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가 과열되면, 그 현상이 심화된 특정 재개발지구에는 어김없이 떴다방 부동산 업자가 등장한다.  아주 예전에 박정희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인데, 개발붐이 끝나기 전에 조용히 이런 업자들은 돈을 챙겨 사라지곤 한다.  매우 비정상적이고 투기조장형의 영법형태와 구성, 그리고 종종 나타나는 불법적인 행각 때문에 이들은 단속대상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근절되기 어려운 형태의 비정상엽업을 일삼는 이들은 건전한 부동산 업계의 관행과 정착을 위한 박멸대상일호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에 출판업계에도 이런 행태가 도입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하는 일이 생겼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의심은 이미 입증된 사실에 기반한다.  우선 다음의 링크에 가면 나오는 비교와 문제제기를 읽어보시라. http://cafe.naver.com/mhdn/102321.  어제 포스팅한 글에서 책탐님과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알게 된 요즘의 '데미안' 열풍(?)에 대한 이야기다.  


쉽게 정리하면 요즘 뜨는 '프로듀사'에서 아이유가 김수현에게 받아 읽어가는 PPL에서 등장하는 책 '데미안'의 카피는 크눌프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번역자의 이름과 약력도 나와있고, 출판도 버젓이 회사이름을 걸고 했는데, 뭐가 문제인가 물어본다면 당신은 링크의 글에서 제기된 이슈를 잘 읽지 않은 것이다.  


구성에서의 심각한 원문훼손은 차치하고라도, 누가봐도 원문과 민음사 번역, 그리고 문학동네의 번역판을 그대로 가져온, 그러니까 표절이 심각하게 의심되는 번역,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나오는 번역이 하필이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크눌프'라는 업자의 번역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륜이 빛나는 명문출판사들을 제치고 차지한 PPL, 거기에 따른 판매부수가 문제라는 것이다.  링크에서 나온 글 외에도 다른 분께서 언급한 디자인의 유사성도 궁금해서 찾아봤다.


이 카피는 '크눌프'라는 업체에서 나온 딱 두 권의 책의 합본이다.  거의 드라마와 함께 나온 것을 기획한 듯 이미 띠지에 '프로뷰사'를 팔고 있다.  


이 정도면 거의 드라마의 제작관계자와 사전에 함께 기획한 냄새가 나는데,  책이 알라딘에 나온 날짜는 5/18이고 드라마가 첫 방영한 주말은 5/15-5/16주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냄새도 아주 구린 똥냄새가 폴폴 올라온다.  


이 업자가 낸 다른 책은 없고, 오로지 이 두 권만이 프로듀사의 방영에 맞춰 '크눌프'라는 듣보잡의 이름과 이모씨라는 번역가의 이름을 달고 나온 것이다.  



다음은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 그러니까 다른 분께서 제기하신 디자인 표절의 대상이 되는 책들 중 아무거나 하나를 찾아 보았다.  다른 책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런데, '크눌프'판의 데미안의 책 디자인은 우연인지는 몰라도 민음사 모던 클래식의 디자인과 너무 닮았다.  


세상에 8명 정도는 유전자의 구성한계로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크눌프'판 디자인과 민음사 모던 클래식 디자인의 유사성은 이런 통계적인 법칙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만큼 그 이미지와 모양새가 비슷하다.  

BTW, 이런 시리즈가 있는 줄 몰랐는데, 책이 너무 예뻐서 모던 클래식 시리즈도 하나씩 구해야 할 것 같다.



쓰고보니 문제는 단순한 표절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의 이슈들로 정리가 된다.

1. 번역에 있어 아무리 외국어-한국어를 번역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리고 표현에 있어 제한이 있다고 해도, 특정 부위는 민음사 판을, 다른 부위에서는 문학동네 판을 사용하여 100%의 싱크율을 보일 수는 없다.  네이버 카페에서도 언급했지만, 절대로 100%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2. 구성을 원문과 다르게 자기 멋대로 재단해서 배치한 것은 저자가 의도한 구성과 flow를 완벽하게 무시한 행태로 보인다.  책의 스토리 이상, 전개 또한 그 중요한 장치가 되는데, 이런 식으로 마구잡이로 가져다 재구성하는 행위에는 일말의 도덕성도, 책과 작가에 대한 존중도, 나아가서 책을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볼 수 없다고 하겠다.

