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 - 견검에서 떡검 그리고 섹검까지 대한민국 검찰, 굴욕의 빅뱅
정용재.정희상.구영식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언론에서 다룬 내용들 외에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고, 다만, 좀더 자세하게, 그리고 중복적으로 다루었다.  뭐 섹검때 익히 알려진 사건이지만, 여기서 거론된 사람들은 검사라는 공직을 떠나 변호사의 자격이 없다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연수원 제도를 통하여 판사, 검사, 및 변호사를 국가에서 양성하고 배출해왔었다.  국가고시라는 개념과 합격률 1%이하라는 사법고시를 조선시대의 과거급제와 같다는 국민들의 인식, 그리고 특정대학교 법학부 출신들의 주도, 거기다가 군사독재시절부터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지져 내려오고 있는 공안검사 또는 정치검사들의 무소불휘의 권력이라는 폐단이 어떤 형태로 구체화되고 뻔뻔해지는지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설령 검사로서 잘못을 저질러 옷을 벗어도 버젓이 변호사개업이 가능한 것이 현대 한국의 법조계의 현실이 것이다.  매우 잘못된 것이라 하겠다. 

원칙적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는 모두 법조인이고, 법을 다루는 자리에 있기에 가장 높은 standard of conduct을 요구 받아야하며, 실제로 미국에서는 그렇게 인식되고 있기에, 개인적으로, 즉 법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는 사건에 연루된다면 모를까, 판사/검사의 위법 또는 불법행위가 적발될 경우, 그는 일단 형법에 의거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이 나면 형을 살고, 변호사 license를, 죄질에 따라 정지당하거나 빼앗긴다.  이렇게 한번 면허를 빼앗기면 실질적으로 미국에서의 변호사 생활은 끝나는데, 이는 추후 다시 시험에 응시/합격하더라도 도덕성 조사에서 철저하게 불합격처리가 되기 때문인데, 참으로 합리적인 처사라고 하겠다.  

구체적은 예는 기억나지 않으나, 일전의 Spitzer검사장 사건이 생각난다.  뉴욕의 최고 검사장이면서 민주당원으로서 장차 대권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잘나가던 검사장이 고급콜걸과 마담이 연루된 섹스스켄들의 주인공으로 밝혀진 것이다.  사건이 터지고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검사장에서 물러났고, 한동안 근신하다가 최근에 CNN에서 데스크를 맡아 시사이슈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같으면 아마 그는 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였을 것이다.    

자, 소위 실명이 거론된 검사들 중 옷을 벗고, 벗자마자 변호사 개업을 한 두 양반들 중 모씨를 예롤 들어 분석하자.  그는 검사장으로 있으면서 수 십차례난 (1)뇌물을 받아 챙겼고, (2)케이스를 broker하였으며, (3)불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4)매춘을 상납받았었고, (5)상습적인 음주운전을 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규모로 보나 위치로 보나 사건발생의 빈도로 보나 이 모씨의 죄는 모두 felony, 즉 중범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직으로 끝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이 모씨는 최소한 형사재판을 받고 구속/수감되어 죄값을 치룬 후, 변호사 면허도 박탈당했어야 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미국 법조계의 standard로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태연히 개업하여 먹고 살고 있다.  그야말로 구역질이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뭐 conflict of interest개념도 희박한 한국의 법조현실에서 (한 대형로펌이 adversarial한 두 회사의 케이스를 모두 맡아 원고와 피고를 모두 represent하는 점, 또는 검사들이 자신들이 맡았던 형사사건의 사건 종료 후 일년안에 모두 피고 회사로 취직하는 점 등), 뭘 기대하겠나마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책의 평가가 빠졌는데, 이 책은 그냥 무난히 한번 읽고 보관하는 책이다.  reference용이라고도 할 수 있고, 역사의 기록이고, 나중에 분명 부정하고 부인할 기록이니까.  이 책으로 인해 경종이 울리거나 뭐가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런 일이 자꾸 생기다보면 언젠가는 정말 날벼락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산 대삼국지 세트 - 전10권
고산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산대삼국지를 구할때만 해도 나는 저자인 고산 고정일님을 고산고정일로 읽고 뭔가 일본의 작가가 평역한 삼국지가 아닌가 하는 약간의 착각을 하였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고산 고정일님은 유서깊은 book publisher인 동서문화사의 발행인으로서 상당히 오랜 기간 좋은 책을 편집/편찬해온 우리나라 출판업계의 원로였던 것이다.  쩝!  

