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연구자 염운옥의 몸

도대체 불법과 합법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렇게 서류 한 장으로 불법과 합법의 인간이 갈리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UN 인권위원회, 국제노동기구,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불법illegal‘이라는 말을 인간에게 쓰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해요. ‘불법 체류‘ 대신 ‘미등록undocumented‘ 혹은 ‘초과 체류overstayed‘라는 말을 쓰자는거예요.
이주자에게 체류자격은 너무나 중요해요. 체류 자격이 흔들리면 노동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아이 양육을 제대로 할 수 없죠. 아이를 학교에보낼 수도 없거든요. 체류 자격이라는 것은 등록되는 서류잖아요. 이서류를 갖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구분해서 ‘당신의 몸은 오늘까지는 합법이지만 내일부터는 불법이야‘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 걸까요?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요? - P18

여성학자 권김현영의 몸

제가 충격을 받았던 건, 백화점 같은 경우엔 3천여 명 정도 되는 직원들이 있는데요. IMF 이후엔 90퍼센트 정도가 아웃소싱되어서 파견직으로 바뀌게 됩니다. 2700명 정도가 파견직 노동자가 되는 거죠.
백화점에 소속된 게 아니라 입점 매장에서 각각 따로 계약을 맺어 파견직으로 근무하게 하거나, 아니면 백화점 안에서 단기 고용으로 일용직 노동자처럼 활용하면서 백화점 정규직의 지위는 주지 않았죠. 이 파견직 여성 노동자 그룹은 거의 대부분 담배를 피워요. 반면 정규직 여성 300명 중에서는 흡연자가 한 30명, 10퍼센트밖에 안 됐는데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여성 노동자들 중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한 명도 본 적 없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승진에 대한 기대가 있고 직장 안에서 인사 평가와 관련된부분을 의식하는 여성들은 사람들과 같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얘기죠. 혹은 담배를 피우지 않거나 그런데 언제 잘릴지 모르는 취약한지위에 있는 여성들은 담배를 굉장히 많이 피워요. 콜센터 같은 경우에는 담배 피우는 시간을 확보해주기도 해요. 그것이 가장 쉽게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거든요. 이런 식으로 여성의 흡연이 완전히 계층화되어 있는 거죠. - P29

작가, 뮤지션 요조의 몸

말랑말랑하게 늙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살아가면서 신념이라는것이 되게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이 신념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다보면 이게 사람을 딱딱하게 만들고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 같아요.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갖되 그것이 나를 딱딱하게 만들지 않게끔 말랑말랑해지려는 노력을 실천하면서 늙으면 참 좋겠어요. 정치적 입장뿐만 아니라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있잖아요. 페미니즘, 환경, 생명, 종교,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너무너무 거대해지고, 강해지고, 유일한 진리처럼 될 때 그것이 또다른 혐오를 낳고 또다른 공격으로 이어지면서 ‘나는 맞고 너는 다 틀려‘ ‘너희는 정의가 아냐‘라는 식으로 더 좁아질 수 있겠더라고요. 저부터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 P43

피디 김영미의 몸

신입 피디 시절, 김영미를 섭외한 적이 있었다. 스튜디오 출연을부탁했는데, 조금 곤란해하는 기색이었지만 끝내 수락했다. 그런데 다리를 절뚝이며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한 상태였다고 했다. 거절하시지 왜 나오셨냐 물으니 그는 이렇게답했다. "어린 피디가 고생하는데, 섭외 물먹으면 안 되잖아요. 이 시절엔 하나씩 성취해보는 게 중요한데."
김영미의 모든 선택과 결정의 근거는 단순하다. ‘나는 저널리스트다‘라는 생각. 그 생각으로 몸이 아파도 인터뷰를 하러 나오고, 멀고도 위험하지만 분쟁지역으로 떠난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단순히 용기가 아니다. 단 하나의 중요한 태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낯설고 위험한 곳으로 주저 없이 발을 내딛는 것이다. - P68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의 몸

여성은 머리 없는 살덩이라고 느끼는 것이 강간 문화의 아주 밑바 - P79

닥에 깔린 의식이죠. 고기를 집어먹듯 여성의 몸을 만지고, ‘그냥 만진 것뿐인데‘라며 그게 성폭력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성과의 성관계를 ‘먹다‘라고 표현하고요. 남의 살을 함부로 대하는게 습관이 된 상황이에요. 문화화된 차별이 정말 무섭죠. 그래서 우리는 정말 ‘말하는 몸‘이 되어야 해요. 내 몸 세포 하나하나에 차별이배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툭 나와요. 저도예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수없이 다짐하고 스스로 주의하려고 노력하지만, 저도 이 문화 속에서 차별을 공기처럼 마시고 밥먹듯이 먹으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조심하기에 좋아요. ‘나는 절대 그런 말을 할 리 없고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위험하죠. 우리가 차별적인 언어들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하는 게 서로 조심하도록 만들더라고요. - P80

