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정희진의 글쓰기 5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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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통섭, 횡단의 정치. 쓰기가 최고의 공부라는 말, 몇자 안되는 글 쓰면서도 턱턱 막히는 나에게 절실히 다가오는 말. 보수의 반대말이 공부라는 말도. 보수적, 방어적이 되지 않게 계속 공부하자. <정희진의 공부>를 계속 들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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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근본주의
문화 담론
권력관계와 문화적 실천의 밀접한 관계
민족성과 문화
타자성
다문화주의적 관점
근본주의

문화 어렵네. 결론을 읽어도 이해안됨…

3장 문화 재생산과 젠더 관계

문화개념은 프리드먼이 설명한 보편주의적 문화 패러다임을 주장하는이들과 상대주의적 문화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이들의 주기적 논쟁을 통해오랫동안 결정되어 왔다. - P79

이들 두 관점의 차이와 꾸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파르타 차테르지가지적해 왔듯(Chatterjee, 1986), ‘문화‘가 상징이라는 고정되고 고유한 ‘문화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본질주의적 관점이 있다. 이들의 방식은 특정국가와 민족 집단체의 문화들을 일관되게, 아무 문제 없이 구성한다. 때문에 이들 두 방식 중 어느 것도 위치설정의 내적 차별과 차이들은 설명할수없다.
문화를 이론화하는 훨씬 유용한 방식이 지난 몇 년간 그람시와 푸코에게 영감을 받은 담론 분석을 이용하여 발전했다. 이에 따르면 문화는 국가공동체와 민족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공통된 정적이고 구체화된 동질적현상의 형태였으나, 경쟁이 치열한 장소에서 작동하는 역동적인 사회적 과정의 형태로 바뀌었고 여기에서 여러 목소리들이 많게든 적게든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세상에 대한 해석을 내놓게 된다(Bhabha, 1994a; Bottomley, 1992; Friedman, 1994). 문화 담론은 종종 공유된 출발점이라기보다 의미의 전쟁터를 닮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적 동질성은 헤게모니화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수행체의 사회적 위치설정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면 그 사회의 주변이 아닌 중심에서 언제나 한정적이며 뚜렷할 것이다. 질 보텀리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문화‘는 세상을 살아가는 특별한 방식들을 기술하는 사상·신념·실천의 측 - P80

면에서 차이를 두려워하는 이들에 의한 동질화와 평가절하, 그리고 주변화에 대한 의식적 및 무의식적 저항 형식을 발생시키기도 한다.(Bottomley, 1993:12) - P81

반드시 알아둘 점은 안정화와 지속성의 경향, 지속적인 저항과 변화의경향이라는 모순되면서도 공존하는 이 두 요소들이 문화에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두 경향은 모두 권력 관계와 문화적 실천의 밀접한 관계에서 비롯된다(Bourdieu, 1977; Bottomley, 1992). - P81

문화는 시간의 차원과 분리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회적 맥락과 공간적 맥락 안에서 모두 작동한다(Massey, 1994). 다른 위치에 처한 문화는 사회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집단체의 안과 밖 모두에서 명료화되고 사용되는방식이 다르다. 게르트 바우만이 지적한바, 지배 담론이 문화와 공동체의일치를 가정하는 반면, 대중 담론은 이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Bauman, 1994). 이러한 ‘대중‘ 담론의 분명한 예가 ‘사우설의 흑인자매들‘Southall BlackSisters과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여성들Women Against Fundamentalism이 사우설의 가정폭력반대 시위와 이슬람주의자들의 반루시디 시위‘에서 불렀던구호, "우리의 전통은 저항이요, 항복이 아니다!"이다. - P84

특히 종종 여성들에게 이러한 ‘재현의 짐‘이 요구되는데, 이는 여성이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집단체의 정체성과 명예의 전달자라는 상징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클라우디아 쿤즈는 히틀러 청년 운동 당시 소년소녀들에게 주어졌던 여러 모토들을 인용한다(Koonz, 1886: 196). 소녀들을 위한 모토는 "정숙하여라, 순결하라, 독일인이어라"였다. 한편 소년들을위한 모토는 "충실히 살아라, 용감히 싸워라, 죽을 때 웃어라"였다. 소년의민족적 의무는 민족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이다. 소녀들은 행동할 필요가 없었다. 이들이 해야 했던 것은 민족의 구현이었다. - P88

