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신경을 쓰고 있는 일들 중 하나가 잘 해결되었다.  오늘 새벽에 바로 업데이트가 왔는데, 참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 남은 일들에 대한 좋은 전조로 해석하기로 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온갖 감정과 개인적인 감상을 배제하고 오로지 윤리와 법에 입각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이 지배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면, 각각의 고객이나 케이스에 대하여 완전히 emotion을 제거하는 것은 어렵다.  개인적인 변호사로서의 책임소재의 문제는 아니지만, 케이스가 잘 풀리는 것은 어떤 한 사람과 그의 가족의 삶에 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거나 골치아픈 일을 해결하는 의미 또는 그 이상 커다란 임팩트가 있기 때문에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더디게 진전이 되는 경우 나 또한 굉장한 정신적인 피곤함을 느끼곤 한다.  


최악의 경우 당연히 변호사는 결과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일을 추진하지도 않고, 계약하지도 않기 때문에 나의 경우 책임은 없다.  하지만,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최대한 대안을 마련하여 궁극적으로는 일을 해결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마무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단순히 고객을 위하는 마음 뿐 아니라,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결과적으로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 이상 큰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을 종종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더욱, 성격상 일이 안 풀려 좋지 못한 결과로 관계가 끝나면 아주 오랫동안 그 사실 자체가 나를 괴롭게 만들기 때문인데, 이래저래 좀 cool~하다면 cool하게, 아니면 아주 냉정한 계산으로 털어버리지 못하는 천품의 결함이 있다고도 말 할 수 있겠다.


on-going한 업무를 진행하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고, 여기에 사무실이 잘 굴러가기 시작한 이래 지난 2년동안 쌓인 관리업무의 양도 무시할 수 없기에 이렇게 늘 계획대로 스케줄이 전개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하루를 빼앗기곤 한다.  그렇게 밀린 업무는 고스란히 주말이 저녁 시간대로 옮겨지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주중에, 설사 매일 늦은 퇴근이라도, 일을 정리하여 주말에는 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말에 자꾸 해결하다 보니까, 주중에도 주말에도 쉬는 건지, 일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낼 때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일할 땐 일, 놀 땐 놀아야 한다.


그간 작은 성공에 살짝 교만해졌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방만하게 행정적인 부분을 처리한 것 같기도 하다.  이번의 어려움은 그런 나를 다시 초심으로 돌리려는 좋은 nudging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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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5-0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쿡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 법조 시스템은 정말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양산하는 거 같습니다. 전관 예우로 사람들을 연줄로 선별하여 법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사건에 법을 짜맞추어 입맞대로 양형을 하는게 정말 기도 안 찹니다. 학문적 체계만 그럴듯하지 법을 운용하고 법을 해석하는 게 너무 기득권 위주로 이루어지는 거 같아 되게 씁쓸합니다~

transient-guest 2016-05-02 00:23   좋아요 0 | URL
미국도 문제가 많지만, 한국만큼 말도 안되는 경우는 아니라고 봅니다. 전체적인 시스템의 운용도 그렇고, 법철학이나 사회적인 인식도 그래요. 저는 한국의 문제는 단지 법조계에 그치지 않고 시민의식 전반에 걸친 거라고 봅니다.
 

나는 '시'라는 장르에는 거의 문외한이다.  거의 읽은 '시'가 없고, 유명한 시인 몇 분의 이름은 알고 있는 정도가 내 독서에서 '시'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평전이야 재미있게 읽지만, '시' 그 자체는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그런 부분에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이런 저런 한국의 고전을 살펴보는데, 차분히 앉아서 음미할 여유를 갖지 못하다보니 역시 그저 그렇다.  백석이라는 한국의 근대 '시' 역사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거장의 평전을 읽으면서도 이는 쉽게 고쳐지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백석이라는 사람의 삶을 엿보는 정도에서 그쳤으니 모두 내가 부족한 탓이다.


