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리커버 버전이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 다른 책도 읽어야 하고,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HULU라는 채널에서(월트디즈니, 21세기 폭스, 컴캐스트 그리고 타임워너 그룹이 출자한 VOD 합자회사) <시녀 이야기>의 드라마 버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구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이 드라마 정말 재밌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이미 그전에도 한 번 페어 더너웨이가 등장하는 영화 버전으로도 나왔었는데, 영화를 다 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는 더 재밌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는 메인 주에서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도망치려는 루크와 주인공 준(오프레드, 엘리자베스 모스 분) 그리고 그들의 딸 한나가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준과 한나에게 먼저 도망가라는 루크, 뒤이어진 총성. 한나와 준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들에게 잡히고 준은 의식은 잃는다. 장면은 변환돼서 하녀 복장으로 커맨더 프레드 워퍼포드 집에 살고 있는 오프레드로 변신한 준이 등장한다.

 

 

으로 보기에는 미국이지만(드라마의 촬영은 캐나다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길리아드(성경상에서는 길르앗)라는 이름의 가상국가다. 여성들의 권리는 박탈되고, 철저하게 계서제 중심의 가부장적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신정통치 시스템이 작동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전형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환경오염과 바이러스의 창궐로 불임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다음 세대를 만들기 위한 재생산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그래서 길리아드의 지도자들은 가임기의 여성들을 강제적으로 차출해서 지도자들의 집에 우선적으로 배치해서 재생산을 돕게 만든다. 그런데 그 방법이 매우 기묘하면서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분명 성경에서 유래된 구절들을 읊조리는 것 같은데, 방법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이미 중세에도 그랬던 것처럼 신정정치(theocracy) 시스템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는지 절실하게 보여준다.

 

 

트(aunt) 리디아는 하녀 트레이닝 센터에서 붙잡혀온 여자들을 상대로 복종과 그들이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훈육한다. 역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길리아드에 사는 여자들에게 일체의 재산 소유는 허용되어 있지 않다. 책을 읽는 것도 금지다. 책을 읽다가 걸리면 처음에는 손가락을 그리고 두 번째는 손목을 자르는 형벌을 받는다. 훈육 중에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 재닌(오프워렌)은 오른쪽 눈을 훼손당했다. 그렇게 배치된 하녀들은 커맨더의 아이를 갖기 위해 커맨더의 와이프가 동석한 가운데 한 달에 임신 가능한 가장 유력한 시기에 반강제적으로 섹스를 한다. 그들은 그것을 고상한 표현으로 “세레모니”라고 부르지만 성폭행에 다름 아니다.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오로지 재생산(reproduction)만을 위한 섹스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인공 오프레드는 이 모든 사태가 벌어지기 8년 전,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지만 결국 하녀 신세로 전락해서 감금된 상태에서 아이를 낳기 위한 그릇으로 사용되어질 따름이다. 정말 끔찍한 미래의 디스포피아가 아닐 수 없다. 하녀들은 혼자서 외출할 수도 없으며 항상 파트너를 정해서 장도 보고, 간단한 외출을 할 수가 있다. 게다가 “디 아이”(the Eye)라는 조식이 상호 불신을 자극하면서 주류 사회에서 어긋난 행동을 하는 이들을 검은색 밴을 동원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간다. 빅 브라더가 통제하는 사회 이상의 끔찍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오프레드의 동료는 오프레드에게도 디 아이가 붙어 있다고 주지시켜 주는데, 그는 바로 커맨더 워터포드의 운전기사 닉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닉은 오프레드를 지켜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미 9개의 에피소드들을 감상해서 줄거리가 좀 뒤죽박죽이지만, 오프레드의 절친 모이라와 공모해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오프레드는 다시 잡혀서 트레이닝 센터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녀 역시 길리아드보다 자유로운 캐나다로 도주하는데 실패해서, 칼러니(식민지)행 대신 지저벨이라는 남성들을 위한 비밀장소에서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나중에 커맨더 프레드(조셉 파인즈 분)는 오프레드를 데리고 지저벨을 방문하는데, 그 장소야말로 신정국가 길리아드에 절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장소였다. 어쩌면 신정국가의 위선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공간적 장치였을 지도 모르겠다.


