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10가지 명제

제1장 기원들
근친상간 금기와 여성의 교환
모권제 사회는 없다

제2장 작업가설
초기 성별노동분업의 이점
여성교환을 통한 여성의 사물화
여성교환, 재생산 통제가 사유재산의 획득보다 먼저 일어난다

한마디로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의 계급으로 인한 차별과 배제로 고통받았지만, 남성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성(性) 때문에 역사적 기록에서 제외된 경우가 없었으나 여성은 모두 제외되었다. - P18

여성의 실질적인 역사적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해석으로부터의 배제 사이의 긴장을 나는 ‘여성역사의 변증법‘(the dialectic of women‘shistory)이라 불렀다. 이 변증법은 역사적 과정에서 여성을 앞으로 전진시켰다. - P18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했다. 역사적 과정, 역사 만들기 그리고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해석과 맺은 여성의 독특하고도 분리된 관계를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정의(definition)와 개념은 무엇인가?
나의 연구가 제기해 주기를 희망하는 또 다른 질문은 사회에서의 종속적 위치에 대한 여성의 각성이 오랫동안(3500년 이상) 지연된 것에 관한 것이다. 무엇이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이 그들을 종속시킨가부장적 체계를 유지하고, 그들을 종속시킨 체계를 후세에 전하고, 그리고 그 체계를 양성의 자손들에게 세대를 이어 전하는 데 가담한 여성의 역사적 공모를 설명할 수 있을까? - P19

‘가부장제의 성립‘ 기간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대략 기원전 3100년부터 기원전 600년까지 약 2500년에 걸쳐 전개된 과정이다. 그것은 심지어 고대 근동지방 내에서조차 몇몇 특징적 사회에서 다른 시기에 다른 속도로 일어났다. - P22

이 책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명제를 발전시킬 것이다.
첫째, 여성의 성적 능력과 재생산능력에 대한 남성의 전유(專有)는 사유재산과 계급사회의 형성 이전에 일어났다. 사실 그것의 상업화는 사유재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1장과 2장).
둘째, 고대국가는 가부장제의 형태로 조직되었고, 따라서 그 태동기부터 국가는 가부장적 가족의 유지에 본질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3장).
셋째, 남성은 이전에 자기 집단의 여성을 지배해 봄으로써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배와 위계를 제도화하는 것을 배웠다. 이것은 정복당한 집단의 여성을 노예로 만들면서 시작된 노예제의 제도화에서 표출되었다(4장).
넷째, 여성의 성적 종속은 가장 오래된 법률조문 속에 제도화되었고, 국가는 권력을 다해 이를 시행하였다. 체계 속에서 여성의 협력은 무력, 남성가장에 대한 경제적 의존,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상위계급 여성에게부여된 계급적 특전들, 존중받을 만한(respectable) 여성과 존중받지 못할(non-respectable) 여성으로 나눈 인위적 구분과 같은 여러 가지 수단 - P23

에 의해 확보되었다(5장).
다섯째, 남성에게 계급은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에 근거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계급은 물질적 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해주는 남성에 대한 그들의 성적인 유대를 통해 매개된다. ‘존중받을 만한 여성(한 남성에게 귀속된 ‘존중받지 못할 여성(한 남성에게 귀속되지 않거나 혹은 모든 남성에게 제공되는)의 구분은 여성에게 베일을씌우는 법에 제도화되어 있다(6장).
여섯째, 여성이 남성에게 성적 ·경제적으로 종속된 지 한참 뒤에도, 여성은 여전히 사제 선지자• 점술가 · 치료사로서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데 적극적이고, 존경받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여성의 형이상학적 힘,
특히 생명을 부여하는 힘은 여성이 지상에서의 삶의 대부분에서 남성에게 종속된 훨씬 뒤에도 강력한 여신의 형태로 남성과 여성 모두로부터 숭배되었다(7장).
일곱째, 강하고 전제적인 왕권의 수립에 이어 일어난 강력한 여신의 폐위와 지배적인 남신으로의 대체는 근동지방 대부분의 사회에서 일어났다. 이전에는 전적으로 여신이 가지고 있었던 출산력 통제기능이 점차 남신 혹은 신왕(God-King)과 여신(Goddess) 혹은 여사제와의 상징적 혹은 실제적인 짝짓기로 상징화된다. 결국에는 섹슈얼리티(에로티시즘)와생식력은 각 기능에 대한 별도의 여신이 출현함으로써 분리되고, 어머니여신(Mother-Goddess)은 주요 남신의 부인/배우자로 변형된다(7장).
여덟째, 히브리 유일신 사상의 출현은 여러 다산 여신(fertility goddesses)에 대해 널리 퍼져 있던 의례에 대한 공격의 형태를 취한다. 성경의 창세기를 저술하는 과정에서 창조와 생식은, ‘주님‘(Lord)과 ‘왕‘(King)이라는 비문이 그를 남신으로 확립시키는, 전능한 하느님에게 - P24

