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다시, 페미니즘을 묻는다

신자유주의 체제 일상에서 한국 사회 구성원의 섹슈얼리티 실천(practice)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사회의 구조적 피해자이면서도 구조 안에서 다양한 대응을 해 나가는 여성들의 행위성의 다양화 2) 젠더에 기반한 폭력(gender-based violence)이 성차별에서 안전 문제로 확대 3) 터프를 비롯한 사회 정의에 반하는 페미니즘의 등장 4) 여성주의의 대중화와 함께 가속화하는 정체성의 정치화(본질화) 5) 신자유주의 체제의 고립적 개인화 전략이 여성에게는 성 역할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함으로써 생기는 여성의 개인화. - P10

남성의 젠더 인식, 성 인식은 남성 자신의 사회 적응과 인간관계, 인권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섹슈얼리티가 남성의 자아를 구성하는 요소임을 인지하는 과정은 민주주의의 척도요, 남성 개인의 성장에 필수적이다. 섹슈얼리티 교육은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남성에게 가장 필요하다. 물론 남성은 (여성에 대해) 가해자도 잠재적 가해자도 아니다. 그들을 가해자로 만드는 것은 무지, 무의식, 공부하지 않음, 무신경이다. 무지가 가해자로 만들기 때문에 남성들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젠더나 섹슈얼리티 외에 인종, 계급, 지역, 나이라는 모순에 의해 우리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여기에서 예외인 인간은 없다. 문제는 공동체의 지적 감수성이요,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한) 개인들의 노력이다. - P16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규정한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다. 자명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 P17

1장. 페미니즘 논쟁의 재구성

오드리 로드는 "주인의 도구로 주인의 집을 부술 수 없다"는 말로 이 곤경을 정확히 해석했다. 남성 문화는 남성들의 주관성을 보편성, 객관성, 과학, 전통, 국민의 뜻, 대의 따위로 포장해 왔다. 이에 대항한 여성주의 지식은 남성의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고 해체하려고 노력해 왔다. 남성도 마찬가지지만 여성의 경험도 객관적이지 않다. 여성들간에 이해의 충돌이 있을 때 어떤 여성의 경험을 여성주의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지식은 맥락에서 발생하는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이고 당파적/부분적(partial)이다. - P26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무시할까봐 두려워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한다." 영국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이 말은 서울에서 발생한 ‘강남역 사건‘을 묘사한 기사 같다. 2016년 5월 17일, 서울 서초동 상가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강남역 사건 이후 내게 ‘오월‘의 이미지는 두 겹이 되었다. 5·18과 강남역.
용의자의 범행 동기는 "평소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의식이 크게 바뀌었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사건 현장 인근,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는 젊은 날에 생을 마감한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다. - P63

조직 내 위계나 물리적 폭력의 정도에 따라 피해 내용이 다를 뿐, 성폭력의 본질은 위계와 결합한 성별권력관계이다. 이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해결은 없다. 나의 생명과 생계 그리고 평생의 경력을 쥐고 있는 상대방과 어떻게 평등한 합의가 가능하단 말인가. 본래합의(consensus)는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끼리도 달성하기 어려운 지속적이고 끈질긴 협상 과정이다. "너, 합의였지?"라는 비난 때문에 피해 여성은 분노 속에 침묵한다. 성폭력이 최고의 ‘암수(數)범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P69

공부는 질문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혹은 공부하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선생님에게 물어 도움을 요청하는 노동이다. 이외의 모든 질문은 권력 행위다. 타인에 대한 물음은 호기심에서부터 신문, 힐난 비난까지 다양하다. 묻는 자의 정체나 위치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말 한마디로도 묻는 자의 교양, 인격, 무지, 태도를 알 수 있다. - P78

