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산보
다니구치 지로 만화, 쿠스미 마사유키 원작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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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와 같은 작가의 원작을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같은 만화가가 그려낸 이 책은 우연한 기회에 광고를 보고 사게 된 책이다.  스토리는 '고독한 미식가'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그러나 음식 대신에 그야말로 우연히 도쿄의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면서 생기는 일상의 자잘한, 그리고 잔잔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구성과 모티브 모두 '고독한 미식가'를 그대로 빼다박은 듯한 책이지만, 주제가 '산보'라서 그런지, 우연히, 무계획으로, 아무런 생각없이 걸어다니는 사람의 눈에 들어오는, 시내의 구석구석을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대단한 이야기는 없지만, 역시 사라져가는 도시속의 옛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과, 무조건적인 파괴에 다름아닌 개발에 대한 저자의 반감이 들어나는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사라져버린 종로의 피맛골 (맞나?), 용산의 철거현장, 그 밖에도 무수히 많은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은 잘 알지만, 무분별한 파괴 덕분에 서울은 이제 오랜 것이 하나도 없는 도시로 외국에 알려져 있게 되었다.  개량과 개발, 그리고 보존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기대하기에는 반백년의 한국 현대사가 너무 숨가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전 국토가 시멘트 천국으로 변한데에는 일본에서 받은 일본식 개화교육, 그리고 이와 합쳐진 국가와 기업의 성장주의의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하게 된다.

 

만화뿐만 아니라, 책도 이렇게 화자가 일인칭으로 혼자 다니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더 좋다.  무엇인가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살짝 고독함을 느끼게도 해주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나는 꽤 오래전부터 이래왔다.  쿠스미 마사유키와 타니구치 지로 협작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보았지만, '고독한 미식가'와 이 책이 한국에 출판된 전부이다.  타니구치 지로의 다른 만화들은 몇 편 더 들어와 있다만, 내가 본 그의 작품은 쿠스미 마사유키와의 협작으로 지금은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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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2-20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하면서도 깊은 식견을 가지신 트란님 페이퍼는 늘 좋습니다.
1인칭 화자가 혼자 다니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저도 좋아해요.
이곳은 다소 흐리지만 좋은 아침이에요. 화사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transient-guest 2013-02-20 10:22   좋아요 0 | URL
식견이라니요, 허접에 가깝죠..ㅎㅎ 프레이야님의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네, 이런 화법은 고독이 고독이 아닌, 다른 깊은 재미를 유발하는 것 같네요. 이곳도 비가 막 와요. 덕분에 오후 스케줄은 다 날리고, 그냥 집에와서 와인을 홀짝이면서 'birth of the cool'을 듣고 있어요..ㅎ 남은 하루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연휴의 월요일을 오전의 운동으로 시작하고,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한 후, 간만에 산타크루즈 다운타운의 logos에 가게 되었다.  버릇처럼 일주일에 한번 정도 휙 둘러보고, 늘 찾아보게 되는 작가들인 아시모프, 붓쳐, 피츠제럴드, 만, 스타인벡, 오스터 등의 섹션을 건질만한 책이 들어왔는지 뜯어본 후, 마지막으로 재즈와 클래식 CD 섹션과 가죽으로 제본된 Easton Press나 Franklin Library책들을 보게 된다.  가죽장정본이야 값이 워낙 뻔해서 주머니가 넉넉할 때면 한 권씩 장만하는 편이지만, CD들은 대개 5-6불 선이라서 손쉽게 몇 개씩 들고 나오곤 한다.  비록 중고본이지만 디지털의 장점이라는게 외관이 크게 상하지 않았다면 소리내는데엔 큰 문제가 없다는 것. 

 

오늘도 그렇게 휴일을 보내다가 꽤나 좋은 물건을 건지게 되어 이렇게 남겨 본다.