3. 프로듀사의 첫 방영과 함께 출간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교묘한 발매시기.  드라마 구성/구상시점, 또는 작품을 찍던 초기에 이미 '크눌프'의 책이 등장하는데, 실제 발매시기는 5/18로 되어 있고, 이 날짜가 첫 발매날짜라면 '크눌프'의 데미안은 드라마 소품으로 이미 제작되었다고 봐야한다.  PPL이 아닌 드라마 상품/책을 만들어 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민음사와 문학동네는 이 문제에 대한 이슈제기를 정식으로 KBS와 크눌프에 전달해야 할 것이고, 독자들은 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라 구매에 신중함을 보였으면 한다. 


이 따위로 책을 만들어 놓고서 번역자/출판사 운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거니와 심각하게 비도덕하고 비법적인 행태라고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 한 건 올려서 돈을 벌고 사라지려는 행태, 독자들을 우롱하는 짓꺼리가 심히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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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5-06-11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저 이 드라마 보는데, 표지보고 당연히 민음사껀줄 알았죠.

transient-guest 2015-06-11 06:37   좋아요 0 | URL
전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책탐님 말씀과 링크보고 찾아보니까 금방 나오더라구요. 제 의심이 사실에 가깝다면 문제의 소지가 높은 이슈입니다.

책탐 2015-06-11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레바퀴아래서가 더 심각하단 글이 올라왔더라고요. 대책회의를 하실 듯 합니다.

transient-guest 2015-06-12 02:00   좋아요 1 | URL
언론에서 다뤄질만큼 심각한 문제인데요, KBS라는 상대, 그리고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을 꾸민 사람의 위치가 꽤 일을 어렵게 만들기는 할 듯 합니다.

바람향 2015-06-11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심각하네요~ 요새 출판 시장 사정도 안 좋은 상황인데 말이에요... 최소한의 도덕과 윤리도 없는 거네요...ㅠㅠ 이런 문제를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에휴~~

transient-guest 2015-06-12 02:0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냥 모든 것을 제껴놓고 나쁜 짓이죠.. 이런건..

adaptive 2015-06-11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공간을 통해서 떳다방을 차단해 나가는게 불풀과 같은 엡의 순기능인것 같군요... 감사

transient-guest 2015-06-12 02:00   좋아요 0 | URL
그랬으면 합니다.ㅎ

세상틈에 2015-06-1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눌프에 비하면 더클래식은 양반 중에 양반 중에 양반이네요. 이래서 베스트셀러 순위 판매 순위 보고 책 사면 안되는 겁니다...

transient-guest 2015-06-12 02:0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갑자기 베스트셀러 되거나 센세이셔날해진 책은 가급적 피합니다.

북극곰 2015-06-1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이런 일도 벌이는군요!@..@

(그나저나 민음사 모던 클래식 참 예쁘죠?)

transient-guest 2015-06-12 02: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번건 우연이라기보나는 드라마 기획단계에서 이미 만들어진 일 같아요. 민음사 모던 클래식은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ㅎ

cyrus 2015-06-11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씁쓸한 일입니다. 번역 표절도 문제지만, 드라마셀러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출판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이 길어지다 보니 PPL에 의존하는 일부 출판사의 모습이 안타까워요. 더클래식이나 크눌프 출판사 번역 논란 같은 일이 발생하면, 중소출판사에 대한 이미지가 더 나빠질 겁니다.

transient-guest 2015-06-12 02:03   좋아요 0 | URL
이게 특히 나쁜게, 드라마 제작단계에서 획책한 일이란거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크눌프 이전에 이번 드라마 제작진과 KBS 또는 여기에 연줄이 있는 사람이 크눌프라는 등식도 성립하죠.. 중소출판사도 참신한 기획으로 알차게 꾸려가는 곳이 많은데, 이런 듣보잡이 벌이는 일 때문에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길 바랍니다.

그렇게혜윰 2015-06-12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에서 문제를 인식한만큼 공론화가 될 것 같네요. 안타깝네요 작은 출판사가 이런식으로 책을 낸게ㅠㅠ 프로듀사도 참 안목은 없나봐요ㅠㅠ

transient-guest 2015-06-12 05:39   좋아요 0 | URL
뉴스로 떴네요. 문학동네에서 문제제기 하는게. 민음사도 곧 대응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실 프로듀사는 피해자라기 보다는 한통속이라는 의심을 합니다. 제작단계에서 이미 책이 사용되었고, 발매시작이 드라마시작과 겹치거든요. 거의 기획출판 같은데, 명백하게 밝혀졌으면 합니다.

