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손가락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도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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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송자 미상의 편지가 무작위로 배달되는 것에서 시작되는 작은 마을의 추측성 추문. 추문때문에 벌어진 자살, 그리고 살인사건. 언제나처럼 미궁에 빠진 사건은 미스 마플의 추리로 한 번에 해결된다. 설득력이 조금은 약했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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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솔직하게 말하면, 이 책은 '제목에 낚여서' 책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교과서처럼 보여줄 수 있는 구매를 통해 내 손에 들어왔다.  늘 혼자의 시간을 찾아 헤메이는 일종의 자유노매드라고 자신을 규정하는데, 정말이지 혼자라서 외로운 것과 자유로운 나의 삶을 저울에 놓고 달아본다면, 내 저울은 자유쪽으로 기울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이 책은 '혼자 산다는 것'을 어떤 클리셰를 통해 외롭고 꿀꿀한 것, 또는 마치 '신사들의 품격'이나 'Sex and the City"류의 화려한 모습으로 재단하여 각기 특이한 모습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보편적인 내용을 기대하고 펼쳤으나, 나온 것은 매우 진지하고 학구적인 '혼자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고찰이었다.  조금은 과장일까? 

 

'혼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통해 변증법적인 분석으로 그 의미와 대상을 규정하고난 뒤의 이야기는 적어도 나로써는 한번 읽고나서 간결하게 정리하여 쓸 수 있을 정도로 간편하고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인 고찰, 존재론적인 접근, 제도적인 접근, 사회통념 등등의 다양한 방향에서 '혼자 산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그의 밥줄이기도 한 사회학 박사/교수로서의 재주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는 때로는 너무 분석적이라서 피로감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아카데미아의 사람이기 때문이고, 작가로서는 아직도 신인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한번 이야기 한 것을 다시 펼쳐서 이야기 하거나, 굳이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학계 특유의 현학성이 아닐까 싶다.  독신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해보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하지만, 기대하는 것이 '신사들의 품격'이나 'Sex and the City'의 도시 이야기라면 이 책의 제목에 낚이지 말 것.

 

'Life is a Trip' 그러니까, '인생은 여행이다'가 직역이라면 이 제목은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제목을 번역하면서 마케팅 측면에서의 고려와 책의 내용을 잘 갈무리 하는 것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고 할 때 이 번역은 매우 훌륭하다. 

 

헐리우드의 영화/텔레비전 스크립 작가인 저자는 어느 날, 반복적인 일상에 지쳐 모든 것을 던지고 (는 조금 과장이지만)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다.  돌아오기 위한 여행이라기 보다는 노매드로써의, 그러니까 떠돌아다니는 그 자체의 여행을 통해 자신에게 내재된 오랜 샤먼의 피를 깨우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고생도 하면서, 2013년 현재 우리들 대다수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방법을 통한 의사적인 연결이 아닌 진정한 행동을 통한 아날로그적인 연결로 세상과 소통한다. 

 

편견을 깨고 싶다면, 깊이 다른 것들 속에 가라앉고 싶다면, 책 읽기와 여행 이 두 가지가 답의 큰 기초를 준다.  여기서 책 읽기는 깊이 자신만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라면, 여행은 광주리에 담가 불려놓은 감자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다른 이들과 다른 존재들과 다른 모든 것들과의 섞임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일게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나는 확실히 50% 부족하다.  독서를 통해 채우는 나머지 50% 또한 완전한 50%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는 내가 행하고 있는 방편이지만, 여행은 확실히 부족한 나머지 반쪽이 아닌가 싶다.  늘 낭만적일 수는 없겠지만, 내 생애 처음 가본 이탈리아와 반도 남쪽에서 배를 타고 건너던 지중해와 아드리아 해, 그리고 메주고리예까지의 여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게는 신화와 고대사의 현장이기만 하던, 책속의 그 바다를 건너면서 잠깐 트로이의 목마와 오딧세이아를 떠올렸다면 심한 과장일까?  여행은 그렇게, 집에서는 좀체 열 수 없는, 자신의 껍질을 단밖에 부숴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어느 정도 삶의 먹거리를 채우고나면 사무실을 접고 한 일 년정도 떠나고 읽는 것이 소원인데, 아직은 요원하기만 하다.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삶은 그래서 늘 부럽기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8-6에 묶인 직장인들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살고는 있지만, 역시 부족하게만 느낀다.