 

재즈의 황제라는 Miles Davis의 기념비적인 음반이라고 하는데, 들어보니 과연 그런듯.  내가 들어본 그의 음반들 중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늘 말하지만, 재즈의 전문가는 커녕 팬 정도의 지식도 갖추지 못한 나는, 그저 내 귀에 즐겁에 잘 들리는 소리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좋은 음반이나 명인의 연주를 들으면 확실히 일반 연주보다 훨씬 더 마음에 무엇인가 울려 퍼지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요즘 아이들은 iPAD를 손에 들고 나온다지만, 이런 교육도 좋겠다.  클래식과 재즈, 책을 아이의 눈에 들어오는 모든 공간에 배치해 놓고 자연스럽게 익혀가도록 하는 그런 교육 말이다.  지금의 국민교육보다는 좀더 차원이 놓은 그런 개별적이고 인문학적인 교육이 더 낮은 곳으로 널리 퍼질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러 면에서 조금 더 부유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더 말이 필요없는 거장의 연주.  여러 곳에서 언급된 것을 기억하여 여러 번 찾아보았지만 신품 외에는 찾을 수 없었는데, 오늘 Bach 섹션에서 대박을 맞았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처음으로 그의 연주를 들었는데...완전 대박!  피아노를 어떻게 이렇게 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협주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곡들을 이렇게 피아노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별 생각을 다 했다.  사실 피아노 하나의 구현이 협주같은 힘과 구성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으니까, 역시 거장의 연주를 듣는 것은 나같은 novice에게도 눈이 확 떠지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여기서는 검색이 되지 않지만, 기타의 명인, 세고비아의 CD 두 장을 건졌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레코드 판으로 먼저 그의 음악을 들은 탓인지, CD음악은 무엇인가 무미건조한 느낌을 준다.  역시 음악이나 책은 아날로그가 최고인 듯.  

 

지금 사는 아파트 근처에도 크고 오래된 중고 음반 가게가 있다.  최근에 점포를 이 부근에 열었는데, 요즘 같은 시절에도 이런 가게가 신규오픈을 하는구나 싶었다.  그 유명한 라스푸친 레코드의 분점이다.  물론 제정 러시아 말기의 괴승 라스푸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그의 이름과 얼굴만 가져다가 쓸 뿐이다.  그런데, 이곳의 분위기는 음반을 전문으로 취급해서 그런지 상당히 하드코어하다.  점원들은 대개 한 두 군데를 뚫고 있는 것은 기본이고, 그 이상도 많이 있으며 몸을 캔버스로 삼은 이도 여럿 보인다.  한 마디로 좀 지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잘 안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도 무엇인가 숨겨진 보물이 있을지 모르니 조만간 한번 다녀오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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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2-1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에는 그 음반가게 이야기도 올려 보셔요.
겉모습이 그러한 직원이라 하더라도
마음을 트고 이야기를 나누면
사뭇 다르겠지요.

transient-guest 2013-02-19 23:52   좋아요 0 | URL
아마도 그렇겠지요?ㅎㅎ
 

같은 책인데, 색이 유치하게 화려한 본이 내가 가진 초기본이고 좀더 심플하게 디자인 된 옆의 것이 다음에 나온 본이다.  지금은 둘 다 절판되었고, 나 역시 이 시리즈는 중고로 구매해서 읽었다.

 

어제부터 조금 한가했어야 하는것을, 별로 영양가 없는 미팅때문에 토요일에도 사무실에 잠깐 나왔어야 했다.  그 덕분에, 주말이 짧아진 것을 President's Day 연휴로 살짝 땜질이 되어, 오늘은 본가에 돌아와서, 아파트에서 들고온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고 있다.  연초부터 한 동안 소설을, 그것도 현대소설을 위주로 책을 읽었더니 슬슬 조금 지겹기도 하고 - 같은 패턴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덧 아무리 잘 읽던 것도 조금 물리기 마련이다 - 해서, 비판적인 읽기랄까,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 그간 모아놓은 장정일의 독서후기를 꺼내어 놓았다. 

 

새삼 느끼지만, 참으로 많은 책을 무지막지하게 읽어 내려간 흔적이거니와, 비교적 세심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자기의 평과 느낌을 갈겨내려간 기록은 '독서일기' 일곱 권, '빌린책...' 두 권, 그리고 '공부' 한 권 이렇게 모여있다.  다뤄진 책만 해도 필경 천 권은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지금 보고 있는 이 책은 그 모든 것들의 시작인 93년도에 처음 나온 장정일의 첫 독후감 모음집인 셈.