qualia 2015-06-15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transient-guest 님이 적어놓은 위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KBS, 프로듀사 제작진, 크눌프 출판사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입니다. 정의와 법이 죽어버린 한국이 아니라면, 즉각 수사 들어가야 할 추악한 범죄 행위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6-16 03:45   좋아요 0 | URL
저작권법 상 범죄라고 봐야죠. 형사/민사 모두 걸리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것도 순리와 법대로 처리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죠.-_-:
 

한 권의 책이 쓰여지고 만들어지는 과정은 지고하고 지난하다.  그런데, 잘 팔리기는 고사하고, 출판까지 가는 과정이 또 무척 험난하여 실제로 출간되는 책은 엄청난 과정을 거쳐 걸러지고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진 책들이 이제는 너무 안 팔리다 못해, 예전의 베스트셀러 = 백만부의 공식이 이제는 1/10로 낮춰진 것 같다, 마치 음반시장처럼.  음반시장의 경우라면 그래도 MP3화, 그리고 불법다운로드를 탓하겠지만, 책시장의 경우 상당부분은 그냥 책을 안 읽는 경향이 거의 대부분의 문제가 되고, 여기에 불법스캔이나 사서 읽지 않는 관행을 아주 조금 탓할 수 있겠다.


이런 세태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매우 잘 팔리는 책이 나오기도 하는데, 주로 특정한 시기의 현상을 잘 포착하여 유명세를 타게 되는 책이 대부분인 듯 하다.  예전에 안철수, 김난도, 법정스님 등이름을 보면 대충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유행이 시들해지면 짤방으로 풀리고, 욕도 먹고 하지만, 어쨌든 저자들은 엄청난 인세와 유명세를 얻은 후의 일이니까, 저자가 특별히 속상할 것 같지는 않다.  


유명세를 타는 또다른 경로는 책의 귀하신 TV출연이라고 하겠다.  드라마, 그것도 뜨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손에 들고 있는 한 권의 책은 어제의 거지를 오늘의 왕자로 만들어줄 수 있는 엄청난 sales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음이다.  다음의 예를 들어본다.


각각 '주군의 태양', '별에서 온 그대', 그리고 '프로듀사'에서 활약했거나 현재 활약하고 있는 책들이다.  '그리고...'와 '데미안'은 워낙 유명한 책이지만, '신기한 여행...'은 그 전까지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김수현의 손에 들려 읽어진 이후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나머지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리고...'와는 비교도 안 될 낭만성과 있어보임을 갖춘 '데미안'이라면 말 다했다고 본다.  한 가지 이슈라면 원체 유명하여 많이 팔린, 그러니까 팬층이 두터운 책이라는 단점아닌 단점 때문에 갑자기 엄청나게 sales가 올라가는 것은 쉽지는 않겠다.  이는 마치 빵점을 맞던 아이가 50점을 맞는 것이 90점 맞던 아이가 95점으로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쉬운 원리와 같다.  


그나저나 책읽는 아이유는 예쁘지만, 한 권을 도대체 얼마동안 읽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왜 아이유는 잘 때 화장을 하고 자는 것인지, 왜 언제나 옆으로 업드려서 자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만큼이나 풀리기 어려운, 그러나 매우 obvious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anyway, 책이 tv에 출연하면 작가가 tv에 출연하는 것 이상의 폭발적인 효과가 날 수 있다는 당연한 생각을 주절거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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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탐 2015-06-10 0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번역이죠...소수 분들만 아는 문제 같은데 이번에 인기를 얻고 있는 책은 문제가 있는 듯 하네요.

transient-guest 2015-06-10 06:12   좋아요 0 | URL
어떤 의미인지 좀더 설명해주시면 좋겠네요. ㅎ

책탐 2015-06-10 06:13   좋아요 0 | URL
아래 링크 걸었어요.ㅋ

transient-guest 2015-06-10 06:16   좋아요 0 | URL
이재준의 다른 번역서도 원서, 그리고 기존의 번역본들과 비교해보면 좋겠네요.

책탐 2015-06-10 06:17   좋아요 0 | URL
갑자기 궁금해지긴 하네요.

책탐 2015-06-10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cafe.naver.com/mhdn/102321

transient-guest 2015-06-10 06:15   좋아요 0 | URL
아! 무슨 말씀인지 알았습니다. 아이유가 들고 있는 데미안은 크눌프 판인데 번역이 엉망이군요.. 그러니까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표절번역이라는 것이네요.-_-: 이런 정신나간 짓에 자기의 이름을 걸 수 있다니, 번역자도 참 대단합니다.