기타리스트 반향기의 몸

머리를 그냥 한번 밀어보고 싶었어요. 짧은 머리는 워낙 많이 해서 정상성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20대가 가기 전에 삭발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어차피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니까 별생각없이 밀었죠.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또 밀고 싶어져서 한 번 더 밀었더니, 이번엔 아빠가 막……… 저를 안 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좀 놀라기도 했는데, 저는 "그런 이유로 안 볼 사람이면 아예 안 보는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사과를 받아냈습니다. - P87

생리중단시술 경험자 임의 몸, 제의 몸

서랍에서 생리대를 꺼내서 여봐란듯이 들고 가는 것, 여성 휴가를 쓰는 것, 그냥 몸이 안좋다고 말하기보다 ‘생리통 때문에 몸이 안 좋다‘라고 말하는 것은 생리 가시화를 위한 나의 작은 노력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생리를 멈추는 시도를 한 여성들이 있다. 피임 시술을 통한 것인데 목적이 ‘생리 중단‘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몸에 장치를 삽입하는 게 마냥 가벼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고작 생리 때문에 그런 시술을 해?"라고 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생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솔깃하게들렸다. 이 고통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선택지가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생리를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리도 내 생활의 일부인데 왜 나는 그것을 사랑하지 못할까. 생리 자체가 초래하는 불편과 고통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생리하는 채로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에 속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리할 때 들어가는 비용, 시간, 에너지가 아깝고, 그 때문에 어느 정도는 경쟁선상에서 뒤처지는 기분을 느낀다. 그렇다면 나의 고통과 불편을 줄이는 선택지를 통해 이 사회에 맞춰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리중단시술은 여성의 생리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사회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타협이기도 하다. 저항과 타협, 우리는 그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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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아웃사이더 딕테 시리즈 1
오드리 로드 지음, 주해연.박미선 옮김 / 후마니타스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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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이며, 아들/딸을 키운 어머니이자 백인 여성 배우자와 함께 산, 시인이며 교육자, 연설가, 활동가인 영원한 아웃사이더. 어느 누가 그녀만큼 차이와 분노와 교차성과 관계에 대한 통찰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성, 인종, 계급, 나이에 의한 차이의 복합성을 흡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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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1-08 08: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벌써요….!!! 😲 👍👍👍

햇살과함께 2024-01-08 18:01   좋아요 0 | URL
이거 한 번 잡으면 술술 잘 읽혀요!!
오드리 로드 멋진 시스터입니당!!

다락방 2024-01-08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엄청 열심히 독서하시네요, 햇살과함께 님. 제가 자극받고 갑니다!! 부릉부릉-

햇살과함께 2024-01-08 18:02   좋아요 0 | URL
제가 이번 주말부터는 주말에 시간이 없을 예정이라,,,
공포의 권력 어쩌죠 ㅎㅎ 화..화이팅!!

은오 2024-01-09 04: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벌써 100자평이 올라오다니요?! 전 어제 시작했습니다. 뒤따라갈게요 햇살님!!!!! 😍
햇살님 100자평 읽으니까 기대가 더 커집니다. >.<

햇살과함께 2024-01-09 18:33   좋아요 2 | URL
은오님 빨리 읽어주세요 리뷰 기다려요!!
 

혐오와 분노의 차이
로드의 페미니즘 존재론과 시학, 교차성 이론과 차이의 이론, 관계론

1960년대로부터 배울 점

또 서로가 아닌 적을 정확히 겨냥해 우리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우리라는 게 뭔지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 P241

여러분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그게뭐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여러분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정확히 누구인가? 맬컴이 강조했던 대로, 우리가 억압받는 게 우리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잘못이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에겐 배운 게 있고, 우리가 물려받은 것들 중에는 유용한 것들이 있다. 우리에겐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이들이 준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우리는 그들보다 더 나아갈 수 있다. 우리에게는 나무도 있고, 물도 있고, 태양도 있고, 그리고 아이들이 있다. 맬컴 엑스는 우리가 읽는 그의 메마른 텍스트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맬컴은 우리가 그와 공유하는 비전을 따라 행동할 때 내뿜는 에너지 속에살아 있다. 우리는 현재의 거대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단단히 뭉쳐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역사의 일부가된다는 건 바로 그런 것이다. - P255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_흑인 여성, 혐오, 그리고 분노

흑인 여성으로서 내가 가진 분노는 내 존재의 심장부에 응어리진 늪이자 내가 가장 치열하게 지켜 온 비밀이다. 그 누구보다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나는 내 삶이 얼마나 이런 분노의 그물로 뒤엉켜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분노는 내가 그려 넣은 내 삶의본질들이 새겨져 있는 감정의 태피스트리를 구성하는 실이며, 들불처럼 솟아올라 내 의식 밖으로 솟구치는, 폭발하기 직전의 펄펄끓는 뜨거운 샘물이다. 이 분노를 부인하기보다 정확히 어떻게 단련할 것인가가 내 삶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 P281

