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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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번에 놓친 몇 가지 모티브들이 보였다.  후기 그의 명작에서 즐겨 사용되거나 expand된 장치라고도 생각되는 몇 가지...(1) 목 매달아 죽은 여자, (2) LP, (3) 맥주, (4) 위스키, (5) 쥐, (6) 오다가다 만나다 마는 여자, (7) 쌍둥이 자매, (8) 지독한 더위와 무력증으로 상징되는 허무와 허탈함...

 

하루키가 문장에서 문장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면 같은 씬에서 바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면서 같은 씬을 이어가는 영화의 장면이 생각난다.  그리고 지극히 함축적이고 단절적으로 문장을 구성하면서 독자가 문장사이의 gap을 연결하게 만드는 것을 본다.  글을 잘 쓰는 작가는 친절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주변장치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씬을 이어가고, 필요한 정보를 주면서 장면을 구성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표현이 절묘하다고 느낀 문장 한 가지:

남의 집에서 잠이 깨면 언제나 다른 육체에 다른 영혼을 우격다짐으로 구겨 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하다가 개운치 못한 아침을 맞이한 사람의 심정을 이렇게 잘 묘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게다.

 

하루키는 고베 출신으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무대는 항구도시다.  이것도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무엇인가 그와 연결시켜 보려고 했다. 

 

요컨데, 짧고 간결한 책이나마 재독이고, 깊이 읽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금년의 독서도 또한 무난하게 200권을 넘을 것 같은데, 내년에서는 100권으로 줄여보아야겠다.  신간은 물론 빨리 읽을 생각이지만, 재독을 위주로 독서계획을 잡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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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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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에는 왕도가 없다.  목적 또한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얻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할 수도 있고, 성공이 key가 될 수도 있고, 그저 책읽기가 좋아서 하는 독서도 있을만큼 다양한데, 이 역시 사람에 따라, 그리고 그가 처한 상황이나 생각에 따라 정해질 것이니, 이 역시 특별히 한 가지 목적이 다일 수는 없다. 

 

하지만, 목적에 따른 방법, 그러니까 방편으로써의 독서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체계화된 몇 가지 이론들이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다독과 지식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저널리스트는 속독을 권한다.  그야말로 책을 우적우적 씹어먹는 것과도 같은 그의 독서는 적어도 그에게는 최상의 방편이 되었을 것이다.  성공학 강사들은 계파에 따라 속독을 권하기도 하고, 정독을 권하기도 하고, 공부를 권하기도 한다.  한 가지 주제를 테마로 삼고 이에 관련한 절박함을 몸으로 느끼면서 수 백권의 책을 읽었다는 독서 성공학 작가도 있다.  이들 역시 그 나름대로의 철학과 결과를 분석한 방편으로서의 까닭이 있다. 

 

아쿠타가와 상이라는 일본의 유수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데뷰한 화려한 이력의 저자는 소설가로 더욱 유명한 것 같다.  알라딘에서 찾아보면 상당한 reference가 나올 정도이고, 신간이 얼마 전에 나왔는지, 한창 광고중인 것을 본다.  그가 말하는 독서는 깊고 적게 읽자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독자는 행간을 짚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파고들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아가서 작가의 글을 토대로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함은 무엇이었나를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속독 콤플렉스, 그리니까 빨리, 그리고 많이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깊고 풍미있는 독서를 경험할 것을 권한다. 

 

성공학이나 방법론 같이 내용을 숙지하여 삶에 대입하는 목적의 독서라면 속독이나 분독이 그다지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소설이나 철학, 에세이, 또는 문학처럼 작가 내면의 깊은 세계를 토해서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글은 그저 빨리, 많이 읽는다고 능사가 아님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톨스토이 전집을 쭉 일독하는 것 자체는, 여기서 느끼는 것, 또는 작가나 등장인물의 테마와 공감하면서, 상상하면서, 깊이 빠져들지 못한다면 고전을 한번 다 읽었다는 정도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책을 읽고 자극을 받아서 하루키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다시 읽었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바는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전번에는 놓치고 지나간 문장을 하나 찾았고, 문장 하나 하나를 와인을 입속에 머금고 혀를 굴려 이리 저리 맛을 보는 것처럼 음미하려고 노력했다.  내친김에 10월을 하루키의 달로 정하고 그의 책을 시리즈로 묶어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겨울은 러시아 문학의 시간으로 이미 예약을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11월이 될지, 12월이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10월을 하루키로 잡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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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의 로마사 1 -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 몸젠의 로마사 1
테오도르 몸젠 지음, 김남우.김동훈.성중모 옮김 / 푸른역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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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이라는 역사학자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사 이야기에서의 인용을 통해서이다.  나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한국의 독자들 역시 비슷한 경로롤 몸젠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학계에서 상당히 큰 권위와 영향력을 인정받는 고전 역사학자인데, '로마사'는 독일 최초로 190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현 시대의 관점으로 보아도 사료로써는 손색이 없는 연구결과물 같다.

 

하지만, 읽는 입장에서, 그러니까, 공부가 아닌, 순수한 독서의 재미만을 생각한다면, 이 책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처럼 너무 사실정보위주로 편성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역사책을 좋아하는 나는 보통 어떤 역사책이라도 재미있게 읽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나는 너무도 충실한 사실정보의 나열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그런 나의 포인트가 이 책의 의미를 떨어뜨리지는 못한다.  그저 그냥 나의 감상평이 그렇다는 것이다.

