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남자 밀리언셀러 클럽 76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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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나는 전설이다'  영화판의 인기를 생각해보면 그간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국내에서 평가절하당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1954년 작품이었던 '나는 전설이다'의 번역판이 2005년이 되어서야 나왔다는 점도 그렇고, 사실상 이번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 국내에서의 입지도 그랬다. 솔직히 말해 이번 영화의 인기 역시 '리처드 매드슨'의 이름보다는 '윌 스미스'의 이름값이 더 무거웠던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국내에서는.
하지만 둘 모두를 감상했던 나로서는 분명 책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분명 괜찮았지만 어딘가 허전했던 영화에 비해 본격적인 흡혈귀의(혹은 좀비의)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원작이 훨씬 나았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그리고 그랬기에 이번에는 이 책을 읽었다. 그의 1956년작, '줄어드는 남자'를.

당시의 과학적 지식으로는 참 '원자력' 혹은 '방사능'이 대단한 만병통치약이었다. 거북이는 닌자 거북이가 되고, 쥐는 쿵후 배운 인간형 쥐가 되기도 하고. 혹은 푸르딩딩한 근육덩어리가 되기도 하며, 거대화되어 하수구의 난폭자가 되기도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참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 '돌연변이' 혹은 '뮤턴트(Mutant)'라는 이름으로 생겨왔던 것이 사실.
이 책 '줄어드는 남자'에서는 어쩌면 참 초라하고 처량하게도 그런 방사능에 의해 조금씩 몸의 전체적인 크기가 줄어드는 기이한 병에 걸리는 남자가 등장한다.
도대체 '줄어드는 남자' 하나로 무슨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놓을까라는 노파심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고 나서는 리처드 매드슨에게는 그런 노파심은 필요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씩 줄어들면서 조금씩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어가는 주인공에게 저자는 참 다양한 상황을 설정한다.

처음은 가장으로서 가져야 할 위치로서의 갈등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가장으로서의 권위. 철저히 마초이즘적인 인간으로 그려지는 주인공. 훤칠한 키와 듬직한 덩치, 그리고 경제력을 가졌던 그. 그리고 그런 것들이 '줄어든다'는 황당한 이유로 전부 상실되어가는 상황에서의 갈등이 얼마나 클까. 가장이 가장이 아니게 되고,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게 되며, 남편이 남편이 아니게 되는 그런 상황 속에서 정신적인 공황 상태가 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제대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남자로서의 갈등. 사랑하는 부인을 사랑할 수 없는 듯한 남자로서의 박탈감과 좌절감 역시 굉장한 아픔이 아닐까. 점점 작아지는 만큼 부인에게의 자신감도 점점 사라져가고. 끝까지 그를 사랑해주는 부인임에도 불구하고 작아져가는 자신감의 크기만큼 부인을 사랑할 수 없는 주인공의 아픔, 그리고 그런 가운데 벌어지는 여러 촌극들은 결코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그런 오싹함이었다.

이렇게 '줄어든다'는 설정을 통한 인간의 사회성 박탈이 가져오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그런 것이었다. 이것으로부터 작가는 사회성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사회성을 잃었을 때의 공포, 공황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SF적인 상상력을 동원했지만 결국 아주 현실적인 배경과 현실적인 아픔을 그려낸 이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생활 속에 녹아든 공포가 아닐까. 특히 남자로서 굉장한 몰입감을 느꼈다는 느낌이다.
특히 작가의 절묘한 묘사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단위의 혼란' 부분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부분. 괴로워하고, 또 가끔씩은 자신의 현 상황을 직시하지만, 결국 끝까지 주인공은 자신은 더 이상 정상인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저 단위의 혼란이었다. 점점 작아지는 그에게 있어 주위 사물과 환경의 거리, 그리고 크기 등이 분명 점점 멀어지고 더 커지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끝까지 '몇 미터는 될 듯한'이라는 식의 정상인적인 단위로서 표현한다. 그런 묘사를 통해 그는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버리지 않으며 절대 자신의 현실에,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고.