어머니는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몸소 내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셨다. 그녀의 침묵에서 나는 고독과 분노, 불신과 자기 거부, 그리고 슬픔을 배웠다. 나의 생존은 어머니가 내게 준 무기들을 사용하는 법과 내 안에 존재하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것들에맞서 싸우는 법을 익히는 데 달려 있었다. - P290

분노: 과도하거나 오도된 것일 수 있을지언정 반드시 유해한것만은 아닌 불쾌의 정념. 혐오: 아주 싫어하는 감정이 적의와 결합된 감정적 습관 혹은 마음의 태도. 분노는 잘 활용하면 파괴적이지 않지만, 혐오는 파괴적이다. - P294

나만 아는 언어로 당신에게 다가가려 한 것은 아닌가? 당신은 당신만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언어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우리 사이의 차이를 가로질러 당신의 말을 경청하려 든다면, 당신도 나의 말을 경청하게 될까? - P317

우리는 서로의 창조적인 측면을 인정하고 키워 줘야 한다. 이는 무엇이 창조될지를 알고서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서로를 좀 더 소중히여긴다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서로의 눈동자에 어린 인정해 주는 마음을 소중히 여기게 되며, 자기 자신과 서로를 바라보는 비전들 사이의 균형을 맞추게 될 것이다. 돌보기 Mothering.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하는 힘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정하는것, 그리고 이 힘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사람마다 다를 수있음을 아는 것. 그리고 오로지 이 힘을 활용함으로써만 우리가효과적으로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음을 아는 것. 돌본다는 것은약하고 겁먹고 손상된 것의 잔여물을 전혀 경멸하지 않고ㅡ보듬어 주는 것을 뜻하며, 생존과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사용할수 있는 것을 지켜 내고 응원함을 뜻하며, 차이를 서로 함께 탐색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을 뜻한다. - P334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에 앞서,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기에 앞서,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당신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가기에 앞서 우리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알자. - P336

옮긴이 해제

대표적으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출간 3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그다음 해 발표한 「나이, 인종, 계급, 성」, 그리고 (1980년 미국여성학회의 기조연설 초청을 구색 맞추기 정치라 보고 이를거부하고 인종차별을 의제로 삼을 것을 강력히 주장하여 마침내) 1981년대회에서* 기조연설로 발표한 「분노의 활용은 주류 페미니스트들의 개량주의를 비판한다. 이 세 편의 글에서 로드는 여성의 연대를 강조하는 자매애 정치는 유색인 여성과 퀴어 여성을 억압한다는 점을 폭로한다. 즉 로드는 자매애 운운하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의 이론과 정치가 개량주의적인 것임을 규명한다. 인종차별과계급 차별과 동성애 혐오를 인식하지 못하는 개량주의를 넘어 페미니즘 정치와 이론을 더욱 급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P344

특히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는 로드가 미국 사회에서 흑인 여성으로서 경험한 가장 어려운 문제를 다룬 글이자 이 책에 실린 글들 중 가장 심오한 분석과 통찰을 담은 글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앞서 언급한 세 편의 글(「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꾼다는 것」, 「시는 사치가 아니다」, 「성애의 활용」은 가장 억압된 것에서 가장 강한 힘의 원천을 찾아내는 페미니즘 존재론을 제시한다. 페미니즘 존재론은 여성을 주체로 정의한다. - P347

둘째, 로드는 흑인 여성의 관점과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의 권력 구조를 분석한다. 이런 분석에서 핵심적인 것은 바로교차적 관점과 접근틀이다. 실로 로드는 여섯 편의 글- 「표면에 흠집내기」, 「성차별주의」, 「메리 데일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나이, 인종, 계급, 성」, 「분노의 활용」에서 교차성을 선구적으로 이론화한다. 이 글들에서 로드는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가 인종차별, 나이 차별, 계급 차별 등과 맞물려 작동하면서 서로를 강화하는 권력 구조를 분석한다. - P348

페미니즘 존재론과 시학, 교차성 이론과 차이의 이론에 이어 이 책을 구성하는 세 번째 부분은 관계론이다. 「분노의 활용」, 1960년대로부터 배울 점」,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우리가 따로 또 함께 사회를 바꾸려 노력하면서 부딪히는 심리적 난관을 살펴보는 글들이다. 로드의 시학은 여성임을 긍정하는 존재론이고, 로드의 교차성 이론은 이 시학을 가동하는 정치학이다. 시학과 정치는 여성 개인의 힘과 집단의 힘을 길러 준다. 그런데 우리도 경험한 대로, 자기 변화는 곧장 사회 변화로 이어지지 않으며, 사회 변화가 나의 변화를 촉발하지 않을 때도 많다. 로드의 관계론은 감정 연구를 통해 자기 변화와 사회 변화를 연결한다. - P350