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지금의 아이돌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 생겼다.  키도 훤칠했다고 하고, 셸든 쿠퍼나 하워드 휴즈를 연상시키는 결벽적인 깔끔함에 옷도 늘 수트만 입고 다녔다고 하니, 그는 정말 자기 시대 최고의 멋쟁이였던 것 같다.  그런 외모에,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영어영문의 학위, 그리고 '시'까지.  그런데, 정작 원하던 여인과는 맺어지지 못했고, 조석지간으로 깊은 정을 나누던 기생 '자야'와는 결국 영원한 생이별을 했어야 했으니 그 팔자도 참 기구하다.  물론 그가 집안의 강권에 의해 억지로 결혼했다가 버린 세 여인의 삶도 참으로 안타깝지만.  


이토록 천재적인 '시'와 문학에 조예가 깊었음에도 적극적인 '친일'을 하지 않았던 댓가로 꽤 오랜 시간 아무런 작품을 발표할 수 없었고, 해방 후에는 북에 남아 있다가 전쟁 후에도 북을 떠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을 정치화하고 정쟁화하는 공산주의 독재체제의 피해자가 되어 농촌으로 밀려나 평생 농사를 지으며 할았다고 하니, 사랑도 그렇고, 인생의 파란이 참으로 소설 같은 '시인'의 삶이라고 하겠다.  백석의 시를 제대로 읽고 음미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 보니, 자신의 작품세계에서의 한결같음이 맘에 다가온다. 평생 일본어로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고, 어려웠던 시절, 적극적인 친일로 보신한 대다수의 유력한 문인들과는 달리 만주를 떠돌며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점은 존경할 만하다.  좀더 백석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31세의 나이로 요절한 일본의 근대 소설가인 가지이 모토지로의 작품집이다.  마음에 전혀 다가오는 바가 없었는데, 사소설의 냄새도 나고, 다자이 오사무 계열의 퇴폐적인 느낌도 있으며, 다른 근대 일본의 소설가들의 글에서 보이는 일상생활에서의 모습도 보인다.  각 작품에 대한 특별한 감회가 없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었는데, '하'권은 좀 더 나을까?  일본의 근대문학을 찾는 노력만큼이나 같은 시대, 우리의 문학의 자취를 따라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


조금씩 burn-out에 다가가는 느낌이다.  어떻게 하든지, 일을 좀더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게 당분간의 화두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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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6-04-26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을 읽으면서 일본 작가들을 쭈욱 검색해 봤어요. 번역본이 안 나온 작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가지이 모토지로의 책이 몇 권 있길래 관심을 두고 있었거든요. 때마침 트게님 리뷰에서 이 책을 보니 너무너무 반가운데 하권을 기대해 봅니다. :-)

transient-guest 2016-04-27 00:54   좋아요 0 | URL
제대로 리뷰한 것도 아니어서 ...ㅎㅎ 저도 기억해보면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에서도 몇 권을 소개받았던 것 같습니다. 일본 근대문학에 관심이 많은데, 막상 읽어보면 대단한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네요.

몬스터 2016-04-26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어가면서 하세요.

사랑을 하는 행위는 세대 / 나라 불문 누구의 삶에나 하나 이상의 이야기는 만드는가 봐요

transient-guest 2016-04-27 00:55   좋아요 0 | URL
네. 쉬엄쉬엄 하고 있어요.ㅎ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백석의 삶에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시인다운 삶을 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본의 추리소설은 서양의 추리소설과는 또다른 맛이 있다.  그로테스크한 디테일이나 약간의 SF적인 요소가 가미된 요즘의 작품들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지만, 일본의 추리소설하면 역시 조금 지난 예전 작가들의 작품이 역시 깊은 맛을 낸다.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마쓰모토 세이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회파 작가인데, 16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썼으며, 사회적인 의식도 상당한 듯 하다.  일본의 731부대의 만행을 파헤친 소설로 당시 꽤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직접 합창단을 조직하여 공연을 한 적도 있다고 하니,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일본의 작가라고 생각된다.


