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는 한국신문을 따로 구독하지 않기에 (사실 별로 읽을게 없다) 포탈을 통해 이런 저런 한국의 뉴스를 접하게 되는데, 이들 중에서 최근 2-3일간 나의 눈길을 끄는 기사를 보았다.  탤런트 이영애를 내세운 모 교수의 비빔밥 광고가 뉴욕타임즈에 전면으로 계재된 것이다.  세월도 비껴간 이영애의 단아한 한복 맵시를 내세우고 대장금의 이미지를 최대한 이용하여 비빔밥으로 추정되는 사진과 함께 예쁘게 올라간 사진과 함께 올라간 메시지는 누가 보아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임이 분명하다.

 

영어 메시지, 미국의 신문이라는 점 외에도, 이 광고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 너무도 명백한 이유는 드라마 대장금을 실존했던 역사의 이야기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라면 그렇게 노골적으로 잘못된 fact를 내세우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광고로써, 많은 나라에 수출되어 한국의 음식을 - 정확한 현대의 음식이 아닐지라로 - 소개했다는 유명도와 impact를 생각할 때 당연한, 아니 매우 좋은 아이디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commercially anyway...

 

하지만, 이런 것들이 쌓이면,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한국의 역사적인 사실들은 왜곡되고, 이 왜곡들이 확대되어 다시 생산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실질적인 역사와는 관련이 별로 없는 소설적인 이야기가 한국의 역사로 둔갑되고,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떠나, 겉에서 보이는 한국은 현실과 동떨어진, 그래서 종종 진지하게 취급될 수 없는 역사이야기를 가진 나라로 인식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전략적으로 이를 잘 이용하면 일본이나 중국처럼 자국 문화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날조된 얌전한, 그러나 용감한 벚꽃과 사무라이의 문화를 가졌다는 일본, 중국의 소림사 같은 것은 꾸준한 브랜드 마켓팅의 결과물에 다름 아닌 것이라고 보는데, 이런 부분에서 한국은 상당한 후발주자에 속하니만큼, 본 '비빔밥' 광고같은 컨셉은 물론 장기적으로 잘 관리되면, 그리고 컨텐츠가 뒷받침 된다면 큰 효과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찝찝함은 남는다.  

 

태권도가 세계로 수출될 때, 이는 가라테를 원류로 하여 만들어졌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무술임을 선전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도서관의 책에서 확인한 바이지만, 다수의 한국 사범들의 태권도 저작들에 이런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즉, 삼국시대에 우리 국가들은 상당부분 가난하여, 기마군단에 취약했기에 기마병을 상대하기 위해 특별히 수 많은 '날아차기'들이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뒤돌려날아차기나 이단옆차기 같은 공격법이 말을 탄 상대를 가격하여 낙마시키고 맨손으로 제압하기 위한 전법에서 유래했다는 이 말은, 이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져서 외국인의 손으로 쓰인 무술소개서적들에서 그대로 차용되었고, 지금도 외국의 태권도인들 중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는 비단 태권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님은 물론이다.  기실, 다수의 동양무예들이 이런식의 날조된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실로 내세우기를 즐긴다.

 

어느 것이 먼저일까?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한국의 위상이 낮았던 60-80년대까지는 분명히 이런 부분에서 이득을 보았을 것이니 더욱 그렇다.  또한 상대적으로 외국에 덜 소개된 한국의 상고시대 역사 - 한국 내에서조차 논란이 끊이지 않는 - 를 외국에 소개할 때에는 분명히 이런 과장도 필요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을 보면, 신화와 역사를 교묘히 섞고, 긍정적인 부분을 극대화하여 외국에 소개한 결과, 그들의 역사는 우리 역사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고 깊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러나, 이번의 비빔밥 광고는 그 효과를 떠나 이제 임기가 채 열흘도 남지 않았다는 - 그러나 끊임없이 최후의 하루까지 사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 그 놈의 마누라의 돈지랄과 오버랩이 된다.  비싼 실리콘 밸리의 집 값으로 대여섯채, 조금 더 싼 곳의 집 값으로는 필경 열채가 넘는 집을 구매할 수 있는 국민의 혈세를 아낌없이 날려버린 - 물론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라 본질은 변하지 않은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추정되는 - 그 돈지랄 말이다.  (광고가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놈의 뻘짓과 악행 때문에 아무래도 모 교수의 광고를 다소 삐딱하게 보게 된 것 같다.  아무튼 쉽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말하기는 어려운 감이 있는 문제이고, 많은 분들이 함께 장기적으로 고민해 볼만한 이슈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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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2-15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옛 역사 자료는 일본에 있다 하는데,
가만히 보면, 한국 옛 역사 자료가 일본 어디에 있는 줄 뻔히 안다면서
제대로 살피거나 파헤치거나 다루지 않는 모습을 보면,
역사학자나 정치가나 권력자는 서로서로
무슨 꿍꿍이가 있을는지 몰라요.