 

그간 참으로 많은 서평집을 읽었다.  장정일, 이권우, 표정훈, 다치바나 다카시, 파란여우, 김애리, 이희석, 이지성 등등.  이 밖에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독서론과 리뷰를 읽어왔는데, 여느 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저자는 오랜 시간 책 편집과 외주교정자로 일해온, 사십 대의 끝 줄의 독신자이다.  그가 살아온 시간은 아마도 그를 386으로 규정할 것 같다.  

 

서평 중간중간 어떤 교육을 받으면, 아니 어떤 연습을 하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투영하여 책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전문 서평가의 책처럼 밑줄 그을 말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raw한 어느 한 사람, 작가가 아닌, 한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보게 하는 책은 흔하지 않다.  내가 읽은 서평가들 중 글솜씨는 아마추어지만, 교묘한 포장과 그럴듯한 구성으로 전문가의 옷을 입은 글쟁이들이 몇 있었다.  마치 공장에서 담근 기계적인 숙성을 거쳐 그 맛이 포장된 공장표 된장과도 같은 글이었다.  반면 이모부의 글은 그런 의미에서의 아마추어리즘이 아닌, 마치 우리들 중 누군가가 세월을 지나면서 그대로 깊어진 듯한, 마치 전문가는 아니지만 어머니가 집에서 담근 구수한 된장같은 그런 풍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글에서 깊은 몰입과 공감을 끌어낼 수는 없었다.  저자의 나이와 내 나이의 차이, 그리고 그의 삶과 나의 삶과 그 깊이의 간극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잔잔하고 담담한 이 책은 아마도 어느 한가로운 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땡땡이 치기 위해 사무실을 벗어나서 즐겨 찾는 허름한 카페 한 구석에 앉아서 읽으면 다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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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2-26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ransient-guest 님께서는 서평집을 정말 많이 읽으시는군요. 저는 그런 종류의 책들은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좀체로 손에 잡히지 않더라구요. 좀 더 심하게 얘기하면 저자가 읽어보라고 선물을 해 준다고 하더라도 과연 내가 읽기나 할까 싶은 생각도 들구요.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정말로 '여행지에서만 보이는 것들'이 있긴 있더라구요. 그게 무엇인지는 정말 예측하기조차 어렵지만요.

* * *

나는 여행을 즐기는 이유를 물어 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버리고 떠나는 것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나, 이제부터 찾아보려는 것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몽테뉴)

transient-guest 2013-12-27 03:06   좋아요 0 | URL
서평집이나 독서에 관한 글을 읽기 시작한 것은 잘 읽고 잘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면서부터였어요. 서재생활을 하면서 다른 분들의 깊거나 재치있는 정리를 볼 때마다 모자란 자신을 보게되구요. 다른 이들의 '평'이 궁금하다라기보다는 읽고 쓰는 것이 궁금해서 자꾸만 보게 됩니다.

낯선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니 그런 상태에서만 촉발될 수 있는 마음 속 깊은 곳의 그 무엇인가는 여행을 가지 않는다면 끄집어 낼 수가 없지요.ㅎ
 

예전만큼 책읽기에 대한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마찬가지로 글쓰는 것, 리뷰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덜 하게된다일정부분은 인정하고, 일정부분은 포기하고, 그러면서 읽기와 쓰기는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사실, 내가 읽는 방식이나 이를 통해 무엇인가 남기는 방식이 남들과 다르거나 못하다고 해서, 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끝에 독서도 글쓰기도 다 던져버리는 것 보다는,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추구하는 그 무엇인가의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갖고 계속 행하는 것이 진리라고 본다

 

이번에 읽은 책들 중 상당수가 책읽는 이야기와 글쓰기에 대한 것들이 되어버렸는데, 순전히 우연이다예전부터 다른 분들의 서재에서 추천글을 읽고 모아두었던 것들을 구하게 되어 다른 책들은 잠시 미루고 이들을 위주로 지난 한 주간 책을 보았더니 순식간에 리뷰가 밀리게 된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연말이라서 그런지 지치기도 하여 읽기는 어찌어찌 했지만, 글을 쓸 맘은 잘 생기지 않았던 것도 이유이긴 하다

 

 

 

 

 

 

 

 

 

 

 

 

 

 

 

찾아봤더니 출판된 순서는 위의 순서에서 거꾸로 2005-2009-2013년이다우습게도 읽은 순서는 지금와서 기억하니 2013-2009-2005년이 되어버렸는데, 그런 이유였던지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에서는 다소 공감도와 몰입도가 떨어졌고, 작가의 글이  '퇴보'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결국 책을 출판된 순서에서 거꾸로 읽은 탓에 가장 발전한 글을 먼저 보고나서 상대적으로 4년전, 그리고 8년전의 솜씨를 보았기 때문인 듯 싶다.