 

생산인구 감소는 길리아드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웃 멕시코와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커맨더 프레드는 사력을 다한다. 멕시코 대사는 오프레드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그녀의 주인들은 트레이드 성사를 위해 오프레드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거래를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동료 시녀에게 오프레드는 바로 자신들이 그 “상품”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인격이 배제된 상품으로 “red tags"라는 이름으로(그들이 입는 옷 색깔이 붉은 색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라) 멕시코에 수출될 거란다. 결국 오프레드는 자신에게 멕시코산 초콜릿 선물을 주는 멕시코 대사에게 그들이 원해서 시녀가 되고 대리모가 되는 희생을 마다한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려 주지만, 멕시코 대사 역시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멕시코가 죽어가는 나라라면, 그녀의 조국 길리아드은 이미 죽은 나라라고 말이다.


 

오프레드가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길리아드에 대항하는 “메이데이”라는 저항단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도주하다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던 남편 루크가 살아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에서는 플래시백으로 과거에 대한 오프레드의 회상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무엇이든 자유로웠던 과거와 모든 것이 억압된 현실의 대조야말로 텔레비전 화면으로 벌어지는 비극을 한층 더 강조하는데 탁월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유부남이었던 루크와 만나게 된 에피소드를 필두로 해서, 그들이 사랑에 빠지게 된 장면, 사랑하는 딸 한나를 낳은 병원에서 벌어진 인질극 등 다양한 이야기의 얼개들이 두서없이 등장한다. 여성들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이 시작된 시기에 여성들의 은행계좌가 아무런 고지 없이 동결되고, 일자리에서 추방되는 장면들은 놀라웠다.

 

 

그것보다 더 놀라웠던 점은 불과 8년 만에 모든 사회가 길리아드의 지도자들이 인도하는 대로 별 반항 없이 길들여졌다는 점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무지막지한 폭력적 방식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적응하는 존재라고는 하지만, 단기간에 그런 게 가능하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한편, 커맨더 워렌의 아이를 갖게된 재닌이 출산하는 장면도 놀라웠다. 임신하지도 않은 워렌의 와이프가 심호흡을 하면서 출산하는 과정을 재현하는 장면이란 정말. 그렇게 반항적이었던 오프워렌이 아이를 낳고, 워렌과 자신의 딸 샬롯에게 집착한 나머지 새로 배치된 집에서 뛰쳐 나와 다리에서 아이를 안고 투신하려는 장면은 정말 애처로웠다. 현장에 투입된 오프레드의 설득에도 재닌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오프레드는 자신의 딸 한나와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지저벨의 모이라는 자신의 고객을 숨겨둔 둔 흉기로 처리하고 도주하는 장면으로 마지막 에피소드는 끝이 난다.


 

 

지금까지는 일단 10편의 에피소드가 방영될 예정인데,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궁금하다. 원작소설에서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고 하는데 이제 하나 남은 에피소드로 끝을 맺기엔 아직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게 아닐까.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보기 전에 원작소설을 좀 읽어 보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기대해 본다.

 

* 뱀다리 :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시즌 2가 편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 시즌 1에서만 원작소설에 해당하는 부분을 그리고 시즌 2에서부터는 원작소설을 넘어선 길리아드 공화국에 대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촬영에서는 디지털 방식의 촬영 대신 약간 어두운 톤의 테크니칼라 비전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오프레드의 우울한 삶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아주 유효한 방식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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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7-06-09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얼마전 읽기시작했는데 너무 어둡고 힘들어요 ...

레삭매냐 2017-06-09 11:08   좋아요 1 | URL
드라마에서도 장난 아닙니다.
우울 플러스 암울한 음악이 깔리면
또 무슨 일이 생기려나 싶어지거든요.

원작소설도 그렇군요 !!!

다락방 2017-06-09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원작소설을 읽어보고 싶네요. ‘아 정말 힘들겠다‘ 생각하면서 왜 굳이 읽어보려고 하는걸까요 .. ㅠㅠ

레삭매냐 2017-06-09 11:21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쉽지 않은 도전일 거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짚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드라마는 정말 최고입니다.

kegg0909 2017-06-09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문하고 책 기다리는 중인데 힘든 소설이군요.

레삭매냐 2017-06-09 11:37   좋아요 0 | URL
저도 곧 주문장 날리려고 하는데
많은 분들이 어렵다고 하시네요.