책탐 2015-06-10 06:16   좋아요 0 | URL
저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런데도 그 책은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더라고요.
 

엘리뇨 덕분에 시원한 여름을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한 주 내내 오후에만 잠깐 덥고,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5시부터는 다시 바람이 불고 선선해지던 날찌 덕분이다.  사실 켈리포니아의 여름은 아무리 북쪽이라고 해도, 샌프란시코처럼 완전히 해안지대가 아닌 경우 꽤 덥다. 내리꽂는 햇살 때문에 한낮에는 한국의 습한 찜통더위와는 사뭇 다르지만, 굉장히 뜨겁고, 주차 되어있는 차에 타면 순간온도는 35도까지도 쉽게 올라간다.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여름인데, 습도가 50% 미만으로 유지되는 덕분에 그럭저럭 버티고 살 수 있다.  여기서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 내려가면 나오는 LA와 OC지역은 화씨로 평균 10-15도가 더 높은데, 직장 때문에 그곳으로 처음 내려갔던 첫 1-2년은 정말 죽다 살아난 것처럼 힘들게 지낸 기억이 있다.  조금 늦게 퇴근해서 들어가면 낮 동안 쏟아진 태양열을 고스란히 받은 건물을 때맞춰 식히지 못한 죄로 아무리 AC를 돌려도 새벽 3-4시까지는 푹푹 찌는 아파트에서 잠을 설치곤 했는데, 나중에 그곳 기후에 익숙해지고 사는 곳이 좋아진 다음에도 더위 때문에 종종 새벽에 깨어나서 뒹굴거리던 기억이 난다.  올라온 다음에는 그곳에 내려간 적이 거의 없는데, 지금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는 속도, 그리고 워낙 이런 저런 책을 한꺼번에 조금씩 읽는 습관 때문에 어느 특정한 시점에는 완독하는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같은 이유로 어떤 때에는 한 주 동안 한 권도 다 읽지 못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6월 첫 주간이 딱 그랬던 모양이다.  일요일을 기점으로 이번 주에는 다시 몇 권씩 읽은 것들을 토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오늘이면 한국에서 주문한 책이 도착하는 날이다.  열심히 읽고 생각하면서 더운 여름을 이겨낼 것이다.  다행이지만, 내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이 워낙 오래된 건축물이라서 요즘에 마구잡이로 지어대는 합판건물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안정적이고 시원하다.  비록 중앙냉난방이지만, 계절에 맞춰 비교적 날씨에 맞는 냉방과 난방 덕분에 사무실에 나와 있으면 추위와 더위를 잊는 편이다.


American Sniper는 그냥 단순한 후기 보다는 좀더 느낀 바를 따로 끄집어 내고 싶어서 계속 리뷰를 미루고 있다.  영화에서는 꽤 영웅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포장된 듯 한데, 이스트우드도 점점 찰튼 해스턴 같이 되어가나 싶다.  내가 본 American Sniper는 그런 것이 아닌데.  영웅몰이는 IS같은 놈들이 활개치면서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에 서점에서 보니 American Sniper의 wife가 책을 냈더만.  무슨 할 얘기가 있을까 싶다. 


79권까지의 완역본 완독에서 31권이 남았다.  다 읽으면 난생 처음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완독하고 소유하게 된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몇 권의 미발표집인가 해서 4-5권을 추가로 구매했는데, 이렇게 해서 한 작가의 작품을 거의 모두 갖게 되었다.  아시모프처럼 500권이 넘는 글을 쓰고 편집한 작가라면 모든 작품을 모으는게 매우 힘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완역하여 한 출판사가 맡아서 기획하면 다 사들일 것이다.  


영어 표현에 "stupid as fox"라는 말이 있다.  모르는척 하면서 필요할 때에는 다 알아듣고 귀찮은건 피하는 습성을 비꼬는 말인데, 예전에 김병현이 MLB에서 활동할 때 같은 팀의 에이스인 커트 실링이 그의 영어능력을 표현한 기억이 난다.  이번의 범인을 찾아내는 key가 여기에 있다. 워낙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라서 내가 생각한 용의선상에는 없었던 등장인물이 범인이었다.  이중삼중으로 엮어놓은 덕분에 더욱 찾을 수가 없었다.  살인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 더욱 매력적인 반전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네 번째 단편 모음을 읽었다.  확실히 초창기 보다는 훨씬 더 나은 정보력과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이해가 반영되어 좀더 복잡해지고, 좀더 사실적으로 변한 것 같다.  30-70년대까지의 SF작품을 보면 그야말로 상상력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데, 90년대 이후로는 사실주의에 근거하여 나오는 작품들이 태반이라서 작가들의 학력과 과학기술의 전문적인 지식습득도 꽤나 그 레벨이 높아졌다.  SF는 사실적인 상상이나 구성이 꼭 필요한것은 아닌데, 시장이 그렇게 형성되어 있는 지금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요즘의 사실성이 풍부하거나 철학적인 작품도 재미있지만, 그래서인지 난 예전 황금시대의 기괴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단편들이 훨씬 더 맘에 든다.  아시모프가 편집한 황금시대 이전의 SF단편모음집이 두 권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어 맘에 든다.