미국 사회를 떠받치는 심리적 구조로서의 흑인 여성 혐오는 흑인 여성 개개인의 마음속에 자기혐오로 자리 잡는다. 흑인 여성의자기혐오는 흑인 여성들끼리의 다정한 관계에 대한 갈망을 키우지만 이 갈망은 결코 채워지지 못한다. 이 갈망의 뿌리는 자기혐오이기 때문이다. 대신 이 자기혐오는 흑인 여성들 사이에서 "학습된 잔인함" (320), 거리 두기, 분노로 표출되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자신을 부정하는 자기혐오는 흑인 여성 혐오를 내 안에 내면화한 것이기에 흑인 여성들 사이의 유대 관계도 가로막는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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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젝시옹, 아브젝트, 공포

‘이 모호함의 답답함·고통·현기증’이라니 딱 이 책을 읽는 나의 상태 아닌가! 😰
아브젝시옹이란 무엇인가, 아브젝시옹은 모든 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도스토예프스키 <악령>
프루스트 <소돔과 고모라-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조이스 <피네건의 경야>
보르헤스 <알레프>

역자 서문

대략 1973년부터 정신분석적인 관점에 지배당하기 시작하는 크리스테바의 이론적 작업은, 언어 주체 이론과 의미 작용의 과정에 주안점을 두기 시작한다. 이같은 관심의 결실로 1974년에 출간된 국가 박사 학위 논문인 《시적 언어의 혁명》은, 크리스테바의 언어에 대한 이론적 작업의 사실상의 결실이라고 할 만한 대작이다. - P12

1980년에 쓴《공포의 권력》이 공포와 비열함에 대한 이야기라면, 1983년의 《사랑의 역사》에서는 동서고금의 문학·역사·종교 - P12

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를 개진하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테바에게 공포와 비열함/성스러움과 사랑은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므로, 전자와 후자는 동전의 앞뒤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 P13

1. 아브젝시옹에 대한 방법론

아브젝시옹이 나를 점령할 때, 이 정서로 이루어진 덩어리는 사실 어떤 정의된 대상(objet) 자체가 아니다. 아브젝트(abject)는 내가 명명하고 상상할 수 있는, 내 앞에 있는 대상(ob-jet)이 아니다. - P21

음식물에 대한 혐오는 아마도 가장 오래 되고 기본적인 형태의아브젝시옹일 것이다. 우유의 표면에 손톱 부스러기처럼 보기 흉아이우우하고 잎담배를 마는 종이처럼 얇은 막이 생겼을 때, 그것이 눈에 아띄거나 혹은 입술에 닿았을 때, 목구멍을 지나 좀더 아래로 위장과 배로 내려가 모든 내장은 경련을 일으키고 눈물과 담즙이 분비되고 가슴이 방망이질치며, 이마와 양손에는 땀이 맺힌다. 시선을들끓게 하는 현기증과 함께 이 유지방을 향한 구토로 몸이 휘는데, 이때 나는 유지방을 내게 내민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분리된다. 이 음식, 즉 우유는 그들의 욕망일 뿐 나는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고,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아서 ‘내‘ 속에서 그것을 몰아낸다. 그러나 부모의 욕망 속에만 존재하는 ‘자아‘에게 이 음식은 ‘타자‘가 아니므로, 결국 ‘내‘가 놓여진 자리를 가능케 하는 움직임으로 나는 몰아내고 침뱉고 버린다. 이 하찮고 무의미한 것, 그러나 그들이 바라고 중요하게 생각해서 내게 부과한 사소한 것은 내 창자를 꼬이게 하고, 나를 마치뒤집힌 장갑처럼 만들어 놓는다. - P23

이처럼 시체는 삶 속에 죽음이 들끓게 한다. 대상에 대해서처럼, 우리는 아브젝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도 분리될수도 없다. 상상적 이질성인 동시에 현실의 위협인 아브젝트는 우리를 부르고, 결국에 가서는 삼켜 버린다. - P25

아브젝트에 점령당한 사람은, 스스로를 인식하거나 욕망하거나 어딘가에 속한다기보다는 밀려나고 분리되고 방황하는 존재에 더 가깝다. - P30

왜냐하면 아브젝트가 희열을 느끼는 곳은 배제된 영역에서의 길잃음 속에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분열시키는 아브젝트는 필경 부단히 회상되는 운명을 가진 망각의 땅일 것이다. - P31