완독이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ㅠ

cyrus 2017-06-09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판 도서를 가지고 있는데, 드디어 읽어야 할 타이밍이 찾아온 거 같아요. ^^

레삭매냐 2017-06-09 11:52   좋아요 0 | URL
누구 말대로 책은 사서 읽는 게
아니라 찾아서 본다고 하더니만
싸이러스님의 경우에 딱 들어 맞는
것 같습니다.

전 없으니 리커버 버전으로 사려구요.
요즘 잘 팔리나 봅니다.
램프의 요정에서만 파나봐요.

포스트잇 2017-06-09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트우드 소설 [눈 먼 암살자]를 재밌게 봐서 [그레이스] 보려다 담(..)왔던 경험이 있어서 [시녀이야기]도 패스했더랬는데 이번 특별판 구입했네요. 읽기만 하면 되는데...
그보다는 에코백이 탐나서...;;;;;

레삭매냐 2017-06-09 15:15   좋아요 0 | URL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책은
<눈먼 암살자>, <그레이스> 그리고
<시녀 이야기> 아마 이렇게 삼부작
이 메인인가 봅니다 ~

저도 오늘에서야 <시녀 이야기> 사
야지 싶네요.
저도 담이 오면 어쩌죠? :(

책한엄마 2017-06-09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샀어요!!그런데 드라마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저작권을 낼 수 있는 유료라면 더욱 좋습니다.^^

레삭매냐 2017-06-09 16:00   좋아요 0 | URL
책도 미리보기로 해서 조금 읽었는데
오리지널 드라마 보다 서술이 훨씬 더
풍부하고 재밌는 것 같습니다.

2017-06-09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한엄마 2017-06-09 16: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네이버 이웃도 반갑습니다.헤헤-
언젠가 스트리밍 서비스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목나무 2017-06-09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녀이야기>는 양장본으로 된 것을 아주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지금 DB를 보니 그 책은 아예 알라딘 DB에도 안잡히는 것 같네요. 이 책이 좋아서 작가의 <인간 종말 리포트>도 읽었었는데.. 그 책 역시 몹시 어두운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었던 걸로.....
이 책은 표지 이뻐서 다시 구매하고 싶어요. ^^;; 글구 드라마 완전 기대됩니다.

레삭매냐 2017-06-09 17:27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시녀 이야기> 질렀습니다.
미리보기를 잠깐 읽어 봤더니만 너무
재밌더라구요.

이참에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구간
들이 새로운 틀을 쓰고 재출간되었으
면 하는 그럼 바람이 들었습니다.

<그레이스>도 읽어 보고 싶네요.

데이지 2017-06-09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드 매니아인 제가 모르는 미드가 있었다니! 사진 보니깐 제가 좋아하는 배우 나오네요 범상치 않은 스토리인 것 같은데 낼 당장 찾아봐야겠어요 일단 드라마 먼저 ㅋㅋ

레삭매냐 2017-06-09 22:55   좋아요 0 | URL
현재 절찬리에 방영 중인 미드랍니다.

다음 주에 시즌 1이 종영된다고 하네요.
미드를 이렇게 바로바로 찾아서 보는
건 또 처음이네요.

책도 주문했습니다. 드라마 이상으로
책도 재밌더라구요.

2017-06-10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0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1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1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1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3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오후에 램프의 요정 중고서점에 책을 한 권 사러 갔었다.


니콜라스 터프스트라라는 작가가 쓴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라고 글항아리에서 나온 책이었다. 아무래도 근처 램프의 요정에 라이벌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찜해둔 책을 독서취향이 비슷한 양반이 와서 싹쓸이 해간다. 아마 그 라이벌에게는 나라는 존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르네상스>를 사러 갔다가 켄 브루언의 <밤의 파수꾼>이 눈에 띄이길래 그 책도 한 권 사려고 집어 들었다. 예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던 책이어서 책 컨디션을 훑고 나서 바로 집어 들었다.

사단은 그 무렵에 일어났던 것 같다.