하지만 이 책은 저자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상당히 아쉬운 부분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일단 reader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매끄럽지 못한 flow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를 실망하게 하였다.  일례로, 조조와 장수 (장제의 조카 및 후계자)의 일차 회전 후 장수의 항복-기습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갑자기 행이 끝나면서 스토리의 마무리가 없이 다음 장으로 넘어가 버리는 황당한 부분이 있는데, 이런 부분이 lesser degree이기는 하지만, 여러군데에서 나타나는 것은 최소한 책 편집에 있어 심각안 태만이라 하겠다.  즉 치밀해야 하는 장권소설에서 그렇지 못하다는 것인데, 특히 삼국지같이 이미 스토리가 이루어져있는 고전의 경우 이런 태만은 용서(?)하기 어렵다.  또한 전체적인 구성이 허술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런 것 또한 이 삼국지의 단점이라 하겠다. 

이런 오류에 비해 또한 이 책은 상당히 교조적이고 현학스럽기까지 하다.  억지로 끼워넣은 저자의 사상론, 비판에 가려 정작 중요한 스토리의 flow와 맺음, 그리고 상세한 밝힘 등은 살짝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것 같다.  이 분의 커리어나 어떤 사회/업계에서의 위치 혹은 이 분께서 공부하셨던 시기의 대한민국 문단의 한 면일 수도 있다는 생각 또한 들지만, 어쨌든 좀더 책 그 자체에 신경을 써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은 9권에서 모든 스토리가 마무리되어 10권은 후삼국지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을까 살짝 기대해보았으나, 10권은 저자의 삼국지의 에피소드들을 구체적인 예로 들어 편집한 병략론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또한 교조적이고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다.  아무튼 나에게는 이렇게 결론에 맞추기 위해 어거지로 끌어넣는 실례들은 매우 거북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이 책은 그저 다른 버젼의 삼국지를 읽는, 그리고 약간은 참신할 수도 있는 기존의 에피소드와 다른 몇 가지 사건의 결말들, 이런 부분에 있어 보람이 있었을 뿐, 책 자체는 전반적으로 내 standard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그래도 고산대삼국지를 더하여, 현재 나는 이문열, 박종화, 길천, 및 저자들의 이름이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다른 세 버젼의 삼국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기말을 훌쩍 넘어선 21세기의 두 번째 십년기의 시작인 2011년에도 변함없이 종교인과 무신론자 그룹의 힘겨루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실 무신론 자체가 일종의 신앙의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이 힘겨루기는 결국 종교전쟁과도 비슷한 전개로 흘러갈 것임을 예측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무신론자들의 말처럼 종교는 모두 거짓이고, 신은 없고, 종교를 갖지 않아도 착하게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종교는 거짓이고 신은 없다고 하는 것에는 개개인의 믿음과 성향, 가치관, 그리고 교육까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논쟁의 필요까지는 느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는 인류의 역사 내내 종교와 신은 있었고, 형태와 모습, 정확하게는 우리가 규정하는 신의 모습이나 nature만이 시대에 따라 변해왔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살아있는 사람으로써 이런 깊은, 어떻게 보면 3차원의 인간이 절대로 완벽하게 알 수 없는 이 이슈에 대해서만은 종교인/무신론자 모두 맞으면서, 모두 틀린다고 할 수 있겠다.  즉 실체를 완벽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부정될 수도 있고, 실체를 완벽하게 알 수 없기에 없다는 부정 역시 완벽할 수 가 없는 것이다.  궤변이겠지만... 

하지만, 인생의 반을 거진 살아가는 내가 경험으로 느끼기에는 무신론자의 삶은 종교인의 삶 보다는 못한 것 같다.  무신론자의 가치관은 (generalize하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가치관이며 자기정당화 및 자기합리화의 극단인 경우가 많다.  이는 결국 신/종교를 부정하기에 신/종교가 가르치는 보편적인 선에 대한 가르침까지도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는 종파와 시대를 초월하여 타인에 대한 사랑, 동정, 연민, 도움, 예의 등을 가르쳐왔기에, 종교의 practice에 따른 오류나 폐단은 많을 지언정, 제대로 믿는, 신실한 종교인이라면 자기중심적인 가르침보다는 이런 standard에 따라 행동과 마음을 규정하고 잘 살도록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무신론자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그들의 신은 결국 자기자신이며, 그들의 가치관 역시 자기자신의 합리화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종국에는 자가당착에 빠져 입으로는 신실함과 진보를 외치면서 행동으로는 극단적인 자기애와 보수가치에 빠진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소위 "종교가 무슨 필요인가, 성당/교회/절 안 나가도, 착하게 살면 그만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치고 착하게 사는 사람을 본 적이, 나는 없다.   