아브젝트는 주체와도, 대상과도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아가 타자 속에서 스스로를 비추기 위해 자신의 영상을 무너뜨린깨어진 거울 속에서 완전히, 또 욕망의 ‘a‘ 라는 대상이 폭발하는희열 속에서 나타날 뿐이다. 그것은 그저 변형된 자아가 된 ‘타자‘가 ‘내‘가 그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전락한 존재, 승화된 정신착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추락하도록 놓아두는 혐오스런 선물이요, 단지 경계일 뿐이다. 희열 속에 주체는 삼켜지지만, 반대로 타자는 혐오스러워짐으로써 자신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온순하게 순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왜 그토록많은 아브젝트의 희생자들이 매혹당한 희생자인가를 이해할 수있다.
경계선임에 틀림없는 아브젝시옹은 경계선 중에서도 모호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방해를 제거하면서 주체를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주체를 분리시키는 대신, 반대로 주체에게 끊임없는 위험을 고백할 뿐이기 때문이다. - P32

나는 내게 있어 더 이상은 동화될 수 없는 세상에서 기호들을 배제시키기 위해 순수한 상실 속에서 그것을 펼쳐 보인다. 명확히 하면 나는 다른 누구일 뿐이다. 자아의, 대상들의, 기호들의 출현에 있어서의 모방의 논리. 그러나 내가 ‘나‘를 찾으려 하거나 잃어버리거나 혹은 유희할 때 나는 이질적이 된다. 이 모호함의 답답함·고통·현기증은 반항의 폭력으로 그곳에서부터 대상과 기호들이 떠오르는 공간을 한계짓는다. 그것을 나의 영토라고 말해도 좋을 뒤틀리고 얽혀 있는 양가성(兩價性)을 지닌 이질성의 흐름은 변형된 자아로서, 내 속에 살고 있던 ‘타자‘가 혐오감으로 그렇게 지시하기 때문이다. - P33

그것은 환희이자 동시에 상실이다. 인식과 단어의 안쪽이 아닌, 항상 그것과 더불어 그것을 횡단하는 숭고함은 우리를 부풀리고 넘쳐나게 하며, 던져진 주체인 동시에 타자이자 터뜨리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은 일탈이자 구획의 불가능이고 완전한 결핍, 즐거움 매혹이다. - P36

따라서 누군가가 되기 전의 ‘나‘는 이차적인 과정을 통해 획득된 내가 아닌 분리되고 버려지고 아브젝트한 무엇이다. 같은 맥락에서 아브젝시옹은 나르시시즘의 전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아브젝시옹은 나르시시즘과 공존하는 동시에 영원히 그것을 약화시킨다. - P37

결국 아브젝시옹이란 일종의 나르시시즘의 위기이다. 즉 아브젝시옹만이 나르시시즘‘ 이라 불리는 이 상태의 덧없음을 증언하며, 신은 비난하는 질투로 그 사실에 침묵한다. 게다가 아브젝시옹은 나르시시즘(사물이나 개념에 대한)에 ‘외관‘을 부여한다. - P39

아브젝시옹은 죽음(자아의)을 거친 부활이다. 그것은 죽음의 충동을 삶과 새로운 의미 작용으로의 도약으로 변형시키는 연금술인 것이다. - P40

아브젝트는 도착성과 친척뻘이다. 아브젝트는 도착적인데, 내가 느끼는 아브젝시옹의 감정은 초자아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금지나 규칙 · 법을 무시하거나 파기하는 차원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왜곡시키고 곡해하고 부패시킬 뿐이다. 즉 그것들을 더 잘 부인하기 위해 실컷 이용하는 것이다. - P40

자신의 초자아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주체에게 있어 이와같은 글쓰기는, 도착성과 성격이 같은 어중간한 중간자로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도착성이 아브젝시옹을 야기시킬 차례이기 때문이다. 아브젝시옹의 텍스트는 초자아의 성격을 부드럽게 한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아브젝트를 상상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고, 언어의 유희라는 이동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관조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아브젝트와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P41

