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인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책이라는 것을 제대로 읽기도 훨씬 전에 그는 이미 유명한 소설가였지만, 문학이나 한국소설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나의 독서편력에 그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우연한 기회에 읽은 '상도'를 통해서였던 듯 싶다.  하지만, 나중에 읽은 그의 초기작들이 눈에 익숙했던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에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최인호의 작품들은 나를 거쳐갔을 것 같다.

 

내 아버지와 동갑내기인 최인호씨가 어제 암으로 투병 중에 별세하셨다고 나온 기사를 보니 조금 착잡하다.  가장 나이가 들었다고 느낄 때는 동기들 중 누군가가 떠났을 때라고 하는데, 그 다음의 순위는 동기들 중 누군가의 부모님께서 떠나셨을 때인 듯 싶다.  최인호씨의 자녀와 나와는 물론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요즘처럼 오래 사는 세상에 68세에 세상에 이별을 고한 최인호씨의 떠남은 너무도 이른 것 같다.  쓸모없는 인간들은 저토록 오래 살면서 세상에 크나큰 해악을 끼치는데 말이다. 

 

그간 수 년간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암이란 병이 그렇다고 한다.  그저,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편안하게 쉬실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떠난 그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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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단련하다 - 인간의 현재 도쿄대 강의 1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일과 함께 병행하는 독서라는 핑계가 있지만, 책 세 권의 후기를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은 나이의 탓만은 아닐게다.  어떤 일이든지 그때 그때 바로 마무리하지 않고 넘어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은 특히 이럴 때마다 하게 된다.

 

10/10 Project를 시작하기 전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여러 권 구하여 하나씩 읽었는데, 그간 후기를 미뤄둔 것이 세 권이나 되는 것을 오늘 문득 기억해냈다.  2-3주 정도가 지난 것 같은데, 내용도 좀 잊어버렸고, 대략의 흐름 정도만 기억이 난다. 

 

필경 수 만권은 훌쩍 넘길만큼 많은 책과 문서정보를 읽고 정리하면서 소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다운 다치바나 다카시의 지와 교양에 대한 이론이다.  도쿄대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정리한 것인데, 문학이나 픽션을 읽지 않는다는 그답지 않게 사회인문 전반에 걸쳐 풍부한 그의 지식과 인용이 새삼 돋보인다.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쌓아야 할 필요는 IT시대인 지금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정보의 홍수속에서 헤메이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안목이 필요하고 남이 주는 것을 떠먹기만 해서는 그런 안목이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후에는 적어도 한동안은 정부나 기관의 여론조작 혹은 여론통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실제로 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보와 사실의 완벽한 isolation과 통제는 어려워진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한국이나 중국, 그리고 막대한 자금과 조직력을 동반한 강대국의 감청사례를 볼 때, 사건사실의 통제와 조작, 그리고 여론의 교묘한 뒷조종까지 바로 그 IT기술을 통해서 더욱 직접적이고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행간을 읽고 사건의 본질을 짚어내는 힘은 지금 더욱 필요하다고 하겠다. 

 

박근혜씨와 새누리당의 온갖 전횡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국정원 개혁과 대선개입에 대한 조사처벌 이상으로 확대되지 못하는, 즉 사건의 본질이자 핵심인 박근혜씨의 퇴진운동으로 확대되지 않는 세태는 어느 정도 기성세대 및 2-30대의 지적능력감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90년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금씩 사회정치운동에 대한 관심은 연예인과 유행, 취업, 해외연수 같은 욕구와 욕망의 상품으로 대체됐고, IMF이후에는 취업과 성공만이 지상명제가 된 젊은이들은 회사로, 부의 세계로, 경쟁의 세계로, 때로는 대안적인 방편으로써 종교에 심취하게 되어온 결과, 이제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2-30대는 그 힘을 많이 잃어버린, 아니 잊어버린 것 같다.  이명박 정부 때 한층 심화된 우민화 정책은 이제 박근혜 정부에 들어 교학사 교과서 사건이난 전교조의 노조취소를 함부로 추진할 수 있는 정권의 거만과 우격다짐을 제지할 의식을 잃은 것 같다.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빠졌는데, 어쨌든 이 책을 읽고나서 내가 느낀 부족함은 수학과 과학에 있어 상대적으로 비대칭적으로 사회인문계열에 편중된 나의 관심과 지식의 편향성과 약점이다.  수학은 대수 직전에 겨우 멈췄고, 과학은 인류학과 통계학의 교양과목으로 때워버렸는데, 한국이나 일본보다는 앞서 있었다는 그 시절의 미국 대학교육에서도 그 모양이었으니까, 책에서 다룬 일본의 교육편향과 현재 한국의 취업일변도의 대학교육으로는 지상최대의 목표가 취업이 되어버린 이 시대를 바꿀 힘이 생기지 못할 것이다. 

