신이 여전히 무언가를 소망할 수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퀴어로서 인내하는 것, 나아가 행복하게 인내하는 것이다. - P216

우리는 견딜 만한 삶을 위한 퀴어 투쟁과 좋은 삶을 향한 열망 가득한 희망 사이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핵심은열망 없이는 투쟁하기 어렵고, 열망은 그것에 어떤 형태가 주어지지 않고 - P219

는 견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열망aspiration의 라틴어 어원이 "숨을 쉬다"breathe임을 기억해 보자. 견딜 만한 삶을 위한 투쟁은 퀴어들이 숨 쉴공간을 가지기 위한 투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리 루티의 말대로(Ruti2006: 19), 숨 쉴 공간을 갖는 것,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것, 그것이 열망이다. 숨쉬기와 더불어 상상력이 온다. 숨쉬기와 더불어 가능성이 온다. 만약 퀴어 정치학이 자유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그저 숨 쉴 자유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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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분위기 깨는 페미니스트

요즘 자주 보는 베티 프리단 <여성성의 신화>
벨 훅스 <페미니즘>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또 만난 조지 엘리엇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이 챕터 제목에 연관된 아마 아타 아이두 <분위기 깨는 우리 자매>
읽고 싶은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반가운 토니 모리슨 <가장 푸른 눈>
처음 들어본 안드레아 레비 <레몬 열매>
제목만 들어본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
또 보고 싶은 영화 [디 아워스]

와, 읽고 싶은 레퍼런스가 많다.

베티 프리단은 [여성성의 신화]에서 행복한 미국 가정주부의 이미지 뒤에 숨어 있던 것을 환기함으로써 이름 없는 문제를 찾아낸다(Friedan 1965:19-20). 이 이미지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종기처럼 터져 버리면서 그 환한 미소의 이면에 감춰져 있던 감염 부위가 드러난 것이다. 프리단은 이런행복이라는 공적 판타지가 지닌 한계를 폭로하며 논의를 진행한다. 행복한 주부는 행복이라는 기호 아래 노동의 흔적을 지워 버리는 판타지 형상이다. 여성들은 행복하며 이 행복은 그들이 하는 일의 이면에 존재한다는 주장은 젠더화된 노동 형태를 자연이나 법, 의무의 산물이 아니라 집단적 소망과 욕망의 표현으로 정당화한다. - P95

벨 훅스는 ‘페미니즘』에서 행복한 가정주부는 판타지로 간주될 때조차 다음과 같은 배타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프리단이 여성성의 신화』를 썼을 때, 전체 여성들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노동자였다. 많은 여성들이 전업 주부가 되고 싶어 했으나, 여가 시간과돈이 있는 여성들만 여성성의 신화 모델에 맞는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다"(hooks 2000: 2[23]). 가정주부들의 불행에 대한 프리단의 해결책 - 그들이 집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ㅡ은 여성성의 신화에 걸맞은 정체성을형성할 수 없었던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훅스가 지적하듯이 "프리단은 자신과 같은 여성들이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어 백인 남성과 똑같이 전문직에 접근할 기회가 열린다면, 누가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돌보게될 것인지는 논하지 않았다"(1-2[22]). 행복한 가정주부의 판타지가 행복이라는 기호 아래 가사 노동의 흔적을 감춘 것처럼, 가정에서 해방돼 행복해질 가정주부의 판타지도 "거품 가득한 설거지통"을 떠맡아야 할 다른 여성의 노동을 감출 수 있는 것이었다. - P96

이 정서적 힘은 행복한 가정주부 이미지 뒤에 말하지 못한 집단적 불행이 있었다는 페미니즘의 주장을 억누를 뿐만 아니라 거기 대항하는 주장, 즉 행복은 가정주부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아니라 그녀가 하는 일 그 자체라는- 가정주부의 의무는 이런 이미지를 수용함으로써 행복을 만들어 데 있다는 주장을 수반한다. - P99

이 장에서 나는 페미니즘과 불행 사이의 관계를 다르게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행복이 어떻게 젠더화된 노동 분업을 유지하는 주장으로 이용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해 볼 텐데, 그 출발점은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교육에 관한 저작이 될 것이다. - P100

행복은 어떤 형태의 정향을 수반한다. 즉, 행복을 희망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특정한 길로 인도한다. - P101

교육은 장차 무언가가 될 주체가 올바른 쪽을 바라봄으로써 올바른 인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 교육은 단순히 돌려세우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쪽으로 돌려세워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마음을 돌리는 것은 잠재적 주체가 부적절하게 정렬돼 있다는 가정하에서만 교육적 명령이 된다. - P102

행복의 조건성 - 한 사람의 행복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행복에 조건부로 달려 있는가에 대한 진술들은 행복이 지시적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 P105