서구의 근대 사회에서 그리스도교가 위기를 맞고 있는 이때, 성서에서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젝시옹은 원시 사회의 오물 같은 것들과 합쳐지기 위해 문화적으로는 원죄 이전, 시기적으로는좀더 고대적인 것에서 그 공명하는 바를 찾아낸다. 우리의 미학적인 노력, 즉 상징적인 구조의 기반을 향한 하강은 ‘타자‘가 붕괴된세상의, 말하는 주체의 허물어질 듯한 한계를 회상하려는 것이다. 말하는 주체의 기원에 더 가까이 간다면, 그 밑이 보이지 않는 ‘근원‘은 원초적인 억압일 것이다. ‘타자‘가 보유하는 예술적 경험 속에서 ‘주체‘와 ‘대상‘은 동화 가능하고 사유 가능한 것들의 한계에서 서로를 배척하고, 대항하며 붕괴되고는 다시 시작하고 오염되고 구형받는다. 그것이 아브젝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로트레아몽· 프루스트 아르토 · 카프카.셀린……… 이들의 위대한 근대 문학은 이러한 영역 위에 펼쳐져 있다. - P43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아브젝트는 《악령》의 ‘대상‘이다. 그에게서 아브젝트는 인간 존재의 목적이나 행위 동기가 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작품 속의 인물들은 절대적 한계인 신(도덕·사회 · 종교 · 가족 • 개인사)을 완전히 거절함으로써 정말로 타락하여 인간존재 자체의 의미는 붕괴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브젝시옹은, 모든 의미와 인간성이 마치 재 속의 화염처럼 타올라 소멸되는 상태와 자아가 자신의 ‘타자‘와 대상을 잃어버리면서자살로 치닫는 결정적인 순간, 아니면 약속된 땅과의 화음이 절정에 이르는 황홀경 사이에서 동요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살하는키릴로프 또한 살인자인 스테판 베르호벤스키만큼이나 아브젝트하다. - P44

분석적인 언표의 ‘시적인‘ 탈중심화는, 미망에서 깨어난 슬픔 속에서 스스로를 인식한 순수성과 균형을 이루면서 아브젝시옹과의 근친 관계, 그것과의 공생 관계, 그리고 아브젝시옹에 대한 ‘앎‘을 증언한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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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08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에 언급된 책들중 아무것도 안읽었네요. 이럴 수가.. 그렇다면 공포의 권력 읽기 더 힘들겠죠 ㅠㅠ

햇살과함께 2024-01-08 18:00   좋아요 0 | URL
저걸 읽는다고 도움이 되지는 않을 듯요..... ㅎㅎ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에이드리언 리치, 투쟁, 저항, 능동적인 되기, 우리 사이의 차이, 죄책감, 혐오와 분노의 차이, 억압의 교차성과 동시성

남자아이

아들이든 딸이든 흑인 아이들을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그리하여 자멸로 치닫고 있는 이 괴물의 입속에서 키운다는 것은위험천만한 일이다. 우리 아이들은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 이와동시에 저항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살아남지 못할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은 내려놓는 법 역시 배워야 한다. - P106

바로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아들들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보호하고 내 자신의 고통을 던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내아들이 맞고 오자 나는 힘might이 곧 정의라는, 부패한 권력이 우리에게 가장 처음 가르치는 교훈을 아이에게 가르칠 참이었던 것이다. 나는 수세기에 걸쳐 진짜 힘과 용기가 무엇인지를 왜곡해왔던 그 짓을 내가 반복하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아니지, 싸우기 싫은데 싸울 필요는 없지. 하지만 어쨌든 싸우지 않은 것에 대해 아이 스스로도 그것이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은가. 뚱뚱한 아이였던 어린 시절, 깨진 안경을 쓴 채 허겁지겁 도망치던 그때의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그즈음 지혜로운 한 여성이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조너선에게 당신도 한때 겁먹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나요?" - P110

내가 아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딸에게 전해 준 것과 똑같은 것이다. 즉,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가르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내가 나답게 사는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 역시 이런 나를 보고 나처럼 되는 법이 아니라(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자기답게 사는 법을 터득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하려면 그는 세상이 원하는 대로 되라는시끄럽고 유혹적이며 위협적인 외부의 목소리가 아니라, 내면의 소리를 듣는 법을 익혀야만 한다.
이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 P112

에이드리언 리치와의 대화

여전히 뭔가를 분석적으로 사고한다thinking는 게 다른 사람들이나 하는불가사의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서인가요? 당신은 연습해야 가능한? 지금까지 해왔던 그런 방식이 아니라서?

그건 제게 정말 불가사의한 과정이었어요. 또 의심도 있었어요. [분석] 사고‘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수많은 잘못을보았고, 그래서 그것을 존중하지 않게 되었죠. 다른 한편으로저는 [분석적으로] 사고한다는 게 두렵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 P130

내 감정을 통해 삶에 대해 갖게 된 신념이나 결론이 그런 사고와는 어긋났거든요. 게다가 저는 그 신념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어요. 포기하고 싶지 않았죠. 제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고, 삶 그 자체였으니까요. 하지만 그걸 이해하거나 분석할 수 없었어요. 적어도 내가 배워 온 방식을 통해서는 말이에요. 내가 알지만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어요. - P131

당신에게 글쓰기와 가르치는 일은 어떤 관련이 있나요?

제게 가르친다는 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에요.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것 같아요.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가르치는 거예요. 제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것들을 배우게 되니까요. 저는 배우는 동시에 성찰하고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어찌 보면 저 스스로에게 떠들면서 가르치는 거라고도 볼 수 있죠. 그 시작은 투갈루칼리지에서 있었던 시창작 워크숍이었어요. - P132

알아요. 저도 두려워하며 강의실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제가 가졌던 건백인의 공포였죠. 내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듯한, 내가 가진 인종차별주의가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그런 공포요.