속하는 것이고 생식 이외의 목적을 가진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죄나 악과연결된다(8장).
아홉째, 언약의 공동체를 세우는 데 있어서 신과 인간에 대한 기초적상징과 실제 계약은 여성의 종속적 위치와 형이상학적 언약 그리고 지상에 세운 언약의 공동체에서의 여성배제를 기정사실로 간주한다. 하느님과 성스러운 공동체에 대한 여성들의 유일한 접근통로는 어머니로서의기능 속에 있다(9장).
열번째, 신성(神性)과의 관계에서 여성에 대한 상징적 평가절하는 서구문명의 초석이 되는 은유 중 하나가 되었다. 다른 은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나왔는데, 거기에서는 여성이 미완성이며 훼손된 인간으로서 남성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10장). 서구문명 상징체계의 토대 속에 구축된 이 두 가지 은유적 구성물의 창조가 여성의 종속을 ‘자연스럽게‘ 보이게 만들고, 그래서 또 눈에 보이지 않게만든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결국 가부장제를 사실로 그리고 이데올로기로 확고하게 세운 바로 그것이다. - P25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양성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증명하는 제한된 수의 증거들이 문화적 해석에 의해 광범위하게 과장되었으며, 성차에 부여된가치는 그 자체가 문화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성적 속성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이지만, 성별은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여성이 임신한다는 사실은 여성의 성(sex) 때문이며, 여성이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성별(gender) 즉 문화적 구성물 때문이다. - P41

양성의 본성에 대한 엥겔스의 기본 가설은 생물학의 진화론들을 수용하고 있지만, 그의 큰 이점은 성적 관계를 구조화하고 정의하는 데 사회적 · 문화적 영향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이다. - P45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도 또한 여성의 종속이 문화의 형성에 결정적이었다는 이론적 주장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엥겔스와 달리 그는 남성이 건설한 문화의 한 요소에 대해13서 이론을 구축하였다. 그는 근친상간 금기(incest taboo) 속에서 모든사회적 조직의 근저에 놓여 있는 인류의 보편적 기제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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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상간의 금기는 어머니 · 자매. 딸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는의무규칙과 다르지 않은, 어머니 · 자매 그리고 딸과의 결혼을 금지하는 규칙이다. 그것은 선물에 관한 최상위의 규칙이었다.

‘여성의 교환‘은 그 속에서 여성이 상품화되고 ‘사물화된‘(reified), 즉여성이 인간존재라기보다는 물건으로 생각되었던 교역의 최초 형태이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여성의 교환은 여성종속의 시작을 나타낸다. 그것은 다시 남성지배를 만들어내는 성별노동분업을 강화한다. - P46

독자는 내가 모권제를 가부장제의 거울이미지로 정의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 정의를 사용하여 나는 모권제가 존재한 적이 없다고 결론짓고자 했다. - P56

그래서 남성이 큰 동물 사냥을 하고 아이들과 여성들은 작은 동물 사냥과 식량채집을 했던 최초의 성별노동분업은 생물학적성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물학적 성차는 여성과 남성의신체적 강건함과 지구력의 차이가 아니라 전적으로 재생산능력의 차이,특히 여성이 아기를 젖먹여 키우는 능력에 의한 차이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생물학적 설명‘과 관련해서는 인류발달의 가장 초기단계에 한해서 수용할 뿐이며, 여성의 모성역할에 근거한 후기의 성별노동분업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반대로 나는 남성지배가 역사적 현상이며, 이것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주어진 환경에서 발생하여 시간이 가면서 문화적으로 생성 강화된 구조가 되었음을 보여줄 것이다. - P77

분명한 것은, 여성과 출산 · 양육을 연계시키는 것은 문화적으로 결정된 것이며, 사회적으로 조종된다는 점이다. 나의 요점은 어머니 역할 및 자녀양육 활동과 병행할 수 있는 일거리를 여성들이 선택했던 가장 초기의성별노동분업은 편리하였으며(functional), 그래서 남성들과 여성들이 다같이 받아들일 만했다는 것이다. - P78