따지고 보면, 한국 무술은 '태권도' 아닌 '태껸'이겠지요.
한국 무술은 중국 쿵후와 마찬가지로
'딱딱한 틀'이나 '품새'가 따로 없거든요.

transient-guest 2013-02-15 23:42   좋아요 0 | URL
적어도 강단의 '주류'에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워 하는 듯 합니다. 한국 역사에 대해 기술하려면 이제는 중국의 눈치까지 봐야할 지경이잖아요...
한국무술임이 확실히 확인되는 것은 태껸이고, 지금 전통무술을 표방하는 거의 모든 것들은 현대의 창작물이죠. 태권도의 창작이나 통합배경은 최홍희씨가 자서전에서 이미 밝힌 바 있지요..
 

써놓고 나니, 제목이 조금 우습다.  마치 무엇인가 있어보이려는, 그러나 너무도 평범한, 그러니까 안간힘을 쓰는 느낌이 아는 제목이다.  그저, 그간 읽은 책들을 몇 개 엮어서 페이퍼에 남기려는 것인데 매우 자주 쓰는 '간략한'으로 시작되는 제목보다, 오늘은 조금 다른 제목을 생각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페이퍼의 제목을 정하는 것은, 리뷰의 제목을 생각해내는 것보다는 쉽다.  책 한 권을, 그 책에 대한 느낌 또는 내용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글제목을 생각해내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리뷰위주로 (사실 페이퍼를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서) 글을 남기던 것이, 이제는 책 여러 권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글꼭지를 정하는 것도 쉽다는 편리함에, 페이퍼를 더 자주 꾸미게 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이야기를 써내려 갔지만, 결국, 이것은 또다른 '간략한' 리뷰의 모음이다. 

 

 

 

 

 

 

 

 

 

 

 

 

 

 

이야기는 빌 브라이슨이라는, 아이오와 주의 데모인이라는 시골 출신의 미국 글쟁이가 20년에 가까운 영국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뉴햄프셔주의 하노버라는 곳에 정착을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대략 1996년경의 이야기인데, 책으로는 1999년에 엮어져 나왔다. 

 

사실 이 걸출한 글쟁이는 그의 위트있는 입담과 넓은 지식으로 한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  다수의 책이 '발칙한' 또는 '빌 브라이슨의'으로 시작되는 제목을 달고 출판되었고, 상당히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곳의 교포사회에서도 책을 좀 읽었다거나 하이킹/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은 한번씩은 읽었음직한 작가인데, 내가 그를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그리고 이형렬/한윤경의 팟캐스트에서 다루어지던 그를 기억해서 최근의 중고구매때 몇 권을 찾아낸 것이다.  이 사람.  아마보 대부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무지하게 웃긴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미국의 삼대 내지는 오대에 들어가는 매우 유명한 하이킹 트레일이다.  생긴지는 한 백년은 족히 넘은 것 같고, 지나는 구간은 조지아주에서 메인주까지 이어지는 3,360 km에 달한다.  시설이라고는 중간에 나오는 그야말로 기둥에 지붕을 얹은 정도의 넓은 합숙공간, 그리고 간혹 보급품을 사고 샤워를 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의 산장이 전부인데, 이곳을 완주하는데에는 약 반년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빌 브라이슨의 다른 책에서도 등장하는 어릴적 친구 - 사고뭉치 - 와 함께한 그의 여행은 트레일의 약 40%를 커버하는데 그쳤지만, 그 와중에 자연과 인간, 개발, 보전, 안전, 동물, 등등...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트레일을 건너면서 느낀 그의 생각, 그리고 친구와 함께한 재미있은 에피소드등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감동적이고, 가끔은 살짝 서글픈 감성을 자아낸다. 

 

예전부터 백두대간에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백두대간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한 트레일이 여기에, 존 뮤어 트레일과 오레곤 트레일과 함께 (서부) 존재하는 것을 보니, 일단 동네의 뒷산이나 파크부터 확실하게 정복하고 꿈꾸어도 되겠지 싶다.