여성주의는 누가 남성이고 누가 여성인가를 정하는 권력의 소재를 밝히는 사회 정의에 관한 인식이지,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 다툼에서 여성의 피해를 강조하는 사유가 아니다. 흑인과 백인은 대립하는가? 부자와 빈자는 대립하는가? 그렇다면 유토피아일 것이다. 억압과 피억압, 지배와 피지배, 착취와 피착취의 구도를 ‘대립‘이라는 중립적 언어로 표현하는 발상으로는 여성폭력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
‘남녀 대립(equity)‘은 차라리 희망사항이다. 남녀가 대립하는 사회라면, ‘바바리 우먼‘도 있어야 하고 남성도 2백만 명쯤은 성 판매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여성에게 성폭력당하는 남성도 수시로 뉴스에 나와야 한다. ‘매맞는 남편‘은 평생 폭력 아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해야 한다. - P101

1949년 출간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에서부터 주디스 버틀러의 ‘정체성이 아닌 수행성 (performance)으로서 젠더‘에 이르기까지 사상가들의 입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젠더는 다음 세 차원에서 작동한다. 물론 이 세 가지는 서로 의존하며 연결된다. 첫째는 우리에게 익숙한 남성다움/여성다움, 남성성/여성성, 성별, 성별 분업, 성차별이다. (차이가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만들어낸 차이로서 젠더다. 둘째는 계급, 인종과 함께 사회적 분석 범주(category)로서 젠더, 즉 사회 구성 요소(factor)이다. 커피 자판기의 종이컵이 사회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뜨거운 물일 것이다. 이 뜨거운 물이 젠더이다. 물을 얼마나 붓는가, 몇 도의 물을 붓느냐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질 것이다. 프로이트는 젠더를 인간의 무의식으로부터 드러냈다. 젠더를 고려하지 않으면 인간과 사회, 자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젠더화된 세상에서 - P103

살고 있다. 가부장제는 내외부가 없다. 다시 말해 젠더 인식이 없는 지식은 존재할 수 없다. 셋째는 메타 젠더(meta gender)로서 ‘다른 목소리‘, 새로운 인식론이다. 젠더에 기반하되 젠더를 넘어서는 ‘대안‘으로서 사유를 말한다. 젠더는 ‘여성 문제‘가 아니라 에피스테메(episteme), 새로운 인식론이다. - P104

쟁점은 우리가 젠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다. 젠더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젠더를 이해할 때 미투 운동의 위치도 가늠할 수 있다. 미투는 젠더 체제에 비하면, 너무나 갈 길이 먼 시작이자 동시에 엄청난 사건이다. 미투는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먼지만 한 움직임(범죄 신고 캠페인)이지만, 이 작은 실천조차 남성 문화는 모든 것을 빼앗긴 것처럼 분노하고있다. 그들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여성의 작은 목소리만으로도 자신들이 진공 상태에 내몰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러한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남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우리가 토론해야 하는 것은 이 ‘두려움‘이 어떤 사회를 향한 징조인지, 어떤 사회를 추구하는 정지 작업으로서 미투인지를 되묻는 일이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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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


힐러리 로댐 클린턴
소저너 트루스
케이트 쇼팽 <각성>
커티스 시튼펠드 <로댐>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1부. 흔들리는 1950년대

실비아 플라스
에이드리언 리치
앨런 긴즈버그
다이앤 디프리마
궨덜린 브룩스
로레인 핸스베리
오드리 로드 <자미>
존 디디온
베티 프리단 <여성성의 신화>



프롤로그.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
첫 여성운동 물결의 국면을 1848년 세니커폴스 집회부터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한 1920년 제19차 헌법 개정 시점까지 추적할 수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2의 물결을 떠올릴 수 있다. 혼란스럽고소란하고 대단하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 물결을. 우리는 이런시각을 견지하면서 우리 모두 여전히 그 물결의 한가운데 있다고, 세상이 요동치는 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마음에 새긴다. - P14