세계 여러 지역의 부족사회들에서 발견되는 현상인 ‘여성교환(exchange of women)은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 의해 여성종속의 선도적 원인으로 규정되었다. 그것은 여성들이 속한 부족에서 그들을 강압적으로 제거하거나(신부 훔치기), 의례에 의한 능욕 혹은 강간, 정략결혼 등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아동기의 아주 초기부터 여성들에게 그에 대한 교의를 항상 먼저 주입시킴으로써 족내혼(endogamy)에 대한 금기와 강제된 결혼에 동의하는 것이 친족에 대한그들의 의무임을 여성들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결혼을 구성하는 교환의 총체적 관계는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에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로 구성된 두 집단들 사이에서 성립된다. 그리고여성은 동반자 중 한 명이 아니라, 교환의 대상물건 중 하나일 뿐이다. …대체로 그렇듯이, 이것은 소녀의 감정이 고려되었을 때조차도 마찬가지이다. 계획된 결합에 순종하면서 소녀는 그 교환이 일어나도록 허용하거나 촉진시키지만, 그녀는 그 교환의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과정에서 여성이 ‘사물화‘된다고 한다. 여성은 탈인간화되며 인간이라기보다 물건으로 생각된다. - P84

이것이 사실상 노예제가 역사적으로 발달한 방식이다. 다시 한번 여성의 생물학적 기능은 여성을 이 새롭고 문화적으로 창조된 볼모역할에쉽게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 P86

고고학적 증거에 기초하여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몇 개의 사실들이있다. 농업혁명기 중 어느 시점에, 생물학적 필요에 근거한 성별노동분업 형태를 가졌던 비교적 평등한 사회들이 근친상간 금기와 족외혼에 근거한 여성교환 관행과 사유재산제가 공통적인 특징인 더욱 고도로 구조화된 사회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살아남은 후자의 사회들은 부계혈통과부처거주제가 지배적이었던 반면, 이보다 이른 시기의 사회들은 종종 모계혈통과 모처거주적이었다. 부계제에서 모계제로 가는 반대의 과정을 보여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더욱 복잡한 사회들에서는 더 이상 생물학적 구분만이 아니라, 일부 남성들이 모든 여성들과 다른 남성들에 대해 행사하는 권력과 위계에도 근거한 노동분업이 특징적이었다. 많은학자들은 여기에 묘사된 전환이 고대국가의 형성과 동시에 일어난다고 결론내렸다. 이 시기와 함께 이론적 추정은 끝을 맺어야 하고, 역사적 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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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약속 - 불행한 자들을 위한 문화비평 딕테 시리즈 2
사라 아메드 지음, 성정혜.이경란 옮김 / 후마니타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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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전체가 동어반복과 비틀기를 통해 ‘행복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가’에 대해 말한다. 나에게 이 책은 ‘행복’이란 말만큼 모호하고 난해한 부분도 많았지만, 규정되어진 행복의 구조를 벗어난, 정서적 이방인으로, ‘불행할 자유’라는 삶의 힌트를 얻었다. 책과 영화 레퍼런스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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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4-24 1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래안믿어... ㅎㅎ 저도요.

햇살과함께 2023-04-24 16:17   좋아요 2 | URL
사랑도 안믿고 행복도 안믿는 염세주의자 ㅎㅎㅎ

공쟝쟝 2023-04-24 23:4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두분 쿵짝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04-25 09:49   좋아요 2 | URL
쟝님은 어디에? ㅋㅋㅋ

공쟝쟝 2023-04-25 09:50   좋아요 1 | URL
저 사랑믿기로 회심했어요ㅋㅋㅋ 자기애 먼저 갖추기로ㅋㅋㅋ

건수하 2023-04-25 09:53   좋아요 1 | URL
자기애도 사랑이죠... ㅋㅋㅋㅋ

공쟝쟝 2023-04-25 10:06   좋아요 1 | URL
사랑의 본질입니닼ㅋㅋㅋ

다락방 2023-04-24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벌써 다 읽으셨어요? 전 이제 막 3장 들어갔는데 말입니다.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완독 축하드리고요! >.<

햇살과함께 2023-04-24 16:19   좋아요 0 | URL
1장까지 좌절하다 2~4장은 나름 잘 읽혀서 쭉쭉 나가나 했는데,
5장부터 다시 막혀서 너무 힘들었어요;;;
소설 읽고 싶다 빨리 끝내고 소설 읽자 하는 생각으로 겨우 읽었네요.
어제 미주 읽다가 토하는 줄 알았어요 ㅎㅎ
다락방님도 화이팅!