무정부주의로 흔히 해석되지만 정확한 번역이 아니라서 요즘은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일본의 아나키스트로서 한국의 사상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오스기 사카에의 자서전이다.  일본이 근대국가로 들어가면서 short cut으로 채택한 병영국가가 형성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유년시대부터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아나키스트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성향도 무시할 수 없고, 형태야 어찌 되었던 엘리트 교육과 독서, 그리고 성찰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끝까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후대에도 종종 나오는 형태인데, 이런 인기(?)인들의 연애관이다.  결혼 후에도 다른 여자들과 연애를 하고, 삼각관계 때문에 죽을 뻔하고, 시대의 억압에 대한 반발작용으로써의 자유연애라고도 볼 수 있겠지. 어떤 주도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사람에게 이성이 끌리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인물은 자기중심을 갖고 이런 점을 감안하여 배려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런 연애관은 그간 여자문제로 물의를 빚은 카리스마 목사들의 후안무치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이 자서전은 거창한 사상문집이 아닌 한 개인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죽기 전까지의 삶을 기록한 내용이라서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의 서술이 주를 이루고 있어, 마치 신변잡기적인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멋진 문구는 없지만, 역시 같은 의미로 평범한 감상에서 비범한 사회평론을 볼 수 있다.  관동대지진 때 군부에 의해 살해되어 유기된 사람인데, 예전부터 역사책에 그 이름을 볼 수 있었기에, 그리고 우리 조선인들처럼 그도 관동대지진의 희생자가 되었기에 더욱 반가운 이름이 아니었나 싶다.


미국의 직업 스테레오타입에 언제나 등장하는 변호사는 늘 돈은 잘 버는데, 매우 해피하지 않고, 항상 이혼과 별거에 시달리면서 병과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늘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닌데'하면서 돈 때문에 포기한 다른 삶을 그린다.  이 정형화된 공식은 늘 변하지 않는 편인데, 여기서도 그대로 차용되었다.  

우발적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그의 아이덴티티를 도용해서 다른 삶을 살아보려고 한 주인공.  그런데, 문제는 하필, 그가 그토록 원하던 삶을 살게 된 그때 그의 사진가로써의 탤런트를 인정 받게 되어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살짝 비틀린 논리는 그가 죽은 것으로 믿고 있는 전처, 그리고 그가 훔친 아이덴티티의 주인과 바람을 피우던 전처가 하필이면 사진계에서 유명한 사람과 hook-up이 되어 나타나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여러모로 치밀한 논리는 아니지만, 매우 재미있게 what if를 생각하면서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사실 다 헤집고 따지면 논리가 완벽한 소설이 어디 있겠는가?  


여름이 되면 업무가 조금 slow down되는 것이 이제까지의 trend였는데, 일이란게 build-up된 부분도 있고 해서, 완전히 놀고 먹을 수는 없고, 그저 좀 덜 바쁜 주간에는 좀 천천히, 바쁜 주간에는 바쁘게 일하면서 페이스를 조절하는 수밖에 없다.  바쁘니까, 노는게 즐겁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패러독스는 그러니까 여전히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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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막걸리를 마시고 헤롱거리다가 심심해서 PS3를 켠 후 '전장의 발키리아'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래픽이 좋아진만큼, 그리고 세월히 흐른 그 만큼의 learning curve를 느껴서인지 요즘은 예전 만큼 게임을 즐기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어릴 때 재미있게 즐기던 게임을 다시 play하면서 추억을 느끼는 정도.  '전장의 발키리아'는 PS3가 나오던 초기의 히트작인데, OVA로 만화를 보고 Art book을 사들였을만큼 팬인데, 정작 게임은 사놓고도 한참 지나서 틀어보게 된 것이다.  