예를 들면, 1950년 남아프리카에 관한 도리스 레싱Dorris Lessing의 소설 『풀잎이 노래하고 있네"Grass is Singing와 1958년 이스라엘에 관한 아모스 오즈Amos Oz의 『나의 미카엘My Michael, 1960년대 미국에 관한 하퍼 리Harper Lee의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 Bird에서 공통된 문학주제는 헤게모니 집단체에서 힘을 상실하고 고립된 여성이 인종차별을 받는 집단체에서 하인이나 노동자로 있어상대하기 쉬운 남자와의 성관계를 상상하거나 때로는 실제로 과감하게 발전시키는 내용이다. 이러한 내러티브에서 헤게모니 집단체의 남성들은 ‘타자‘를 열등하고 비문명화된 존재로 보는 한편, 그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며, 그를 섹스와 욕망에 전능하다고 보기도 한다. 신화[또는허구인 경우가 좀더 많긴 했지만 백인 여성과의 실제 성관계는 이러한 담론 안에서 오직 강간으로 구성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경우 흑인 남성의 처형은 흔히 합리화되었다. 강간범으로서의 ‘타자‘ 신화는 인종을 차별하는여러 맥락에서는 흔한 이야기다. 테레사 웜(Wobbe, 1995:92)이 주장하듯, 이방인들에 의한 젠더화된 도전이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에서 구성된다는 점은 인종차별의 폭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이러한 구성의 중심에는 이방인 남성이 ‘우리‘ 여성을 희롱, 위협하거나 또는 실제로 강간할때, 우리 여성의 정조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전형이 있다. - P99

호미 바바는 문화 다원주의의 대안이 될 역동적인 모델을 개발했다(BhaBha, 1990; 1994a; 1994b). 공간/시간, 구조/과정의 구분을 없애고,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국가에 구성된 경계와 그 집단의 문화 담론을 구성하는 내러티브들의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경쟁하는 성격을 강조하면서, 바바가 주목한 것은 대항 내러티브들이다. 대항 내러티브는 국가의 주변에서즉 이민이나 추방 때문에 하나 이상의 문화를 살았던 국가 또는 문화의 ‘혼종들‘에서 등장한다. 이러한 혼종들은 자신을 채택한 국가가 ‘총체화하는경계들‘을 환기시키기도 하고 삭제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대항 내러티브들이 이민자 소수집단에서 비롯될 필요는 없다. 토착민족들의 커져 가는목소리들이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대항 내러티브의 한 예다. 더욱이 ‘국가‘의 경계에 대한 대항 내러티브들은 구 유고슬라비아와 소비에트 국가들을붕괴시켰으며, 다른 민족 공동체들에서도 그만큼 급진적이지는 않았지만민족과 그 경계의 구성은 어디에서나 꾸준한 논쟁거리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점은 호미 바바가 고려하지 못한 것, 곧 ‘대항 내러티브들‘이, 그 형식에 있어서는 급진적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메시지 자체가 진보적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 P112

알렉산드라 올룬드(Alund, 1995)가 지적하듯, 인간 존재는 "경계없이 경계를 긋는 창조물이다. 문화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존재의 경계를표시하려는 인간의 요구와 인간들 사이에 놓인 경계를 사회적으로 넘어설수 있는 능력 사이에는 미묘한 변증법적 관계가 있다. - P121