 

옥의 티라면, 내가 읽은 버전이 예전의 판본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번역이 좀 별로였다는 점이다.  군데군데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눈에 거슬렸고, 직역과 의역을 일정한 틀없이 오가는 부분도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번역을 한 홍은택이란 분은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예전에 읽은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는 이야기를 쓴 사람과 동일한 분인듯.  번역을 못했다기보다 상업적인 번역이라면 조금 더 신경써서 번역하고 수정했어야한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2008년에 새로 나온 개정판은 좀 낫지 않을까 싶다.

 

정이현 작가의 책은 언제 보아도, 남성의 과점과는 확실히 다른, 여성의 관점에서 다뤄지는 성, 사회, 사랑, 직장, 결혼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새로운 perspective를 준다.  물론, 너무도 여성의 눈으로 비춰진 사회상이 때로는 낯설기도 하고, 너무 순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단편들을 모아놓은 두 책의 이야기들은 다른 책에서 다룬 단편들과 겹치는 것들도 조금은 있는 듯.  

 

뭐랄까, 서울 그리고 여자/부부라는 주제를 마치 두부나 고기를 칼로 썰어내면 나오는 여러 단면의 모습처럼 보여주는 그의 단편들은 2000년대의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를 황폐화된 사회상이라고 하겠고, 혹자는 썪어가는 물에서도 살아가는 물고기처럼 나름대로의 적응이라고 하겠지만.  때로는 raw하고, 때로는 풍자적이고, 때로는 자학적인 비판같아 보이는 이들의 모습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해도, 읽는 사람 나름대로의 관점과 경험에 비추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 같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흑임자 김중혁 작가의 단편 모음집인데, 악기나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모았다.  김중혁 작가는 문단에 데뷔하기 전에 매우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는데, 음악매장 주인, 여러 가지 잡지들의 기자 etc., 이런 경험들, 특히 음악/악기관련의 일에서 나온 발상을 단편으로 구현한 것 같다. 

 

작가 본인이 늘 이야기하듯이, 글에서 꼭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  이는 김영하 작가도 하는 말인데, 읽는 사람으로써는 그리 가까이 와 닿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재미를 위한 책은 존재하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싶은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이번 작품집 역시, '좀비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특이한 주제를 특이하게 엮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느껴지는 것이 없는 점은 조금 아쉽다.  그러나, 이미 흑임자로서 얻어진 명성(?) 내지는 그의 목소리에 익숙해진 만큼의 가까움 때문일까, 특별히 탓하게 되지는 않는다.  

 

사실 김중혁 작가는 그의 작품보다도 본인 자신이 더 기괴(?)하게 보일때가 있는데, 농담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흑임자 버전의 그와 히키코모리 같다는 글을 쓰는 작가 버전의 두 가지 character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딱 한번, '빨책'에서 실시간으로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보인 적이 있는데, 목소리의 톤부터 달라지는 것이 참으로 엽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작가의 책을 한 권 더 읽은, 그리고 재미있게 보았다는 말 외에는 크게 남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의 책을 다 읽고 나면, 김중혁 작가라는 character 그 자체와 함께 버무려 무엇인가,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니까, 기회가 되면, 다른 문제작(?)들을 구해서 이어가야 할 것 같다.

 

페이퍼를 다 쓰고 나니, 글이 매우 길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빌 브라이슨은 지금 읽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다 보고서 따로 모아서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쩌랴, 이미 써버린 것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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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2-14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읽으셨으면 다음에 그 작가들 이야기 또 써 주셔요~

transient-guest 2013-02-14 09:33   좋아요 0 | URL
네!ㅎㅎ
 
김영하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김영하 여행자 1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요즘 한국의 작가들과 현대소설을 나름대로 엶심히 구해서 읽고 있다.  김영하는 내가 흥미를 가진 작가들 중 하나인데, 일전에 본 그의 시칠리아 여행기가 마음에 들어 이 책을 구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그런 내용의 여행기가 아닌 (1) 김영하의 다른 작품에서 사용되는 이야기, 그리고 (2) 사진이 있을 뿐이다.  후반부에 카메라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순전히 이 시리즈를 위한 것인데, 여덟 군데의 도시를 여덟 개의 다른 카메라로 표현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서점에서 이 책을 펼쳐보았더라면 바로 구매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전작의 대상이 되는 작가이니만큼, 구하긴 했겠지만, priority에서 밀린다는 이야기다.  물론 나는 운좋게 이 책을 중고로 구했으니까, 당장 구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하지만, 역시 기대했던 이야기가 아닌, 사진으로 가득찬 책의 구성은 특별히 맘에 와 닿지는 않는다.  정가가 만원에서 이백원 모자란 가격인데, 과연 사진을 모아놓은 책이 그런 값을 받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artist의 사진집이라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 책의 프린트는 특별히 사진을 감상할 정도의 높은 quality가 아니고, 글로 꽉찬 구성도 아니기에 드는 생각이다. 