현실에서 하원 의사당은 1985년까지 여성에게 운동 시설을 개방하지않았고, 수영장은 2009년까지 남성 회원만 이용할 수 있었다. 상원 의사당은 어땠을까. 정치적 연줄이 없는 여성 의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이 되고 나서였다. 1992년까지는 여자 화장실도 없었으며, 199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설치되었다.(그나마 겨우 두 칸뿐이었고 2013년에야 네 칸으로 늘어났다.) - P22

"권력을 가진 자는 명사를 (그리고 규범을) 장악하는 반면, 권력을 덜 가진 자는 형용사 하나를 얻는다." 언젠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했던 말이다. - P26

대통령 예비 경선에서 젊은 버락 오바마에게 패배했던 첫 번째 대통령 선거전 즈음, 그녀는 자신을 만들어준 힘이 페미니즘이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했다. - P34

우리가 힐러리 로댐의 속 끓이는 운명을 이토록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이 젊은 웰즐리 졸업생의 눈부신 이력의 역설이 국제무대에서의 페미니즘의 긴장과 갈등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공하라고 배웠다. 막상 성공하면 조롱당했다. 우리는 결혼을 재촉당했다. 결혼은 우리의 열망을 방해했다. 우리는 자아를 실현하라고 배웠다. 우리는 남편의 야망을 도우라고 지시받았다. 우리는 진실되게 살기로 결심하고 분장과 세상에 대한 아첨을 잊기로 했다. 우리는 가식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옷을 차려입거나 옷을 잘 입는 사람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성차별주의와 미소지니"를 경험하면서 입술을 깨물고 우리의 분노를 강하게 억눌렀다. 그런 다음 공직에 출마했고, 편집위원, CEO, 미국 대통령이 되는 일에 뛰어들었다. - P35

"첫째, 영화 안에 적어도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해야 하고, 둘째, 두 명의 여성이 서로에게 말을 걸되, 셋째, 남자와 관련된것이 아닌 다른 내용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 웹사이트 <벡델 테스트>는 이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의 목록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 P41

읽기와 쓰기는 늘 해방의 약속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번성하는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 지표가 소녀들을 교육시키는 일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P41

1부. 흔들리는 1950년대
우리는 실비아 플라스, 다이앤 디프리마, 로레인 핸스베리, 오드리 로드 같은 여성작가들의 초반부의 삶을 특징짓는, 현기증이 날 것 같은 모순적인 상황을 경험했다. - P49

이런 식으로 (육감적인 마릴린 먼로와 변덕스러운 메리앤 무어를 나란히 놓는 식으로) 대모들을 나란히 둔 것은, 1950년대의 순응주의를 반영한 삶과 그것에 반발하는 삶을 살았던 그 세대 젊은 여성들의 특별한 혼란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 P51

온실 같은 패션 잡지의 세계에 구현된 1950년대의 문화를 점검한, 현존하는 플라스의 이 유일한 소설은 미국 소녀를인형으로 묘사하는 한편 사회가 그들에게 경쟁하라고 명령하며 물려준 온갖 병폐를 탐구한다. - P57

플라스의 콜라주 작품에 묘사된 아이젠하워를 비롯한 공화당원들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그와 그녀의 시간"이라는 어구는 양성의 별개 영역, 즉 생계 책임자와 가정주부라는 별개 영역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 P59

하지만 에이드리언 리치는 1950년대의 육아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모든 어머니는 자기 자녀들을 향한 압도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분노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 P61