제게는 저만의 공포, 흑인의 공포가 있었어요. 저는 이 학생들에게 책임감을 느꼈어요. 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가 이 학생들에게 바라는 바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런 종류의 공포요. 어떻게 말을 할지,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창작 프로그램의 학생이기도 했던 친구욜란다가 이렇게 얘기해 줬죠. "그냥 나한테 이야기하듯이얘기하면 돼. 나도 학생이고 나는 네 말을 이해하니까." 강의시간마다 모든 게 다 하나하나 새로웠어요. 모든 걸 새로 하는 기분이었죠. 매주, 매일 저는 새로운 걸 배웠어요. 하지만그랬기 때문에 신이 났어요. - P144

이들에겐 거리에서 배운 삶의 지혜가 있었지만, 스스로를 흑인 여성으로서 성찰해 본 경험은 없었지요. 백인을 상대로만 생각하는 데 익숙했고요. 적이 항상 외부에만 있다는 듯이요. - P151

제가 그럴 수 있었던 건, 용감하거나 담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도 취약할 수밖에 없는 점이 너무나 많고 취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데, 내가 침묵함으로써 적의 손아귀에 또 다른무기를 쥐어 주어 더 취약해질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어요. 흑인 공동체에서 공개적으로 레즈비언으로 산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철저히 비밀로 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에요. - P154

우리가 이 투쟁에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저항하는 것, 그러면서 우리 존재의 모든 부분을 건드릴 수 있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뿐이에요. - P161

제가 일생 동안 씨름해 온 건 바로 이거 하나에요. 각종 상황들에 대한 내 지각을 보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동시에 바로잡는 법을 배우는 것. 이럴 경우 엄청난 저항과혹독한 심판을 받게 돼요. 그래서 오랜 시간 제 지각과 내면의 앎을 의심했었죠. 그것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거기 걸려 넘어지곤 했어요. - P166

"이 진실의 얼마큼이나 나는 볼 수 있을까 / 눈멀지 않고 /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이 고통의 얼마큼이나 / 나는 활용할 수 있을까?" 10 우리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붙들리는 건바로 그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없기 때문이죠. 필수적인 단계를 모면하려고 하니까요. 제가 흑인 학자』에 기고했던글11을 기억하나요? 그 글엔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한계도 있었어요. 제가 핵심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내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그것이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도 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글에서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어요. 저는 그 글을 계속 읽으면서,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 전 흑인 학자』라는 매체가 그걸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 그랬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죠. 나를 붙들어 맨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고, 그건 나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 P167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여성들 사이의 상호 의존은 우리 각자 내가 될 수 있는 자유의 길입니다. 이때 ‘나‘는 여성으로서의 효용 때문에 이용당하는존재가 아니라 창조적인 존재로서의 ‘나‘입니다. 이것은 수동적인임be과 능동적인 되기 being의 차이입니다.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단순히 관용하겠다는 것은 가장 역겨운 개량주의입니다. 이런 개량주의는 우리 삶에서 차이가 담당하는 창조적 역할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짓입니다. 차이는 단순히 관용의 대상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됩니다. 차이는 우리의 창의성이불꽃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극성polarities과도 같은 것으로 봐야 합니다. - P476

그래야만 여성들이 상호 의존의 필요성을 두려워하지 않게될 것입니다. 동등한 것으로 인정받는 서로 다른 힘들 사이의 상호 의존 속에서만, 우리는 그 어떤 지침이 없는 곳에서도 행동할수 있는 용기와 자양분, 그리고 이 세상에서 새로운 존재 방식을추구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P177

우리에게 생존은, 누가 눈살을 찌푸리든 손가락질을하든, 홀로 서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생존은 모두가잘 지낼 수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를 상상하고 그런 세상을만들기 위해 타자들, 즉 구조 바깥에 존재하는 아웃사이더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생존은 우리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우리의 힘으로 벼리는 법을 배우는일입니다.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주인의 도구로 그가 만들어 놓은 게임 안에서 일시적으로승리를 거둘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결코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수는 없습니다. 이 사실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은 주인의 집을 여전히 자신의 유일한 버팀목으로 생각하는 여성들뿐입니다. - P178

이 무시는 언제 끝날 것인가_제1회 유색인 레즈비언•게이 전국대회 기조연설

따라서 변화를 향한 우리의 움직임은 이와 같은 투쟁 과정에서 습득한 앎의 안내를 받아야 하며, 우리가 속한 공동체 내에서우리가 얻은 교훈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여러 억압과 분리될 수 없고, 또 그 억압이 모두 똑같은 것도 아니라는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 우리는 모두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합니다. 또 우리의 존엄과 자유를 향한 움직임은 모두 우리 공동체의 자매형제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교훈 역시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들이 이를 알아보는 비전을 지녔든 아니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이의 차이는, 우리를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각자의 개별성을 지키면서도 사회 변화를 위한 에너지를 생성하는 데 활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낡은 분할 통치 전략에 따라 서로를 의심과 공포의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사회화되었다 할지라도, 과거의 공포심을 기억하기보다 우리의 미래 비전을존중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그 공포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불굴의 개인적 노력과 변화에 대해 고통스럽더라도 검토해 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 P187