다락방 2023-04-24 16:53   좋아요 1 | URL
저 미주는 안읽을건데... (먼 산)

햇살과함께 2023-04-24 18:15   좋아요 0 | URL
안읽으셔도 돼요~
괜히 오기 부리다 대충 읽었어요 ㅋㅋㅋ

독서괭 2023-04-24 15: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햇살님 완전 모범생…👍👍👍

햇살과함께 2023-04-24 16:21   좋아요 2 | URL
ㅎㅎ 제가 올해 1년은 모범생 좀 해보려고요^^
저희 집 고딩은 시험기간 임에도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동안
제가 스카 가서 책 읽고 왔네요^^
이 기세로 공부했으면! ㅋㅋ

단발머리 2023-04-24 1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카 느낌 알죠 ㅋㅋㅋㅋ 뒹구는 고딩 보느니 제가 집을 나가는 ㅋㅋㅋㅋㅋ
수고많으셨어요. 완독 축하드리구요.
저는 아주 앞쪽이랍니다 ㅎㅎㅎ

햇살과함께 2023-04-24 17:56   좋아요 2 | URL
집 나가니 독서도 잘되고 속도 편하고 ㅋㅋㅋ
집에만 있는 얘들 대신 요즘 제가 주말마다 탈출합니다 ㅋㅋㅋ
단발님의 내공으로 금방 끝내실 거니까요~ 화이팅입니다!
 

결론 행복, 윤리, 가능성

옮긴이의 말 지금 우리에게 행복은 무엇을 하는가

행복은 우리가 지향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행복의 획득은 곧 우리의 기량, 잠재력의 획득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잘 사는 법에 대한 도덕적 결정을 안내하는 원칙) 이기도 하다. 행복은 말하자면 이중의 목적인을 제공한다. 즉, 삶의 목적이면서 좋은 삶의목적인 것이다. - P361

마치 행복하다는 말이 정서를 부여한 것처럼, 잘 자람이 온통 느낌인 것처럼 말이다. 행복은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생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최소한 그것이 "존재"하는 듯한 판타지를 심어 준다. - P363

행복이라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표현되는 것은 바로 행복에 대한 욕망그자체다. - P363

행복은 그 자체가 이미 유동적이기 때문에 유동적인 방어책이다. 꼭 집어 고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상관관계, 기대, 대답, 소망 등에 의존한다. - P369

감정의 기호처럼 작동하는 말들, "감정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말 가운데 행복은 윤리와 너무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서 가장 많이 언급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은 삶이 행복한 삶이다. 혹은 덕을 갖춘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혹은 가장 좋은 사회가 가장 행복한 사회다. 행복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좋은 것의 척도다. 그래서 행복은 좋은 것이 이미 성취되었다는 기호가 된다.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의 묵직함을 좀 더 온전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행복과 윤리의 친밀성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 P370

니체 자신의 확언(그것이 필수적인 것도, 명백한 것도 아니지만)에의하면, "우리 행복한 자들"이라는 귀족적 발화 행위에는 부정이 필요하지 않다. 타자들은 말하자면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러하다는 식으로 부정되며, 시간이 흐르면서 연민의 대상이 되고 불쌍해지고 불행해진다. 부정에서 시작한 자들, 아니오라고 말함으로써만 행동할 수 있는 자들이 바로 타자들, 부정된 자들이다. - P372

우리는 행복을 행운의 전위로 재해석할 수 있다. 내가 첫 장에서 지적했듯이, 행복happiness이라는 영어 단어의 초기 의미 중 하나는 행운 관념, 즉 운fortunate 혹은 요행lucky 관념과 관련돼 있다. 그러나 행복의 역사는 행복이 단순히 행운을 지시하는 데 그칠 수 있음에 대한 불안을 포함한다. - P374

결국 나는 행복에 대한 내 비평을 "긍정으로의 전회"라고 하는 것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확장하고자 한다. 긍정으로의 전회는 행복으로의 전회로 환원되지 않는다. - P384

우리가 나쁜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 의해 우리가 어떻게 변용되는지 알기 위해서이다. - P389

행복을 우리가 옹호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하지 않으면, 우리가 옹호하고 있는 그 행복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삶에 대해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이 되기를 원하는지 물을 수 있다. 가능성은 가능해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식돼야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헤더 러브가 잘 묘사하고 있듯이, 되돌아가는 것, 심지어는 "거스르는 느낌"(Love 2007)을 수반한다. 가능성을 받아들이려면 과거로의 회귀, 즉 우리가 상실한 것뿐만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것, 포기한 것뿐만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가능성에 대해 배우는 것은 계보학을 하는것, 현재의 도착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현재를 궁금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성에 대해 배우는 것에는 현재로부터의 일정한 소외가 수반된다. 익숙한 것이 물러나면 다른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정서 이방인들은 창조적일 수 있다. 우리는 그릇된 것들을 바랄 뿐만 아니라, 포기하라고들 하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이런 바람들을 중심으로생활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가 행복에서 멀어져야 일이 벌어진다. 우연발생이 생겨나는 것이다. - P392

