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또 첫 몇 작품들에 대한 느낌이 그저 그랬다고 해도, 모리스 르블랑이 대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출판된지 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수 십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꾸준히 출판되고 구매된다는 점, 그리고 계속해서 다양한 만화와 영화 등의 모티브가 된다거나 하는 점만 보아도 그렇다.  문학적인 작품성, 완성도 같은 것들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일단, 첫 몇 권을 읽을 때에는 적응이 되기 전이어서 그랬는지, 번역상의 이슈였는지, 내가 생각하던 뤼팽의 느낌을 받지 못한 부분이 많았고, 이에 따라, 작품 및 작가에 대한 이미지 역시 그저 그렇게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리즈의 50% 가량을 읽어내려간 지금, 스토리 자체의 완성미나, 캐릭터 구성 등에 있어 훨씬 더 안정된 감을 받고 있다.  상당히 만족하면서 읽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최근 1-2주간, 상당히 힘들었던 책읽기라는, 어쩌면 살짝 마른 펌프에 fresh한 물을 뽑아내기 위한 물붓기같은 독서를, 다행스럽게도, 뤼팽이라는 괴도를 통해 만끽할 수 있었고, 이는 다른 독서를 이어갈 양분이 되었기에 더욱 만족스럽고, 고마운 마음으로 남은 시리즈를 읽고 있다.

 

파타마 운하를 둘러싼 정계의 스캔들을 바탕으로 하여 썼다는 이 작품은, 예나 지금이나, 협잡과 협박은 정치/경제의 element를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홈즈와 마찬가지로, 뤼팽도 때로는 그를 능가하는 듯한 악당들을 만나게 되는데, 특히 흥분하기 쉬운 성향과 (프랑스인과 영국인의 차이를 보는 듯) 함께, 살인을 하지 않는 뤼팽 vs. 살인도 불사하는 그의 적들의 대결에서 카타르시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점점 뤼팽을 응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둑은 도둑인 법. 역시 뤼팽의 가장 큰 목적은 재물이다.  그 과정에서 물론, 악인들을 응징하게 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정의감의 발로이며 이를 위한 성취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byproduct으로써 말이다.

 

일종의 외전으로써, 장편으로 소개되지 않았던 작은 일화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괴도로써, 아니 그 이상, 뤼팽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스토리들도 들어 있어, 매우 신선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뤼팽의 사랑이야기, 뤼팽을 좋아하게 된 적편의 여자덕으로 위기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이야기, 그리고 가장 압권인, 한 에피소드에서는 뤼팽이 비록 의뢰받은 재물을 모두 잧아냈으나, 뤼팽 자신보다 훨씬 더 욕심이 많는 의뢰인단 덕에 계약으로 보장 받았던 보석들을 포기하는, 다소 우스운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두 작품 모두 일차대전 (및 그 이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포탄파편'을 보면 일차대전 당시 프랑스인이 가지고 있던 독일인에 대한 이미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기실, 지금은 서방에 편입되어 있지만, 오랜 역사의 시간에서 독일은 동유럽인으로 야만시 되어왔었다.  마치 중원의 제국들이 진나라를 보듯. 

 

'황금 삼각형'은 전후, 금을 둘러싼 상이용사와 악인의 wife, 그리고 그들을 돕는 뤼팽의 이야기인데, 이 시절이면 유럽의  황금시대는 이미 지났고, 서서히 스윙과 재즈의,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의 (그리고 겟츠비의) 시대로 진입하려는 시기가 된다.  이 시기면 뤼팽의 나이는 약 오십대 전후로 추정되는데, 다음 작품은 어떤 시기를 배경으로 하려는지 궁금하다.

