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
장정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2006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이 최근에 다시 나왔는데, 내용이 보충되어 다시 나왔다는 약간의 광고성 글과 지례짐작으로 다시 사들여 읽었다.  결론적으로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었고, 마지막 부분에 새로운 글이 조금 더해진 것 같다.  이 정도면 굳이 다시 사서 읽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장정일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 그간 읽어온 그의 '독서일기 1-7권'과 '빌-산-버 1-3권', 그리고 이전에 읽은 '공부' 이후 그의 새로운 독서후기에 목말라했기 때문에 사게 된 것이다.  밑줄을 다시 그을 필요도 없었고, 읽는 내내 이번에는 꽤 지겹게 느꼈다.  


다만, 역시 그의 '공부'로써의 독서의 수준과 깊이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었고, 나의 독서를 비춰보는 기회가 되기는 했다.  남은 2015년의 독서는 이렇게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책을 덮었다.  한 동안 다시 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전의 판으로 이 책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 책이 원래 좋은 책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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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03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다시 살까 고민을 했어요. guest님의 글 덕분에 장바구니 걱정 하나(!)를 덜어냈어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9-04 03:23   좋아요 0 | URL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 느낌이 그랬답니다. 저도 가끔은 다른 분께 도움이 되는군요.ㅎㅎ

yamoo 2015-09-04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정일 책과는 안녕을 고한지가 꽤 됩니다~^^

transient-guest 2015-09-04 03:24   좋아요 0 | URL
저는 장정일의 소설은 정작 읽어보지 않았네요.ㅎ 독서리뷰는 좋아합니다.

몬스터 2015-09-0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transient guest 님. 바르고 굳은 중심을 가지고 삶을 살아야 , 다들 고만고만한 인간들 사이에서 타인들이 벌이는 옳지 않은 (?) 혹은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는 일들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스스로 확신이 없으니 사람 둘이 우기고 들면 , 내 의견을 접어버리고...매일 내게 실망하고 , 또 다시 마음 다 잡고...요즘 이리 살고 있어요. ( 넑두리하고 갑니다. ㅎㅎ )

transient-guest 2015-09-05 03:31   좋아요 0 | URL
자기중심이 참 중요한데, 여기에 people-skill이랑 조금은 대범한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내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조금 쳐낼건 쳐내고...근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 특히 객관적으로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강경한 자세를 유지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만족도 그렇지만, 너무 절충해주면, 버릇이 되거든요.ㅎㅎ 언제든지 오셔서 글 남기셔요.ㅎ
 

많은 작품을 쓰게 되면 필연적으로 다양한 에피소드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작중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공장무협만화를 보면 그래서인지, 모티브도 늘 같고, 마치 배우에게 작품에 따라 다른 역할을 맡기는 것처럼 똑같이 생긴, 똑같은 이름의 캐릭터가 다른 배역으로 등장하는 것을 본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다작을 하는 작가는 - 이동진 평론가/기자가 월간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농담할 정도로 꾸준히 자주 신작이 나온다 - 여러 주인공을 만들어 놓은게 아닌가 싶다.  애거서 크리스티도 보면, 에르큘 포와로라는 탐정이 가장 유명하기는 하지만, 미스 마플이나 할리 퀸을 비롯한 여러 주인공들을 갖고 있으니, 히가시노 게이고에게만 국한되는 사례는 아니겠다.  그의 추리소설을 몇 권 읽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비록 살인사건을 주재료로 꾸려진 에피소드의 모음이지만, 초등학생들과 선생님이 등장하는 모험담에 가깝다.  기괴하고 어두운 란포의 작품도 어린이들을 위한 버전으로 나온 것처럼 접근하면 괜찮을 것 같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비록 스마트폰과 전자기기가 책과 바깥에서의 놀이를 대체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집안에서는 책읽기가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니까.  



단막극을 모아 놓은 책이다.  특별한 주인공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명한 캐릭터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들은 모두 꽤 재미있다.  짝사랑하게 된 소녀의 자살원인이 된 소년의 이야기는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주는데, 이런 식으로 뜻하지 아니한 행동이 이상한 결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로 꾸려진 단편집이다.  추리소설 하고도, 이런 짧은 이야기로 모인 책은 가벼운 reading에 특히 매우 good!