 

그의 신랄한 비판이나 찬사를 받은 수 많은 책들 중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좀 신경쓰이게 한다.  단순히 내 독서가 좁다 넓다를 떠나 출판되고 나서 이십 년을 채 살아남지 못하는 책들이 이렇게 많은가에 대한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상당히 많은, 장정일이 93년을 전후하여 읽은 책들 중, 90년대 초반에 나온 책들을 보면, 제목은 커녕 저자조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경우가 허다한데, 내 독서력의 한계도 분명하지만, 그 이상, 한 권의 책, 또는 하나의 작가가 timeless classic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사실, 책에 대한 생각을 쓰려고 여기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오늘은, 이번에는.  예전에도 다른 곳에서 본 내용을 이 책에서 다시 보게 되면서 서재를 통해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보니, 그 전에 한번 페이퍼에 쓴 적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주변사람들과 이야기만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애시당초 페이퍼나 리뷰를 쓰기 시작한 것이 읽은 것을 덜 까먹기 위해서였는데, 이제는 그것도 어려운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소개하려는 사람은 다음과 같다.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 츠바이크의 '어떤 정치적 인간의 초상'의 후기를 보고 좀 짧게 고쳐 올린 것이다.  즉 내가 정리한 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 요제프 푸셰라는 인간이 있었더랬다.  1759년에 낭트란 도시에서, 한 잡화상의 아들로 태어났던 그는, 수도원 부속학교의 교사로 전전하다가 "이런 저런 기만"으로 구민들을 속여 32세의 나이에 프랑스 혁명의 권력중추였던 국민회의의 대의원이 된다.  처음의 소속은 온건파였지만, 로베스 피에르의 급진파가 권력을 잡자, 바로 (1) 급진파로 변신한다.  그 후, 로베스 피에르의 실각 후에는 (2) 5인 집정내각을 조종하여 (3) 나폴레옹에게 권력을 내준다.  나폴레옹이 제정을 부활시킨 후 푸셰는 (4) 오토라토 공작에 봉해지는데,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연패하자, (5) 다시 나폴레옹을 실각시키는 음모로 그를 밀어낸다.  그 후 (6) 과도정부의 수반이 되었다가, 다시 루이 18세 (푸셰가 포함된 400인 투표로 목이 잘린 루이 16세의 동생) 에게 프랑스를 넘긴다.  

 

장정일은 이 책의 후기를 쓰면서 푸셰만큼이나 다양한 정치행보와 변신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늘리고 종국에는 갓 싹이 트던 한국의 민주주의를 밟고 18년간의 왕정을 이어간 다카키 마사오의 커리어를 오버랩 시킨다.  이 책을 쓰던 93년 당시는 이인제가 김영삼 정부의 첫 노동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인데, 88년에 통일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으로 데뷔한 그의 정치적 행보와 변신이 원조격인 푸셰를 능가하게 될 줄은 장정일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로, 지금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쓴다면, 장정일은, 아니 나라면, 마사오 보다는 이인제의 - 심지어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의 정치력 - 변화무쌍함이 푸셰의 그것과 더 오버랩 시키게 될 것이다. (이 책도 품절이다. 아무튼 책이 마구 나왔다가 빨리 사라지는 한국의 출판문화는 내 큰 불만의 대상이다) 

 

이인제의 연표는 (1) 통일민주당, (2) 민주자유당, (3) 신한국당, (4) 국민신당, (5) 새정치국민회의, (6) 새천년민주당, (7) 자유민주연합, (8) 국민중심당, (9) 새천년민주당, (10) 통합민주당, (11) 무소속, (12) 자유선진당, (13) 선진통일당, 그리고 (14) 새누리당인데, 그야말로 돌고 돌아 제자리라는 말이 딱 이인제를 두고 한 말 같다.  이놈의 지분정치...