 

이 밖에, 주말에 드디어 소설 '은교'를 읽었다.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은 좀더 자세히 써보고 싶기에 일단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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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1-23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 통일 이전에도 프랑스에서는 프로이센을 아시아에서 온 훈족과 같은 침략근성의 나라로 보는 경향이 있었죠.1차대전 때는 연합국 인민들 사이에서 독일에 대한 공포가 더했다고 합니다.심지어는 식인을 한다든가 하는...그러다가 2차대전이 끝난 후 서독을 공산권에 맞서게 하려고 연합국들이 나치전범들을 석방하여 활용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더라고요.

transient-guest 2013-01-24 02:24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냉전시대 혹은 지금처럼 경제 bloc시대 전에는 자기들끼리 무지하게 싸웠죠? 그런데 또 웃긴것이 1차대전이 적어도 황실간에 볼때는 가족간의 전쟁이었다는 것이죠. 참전국의 황실이 서로 혼인관계로 피가 섞여있었잖아요. 2차대전 후의 그런 행위의 피해는 한국도 많이 입었죠 사실. 친일파의 대거활용, 일본의 경우는 1급 전범들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배려해서 국가가 정상화 될 수 있게 했잖아요. 프랑스처럼 싹 쓸어버렸었더라면 하는 위험한 아쉬움이 좀 남네요.

노이에자이트 2013-01-24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유럽왕족들은 혼인으로 서로 얽혀있었고, 또 외국인 혈통이 많으니까요.영국 왕도 독일 혈통이고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와 친인척 관계죠.

일본과 서독의 전범석방엔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 강대국들의 암약이 있었죠.

아...그리고 프랑스도 친나치 잔당이 의외로 많이 살아남았어요.미테랑도 파시스트단체인 불의 십자가단에서 활약했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죠.우리나라와는 달리 서구에서는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를 않아요.비시 정권 때 협조자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transient-guest 2013-01-25 08:47   좋아요 0 | URL
어릴때에는 드골이나 장개석같은 군인출신의 우파독재자들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배웠었죠. 지금도 드골이 비시부역자들을 잘 청산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실상은 그와 다른가 봅니다.
 

 

미래에 그의 호적수가 될지도 모르는 이지도르 보트를레의 등장으로 빛나는 기암성.  어떤 castle이 아니라, 해안지역에 성처럼 솟아있는 바위군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사건에서도 역시 살인과 계략이 난무하고, 심지어는 뤼팽이 죽었다고 생각되는 정황이 발견된다.  사건이 오리무중에 빠지는 시점에서 등장하는 이지도르 보트를레는 그가 다니는 학교에서 이미 유명한 추리의 귀재 - 마치 소년탐정 김전일처럼 - 로 알려져 있는데, 간단한 귀납적 추리와 분석을 통해 뤼팽의 계략을 간파해낸다.

 

하지만, 아직은 너무 어린 것일까.  그 역시 숌즈처럼, 겹겹히 쳐놓은 뤼팽의 계략에 넘어가는데, 이지도르가 알아냈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은 사실 뤼팽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  그리고 역시 어린 탓인지, 완력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이지도르.  적어도 이 3권에서의 그는 뤼팽의 호적수가 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것 같다.  다른 이야기에서 그가 등장할런지는 미지수.

 

1차대전 10년을 앞둔 시점에서 이미 사라졌던 뤼팽이 갑자기 나타나고.  4년간 파리의 치안을 책임진 인물이 그였다는 사실에 세상은 또 한번 깜짝 놀란다.  그런 그의 앞에 계속 이어지는 살인사건과 독일황제의 물건을 둘러싼, 그리고 살인자의 정체를 둘러싼 음모와 계략이 이어진다. 

 

그냥 읽어내려갔기에 별 감흥은 없고, 확실히 홈즈와 비교하면 설득력이랄까 논리적 구성이랄까 매우 약하다.  가끔은 매우 중구난방으로 여겨지는 스토리.  게다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무엇인가 막힐만한 장면에서는, 기발한 방법으로 사건이 해결되면서 뤼팽의 안배였음으로 때워진다. 