여자 가수들도 뒤쳐지지 않았다. 빌리 홀리데이는 여전히 아이돌이었고, 엘라 피츠제럴드는 그녀 최고의 앨범 녹음을 막 시작한 상태였다. 1958년에는 실비아 플라스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난니나 시몬이 <리틀 걸 블루〉 앨범을 내며 화려하면서도 저항적인 가수 이력을 시작했다.
이런 노래들의 당김음 패턴 속에서 꾸준히 울려대는 드럼 소리처럼, 민권운동도 서서히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궨덜린 브룩스가 1950년 『애니 앨런』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후, 램프 엘리슨은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 미국도서상을 수상했고, 제임스 볼드윈은 『미국의 아들의 기록』을 출간했다. 1955년 마틴루서 킹 주니어는 버스 보이콧 운동을 주도했고, 같은 해에 로자 파크스는 남부의 버스에 올라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기라는명령을 거부했다. 흑인 극작가 로레인 핸스베리가 강렬한 극작품 <태양 아래 건포도〉를 집필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였다. 이 작품은 1959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하여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되었다. - P83

핸스베리는 인류가 "자신들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다"는 신념을 수정하게 만든 회의적인 시각이 10대 때 일어났던 나가사키 및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와 20대로 접어들 무렵 시작된냉전 때문에 생겨났다고 여겼다. 보헤미안 분위기에 젖어 있던 뉴욕 그리치니 빌리지의 지식인들과 친하게 어울리면서 그녀는 영향력 있는 철학자 W. E. B. 듀보이스를 연구했으며, 이내 "근대"와 "진보"라는 말이 "서구"의 유의어인 것처럼 사용돼야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품었다. "가나의 여성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반면 스위스의 여성에게는 투표권이 없다"면서. - P85

정말로 그랬다. 프리단의 주장처럼 "1960년,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가 미국의 행복한 가정주부라는 이미지를 뚫고 부글부글 끓어넘치고 있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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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여성 - 여성의 눈으로 본 선사시대, 젠더 고고학의 발견
마릴렌 파투-마티스 지음, 공수진 옮김 / 프시케의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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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여성혐오적 기존 해석의 나열에 초반 지루했고 답답함이 이어졌다. 그 이후 반전은 크지 않았다. 기대보다 임팩트가 크지 않았다. ‘여성이라고 볼 증거는 없다. 그러나 남성만이라고 볼 증거도 없다.’ 책을 덮고 나니 그게 고고학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주장만으로도 외로운 분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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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1-29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복되는 여성혐오적 기존 해석의 나열은 이 책을 쓰는데 있어 필요했던 일이라고 보여지지만 저로서는 정말 지루하고 답답했어요. 책장을 덮어도 그 지루하고 답답했던 감상만 남아있네요 ㅠㅠ

햇살과함께 2023-11-29 09:2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번 책은 저랑 같은 감상 ㅋㅋㅋ
올해 읽은 여성주의책 중에 가장 재미없었어요…
빨리 <여전히 미쳐있는> 읽고 싶네요!
 

크리스틴 드 피장은 같은 시대사람들이 보여주는 여성 혐오에 반발하고 여성을 위해 변론했다. 미망인이자 학식 있는 여성이었던 크리스틴은 최초의 여성 전업 작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사랑의 신에게 보내는 편지>(1399)와 《장미가 말하다>(1402)에서 그녀는 대담하게도 《장미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성 우위론적 발언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학계와 친구들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되는데, 그들 모두가 남성이었다. 크리스틴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들의 도시》(1404~1405)는 당시에 남성이 쓴 것으로 분류되었는데, 크리스틴은 자신의 관점 자체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편견, 특히 "천성적으로 열등하다는 편견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 P236

마리 드 구르네(1565~1645)는 여성 문인이자 몽테뉴의 수양딸이었다. 그녀는 여성의 처지에 대해 항의하고 여성혐오도 아니고 여성 찬양도 아닌, 양성 간의 평등을 주장한다. 지적으로 열등하게 취급되는 것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 P241