이 현상이 내게 처음으로권력의 교묘한 책략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지배적인 법은 사람을 문제에 빠뜨리겠다고 위협하고, 심지어는 문제에 빠뜨렸는데, 이 모든 게 그 사람을 문제에서 떨어뜨려 놓기 위한 것이었다"(Butler1990: vi[73]). 행복은 문제에 휘말리는 불행을 환기함으로써 당신을 문제에서 떨어뜨려 놓는 것일 수 있다. - P112

상상력과 문제를 일으키는 것 사이의 연관 관계는강력하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에게 행복 의무가 어떤 식으로 지평을 축소시키는지, 익숙한 것 너머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게 하는지알 수 있다. - P114

상상력은 소녀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받아들였던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이 꼭 그들에게도 좋은 것인지 의문을 품게 하는 것이다. - P115

매기는 행복의 불의에 대해, 그것이 누구에게는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주어지지 않는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행복을 위해 자기 삶을 포기하기를 포기한다. - P117

우리는 행복을 아주 단순히 관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행복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관습에 도전하는 것이다. - P120

행복이 억압받는 이들에게 기대되는 "기본 자세" 같은 것이 되어 버린 결과, 중립성의 영역을 규정하게 된 것이다. 당신에겐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 P123

폭력을 폭로함으로써 폭력의 근원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 P125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여성 해방 운동을 위해 "꿈꾸는 행동"이 "미소 거부"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미소 거부를 선언하면 모든 여성들은 즉각 ‘남을 즐겁게 하는‘ 미소를 버릴 것이고, 그 후로는 자신들이 즐거울 때만 웃으려 할 것이다" (Firestone 1970: 90[132]). 행복의 약속을 거부한다는 것은 행복의 기호를 보이라는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다. 파이어스톤의 경우 이는 정향의 전환, 즉 자신의 신체 습관의 변화를 의미한다. - P127

이는 페미니즘이 여성을 행복하게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는 단지페미니즘이 행복의 전시에 동조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무언가의 발견을가능케 하는 지평을 넓히는 데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신체적 지평들의 확장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페미니즘은 보장해 주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장소들을 열어 줄 뿐이다. - P128

페미니즘을 계승한다는 것은 슬픔을 계승한다는 뜻일 수 있다. 젠더를 가능성의 제약으로 의식하게 되는 것도 슬픈 일이지만, 이런 제약이얼마나 불필요한 것인지 의식하게 되는 것 역시 슬픈 일이다. - P138

"우리의 행복에 대한 생각"을 전제로 한 삶이 로라에게는 견딜 수 없는 삶이었던 것이다. 그런 행복은 죽음과 같았다. 그녀는 행복을 위해 그 삶을 떠난 것이 아니다. 삶을 위해 이 행복을 떠난것이다. - P141

샬롯 퍼킨스 길먼이 주장하듯이, "편안함과 행복은 장기간에 걸친 적응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Gilman 1903/2002: 8, 강조는 추가). 이런 적응 뒤에는 다른 가능한 삶의 방식의 상실이 있으며, 잘 적응된상태를 유지하려면 이런 상실은 애도하지 않은 채로 둬야 한다. 그런 상실을 인식하는 것조차 애도다. 그래서 인식을 피하는 것이 더 쉬운 것이다. 페미니스트 주체들은 잘 적응하기를 거부하면서 그런 상실들을 애도할 뿐 아니라, 그런 애도 속에서 삶의 다른 가능성들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그런 열림들은 세대를 넘어 계승된다. - P145

안드레아 레비의 『레몬 열매』(Levy 1999)는 인종차별을 의식하게 되면 얼마나 다른 세계에 놓이게 되는지를 문학적으로 가장 잘 그려 낸 작품중 하나다. - P155

이는 그녀가 행복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간과되기에 대한 저항으로서 흑인이 되는 이야기다. 여기서 흑인이 된다는 것은 가족 관계를 회복하고 가족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뜻이다. 백인 페미니스트 의식 소설들은 가족-으로부터의-자유, 가족의 의무와 관련된 편협한 대본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흑인 페미니스트 의식 소설들은 가족-으로의-자유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왜냐하면 추방과 박탈의 역사를 거치며상실된 것이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스트 의식은 공손한 말들과 사랑의 언어들 아래 감 - P158

춰져 있는 폭력과 권력에 대한 의식이다. 단지 가능성을 제한하는 장소로서의 젠더에 대한 의식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로부터 아주 많은 것을, 너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행복의 기호들이 감추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당신이 뭔가를 알아차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불행이 야기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뭔가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불행이 야기된다면, 당신은 당신이 몸담은 세계가 당신이 생각했던 그세계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페미니즘이 세계로부터의 소외가 되면, 결국 이는 자기소외의 순간들을 수반한다. 우리의 페미니스트 아카이브는 불행의 아카이브다. 비록 불행의 가닥들로만 우리 이야기를 전부 짤수는 없지만 말이다. - P159