그리고 그의 마지막 갈등은 바로 지하실과 거미와의 갈등이다. 너무 작아져서 지하실에 떨어진 주인공. 그리고 그 곳에서 그를 위협하는 최고의 적은 다름아닌 거미. 평소에는 그저 귀찮은 존재였던 거미가 죽음으로 이끄는 무서운 존재가 된 것에 대한 괴리감, 그리고 주위 사물과 거미를 소재로 한 주인공의 힘겹고 괴로운 모험은 그 어느 모험보다도 스펙타클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모험기이되 모험같지 않은 한 작은 집의 초라한 지하실에서의 모험은 그렇기에 더 처절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저자가 지하실에서의 모험과 지하실에 떨어지기 전까지의 갈등을 교차편집했던 구성의 의도는 바로 이 두 가지를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이 소설의 소박함은 상상 이상이다. 극히 하찮은(?) 소재와 보잘 것 없는 배경, 그런 가운데 이 정도로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성'이라는 소재에 대한 깊은 접근, 그러면서도 SF 적인 상상력과 박진감을 그려낸 소설은 참 드물다. 그만큼이나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작가가 가진 표현력과 상상력의 깊이는 대단한 것이란 이야기겠지.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전설이다'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이 '줄어드는 남자'가 뽑힌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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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에 만들어진 '줄어드는 남자' 영화판.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전체적인 평점도 좋고 리뷰의 평가도 후한 편. 무엇보다 '리처드 매드슨'이 직접 각본을 맡았다는 점. 그리고 원작의 그 모습을 어떻게 재현했을지의 궁금증 때문이라도 한 번 꼭 보고 싶다는 느낌?  내년(2008년)에 리메이크작이 또 개봉 예정이라고 하니 그걸 기다리며 아쉬움을 달래보는 것도. (사진출처 : IMDb)

영화 관련 리뷰 번역 링크(밀리언셀러클럽)
1957년판 줄어드는 남자 영화 정보(IMDb)
2008년판 줄어드는 남자 영화 정보(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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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줄어드는 남자' 이외에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리처드 매드슨의 여러 단편들은 굉장히 만족스럽다. 리처드 매드슨의 이름을 빛냈던 '환상특급'. 그 영화판의 첫번째 에피소드인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미래판 고려장격인 '시험', 사망자를 예측(혹은 일부러?)할 수 있는 '홀리데이 맨', 아담 샌들러의 '클릭'이 마구 떠올랐던 몽타주, 마을을 파멸시키는 한 원초적 악인의 '배달', 병원과 이발소 그리고 주술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세 개의 코드가 섬뜩함을 주는 '예약 손님', 버튼 하나로 인간을 죽일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버튼, 버튼', 스티븐 스필버그의 데뷔작으로 유명한 '결투', 그리고 혐오 곤충(?)인 파리에 얽힌 박진감있는 단편 '파리지옥'까지. 한 작품 한 작품 참 매력적인 단편들로 가득하다. 어쩌면 '나는 전설이다'에 있던 단편들보다 더 매력적이고 탄탄한 작품들이 많은 느낌이랄까.
특히 개인적으로는 쫒기는 공포를 확실히 그려주고 있는 '결투'와 '몽타주'가 가장 재미있었고, '시험'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독자로서는 참 즐거운 일이지만, 이 단편들만 모아서 한 권의 책을 내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만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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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리처드 매드슨은 참 영상적인 작가인 듯 하다. 최근에서야 보고 그 추격신에 탄복했던 영화 '결투', 그리고 환상특급 극장판의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나는 전설이다' 를 통해서 작가 리처드 매드슨의 SF 작가로서의 탁월한 상상력, 그리고 인간 내면에 대한 뛰어난 묘사력을 느꼈다면, 이번 '줄어드는 남자'를 통해서는 그의 작가로서의 묘사력과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을 느꼈다. 그만큼이나 참 잘 쓰여진 최고의 환상소설이 아닐까 한다. 어쩌면 그렇게 환상소설로서의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심리 묘사와 사회적인 문제제기를 잘 하고 있는지. 스티븐 킹이 극찬을 할 만 하다. 그리고 보잘것 없지만 나 역시.
내년에 꼭 영화를 보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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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최고의 스토리 텔러 스티븐 킹. 결코 그의 극찬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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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사장, 샐러리맨의 천국을 만들다 - 인간 중심 유토피아 경영의 신화, 미라이 공업
야마다 아키오 지음, 김현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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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쉬어라! 남을 위해 일하지 말라! 좋아하는 일만 하라!... 과연 이렇게 해서 회사가 돌아가겠냐고 묻는 분. 야마다 사장이라면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직접 해보셨나요?"


