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김영하 작가의 단편 모음집.  팟캐스트에서 처음으로 들었고, 2012년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에도 실려 있었기에 너무도 낯익었던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읽는 내내, 내가 이걸 어디에서 봤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옛 시대의 작품들이 사회정치의식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통해 민주화의 열망과 군부독재에 대한 항거를 나타내려 했다면, 김영하로 대표되는 우리 시대의 작품들은 무너져가는 가정, 불안한 사회, 혼란, 이런 종류의 테마를 꽤 능숙하게 다루어 상징적이거나,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상당히 흥미있는 소설을 그려낸다.  

 

김영하는 읽을 때마다 하루키와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점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면 조금 이상한 것일까?  팟캐스트로 들리는 조금은 어두운 톤의 목소리와 함께 내가 김영하의 책을 더 읽고 싶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김영하와 하루키는.  둘 다 미국에 가서 일정 기간 생활을 해보고 (교환교수/학생 비슷한 걸로), 작품도 써보고, 여행기도 쓰고, 조금 혼자서 노는 사람 같은 냄새도 나고, 국내에 소개된 하루키의 많은 작품들은 그가 3-40대에 쓴 것들인데, 김영하의 나이대가 딱 그 정도라는 점 (40대 중반이던가?)을 보아, 더욱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것일수도 있겠다.  그의 세 번째 여행기가 기다려진다.

 

말로만 듣던 그 발칙한 이야기들을 처음으로 읽은 소감은 그저 무지하게 웃긴다는 것. 두 번쨰로 읽었을때에는 젊은 시절의 여행과 시간이 흘러 이를 반추하면서 다시 이어가는 장년의 여행의 갭과 추억을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9-11전인 90년대에도 나라와 도시에 따른 이방인 배척이 있었다는 생각, 그리고 이런 국수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이 지금은 경제혼란과 장기전이 되어버린 실체없는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더욱 심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어느 시점에서 세계 각지를 여러 차례 돌아다니고 싶은 나로써는 신경이 쓰이는 이야기.  특히나 피부색이 하얀 브라이슨도 '미국놈' 또는 외지인 취급을 받았다면, 피부색이 건강한 나는 상당히 신경이 쓰일 것 같다.  

 

한국사람이니까 한국어는 능숙하고, 영어는 이곳에 사느니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만, 유럽에 가려면 독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어야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어를 하면 유럽과 중남미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고 나머지는 제각각.  다만, 이탈리아어는 묘하게 늘어뜨리는 엑센트가 왠지 모르게 유쾌하여 마음에 든다.  배워보고 싶은 말.  로마제국과 그리스의 흔적을 따라 돌아다녀보고 싶다.  글로만 읽고 TV로만 접하던 것들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감동, 나는 언제나 느껴볼 수 있을까?  

 

쓰고 나니, 역시 나는 리뷰는 어렵다는 생각.  스토리도 적당히 간추리면서 느낌을 집어넣고, 그러면서도 스포일러를 피해야 하는 잡지나 영화기자의 글쓰기는 아직 어렵다.  이동진 기자의 팟캐스트를 들을 때마다 이 사람은 참 정리를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더욱 그렇다. 

 

하루키니까 다른 말이 필요없다.  거의 다 이미 읽었던 단편적인 이야기들이지만, 다시 읽으니 새롭고, 특히 그의 소설을 거의 다 읽어낸 지금은 중간 중간에 소설의 모티브로 쓰인 그의 평상시 생각들을 볼 수 있다.  신간도 좋고 구간도 좋고, 그저 한 권씩 쌓야가는 그의 책 - 만은 아니고, 모든 책 - 을 보면 마냥 기분이 좋다.  

 

사진으로 올리지는 못했지만, 구매는 언제나 읽기를 앞질러 간다는 말을 실감하는 주말의 사건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주말에 logos에 가서 재즈 CD 몇 개를 집어들고 - 쳇 베이커 - 지하서고로 내려간 나는 습관이 된 SF코너와 Mystery 하드커버 코너를 둘러보다가 이안 플레밍의 James Bond시리즈가 옛 문고판 하드커버로 9권이 들어온 것을 보고 냉큼 집어왔다.  권당 5불이니까 매우 싸게 집어온 것인데, 책 상태가 50년대에 출판된 것 치고는 양호하다.  또 내가 좋아하는 좀 오래된 스타일의 책 디자인 - 책 페이지가 들쑥날쑥한 - 도 마음에 들어, 어느새, 지금 사들인 것들을 좀 읽을때까지는 자제해야겠다는 지난 달의 각오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렸다. 

 

- 에휴~ 속이 다 시원하다.  좀더 심층적이고 멋진 리뷰는 다른 분들께 맡겨두고, 이런 페이퍼로 남기는 것이 지금의 딱 내 레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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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침대에 누워 뒤척거리면서 아이폰으로 이런 저런 포털 뉴스를 보고 있었다.  두 가지 소식이 눈에 들어왔는데, 김종훈씨의 장관후보자 사퇴 (미래창조과학부?)와 이를 정점으로 뻥~ 터져버린 President 그네꼬의 대국민담화였다. 

 

김종훈씨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이민 1-1.5세대로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개인적인 노력과 끈기로 큰 성공을 거머쥔 사람인 듯.  그리고 이미 일찌감치 주류사회로 편입되어 활동하던 사람인 것으로 추정된다.  교포로서 보다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성공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그가 관여한 많은 행사나 활동이 재외한국인보다는 미국사회에 더 촛점이 맞춰져 있는것을 보아도 그렇다고 생각된다. 