 

도둑이라서 그런지, 홈즈보다는 훨씬 더 거칠고 흥분을 잘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스토리.  눈앞의 clue를 놓칠만큼 흥분하기도 하는 뤼팽은, 확실히 홈즈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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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앞서 말한 바 있지만, 김영하 작가는 그의 팟캐스트를 통해서 알게 된 한국의 현대 작가들 중 하나이다.  한국문학읽기의 한 갈래로써, 그를 비롯한 현대의 우리 작가들의 책을 하나씩 읽어가고 있다.  내가 읽는 그의 세 번째인 이 책은 참으로 특이한 설정을 가지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것 같다.  무력한 중년의 가장이지만 정체는 특수훈련을 받아 북이 남에 심어놓은 세포인 주인공, 기영.  권태기와 오랜 외로움을 아들뻘에 가까운 애인과의 정사 - 를 넘어서는 - 로 풀어내는 시들어가는, 그러나 한때는 운동권이었던 마리.  코미디언의 아들로 태어나, 지극히 공무원 같은 생각으로 살아가는, 철수는 그러나 국정원의 요원이다.  음모와 계략이 난무하는 직업상의 하루와는 다르게 - 적어도 내 눈에는 - 그는 초식남, 그러니까 vegetarian이다.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닐게다.  8-90년대의 운동권에, 지금도 노동권이나 기타 야권으로 총칭되는 사회운동/사상운동계에 북의 세포들이 잠입해있다는 설은 꾸준히 제기된다.  워낙에 공작정치에 시달린 우리들인지라, 정부의 이런 발표들을 잘 믿지 못하고 - 실제로 최근 들어 공안사건의 경우 검찰의 승소율이 매우 낮다 - 기득권당이 대세를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한 작전으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빈도수는 몰라도, 실제로 이런 의도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류의 사건들이 터지는 타이밍은 어찌나 기가 막힌지). 

 

작가가 이야기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목적이 있는지,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다 지나가버린, 이제는 남한에서의 삶에 익숙한 그를 다시 흔드는 과거, 그 과거를 이용하여 다른 세포들을 잡으려는 국정원의 음모, 마리의 불륜 - 을 넘어선 법대생들과의 난교 -, 이런 것들을 가지고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거의 끝에서 기영은 결국 국정원에 협조하고 남한에 남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정원은 아마도 그를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모종의 작전을 감행하여 그의 사망 내지는 사고를 위장하는 것 같다.  잠수정이 나타나고 공작조가 상륙하는 시점에서 공격의 섬광이, 빛이 기영의 눈을 가린다.  흡사, birth와도 같다.  아기가 엄마의 자궁에서 바깥으로 나가기 직전에 이런 빛을 보는 것이라면 말이다.  아니면, 단순히 터널 끝에는 빛이 보인다는 것을 강조하여 기영이, 자랑스러운 국정원의 도움으로 G-20에 빛나는 대한민국으로 온전히 귀화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까?  either way, 빛은 찬란한 시작같으나, 기영은 일상은 실로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  그저 그의 과거를 아는 마리, 불륜은 끝냈으나, 앞으로는 더 멀어질 것만 같은, 기영의 wife와, 아이와의, 그리고 여전히 고단한 중년남자의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무엇인가 잘 끝나려는 듯, 국정원의 철수는 마지막으로 비디오를 수거해가는데, 이 chapter의 제목이 "변태"이다.  그런데 나는 이 "변태"가 비디오를 녹화한 러브호텔 주인영감인지, 이를 수거해가는 철수를 말한 것인지 조금 생각하게 된다.

 

철저한 무관심, 일상, 권태, 이런 이야기를 빌어, 시대정신의 부재를 느끼는 요즘의 세태를 표현하려고 한 것인지?  분명한 것은, 이 소설에서조차 사상은 이제 우리에게 큰 화두가 아니다.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것, 기왕이면 잘 사는 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인 것임을 보게 된다. 

 

김영하 작가는 단순한 소설로 보아도 재미있고,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는 행간을 추측해도 상당히 흥미있게 접근하게 된다.  특히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살짝 금기시되는 테마 - 난교, 자위 등 - 를 쿨~하게 다루는 것 또한 흥미롭다. 