이 장에서 논의된 모든 문제들과 관련하여 정체성과 차이의 문화적 구성물들에 대한 젠더 관계와 섹슈얼리티의 중심성을 도출해 보았다. 헤게모니 문화는 세계의 의미와 사회질서의 성격에 대해 특정 관점을 제시한다. 남녀 관계는 이러한 전망을 위해 중요하며, 이 점에서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남성들의 여성 통제가 중요하다. 여성들은 종종 집단체의, 집단체 경계의 문화적 상징으로, 집단체의 ‘명예‘의 잉태/전달자이자 세대를 잇는 집단체 문화재생산자로 구성된다. 특정 법령과 규제들은 ‘올바른‘ 남자와 ‘올바른‘ 여자란 누구/무엇이며 집단체 구성원들의 정체성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정의하면서 대체로 발전한다. 식민과 종속 과정에서 비롯되는 권한 박탈의 감정들은 식민화된 남성들을 통해 종종 남성성 박탈과/이나 여성화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저항과 해방의 과정에서 남성의 그리고 더러는보다 중요하게 여성의 역할 (재)구성은 대부분의 이러한 투쟁에서 중심이었다. 그러나 문화들이 동질적이지 않은 만큼 그리고 특정 헤게모니 문화구성물들이 집단체 안에서 지배적인 지도력의 관심과 밀접한 관계가 있 - P127

는 만큼, 이러한 헤게모니 구성물들은 종종 이러한 헤게모니 기획을 지향하는 입장을 거스르기도 한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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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6-16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어렵더라고요 ㅠㅠ

햇살과함께 2024-06-17 14:22   좋아요 0 | URL
아.. 세상 어렵네요. 마리아 미즈님처럼 이해하기 쉽게 쓸 수 없나요??
 

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쓰기와 실험외에 모르는 것을 아는 방법은 많지 않다. 생각과 읽기가 공부의 주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수학 공부의이치와 비슷하다. 남이 풀어놓은 것을 이해하는 능력(읽기)과자기가 직접 푸는 능력(쓰기)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수학 점수가 안 오르는 지름길이다. - P138

이는 거기서 멈추고 다시 질문해야 한다는 좋은 신호이다. 이럴때는 글쓰기를 정지하고 모든 것을 재점검해야 한다. 쓰다가길을 잃은 느낌이 드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최초의 문제의식과 다른 내용을 쓰고 있거나, 자기 생각을 뒷받침할 사유틀(‘이론‘)을 찾지 못해 ‘이론을 창시하는 고통을 겪고 있거나, 사례가 적절하지 않거나, 애초에 문제의식 자체가 틀렸다거나....... - P139

3장

이 책 전체를 통해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바는 융합의 정확한 의미다. 머리말에서 말한 대로 융합의 가장 근접한 번역은 ‘횡단橫斷)의 정치(trans/versal politics)‘다. 글자 그대로 횡단보도는 필요한 구역마다 길을 가로질러 ‘끊어놓은 것‘이다. 교통량이 적은 지역에는 횡단보도가 많지 않다. 불필요해서다. 횡단의 정치는 사고를 교차하거나 기존 의미의 문지방을 넘어(횡단해) 사회 변화(trans/formation)를 추구한다. 며칠 전 읽은 책에서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국가 경계를 넘어서)을 ‘국가적‘이라고 번역한 표기를 보았다. 한자 병기는 없었는데, 아마가로질러 관통(通)한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 - P147

융합은 사회가 요구하는 가로지르기이며 앎의 변화다. 여기서 필요한 태도는 아는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다른 입장에대한 탐구력이다. 평생 확신해 왔던 자기 인식과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새로운 진실에 맞닥뜨리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간혹 지적이고 윤리적인 이들은 극심한 혼란을 겪고 ‘낭인‘이 되기도 하지만(영화 <타인의 삶>을 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자신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 P155

그래서 나는 보수의 반대말이 공부라고 생각한다. ‘진보‘도 공부하지 않으면 보수적, 방어적이 된다. - P163

융합은 환원주의와 반대의 길을 간다. 환원주의가 멈춤이라면 융합은 지속적인 이동, 재해석이다. 재해석은 창의력의 발판이고, 창의력이 필요한 이유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융합 능력, 즉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기존의 언어를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른 앎과 만나 혼란을 느끼면서 기존 개념에 의문을 품고, 차이와 경계의 기준을 재설정해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사안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환원주의는 이런 과정이 필요 없다. 현실을 자신이 믿는 공식에끼워 맞추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면 끝이다. ‘적용‘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문제는 현실이 언제나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 P179