어떤 중년 아주머니가 램프의 요정 직원들에게 큰소리를 치고 계셨다. 알고 보니 책을 왕창 팔러 오신 것 같은데 상당한 분량의 책이 매입불가 판정을 받은 것 같다. 당신 말로는 인터넷으로 다 검색을 하고 왔는데 이게 뭐냐고 역정을 내셨다. 내 단골 램프의 요정은 차 가지고 오기가 쉽지가 않아서 보통 팔 책들을 몇 권씩 가져다 파는 경우가 많다. 나도 물론 “뻰찌”를 먹은 적이 많다. 최근에도 내가 보기에는 최상 품질인데, 판정하는 스탭 분이 상등급을 매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등급이 차이가 나고,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팔지 않으면 된다.


인터넷 검색에서는 오케이 싸인이 떨어져도 막상 현장에서 거부당하는 수도 있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그 외에도 책파는 고객에게는 소홀하면서, 구입하는 고객들에게는 너무 친절하다면서 불평이 끊이지 않는다. 당연하지 않은가? 어떤 경우에도 매입자가 갑 아니었던가. 물론 세상사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나도 매입판정을 받기 위해서 기다리다가 보면, 책 사려는 고객에게 먼저 응대하는 경우를 체험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졌다.


젊은 스탭분들에게 소리치는 모양을 보면서,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그럼 팔지 않으시면 된다고. 램프의 요정이 무조건 책을 매입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당신 책장에 있던 책들이 어떤 컨디션인지 내가 보지는 못했지만 소장할 의도가 아니라 팔려고 했다면 내게는 소용이 없는 책이 아니란 말이지 않은가. 그런 책들을 얼마나 신경을 써서 관리를 했을까 싶더라. 매입불가판정이나 등급 판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안을 하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더 억울하셨을까. 인터넷을 아예 믿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인터넷 매입가 예비검색을 맹신하신 게 문제가 아닐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련히 알아서 감안하고 있으니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다. Don't worry then not to be unhappy,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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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7 18: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을 파는 데 매입가 금액이 적거나, 매입 불가 판정을 받아서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들은 책을 ‘돈’으로 봅니다. 책을 팔아야 돈이 생기잖아요. 특별한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을 파는 일이 있어요. 그렇지만 돈이 적게 나왔다고 해서 투덜거리는 모습은 보기 안 좋아요.

레삭매냐 2017-06-07 22:15   좋아요 0 | URL
그래봐야 몇 백원 차이인데,
그렇게 역정을 내실 일인가 싶더군요.

응대하시는 스탭 분들이 정말 안쓰러
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딸들
이고 아들들일 텐데 말이죠.

문화인 운운할 적에는 정말 빵 터질
뻔 했답니다.

AgalmA 2017-06-07 1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 온라인 중고샵도 경쟁 치열해서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죠ㅎㅎ;
처음에 멋모르고 책 들고 갔다가 2000년 이전 책 안 받는다고 뺀찌 먹고 무거운 거 도로 들고 온 기억 때문에 오프라인으로는 잘 안 가게 됐어요ㅎ;

레삭매냐 2017-06-07 22:1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2000년 전에 나온 책들의
지질 상태나 기타 요소들의 감점
요소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뻰지 당하신 분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게 격렬하게 항의하시
는 분은 또 처음 봤네요.
 

 

1988년에 <오월>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리우스(에두아르도 델리오)라는 예명의 멕시코 출신 카투니스트가 그리고 쓴 <체 게바라>를 읽었다. 그동안 체 게바라의 일기를 비롯해서 다양한 종류의 저작을 읽었는데, 그림과 사진, 도판 그리고 지도로 구성된 리우스의 <체 게바라>는 100쪽 남짓한 팜플렛 사이즈의 만화지만 내용 면에서는 다른 저작에 비해 뛰어난 컨텐츠를 자랑하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세기 최고의 혁명가 중의 하나이자 “완전한 인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했던 꼬만단떼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게릴라 전사였다. 원래 이름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아르헨티나 부르주아 가정에서 출생해서, 아르헨티나에서 의사가 되었지만 젊은 시절 모터사이클을 타고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누비면서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형성된 구조적 불평등과 억압 그리고 착취의 사슬을 끊기 위해 성공과 안락이 보장된 평안한 길 대신,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게릴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평범한 의학도였던 그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경도된 게릴라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1954년 합법적으로 선출된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벤스 대통령의 개혁 시도를 미국 CIA 주도 아래 폭격까지 동원한 폭력적 방법으로 무산시키는 과정을 보고 의식의 일대전환을 이루게 된다. 아르헨티나 대사관을 거쳐 멕시코로 도주한 체 게바라는 그곳에서 마르크스주의 혁명이론을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본격적인 혁명전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물론 이듬해 이루어진 쿠바 출신 망명객 피델 카스트로와의 만남은 추후에 라틴아메리카 혁명에 도화선이 될 예정이었다.