이로부터 40년 뒤, 개신교로 개종한 데카르트 철학자 프랑수아 풀랭 드 라 바르(1647~1723)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불공정성과 그녀들이 놓인 상황적 불평등은 사실 편견에 근간을 둔 것이라 확신하고 두 편의 중요한 글을 썼다. 그는 여기에서 여성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모든 직업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여성이 "천부적으로" 열등하다는 도그마가 오래전부터 있던 것이고 많은 학자의 의견이 같다고 해서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라고한다. 그는 사회가 여자들에게 열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이를 강요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녀들이 자연적으로 열등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추론하고 그녀들을 이러한 상황 속에 묶어두기 위해 이처럼 근거가 없는 추론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는 유명한 ‘영혼은 성이 없다 L‘esprit n‘a pas de sexe라는 격언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 P242

그의 투쟁에는 유명한 작가들이 동참해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게 되는데, 오노레 드 발자크처럼 특히 박식한 귀족 여성들이 운영하는 살롱에 자주 드나들던 사람들이다. 1829년 말에 발행된 《결혼의 생리학》은 ‘성찰Méditations‘로 이루어진 부부의 행복에관한 상황을 정리한 목록이라 할 수 있다. 발자크는 이 글에서 결혼을 전쟁으로 서술하면서 여성의 입장을 옹호하고 양성 간의 평등 원칙을 지지한다. "문명을 돌려놓아라! 생각을 고쳐라! 이것이 당신들의 외침이다! 당신들은 여성을 교육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틀림없다. 이 때문에 스페인의 사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어리석은 자들을 통치하기가 박식한 사람들을 통치하기보다 훨씬 쉽다. ‥…무지함. 이것이 전제군주제가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P257

이로부터 14년이 지난 1848년 3월 16일, 작가 제니 데리쿠르(1809~1875)는 이혼의 부활을 주장하는 청원을 보낸다. 여성들은 스탕달이라는 아군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는 《적과 흑》(1830)과 《파르마의 수도원》(1839)에서 여성의 예속적인 처지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1842년, 의사이자 시인인 에티엔 드 쉐프빌도 프랑스 여성의 조건을 해학적으로고발하고자 펜을 들었다. "한마디로, 프랑스 여성들은 어찌나 자유로운지 무서울 정도다!" "조금은 덜 빈정거리는 다음 장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이 젊은이들이 비아냥거리는 회의주의가 부럽지 않다. 이들은 모든 여성을다루기 쉬운 정부 수준으로 만들고, 여성들의 신선한 감각을 한 번도 함께 나누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불쌍히 생각한다. 그것은 다른 자아로부터 행복과 지지와 위로를 얻는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를 모독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 P259

마침내 프랑스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된 것은,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 페르낭 그르니에가 1944년 3월 24일에 알제에서 열린 임시국회에 수정안을 제출하면서다. 드골 장군의 발언이 결정적이었는데, 특히 그는 1944년 3월18일에 "새로운 정부는 프랑스의 모든 남성과 모든 여성이선출한 대표로 구성되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같은 해 4월 21일, 프랑스 여성들은 드디어 "남성들과 같은 조건에서 선거하고 선출될 수 있게 된다."132 2년 뒤에는모든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는 원칙이 헌법 서문에 명시된다.‘33 1947년 제르맨 푸앵소-샤퓌가 최초의 여성장관이 된다. 13 하지만 그다음 여성 장관은 1974년이 되어서야 등장하는데, 시몬 베유가 보건부 장관을 맡게 된다. 1991년 5월 15일 에디트 크레송이 수상이 되었지만, 여전히여성이 정치적 고위직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고 느리다. - P271

에필로그
우리는 혁명의 새벽에 있다. 여성으로 밝혀진 바이킹 여전사로부터 스키타이의 아마조네스가 있었고,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는 예술품으로 꾸며진 동굴안에 선사시대의 여성들이 있었던 것을 밝혀냈다. 선사시대에 여성 예술가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성에 따라 역할이 배분되었다고 하는 선입견 일부는 무너졌다.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에 더가까운 성차별주의자들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것은 특히나젠더 고고학이 해야 할 작업이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이제 틈이 벌어졌다. 그 틈은 여성이 역사 안에서 올바른 자리를 되찾기 전에는 닫히지 않을 것이다. - P281