 

생각해보자.  내 인생도 그리 대단한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대학시절을 취업을 위해 보내지는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행복하게도 대학 4년간 내가 지금도 사랑해마지 않는 역사를 공부할 수 있었고, 얕은 지식이나마 이렇게 지금도 독서를 이어가면서 다방면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배경이 된 모든 교육을 대학교때 받았다.  러시아 지성사, 유럽 지성사 각 3학기 강의들을 통해 문학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유럽영화사를 통해 흑백영화를 배웠다.  하다못해, 너무도 부족한 수학과 과학에 대한 나의 모자람이라도 느끼면서, 책을 통해 다시 조금씩 배워 볼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그 시절의 교육과 이을 이어온 독서라고 하겠다. 

 

뇌를 단련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자꾸 읽고, 사색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자신을,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인지하고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때로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사회는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그것이 항상 발전과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한 개인을 사상 때문에 구속하거나 거듭되는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그 생명을 이어가는 정치인과 언론세력을 혼내줄 정도의 발전은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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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 (완전판) - 0시를 향하여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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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추리소설을 접하는 시기는 대략 초중학교 무렵이 아닐까 싶다.  나도 그랬지만, 그 시절, 내 주변의 많은 형/동생들에게는 나처럼 이런 저런 문고판 전집이 한 두질 씩은 있었던 것 같은데, 입소문을 타고 판매원에게 구매하던 그 당시 방식에 따라 한 집에서 좋은 전집을 좋은 분을 통해 구매하게 되면, 어머니들끼리 소개를 하여 다른 집에도 한 질씩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독서라는 것이 상당히 역사와 역사소설에 편중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추리소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관념과는 달리, 그리 주의를 기울여서, 혹은 열심히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상당히 많은 부분 내용이 조금씩 생각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이를 많이 먹은 지금에서야 제대로 읽는 홈즈, 포우, 뤼팽이나 크리스티는 그 재미가 각별하다.  아니, 단순한 추리를 떠나서, 잘 쓰여진 소설의 경우 인간의 내면을 그리거나 인과관계를 깊이 따져보는 일종의 장치 이상의 무엇을 보기 때문에, 오히려 어느 정도 세상과 사람을 경험한 지금의 시점이 추리소설을 잘 읽기에 적절한 때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도 기발한 트릭에 넘어간 듯 하다.  지금까지 보면, 크리스티는 (다른 작가들도 그러겠지만) 다양한 캐릭터와 배경이 되는 사건사실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독자의 눈을 어지럽힌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정작 중요한 인물들은 사건의 중심에 배치하여 더더욱 독자의 판단을 어렵게 한다.  결론이 다소 의외였고, 독자에게 주어지지 않은 배경사실이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는 부분은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일본의 추리소설과는 다른 재미있는 멋과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이 시대만이 줄 수 있는 아련한 향수도 또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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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 - 자서전
스티븐 윌리엄 호킹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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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은 현존하는 최고의 천체물리학자라고 하겠다.  그는 아인스타인 이래 최고의 학자로써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고 규정하는 많은 패러다임을 바꾸고 발전시켜왔다.  아직까지 노벨상은 받지 못한 것으로 알지만, 그가 조금 더 오래 산다면 그리 머지 않은 날에 받을 것 같다는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그저 천재적인 학자로서 병마와 싸워온 그의 이미지 말고는 사실 떠오르는게 없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는 이미 루게릭병 환자였고, 휠체어를 탄, 기묘하게 뒤틀린 그의 모습은 아픈 천재과학자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그의 위치와 업적, 그리고 겉모습이 매스 미디어가 보여주는 대부분의 스티븐 호킹이다.

 

하지만, 호킹은 아픈 사람이기 이전에 하나의 젊은 과학도였고, 병이 생기기 전의 그는 적당히 말썽도 부리고, 공부도 그럭저럭 하는 보통의, 그러나 상당히 똑똑한 젊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번 책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즉 신화적인 현 시대 '최고'의 수식어가 붙는 그가 아닌, 소박한 그의 모습 말이다. 