 

미국의 지원 아래 바티스타 독재정권 아래 신음하던 쿠바 민중을 해방시키겠다는 피델 카스트로를 비롯한 일단의 쿠바 망명객들과 멕시코의 모처에서 철저하게 게릴라 훈련을 받은 카스트로와 게바라의 게릴라 부대는 그란마호라는 이름의 고물배에 실려 쿠바혁명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1956년 12월 2일 천신만고 끝에 쿠바 동부해안에 상륙한 카스트로 부대는 사전에 그들의 상륙계획을 알고 있던 정부군의 공격을 받아 대부분의 게릴라 대원들이 전사하고 체포되는 최대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15명의 게릴라 대원들은 험준한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을 배경으로 게릴라 작전을 시작하면서 쿠바혁명의 전설을 쓰게 된다.

 

25개월 동안의 고난에 찬 투쟁 끝에 결국 카스트로 부대는 더 버틸 수 없게 된 독재자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1959년 1월 1일 마침내 쿠바혁명을 성공시킨다. 하지만 외부인 체 게바라에게 진짜 혁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국가경제를 꾸려오오던 쿠바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상상이상으로 어려운 난제들의 연속이었다. 케네디 정부는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피그스만 침공이라는 무력침공까지 마다하지 않았으며, 미국의 재정지원이 끊기고 쿠바 미사일 위기로 금수조치가 계속되면서 쿠바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체 게바라가 중앙은행 총재로서, 공업부 장관으로서 자발적인 노동을 강조하면서 솔선수범한다고 해서 산적한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될 리는 없었다. 게다가 초짜 비경제전문가가 주도하는 경제개혁은 수시로 마찰음을 낼 수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쿠바인이 아닌 외국인 출신 게릴라 전사의 활약을 시기하는 세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쿠바의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체 게바라는 다시 혁명전선에 나서게 된다. 타고난 게릴라 전사답게 전세계의 억압받는 모든 민중을 해방시키겠다는 생각에서 촘베의 용병들과 전투 중이었던 콩고를 필두로 해서(콩고에서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위대한 게릴라 전사가 최후를 맞이한 볼리비아로 무대는 이동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았던 수염까지 깎고 우루과이 출신 사업가로 변신해서 볼리비아에 잠입한 체 게바라는 라틴아메리카 5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볼리비아야말로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전초지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게바라의 볼리비아에서의 게릴라 활동은 참담한 실패였다. 쿠바에서의 전설적인 게릴라 활동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볼리비아에서의 실패를 초래했다고 해야 할까. 우선 볼리비아에서는 바티스타 같은 절대악으로 규정할 만한 독재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볼리비아 공산당과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혁명주의자였던 게바라를 볼리비아에서는 단순하게 잘난 아르헨티나 출신 게릴라 전사 정도로 판단했던 게 아닐까. 쿠바에서와는 달랐던 볼리비아 농민들의 비협조 혹은 밀고로 게바라가 계획했던 게릴라 활동은 극도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국제적인 체 게바라의 명성을 확인한 미국 CIA가 파견한 미군 군사고문단과 그린베레의 활약은 지난 세기 최후의 완전한 인간의 체포와 처형으로 귀결됐다.

리우스 작가는 이 책에서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체 게바라의 삶을 다룬다. 아르헨티나 출신 청년이 어떻게 해서 혁명대의에 불타는 최고의 게릴라 전사로 거듭나게 되는지, 쿠바에서 혁명을 성공시킨 뒤에는 어떤 외압에도 시달리지 않는 탄탄한 국가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기존의 실패를 전범으로 삼아 개혁가로 활약하는 모습도 볼 수가 있었다. 이상주의자 피델과 체에게 국가개조는 무력혁명 이상으로 어려운 과제였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의 오랜 불화 끝에 결국 화해에 나선 오늘날의 쿠바의 현실을 혁명가가 본다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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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7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두아르도 델리오. 이름이 흔하게 느껴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라딘에 검색해봤어요. 레삭매냐님이 읽은 책이 알라딘에 나오지 않는군요. ‘라우스의 현대사상학교’ 나머지 시리즈가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레삭매냐 2017-06-07 16:51   좋아요 0 | URL
리우스라고 제가 좋아하는 멕시코 만화가
인데 원체 출간된 지가 오래 돼서 알라딘
에서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려 1988년에 나온 책이네요.
저도 아벨서점인가에서 2천원에 오래 전에
구입한 책인 것 같습니다.