 

또 모르겠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니까.  아니, 나 또한, 어떤 다른 특정 시기에 이 책을 펼치는 순간, 하이델베르크의 도심속으로 유체이탈해 들어갈런지도.  같은 곳을 여러 번 여행하는 것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른 감흥이 있다고 하는데, 언젠가 또 로마를 다시 가게 된다면 그런 느낌이 올지도 모르겠다.  먼 곳으로 간 여행이라고 해야, 로마에서 앙코나를 거쳐 메주고리예까지 다녀온 것이 전부니까.  살고 있는 곳이 여행지 같았던 것은 이십 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그 탓인지, 별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그냥 살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그래서인지, 여행은 언제가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같은 개쳑지로서의 아련한 이상향 같은 것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아마도 나는 그의 다른 여행기들을 사 모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뒷담을 남기게 될 것이다, 분명히.  하지만, 역시 중고의 기회를 노리게 될 것 같다.  이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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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3-02-0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US, 배송일 only 이틀 소요, 거기에 3-4불이면 구입가능한 중고서적까지. 트란님의 지난번 페이퍼 읽고 배아파 죽는 줄 알았... --; 대국과 오지국의 차이라고 해야겠네요. 책을 직접 보고 구입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건 축복. 저에게는. 제목을 보고 구입결정을 했다면 저도 이 책 샀을 것 같아요.

'살고 있는 곳이 여행지 같았던 것은-' 이하 문구가 많이 공감이 되네요. 이제는 한국보다 더 익숙하고 편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행지의 한 곳에서 잠시 정착하고 있는 듯한 기분은 여전해요. 김영하 작가는 아직도 팟캐스트로만 접하고 있어서 트란님의 김영하 전작을 그냥 눈으로만 따라갈게요. 그나저나 정말 읽고 싶은 한국 작가 한 명이 생겼지 뭐에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transient-guest 2013-02-09 10:51   좋아요 0 | URL
호주에는 따로 진출하지 않았군요. 잘은 모르지만 한국사이트를 통해도 주문은 가능할거에요. 다만 배송료와 기간이 문제겠네요. 저도 옛날처럼 서점에서 직접 책을 사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해요. 사실 영어책은 주로 서점에 가서 직접 구매하는 편이거든요. 한국에 살았더라면 아마 인터넷보다도 발품팔아서 돌아다니면서 책을 살때가 더 많았을 거에요.

외국에 오래 살면 살수록 그렇죠? 처음보다도 더 안 다니게 되더라구요. 여행도 독서처럼 습관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니는 습관, 거기서 얻어지는 즐거움의 기억처럼요.

김영하는 특이해요, 좀. 하루키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는 듯 하구요. 다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이러면서 비교하고 싶네요.

댈러웨이님도 좋은 주말 보내시구요. 간만에 들려주셔서 반가웠습니다.

댈러웨이 2013-02-14 18:18   좋아요 0 | URL
일단 이곳의 교민수가 적으니까 알라딘이나 교보가 입점해서 이익을 낼 만큼의 수요가 충분하지 않을 거에요. 교민들 많이 사는 동네에는 한국인 서점이 한 곳씩 있지만, 배송료를 많이 지불하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 온라인 주문보다도 더 메리트가 없어서 발품도 팔지를 않는다는. 대부분 베스트셀러와 종교서적, 아동서적들이다보니.