 

물론 난 김종훈씨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고, 여태껏 이곳의 한국 신문지상에서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대략 회자되는 이야기로 볼 때 그렇다는 것.  그의 능력은 의심할 것이 없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야,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이렇게 저렇게 구부려질 수 있는 것이라서 역시 큰 이슈가 없다. 다만, 여기서의 문제는 과연 그네꼬가 목을 매는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신설부서가 뭣에다 쓰는 물건인지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바뀔때마다 캐비닛의 구성자체가 바뀌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대통령을 보좌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행정기관이 5년에 한번씩 덧셈/뺄셈을 하여 사라지고 생기기를 반복한다는 것을 보면, 민주주의 정치의 한 축이라는 행정부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의 장난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는 더 웃기는데.  신정권 출범에 따른 여러 이슈들에 지친 그네꼬가 이번 일을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했다는 것.  글쎄.  내가 볼때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할 만한 것들은 많지만 - 예컨데, 이승만의 사사오입, 조봉암 사법살인, 고대생 폭행, 5.16 군사 쿠데타, 18년 장기독재, 대머리 바통터치, 그리고 return of the dictator's daughter - 최근의 정국을 둘러싼 여야갈등은 초유의 사태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고 보는데.  날이 시퍼렇게 선 살기어린 보톡스 face가 무섭다기 보다는 왠-zi 코믹하게 느껴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역시 허지웅 기자의 말마따나 씨부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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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순이구요, 가져가시면 글 남겨주세요.

 

바로 claim되었습니다.  다음번에 나오면 또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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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5 0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5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 묘점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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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은 논픽션과 픽션을 넘나드는 느낌이 난다.  확실히 그렇다.  전후 일본의 혼란기, 그리고 발전하던 시기의 많은 미결사건들에 대해 독자적인 추리를 하여 써낸 논픽션과 마찬가지로, 그의 픽션은 실제 사건을 염두에 두고 써내려간 것들이 많이 있다고 알고 있다.  이 책도 그런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히 어디선가 접한 사례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런 저런 작품들을 마구 읽어댄 부작용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처럼, 사건은우연한 기회에 사건에 휘말리는 주인공과, 그를 돕와 좌충우돌하면서 사건을 풀어나가는 조력자에 의해 하나씩 풀려가는데, 그의 많은 다른 작품들처럼 여기서도 어떤 마술적인 추리의 대가가 통쾌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그야말로 발로 뛰면서 얻어내는 정보를 취합하여 추리를 전개하는 것에 현실감이 있다.  이때문에 물론 다소 지루한 부분도 있지만, 그건 작품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날로그 시대의 트릭이 그래도 21세기의 독자한테까지 먹히는걸 보면, 세이초는 역시 단순한 재담꾼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된다.  요즘 같으면 전혀 들어먹히지 못할 트릭을 구사하지만, 그렇게 말도 안되거나 못 봐줄 수준의 트릭이 아닌, 매우 고심하여 만들어 낸 것이 분명한 수준의 트릭을 보면서, 추리를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  

 

나는 추리소설을 진지하게 파헤쳐가는, detective형 독자가 아닌지라, 그저 서술되는 것을 따라가면서 별 생각없이 읽었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세이초가 펼쳐놓은 구성과 맹점을 넘어가는 승부를 벌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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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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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이라는 이름은 하이킹이나 트레킹에 빠져있는 이곳 분들을 통해 먼저 들었고, 그 다음에는 아마도 홍은택이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면서 쓴 글에서 보았던 것 같다.  이때만 해도 그냥 그런 글쟁이가 있고, 유난히 몇 사람들이 그를 인용하는구나 정도였는데, 지금은 나도 그의 책을 모두 구해보고 싶어졌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그의 박학다식함도 놀랍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위트있게 표현하는 재주는 가히 입신의 경지라고 느껴진다.  이런 유쾌함을 선사하는 책도 흔하지만은 않은데, 참으로 잘 읽히는 책이다.

 

지난번에 읽은 몇 권을 더해, 이 책은 내가 읽은 브라이슨의 세 번째 책이 된다.  그 전의 두 권이 신변잡기적인 에피소드를 그 특유의 위트로 코믹하게 엮어 놓았다면, 이 책은 - 이들에 비해서는 - 꽤나 거창한 주제와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무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고 하지 않는가? 

 

제목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의 역사란 것이 워낙 짧고 좁은데다가 고고학적인 이해나 연구도 거의 수박의 거죽에 머물러 있는 정도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아서, 거의 모든 것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의 책이 그렇다기 보다는,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역사라는 것 자체가 그렇다는 생각.  

 

아마도 대부분은 모르고 지나갈, 많은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들의 뒷얘기들을 용케도 추려서, 주제별로 분류하고 모아서 구성했구나 싶다.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로부터, 인류가 저지른 우스꽝스러운 실수, 그리고 중간중간 섞여있는 교훈적인 이야기들은 이 책에 몰입하게 해주는 좋은 구성요소들이다.  반면, 너무도 다양한 우주, 과학, 인간, 역사 등등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촘촘하게 들어있어, 중간중간 조금 피곤할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좀 잊을만하면 나오는 브라이슨 특유의 위트있는 표현과 비꼼이 다소 무거운 이야기들도 가볍게 읽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만의 플러스가 아닌가 싶다.

 

자칫하면 fact의 나열에 불과할 수도 있었던 주제들을 잘 풀어놓은 책이다.  빌 브라이슨의 책은 소장가치가 충분하다고 보는데, 이 책도 두고 나중에 또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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