행복은 부분적으로는 불행의 원인을 덮어 버림으로써 불행을덮어 버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덮기를 거부하면 불행이 출현하게 된다. 이런 의식화 과정은 단순히 불행을 의식하게 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불행을 이해하는 더 나은 방법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성취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불행이 구조화돼 있음을,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 탓이라고 여겨져 온 불행의 원인이 우리가 아닐 뿐만아니라그렇게 불행의 원인으로 여겨져 온 결과물도 우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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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행복의 대상

정서, 지향성, 평가나 판단
정향, 시간성

앨리 러셀 혹실드 <감정 노동>

1장 너무 어렵다;;; 철학자도 많고.
2장부터 사례 나와서 좀 쉬워지려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 설사 행복이 어떤 감정 상태 혹은 오랜 시간에걸쳐 달성한 삶의 상황을 평가하는 의식의 한 형태로 상상된다 하더라도(Veenhoven 1984: 22-23) 행복은 항상 우리가 대상들을 향하게 한다. "~하게 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대상들을 향한다. 이것 혹은 저것이[주체를] "행복하게 한다"는 말은 행복이 (상황 묘사를 위해 그 말을 사용한) 주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시작됨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 P47

이 장에서 나는 대상이 어떻게 행복이 되는지(마치 어떤 대상에 근접하면 행복이 따라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려 한다. 행복은 정서(행복하다는 것은 무언가에 의해 정서적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향성(행복하다는것은 무언가를 향해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가나 판단(행복을 느끼게하는 그 무언가는 좋은 것이 된다)을 포함한다. 행복이 그 대상들을 창조하고나면, 그것은 주변에 전달되면서 사회적 재화로서 긍정적인 정서적 가치를 축적한다. 특히 이 장에서는 좋은 느낌들이 지시하고 있는 것일 뿐만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경험의 지평을 제공해 주는 행복 대상으로서의가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 P47

17세기 경험주의 철학자 존 로크의 작업을 살펴보자. 그는 좋은 것선]이란 "우리 안에 쾌락을 가져오거나 증가시키는 성향이 있는 것 혹은 고통을 감소시키는 성향이 있는"(Locke 1690/1997: 216[1권 3391) 것이라고 주장한다.

행복이 지닌 약속의 속성은, 적어도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한다면 행복은 우리 앞에 놓여 있을 거라고 암시한다. 약속을 한다는 건 결국 미래를 대상으로, 다시 말해 그것이 도착하기 전에 선언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약속이란 미래를 규제하는 인간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인간적으로 가능한 한에서 미래를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등다" (Arendt 1972:92[137]). 약속을 어떤 상황으로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상황에서 우리가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내 이것만은약속하지" I promise to 같은 식으로 약속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때 약속은 약속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하겠다는 혹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선언일 수 있다. 약속은 보장, 즉 어떤 기대가 충족될 것이라는 확신과 신뢰를 심어 주고자 하는 긍정적 선언이다. - P60

욕망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약속해 주는 것,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인 동시에 결여돼 있는 것, 그것이 분명히 실현되는 듯한 바로 그 순간조차 결여돼 있는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보다 더 공포스러운 일은 없다. 바로 그 순간이 당신이 원하는 것을 직시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젝이 보기에 이런 공포는 당신이 원하는 게 "진짜" 원하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행복은 "본질적으로 위선적"이며 자기기만의 형태라고 주장한다. - P63

행복은 연기됨으로써만 사회적 약속으로 유지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약속된 행복이 결국에는 우리에게 혹은 우리 후손에게 오리라 상상한다. 행복은 기다림을 견딜 만한 것, 욕망할 만한 것으로 만든다 - 오래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더 많은 보상이 약속되고, 보상에 대한 기대도 커진다. - P65

행복은 우리를 좋은 것으로 향하게 하면서도, 그 좋은 것이 당신에게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인상을 만들어 낸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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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왜 하필 지금 행복을 이야기하는가

행복은 무엇을 하는가?
분위기 깨는 자

행복은 마치 그자체가 소망하는 것을 불러내기라도 하는 것 같다. 혹은 행복은 성취되지 않음으로써 소망으로서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 P13

행복: 소망wish, 의지will, 바람want. 이 책에서 나는 행복이 이런 말들과 함께 사유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이끌어 가는 질문은 "행복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행복은 무엇을 하는가?"이다. - P14