김영하 작가는 팟캐스트 듣고 있다보면 아, 이런 사람이랑 연애 한 번 해봤음 좋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은근히 고립되고 폐쇄적인 면모가 말하는 매너에서 읽혀진다고 해야할까요.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를 다시 잡고 있는데 김영하가 많이 다뤄지고 있네요. <빛의 제국>이나 <나는 나를 파괴할- > 부터 초기작이었고 영화화되었던 <주홍글씨>의 원작 <거울에 대한 명상>까지. 시작한다면 초기작부터 훑어야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트란님 방은 글 올라올 때마다 오는걸요. 댓글을 달까 한 5초? 한 10초? 고민하다가 보통은 도망가지만. 이전에 말씀드린대로 트란님 서재 1/3은 털었어요. 일단 올라 온 페이퍼는 다 읽었으니까. 이제부터 긴장하세요. :)

아, 그리고 저는 운동중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동생도 그랬고 큰 조카도 그렇고 다들 몸단련을 정말 좋아해서. 지난번에 제가 실례한 건 아니었기를 바래요. 운동중독에 관한 트란님의 페이퍼를 읽어버리고 말았지 뭐에요. :)

transient-guest 2013-02-15 01:59   좋아요 0 | URL
그래도 꽤 많이 사는 줄 알았는데, 아직 호주이민은 좀 초기단계인가봐요. 한국에서는 호주가 더 가까울텐데, 정말이지 그렇게 비싼 책가격이면 차라리 한국에서 주문하는게 더 낫겠네요. 여기도 종교서관이라고 책이 정말 없고 비싼 서점 하나뿐이에요. LA쪽은 워낙 교민이 많아서 서점도 여러개가 있는데 말이죠.

작가예찬에서 이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요?ㅎㅎ 사귀어보고 싶은 작가라. 김영하 작가는 확실히 좀 특이한 점이 있어요. 하루키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요. 팟캐스트는 정말 자기 맘대로라서 요즘은 또 뜸하네요. 이동진의 빨간책방도 좋구요. 이곳에서 교민을 대상으로 하는 이전 알라딘US를 운영하던 이형렬 한윤경의 어쩌다 책읽기도 들어보세요 (사실 이-한은 좀 뭐랄까 가볍다고 할까, 경박하다고 할까 unprofessional한게 있지만, 그만큼 덜 한국적인 부분도 많이 있어서, 교민들의 귀에는 좀더 친숙할 수도 있어요).

아이고. 그렇게 다 보시면, 좀 부끄러운걸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저 그런 변방의 마이너 서재인데요. ㅎㅎ 운동은 좋은거죠. 중독이라고 할만큼 많이 하게 되는건 아니에요. 일단 힘이 들어서 어느 정도이상은 못하니까요. 안하는 사람들이 볼때는 그렇게 표현하는거죠. 질투와 시샘을 살짝 섞어서..ㅎㅎ

탄하 2013-02-10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하루키와 김영하에 매우 몰입하시는 트란님!
올리신 페이퍼들 슬쩍 훑어보니 한 번 시작하면 끝장본다..뭐, 이런 굳센 자세가..^^
이 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읽은 후 김영하의 작품들을 다 뒤져보다가 홀깃했던 것인데(아마 이것과 쌍으로 나온 것이 '도쿄'편이였죠), 여행기가 아니라면 저도 다시 생각해 봐야 겠네요. 헛! 지금 다시 책소개를 보니까 여행기라는 말은 없군요. 근데 제목때문인지 당연히 여행 이야기가 위주일거라 저도 착각했네요.

트란님께는 새해의 복이 알라딘US의 새단장과 함께 온 것 같습니다. 중고도서를 알라딘US에서도 살 수 있다는 게 저는 놀랍기만 해요. 미국에서 수거한 중고도서도 아닌데 어떻게 거기까지 단기간에 배송할 수 있는지...우와! 암튼, 축하드립니다.

그곳에선 설연휴는 없겠지만 그래도 떡국 드시면서 명절 분위기라도 느끼시길..^^

transient-guest 2013-02-11 12:08   좋아요 0 | URL
작가들을 하나씩 다 섭렵해간다고 하면 조금은 과장이겠지만, 이런 접근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약간의 덕질같은 느낌도 있구요.ㅎㅎ 작가의 사진기행에는 아직은 흥미가 없네요. 여행기를 기대했었는데 말이죠. 제목만 보면 사진기행일거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네요.ㅎ
분홍신님께도 2013년의 복이 마구 쏟아지길 바래요. 알라딘US의 신체제덕에 지출이 조금 늘어나는 것으로 한해를 시작했음니다만, 그래도 읽고싶은 책을 제때 구할 수 있다는 축복이...