이번에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증명 3부작'을 구해서 읽었다.  이들 중 한 권은 동서미스터리문고의 역본으로 읽었었는데, 일본판 중역을 잘 하는 출판사라서 그런지 번역은 꽤 매끄러웠던 것 같다.  굳이 한 권을 빼놓고 사는 건 좀 그래서 3부작을 모두 구했고, 번역이가 책 디자인 모두 맘에 들었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각각 '인간', '야성', '청춘'의 증명으로 구성된 이 3부작은 각각의 테제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허무하기도 하고, 권선징악의 요소도 보이며, 비극적인 결말도 사용되는데, 각 테제에 걸맞는 결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보니 그의 작품은 '고층의 사각지대'도 읽었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듯 '수사는 발로 뛰면서 하는 것'이라던 고참형사의 말도 생각이 나고, 전화번호와 통화기록을 일일이 사람이 대조하던 모습이 새삼 요즘과 다른 모습이라서 기억에 남는다.


시리즈의 첫 번째, '인간의 증명'에서 던지는 질문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정도로 해석된다.  


미군정 시절, 여인을 희롱하던 군인들을 말리다가 맞아 죽은 아버지, 그 아버지를 모른체하고 도망친 여자, 그 트라우마를 갖고 자란 아이는 형사가 되어있고.  우발적인 교통사고를 내고, 희생자의 시신을 유기한, 유명한 아동심리작가인 엄마와 정치인의 아들.  죽은 희생자를 찾는 남편과 내연남.  그리고 길거리에서 칼에 찔린 채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던 흑인남자.  미국에서 온 이 흑인남자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는 NYPD 형사.  


독자에게 모든 것을 제시하고 함께 사건을 따라가는 형식, 그러니까 전통적인 brain game으로 독자에게 도전하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흐름을 따라가면서 연결고리에 집중하는 재미가 있다.  모든 것은 여자의 과거를 찾는 것에서 해결되고, 그 아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좀더 곁가지로 제공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루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증명'이 무엇인지...'모정'도 '부성'도 모르겠고, 여기서 가장 인간다워 보이는 건 엄정하던 시절 군인들을 말리다가 죽은 '아버지'정도.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시원한 결말보다는 끝이 찝찝한 느낌이다.


어느날, 한 마을의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사건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몇 년 후, 보험 외판원과 함께 살고 있는 유일한 생존자인 소녀.  여기에는 주변의 마을을 손에 쥐고 있는 집안과 야쿠자의 유착관계, 또다른 살인사건 등 다양한 일들이 어우러져 있다.  결말은 의외의 반전이 있는데, 역시 사건상으로는 쉽게 유추할 수 없고, 독자에게 clue가 주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  '야성'에 대한 '증명'을 이들 사건으로 설명하는 건 조금 무리. 


다 읽고 나면 마치 청춘은 무지와 결벽, 그리고 무모할 만큼 순수한 열정이나 증오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 같다.  적당한 경험과 세월의 연륜이 쌓이지 않은 순백의 모든 것들로 여럿의 삶이 이상하게 꼬이고 뒤틀린 끝에 맺어지는 결말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  청춘의 순수함 그 이면의 열정, 어떤 형태나 방향으로든지, 꼭 긍정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같다.  



마중물을 부어가고 있으나 책읽기가 쉽지 않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출장도 다녀오고, 회사를 경영하면서, 일을 하고, 문제가 생긴 걸 급하게 처리하고, 그러면서 장기적인 계획에 따른 구상을 실행하는 것까지 모두 내가 처리하는 일이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지난 주 부터는 계속 골치아픈 일이 생겨서 맘이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열심히 수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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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서구의 종교를 예를 들지 않더라도 믿음의 영역에 있어 세상의 상당 부분은 이미 일신교의에 기반한 '신'이 갖고 있다.  유대-그리스도교의 전통이래 가톨릭과 수 많은 개신교파의 한 세력, 이슬람교파의 한 세력, 그리고 불교 (정확히는 다신교의 전통에서 왔고, 지역에 따른 토착화, 그리고 특정 존재의 신성에 큰 의미를 두기 보다는 수행과 정진을 통한 해탈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지만)로 크게 나뉘고, 남은 부분은 힌두교나 시크교를 비롯한, 이제는 거의 흔적만 남아있는 경우가 더 많은 토착종교가 차지하고 있는 정도.