 

이권우의 책은 '호모부커스'로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나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호모부커스 2.0' 함께 두 번 정도는 읽은 것 같다당시 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던 때라서 이런 저런 저자의 의견을 밑줄 그어가면서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비추어 보던 추억이 있다.  

 

'여행자의 서재'는 저자가 다른 이의 눈을 통해그러니까 그들의 글을 통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감상을 독서후기의 형식을 빌려 정리한 이야기들이다방구석에 앉아 세계일주가 된 셈인데, 지난 5년 간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더구나 여기에서 다룬 많은 책들 중에서 네 권은 나도 읽은 바 있어, 더욱 반갑게 저자의 생각을 나의 그것과 반추해 보았다.  

 

"여행을 촉발한 동기가 바로 문학이 탄생한 그 자리다그러니, 문학하는 자는 당연히 월경을 꿈꾸는 자다..."  이런 저런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아서 일일이 옮겨적지는 못하겠지만, 많은 밑줄을 긋게 만든 이 책에서 여행과 문학의 본질, 그러니까 이야기로써의 본질을 잘 표현한 말이라 여겨 특히 기억에 남았다또 삼국유사의 길을 따라 여행한 '고운기의 삼국유사 길 위에서 만나다' 매우 흥미있는 여행의 한 방법으로 보이는데, 조금 작게 생각하면 좋아하는 책이나 작가의 행로를 따라 가보는 것도 좋겠지 싶다물론 말은 이래도, 아직 지척에 있다는 스타인벡의 생가에도 가보지 못한 , 늘 생각과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자신이 참 불만스럽다.  

 

'죽도록 책만 읽는'이 출판되던 시기의 한국은 가카치세의 둘째 해가 되던, 그러니까 그 때만 해도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되던 때였다그래서 그랬나, 이권우의 머리말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치열하다본인도 스스로 밝혔듯이 이 책은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얼마나 치열한 정신으로 마주섰는지, 지은이의 문제의식을 오늘의 우리 삶과 관련시키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되새겨보는 의미를 갖는다.  '여행자의 서재'가 여행과 문학을 함께 생각해보는 일종의 독서여행이야기라면 이 책은 그 보다는 더 깊고 치열한, 아니, 너무 깊어 우울하기까지 한 책을 통한 구도이다.  여담이지만, 이 책에서 다룬 책들 중 어느 한 권도 아는 것이 없었는데내가 책을 적게 읽는것은 아니니까, 결국 그간 무엇을 읽었는가, 찾아왔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단순히 세상에는 참 많은 책들이 있구나를 넘어 이권우같이 공신력이 있는 독서평론가가 읽은 책을 왜 나는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을까, 그와 나는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2005년의 책이다.  2013년에서 보면 8년이나 젊은 이권우가 읽은 책, 그리고 거기서 배운것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앞서 말한 것처럼 몰입도나 공감도가 떨어졌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고, 아마도 2013-2009-2005년으로 이어지는 순서에서 온 일종의 피로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쓴 글 몇 가지를 보면서 떠올린 것들이 있어 적어본다.

 

"지은이는 창보다는 문이 더 좋다고 한다창은 관조의 자리이지만, 문은 실천의 현장과 연결되어서란다..." (신영복의 엽서).  그래서였을까 나쓰메 소세키는 그래서 문보다는 창을 통해 세상을 보면서 단절을 즐겼던 것일까.  이 글과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가 함께 겹쳐 떠오르는데, 소세키의 문은 '실천의 현장과 연결'되는 행동으로써의 문이라기 보다는 '관조의 자리'인 창으로써의 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명작이니 좋은 책이니 하는 것을 무조건 수긍해야 할 이유는 없다...(하지만남들이 입을 모아 명작이라 하는 작품에는 분명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요소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어쩌면) 책 읽기의 가치는 남을 이해하는데 있다...(그래서) 나는 다시 읽으며 이번에는 작품을 쓴 작가가 아니라, 그 책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을 이해하기로 한 것이다..." (암흑의 핵심에 대한 이야기).  고전문학이나 명작이라고, 남들은 다 재미있다고, 깊다고 극찬하는데, 나에게는 잘 닿지 않는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다.  독서수행의 길에서 이런 책을 종종 만나는 것은 희귀한 일이 아니다그럴 때, 어쩌면 그 책 자체를 이해하기보다는 그 책을 쓴 사람, 나아가서 그 책을 고전으로 만든 사람들을 읽는 자세로 마음을 낮추고, 자신을 비워내면, 그 공간은 오롯히 하나의 책이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낸 내공을 흡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하는 글이었다.