불행할 자유는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복할 자유를 포함한다. 그런 자유는 행복 하중을 가볍게 할 것이다. 불행할 자유는 그러므로 행복을 제쳐 두지 않을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우연발생을 행복 안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투쟁의 역사들을 물려받았다. 필연성으로서의 행복에 맞선 투쟁은 가능성으로서의행복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행복 운동이 아닌 우연발생 운동으로서의 정치 운동에 대해 생각하려 한다. 그것은 불행한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이 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결코 아니다. 혁명적 형태의 정치의식은 우리가 불행을 느낄 대상이 정말로 얼마나 많은가에 대한 의식화를 포함한다. 행복에 대한 욕망이 행복 없음을 나타내는 기호들을덮을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혁명적 정치학은 불행에 계속 근접해 있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연발생의 정치학이 단순히 불행에 집착하거나 그것을 정치적 명분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 P400

우연발생의정치학이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가능성, 어쩌면perhaps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만약 가능성을 여는 것이 불행을 야기한다면, 우연발생의 정치학은 불행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 P400

행복 담론이 정치적 이데올로기nose로 작동할 때 그것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행복을 누릴 사람과 그렇지 않- 사람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메드는 이 책에서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개념을 규정하는 대신 행복이 무엇을 하는지, 즉 행복이 우리를 어떤 대상과 태도로, 어떤 삶의 결과로 이끄는지 보여 준다. 아메드의 분석이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행복이 모두에게 선하게 작동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행복이 작동하는 방식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며, 그 과정에서 억압과 소외의 효과가 나타난다. 아메드는 행복이 누구에게나 좋은 것, 선한 것이아니었으며 오히려 상실과 낙심의 원인이 되기도 했음을 역사, 문화, 그리고 정서의 측면에서 찾아 들어간다. - P405

아메드는 행복이 차별을 자연스럽게 은폐하는 지배기술로 사용되어 온 다양한 역사적 맥락들을 찾아낸다. 최대 다수의 행복을 우선한다는 공리주의, 피식민지인들의 안녕을 제공한다는 식민주의, 미개한 문화의 문명화를 도와준다는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가족 중심과이성애 중심의 젠더 이데올로기 등이 대표적으로 소개되는 예이다. - P408

행복이 기쁨을 유발하는 대상과 가까워지고 싶게 하는 지향성을 형성하고 좋지 않은 정서를 만들어 내는 대상과는 멀어지게 한다면, 사회는 바로 이런 행복의속성을 이용해서, 즉 기쁨을 유발하는 정서와 그렇지 않은 정서를 구분하고 특정 관계나 대상에 특정 정서를 귀속시킴으로써 행복을 정치적 지배기술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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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행복한 미래

행복 디스토피아
어쩌면의 미래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영화 <아일랜드>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제임스 건 <조이 메이커>
어슐러 르 귄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행복을 향한 욕망은 행복대상을 앞으로 보내고, 그 흔적을 따라 길이 형성된다. 마치 그 길을 따라가면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 P293

에델만의 논쟁적 주장에 답하면서 내가 진지하게 다뤄 보고자 하는문제는 모든 형태의 정치적 희망, 모든 형태의 유토피아주의와 낙관주의, "어떤 더 완벽한 질서"에 대한 모든 꿈이 미래주의의 논리를 수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볼 경우 이런 미래를 계승할 수 없는사람들에게 부정성을 위치시키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에델만은 여전히 긍정을 거부하는 행위 안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긍정하고 있다. 내게는 에델만의 논쟁적 주장에서 오히려 낙관적이고 희망적인점이 보이는데, 여기서 희망은 부정적인 것에 몸담음으로써 열리는 가능성에 기대고 있다. - P295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비판하고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출발점으로 하는 정치의 형식 내에서 우리는 희망과 절망,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기묘하게 왜곡되고 혼합되는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나는 디스토피아 형식들을 통해 이를 살펴보려 하는데, 여기에는 내가 행복 디스토피아라고 부르는 것도 포함된다. 왜 디스토피아인가? 왜 유토피아가 아닌가? 유토피아가 더 명시적으로 행복한 미래에 대한 전망에 기댄 형식이 아닌가? 물론 유토피아들이 행복한 미래로 환원될 수는 없다. 장 보드리야르가 주장하듯이, "유토피아가 기록하는 것은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바로 지금에서 나온 것, 오늘의 질서가 놓치고 있는 것이다"(Baudrillard 2001/2006:62). - P297