  

그런데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면, 초기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로 채택된 시기를 전후로 해도 서구 다신교의 전통이 살아있었고, 로마제국이 멸망하고도 한참은 다양한 유럽부족들의 토착신앙에서도 다신교의를 볼 수 있었다.  일단 범위를 좁혀서, 올림푸스의 12주신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로마의 다신교를 보면, (북방유럽도 그런 면이 있지만) 거개가 자연현상을 대변하는 듯하고, 일신교의에서 보여주는 '신'보다는 훨씬 더 낮고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  즉 신은 정말로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조금 낭만적으로 바라보면 이런 다신교 시절의 '신'은 늘 우리 옆에서 사람과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늘어나고 문명이 일어남에 따라 함께 더욱 정교해지고 문명화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신은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신을 shape해간 것.  


어두운 밤거리를 배회하면서 여자들의 '적'이 된 '남자'를 사냥하는 여자가 있다.  키 185 cm, 매우 well built된 몸매의 이 여자가 지금 사용하는 alias는 Selene Disilva.  그 전에 사용했던 이름들도 모두 같은 의미로써, 같은 존재를 나타낸다.  그녀의 이름은 Artemis.  올림푸스 12주신들 중 하나로써, 일신교의 도래와 함께 시작된 다신교 신들의 디아스포라 이후 그렇게 인간들 틈에 섞여 살아왔던 것.  아주 rare하긴 하지만, 아직도 가끔 그녀를 찾는 - 정확히는 그녀의 보호가 지향하는 것을 원하는 - 존재들 덕분에 나날이 약해지는 신성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이미 현대문명이 밀어낸, 그래서 스러져가는 신들 - 크레타섬의 동굴에서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있는 제우스, 아프리카 어디에선가 온종일 화덕만 쳐다보고 있는 헤카베 등 - 처럼 언젠가는 인간의 기억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그들이 온 카오스로 돌아가야 한다.  


센트럴 파크에서 젊고 매력적인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녀는 일종의 종교적인 제의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사건은 신들의 황혼을 reverse하려는 비밀스러운 고대 제전을 준비하는 신비스러운 인물이 주도하고 있다.  


용의자들은 흩어진 신들 중 하나일 것인데, 디오니소스나 헤르메스 같은 현대 문명의 이기와 쾌락으로 그 '숭배'가 이어지고 있는 신들이나 rock star가 되어있는 아폴로 신, 지구 어딘선가 전쟁과 전투속에서 그 존재를 이어가고 있는 아레스 신, 혹은 또다른 존재가 원하는 건 신들의 부활인 것으로 추정된다.  


스토리는 비교적 평범한 판타지와 추리의 결합이지만, concept이 신선했다고 생각된다.  신-자연현상이라는 흔한 관계보다는 좀더 철학적으로 발전한 신-사람-신의 never-ending순환고리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흥미가 있었다.  신은 사람을 만들었고, 사람은 신을 shape해나가는 것, 신의 기억도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일부에 의해 영향을 받고 기억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것에서 좀더 인본주의에 기반한 - 일신교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 이론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예전부터 흥미로운 토론의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가 civilize되어가면서, 신들의 모습도 맨발로 야생을 뛰어다니면서 날고기를 먹던 야성 가득한 그것에서 아고라의 학자들이나 스파르타의 전사의 모습으로 변해갔다는 것을 stretch하면 구약성서 속에서 계속 발전하고 넓어지는 신 '야훼'의 모습이 실상은 그만큼 사막을 떠돌던 목양민족으로서의 유대인에서 정착하고 정주한 농경민족으로서의 유대인으로의 발전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예전 해방신학이 유행하던 시절 더 많이 회자되던 논리 같다).  