 

아마도 이 책은 구술을 통해 기술되었을 것이다.  그러니만큼 짧고 간결하게 그러나 그가 담고 싶은 그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그만큼 군더더기가 빠진 중요한 포인트로 구성되었다는 이야기.  20을 전후하여 발병한 루게릭병 때문에 이제는 휠체어에 거의 붙어있다시피 하는 그에게도 그렇게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점이 새삼 아련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호킹은 그의 삶을 담담하게 기술한다.  20대 초반에 발병한 루게릭병으로 2-3년 안에 죽을 수도 있었던 그가 세 번의 결혼과 자녀출산, 그리고 수 많은 업적의 주인공이 되었음에 만족하는 것이다.  세 번의 이혼과 아픔이 아닌 세 번의 사랑의 결실로써의 결혼이라고 하는 그 마음자세가 멋지다. 

 

영어로 읽었는데, 내용도 좋았고 어렵지는 않았지만, 물리학이나 천문학에 관련된 내용에서는 조금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과학과 수학에 취약한 내 reading은 역시 조금 더 넓혀져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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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단절 - 과잉정보 속에서 집중력을 낭비하지 않는 법
에드워드 할로웰 지음, 곽명단 옮김 / 살림Biz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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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로스쿨 학생 시절부터 변호사의 multi-tasking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한꺼번에 다양한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말함인데, 업무의 특성상 불가피한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이쪽에서는 필수로 요구되는 스킬처럼 회자되는 특정직업능력에 가깝다고 하겠다.  실제로 일을 하다보면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문서작업을 진행하면서,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들어오는 각종 상담에도 주기적으로 답변을 주어야 하고, 여기에 행정적인 업무까지 요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쪽 분야에서 필요한 능력들 중 단연코 일순위에 속한다고 하겠다.  물론 전문분야에서의 해박한 지식과 경험은 당연한 것일게다. 

 

이는 소위 말하는 전문직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기실, 내 일을 하는 지금보다 어떻게 보면 남의 일을 하던 예전에 더욱 이런 multi-tasking능력이 요구되었던 것을 보면, 대부분의 회사원, 즉 조직의 일원으로써 매일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런 multi-tasking능력의 실체는 결국 (1) 일을 하나도 못하고 일하는 시늉을 하면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거나 (2)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짧은 순간 하나의 일에 집중하고, 이를 마무리한 후 다음의 task로 넘어가는 것이다.  (1)의 경우, 극단적으로 말해,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문어발식으로 건드리지만,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모습이겠고, (2)의 경우 그 반대의 극단으로써, 엄청난 효율과 집중을 자랑하는 예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1)과 (2)에 걸쳐 있는 것이 물론 현실의 우리 모습일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2)로 가기 위한 지침이라고 생각되는데, '창조적'이라는 말을 넣은 것은 몰입상태에서의 업무효율을 극적으로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본다.  사실 누가 창조적일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자신의 업무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필요한 때에 적절히 진행하여 개인의 업무를 진행하고 조직의 일원으로써 전체의 업무에 도움이 되면 만족할 수준일테니까. 

 

현대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한 가지 일만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단순직 알바라도 하다 못해 편의점에서 손님을 상대하여 cashier로써, 또 customer service rep으로써, 게다가 restocking까지 책임을 지면서 일하는 것이 기본인 세상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모두가 multi-tasking을 기본전제로 한다면, 업무의 추진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일의 순서를 잘 정하고 큰 줄기를 형성한 후 이를 중심으로 한 순간몰입이다. 

 

예를 들어, 회사생활을 하던 시절의 나의 경우 오전에는 가급적 중요한 편지나 메모 혹은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중점을 두고, 점심이 시작되는 11시 반에서 12시까지, 그리고 오후 1시부터 2시까지를 전화상담이나 이메일 답변에 할애하는 스케줄을 골자로 하여, 업무의 양과 그날의 컨디션, 그리고 상황에 맞는 업무 스케줄을 바탕으로 일한 바 있다.  물론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일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종종 이를 improvise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렇게 하면서 상당히 많은 양의 일을 결과적으로는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었고, 충분한 시간을 남겨 늦지 않은 퇴근이 가능했었다. 

 

지금은 그보다는 조금 더 중구난방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이 많을 때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문서작업을 하고, 단순작업은 회사에서 진행하면서 전화와 이메일, 그리고 홈페이지를 관리한다.  이 역시 이런 책을 읽으면서 실무에 적용하여 쌓인 나의 노하우가 되는 것이다.  꼭 같을수는 없지만, 누구나 어느 정도 이런 방식의 접근이 가능하다고 본다.  회사에서 직급이 낮을수록 자유도는 떨어지고 실질적인 관리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근무철학의 개념으로의 접근이라도 한다면 언젠가 좀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면 더욱 늘어나게 될 일거리와 관리/통제까지 조금 더 효율적으로 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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