이로써 다이 시지에의 책 세 권을 읽었다.  아직 식상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가 다루는 중국의 면면들이 위화나 모옌, 또는 그간 읽어본 중국고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줄거리를 요약하기에도 좀 그렇고, 모티브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몰입할 수 있었을 만큼 재미있었다.  단 정사장면은 아름답기 보다는 원초적이고 아주 리얼하게 더러운 느낌도 주었는데, 이들의 사랑이 그랬다기 보다는 더러운 중국의 사장통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더운 날씨, 냄새, 시장통의 쓰레기 같은 것들이 모두 버무려진 듯한 광경이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데, 왜 이것만 떠오르는건지.


오늘 또다시 수많은 책을 받았다.  집에 있는 책을 제외하면 꾸준히 목록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현재까지 2450권 정도를 끝냈다.  부모님 댁에 있는 책과 지금 아파트에 있는 것을 마저 업데이트 하여도 5000권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대충 4000권이나 그 이하일 것이다.  


은퇴하여 시간이 많아지면 연 평균 300권 정도를 읽을 수 있다고 할 때, 그리고 은퇴 후 약 20년 정도의 건강한 삶을 기준으로 보면 6000권 정도의 책이면 20년을 꼬박 읽어도 한번만 볼 수 있다는 답이 나온다.  그러니까 어쩌면 내가 보관할 장서의 양은 6000권 정도를 기준으로 하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욕심을 다스리는 것이 ke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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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수만가지의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구한말의 혼란과 일제의 강점으로 인해 아예 오지도 못했던 우리 민족만의 근대화에 대한 그리움을 당시 우리 땅을 강점했었던 일제의 당시 모습에서 그려보는 것이다.  일제의 근대화를 동경하거나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에게 없었던 모습, 다원우주가 아닌 다음에야 구현되지 못했고, 구현될 수도 없었던 우리의 1900-1950년의 모습, 그 부재를 일제의 역사를 보면서 달래보는 것이다.  내 심정이 이런데, 당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의 울분, 여기서 야기된 저항 혹은 친일의 모습은 겉보기와는 달리 꽤 복잡하게 꼬여있었을 것 같다.









모르는 사람 투성이의 이야기였지만, 읽는 내내, 근대화로 나아가는 일본인의 다양한 모습과 내가 좋아하는 나쓰메 소세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당시 문사들의 세계와 사회상을 재미있게 읽었다.  시간과 공간을 오가면서 전개된 이야기 덕분에 조금 헷깔리기도 했지만.  얼마나 사실인지는 몰라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가 일본에서도, 비록 일부였지만, 지사나 의사로 통했음을 보여주는 scene,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와 부딧친 안중근 의사,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함께 떨어뜨린 책을 주워주던 도조 히데키를 배치한 역사의 아이러니 같은 구성이 좋았다.


막부말기와 유신의 혼란을 전후로 하여 참으로 많은 인물들이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이후 권력을 잡고 일본을 군국으로 몰아간 이들은 선배들에 미치지 못하는 찌끄러기들이었다고 역시 같은 작가는 표현했다.  한 마디로 못난 이들이 유신의 과실을 누리고 나라를 이끌어갔던 것이다.  이런 점까지도 우리는 일본을 닮았다.  일제의 하수인을 하던 마름들이 죄다 반공과 친미의 탈을 쓰고서 정부와 군계, 학계, 언로계, 재계 등 사회 각층의 상류로 자리잡은 우리 또한 못난 인간들이 사회를 이끌어 온 것이 현재 그 결과라고 본다. 일본군의 따까리로 급조된 만주군 소위출신이나 그 비슷한 말종들이 3-40대에 벌써 별을 달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돈을 벌어 회사를 세우고, 학교를 점령한 우리의 역사는 언제가 되면 바로잡을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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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08-28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의 도련님들 (?)이 짤막하니 귀엽네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8-29 01:24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당시 일본인들이 워낙 앙증맞게 작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ㅎㅎ
 