삼부작으로 나온 것 같은데, 첫 이야기의 결말은 그럭저럭 매듭지어졌지만, 원래 이렇게 고독한 수호자의 이야기나 mentalist또는 holmes처럼 조금은 만능의 히어로를 좋아하기 때문에 벌써부커 기다려진다.  Jim Butcher가 만든 Harry Dresden도 참 좋아하는데 이 시카고의 기인 마법사의 이야기는 언제 또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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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책읽기가 시들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쨌든 마구잡이로 만화책이든, 소설이든 닥치는 대로 읽어서 다시 책읽기의 재미를 느끼고 거기서부터 고전문학이나 논픽션 같은 책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의 방법이 다른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책읽기에서 한 동안 멀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 어떻게 하든지 다시 재미를 느끼고 읽어가려고 발버둥을 치게 된다.  한 3-4년, 새로 사들인 책도 별로 없이, 책장에 멋지게 꽂아놓고 지나갔던 때가 있는데, 꽤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에 지금 돌아봐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되는 것은 피하고 싶다.  마침 알라딘에 주문한 책들이 한 시기에 들어왔고, 추리소설, 무협지, 고전문학, 논픽션 등 다양한 녀석들을 받게 되어 일단 읽고 싶은 책들부터 달려들기로 했다.














[선례후병]이라고 했으니, 일단 칭찬부터 하자.  금사벽혈검은 내가 유일하게 갖지 못했던 김용의 작품이다.  처음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 1993년이니까, 중간에 구했을 법도 한데, 어쩌다 보니 나온 것도 모르고 지나갔던 것.  최근에 사조삼부곡과 녹정기, 천룡팔부와 비곡소오강호를 새로 구하면서 이 책도 함께 사들여 읽은 것으로 난 김용이 쓴 모든 작품들을 읽었고, 갖고 있게 되었다.  녹정기-비호외전-설산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전편에 해당하는 이 작품의 배경은 명나라가 망하기 직전의 중국인데, 주인공은 당시 반간계로 억울하게 죽은 명나라 마지막 명장 원숭환의 아들이다.  워낙 뒷날 언급되는 철검문의 구난, 오독교의 하척수, 화산파의 귀신수 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주요인물로 등장했기 때문에 그간의 많은 궁금증이 풀렸는데, missing link를 찾은, 딱 그런 기분이다.  여기까지는 좋은 이야기.


나쁜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일단 번역.  이건 중국어를 모르는 내가 봐도 발번역이 분명한데,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부분에서 한국어로 말이 되지 않는 표현, 그러니까 초중국어를 하는 초보가 문장을 직역해 놓은 듯한 번역이 많았다.  무협지를 많이 읽었고, 스토리와 문파의 배경을 잘 아는 나였기에 스토리를 파악하면서 읽을 수 있었진, 초심자가 이 책을 봤으면 다시는 무협지를 찾지 않았을 정도로 무성의한 번역, 감수 및 편집과 교정이 아니었나 싶다.  1993년에 처음 나왔고, 최근에 다시 나왔는데, 거의 있는 그대로 재출간한 것 같다.  번역의 문제도 있지만, 개발로 편집하고 교정한 티가 너무 많이 난다.  누구냐 넌?


여기에 너무도 자주 등장인물이나 주요배경의 명칭이 이상하게 나왔기 때문에 역시 기존의 무협진와 배경지식이 아니었더라면 다 읽지 않았을 것 같은 부분이 많다.  점창파를 정창파로, 황옥도인과 황목도인이 왔다갔다 하는 건 애교. 


중원문화사는 그간 영웅문으로 대표되던 김용의 다양한 작품들을 번역해 들여온 공로가 있다. 불법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난 영웅문 말고도 천룡팔부 (대륙의 별), 녹정기, 비곡소오강호 (아! 만리성), 협객행, 연성결, 설산비호, 비호외전 등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맘을 갖고 있다.  그리고 사실 번역도 이제까지의 경우 금사벽혈검처럼 이상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유독 이번의 작품은 문제가 많은 것이 좀 이상하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십팔사략도 구할 계획인데, 좀더 나은 번역이었으면 한다.  