오월 출판사에서 나온 현대사상학교 시리즈
읽을 만합니다. 다만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죠.

제 블록을 뒤져 보니 무려 2008년에 산 책
이었네요.
 

 

 

 

 

 

 

 

 

 

 

 

 

 

 

 

드디어 선거날이다. 그런데 비가 온다. 날씨 때문에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주제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적인 탐정들>이다. 개인적으로 볼라뇨의 열혈팬으로 그의 전작을 읽고 있다. 다만 책들은 나오는 대로 족족 사들였지만 독서는 못했다. 메타픽션 <2666>은 그래도 2권은 읽었지만 나머지 3권은 못 읽었다. <2666>만큼은 아니지만 못지 않은 <야만적인 탐정들>도 결국 읽기 시작은 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가끔 중고서점에 갈 때마다 보고서는 소장하고 있지만 다시 사면 읽게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미 산 책입니다라는 스탭 분의 말이 두려워 미처 사지 못했다. 하고 보니 다 구구절절한 변명이다. 예전에 마술사들이 등장하는 <나우 유 씨 미>에서 우디 해럴슨이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도전할 생각만 하고, 미처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올해에는 시간을 두고 아르킴볼디가 등장하는 <2666>과 <야만적인 탐정들>을 읽어야겠다. 책은 고만 사고, 집에 있는 책부터 읽자고 다짐하건만 항상 헛된 구호가 된다는 게 맹점.

 

 

자꾸만 이야기가 곁다리로 새는 데, 며칠 전 동네 카페에 갔는데 전혀 색다른 버전의 <야만적인 탐정들>을 만났다. 우리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열린책들 버전은 칼라의 1권과 2권의 책인데, 내가 사는 동네 책읽는 군포 카페의 작은도서관에서 흰 표지의 단권으로 되어 있는 책을 발견했다. 그 날은 하필이면 핸드폰이 미처 가져 가지 않아서 그냥 왔는데 오늘 아침에는 마침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서 바로 세 컷을 찍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플롯을 통해 소설을 디비 보자. 소설은 1인칭 시점에서 내레이팅이 되는데, 몇몇의 내레이터들이 등장하고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멕시코에서 실종된 멕시코인들”로 1975년 후반, 미래의 시인을 꿈꾸는 17세 소년 후안 가르시아 마데로가 화자로 등장한다. 그놈의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내장사실주의에 대한 무의미해 보이는 토론이 아마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혔던 기억이 난다. 법대생 마데로는 대학을 중퇴하고 멕시코시티 주변을 여행한다. 실체가 불분명한 내장사실주의에 회의하면서도 점저 깊숙하게 빠져 드는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소설의 제목은 <야만적인 탐정들>도 대략 전체 소설의 2/3 가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단권으로 된 소설의 총 페이지 수는 982쪽인데, 그렇다면 최소한 600쪽 이상이 할애된 모양이다. 이 부분은 1976년부터 1996년까지 20년 이상의 시간을 다루면서 자그마치 40명 이상의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내장사실주의 설립자들과 울리세스 리마, 아르투로 벨라뇨를 비롯한 북미, 유럽,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을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들과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뜨내기들처럼 유럽에서 수년 동안, 술집과 야영장을 누비며 보헤미안 스타일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알게 된다. 벨라뇨가 스페인 바닷가에서 결투를 마다하지 않는 문학비평가에 도전하는 동안, 리마는 이스라엘에서 짧은 형을 살기도 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소노라 사막”에서는 다시 마데로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시간의 연대기에 따른다면, 첫 번째 이야기에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이다. 1976년 1월, 마데로와 리마 그리고 창녀 루페가 등장한다. 멕시코에서 루페의 포주 알베르트와 부패한 멕시코 경찰에게 쫓기면서, 내장사실주의의 창시자인 세사레아 티나헤로를 찾아 나선다.