 

로마를 이야기하면, 보통 공화정 시대의 로마, 그리고 카이사르의 삼두체제에 의한 공화정 붕괴에서 그의 사후 아우구스투스에 의한 제정시대의 시작에서, 다시 제정 로마의 쇠락과 멸망까지를 다루는 것이 보통이다.  일단은 공화정 이전의 로마는 상당한 고대로써, 비슷한 시기의 그리스인들이 철학을 논하고 페르시아와 서방세계의 운명을 건 전쟁을 벌이던 것에 비해, 역사적으로 그리 대단한 일을 남기지는 못한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흥미를 유발하는 주제가 별로 없다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은 소중한 이차사료가 되는 것 같다. 

 

공화정 이전의 로마에는 일종의 초기국가스러운 왕정이 있었고, 그 이전은 더욱 옛날의 이야기가 되는데, 이번 책에서 다루는 주요 소재가 바로 이 무렵이다.  부족간의 언어관계, 종교, 무역, 외국의 영향, 통합 또는 이 민족이 이탈리아 반도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매우 자세하게 다루고 있어, 로마사를 연구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당연히 좋은 참고자료로 보았을 것 같다. 

 

fact위주의 책은 사료가치는 있지만, 그리고 무엇인가 사실적인 정보를 찾는 경우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읽는 당시에는 그리 재미를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물론 이는 관심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될 수도 있는 문제지만, 역시 사건사실을 열거하는 것은 조금 지루하다.  이제 겨우 한 권이 나온 것이고,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따라 내가 가져오는 결과물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저, 첫 권에서 다뤄진 fact는 너무도 다양하고 자세한, 하지만 그다지 relevance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너무도 먼 이야기들이라서 생각보다 감동은 덜 했다는 것.

 

로마의 뿌리가 되는 시대의 이야기니만큼, 충분히 나중에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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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10-0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두 가지입니다. 와...대단하다....그런데 재미없다. 아직 1권이라 그렇겠지...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transient-guest 2013-10-01 12:2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다만 어렵고 지겨운 책이라도 고전명작이라고 인정을 받은 책이니만큼 어떻게든 끝낸것 같아요.ㅎ 앞으로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13-10-02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양반은 막스 베버와 교류했죠.그래서 그런지 손자인 볼프강 몸젠이 막스 베버 연구의 권위자입니다.베버도 초창기에 로마법과 로마농업사를 연구했죠.

transient-guest 2013-10-03 00:56   좋아요 0 | URL
몸젠이라는 이름으로 알라딘 검색을 해보니, 볼프강 몸젠이란 사람이 쓴 책도 있고 막스 베버와 제2저자로 나온 책도 있길래 궁금했었는데, 그런 관계였군요..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 (완전판) -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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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꽤 많이 읽고는 있지만 혐의자를 초기에 알아내는 것이나 사건의 윤곽을 잡아내는 경우는 내게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초기에 핵심을 잡아낼 수 있었다.  아니, 사건의 핵심을 바로 짚었다고 하면 거짓이다.  크리스티는 사건의 주요포인트가 되는 범행동기 혹은 이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에도 범인을 잡아내는 포와로의 추리과정을 흥미롭게 논리적으로 풀어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었던 몇 가지 단서를 기초로 떠올린 추리였기 때문에, 역시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사건을 완벽하게 추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간 읽어온 작가의 수법을 보아, 역시 범인은 근처에 잠복시켰을 것으로 추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산한 결과, 두 명으로 혐의자를 줄일 수 있었는데, 여기까지가 주어진 정보로는 최선이었던 것 같다.  역시 태풍의 눈 속은 고요했던 것 같다.  이제 여섯 번째 이야기로 나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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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종종 즐긴다.  주종을 가리지는 않는 편이지만, 소주는 확실히 화학적으로 만들어지는 술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원래의 소주는 일본의 사케처럼 그렇게, 완전 발효 혹은 희석식이라 해도 완전 화학적으로 만들어지는 술이 아니었지만, 그네꼬의 daddy시대에 그런 술이 된 것으로 안다.  아무튼...

 

Wine을 마시면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 같다.  젊으면 젊은대로, 숙성한 Wine은 숙성한 그 멋 그대로 그만큼 성숙한 여인처럼. 유행과 고급한 취미를 떠나서 Wine을 마시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부드러운 풍취가 있어, 친한 친구 여자와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마시는 여성적인 위로를 받는다. 

 

Wine만큼 부드럽고 사랑스럽지는 않지만, 맥주를 마시는 것은 친한 친구와의 한 잔과도 같다.  거칠고, 배가 꽉 차는 그 맛은 마치 함께 힘든 운동을 마친 동료들과의 한 잔과도 같다.  맥주도 양조방식에 따라 깊은 맛, 넓은 맛, 잔잔한 맛 등등 다양한 풍취가 있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거친 바이킹의 술 같은 그런 것이다.  실제로 커크 더들러스가 주연했던 Vikings라는 옛날 영화의 야수적인 축제를 보면 맥주의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소주는...뭐랄까, 술로써는 거의 빵점이다.  알코올을 희석하여 사카린 - 누구 아버지가 감옥에 갈 뻔했던 그 사카린 - 을 넣은 가짜 술이니만큼 풍류를 즐기기엔 부족하다.  하지만,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마친 후, 그렇게 한 잔 꺾는 맛은 소주를 따라올 수가 없다.  멘토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여자는 더더욱 아닌, 그저 정체불명의 한 잔이지만, 그 한 잔으로 하루의 쓰라림을 달랠 수 있다.

 

간만에 칠레산 카버네 소비뇽과 BV의 진판델을 한 잔 걸치고 든 잡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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