이 책은 김용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작가가 다시 고쳐서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다.  김용 하면 역사소설 수준의 무협지를 쓴 작가라고 알지만, 이 책의 완성도는 처녀작인 서검은구록 (소설 청향비)보다도 못한 것 같다.  명나라 숭정황제-틈왕 이자성-오삼계-금나라의 역학관계에서 명나라가 망한 건 이자성에 의해서인데, 이자성은 정권을 잡자마자 바로 민심을 잃고, 특히 산해관을 지키던 총병 오삼계의 애첩을 빼앗은 탓에 금나라와 오삼계의 연합으로 바로 왕권을 잃고 말았으니, 대업을 이루는 것은 어렵지는 이것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한가지 특이한 건 역시 협사의 역할인데, 원승지는 그토록 고강한 무공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고, 사태판단도 너무 순진하다고 할 만큼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점들은 나중에 나온 작품들에서 많이 고쳐진 것으로 생각된다.  예전 홍콩영화 클래식에서 나온 금사벽혈검 영화에서의 유치한 액션이 자꾸 떠올라서 몰입도가 떨어지는 탓에 살짝 고생을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많은 무협지, 하고도 한국의 무협소설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구도와 기승전결을 보이는 반면에 좌백의 소설들은 굉장히 특이한 이야기와 주인공, 배경과 반전을 보여준다.  '대도오'난 '생사박'에서의 주인공들도 그랬고, 간혹 보는 단편에서도 그렇다.  덕분에 오히려 이 책은 금사벽혈검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거부가 아들이 돈도 지키고 잘 살 수 있게 고수로 만들었지만, 정작 돈을 벌고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죽은 탓에 가난해진 이야기나, 순전히 우연으로 세상을 떠돌다가 흑도 고수의 제자가 된 정생의 이야기도 그렇고, 허무와 반전, 그리고 거창함을 쏙 빼버린 강호와 기인협사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이게 좌백식 이야기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진산이 보여주는 영상미에 가까운 묘사나 구성은 볼 수 없고, 매일 보는 우리 세상의 삶과 아귀다툼이 좌백이 보여주는 강호의 모습이다.  '대도오'는 언제든 나오면 다시 구할 생각인데, 다른 작품들도 일단 나오는 건 다 봐야한다.


이들 외에도 두 권을 더 읽었는데, 일단 따로 정리하기로 한다.  비곡소오강호를 다시 읽을까 고민하고 있으나 너무 바쁜 스케줄과 다음 주에 잡힌 출장을 make-up하려고 주말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어 잘 모르겠다.  그래도 열심히 이렇게 물을 붓다보면 파이프에서 콸콸 신선한 지하수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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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6-04-17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들도 있구나 했습니다. lol 저도 조금씩이라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 뭔가 팍 터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나름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이 바쁘시다니 좋습니다 (만) 글 좀 자주 써 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리거든요. ㅎㅎ

transient-guest 2016-04-18 11:45   좋아요 0 | URL
무협지는 안 보셨나봐요. 흥미위주가 대부분이지만 작품성과 가독성이 높은 것들도 꽤 있습니다.ㅎㅎ 늘 up and down이에요. 책이 많아지면서 더 그런 듯 합니다. 원래 한 권씩 구해서 귀하게 읽어야 하는건데...ㅎㅎ 기다려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저 한 권이라도 더 소개하는 정도면 바랄 것이 없네요..

오드득 2016-04-1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책 읽기가 시들한 시점인데 닥치는 대로 읽어서 넘기려고 하고 있어요. 저랑 비슷한 방식이라 놀랐습니다^^
저는 소오강호를 가장 좋아합니다. 호금전의 영화 때문에 읽게되었는데 정말 좋더군요. 그것이 김용과의 첫만남이었습니다. 벽혈검도 장철의 영화로만 봤는데 언제 한 번 만나봐야겠네요^^

transient-guest 2016-04-18 11:4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ㅎㅎ 세상이 넓고 사람도 많은데, 또 이렇게 비슷한 경우도 보네요. 읽을수록 소오강호의 매력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소오강호의 영호충은 참 멋진 협객이라서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호금전 감독은 `협녀`로 접했구 영상미와 디테일이 좋은 감독이라고 봤습니다. 김용의 작품은 우수한 것들이 꽤 있습니다. 드디어 전작했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