숲노래 2013-02-15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서 문학을 하는 분들이 '외국 여행기'는 이제 좀 그만 쓰고, '한국 시골마을 여행'을 하거나 '한국 시골 숲이나 바다'에 조용히 깃들며 마음을 다스리는 이야기를 쓸 날은 언제쯤 될까 궁금해요. 이런 여행기로 작가로서 푼돈을 벌 테지만, 소로우 같은 사람처럼 오래오래 널리 읽힐 '명작'을 내놓지는 못하잖아요.

transient-guest 2013-02-15 23:43   좋아요 0 | URL
점점 그렇게 되겠지요? 서구적인 이야기들도 재미있지만, 우리의 이야기도 좋으니까요. 저는 작가 개인의 취향이상, 출판사의 기획도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21권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가 이제 5권밖에 남지 않았다.  첫 몇 권을 읽을때만 해도 이름값을 못한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었는데, 이제는 작가와 캐릭터에 익숙해진 - 혹은 길들여진 - 탓인지, 아쉽기가 그지 없다.  확실히 도둑은 도둑이라서, 빼앗고 훔치는 것이 뤼팽의 주업무이지만, 그 이상, 뤼팽은 낙천적이고 정열적인 모험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뤼팽의 활동 초기에는 도둑으로서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의 모습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 수사관, 탐정, 귀족, 모험가, etc - 기인에 가까운 에피소드를 양산해낸다.  긴 스토리의 장편 에피소드도 좋지만, 16권에서처럼 특정시기, 특정인으로 활동했던 뤼팽의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이 더 흥미있게 읽힌다. 

 

이제 뤼팽을 다 읽고나면 캐드팰과 엘러리 퀸, 그리고 동서추리문고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구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이렇게 하나씩 모인 추리소설이나 모험소설이 책장 하나 정도는 가볍게 채우게 될 것인데, 그렇게 모아놓고 추운 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푹신한 소파에 기대앉아 jazz를 틀고, 된장질을 해보게 될 것 같다.  아니, 낮이라면 '모르그가의 살인'의 오귀스트 뒤팽과 화자처럼 두꺼운 커튼을 내려 빛을 모두 차단하고, 촛불 가득한 서재에서의 reading도 좋겠다.  무엇인가,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듯한 나라는 사람의 모습은 이런 마음이 들 때, 그 성향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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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중고구매로 김영하와 하루키의 책 몇 권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들의 책에 조금 굶주려 있었기에 바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수행의 큰 결과물은 김영하의 초기작품들이다.

 

서점에서 직접 보고 구매했다면 좀더 나은 녀석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중고로서, 상태는 최상으로 구했지만, 커버가 없이 왔다. 일단, 이 책은 내 기억에는 다섯 권으로 다시 엮어 새로 나온, 그러나 대부분 예전에 다른 이름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었던 글을 모아 뽑아낸 하루키의 에세이집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글은 낯이 익고, 한 두 개 정도만 내가 읽지 못한 그의 글인 듯 하다. 하루키의 글은 이제는 매우 친숙하여, 꼭 옛날 친구를 간만에 만나 한잔의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기분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언제 읽어도, 아무리 재탕이어도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신선하다. Haruki-ism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글을, 아니 그의 삶의 자세, 그리고 결과물인 현재의 그가 좋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맥주-위스키, 그리고 재즈를 섞어내는 풍류를 가진 글쟁이는 그저 동경의 대상일 뿐이지만, 이렇게 엿보는 것만해도 고맙지 않은가. 이것으로 내가 본, 그리고 가지고 있는 하루키의 책은 모두 51권 40작품이 되겠다. 하루키의 전작을 결심한 것은 작년 이맘때부터 약 일년 정도이니, 나쁘지 않은 셈이다. 사실 눈이 띄면 예전의 판본들도 모두 구해볼 생각이다.  정말이지 난 하루키의 그리 철학적이지 않는 담론과 술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유행은 확실히 지난 작가인 듯 하지만, 그래서 더욱 좋다.  90년대인가 하루키의 책이 한국 서점가를 휩쓸때만 해도 나는 그를 몰랐기 때문에 그 당시의 선풍적인 인기를 끈 요인이나 다른 이야기들은 하나도 모른다.  그저 읽으면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그리고 어느새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저씨'의 나이를 달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일체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이건 2009년에 나왔으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 라고 하다가 생각해보니까, 벌써 2013년이니, 나오고나서 은근히 시간이 좀 지난 작품인 셈이다.  