4장

사실 그의 이론을 비롯해 많은 경제학 이론은 남성 지식인들이 스스로 인식하든 안 하든 간에, 여성주의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1980년대 초반부터 이미 여성주의 경제학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invisible hands)‘이 아니라 인지, 지식, 돌봄, 감정 노동 같은 ‘보이지 않는 마음(invisible heart)‘이라고 주장해 왔다. - P193

대개 기본 소득을 부의 재분배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사회적 관계 속 존재 자체에 대한 대가다. 물론 그 액수는 사회마다, 구성원마다 다를 수 있다. 인간의 경제 활동을 ‘노동‘보다 ‘기여분‘으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기본 소득을 받게 되면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데, 실상 임금 노동자의 ‘억울함‘은 사회 전체의 부를 나눔으로써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자본가의 횡포, 금융 자본의 ‘장난‘으로 인한 것이다. - P195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로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증명했지만, 그 이론은 지구 밖에서만 실현 가능하다. 즉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는 체현되지않는 지식을 생산해 온 백인 남성 중심 사고의 전형이다. <제2의 성>만큼 남성의 초월성 욕망을 날카롭게 비판한 책도 드물것이다. 보부아르는 노예와 여성은 노동하는 ‘내재적 존재로서열등하고, 지식인 부자 남성은 세상사로부터 벗어난 ‘초월적‘이고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을 ‘만악의 근원‘으로 보았다. 이 인식에 따르면 여성은 평생 일상에 매여 사유와 지식 생산의 주체가될 수 없으며 기껏해야 남성이 상상한 ‘어머니 대지‘가 될 뿐이었다. 문학사에서 거의 모든 비유는 젠더, 몸, 자연, 공간과 관련되는데, 이는 남성의 사유가 투사된 것이다. - P213

객관성은 중립의 대명사다. 그래서 진리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너의 객관‘이 ‘내겐 폭력‘인 경우가 많다. - P222

공부를 잘하는 첫 번째 방법은 기존 지식이 형성된 전제提)를 질문하는 것이다. 그러면 답은 ‘저절로 나온다. 모든 지식에는 전제(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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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
김영우 <제가 해보니 나름 할 만합니다>

2장

공식적인 주권 회복, 즉 제국주의 지배가 끝난 이후에도(한국의 경우는 8.15 광복) 문화적·경제적 지배가 지속되는 상황을지적하고 이에 대한 각성을 주장하는 탈식민주의(후기식민주의)사상은 프란츠 파농에서 시작되었다. 스물여섯에 쓴 파농의 대표작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기존의 이론을 응용한, 파급력이 큰 저서라는 점에서 융합을 상징한다. 구조적이든 개인적이든 지배/피지배의 인간관계는 문명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파의 ‘검문‘을 피하지 않고는 지난 세기를 말할 수 없다. 식민주의 심리학의 창시자인 파농은 정신분석학과 정치경제학을결합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를 사유한남성이었지만, 동시에 그 자신의 이성애자 남성성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파농 이후 흑인 인권 운동과 탈식민주의 사상은 진전을 거듭했다. - P87

파농의 가장 큰 업적은 헤겔과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재해석하고 전복한 데 있다. 헤겔 변증법의핵심은 주인과 노예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역동적 상호 관계다. 그래서 타인을 억압하는 사람은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고 노예의 투쟁은 주인을 구원한다. 덕분에 1980년대 한국 사회는 잠시나마 ‘노동자가 투쟁으로 자본가를 해방시킨다‘는 논리가 가능했다. - P88

지금의 자본주의는 파농의 다른 고전 제목대로 우리를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로 만들었다. 우리는 착취하는 자의 언어로 말하고 그들을 더 걱정한다. - P90

분단(分) 체제의 기반은 이분법이고, 이분법은 문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논리다.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의 문해력이 낮은 근본 원인은 분단과 식민주의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 남한 사회의 문해력은 외부의 기준에 따라 좌우됐다. 반미, 반북, 친일...... 이와 관련한 언설이 그자체로 ‘생명줄‘이거나 ‘반(反)국가‘인 사회에서 어떻게 문해력을 논하겠는가. 국가보안법은 국가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폭력이라는 점에서 인간과 지식 모두를 압살해 왔다. 그러나 색깔론도 국가보안법도 여전히 활발히 작동하고 있다. - P94