연초에 받은 stemcell treatment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덕분에 많이 좋아졌지만, 내 발바닥 부상은 그리 쉽게 치료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워낙 오래된 부상이기도 하고, 그간의 세월만큼 누적된 증상, 그리고 이 때문에 생긴 몸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만 비로소 완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sports medicine therapy도 물론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몸무게를 줄여 관절에 무리를 줄여준다면 더욱 좋겠다.  이 과정에서 검도를 다시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지난 2004년의 부상, 2009년에 다시 시작한 운동, 그 과정에서 소소하게 다치고 회복하면서 더욱 몸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많은 책과 잡지를 찾아보았다.  무술관련서적은 순수한 참고와 지식을 쌓기 위해서 읽지만, weight lifting이나 running, 그리고 몸에 관한 책을 읽는 이유는 실제로 적용하여 전체적으로 내 운동과 몸상태를 개선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는 아직도 진행형인데, 예전과는 달리 좋은 책이 많이 나왔다.  이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몇 권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운동을 하면서, 살면서 느끼는 몸의 고통, 이들의 상당부분이 비뚤어진 자세로 인한 만성적인 증상이라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알았다.  심한 경우 근육이나 관절, 뼈의 부상이 전혀 없이도 순전히 몸의 비대칭이나 나쁜 자세로 인한 쏠림으로 몸 전체 또는 일부가 고통을 느낀다고 하는데, 내 몸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다.  테이핑만 제대로 받아도 지금보다 훨씬 큰 힘을 낼 수 있음을 느끼는데, 자세만 바로 잡혀도 훨씬 더 잘 밀고 당길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을 예전에 몸으로 실감한 것이다.  이 책의 내용과 여기서 소개된 자세교정, 나아가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회복효과는 더욱 빠를 것이다.  장기간의 운동이나 오래된 부상으로 지금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요코미조 세이시에게는 긴다이치 고스케가 있었고, 란포에게는 아케치 고고로가 있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에게는 유가와 교수가 있다.  홈즈와 포와로를 적절하게 섞은 다음에 물리학 박사를 주고 대학교에 적을 두게 하면 유가와 교수같은 인물이 나온다.  요컨데, 이전 세대의 명탐정들의 장점을 모아놓은 느낌이다.  

오쿠다 히데오처럼 가볍게 읽히고, 종종 수작이 나오기도 하지만, 역시 일본의 추리소설도 그 황금기의 작품들, 요코미조 세이시, 란포, 마쓰모토 세이초, 아카기 다카미쓰의 이야기들이 더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진지함과 사회상이 적절히 더 배합된 작품도 가끔은 나오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주로 가볍다.  


김훈의 글은 언제나 끈적끈적하다.  담배연기냄새도 많이 나고, 소주와 막걸리, 부침, 김치찌게, 라면, 된장찌게의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의 작은 소재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무엇인가 진지하고 깊은, 그러나 허무하기 일쑤인 이야기로 바뀐다.  난 다른 사람들처럼 '칼의 노래'에 아주 대단한 점수를 주고 있지는 않다만, 김훈에게는 그만의 특색있는 글이 뽑아져 나온다.  이 책이 나온지 거의 10년만에 만난셈인데 (2006년 1쇄) 지금이라도 만난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른 한 권은 다 읽었는데, 아직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 아니 꽤 자주 그럴때가 있다.  다 읽었고, 스토리도 파악했으나 이게 뭐지 하는 책.  좀더 기다려보자.  무엇인가 숙성되어 나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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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마지막 주, 이곳의 기준으로는 여름의 마지막이 지나가고 있다.  12월 말에서 1월로 넘어가면서 헤롱거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4분기로 들어서는 문턱까지 왔다.  새삼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가는구나 싶다.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 삶의 무게를 조금만 가볍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 이런 저런 고민을 한다.  나만 그렇게 살겠냐만, 언제나 삶의 기준도 문제도 모두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남이 사는 모습은 참고가 될 수는 있어도 기준이 되거나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업무때문에 최근 스트레스 지수가 확 올라가는 일을 겪었다.  내 잘못도 아니고, 고객의 잘못도 아닌, 순수하게 기관의 잘못으로 일이 좀 꼬였는데, 말이 그렇지 고객 입장에서는 일단 최종적인 결과가 나쁘게 나오게 되면 당연히 내 탓을 할 수 밖에 없다.  일이란게 그렇다.  이걸 어떻게 긍정적으로 풀어갈 수 있을지 매일 고민을 한다.  약간의 유동성을 발휘하고 발상을 전환할 경우 일단 최악의 경우는 피할 수 있는데, 신뢰회복이 관건이다.  자기 사무실 4년차 처음 겪는 일이다.  항상 고객의 이익을 앞세워 결정을 하는데, 앞으로는 문제가 생길 경우에 대비한 메뉴얼 대로의 진행으로만 가야만 할 수도 있겠다.  이번 경우도 그냥 내버려 두었을 경우 고객에게는 피해가 발생했을 수도 있지만, 내 책임은 전혀 없고, 일이 모 아니면 도의 경우로 풀렸을 것이기에 지금처럼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것이 옳은 방향일까?