노동자는 자신의 에너지를 노동 대상에 부여하지만 그 대상은 그들의 손을 떠나 상품이 된다는 점에서 자신이 만드는 것으로부터 소외돼 있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대상 속으로 불어넣는다. 그러나 그 생명은 이제 더 이상 그가 아닌 대상에 귀속된다"(106[86]).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이 과정이 "대상의 상실"이면서 동시에 "대상에 대한 속박"(106)이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노동자들은 상실한 대상에 매여 있다. 즉, 자본주의 자체가 우울증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불행하다"(110[89]).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일종의 "살아 있는 자본"[105]이며 그래서 "욕구를 가진 자본" (120)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자본이 되는 것은 일종의 "불운"(120)이다. 노동의 전유는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한다. 노동자는 일을 하면 할수록, 생산을 하면 할수록, 더 고통받는다. 소외란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일종의 자기소외 - 인 동시에 노동자가 세상에 몸담는 방식을 형성하는 감정- 구조, 즉 고통의 형식이다. 노동자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가 곧 자신의 - P303

연장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유당함으로써 자신과의 연계를 상실하고 고통받는다. - P304

그렇다면 우리는 <칠드런 오브 맨>에 나오는 비관주의와 낙관주의사이의 전환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이런 전환의 지점들은 도착倒錯의 지점들이기도 한 것인가? 이미 언급했듯이 영화는 나쁜 느낌을 표출하는테오에서 시작한다. 그의 비관주의는 미래가 존재한다는 가능성에 대한비관주의, 가능성의 가능성에 대한 비관주의다. 우리는 대안에 대한 믿음이 현재의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판타지는 아닌지 추궁해 볼수 있다. 늘 바로 저 "지평 너머" 어느 지점에 닿기만 하면 상황이 "좋아지는 일만 남았다"라는 믿음은 우리 앞에 존재하는 고통스러운 세상만사를 회피하는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세상의 가능성에 대한 불신도 고통을 막으려는 정신적 방어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듯이, 무엇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잘못될 위험, 실망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발생할 가능성 자체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실망을 잘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 우리 대부분은 아마도 생존 전략으로서의 비관주의를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것을 향해 달려들"면서도 희망을 회피함으로써, 원하는 것을 이룰 희망이 없다고 지레 마음을 다잡음으로써 실망에 대비했던 그런 순간들 말이다. - P321

질문을 한다는 것은 곧 정서적으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식스 에코의 불안은 끈적거린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불안하다. "그런데 왜?"라는 그의 질문은 좋은 느낌을 주는 담요의 온기를 흩트리는 활기 넘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닥터 메릭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처음으로 여기 환경을 의심한 클론이야. 여기서의 자기 삶 전체를 의심하더군." 그리고 나중에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의 전 시스템은 예측 가능성에 입각해 있네. … 식스 에코는 그것을 약화시키는 한 가지 특징을 보여 줬어. 바로 인간의 호기심 말이야." 보통 궁금증과 호기심은 긍정적 감정으로 간주된다. 이 영화에서 궁금증과 호기심은 좋은 것(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제시되지만, 나쁜 감정에 연결돼 있다. 호기심 있는, 궁금해 하는 주체가 바로 기분 나쁜 주체다. - P342

불행이 미치는 영향을 기꺼이 받겠다는 정치적 의지는 정치적 자유로서 재구성될 수 있다. 우리는 불행할 자유로서 자유를 급진화할 수 있다. 불행할 자유가 비참해지거나 슬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P352

물론 거기에 그런 느낌들을 표현할 자유가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불행할 자유란 불행한 것에 의해 변용될 자유,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할지 모르는 삶을 살아갈 자유다. 불행할 자유란 행복의 길에서 이탈한삶을 살아갈 자유다. 그 이탈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든 말이다. 결국 그것은 이탈 행위에 의해 불행을 야기할 자유를 의미한다. - P353