나이, 인종, 계급, 성

우리 사이엔 인종, 나이, 성이라는 매우 실제적인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차이 때문에 분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런 차이를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분열한다. 또 우리가 차이를 엉뚱한 이름으로 불러서 생기는 왜곡 때문에, 이 왜곡이 인간의 행동과 기대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분열한다. - P195

모든 예술형식 가운데 시가 가장 경제적이다. 시는 가장 비밀스런 형식을 지니며 최소한의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고 최소의 물질성을 띤다. 시는 근무를 교대하는 시간에, 병원 식기실에서, 지하철에서, 여분의 종잇조각에도 쓸 수 있는 예술형식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빠듯한 재정상태에서 소설 [자미: 내 이름의새로운 스펠링』Zami: A New Spelling of My Name]을 쓰면서, 나는 시 쓰기와 산문 쓰기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에 큰 차이가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가 우리에게도 문학이 있음을 드러내며 글을 쓰기 시작하자 시는 가난한 사람들, 노동계급, 유색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주요 형식이 되었다. 산문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도 필요하지만, 종이와 타자기도 필요하고, 시간도 많아야 한다. - P197

「여성으로서 우리는 어떤 문제는 공통적으로 공유하지만 어떤 문제는 그렇지 않다. 백인인 여러분은 자신의 아이가 자라나가부장제에 합류해 여러분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는 않을까 두렵겠지만,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차에서 끌려 나와 거리에서 총을맞고 죽을까 봐 두렵고 여러분이 우리 아이들이 죽어 가는 이유를외면할까 봐 두렵다. - P202

파울로 프레이리가 『페다고지: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1968) [남경태 옮김, 그린비,2009]에서 잘 보여 준 대로, 혁명적 변화의 진정한 초점은 우리가 벗어나고자 하는 억압적 상황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내면 깊숙이 이식된 억압자의 조각―그것으로 알수 있는 건 억압자들의 전술과 억압자들의 관계뿐이다―에 맞춰져야 한다.
변화는 성장을 의미한다. 성장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날카롭게 벼려 내야 한다. 동일한 목적을 공유하더라도 우리와 다르다고 정의되는 이들과 함께 작 - P209

업하고 투쟁하는 가운데 자아를 드러냄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정의해야 한다. 흑인과 백인, 노인과 청년, 레즈비언과 이성애 여성 모두에게 이것이 새로운 생존의 길이다.

우리는 서로를 선택했고
각자 날을 세워 싸운다
전쟁은 늘 똑같다
우리가 진다면
죽은 행성은
여자들의 피로 뒤덮일 것이다
우리가 이긴다면
모르겠다
우리가 역사 너머
새롭고 더 많은 가능성을 품은 관계를 갖게 될지 - P210

분오의 활용

이 혐오와 우리가 느끼는 분노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혐오는 우리와는 추구하는 목표가 다른 자들의 격분 fury이며, 그 목적은 죽음과 파괴입니다. 분노란 우리들 사이의 왜곡된 관계를 슬퍼하는 감정이고, 그 목적은 변화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性 말고는 모든 차이가 파괴의 요인이라고 배웠습니다. 따라서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이 서로의 분노를 침묵하지도 부인하지도 죄책감에 빠지는 일도 없이 똑바로 직면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단적이며 새로운 일입니다. 이는즉 우리가 공통의 토대에서 만나 차이에 대해 성찰하고 역사가 우리의 차이에 대해 왜곡해 놓은 것들을 고쳐 나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은 바로 이런 왜곡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나서 우린 이렇게 자문해 봐야 합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이득을 보는 자들은 누구인가? - P221

여러분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감정 상하지 않도록, 분노로 화답하는 일이 없도록 제 분노를 숨길 수는 없습니다. 숨긴다면 이는 우리가 그동안 해온 모든 노력을 욕보이며 사소한 것으로치부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은 분노에 대한 반응이 아닙니다. 죄책감은 자기 스스로 하거나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반응입니다. 죄책감이 변화로 이어진다면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죄책감이 아니라 삶의 시작점이 될것입니다. 그렇지만 죄책감은 무력감, 즉 소통을 파괴하는 방어심리의 다른 이름일 뿐인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무지와 현상 유지를 두둔하는 장치, 그 어떤 변화도 막아 주는 최고의 보호책이되는 거죠.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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