바쁜 와중이지만, 평일 저녁 때 밥을 먹고 TV앞에 널부러지는 시간을 줄이고 책을 들고 서점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2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2-3일 정도를 그렇게 했더니 책읽기가 다시 수월해지는 것을 느낀다.  재미도 그렇고, 오랫만에 신선하게 하루를 마감하는 보람이 있다.  이번 주에도 다시 그렇게 해볼 생각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계열에 속하는 '무뢰파'작가인 다나카 히데미쓰의 작품 두 개를 모은 책이다.  작은 문고판처럼 생긴 구성과 기획이 참신한데, 꽤 오래전에 출판되어 상당수가 이미 절판된 상태이다.  사진속의 작가를 보면 참 잘생긴 얼굴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소설에서 다뤄진 이런 저런 인물들의 면면을 다 갖추고 있을 것이다.  36세로 다자이 오사무의 묘 앞세서 자살했다는데, 그 시절 문인들의 깊은 작품/장르와의 동화, 치열한 문학의 삶이 보인다.  자기가 쓰는 작품이나 깊이 들어간 장르와 자신과 자신의 삶의 동화를 막을 길이 없었을만큼 이미 깊은 일체를 이룬 것일까?  이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취한 배'에서의 무대가 일제강점기의 경성인지라 일본작가의 눈으로 본 식민지 조선과 식민지의 문인들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는 점도 이 작품이 주는 재미라고 하겠다.  다자이 오사무는 가끔 나에겐 너무 난해할 때가 있는데, 다나카 히데미쓰의 작품 - 친근하게 말하지만 이 시리즈를 통해 처음으로 접한 작가이다 - 은 무엇보다 쉽고 간결하게 읽힌다.  마치 세련되고 좀더 단순화된 다자이 오사무?  시대상을 보는데 큰 도움이 되는 작품이다.


예전에 읽은 기억이 있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일단 목록에 들어있지는 않기 때문에 아마 실제로 읽은 책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책이 절판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리 흥미를 갖는다고 해도, 내 손에 들어올지는 의문이다.  몇 권 각별하게 관심이 가는 책도 있는데, 이런 책을 얻을 방법은 없고, 한 권인가 두 권인가는 나도 갖고 있는 책인데, 그렇게 귀하게 취급될 수도 있다는건 처음으로 알았다.  


비싼 고서나 First Edition을 수집하는 것이 과연 책의 본질적인 목적인 읽힘에 대한 것일까에 대한 논란이 있다.  내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목적이 없이 순전히 수집을 위해 사들이는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지만, 그것도 책을 소비하는 하나의 형태로써, 나름대로 출판업계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가격이 너무 높게 오르는건 하지만 고운 시선으로는 볼 수가 없다. 


읽는 내내 저자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내가 즐겨찾는 서재의 주인장과 많이 닮은 듯한 스토리 때문인데, 과연 진실은 어디에? 


때때로 난 사람과 사람의 관계보다 동물과 사람의 관계에서 진정으로 깊은 영혼의 교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실재하는 관계이든, 사람이 느끼는 것을 믿는 것이든.  순전히 상대적인 것일수도 있고,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일단 소통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생물학적인 차이 때문에 생기는 몇 가지 어려움을 넘고, 한계를 인정하고 나면 그때에는 사람-동물의 교류의 깊이와 정은 사람-사람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거기에 나와 다르게 생긴 존재이고 다른 종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관계에 대한 흥미진진함은 정말이지 연애초기보다도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  


마크 롤랜즈는 우연한 기회에 늑대새끼를 입양하여 늑대로 키웠고, 늑대를 보내기까지 11년 동안의 삶을 함께 나누었다.  사람을 멀리하는 성향도 있었다고 하는데, 초기의 호쾌한 학교생활과 럭비선수생활을 보면 누구나 어떤 계기로 동물과 함께 하면서, 동물의 편의와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한 방편으로의 고립적인 삶을 택하다보면 기질과는 무관하게 이렇게 될 수도 있겠다.  사진을 많이 보고 싶었는데, 이 책은 동물을 키운 이야기를 빙자한 사진첩이 아니기 때문에 브레닌 the wolf의 사진은 저자가 목을 끌어안고 찍은 웃는 모습 하나뿐이다.  하지만, 이 하나의 사진에서 동물을 아는 사람이라면, 활짝 웃는 늑대의 얼굴에서 브레닌이 마크 롤랜즈와 함께 한 삶이 얼마나 그에게 큰 행복이었는지 알 수 있다.


