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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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그리고 디스토피아
이미 20XX년이 지났다.
다행히도 그들이 예언(?)했던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즐겁게 21세기를 맞았다.
밥 딜런이 노래하던 낙진(A Hard Rain Is Gonna Fall / Bob Dylan)도 세상을 덮지 못했고, '북두의 권'의 황량한 대지나 험상궂은 깡패집단도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핵'의 무서움을 이야기했고, 그 이후의 디스토피아를 그렸는지를 생각하면 새삼 놀랍다. 책, 영화, 만화, 게임 등 그 어떤 컨텐츠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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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특급(Twilight Zone)
나 의 유년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외화를 뽑으라면 몇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환상특급'을 빼놓을 수 없다. 기묘한 느낌의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보고 나서도 한참을, 가끔씩은 며칠씩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여운을 남겼었다. 지금까지도 몇몇 장면은 생생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 만큼이나. 비록 최근에 다시 나왔던 2002년작은 좀 실망스러웠지만. 어쩌면 지금까지도 판타지나 SF 등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에 이 환상특급이라는 드라마가 꽤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꽤 큰 영향을 받았던 외화랄까?


나는 전설이다
이 두 가지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 책 '나는 전설이다', 그리고 작가인 리처드 매드슨은 이 두 가지 끈에 모두 닿아있기 때문이다.
핵전쟁과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들 중에서도 '나는 전설이다'는 선구자격이다. 1954년에 발매된 책에 이미 핵전쟁 이후를 그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이후의 디스토피아의 원인으로 흡혈귀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흡혈귀는 핵전쟁을 이유로 생겨난 일종의 바이러스 때문으로 설정하고.
어쩌면, 이런 식의 흡혈귀 전설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참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고. 레지던트 이블, 혹은 바이오해저드 역시 이런 리처드 매드슨의 과학적 접근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 아닐 수 없으며, 이시대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인 스티븐 킹은 '셀'의 첫 페이지에 ‘리처드 매드슨과 조지 로메로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헌사를 담았다거나, 조지 로메로 역시 '새벽의 저주'같은 작품의 모태를 이 작품으로 잡고 있을 정도니까(실제로 리처드 매드슨은 한 인터뷰에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을 TV에서 우연히 봤습니다. 그 영화에 대해서 특별한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영화를 보면서『나는 전설이다』를 너무 빼닮았다고 생각했죠. 감독은『나는 전설이다』에서 유래된 작품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원작과 꽤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밀리언셀러클럽 참조)
음, 그렇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Xbox360 게임인 "데드 라이징"을 즐기고 싶었던 나는 어쩌면 굉장히 자연스러웠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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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성같은 작가들의 더없는 찬사들. 그들의 찬사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이다

그 런 영향력을 제외하더라도, 아니 그런 영향력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답게, 이 책 굉장히 재미있다. 1954년에 씌여진 책이라고 하기에 놀라울 정도로 전혀 고리타분하거나 고전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밤마다 흡혈귀들에게 고통을 받고 마지막 남은 인류로서 외로움을 견뎌가는 주인공의 인간적인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마치 나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했더라도 비슷한 고통을 겪었을 것 같은 공감을 이끌어내줄 수 있을 정도로 한 인간의 히스테릭한 모습들이 멋지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다른 존재를 발견했을 때의 급작스런 상황 변화에서 오는 감정적인 혼란 묘사는 특히 멋졌달까.
그리고 그와 함께 흡혈귀를 바이러스적으로 풀어가는 매우 흥미로운 접근방식이 눈에 띈다. 물론 십자가를 싫어한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는 전혀 발견하지 못 하긴 하지만, 그리고 DayWalker(흔히 최근에는 인간과 흡혈귀의 혼혈 등으로 그려지는)의 개념도 이미 그려지고 있는 부분이 상당히 볼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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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빌의 마지막 한 마디. 이 한 마디로 이 책은, 그리고 리처드 매드슨은 전설이 되었다