잔업, 휴일근무 없음. 전 직원 정규직. 70세 정년, 종신고용, 정리해고 No. 업무 목표 No. 연간 140일 휴가 + 개인휴가. 3년간 육아휴직 보장(셋 낳으면 9년이란다). 5년마다 전 직원 해외여행.

어 찌 보면 부럽고 어찌 보면 현실성이 없는 이런 회사가 실제로 있단다. 바로 야마다 아키오 사장의 미라이공업. 저렇게 많이 쉬고도 회사가 돌아갈까... 라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일본에서 동종업계 시장 점유율 1위, 연 매출 2,500억원, 연 평균 경상이익률 15%를 달성하는 회사다. 오죽하면 연말연시에 24일을 쉬라는 사장의 말에 직원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중간 며칠 쉬는 것을 뺄까. 참 재미있는 촌극이 아닌가.

하지만 바꿔놓고 보면 꼭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궁즉통(窮卽通)이라 했다. 궁하면 통한다. 저렇게 쉬어야 한다면 어떻게든 쉬면서도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을 방법을 만들어낼거고, 사실 쉬지 못 할 바도 없다. 그리고 그렇게 사원들은 또 하나의 방법을 만들어낸다.
또 하나의 방법을 만들어낸다라.... 못할 것도 없겠지. 미라이 공업의 모토는 다름 아닌 '항상 생각하라'라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결과로 2000여건의 각종 특허 및 실용신안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라이공업의 성공은 바로 이런 아이디어의 결과가 낳은 대박상품들에서 기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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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금도 미라이 공업은 진행중이다. 사실 소규모의 사업장이라면 이런 '재기 넘치는 샐러리맨의 천국'이 가능할지 모른다. 몇몇 뛰어난 경영진을 통한 뛰어난 시스템이 갖춰지면 될테니까. 하지만 1000명에 가까운 종업원이 일하는 큰 기업으로 발전하면서도 그 색깔이 변치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미라이 공업의 직원들은 다 아이디어로 가득한 천재일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실, 수도 없는 대기업들이 모여있는 일본에서 초라하게 시작했던 미라이 공업에 희귀하기 이를 데 없는 천재들이 모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야마다 사장은 천재를 스카웃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범재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현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직원의 의욕 상승'을 택했다. 즐겁게 일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효율적이고 능력이 발휘되는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보니 이것도 궁즉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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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능력이 부족해도 좋다. 각자가 갖고 있는 능력을 100% 발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라는 미라이 그룹의 채용 안내글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1 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 이 책은 그런 시점 덕에 더욱 느낌이 강하게 전달된다. 한 사람이 '사원의 의욕 상승'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뛰어온 이야기. 그가 가진 '회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솔직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게 되겠어?'라고 할만한 그런 것들을 '실현'해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 미라이그룹이 지금도 일본에 '실존'하기 때문에.