 

끝으로 대마초의 황홀경을 교회에서의 황홀경 으로 비교하는 부분은 은근 해학적이기까지 하다. 왜냐면, 적어도 그 지점장의 인간됨에 대한 묘사를 보건데, 작가가 의도하는 표현은 지점장이 느끼는 황홀경이 군중심리와 집단최면에 의한 것임을, 즉 그의 믿음(?)이 온전하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종교체험과 그릇된 것의 차이라는 것이 종이한장차이 정도이고, 받아들이는 이의 분별에 따라 혼동되기도 하는것을 알기에, 적절하게 지점장의 인간성을 우회해서 묘사한 것이라고 보인다.  즉 특정종교나 종교인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닌, 소설상의 기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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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1-1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90년대 소설들은 80년대와는 다르죠.간첩을 대하는 시각도 그렇습니다.분단문제를 다루는 소설가로 김원일 씨가 있는데 그가 간첩을 다룬 중편 '환멸을 찾아서'는 좀더 진지하고 애잔하게 간첩문제를 접근합니다.소설적 재미도 좋은 작품입니다.

transient-guest 2013-01-19 00:22   좋아요 0 | URL
보관했다가 구해봐야겠습니다. 공산주의국가의 본격적인 붕괴를 체험하게되는 90년대부터는 사상이나 이념보다는 역시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게 체감되는 것, 그리고 한국의 경우 김영삼씨의 삼당합당을 통한 일부계열의 '민주화'세력의 기득권화로 인한 전반적인 냉소주의, 체념, 허무주의같은게 적지않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 IMF도 그런 작용을 했을 것 같구요. 그런데, focus를 향한 다양한 이야기 떄문에 그런지, 현대소설은 상당히 산만하게 느껴질 때가 있네요.

노이에자이트 2013-01-1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문제는 냉전 직후 신세대를 표방한 사람들도 이제는 사십이 넘어서 케케묵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정치성형과 무관하게...청소년이나 이십대가 듣기에는 잔소리 같은 그런 것 있잖아요.

transient-guest 2013-01-20 01:32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게 세대간의 차이 아닐까요? 정말이지 이야기는 조심해서 해야하는 것 같아요. 난 젊다고 생각하고, 그들과 같다고 생각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꼰대냄새가 나는거죠.ㅎㅎ

아이리시스 2013-01-24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소설 좋아해요. 간첩, 국정원, 음모론 같은 키워드에 관심도 있는 편이고요. 이보다는 <검은꽃>을 더 많이 좋아하지만. 이 소설까지는 김영하도 좋아하는 국내작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후에는 제가 변한 건지, 작가가 변한 건지, 이후 읽지를 않았으니 제가 변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transient-guest 2013-01-24 02:26   좋아요 0 | URL
네. 생각할수록 무엇인가 배어나오는게 있어요. 간혹 나타나는 표현도 좋고. 김영하 작가의 책을 출판된 시기에 맞춰 읽은게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요, 초기작부터 시기별로 구별해서 보아도 좋겠네요. 어느날, 다시 흥미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변했다는 생각일랑 마셔요.ㅎ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이런 저런 기사를 클릭하면서 읽던 중에 참으로 기막힌 것을 보았다.  PD수첩 (맞나?) 출신으로서, 이상호 기자의 X파일을 쓰기도 했던 그 이상호 기자가 끝내 해고된 것이다.  '죄목'은 다른 것도 아닌 회사 '명예'실추 등의 '이유'라고 하는데, 아마도 그간의 행적에 대한 괘씸죄와 입단속의 일환이겠지 싶다.  그 뿐만 아니라, 사실 김재철의 주도하에 상당수의 익숙한 얼굴들이 이미 우리 눈앞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렸다.  해임, 권고사직, 지방방속으로 좌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일어나는 피없는 테러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김재철이 물러나더라도, 이미 언론장악과 종편을 통해 달콤한 통제의 맛을 본 저들이 이런 방법을 놓아버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날짜의 기사에는 더욱 기가 막히게도 김재철의 법인카드유용 이슈는 경찰에 의해 무혐의 의견으로 송치되었다는 것.  지나가던 소가 웃다 거꾸러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게 21세기 대한민국 정치, 법, 그리고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G-20라고, 국민소득 몇 만불이라고, 세계 10대 경제국가라고, 세계 10대 군사강국이라고...그렇게 국민을 현혹시키면서 잘 산다고 선전을 해봐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것이다.  적어도 정치와 법치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 어느 곳이나 기득권은 기득권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자신을 지킨다 - 적어도 명명백백하게 시비가 가려질 만한 일들은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즘 의료보험이나 사회보장, 총기문제, 경제이슈로 한껏 체면을 구기고 있는 미국이지만, 적어도 이런 injustice는 근래에 본 적이 없다.  국제적인 이슈에서야 자국을 보호하겠지만, 내부적인 단속에서의 법치는 한국보다 더 앞선 것 같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참으로 속상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앞으로의 5년간, 이렇게 욕이라도 해야겠다.  내가 비록 한국에 살지는 않지만, 그리고 한국의 정치가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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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1-17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MBC를 엠븅신이라고도 하죠..^^