 

 

다른 리뷰와 대충 알아 먹은 위키피디아 플롯만으로는 도저히 이 소설이 어떤 종류의 소설인지, 볼라뇨가 소설에서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결론은 내가 읽어야 한다는 거겠지. 그런데 자그마치 천쪽에 육박하는 소설을 내가 과연 싫증을 내지 않고 읽을 수 있을까? 게다가 지금 서평 도서들이 자그마치 5권이나 배송 중이지 않은가. 그래 그렇게 가는 거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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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에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로 절멸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증언문학의 대가 프리모 레비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오늘 이야기할 레비의 유이한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를 7년 전에 샀지만, 지금까지 소재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작년에 다시 레비를 읽으면서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용비어천가니 하는 기가 막힌 번역과 오탈자 때문에 제발 돌베개에서 이 책을 다시 번역해서 세상에 보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는데 레비 30주기를 맞아 돌베개에서 바람대로 책이 출간되었다고 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같은 절멸수용소 생존자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엘리 위젤이 시오니스트로서 걷고 있는 길과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과 화해한 화학자이자 문학가였던 레비가 우울증 때문에 67세의 나이로 토리노에서 세상을 떠난지 3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홀로코스트를 다룬 문학이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어떤 이들은 홀로코스트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강변을 늘어놓고 있다. 제대로 된 역사청산 작업과 진정한 의미에서의 화해가 얼마나 지난하고 어려운 사회적 과제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무엇보다 작년에 오탈자 때문에 적잖은 짜증을 내면서 꾸역꾸역 읽어냈던 유대인 빨치산 유격대의 활약을 그린 <지금이 아니면 언제?>가 재출간된 것을 열렬하게 환영한다. 예전에 쓴 리뷰를 읽어 보니, 너무 줄거리 파악에만 치중한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을 내서 한 번 새로운 버전을 구해서 재독해 보는 것도 레비 30주기의 의미 있는 일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레비가 죽기 5년 전인 1982년에 발표된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 첫 번째 작품은 1978년 스트레가상에 빛나는 <몽키스패너>라고 한다. 이 책도 조만간 구해서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혹자들은 나치 치하에서 왜 유대인들이 무력저항을 하지 않았느냐는 그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어쩌면 레비는 그런 유대인들의 소극적 저항에 대한 반대급부에서 지인이 실제로 들은 유대인 빨치산의 무장저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었던 전쟁 중에는 몰랐지만, 스탈린의 적군이 결국 나치를 패망시킨 뒤에는 유대인들이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필연적으로 경계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아무리 나치가 연합군에게 패퇴하고 있는 중이었다고 하지만, 파리해방전이나 전쟁 말기에 바르샤바 봉기에서 그들이 보여준 실력을 보면 실제로 있었던 유대인 빨치산 활동이 과연 얼마나 전쟁의 대세에 영향을 미쳤을 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좋은 세상이다. 이제는 인터넷 억세스만 있다면 유투브 동영상을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문득 유투브로 프리모 레비의 동영상을 찾아 봤고, 1982년엔가 프리모 레비가 직접 출연한 <아우슈비츠로의 귀환(Back to Auschwitz)>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볼 수가 있었다. 조국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타고 폴란드 땅인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로 가면서 그 시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내레이터와 나누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자신은 화학자로 냄새로 주변환경을 분석할 수 있다고 했던가. 이탈리아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보리 냄새와 불타는 석탄 냄새를 잊을 수 없노라고 말했다. 나치 치하의 폴란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던지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절대 호의적이지 않은 욕설에 가까운 말도 들었다고 한다. 고급 호텔에 편안하게 기차여행을 하던 현재와 달리 40년 전에는 가축들이나 싣는 그런 화차에 실려 라거(수용소)로 향했다. 포졸리 역에서 기차에 탄 그들은 아우슈비츠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으며, 처음에는 보헤미아에 있는 아우스터리츠로 가는 줄 알았다고 한다. 어떤 잔혹한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 채, 점령군들이 가축 내몰듯 화차에 실어 보낸 것이다. 그는 아우슈비츠에 밤에 도착했다고 진술하는데, 끔찍한 5일 간의 여행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죽었고, 그 어느 누구도 아무 것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하긴 곧 죽을 존재들에게 그런 설명이 왜 필요했겠는가. 이탈리아 출신 유대인들은 식량이나 물을 준비하지 못했고, 아기(밤비노)는 먹을 것이 없어 젖이 떨어진 어머니에게 아침부터 밤까지 보채면서 울었단다. 그리고 함께 이송된 650명 중에 4/5가 바로 다음날 가스처형실에서 죽었다고 그는 증언한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는 중이던 1944년 2월, 패색이 짙어가던 가운데 연합군을 상대하기 위해 총동원 시스템에 돌입했던 독일 3제국은 만성적 노동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이에 유대인 라거의 공짜 노동력은 그들에게 소중한 자원이었다. 유대인 이송열차가 도착하면, 나치 의사들이 수감자들의 건강상태와 교육 정도를 파악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필요한 인력 자원들을 분류해냈다. 파두아에서 온 레비의 친구는 이미 모든 희망을 포기한 듯, 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두 번 다시 그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화학자였던 레비는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는 이게파르벤 트러스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라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충분한 칼로리였는데, 수용소에서 공급하는 1,600~1,700칼로리로는 폴란드의 강추위와 고된 노동을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레비는 말한다. 수용소 음식이 역겨웠다는 다른 이들의 증언과는 달리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어쩌면 나라면 절대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죽음의 수용소를 다시 찾은 레비는 강철 멘탈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던가? 자살로 마감한 그의 삶을 되돌아 볼 때, 그지없이 허망해 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떻게 책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레비의 다큐멘터리로 이야기가 옮겨갔는지 모르겠다. 자 다음으로 이번에 <지금이 아니면 언제?>와 짝으로 출간된 <릴리트> 이야기를 넘어가 보자. 오늘 수중에 넣은 <릴리트>에는 모두 36편의 산문에 가까운 짧은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레비의 소설집 <릴리트>는 <가까운 과거>, <가까운 미래> 그리고 <현재>로 구성되어 있는데 1981년에 발표된 <Lilìt e altri racconti>를 바탕으로 해서 2부와 3부가 추가된 구성이다. 아마존 서지목록을 검색해 보니 영어판으로는 <Moments of Reprieve>라고 소개가 되었는데, 모두 15편의 짧은 소설이 담겨 있었다.