그 리고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나머지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들 역시 꽤 흥미롭다.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들을 읽으면서 '어? 왠지 환상특급 느낌이 나는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리처드 매드슨이 실제로 환상특급의 스토리를 무려 14편이나 작업했다고. 그래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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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기묘하고, 어쩌면 이상한 이 단편들. 호불호가 꽤 나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전설이다'와는 다르게

개인적으로 2005년 이 책의 발매 시절에 책을 추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장 한 구석에 묵혀두다가 영화 개봉 이야기에 화들짝 읽었다. 그러면서 후회했다. 왜 이제 읽었을까 하고.
그리고 또 한 번 의문을 가졌다. 왜 이런 뛰어난 작품이 2005년까지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을까 하는.
그만큼이나, 그리고 책을 추천해준 주위의 몇몇 사람들 의견 만큼이나 이 책은 뛰어났다.
그는 1954년에 이미 이 작품으로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이미 나는 그의 작품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전설이다'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게임과 영화, 그리고 소설들로.
그리고 영원한 전설을 이어갈 것이다. 끊임없이 생겨날 영향받은 컨텐츠들로, 그리고 나같은 독자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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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판 '나는 전설이다'. 원작의 전설을 이어주길 바란다. '지구 최후의 인간'이나 '오메가 맨'의 전철을 밟지 않고


이 책, 혹은 영화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꼭 아래 웹툰들도 보시길 권한다.
[웹툰]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 by 원사운드
[웹툰]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 by 루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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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우정편지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 서간집 시리즈
김다은 편저 / 생각의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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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내 유년기, 학창시절에 썼던 편지들을 뒤돌아보면 새삼 놀랍다. 어쩌면 그렇게 많은 편지를 썼고, 어쩌면 그렇게 추억들이 많은지.
어버이날이랍시고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왠지 편지로 쓰면 유치하고 낯부끄러운 말도 쉽게 써지지 않던가) 사랑과 존경의 메시지를 담뿍 담았던 일, 레이서의 딸이자 쭉쭉빵빵 금발미녀였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여고생과 펜팔을 주고 받던 일, 누가 받게 될지도 모르면서, 그저 예쁜 아이, 그저 착한 아이가 받겠거니 하고 기도하면서 두근두근 집단(?) 편지를 적던 일, 멀리 전학가버린 친구에게 유일한 소통의 수단으로서 편지를 쓰던 일... 심지어는 예쁜 편지지를 판다고 하여 먼 문방구까지 걸어서 찾아갔다가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골라 힘든지도 모르고 돌아오던 일이나, 밤에만 보인다는 펜을 사서 비밀 편지를 쓰던 일도 새록새록 기억난다.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웃음이 걸리는 이런 기억들을 어쩜 그렇게도 잊고 살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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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직접 쓴 편지에는 그만큼의 수고로움과 그만큼의 정성, 그리고 그만큼의 애틋함이 담겨있다. 평생 간직할만한 딱 그만큼.

일반인인 나에게도 그런 즐거운, 혹은 행복한, 가끔은 쓰라린 기억들이 많은데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작가들에게는 왜 그런 일들이 없을까. 그런 편지들 중 '우정'에 관련된 편지들을 모아서 펴낸 것이 이 책 '작가들의 우정편지'다. 편지문학이라는, 어쩌면 가장 아름다울지 모를, 그리고 가장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풍부하게 느껴질 지 모를, 하지만 그리 대중화되지 않은 장르를 확립하기 위한 그런 의도에서 만들어진 기획서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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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문학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의 산물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러고보면 전작인 '작가들의 연애편지'도 읽고 싶어진다. 가장 문학적 밀도가 높다는데...