어쩌면 배가 자유롭게 표류하도록 한다면 혁명적 행복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행복은 우연에, 우연의 도착에, 어쩌면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가능성에 열려 있을 것이다. 우리는 뭔가가 발생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기다린다는 건 우연 발생이 제거된 유산을 받아들임으로써 우연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런 유산을 거부한다는 것은 일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할 때, 우리는 우연히 일어나게도 하고 일을 만들기도 한다. 우연한 일은 마주침, 마주침의 우연, 우연 마주침이다. 그런 마주침들은 일이 발생하는 토대를 재창조한다. 토대를 재창조한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과거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길을 잃으면, 다른 길이 보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을 것이다. 자크 데리다의 생각처럼, "앞으로 발생할 것은, 어쩌면, 단지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다. 그것은 마침내 어쩌면perhaps에 대한 생각, 어쩌면 그 자체일 것이다"(Derida 1997/2005: 29). "어쩌면" 안에 들어 있는 "우연"hap이 "행복"happiness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행복한 미래란 어쩌면의 미래다.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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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우울증적 이주자

일상의 혼종성

영화 <베컴처럼 휘어 차기>
영화 <동양은 동양>
미라 시알 청소년 소설<아니타와 나>
야스민 하이 회고록 <하이 씨의 딸 만들기: 영국인 되기>

다문화주의가 불행의 원인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다문화주의 자체가 불행한 말이 되어 버린 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 P224

이 장에서 나는 영국계 아시아인의 경험을 통해 제국의 역사와 행복의 약속 사이의 관계를 분석해 볼 것이다. 우선은 19세기에 제국의 사명어떻게 행복의 극대화라는 공리주의적 명령을 통해 합법화되었는지,
제국이 어떻게 행복의 역사로 기억되는지에 대한 고찰로 시작해 본다. 그리고 <베컴처럼 휘어 차기>와 <동양은 동양>이라는 두 영국계 아시아인의 영화에서 불행한 인종차별주의가 다문화주의적 행복으로 전환되는 지점을 살펴보면서 우울증적 이주자의 형상이 어떻게 출현하는지 분석해볼 것이다. - P225

제러미 벤담, 제임스 밀, 헨리 시지윅, 존 스튜어트 밀을 비롯한 공리주의 사상가들은 각기 방식은 달라도 모두 제국의 사명을 지지하면서 행복을 극대화하는 담론에 기대고 있었다(Schultz and Varouxakis 2005 참조). 공리주의는 제국의 상대적 비용과 편익을 "재는" 방법, 가늠하는 방식을 제공했다. - P227

공리주의적 행복을 영국식 도덕의 보편화라고 비판한 니체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그의 비판이 옳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즉, 공리주의에 의해 정의된 행복의 목적은 식민통치의 목적과 일치한다. 행복의 핵심은그런 일치의 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식민 지배는 타인들을 행복 목적에 따라 살게 만들어야 할 의무로 정당화된다. - P229

이런 집착을 "백인 남자가 황인종 남성에게서 황인종 여성을 구해 주는 것"으로 본 가야트리 스피박의 묘사는 지금도 여전히 놀랄 만큼 정확하다(Spivak 1988: 297[462]).
제국은 비천함에서의 해방으로 정당화된다. 비천함에서의 해방은, 비록 그것이 고통을 야기하더라도, 고통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래서밀은 9권에서 식민주의가 원주민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인도에 가져다주는 선the good이 그런 고통을 넘어선다고 주장한다. - P233

결국 개인이 된다는 것은 영국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되기에서 식민화된 타자는, 호미 바바(Bhabha 1994)가 머콜레이의 이 구절을 예리하게 읽어 내며 강렬히 보여 준, "흉내 내는 사람"mimic man다. 행복의 공리주의적 증진은 흉내의 기술을 수반한다. 식민지 엘리트들을 취향, 견해, 도덕과 지성의 측면에서 우리" 처럼" 만들라는 명령인 것이다. 식민 지배자를 흉내 내면서 타자는 행복해지는데, 여기서 행복은행복감을 느낀다는 의미가 아니라 좋은 습관을 획득한다는 의미로, 여기에는 정서적 성향도 포함된다. 즉, 올바른 사물에 의해 올바른 방식으로영향 받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식민 지배자"처럼 된다는 것은 여전히 식민지 주민의 신체와는 뚜렷이 다른 신체에 몸담는다는 의미다. 바바가 보여 주듯 흉내 내기는 혼종 주체를 생산한다. 즉, 거의 같지만 아주 같지는 않은, 거의 같지만 백인은 아닌 주체다(Bhabha 1994: 122[180], 128[186]). 식민지 주민을 위한 행복 공식도 그 "거의"라는 망설임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품게 된다. 거의 행복하지만 아주 행복하지는 않은, 즉 거의 행복하지만 백인은 아닌 주체 말이다. - P236