어째서 가부장제는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이렇게나 오래 유지될까? 이것이 경제적 지배와 정치적 지배를 기반으로 할 뿐만 아니라, 캐롤 길리건이 심리적 지배라고 불렀던 것에 특히 영향을 받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른바 전형적인 여성적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다른 사람과의관계를 중시하는 돌봄care의 윤리다(보살피기, 배려, 감정이입). 이는 천성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가부장제 체제에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성에 따라 양식화된 상이한 방식으로 양육되며, 특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 형성이 - P287

그렇다. 연약함은 여성적인 것으로 여기므로, 사내아이들은모든 감정 표현을 감추고 없애야만 한다." 이러한 무관심은예속과 탄압이라는 정치적인 질서를 만든다. 이처럼 정치적인 가부장제는 심리적인 가부장제로 살찌워진다." 남성과여성의 차이는 우리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 것이 아니다. 돌봄은 모두가 나눌 수 있는 능력이다. 사내아이들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이러한 태도를 배워야만 한다. 가부장제를끝내기 위해서는 심리적 가부장제가 사라져야 한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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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모쒀족에게는 아버지를 나타내는 어떤 말도 없으며, 이들의 속담에 따르면 "아이를 만드는 데남자의 역할은 초원의 풀에 내리는 비와 같다. 비는 풀을 자라게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 P138

이들은 데니소바인Denisoviens*이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와 교배했다. 네안데르탈 여성이 호모 사피엔스 남성과 성관계를 통해 혼혈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가졌던 것이 유전학적으로 입증되었듯이, 호모 사피엔스 여성과 네안데르탈 남성 사이에서는 여자아이만 태어난 것이 유전학적으로 증명되었다(남자아이는 자연 유산이 된다***). - P143

이러한 자료를 종합해보면, 유럽의 몇몇 구석기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사냥감을 찾아내서 흔적을 쫓고 사냥 전략을마련하며 창을 던지는 일까지, 사냥의 모든 단계에 참여했음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다가 구석기시대가 끝나갈 무렵부터 던지는 종류의 무기는 남성만 사용하도록 하는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 P168

일부 동굴 벽화가 믿음과 연관된 동기로 만들어졌다는 가설 내에서, 여성이 의식을 이끌지 않았다고 배제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는 아무것도 없다. 선사학자들은 여성이 동굴에 있었음을 더는 부정하지 않지만, 여성이 작품 일부를 만들었다는 데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전문가가 많은데, 그들은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운다. 그렇지만 남성이 남긴 작품이라고 할 증거도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선사 예술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과 조각을 여성이 만들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 P172

아주 드문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역사적 사회, 전통 사회 또는 현대 사회에서 무기 사용과 사냥, 전쟁은 남성 전용이었고 가치 있게 평가된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생명을 주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사람은 동물보다 우월해졌다. 인류 중에서 생명을 부여하는 성이 아니라 생명을 죽이는 성에 우월성이 부여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보부아르는 이렇게 쓰면서, 도구와 무기를 만들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초월transcendance‘의 한 형태로 연관시킨다. 그러면서 남성을 문화 쪽에 두고 여성은 자연 쪽에 두었다. 세계와의 일종의 유기적인 관계 내에서 남성은 자신의 조건을 극복하고 여성은 ‘한 곳에 머물러 있다demeure‘. 일종의 ‘보상‘의 형태라는 해석도 있다. 남자는 생명을 줄 수 없고(출산), 어린아이를 먹일 수도 없어서(수), 무기를 독점하는 쪽으로 갔으리라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남자가 원래 폭력적인 성향이 더 강하다며 이를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 P189