 

무엇인가 묵직하지만, 이것은 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확실하게 결론짓게 되었는데, 여행기는 가급적 좋은 작가의 것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여행에 고플때에는 여행기를 읽어왔는데, 읽은 대다수의 책들은 블로그를 그대로 책으로 옮긴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가벼운 글, 심지는 2-3페지당 그림 페이지가 하나씩, 그리고 사진 페이지가 하나씩 섞여 찍힌 책들도 은근히 많았다고 생각된다.  재미있게, 가볍게 읽고 여행에 대한 주림을 달래기는 했지만, 사실 다시 펴보게 되지 않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 하루키, 괴테, 카잔차키스, 그리고 김영하까지 - 볼 때, 작가들의 여행기는 그보다 훨씬 더 멋진, 작가의 내면에 가라앉은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괴테나 카잔차키스는 여행기 자체가 하나의 고전문학이 되고, 하루키나 김영하는 아직 그 정도의 무게를 - 세월의 검증이 어느 정도 필요한 -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깊이와 재미가 있다.  그러고보면, 단순한 관광이 아닌, 여행, 그것도 자유롭게 매우 보헤미안적인 여행을 하기에는 사실 재벌보다도 더 나은 것이 성공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성공'이라는, 아니 사실 '성공'에 함께 오는 '돈'과 '시간'이 중요한 포인트인데, 재벌도 - 그러니까 이건희 같은 사람도 - 김영하나 하루키처럼 다 털고 외국에 나가서 1-2년씩 살거나, 여행을 빙자한 자유로운 떠남을 실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능력이 있어도 시간적인, 아니 심적인 여유가 없다면, 그리고 9-to-6의 직장인들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삶이라고 생각된다.  

 

김영하의 이 책은 하루키의 그리스 여행과 일견 오버랩 되는 것 같이 느낄 수 있지만, 엄연히 김영하라는 사람의 세계 - 하루키와는 매우 다른, 다소 어둡기까지 한 - 가 여행기의 형식을 빌어 구현되고 있느니만큼,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군데군데 보이는 그의 위트나 성찰에 따른 이야기들은 이 책의 또다른 재미라고 하겠다.  예를들어:

 

정치가 혼란스러우면 많은 지식인들이 할 수 없이 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정치 철학은 발전하지만 그때 발전한 사상들은 그 당대에는 별 쓰임이 없는 경우가 많다...라던가...나는 미란 하나의 거대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미란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음란한 매혹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다다를 수 없는 천상의 특질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정복함으로써만 소유 가능한 일종의 재산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끝내 이해 불가능한 난해한 개념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즉각 제가해야 할 불길한 미혹인 것이다.

 

라는 말을 보고 밑줄을 그었는데, 마치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그대로 읽어내려가는 것 같이 느꼈다면 좀 과장일까?  이들 외에도 몇 군데, 엎드려 책을 보느라 움직이기 싫은 게으름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밑줄을 긋게 한 구절들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른 멋과 맛을, 그의 사진과 함께 느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김영하의 산문집을 읽었는데, 이는 나온지 벌써 10년이 넘은 작품이니, 책이 처음 나오고나서 강산이 한번 바뀐 셈이다.

김영하의 가벼운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하루키만큼 가볍거나 밝고 명랑하지는 못하다.  그것은 80년대에 한국에서 대학교를 나온, 그리고 김영하라는 이름안에 모두 담아낼 수는 없는, 그의 background, 살아온 환경 등 모든 것들이 한데 버무려져 나온 내용물이 하루키와는 도저히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세대를 넘어서 하루키가 속한 일본의 전공투세대와 6-10항쟁세대와는 좀 닮았다고 생각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

 

매우 짧은, 그러나 김영하에 의한, 김영하의 이야기들로 잘 엮어진 이 책을 구한 것도 중고서점을 이용한 덕분이라고 하겠다.  역시 엎드려서 읽느라 밑줄을 거의 치지는 못했지만, 좋은 글이 많이 들어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시간이 흐른 만큼, 삐삐에 대한 이야기는 옛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내가 고등하교를 다니던 무렵의 한국에서는 또래들이 삐삐를 장만하기 위해 계를 만들기까지 했었는데, 정작 나는 대학교때 잠깐 쓰다가 말았다.  이곳에서의 그리 넓지 못했던 인간관계상 삐삐가 올 곳도 별로 없었기에 대부분 있으나마나 할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고, 이는 cellphone을 가진지도 오래인 지금도 그리 달라지지 않은 나의 일상이다.  사라진 공중전화박스만큼이나 옛스러운 삐삐 이야기, 2002년, 작가는 '요즘 아이들'은 아마 삐삐가 뭔지도 모를거야라고 했는데, 2013년의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pager가 뭔지,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알려나? 