 

급한 마음에 처음의 세 꼭지를 읽었는데, 영문판에서는 <라포포트의 유언>으로 된 제목이 국내판에서는 <카파네우스>로 되어 있었다. 나머지는 거의 영문판 제목과 비슷한 것 같다. 제목을 대조해 보니 영문판 중에 11편이 <가까운 과거>에 담겨 있고, 나머지 4편은 제외된 것 같다.

 

다른 레비의 작품들이 긴 호흡으로 간다면, 선과 악을 상징하는 이미지로서 <릴리트>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상대적으로 부담 없이 레비의 증언문학에 입문하는 이들에게 아주 적합하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고한 작가의 작품이라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어디 세상사가 그렇던가. 내쳐 달려서 단박에 모두 읽어 버릴 지도 모르겠다. 요즘 독서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레비의 책으로 빠져 나올 수 있게 된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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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04-27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디나이얼,이라는 영화를 보았어요. 홀로코스트를 완전 부정하는 사람과 그걸 증명하려는 측의 법정 싸움이 지난하게 이어지고 결국 승리는 하지만 부인하는 측은 또다른 주장을 끊임없이 펴는 것으로 맺더군요.

레삭매냐 2017-04-27 22:56   좋아요 0 | URL
세월호의 경우처럼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
하려는 세력은 어디에나 있는 모양입니다.

영화 트레일러를 보았는데, 홀로코스트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를 가져
오라는 장면을 봤습니다. 그 장면은 위안부
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의 그것과
공명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영화 <디나이얼> 꼭 보겠습니다.

cyrus 2017-04-2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돌베개! 절판된 책을 다시 펴낼 줄 알았어요. ^^

레삭매냐 2017-04-27 23:48   좋아요 0 | URL
거의 귀신 같은 예지력이셨습니다 !
드디어 다시 나왔네요.

전 우선 <릴리트>부터 사서 보고 있는데
기대만큼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