보통 회사가 사원들에게 자기계발의 기회를 주는 것조차도, '이렇게 공부시켜서 얼마나 더 부려먹으려고'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이나 대부분의 회사와 사원들, 사장과 사원들의 관계는 임금을 주는 자와 임금을 받는 자라는 느낌으로 움직이고 있다. '회사가 어려운데 다같이 좀 더 허리띠를 조이자'라든지 '이번 달은 자금이 부족하니 월급을 못 주겠다'라든지 하는 이야기들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심지어는 잘 나가는 회사라 하더라도 야근을 밥 먹듯 하거나 혹은 사원들의 임금을 아껴 회사 건물을 증축한다든지 하는 사례들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발전, 발전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기업들, 그리고 사장들. 특히, 전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일한다는 대한민국이기에 미라이 공업의 사례는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원을 철저히 믿고 충분히 쉬게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에 오는 것이 즐겁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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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쉽지. 이를 실현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것.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미라이 공업의 사원복지 정책보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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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다운 방식으로는 본질을 변화시킬 수 없다. 하라는 일만 하는, 위에서 내려올 명령을 기다리는 식의 직장이라면 즐겁기는 커녕 그저 '돈 버는 곳'일 뿐이다. 얼마간의 성취감은 있겠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저 묵인하거나 혹은 포기하고 있는 이런 식의 업무 진행 방식을 본질적으로 바꾸려는 야마다 사장의 노력. 그것은 분명 대단한 결실이다. 그는 실현해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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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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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 다인동거'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나였지만, '퍼레이드'에서 보여준 것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언 제부턴가 많은 수의 남녀가 함께 공존하는 그런 동거 아닌 동거에 대해 참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의 알콩달콩한 분위기도 그렇고, 특히 내가 참 좋아했던 '프렌즈'에서의 친구였다가 애인이었다가를 반복하는 그런 아찔한 감정의 저울질도 그렇고. '하릴없는 다섯 남녀의 뒤집어지는 동거이야기 하지만 '라는 이 책 '퍼레이드'를 읽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그런 나의 '동거'에 대한 왠지 모를 호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결과는 조금 달랐지만.

다 섯 남녀의 동거 이야기, 그리고 5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 각 장의 화자는 각각 한 명의 동거인이다. 이 다섯 장의 옴니버스 구성은, 시간이 흘러가는 상태에서 이루어지기에 더 흥미롭다. 전체적인 줄거리가 진행되되, 화자만 변형되는 식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래서 한 주인공이 다른 동거인의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생각되고 있는지, 그리고 동일한 사건을 각각의 사람들이 판단하는 상황과 시기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 어떻게 다른 느낌을 주는지 등이 참 재미있다. 그리고 그런 독특한 구성을 잘 이끌어나가는 요시다 슈이치의 구성력도 꽤 돋보이고.

그런 가운데 이 다섯 명의 기묘한 동거는 책의 내용에서도 언급되듯, “선의로 넘치는”, “다정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트”와 같다. 서로에게 모든 것을 밝히고 기대는 어떤 가족, 친구, 연인의 동거가 아니라 자신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채, 그렇게 마음의 보이지 않는 벽을 한 겹 쌓은 채 이루어지는 동거다. 어쩌면 인터넷 상의 너무나 친절하고 진지하지만 탈퇴해버리면 그만인 그런 커뮤니티적인 인연에 대한 은유랄까. 그리고 이 다섯 명은 그런 삶을 오히려 즐기고 있으며 이 동거 자체도 '탈퇴해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언제나 하고 있다. 받아들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 주인공 중 한 명이자 그들의 거점을 마련한 장본인 나오키는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을 배려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그들을 받아들였던 것은 철저히 내가 그게 낫다고 판단해서' 라는 식으로 말한다. 뭔가 기묘하게 커뮤니티 운영자스럽달까.

작 가 요시다 슈이치는 그런 다섯 명의 삶, 그리고 그들이 서로 가지고있는 정신적인 공유와 그만큼의 거리감을 교묘하게 잘 표현한다. 그리고 그런 '다정하고 진지하지만 그 뿐인' 느낌을 책 전반에 잘 이미지화했다는 생각이다. 비록 '코미디의 탈을 쓴'이라든지, '책을 읽는 내내 침대보를 부여잡고 웃었다'라는 등의 추천사와는 달리 그런 이질적인 느낌에 썩 웃음이 나오거나 즐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랬기에 더욱 그 느낌이 살아있다고 느꼈다. 개인적인 감상일지 모르겠지만, 책 뒷 페이지의 그런 독자서평이나 앞표지의 '정신없이 웃게 만든 다음'같은 추천사는 무시하고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그런 분위기가 아니기에 이 책은 더 빛을 발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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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벽을 두고 살아가는, 그런 것들을 인정하고 당연스럽게 살아가는 그들의 동거생활 속에서 우리는 우리네 인생을 본다. 우리의 가면 퍼레이드를 본다