 

독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하나의 방편이다방편으로써 경영되고, 관리되고, 조직화되고, 분석되어야 하고, 공부되어야 하는, 그들이 설파하는 길, 가고자하는 길을 가기 위한 교통편이다그런 의미로써의 독서도 분명한 메리트가 있고, 공부로써의 방법론도 배울 부분이 있다하지만,  개인적인 기호로는 이권우식의 서평이 좋다장정일식의 극단적인 칭찬이나 비난도 아니고독서경영학파의 분석과 경영이 아닌, 간간한 선비의 글처럼, 책에 대한 사랑과 마음이 그 자체로 느껴지는 그의 글을 앞으로도 즐겨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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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2-24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와 함께
우리 이웃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책 하나에서 만날 테지요

transient-guest 2013-12-26 02:03   좋아요 0 | URL
책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이야기마다 배우고 볼 것이 많지요.ㅎ

노이에자이트 2013-12-25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권우 씨 문장이 점잖고 묵직해서 좋죠.뭔가 남을 찍어내고 공격하려는 글은 많이 못읽겠더라고요.

transient-guest 2013-12-26 02:03   좋아요 0 | URL
장정일씨의 책은 간혹 원색적인 비난이 많아서 특히 독서일기 시리즈는 중간중간 불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권우님의 글은 내면을 향하는 글이지, 누군가를 비평하는 글이 아니고, 깊은 맛이 있더라구요.
 

성소수자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소수자들의 인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적어도 종교의 가르침을 근거로하여 그들을 박해하는 것은 그 가르침에 위배된다는 결론을 맺었다.  천주교와 개신교를 망라한 기독교인들이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근거는 성서상의 가르침이다.  구약에서 몇 번, 신약에서는 없다고 본다는데... 

 

종교의 목적은 신의 경배가 아니라 사람간의 평화와 사랑이다.  신은 사람이 경배하고 사랑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다.  신을 경배하는 것을 호도하여 사람에게 증오를 가르치고 재물을 갈취하는 것은 신을 이용한 자리보전이나 영리행위에 다름아니다. 

 

구약의 원본인 토라를 다시 해석해서 연구해볼 일이다.  과연 성서에서의 해당 귀절이 게이나 레즈비언 또는 트렌스젠더를 언급한 것인지를...  어쩌면 성서의 귀절은 성의 타락 그 자체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  남색을 호모섹슈얼리티로 생각하기 쉽지만, 성서상의 의미는 성적 방만과 타락이 극에 달하여 이성관계를 진부하게 여긴 나머지 동성의 관계에서 쾌락을 찾는 이들에 대한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런 해석도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종교에서 지양하는 성적타락과 호모섹슈얼리티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북한 그리고 연예인 성매매 수사:

북한의 사건은 진위를 떠나 이용하기 좋은 이슈다.  당장 조선의 매설가들은 온갖 자극적인 추측성 기사들을 찍어내고 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지난 어맹뿌 정권부터 시작된 정치공작으로 약화된 국정원의 해외정보력을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밤의 대통령의 후예들답게 거북하고 거지같은 사건들에 유독 발군의 능력을 보이는 조선의 매설가들은 그러나 그 죄값은 누군가가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공안검찰 역시 마찬가지.  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온갖 자극적인 사건은 언제난 정치적으로 여당이 사면초가에 몰리는 시기에 터진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안다.  SOB들아!

 

김규열 선장의 영면을 빌면서:

도대체 외국의 한국공관에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일까 의문이다.  얼마전 자체평가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샌프란시스코의 총영사관만해도 개판 오분전이니 말이다.  내 개인적인 수 차례의 경험인바, 창구의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대화하기 바쁘고, 사람이 바로 앞에 서있어도 외면하면서 자기들끼리 떡을 쳐먹고 야부리를 떨기 바쁘다.  무슨 일이 있으면 결국 영사가 개인적으로 사과를 하는 선에서 끝나고, 특히 현지채용직원들의 안하무인 - 누가 우릴 자르겠어 하는 -은 이루 말할 수 업을 만큼 그 도가 지나치다. 

 

필리핀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억류되는 또는 힘든 일을 겪는 한국인들에 대한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 듯한 외교부에게...최소한 필리핀의 담당자들에게 나의 거룩한 한 손가락을 드리오니 FXXK YX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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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구하기에는 주문이 귀찮아서 한국어로 구했다.  너무도 외진, 탄광촌이 널린, 그러니까 지금은 많이 쇠락한 애팔래치아의, 인구 5000의 깡촌에, 큰 프렌챠이즈라고는 월마트 하나뿐인 빅스톤갭이라는 동네에 한 부부가 아주 낡은 집을 사들이고는, 아무런 대책도, 경험도 없는 헌책방 장사를 시작한다.