 

언제나 '승자'의 편에 있지는 않았고, 시대를 쫓아가는 기민함도 떨어지지만, 이인제를 비롯한 이런 '정치적 인간'들에게는 '이념'이라는 것이 없다고 츠바이크는 말한다.  매우 공감하게 되는 촌철살인의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을때 여러 가지 이유로 밑줄을 긋지 못한 부분들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표시해 놓으리라 했건만.  어떻게, 지난번과 똑같은 부분을 똑같은 이유로 놓치게 되는 것일까?  예컨대, 자 혹은 자를 대체할 책갈피가 없다던가, 화장실 변기 혹은 gym의 자전거에 앉아있을때에만, 밑줄 긋고 싶은 페이지와 글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딱, 그때와 같은 그 부분들, 한 두 개도 아닌 그 부분들을 읽을 때,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렇게 무엇인가 모자랐더랬다.  여전히 줄을 긋지 못하고 보내버린 것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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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2-19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셰 저 사나이 결국 권력 줄타기하다가 마지막에 줄에서 떨어지죠.워낙 적이 많아서 늘 견제당하기도 했고요.술수로 흥한 자 술수로 망하죠.

transient-guest 2013-02-19 23:5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지금 한국에서의 이야기는 아닌 듯 하네요. 계속 생명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요...
 

명박군의 self 훈장수여질: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하면서 자기자신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해왔다는 건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관행처럼 이어지던, 그리 크게 문제삼지 않던 것을 역대 최악이라고 당당히 평가받고 있는 명박군이기에 뉴스거리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이런 관행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가뜩이나 훈장이나 상을 남발하여 적당히 오래 있고, 권력상층부에 붙어먹다보면 하나씩은 받게 되는게 한국의 훈장인데, 이렇게 자기에게 직접 수여하는 건 매우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아무튼, 후계자를 잘 선정한 덕에 큰 무리는 없이 훈장을 타게 되겠지만, 참으로 길가던 소가 웃다 거꾸러질 노릇이다.

 

5세훈의 최근 발언 re: 세빛둥둥섬:

일단 이 정체불명의 물건이 뭐에 쓰려고 만든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만든 사람도 모를 것이다.  다만, 5세훈이 그의 롤모델인 명박군의 성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일종의 모방을 통한 청출어람의 시도였다고만 생각될 뿐.  그러나, 창조가 없는 모방은 단순한 도용으로 끝난다는 것을 샘플로 보여주기라도 한 듯, 현재로써는 이런 삽질이 쌓이고 쌓여, 5세훈은 현재 권력의 중추는 커녕, 뒷날을 짐작하기도 어려운 일종의 야인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내 생각에는 기왕에 아들내미가 시원치 않은 "soon to be former 대통령"께서 입양하여 충실한 후계자로 삼으면 어떨까?  종교는 다르지만, 어짜피 이런 인간들에게 그런게 문제가 될 리는 없을테니까.  어른은 입양할 수 없지만, 5세 아동은 가능하다.  잘 가르치면 시원찮은 아들내미의 집사정도는 어떻게 땜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법원 판결 re: 노회찬 의원:

일찌감치 관료화한 사법부와 검찰이 어떻게 기생하는지를 보여주는 paradigm으로써의 가치가 높은 판결이라고 하겠다.  나아가서 시대가 회귀하여 마사오나 대머리 시절에나 볼 수 있던 사법테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시범케이스기까지 하다.  명박군이 다시 발굴하여 그네꼬가 발전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전문분야.  이렇게 보면, 한국의 사법부는 법을 죽이는 (죽을 사) 부서라고 보이는데, 검찰과 사법부가 한통속이 되니 그 곰삭은 맛과 구린 향이 진동을 하는구나!  도대체 fact, 그것도 국회의원이 국가기관이 조사한 부정부패검사명단을 공개했다고 명예훼손이 되는 나라는 적어도 G-20에서는 한국밖에 없을 것 같다.  진정한 국격 업그레이드를 보여주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모 교회 목사님의 논문표절:

사실이라면 (교단인가 교회의 내부감사에서 밝혀졌다고 하니까 사실이겠지?), 일단 학위부터 반납하고 자숙하실 일이다.  교인들이야 그간 사역의 공이 어쩌구 저쩌구 하겠지만, 과정이 잘못되었다면 최소한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성직자로서뿐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체육계와 함께 대표적인 학력 뻥튀기 및 매수행위가 심각한 분야.  또한 체육계와 함께 사실 박사학력이 그리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하나씩은 꼭 가져야만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고 보는데.  아마도 8-90년대 체육계/교계분야의 출판물을 찾아보면 Pacific Western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가 가장 많을 듯.  (아시다시피 Pacific Western대학은 거의 명사화되다시피 한, 그리고 일제단속에 걸려서 없어진 학위공장이다.  지금은 다른 몇 군데가 또 비슷한 장사를 하는 것으로 아는데, 거의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안다). 