산업자본주의 시기에는 몸을 써서 노동(공부)을 함으로써 사회 성원권을 인정받았다. 잘하든 못하든 간에 노동은 미덕이었다. 지금은 소비 주체의 시대다. 소비가 곧 노동이다. 온라인 공간에 오래 머물면서 포털 사이트에 자기 시간을 제공하는 소비행위(검색)가 공부가 되었다. 이 대세를 거스를 기력이 있는가. 하향 평준화는 필연이다. ‘긴 글‘이나 조금만 익숙하지 않은 문장에도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근본적으로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이 없는 셈이다. - P96

문해력은 자신의 가치관과 무지에 대한 자기 인식의 문제다. 그러므로 문해력 향상의 첫걸음은 에포케(epoche, 판단 정지)이다. ‘나는 모른다‘는 자세가 공부의 시작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해력부터 의심해야 한다. 물론 우리 몸에는 이미많은 의미들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무지하다고 가정하는 데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가 중노동인 이유다.
잠깐의 판단 중지. 그 잠깐의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앎은 자기 진화의 과정이지 시비를 판단하는 행위가 아니다. 지식을 하나의 고정된 정보로 여기는 이들은 타인을 ‘가르치려 들지만, 알아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들은 우리를 ‘가르친다. - P98

동무(同舞)는 독무(獨舞)가 전제되어야 한다. 운이 좋으면 아름다운 결과가 나온다. 많은 이들이 그 어감 때문에 융합이 무언가를 합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융합은 합하는 작업이 아니라 융합하는 개별적 몸들이 접속하는 상태다. 융합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각자의 가치관이 충돌하여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인과 충돌할 자기만의 몸이있어야 한다. 이처럼 도반은 믿을 만한, 편한 길동무라기보다는자극과 긴장 관계에 가깝다. - P104

그래서 앎의 궁극적 목적은 배제 없는 ‘온전함(holism)‘이다. 온전함은 경계, 선입견 없이 모든 것을수용하는 자유로운 가능성의 상태를 말한다. 그러려면 일단 우리의 온 몸을 비우는 노력, 적어도 상상이라도 자주 해야 한다. - P108

분과 학문이 아니라 가치관을 중심으로 한 분류가 융합이다. - P111

하지만 융합은 주체(사람)와 가치관의 문제이다. 1979년, 이화여대에서 출간한 《여성학》은 ‘여성의 정치 참여 형태‘ ‘경제발전과 여성의 지위‘ ‘여성 연구의 인류학적 접근‘ ‘여성 생리와 영향‘ 등 기존 학문과 ‘여성‘을 연결하고 책의 서두에는 ‘여성 해방 운동의 이념‘(정의숙) ‘여성 문제의 본질과 방향‘(윤후정) - P116

‘여성과 사회 구조‘(이효재)를 실었다. 지금 읽어도 융합의 모델로서 손색이 없는 선구적인 시도이다. - P117

공부의 기준이 다양한 사회만이 대안이다. ‘사다리‘가 하나인 것도 문제지만 그 사다리를 우리 스스로절대화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비교적 평등한 사회에서도 학력격차는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인권 침해, 취업 불평등, 인격 모독으로 연결되지 않는 문화 만들기가 훨씬 중요하다. - P123

김영우 작가의 책 《제가 해보니 나름 할 만합니다》에는 대한민국 ‘진보적 부모‘의 솔직한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자녀가세상에 대한 건강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춘, ‘그러면서도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학생이 되길 바란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아이를 다르게 키우고 싶었다. 실은 이런 마음도 욕망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알아서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부모가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은퇴자금을 사교육비로 날리지 않도록, 자녀가 스스로 알아서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좋고 ‘부모 고마운 줄도 알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런 ‘천사‘는 많지 않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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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여성과 생물학적 국민 재생산