 

이들의 유일한 바램은 적당히 밥을 굶지 않고, 밟고 밟히는 삶을 떠나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4-5년의 고생끝에 그들은 그 꿈을 이루고, 이를 책으로 써낸다.

 

소소한 에피소드가 재미있지만, 사실 이 책에는 귀농이나 작은 타운으로의 이주에 대한 환상 못지않게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작은 공동체 특유의 사건들에 대해 냉철한 충고를 준다.  또 이의 연장선상에서 organic하게 산다는 것이 사실 그 매력과 political correctness만큼이나 꾸준하고도 깊은 금전적인 희생, 부지런함, 그리고 지역적인 조건을 요한다는 것도 이야기해준다.  비록 헌책방을 열고 먹고살 자신은 없지만, 유기농에 대해, local market운동에 대해, 지속가능한 작은 공동체에서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부수적인 교훈을, 이들 부부와 이웃의 알콩달콩한 에피소드의 재미와 함께 얻을 수 있었다.

 

그저 재미를 위해, 그리고 SF적인 관점에서의 정리가 맘에 들어 구매했다.  내용은 다소 실망스러운데, 파토님의 글솜씨나 말빨은 워낙 화려한 바, 그저 딴지일보에 연재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편집한 정도라는 점이 그러한 것이다.  책으로 펴낸 이상 조금 더 내용을 보강하고 새로운 포인트를 추가했더라면 보다 더 가치있는 책이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대의 고대문명의 기원, UFO, 달, 화성, 지구, 등등에 대한 진지한, 하지만 엔터테인먼트임이 분명하다고 주지하는 썰은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데, 당연히 그 답은, 적어도 지구적인 관점에서는 없다.  기록도 없고, 온갖 추리가 다 가능한 고대문명의 기원이나 외계인 이야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처럼 큰 재미를 선사한다.  혹시 아는가.  이 책을, 이런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된 한 아이가 나중에 자라나서 아시모프나 하인라인처럼 위대한 작가가 될 지, 아니면 루카스같은 감독이 될지, 아니 천재과학자로 자라나서 화성이주계획의 중추가 될지 말이다.  비전을 주고 갈 곳을 가리키는 것만으로도 SF구라는 그 존재의 가치가 있다.

 

책의 시작은 그간의 휴가생활에 돈이 다 떨어진 샤이러 가족이 베를린 특파원직을 맡으면서 독일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이미 히틀러의 나찌스가 정권을 잡은 30년대 말기, 오스트리아가 병합되기 직전의 베를린이 공기와 히틀러의 bluff를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본 생생한 기록은 물론, 그 당시 서방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세밀한 히틀러의 묘사, 독일국민의 인식 등 흥미로운 일차사료들로 가득한 책이다.  자료로써 뿐만 아니라 이 책은 그 문장 자체로도 훌륭한 읽기가 된다.  샤이러는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Nightmare Years"와 "제 3제국의 흥망" 같은 대작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약 600여 페이지로 상당히 긴 책이기는 했지만, 긴박한 당시 정세를 사건의 한 가운데서 기자의 눈으로 풀어낸 그 내용과 묘사로 지겹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번역이 되지 않아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렵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영문으로 도전해도 무방할 만큼 쉬운 단어를 사용했다.  다만 중간중간에 나온 독일 단어는 거의 추측해가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작금에 대두되는 한국형 파시즘의 전초작업을 생각하면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조금씩 국민을 호도하면서 반대세력은 반동으로 몰아가는 - 그러니까 우리의 종북프레임 - 과정이 귀태정권의 모습과 참으로 닮았다.  다른점이라면 그들에게는 유대인이 있었고, 우리에게는 '종북'이 있다는 점인데, 비합리적인 불만의 대상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이거나 '반대당'이 되는데, 종북이 없어지면 그들이 휘두르는 백정의 도끼는 아마도 '외국인 - 가난하되 피부색이 하얀 사람이 아닌 '과 '성소수자'들을 향할 것이다.  여러모로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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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2-12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과 정치가 있으면, 권력과 정치를 지키려고 그들은 늘 '적'을 만들고 '군대와 경찰'을 키우며, 여느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요.

transient-guest 2013-12-12 10:51   좋아요 0 | URL
늘 가상의 적이 필요하죠. 주로 나란 밖의 약자는 너무 멀고, 주변부의 소수그룹을 대상으로 테러가 자행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