종교생활을 하는 것, 믿음이라는 것, 결국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 신을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도 "Sabbath was made for man, not man for Sabbath"란 명언을 남겼을 것이다.  종교가 사람을 위한 것일때 그 종교가 받드는 신 또한 빛이나고, 반대일 경우 종교는 사람을 옭죄는 도구가 되어 종교 자체가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살을 찌우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 또한 무신론자보다는 희망이 있다고 본다.  종교의 본질은 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일주일간은 서태지-이지아의 결혼-이혼 사실과 이에 관련된 뉴스로 온통 난리가 났었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이 이슈에 관련하여 이 정권의 BBK및 대운하 관련 뉴스를 덮기 위함이라는 음모론부터 서태지-이지아의 모티브에 대한 이야기까지 억측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연예인에게 완벽한 도덕과 사회적 책임을 원하는 것일까?  다른 같으면 사회지도층에 요구될 만한 수준의 도덕의식과 사회적 의무감을, 유독 이 나라에서는 연예인 계층에게 요구하는 것 같다.  일만 터지면 나오는 연예인=공인 이슈부터 해서 최근 현빈의 해병대 입대까지 잘했다고 칭찬받는 일이나 못했다고 욕먹는 일이나 모두 보면 잣대는 리더그룹에 요구되는 매우 high한 standard가 된다는 점이 궁금하다.   

한 가지 추측은, 이 모든 것이 한국의 사회지도층에게 바랄 수 없기 때문에, 또는 사회지도층 대신 일종의 희생양으로 또는 방패로써 연예인 계층을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왜 연예인은 일반인보다 더 빡시게 도덕적이고 의무를 다하여야 할까?  왜 국회의원, 재벌, 의사, 변호사, 판검사 아들들은 외국으로 도망가거나 군대를 가도 편한 보직만 찾아서 가는데, 연예인은 힘든 병과나 보직을 선택하면 칭찬을 받고 그렇지 않다면 욕을 먹을까?  왜 연예인은 사회봉사를 많이 하고 기부도 많이 하여야 하는걸까?  노블레스 오블리쥬는 말 그대로 귀족계층, 현대적 의미라면 사회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물론 일반인도 그렇게 하면 좋지만, 일종의 사회적 의무로써의 노블레스 오블리쥬는 상위 10%가 특히 지켜야 하는 덕목인 것이다.   

유독 사회지도층의 혜택 yes/의무 no의 역사적 전통이 강한 대한민국의 현주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다시 말하지만, 현빈의 해병대 자원입대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고, 서태지-이지아 결혼/이혼 이슈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이슈일 뿐이다.  그런 것이 뉴스화 될 시간에 정말 나라의 근간에 관련된 이슈들 - 대운하, 판검사, 정치인, 공무원의 부정부패, 국방이슈, 외교, 정치, 경제 - 에 대한 정확하고 소신있는 커버리지가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용병 2000년의 역사 - 세상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
기쿠치 요시오 지음, 김숙이 옮김 / 사과나무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혹 겪는 일이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구매한 책이 평생의 동반자가 되는 일이 있듯이, 상당한 기대를 하고 읽은 책이 기대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 "용병 2000년의 역사"에 해당하는 일인 듯 싶다.  역시 판매자 추천은 적당히 경계하면서 받아들여야 할 듯. 

도대체 책의 구심점이라던가 작가의 의도라던가 flow라던가 내용이라던가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번역의 오류인지 원 작가의 글 쓰는 작태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심지어는 chapter와 chapter가 이어지지도 않거나, 이어지지 않아야 할 부분에서 갑자기 잇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등 거의 속독도 아까울 정도로 마무리 해 버린 책이다.  어투를 보건데 크게 생각하고 쓴 문장이 아니라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마구 갈겨버린 책 같다.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한 책이다.  번역 또한 특별히 매끄럽지 못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