transient-guest 2013-01-17 13:07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거참 설득력있는 학설(?)이군요..ㅎㅎ

숲노래 2013-01-23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다섯 해는 신문도 방송도 멀리하셔요~

transient-guest 2013-01-23 03:57   좋아요 0 | URL
사건사실만 명확하게 전달되는 매체만 있어도 좋겠네요. 판단은 제가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는 시사IN하고 한겨레,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딴지일보, 이렇게만 봅니다.
 

책을 읽다보면, 생각보다 자주 reading block이라는 것이 온다.  정해진 term은 아니고, 내가 그냥 생각해서 쓰는 표현인데, 책이 잘 읽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읽기 싫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도, 집중도, 흥미도 떨어지는데 당사자로서는 아주 답답한 노릇이다.  강박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잘 하던 것이 그렇지 못하게 되면 매우 갑갑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엇인가 패턴에서 벗어난 reading을 하려고 발버둥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대상은 SF, 장르를 가리지 않고, 특히 확 눈에 들어온 영어책, 무협지, 아니면 추리소설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내용을 너무 빤히 알고 있는 책들의 경우 이 reading block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 즉 예전에 많이 읽어서 내용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현재 가지고 있는 김용의 작품들이나 홈즈, 또는 일본의 괴 추리소설들은 도움이 안된다는 뜻.  생각다못해 캐드팰 시리즈를 이곳에서의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 이번 달에 좋은 케이스를 수임했다는 이유로 - 주문할까도 내심 망설였지만, 그 값이면 한국에서 1.5배의 책 값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일단은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서고 - 라지만, 사실은 내 사무실의 IKEA 책장 (예전에 사진으로도 보인) - 를 뒤지다가 보물을 발견한 것이니, 작년 연초에 구해놓고 읽는둥 마는둥 모셔놓았던 아르센 뤼팽 전집이 되겠다.  정통 추리물보다는 고전으로서 대접을 받는 작품이라서 그랬는지, 두어권을 읽다가 조금 흥미가 떨어져서 내버려두었던 것인데, 역시 책이란 사두면 언젠가는 읽게 되고, 때로는 요긴하게 쓰일 수도 있다는 나의 믿음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까치글방과 황금가지에서 각각 전집을 번역해 출판했고 - 홈즈와 마찬가지로 - 나는 홈즈의 인연에 따라, 그리고 책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들었기에 황금가지판을 가지고 있다.  지금보니 까치글방의 20권 전집이 약 10여만원에 세일 (40%)중이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당장 주문했을 것으로 매우 심하게 추정된다.  어쨌든, 지금까지 첫 두 권을 읽었는데, 간략하게 남겨두고 싶어서 페이퍼를 썼는데, 뜻밖에도 장황한 intro가 되고 말았다.