 

처벌:

한국의 형법은 상대적으로 처벌이 죄에 비해 약하다고 본다.  공안시절의 영향으로 국민정서가 그런 탓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실상 공안정국이었던 지난 5년을 보면, 형법이 가장 무겁게 처벌한 케이스들은 모두 (1) 서민, (2) 야당인사, (3) 노조에 관련된 일들이고 가장 무겁게 처벌되었어야 할 (1) 살인, (2) 강간, (3) 공무원/정치인/기업인 부정부패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처리된 것을 볼 수 있다.  죄를 지어도 합의만 잘하면, 권력의 비호를 받으면, 돈이 많으면, 등등에 의해 처벌을 받지 않거나 낮은 형량을 받게 되는데, 이런 류의 범죄가 근절이 될 까닭이 없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오원춘, 조두순, 은진수, 이명박의 일가친척들, 재벌황제들 등등등...일단 민사와 형사를 분리하여 민사합의와는 별도로 형사처벌이 되도록 법이 개정되고, 이와 함께 사법부와 검찰의 탈관료화, 탈엘리트화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허지웅 기자의 말마따나 그냥 그런 씨부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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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드보일드 라이프 스토리
임경선 지음 / 뜨인돌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저자는 벌써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한,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고정칼럼을 쓰고 있는, 이제는 40대가 되어버린 글쟁이다.  하루키 전작을 위해 하루키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에 연관된 모든 책들을 읽어내리라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이를 시작한지 어언 일년, 이런 책이 나에게로 왔다. 

 

내가 하루키를 처음 접한 것은 20대 후반의 일이고, 본격적으로 읽고 빼져들어간 것은 30대를 넘어서이니, 나의 하루키 감성은 하루키가 처음 작가로서 글쓰기를 하던 시절과 겹치는 셈인데, 다수의 한국 reader들과는 확실히 좀 다르다.  하루키는 80년대 후반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유명세를 이어이고 있는 작가이니, 초기에 그를 읽은 한국의 독자들은 아마도 나와는 많이 다른 감성으로 그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저자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처음 하루키를 접했는데, 이때는 1987년, 올림픽을 하루 앞두고 발악하던 전씨와 민주화를 열망하던 온 국민이 박터지게 싸우던, 그리고 그 결과 6.10 항쟁을 거쳐 (조작된) 민주화 이양을 위한 노태우의 6.29 선언이 있었던 바로 그 해이다.  아마도 내가 읽었더라면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을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어떻게 보면 매우 시기적절하게 손에 들은 셈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이 때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재일조선인 학교를 다녔다고 하니 아마도 저자가 느낀 하루키는 내가 추측하는 한국땅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을 것 같다.

 

어쨌든 고등학교 2학년으로서 처음 하루키를 접한 저자는 그 뒤로 그의 작품을 통해 온갖 인생의 슬픔과 혼란에 대한 '힐링'을 받았기에, 저자에게 있어 하루키는 그야말로 '북극성'같은 작가라고까지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세월의 감성과 감사의 결과물인 것이다.

 

하루키를 읽어온 사람이라면 많이 익숙한 하루키의 일대기를 위주로 그의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이 마치 하루키가 사랑해마지않는, CD나 MP3가 아닌 턴테이블을 타고 흐르는 재즈의 선율처럼 잔잔하게 이어진다.  작가와 작품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그 작가와 작품을 어느새 닮게 되는 것일까?  저자의 글에서 하루키와 그의 작품의 톤을 느낀 사람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일종의 하루키 입문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이 책에서는 그간 저자가 살아온 인생의 에피소드가 하루키의 작품과 함께 녹아들어가 더할나위 없는 감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내가 살짝 속아넘어갔던 하루키와 저자의 대담 - 가상대담이다 - 은 읽는내내 너무 부러웠다, 가상대담임을 알게 되기 전까지...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봄직하다.  이미 쓰여진 책이니, 같은 책을 엮을 수는 없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까 상상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맛과 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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