그 리고 그런 분위기로 표현되던 그들 전부의 감정적인 벽은 마지막 장에서 본질적으로 드러난다.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우리들이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사람들은 과연 몇명정도일까. 나 자신의 본 모습을 모두 드러내기에 너무 위험한 세상에서, 모두 다 다른 생각을 갖고 사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만남에서 가면을 쓴다. 그리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 자신을 연기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때도 마찬가지다. 허울이든 장점이든 우리가 그 사람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경우는 얼마나 있을까. 모두 자신만의 시선, 자신만의 안경으로 이미 한 번 판단된 그런 모습으로 그 사람을 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이런 인간세상의 본질적인 퍼레이드를 다섯 명의 동거남녀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살아간다. 각자 자신의 가면을 쓰고 누군가를 연기하며. 누군가에게 자신을 더 잘 포지셔닝하고 더 멋지고 훌륭하게 보이고 싶어하며. 그리고 가끔씩은 나를 불쌍해보이거나 부족해보이길 바라면서. 그것 자체가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이기 때문일까? 그런 나 자신이 조금은 애처롭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잘 수행한 후의 그런 느낌이랄까. 언젠가는 또 다른 가면을 써야만 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랄까.
왠지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 것만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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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사람들 - 세계 최고의 브랜드를 만든 스타벅스 리더십의 결정체
조셉 미첼리 지음, 장성규 옮김 / 명진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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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그래서 이미 친숙해져버린 이름 하나, 스타벅스. 솔직히 세계 최고의 커피 체인으로서, 그리고 글로벌 기업으로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회사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문화를 그다지 이해하지 못 했다. 개인적인 취향의 커피전문점과 좀 다른 노선이기도 했고.
하지만 지난 번 필리핀에 들렀을 때, 그리고 미국, 싱가폴, 일본 등에 들렀다가 스타벅스를 가보면서 조금씩 '아, 이런 것이 스타벅스구나'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세계 어디에서나, 생판 모르는 처음 가본 곳에서도 느낄 수 있는 익숙함 속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분명 편안함이었다. 특히 다른 나라보다 얼마 전 필리핀에 갔을 때, 스타벅스를 발견했던 순간에 얼마나 기뻤는지.....
분명 그 순간의 스타벅스 경험(Starbucks Experience)은 각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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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공간을 창출하려는 스타벅스의 노력은 커피가 아닌 스타벅스를 마시는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 굴지의 글로벌 커피 체인이 되었다

그런 '스타벅스 경험'을 한 사람들, 그리고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경험들 속에서 통찰력을 찾아낸 책이 바로 이 '스타벅스 사람들'이다.
18개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자료 조사를 통해서 만들어진 이 책 안에 담긴 내용들은 참 값진 것으로 가득 차 있다. 18개월만에 20여년의 스타벅스의 역사를 모두 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겠지만, 저자 조셉 미첼리에게 그 기간은 스타벅스의 역사 속에 담겨진 사건들을 살펴보며 그 안에 숨겨진 통찰력을 발견하는 것에는 부족하지 않았나보다. 이 책 속에 담겨진 다양한 스타벅스 사람들의 경험들은 가끔은 대단히 놀랍고 가끔은 감동적이며(특히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는 순간 울컥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또 가끔은 머리를 찡 하고 울리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저자는 그 안에서 스타벅스의 다섯 가지 원칙을 발견했다. 그 다섯가지 원칙이 이 책 전체를 구성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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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바로 첫번째 원칙인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Make it your own)과 그의 세부 법칙이었던 5Be 부분이었다. 마치 얼마 전에 읽었던 마루한이즘을 떠올리게 하는 인재경영. 스타벅스에서는 자사의 사원들을 직원이라 부르지 않고 '파트너'라 부른다 한다(아르바이트생까지도). 그 호칭 하나만 보더라도 그들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갖는 마인드, 그리고 각 파트너들이 가질 마인드가 느껴졌다. 사실 서비스업이라는 것이 잘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고객들을 만나서 서비스를 펼칠 사람들의 마인드가 아닐까 한다. 서비스업체의 얼굴인 그들의 마인드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 회사의 입지가 조금씩 쌓여가거나 혹은 무너지거나 하겠지. 스타벅스의 파트너들은 그들의 서비스 원칙인 5Be가 적힌 그린 에이프런 북을 각자의 녹색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스타벅스식으로 손님을 맞는다. 파트너로서, 그리고 전세계의 모든 파트너들에게 450불이라는 보너스를 동일하게 지급할 줄 아는 스타벅스의 일원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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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만 할 까다로운 룰북'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기준을 밝혀주는 그런 존재이기에 이 그린 에이프런 북의 가치는 빛난다