 

'괴도 신사 뤼팽'이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이다.  예고된 탈옥과, 상대의 함정을 미리 알아보는 그의 행각, 그리고 기상천외한 도적질로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는 그는, 심지어 propaganda를 위한 신문사도 소유하고 있으니, 이 정도라면 괴도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다고 하겠다.  하지만, 아직까지 뤼팽에게는 그런 그를 빛나게 해줄 호적수가 없다는 것이 아마도 불행이라면 불행일 것이다.  가니마르 경감 정도로는 절대로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같은 대결구도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니까. 

'신사'라는 부분은 매우 낮은데서 출발한 그의 컴플렉스를 보여주는 것일까?  어디를 봐도 '신사'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만, 작중에서, 적어도 대중앞에 나타나는 그의 겉모습은 그럴듯한 프랑스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때로는 매우 광폭하고 음험하다.  그런 의미에서 '신사'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낭만적이 이미지는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천명관 작가보다 먼저 일인칭과 삼인칭 시점을 오가는 작법이 살짝 신선하다가 혼란스럽다가 했다.  정리가 조금 덜 된 느낌이었다.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라는 부제가 붙는 두 번째 이야기는 말 그대로 뤼팽과 숌즈라는 영국의 명탐정이 한판 승부를 벌이는 이야기.  누가봐도 홈즈의 오마쥬이고 르블랑이 선배인 코난 도일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고 하는데, 난 그 말에 절대로 공감할 수 없다.  이 책에서 묘사된 숌즈는 홈즈의 장점을 모두 떨궈내고, 단점만 부각시킨 인물이다.  심지어는 허영과 거드름, 조급함까지 더한, 어쩌면 프랑스인의 시각으로 보이는 홈즈라는 '추리기계'에 대한 이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data와 통계자료를 compute해서 이 둘의 가상대력을 분석하면 홈즈가 이길 것임은 분명하다.  이렇게 결점이 많은 숌즈가 뤼팽보다 약 반 걸음정도가 늦었다면 흠즈는 뤼팽의 머릿속에 들어있을 것임이 분명하니까. 

 

 

정통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는 적지만, 가볍게 머리를 식히면서, 이 시대의 낭만과 함께 - 1905년이 작품의 원년이니 1차대전보다 먼저이다.  소위 말하는 황금시대의 막판이었을 듯 - 고전을 대하는 마음으로 한 권씩 읽어내려가면 좋을 것 같다. 

 

그나저나 캐드펠 시리즈 20권,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 모음은 언제쯤 내 품에 안기려나?  크리스티 전집은 정말 기념비적인 출판물인데, 권 당 가격을 아무리 낮게 잡아도 40만원 이상이 필요하고, 60권이 넘는 책을 이곳으로 가져오는 것도 큰 고민거리가 된다.  일단은 마음속에만 담는 요망사항이 될 것 같다.

 

 

 

 

 

 

 

 

50권에 플러스 14권이 더 나왔다.  그런데, 벌써 품절된 상품들이 보인다.  조바심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만, 나와 인연이 있다면 이 길에서 또 만날 날이 있겠지 하면서 달래본다.

 

 

 

사족: 뤼팽의 일러스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이템들 중 하나는 외눈안경이다.  이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좋은 렌즈를 생산하는 것도, 그리고 많이 생산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하고, 또 렌즈 두 개를 연결하는 테를 만드는 기술, 나아가서 이 두 개의 렌즈의 형평을 맞추는 것도 어려웠다고 한다.  ergo, 외눈안경 (monocle). 그런데, 예전에 보니, 이걸 오래 쓰게 되면, 다른 한 쪽의 눈이 적응을 하느라고 자주 찡그리거나 작게 뜨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까, 장난으로라도 이제는 이런 것을 가지고 놀지는 않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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