트레버 필립스는 우리에겐 다민족 사회를 위한 교통법규가 필요합니다」 We Need a Highway Code for aMuti-Ethnic Society(2005)라는 연설에서 제국주의 역사를 그런 측면에서 환기한다. "우리에겐 영국인이 본래 편견이 아주 심한 사람들은 아님을 보여 주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 섬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어우러지는 제국이라는 것을 창조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제국은 영국인이 "편견이 아주 심한 사람들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어우러질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제국 자체가 행복한 다양성을 지향하는 영국적 성향,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사랑하고 함께 사는 삶을 향한 성향의 기호가 되는 것이다. - P237

영국인이 된다는 것은 행복의 선물인 제국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는 식민 지배의 폭력성을 잊으라 혹은 기억하지 말라는 암암리의 명령이 포함된다. - P239

영국 제국은 역사적 현실이었지만 이상이기도 했다. 제국의 이상은 그것을 정당화하는 도덕적 기획에 가담한다. 제국의 이상은 제국이 행복의 선물이라는 도덕적 이해를 통해 재편성됨으로써 유지된다.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이런 유지의 결과들이다. - P241

* 커브슛(감아 차기, 벤딩슛, 회전킥, 바나나킥으로도 불린다)을 의미한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영국의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의 주특기로, 먼 거리에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장애물을 피해 날아가는 슛이다. 영화에서 이 기술은 주인공의 목표를 가로막는 걸림돌들을 해결해 줄 수있는 대안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휘어 차기의 대상은 공이기도 하고 주인공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나 꿈이기도 한데, 이를 ‘휘어‘ 찬다는 것은 거추장스런 규범들을 ‘깨뜨리기‘break보다는 ‘구부리며’bend 목표를 이뤄 나가는 유연함을 의미할 수 있다. - P242

이 다른 세계, 축구가 약속하는 자유의 세계는 제스를 백인 소녀와 백인 남성과 친하게 만든다. 자유는 백인성에 근접하는 것으로 나타나는것이다. - P245

우리는 여기서 슬픔을 공유하는 정서적 형식에 대해 알 수 있다. 정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면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특정 대상, 즉 행복 대상을 향한 정향을 공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상실한 것으로 인정하는 대상 역시 같아야 한다. 정서 공동체가 상실의 대상들을 공유함으로써, 다시 말해 대상을 올바른 방식으로 놓아줌으로써 만들어진다면, 우울증자는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에 있어 정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상실을 극복하지 못한 실패가 되고, 이로 인해 계속 잘못된 쪽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울증자란, 방향 전환이 필요한 사람, 돌려세워야 하는 사람이다. - P255

아버지가 인종차별에서 받은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크리켓을 하게 하는 사람이 바로 백인 남성인 것이다. 우울증적 이주자를 다시 국가의 울타리안으로 데려오는 사람은 백인이다. 그의 신체가 우리의 전환 지점이다. - P263

행복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당신이 겉도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제 힘으로는 그 자리에 섞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를 "어디든" 섞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인정은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 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개인의 추상적 잠재력으로부터의 소외를 수반한다. 그런 자기신념이 없다면 행복은 그가 있는 곳"에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마치 무엇이든의 상실 안에는 "어디든"의 상실도 포함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행복할 자유란, 비록 판타지라 할지라도, 소수만이 있을 수 있는 "어딘가를 환기하는 것임을 상기하게 된다. 야스민이 자기 모습 그대로 그곳에 있다는 것은 이 행복의 "무엇이든"으로부터소외된다는 뜻이다. - P285

행복의 약속이 공허함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통합을 원했던 이주자이기 때문이다. - P288

대상은 그것이 행복에 대한 소망으로 사라지게 할 수 없는 역사들의 지속성을 체화하고 있을 경우 불행해진다. 불행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행복이 다양화된다 해도 정치적 기억(즉, 국가적 시간에서의 현재)에서 적대가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제거될 수도 없다는 것을 탐색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역사들은 뒤로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역사들은 끈질기게 지속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역사의 지속성과 함께하는 우리의 불행을 끈질기게 말해야 한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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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4-20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슈팅라이크베컴을 저렇게 한역했군요! 신인배우 시절의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한 영화로 기억해요~

햇살과함께 2023-04-20 13:4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키이라 나이틀리 처음 보고 못생겼는데(?) 매력있다? 생각했던 기억이 ㅎㅎ

서곡 2023-04-20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오만과편견도 그렇고 헤벌쭉 웃는 얼굴에 스며들게 되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