특히, 이 책의 통찰력이 돋보였던 것은 그런 스타벅스의 정책, 혹은 법칙들을 독자의 입장에 맞추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독자가 자신의 입장, 혹은 회사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다양한 배려들이다. 그저 '아, 스타벅스가 이래서 성장했구나'라는 감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고 그것을 적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책 속의 배려들은 다른 비슷한 시도들보다 훨씬 다양하고 또 체계화되어 있다. 이런 점이 이 책을 그렇게나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개인적으로도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의 적용을 고민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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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들은 스타벅스의 원칙들을 다시 한 번 독자의 머리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해 주는 친절한 도구들이다. 생각보다 사고의 흐름이 너무 자연스럽게 그런 적용으로 움직이는 것에 놀랐을 정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또한, 함께 제공되는 실천노트도 마찬가지. 마치 스타벅스의 파트너들이 하나씩 갖고 다닌다는 그린 에이프런북을 몰래 소유한 느낌이랄까. 책의 중요한 부분들, 그리고 5Be 법칙 등을 고민하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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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작은 커피전문점이었던 스타벅스. 그리고 50센트 정도에 마시는 싸구려 음료였던 커피. 그런 커피 문화가 하워드 슐츠의 '즐기는 커피 문화를 만들어낸다면 3달러에도 팔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지금은 전세계 42개국, 1만 4천여개의 매장에서 매주 3천 500만명의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 스타벅스의 성공 이유를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어느 정도 끄덕일 수 있게 되었다. 스타벅스의 내부인이 아니기에 이 책이 정말 그렇게나 스타벅스를 꿰뚫는 통찰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런 '스타벅스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던 곳이라면 충분히 그랬을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한국의 이야기다. 분명 한국도 그리 진출하기 녹록한 시장은 아니었을 듯 하고, 그런 시장에서의 스타벅스 경험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인사동에 있는 한글 간판의 스타벅스 이야기라든지). 이 책의 사진들은 대부분 한국의 스타벅스 사진들로 바뀌어 있다. 하지만 그 것을 벗어나 한국의 Starbucks Experience도 어느 정도는 담아주었었다면 하는 그런 아쉬움이 남았다. 역자가 스타벅스 코리아의 사장이었다는 것을 보면 더 그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하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이 책 속의 '스타벅스 경험'들은 참 멋지고 짜릿하다. 나 자신도 그런 스타벅스 경험을 하고 또 한 명의 '스타벅스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 개인적인 경험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한국의 스타벅스는 이런 부분에서 조금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얼른 그런 경험을 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스타벅스 코리아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스타벅스 좋아하면 된장녀'같은 그런 이미지를 꺠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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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서 읽는 '스타벅스 사람들' 생각보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실제 스타벅스에 홍보판이 붙어있기도 했고. 한 손에 '스타벅스 사람들'을 들고 저 광고판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란... 가만, 이런 것도 '스타벅스 경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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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오늘의 일본문학 5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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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통 '미스터리'라는 태그를 갖고 있는 책이라면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하드보일드 풍이라는 이미지가 느껴진다. 뭔가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하나하나의 실마리가 풀려나가는 그런 느낌이 왠지 '딱'이라는 고정관념이랄까. 하지만 이 책,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지루함  1. 심심하고 따분함. 2. 녹초가 됨. 3할 일이 없어 싫증남. 4. 영화나 소설에서는 내포하는 문학성의 정도에 비례한다고 오해받는 경우가 많음.
불쑥 끼어들다 1. 같은 조직의 멤버가 아닌 사람이 갑자기 가입하는 일. 2. 사전에 미리 설명하면 반대표가 나올 것이 명확한 경, 기존 멤버의 동의를 얻지 않고 당당하게 참가함. #나는 네 인생에 불쑥 끼어들었다
전말 1.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상황. 2. 범인의 고백에 의한 지루한 설명
질문 1. 의문 또는 이유를 묻는 일. 2. 설명하는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
위의 내용들은 책의 각 장 도입부에 들어있는 일종의 '명랑한 갱'식 용어설명이랄까?(각 장에 깊이 관련된 단어들이 주가 된다. 각 단어의 마지막 설명들에 주목) 이 단어들이 바로 책 전반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명랑하다. 저자인 이사카 고타로의 독특한 필치는 책 전체를 유머러스하게 유지하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덕분에 꽤 느낌이 새롭다.
의식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거짓말을 간파해 버리는 남자 나루세, 0.1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시간을 잴 수 있는 체내 시계를 지닌 여자 유키코, 입만 열면 청산유수의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쏟아져 나오는 연설의 달인 쿄노,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인 능력을 타고난 젊은 소매치기 쿠온.
이상의 기묘한 능력을 가진 네 명의 남녀가 만나서 벌이는 명랑한(?) 은행강도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 스토리. 조금은 개그스럽고 조금은 로맨틱한 말캉한 느낌으로 펼쳐지는 은행강도 이야기가 꽤 재미있다.