 

간만에 편하게 여러 권의 책을 힘들이지 않고 읽어낼 수 있었다.  역시 나에게는 고전문학은 아직도 즐거움에 비례한 고통스러움을 줄 때가 있는 때로는 엄격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행실이 바르고 깊이가 있는 친구들, 그리고 같이 어울려 시시껍적하고, 때로는 다소 야한 농담을 욕과 버무려 주고 받으며 한잔 꺾을 수 있는 친구들, 모두 소중한 나의 친구들인 것처럼, 책도 그렇게 여러 녀석들을 읽으며, 또 한 주말을 보냈다. 

 

그 외에도, 잠깐 짬을 내서 logos에 가서 '아름다운 그림자: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생애'라는 전기와 앨라 피츠제럴드, 존 콜트레인, 스탄 갯츠, 마일스 데이비스, 그리고 영화 sideways의 CD를 샀다.  물론 모두 중고로...하나씩 까먹을 것들이 널려있어 항상 즐겁다, 아무리 일상이 지루하거나 stressful해도 말이다.  아마도 게임이나 영화를 내게서 모두 빼앗아간다해도 책들만 남겨준다면 사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PS 까먹고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키다리 아저씨 그 후 이야기도 읽었다  지난 주에...

주디의 이야기가 아닌, 대학친구, 주디가 살던 고아원의 경영을 맡게 된 친구의 이야기.  작가가 여자였다는 것을 여기에서야 알게 되었다.

진 웹스터가 Gene Webster (남자이름)인줄 알았더니 Jean Webster (주로 여자이름)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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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3-02-05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와 김영하, 저도 좋아해요. 다만 하루키는 산문만 좋아합니다.^^; 김영하의 시칠리아 기행도 포스트잇도 가볍게 정말 엎드려 읽기 좋았던 그 느낌이 기억납니다. 꼭 고전이 아니어도 책을 읽으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transient-guest 2013-02-06 02:29   좋아요 1 | URL
가장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방편으로써의 독서보다 더 근간에 있는 책읽기 그 자체로써의 즐거움이란 말이죠.ㅎ 그런데, 왜 하루키의 산문만 좋아하는지요? 혹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궁금해서요.ㅎㅎ

blanca 2013-02-06 16:20   좋아요 1 | URL
저는 하루키의 그 무언가 엽기적인--;; 본인도 자기의 생활이나 성격과는 너무 다르다고 얘기한 그 요소가 안 맞아요. <상실의 시대>도 몇 번이나 제대로 읽어보려 했지만 실패했답니다. 그 이후로는 사실 진지하게 하루키의 소설을 접해 본 적이 없어 성급하게 그의 소설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산문은 너무 좋아합니다.

transient-guest 2013-02-06 23:41   좋아요 1 | URL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듯 하네요. 좀 나쁘게 말하면 변태적일때가 있다고 봐요, 저는.ㅎㅎ 그게 하루키탓인지, 아니면 일본인 특유의 묘사나 의식구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13-02-07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때가 소련이 해체되고 80년대 무용담을 지겨워하기 시작한 청년들이 생기기 시작한 때죠.그래서 우리나라 후일담 소설과 하루키 소설이 공통점이 있다고 평론가들이 말하는 겁니다.

transient-guest 2013-02-07 23:50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사실, 하루키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 90년대 아닌가요?

노이에자이트 2013-02-09 17:51   좋아요 1 | URL
그때 유행하기 시작해서 지금도 죽 계속되고 있죠.몇 년 전 <아이큐84> 번역 놓고 출판사간 경쟁이 치열했으니까요.<상실의 시대>는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번역본 중 최고 판매부수를 기록했을 겁니다.

transient-guest 2013-02-09 23:55   좋아요 1 | URL
그랬군요. 하기사, 상실의 시대는 최근에 소위 완역판이라고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죠.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러고보니 하루키라는 작가의 저력이 새삼 느껴지네요. 어떤 보편성도요.

노이에자이트 2013-02-11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중국에서도 인기가 있어요.센카쿠 갈등으로 일중 관계가 안 좋았던 지난 여름 하루키가 우려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여전히 양국은 갈등 중이네요.

transient-guest 2013-02-12 09:0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일본의 팽창정책하고 미국의 대중노선/대북노선하고 맞물려서 앞으로의 동북아시아 정세는 더욱 복잡해질 듯 합니다. 한일관계도 한중/한러관계와의 역학관계까지 생각하면 정말 다각적이라고 보는데요. 정말 복잡하기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