민족의 조직원리인 ‘한핏줄‘의 중요성은 다양하다. 스위스나 벨기에 같은 몇몇 국가에서는 몇몇 특정 민족 집단들이 ‘국가‘를 구성한다. 미국이나 호주와 같은 정착민 사회에서는 ‘한핏줄‘보다 ‘같은 운명‘common destiny이 ‘국가‘ 구성의 주요 요소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통‘origin과 문화에 있어서 그 바람직한 위계질서가 표면상으로는 아니더라도 암묵적으로 존재하며, 이민 및 출산정책을 포함한 국가 수립과정의 기저를 이룬다(Stasiulis and Yuval-Davis, 1995). 이주자, 이민자, 난민으로서의 여성의 위치는 민족주의 경계 구축에 깊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국가의 차별적 출산정책은 ‘국가‘에 있는 모든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P60

그럼에도 대리모와 입양은 여성들이 아이를 갖도록 혹은 갖지 못하도록─혹은 특정 성의 아이를 갖도록-장려하는가, 단념시키는가 혹은강요하는가의 문제가 특정 역사적 시기의 민족주의 기획을 구성하는 헤게모니 담론에 달려 있다. 아래 세 가지 주요 담론 가운데 하나정도는 민족주의 인구통제 정책보다 우위에 있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내가 인구의 힘‘이라 한 담론과, 우생학 담론, 맬서스 담론이다. 이 장의 다음 부분에서는 이담론들을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정책의 실제 이행과정들이나 이들에대한 여성들의 반응들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은 이 책의 영역 밖이다. - P62

여성들에게 보다 많은 아이를 낳으라는 압력은 또한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일례로, 러시아에서 출산장려정책은 혁명과 내전에 이은 인구고갈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었다(Riley, 1981b: 193; Portuguese, 1996: 48). 이스라엘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출산장려 이데올로기들이 시온주의 정착기획뿐만 아니라 6백만 유태인들이사망했던 나치 홀로코스트 후유증과도 연관이 있었다. 아이가 없다는 것은또는 유태인 공동체 ‘밖‘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것조차 ‘인구학적 홀로코스트‘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1980년대 초기, 내무성의 한 원로공무원은 합법적 낙태를 고려했던 유태인 여성들에게 낙태된 태아는 살해된 유아라는 흔한 낙태반대 운동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나치 집단수용소의 유태어린이 이미지가 등장하는 비디오를 강제로 시청하게 하려고 시도했(으나 다행히 실패했)다(Yuval-Davis, 1989:99).
물론 SS[슈츠스타펠Schutzstaffel, 나치 친위대] 남성들에게 ‘순수 혈통‘의 아리안 여성들과 함께 가능한 한 많은 아이의 부모가 되도록 독려했을때에도 민족을 위해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고도의 여성억압이 생명의 샘Lebensborn 5프로그램과 함께 나치 독일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나치들은 어떤 여성들에게는 아이를 가지라고 강요하면서 동시에 어떤 여성들에게는갖지 말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이는 여성의 국민 재생산에 관한 우생학 담론에서 비롯되었다. "여성을 위해 남성들이 투쟁하는 이유는 오직 가장 건강한 이를 통해 번식시킬 권리 혹은 기회를 얻기 위함이다" (Hitler, MeinKampf. Koonz, 1986: 402 에서 재인용). - P65

유념할 것은 비정부 공식 단체와 비공식 단체, 그리고 (가톨릭 교회와 같은) 종교 집단과 국가 집단 모두가 여성에게 아이를 갖도록 또는 갖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가끔은 강요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민족투쟁을 위해 더 많은 아이를 임신하라는 강한 압력을 받는다. 한팔레스타인 여성이 내게 한 말이다. "우리에게는 싸우다 죽을 아들 하나, 감옥에 갈 아들 하나, 산유국에 가서 돈 벌 아들 하나, 그리고 우리가 늙으면 우리를 보살필 아들 하나가 필요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는 "열 달마다 팔레스타인인을 한 명씩 더 잉태하는 팔레스타인 여성은・이스라엘을 내부에서 폭파시키겠다고 위협하는 생물학적시한폭탄이다"라고 말했다(Portuguese, 1996:311).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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