작가들이라서일까. 어쩌면 그렇게 편지 하나하나가 가끔은 소설처럼, 가끔은 시처럼, 그리고 가끔은 기행문처럼 보일까. 일반문이라 할 수 있는 편지 속에 가득한 미구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래서 작가구나'라는 느낌에 새삼 놀랍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산고를 겪으며 꺼내놓는 작품들인지도 겉핧기로나마 알게 되기도 하고. 특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혹은 그의 작품을 읽었던 작가들의 편지들을 읽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지.
그런 마음에 하나하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서른 두 명이나 되는 작가들의 편지를 읽었다. 여기에 자청하여 우체부가 되어준 소설가이자 교수인 김다은씨는 편지에 등장하는 작가들과 편지를 쓰게 된 상황에 대해 친절하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주어 훨씬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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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다은씨는 적어도 이 책에서는 친절하지만 입이 싸기 그지 없는 그런 우체부다. 그의 우체통 코너가 있었기에 이 책은 훨씬 그 가치를 갖는다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이런 기획서적이었기에 가능했을 법한 26년전 중학생 시절에 받았던 편지에 이미 작가가 된 후에 쓰게 된 답장이나, 어린 시절에 쓴 편지를 통해 이미 그의 작가적인 성향을 느낄 수 있었던 그런 편지들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늦으막히 답장을 받았을 때나, 서랍을 뒤져 예전의 편지를 발견했을 때에도 여전히 기쁘고 반가운 편지의 특성을 잘 살린 그런 기획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편지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편지 한 통을 쓰고 싶어졌다. 비록 이미 키보드에, 그리고 즉각적인 e-mail의 반응에 익숙해져버린 나이기에 편지지를 고르고, 펜을 고르고. 그리고 혹시나 틀려 보기 싫을까 머릿 속으로 한 번 써보고 또박또박 신경써서 써내려가고, 그리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는, 수고로움은 감수하고 싶지 않아져버린 나이지만, 우체부가 알려준 소설가 함정임씨의 디지로그식 편지(e-mail이라는 디지털을 활용하지만 그 안에서도 아날로그의 문체, 호흡, 리듬이 꼿꼿하게 살아있는 그런 편지)라면 한 번쯤 보내고 싶다. 누구에게 보낼지부터가 이미 즐겁다. 새삼 이 책을 통해 재발견한 편지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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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참여한 작가들은 아는 작가도 아닌 작가도 많다. 하지만 한 명 한 명의 편지는 모두 소중했고 아름다웠다. 다만 한강씨의 편지는 조금 아쉬웠달까. 최근 '채식주의자'를 통해 관심이 많이 생겼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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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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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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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공중그네의 리뷰에 이어 인 더 풀을 읽게 된 것은 이전에 고개를 갸우뚱 했던 부분 때문일꺼다. 국내에서의 폭발적인 공중그네의 반응. 그 덕분에 전작이지만 '공중그네의 2탄'으로서 발매된 이 책 '인 더 풀'.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어떤 점이 그렇게나 사람들에게 어필하는지를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었다.

그랬던 이 책, 읽어보니 그야말로 '공중그네'와 같은 선상에 있다. 단 한 번도 심각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뚱보 정신과의사 이라부. 주사 놓는 것 이외에 도대체 뭘 할 줄 아는지 통 알 수 없는(하지만 몸매만은 훌륭한) 핫팬츠 패치 간호사 마유미. 그들에게 찾아온 환자들(어딘가 하소연할 수 없을 만큼 그런 상황의).

개인적으로는 공중그네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마치 인 더 풀과 공중그네를 하나의 드라마로 하여 한 편을 각각 드라마로 만들어도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동일한 느낌의 주인공과 동일한 전개지만, 이 책의 경우가 더 소재로서 재미있었달까. 그도 그럴것이 '지속발기증'이나 '수영중독증' 등의 소재는 정신병리학적으로도 더 자극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좀 더 이쪽이 더 개인적인 취향에 맞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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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도 안 되는 병원이지만, 그런 가운데 의사 이라부는 분명 치료법을 내놓는다. 허허실실이랄까. 그리고 그래서 재미있고