1940년대 초반, 여전히 대중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던 아마조네스는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만화 스토리 작가 윌리엄 몰턴 마스턴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비롯한 페미니스트 운동과 제2차 세계대전 중 여성의 사회 참여에 영향을 받았으며, 1941년 슈퍼 히로인 다이애나를 탄생시켰다. 다이애나는 아마조네스가 헤라클레스에게패한 이후 도망쳤던 테미시라 섬을 통치하는 히폴리테 여왕의 딸이다. 다이애나는 이 섬에 불시착한 미군 비행사 스티브 트레버와 함께 미국에 가서 범죄자와 싸우는 원더우먼이 된다. 그녀는 자유롭고 강하며 용기 있는 여성을 대표하며, 남자들에게만 허용되던 모든 활동과 직업을 영위한다. 그러나 이 여자 만화 주인공은 1954년부터 이미 논쟁을 불러온다. 남자아이들을 겁먹게 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 말이 되면, 그녀는 자신의 사무실을 떠나지 않는 비서 다이애나 프린스가 된다. 1980년대가 되어서야 다이애나는 아마조네스로서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미국의 여성 감독 패티 젱킨스가 연출한 영화 <원더 우먼>에서처럼 말이다. - P207

적어도 기원전 600년 이전의 유럽에서는 여성이 여왕이고 섭정이며 여황제였다. 귀족이건 평민이건 인류의 역사를 빛냈던 수많은 전쟁과 혁명에 참여했고,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그 가운데 몇몇은 유명할지 몰라도, 더 많은 이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시대적인흐름에 영향을 받아 19세기의 역사학자 대부분은 이 여성들의 이름을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이 시기 의학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히포크라테스를 계승한 ‘체액설‘을 재가동해서 남성의 기질(능동적)과 여성의 기질(수동적)로 구별했다. 자신과 남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 남성에게 적절하다고 설정된 능력에 가치를 부여했고, 전쟁 행위가 특히 그것을 완수하는 것으로 되었다. 근대에도 남장까지 한 여전사들이 있긴 하지만, 이 시기에 여성들은 전쟁터에서 점차 멀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내전을 제외하고는 20세기 초반에도 여성들은 전투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여전사는 기개와 담력,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입증했다. "여자 영웅이 남자 영웅을 만든다." - P208

1세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등장한 기독교는 얼마 지나410지 않아 어머니 여신 신앙을 거부했다. 325년에 열린 제1회니케아(지금의 터키 이즈니크) 공회의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신의 아들을 낳은 마리아는 여신이 아니라 ‘신의 어머니‘로서 추앙받게 되었다. 하느님이 여자였던 시절》에서 멀린스톤은, 유대-그리스도교가 남성 신의 숭배와 가부장제를한꺼번에 받아들이게 하면서 최고신이 어머니 여신이던 과거 종교의 기억까지 지우려 했다고 비난했다.
"처음부터 원래 그랬다""라는 내용을 자주 읽지만, 신화는 원초적인 모습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버전이나와 옛것을 덮어쓰고 대체하는 것이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수도승 등 가부장적 사고에 젖은 번역자들은 원전 - P217

신화의 내용을 여러 차례 바꾸고 다시 손질했다. 이들이 "가부장제가 장악한 여신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하고 거부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 P218

선사시대 여성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은 편견과 가설을 가지고 해석한 것인데도, 일부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은 이를바탕으로 선사시대 여성들을 비판했다. 이들은 선사시대 여성들이 수동적이고 남성에 복종한 피해자로 자신들의 삶을비참하게 만들었다면서, 이 시기를 "자연 상태état de nature"라고 여겼다. 《제2의 성》(1949)의 <역사>에서 보부아르는 고고학 자료를 전혀 참고하지 않고 생물학적 결정주의에 함몰되어, 농업 이전의 선사시대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이들의 ‘본성nature‘ 때문에 소외되었다고 기술했다. 여성이 출산과 아이 양육 때문에 지식과 전문 기술을 만들어내는 데 적합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보부아르는 여성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남성의 역할이 가치 있다고 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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