동물을 키우면서 그를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떠올리고, 관계를 정립하면서 늑대라는 브레닌의 한계를 인정하고 '참아내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받아들임'을 통해 함께 11년을 보낸 저자의 경험은 쉽게 흉내낼 수 있는 삶이 아니기에 더욱 이 책에서 다뤄지는 성찰은 소중하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초기에 다룬 책인데 이제서야 내 손에 들어왔다.  한국에 살았더라면 많은 한계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책은 참 많이 사들여 읽었을 것이란 생각을 자주 하는데, 좋은 책과의 매우늦은 만남은 늘 그런 생각이 드는 계기가 된다.


이영도 = 한국형 판타지의 시조라고까지 볼 수 있다는게 내 의견이다.  비록 '드래곤 라자'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에도 이미 이곳에서 서구의 판타지를 접한 내 눈에는 '모사'보다는 '모조'에 가깝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PC통신의 어투를 벗어나지 못한 유치함도 많이 느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도의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드래곤 라자의 시대로부터 아주 많은 시간이 흐린 뒤의 이야기인데, 단권의 작품이 주는 공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또 그간의 세월이 작가를 더욱 좋은 글쟁이로 만들어주었음을 느끼게 한 세련된 묘사도 더욱 반갑게 책을 읽어나가게 했다.  판타지적인 요소 외에도 약간의 SF적인 요소를 보았다면 '그림자 지우기'를 사용한 댓가로 일어난 연쇄적인 사건의 재림과 재구성에서 약간은 Time Paradox적인 요소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장정이 맘에 드는데, '드래곤 라자'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멋지게 제본되어 다시 나온 것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늘 가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기어가고, 굴러가고, 잠깐 주저앉아서 망연자실 앉아 있다가 또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나서 걷고, 뛰고...인생은 과정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결말은 내가 죽어야 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소위 '성공한 인생'을 사는 top 1%, 아닌 top 10%가 생각하는 인생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걸어가는 그 자체가 사는 것이라면, 계속 걸어가는 한, 진퇴를 반복하더라도 실패한 삶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 여정이 희망고문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맘 뿐이다.  나머지는 어떤 선택이든 최선을 다하고 부지런하게 살면 된다.  그렇게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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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8-2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새책>, <수집의 즐거움> 등 쓰신 박균호 님은 얼마 전부터 알라딘에 잡식성 책장이란 닉으로 글을 좀 올리시다가 요즘은 조금 조용하신 것 같아요^^

transient-guest 2015-08-26 03:0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잘은 몰라도 글이나 사연이 조금 낯이 익더라구요.ㅎ

아무개 2015-08-2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년전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선물 받았던 적이 있어요.
다 읽고 나서
`뭐지? 이런 책을 선물로?`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철학자와 늑대>는 도서관에 있네요.
대출하러 가야겠어요. ^^

transient-guest 2015-08-26 03:09   좋아요 0 | URL
무뢰파 계열의 글을 많이 읽어본건 아니지만, 난해해요. ㅎㅎ

몬스터 2015-08-25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아..그간 좀 ( 쫌 ㅎㅎ ) 이 아니라 많이 읽으셨네요.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기 입장과 자리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인듯 합니다. 길게 맥락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많이 없는 듯 해요. ( 저도 물론 lol )
어떤 선택이든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 동의해요. 맞고 틀리고를 판단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많고.

transient-guest 2015-08-26 03:10   좋아요 0 | URL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일수도 있겠어요.ㅎ 쉽지는 않네요..ㅎㅎ 일단 개인의 인생은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지만, 이게 일이라면, 과정보다 결과에 무게를 둘 수 밖에 없으니까요..ㅎ 어려워요.

cyrus 2015-08-25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돼지님 말씀대로 guest님이 ‘잡식성책장’님의 글을 박균호 님의 글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박균호 님이 알라딘 서재 블로그에 책의 내용 일부를 인용해서 올린 적이 있었거든요. 두 사람 다 동일 인물입니다. ^^

transient-guest 2015-08-26 03:1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