작화는 파스텔풍으로 무척 예쁘게 그렸고, 스토리도 맘에 드는데, 문제는 내 굳은 뇌와 hand-eye coordination.  그래도 요즘의 게임답게 친절한 튜토리얼로 천천히 게임에 빠져들게 만들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이도 즐겁게 play할 수 있었다.  


물론 결과는 첫 챕터의 Mission 2아니면 3정도에서 주인공 사망으로 종료...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게임보다는 예전에 재미있게 play했던 게임을 retro한 맛에 조금씩 가지고 놀게된다.  그러고보니 지금은 정말 다양한 게임과 스테이션을 갖고 있지만 고등학교 때 수퍼닌텐도로 즐기던 스트리트 파이터 2만큼 재미있게 갖고 논 게임은 많이 없는 듯.  삼국지도 그간 계속 업그레이드 되었고, 최근의 11이나 12의 재미도 대단하지만, 머리가 복잡할 때에는 다른 생각없이 놀수 있는 삼국지 2가 최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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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06-02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퍼닌텐도!!! ㅎ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6-03 01:24   좋아요 0 | URL
이걸 아세요? 이건 지금으로 보면 거의 고대급인데요.ㅎㅎ 16비트라서 픽셀이 많이 나타나지만, 저는 가끔 갖고 놀아요.ㅎ

cyrus 2015-06-0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나오는 게임들은 디자인이 고퀄리티에요. 그래서 진짜 게임 플레이어가 된듯한 몰입감이 느껴져요.

transient-guest 2015-06-03 01:25   좋아요 0 | URL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가는 듯 합니다. VR이 곧 대세가 될 것이라는 잡지기사도 봤구요.ㅎㅎ
 

책이 쌓여갈수록 느끼는 행복, 그리고 계속 주문하게 되는 중증중독, 이런 것들이 함께 읽을 책이 많다는 기쁨 이상의 불안과 무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내 오랜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빨리 읽고, 잘 봐도, 남들처럼 나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하는 처지, 그리고 운동과 다른 레져생활, 식사와 수면까지 주어진 24시간 내에 나누어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읽은 책 < 구매한 책의 구도는 로또에 맞지 않는 한, 당분간은 계속 될 예정이다.  


동서미스터리문고의 구성은 꽤 좋은데, 상당히 많은 수의 작가들, 그리고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들로 꾸려져 있어, 이 시리즈가 아니었으면 만나기 힘든 다양한 작품과 작가를 만날 수 있다.  탐정이라면 슈퍼히어로의 동격처럼 느껴지는 홈즈나 포와로 말고도 평범한 경감이 평범한 엉성함과 재치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런 작품이 그렇다고 보겠다.  꽤 유명하니까 이 구성에 포함이 되었겠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역시 내 스스로는 달리 만날 계기가 없었을 작품과 작가를 만나는 이런 소소한 재미 때문에 동서미스터리문고를 하나씩 모으게 되는 것이다.  요즘에야 전집으로 유명한 작품들이 완역되어 나오고 있지만, 그것도 역시 매우 유명한 소수에 한해서라고 보기 때문에, 더더욱 이 시리즈는 구매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시리즈의 세 번째.  역시 재미있게 한 작품씩 읽어나가고 있다.  위성을 통한 전 지구적인 TV방송, 화상전화, 등등, 클라크의 작품들을 보면 정말 대단한 혜안, 그러니까 거의 Science 예언자에 가까울 정도로 구체적인 내용의 예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가 되면 단순한 작가라고 하기엔 표현이 모자라다.  이런 사람과 잠깐 동시대를 살았음에 감사해야 할까?  그나저나 왜 2015년인 지금도 우리는 항성간은 커녕 달 말고는 가본 적이 없는 것일까?


이 책 역시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통해서 소개 받게 된 일본 작가의 작품이다.  이 시대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런 작품은 근대 일본역사나 사회를 연구함에 있어 좋은 자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  반면에 작품으로써의 재미는 조금 부족하지 않은가 싶지만, 그렇게 구린 옛스러움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깊은 내면의 이야기가 가끔 반짝 나타나는데, 주의를 기울여 읽고 음미해야만 그 흔적을 잡을 수 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시리즈를 구매할 계획이다.


쓰고 나면 몰려드는 후회.  게으름의 흔적과도 같은 짧은 끼적거림.  언제나 그렇듯, 98%부족한 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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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2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03 0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04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15-06-02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원의 우울_이 아주 궁금한걸요.

transient-guest 2015-06-03 01:25   좋아요 0 | URL
깊이 읽어볼만한 책이구요, 다만 쉽게 속을 보여주지는 않는 책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