하지만 여전히 공중그네를 읽었을 때의 궁금증은 여전히 그대로다. TV를 보는 것처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로서의 이 책의 매력은 분명히 이해가 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지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를 바라고 있다.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 실없는 듯 하지만 재미있는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라면 개인적으로 바라고 있는 무언가 '조금 더'를 만족시켜주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한 번 읽고 즐기기에는 참 좋은 책인 것만은 확실하다. 책이 아니라면 최근 한국에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미남배우 '오다기리 죠'의 바보같은 모습을 즐길 수 있는(지속발기증 환자로 나온다) 영화판을 보는 것도 좋을 듯(이라부 역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라부는 뚱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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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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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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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여러 작가가 나누어 쓴 것을 하나로 만들거나 한 작가가 같은 주인공의 단편 소설을 여러 편 써서 하나로 만든 소설'
하지만 이런 사전적 의미로는 분명 말할 수 없었다. 이 '채식주의자'라는 연작소설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라는 세 개의 중편소설은 작가 한강이 2002년부터 2005년에 걸쳐 쓴 작품들이다. 그리고 이번에 발매된 '채식주의자'는 이 세 편을 모아 발매된 책이고.
그 런데, 이 세 개의 소설, 각각의 소설로서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실제로 '몽고반점'의 경우는 2005년 이상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할 정도로), 세 소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교묘하고 치밀하게 얽혀있어 그 흡인력이 대단했다.

첫 작품이었던 '채식주의자'. 평온한 부부 생활을 하고 있던 영혜는 어느 날 악몽을 계기로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의 스위치가 켜지면서 육식을 피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인정하지 않고 육식을 강요하면서 사태는 심각해지고 영혜는 자살시도를 할 정도가 된다. '새로운' 자신을 지키려는 그녀와 '예전의' 그녀를 강요하는 주위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를 그녀를 이해하지 못 하는 남편의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두 번째 작품인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의 형부이자 비디오 아티스트인 한 남자가 화자가 된다. 영혜의 자살 시도 이후 몇 년간 작품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던 그는 자신의 부인으로부터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있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에 대한 욕망으로 괴로워한다. 남성적인 욕망인지 혹은 예술혼인 것인지 혹은 식물적인 태초적 매력에 대한 향수인지 알지 못 한 채. 그리고 그 욕망에 못 이긴 그는 결국 영혜와 자신의 몸에 꽃을 그린 채 교합하고 그 영상을 비디오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다음 날 그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과 자신의 동생이 벌인 그 현장을 목격한다.
세 번째 작품인 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시선. 남편을 잃고 정신병자가 된 동생을 간병해야 하는 살아남은 자의 아픔 속에서 인혜는 영혜에 대한 동질감과 괴리감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나무가 되겠다'는 영혜를 보고 있어야 하지만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언니의 입장, 가족의 파국을 어떻게 하지 못 했던 딸이나 아내의 입장, 아들이라는 미련이 남지 않았으면 자신도 무너졌을지 모른다는 어머니의 입장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그저, 여러 명의 시선으로 볼 뿐인 시리즈 소설의 하나로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으면 분명 이 '연작' 소설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뿌리가 서로 얽혀있는 세 그루의 나무같은 느낌이랄까.
어린 딸의 다리를 문 개를 오토바이에 묶어 끌고다니다 죽인 것은 아버지에게는 부정의 실천이었으나 영헤에게는 육식거부로 이어진다거나, 아버지의 육식 강요에서 이어진 영혜의 자살 기도는 영혜의 남편에게는 그저 끔찍한 장면일 뿐이지만 피 흘리는 영혜를 업고 뛰었던 형부에게는 자신의 작품 세계 자체가 송두리째 변하는 변혁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가장 잘 아는 언니 인혜에게는 안타까움과 원망스러운 기억인 등, 세 연작 소설속에 고루 뿌려진 다양한 씨앗들은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국면과 느낌을 세 연작 소설을 모두 읽었을 때여야 수확할 수 있게 한다.