작 가 이사카 고타로의 매력이 빛나는 부분은 왠지 모를 이 어긋남에 있다. 명랑한 분위기와 미스터리라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의 두 색깔이 잘 어우러진다는 것. 이 책 속에 포함된 미스터리적 요소들은 꽤 당당하다. 하나하나 밝혀지는 사실들이 서로 짜맞춰져가면서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구성도 매우 정교하며 동일한 시간에 흘러가는 서로 다른 사건들에 대한 묘사 등이 참 치밀하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은근슬쩍 흘려내는 사회 비판적인 요소들도 꽤 매끄럽고.
전반적으로 참 잘 쓰여진 미스터리이자 명랑 시트콤이다. 이런 느낌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이사카 고타로의 매력을 담뿍 느끼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개 인적으로 참 재미있게, 그리고 쉽게 읽었고(그런만큼 전체적인 복선이나 사건의 전개가 조금 쉽게 풀린다는 점은 있다), 그 덕분에 작년 일본에서 개봉했던 영화도 참 재미있게 봤다. 영화 역시 책의 분위기를 참 잘 살리고 있다. 특히 재미있었던 점은, 여기서도 왠지 모를 어긋남이 느껴진다는 것. 이번에는 영화와 원작 사이의 어긋남이다. 분명 원작에 있던 사건, 있던 대사, 있던 트릭이지만, 각각의 요소들을 영화 속에서는 다른 시간, 다른 장소, 다른 스토리에서 써먹는다. 그 덕분에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되지 않았나 싶다. 원작과 영화 함께 보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에 나온 후속작인 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을 또 읽을 예정.

왠지 모를 어긋남의 마리아주.
낭만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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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코끼리 넣기 같은 간단한 방법. 그 명쾌하고 간단한 은행털이 속에 그들의 명랑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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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보다 훨씬 Cheerful해진 느낌의 영화. 원작을 보지 않았다면 덜 재미있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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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은 어디냐!? 참 잘 만들어진 영화 홈페이지http://www.yo-gang.com/)도 한 번쯤 들러보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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