시몬 드 보부아르는 행복이 어떻게 그것이 소망하는 바를 정치, 곧 소망의 정치로 바꿔버리는지를 잘 보여 준다. 소망의 정치는 다른 사람들도 소망에 따라 살도록 요구한다. 그녀는 이렇게 주장했다. "행복이라는 말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다지 선명하지 않으며, 그것이 어떤 진가를 감추고 있는지는 더더구나 분명치 않다. 타인의 행복을 헤아릴 가능성은 전혀 없는데도, 사람들이 으레 처하기를 소망하는 상황을 두고 행복이라 말하기는항상 쉬운 법이다" (Beauvoir 1949/1997: 28 [상권 30], 두 번째 강조는 추가). 나는이런 행복에 대한 비판에 기대어 행복 소망에 대해 질문해 보려 한다. 우리는 지금 그런 비판에 기대어 지금의 이런 세속적 가치에 대한 집착에대응할 필요가 있다. 왜 행복이 문제인가? 왜 지금 문제인가? 우리는 분명 지금 "행복으로의 전회" 상황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부분적으로 이 책은 이런 전회에 대한 대응으로 쓴 것이다. - P15

그렇다면 행복이 "저기 어딘가에 있다고 전제하는 행복학에서는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는 걸까? 리처드 레이어드는 또 한 번 우리에게 유용한 참조점을 제공해 준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행복이란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고, 고통이란 기분이 나쁘다는 느낌이다"(6[31]). 행복은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다. 이는 사람들이 얼마큼 기분이 좋은지 측정할 수있기 때문에 행복을 측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저기 어딘가는사실상 "바로 여기다. 행복을 측정할 수 있다는 믿음은 느낌을 측정할수 있다는 믿음이다. 레이어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쉽게 말할 수 있다" (13[39])라고 주장한다. 행복 리서치는 주로자기 - 보고에 기반한다.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면 행복한 것이라고가정하면서, 사람들 스스로가 얼마나 행복하다고 말하는지를 측정하는것이다. 이 모델은 자기-감정의 투명성(자신의 느낌을 말할 수 있고 알 수 있다)을 전제하는 동시에, 자기 - 보고 또한 순수하고 단순하게 이루어진다고 전제한다. 만일 당신이 행복을 원한다는 사실이 전제된 상황이라면, 얼마나 행복한지 묻는 것은 중립적인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자기삶의 현 상황을 평가하라는 뜻이 아니라, 가치 판단이 실린 범주들을 가지고 평가하라는 뜻이 된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이 자기 삶 자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측정하는 것이라기보다, 행복에 가까워지려는 상대적 욕망을, 심지어는 자기 삶을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보고하려는 상대적 욕망을 측정하는 것일 수 있다. - P19

문화 연구와 정신분석은 자기감정을 잘 알고 있는 주체, 스스로에게 완전히 투명한 주체에 기초하지 않는, 대안적 감정 이론을 제공함으로써 이 논쟁에서 중요한역할을 할 수 있다(Terada 2001 참조). 문화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은좋은 삶이라는 관념에 대한 평범한 애착이 어떻게 양가성의 장소가 될 수있는지 탐색하면서, 좋은 느낌과 나쁜 느낌의 구분보다는 그것들의 혼동을 살핀다. 행복을 해석한다는 것은 이런 양가성의 문법을 해석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 P20

심지어 행복이 사라졌다고 말할 때조차 사람들은 행복이 발견되리라 기대하는 곳에서 행복을 찾아낸다. 놀라운 것은 행복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사회적 이상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정치적 삶에대한 그 이상들의 지배력을 재활성화한다는 점이다. 행복에 대한 요구는 점점 더 그런 사회적 이상으로 되돌아가자는 요구로 표현된다. 마치 행복의 위기가 이 이상들의 실패를 말해 주기보다 그 이상들을 따르지 못하는우리의 실패를 말해 주는 듯 말이다. 그리고 거의 틀림없이 위기의 시기에 행복의 언어는 훨씬 더 강력한 지배력을 획득한다. - P22

모든 작가는 우선 독자이며, 우리가 무엇을 읽는가는 중요하다. 나는 주로 페미니즘, 퀴어, 반인종주의 책들을 읽는 독자다. 이런 책들이 이 책의 지적·정치적 지평을 형성한다. 이 책들은 내게 행복이 사회적 형식을어떻게 창조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내 철학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아카이브에 책과 영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행복이라는 말을 따라간다면 당신은 어디든 닿을 수 있다! 따라서 내 아카이브는 내 세계, 내 생활 세계이자 내 현재일 뿐만 아니라 과거이며, 거기서 행복이라는 말은 아주 강력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 P42

행복이 문제임을 보여 주면서 행복과 관련한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할 위험이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것이다. 만약 이 책이 분위기를 깬다면 그것은 이 책이 하고자 했던 바를 실현한 것이 될 것이다. 이 책의 다음 쪽부터 내가 인용하게 될 수많은 텍스트들이 알려 주듯이, 분위기를 깬다는 것은 삶을 열어젖히는 것이고, 삶을위한 공간, 가능성과 기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을 쓰는 목적은이런 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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