결국 어쩌면 추악하고 어쩌면 아름다울 수 있는 얽힌 욕망들을 다룬 '채식주의자'는 저자인 한강의 식물적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녀의 담담하면서도 현실적인, 그러면서도 극히 시적인 서술 속에서 큰 매력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도 단번에 세 편을 읽어버릴 정도로 높은 흡인력을 갖고 있었고, 왠지 찜찜한 느낌(개인적으로 별로 선호하지 않는) 속에서도 정말 재미있게, 그리고 '한국문학'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생 각해보면 나 자신도 '한국 현대 문학'에 갖고 있는 선입견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약간은 정적이고 약간은 굳어있는 그런 느낌. 그리고 실제로 우리나라의 것들보다는 외국 문학을 많이 읽으며 자라왔기도 했고. 솔직히 말해서 '수능'이니 '논술'이니를 위해서, 혹은 교과서 등을 통해서 읽어왔던 '고전'을 제외한다면, 외국문학과 비교해서 정말 처절하게 적게 읽었다는 느낌이랄까.
그 래서 부끄럽다. 그리고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 책이 이 '채식주의자'다. 물론 적게 읽긴 했지만 그간 읽어온 국내 현대 문학중 훌륭한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삼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 것이 이 작품이었던 것은 왜일까. 그녀의 식물적 상상력 때문이었을까. 혹은 연작 소설로서의 기대 이상의 매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상문학상' 수상작이 갖는 특별한 색채 때문이었을까?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그 자체가 나에겐 더 없이 소중한 경험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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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한이즘 - 한창우式 혁신경영
오쿠노 노리미치 지음, 이동희 옮김 / 전나무숲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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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직히 말해, '파친코사업'이라는 것은 야쿠자가 하는 것, 아니면 그런 비슷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막연히 갖고 있었다. 나름대로 일본에도 여러 번 다녀왔고, 일본 문화에도 익숙하지만 일본에 갔을 때도 '파친코' = '사행성 도박' =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가 본 적도, 갈 생각을 한 적도 없었고.
그런데 그런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즐기는, 그래서 영화고 책이고 드라마고 그런 곳에서도 참 자주 등장하는 '파친코'에 대한 인식이 일본에서도 참 나쁘다 라는 것에 새삼 놀랐다. 파친코 기업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집을 빌리지 못 한다거나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거나, 혹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상장이 굉장히 힘들다거나 하는 그런 일들을 보면서 말이다.

마루한. 일본 재계에서 '파친코 황제'라고 불리우는 한창우 회장의 파친코 기업. 그 기업은 어쩌면 이런 핍박이 있었기에 더욱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 가 말하는 마루한이즘. 그것의 근간은 바로 '인재'의 활용이었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좀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팀 워크를 낼 수 있을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마루한이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것.
하지만 파친코 업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리 선호되는 직업은 아닌 것. 그리고 사회적인 인식도 나쁜 그런 기업이기에 더욱 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일종의 아르바이트생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의견까지도 존중하면서 실행해보고(실제로 이런 의견들을 대부분 수용하는 '모델점'이라는 것을 운영할 정도로), 비전을 공유하되 실제 업무는 일임한다거나, 강력한 활기를 불러일으켜주는 신입사원 교육을 하는 등 인재를 붙잡고, 또 키워나가는 그런 일련의 노력들이 더욱 처절했을 듯 하다. 그리고 그런 마루한이즘을 바탕으로 업계 최고의 파친코 기업이 되었던 것이고.
어쩌면 정말 우직할 정도의 인재 경영을 펼쳤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그런 파친코 업체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루한이즘의 강력한 추진력은 책 전반에서 드러나며 그리고 그렇기에 그의 성공은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책 자체의 완성도에는 조금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저자의 취재력이 돋보이며 그 취재 결과가 하나하나 잘 펼쳐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저 그 뿐. 너무 밋밋하달까. 전체적인 마루한이즘을 강하게 갈무리하는 듯한 유기적인 느낌이 너무 적다는 점은 꽤 아쉽다. 마루한이즘이라는 것. 그것을 조금 더 펼쳐주고 또 마무리해주는 그런 힘이 약하다. '경영전략 소개서' 랄까? 하지만 이런 책에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보통 그 이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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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의 마루한. 어쩌면 너무나 우직하고 당연한 마루한이즘은 그것을 실제로 이룩했기에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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