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게으름을 부렸다.  일을 많이 했지만, 계획에 맞춰 기계적으로 진행하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역시 난 대기업 체질은 아닌 것이다.  오늘 새벽, DC시간으로 2:30 정도에 text가 왔었다.  위스키 한 잔이 아쉽다는 친구의 푸념이다.  그녀석은 또 새벽 1-2시에 퇴근했던 것이다.  겨우 10월초인데 이미 billing hour requirement를 거의 채워가고 있다고 한다.  아마 이번에도 초과 billing일 것이다.  


친구가 다녀가면서 한 2주간 거의 매일 술을 마셨더니 배가 많이 나와버렸다.  근육대비 지방의 비율은 꽤 좋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역시 전체적인 bulk를 줄여야 건강한 40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운동시간도 늘리고, 뛰고 걷기도 더 늘리고 먹는 것을 조절해야 하는데, 이놈의 술이 문제다.  당분간 일주일에 한번 정도만 마시기로 했는데, 금단현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lunch에 마시는 건 예외.


일찍 퇴근하면서 운동이나 하고 들어갈 생각이다.  주말에는 책도 좀 읽고 싶은데, 무엇 때문에 이리 치이는지 머리도 맘도 꽉 차버리는 느낌.  늦가을의 DC를 즐기려면 이번 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는 친구네 놀러가야 하는데, 자영업자의 특성상 미리 계획을 잡는 것이 좀처럼 용이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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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10-1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ransient-guest님은 이리 살고 계시는구나.


transient-guest 2015-10-13 02:48   좋아요 0 | URL
매일 같은 일상에서 조금씩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ㅎㅎ 집무실은 거의 서재와 놀이방을 겸한 공간이에요. 아무래도 인생의 1/3이상을 보내는 곳이니까, 더욱 넓은 곳으로 옮기면 더욱 넓은 놀이공간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직업의 특성상 글을 쓸 일이 많다.  하지만, 내가 주로 쓰는 글은 멋지고 창의적인 글이 아닌 정형화된 문서일 뿐이다.  물론 케이스에 따라 변호사의 창의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이때에는 다행히 그간의 독서와 연습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오후의 일정이 급한 다른 일로 인해 조금 바뀌었는데, 그 덕분에 예정하여 두었던 글쓰기를 하기 어렵게 되었다.  내일 오전이나 오늘 밤에 조금 손을 볼 생각이다.  


절제란 것이 참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점심식사를 하면서 맥주를 딱 한 잔 정도만 곁들이면 모든 면에서 완벽하기 그지 없이 좋을 것을, 그저 한 잔 더하고 싶어서 두 잔을 마시면 한 잔에서 얻어지는 소화, 기분 좋은 나른함, 살짝의 졸음, 휴식을 통한 오후의 업무력 강화까지 그 좋은 것들이 모두 포만감으로 바뀌고 만다.  그래도 세 잔을 마시는 것보다는 훨씬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역시 밥에 곁을이는 술은 딱 한 잔이 원칙이다.  


나에게는 지금 딱 한 잔의 맥주가 남아 있고, 해야할 일은 태산 같으니, 12척으로 200척을 막아야 했던 충무공의 심정을 아주 매우 쬐끔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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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도 친구가 가자마자 업무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자주 겪는 일이고,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었기 때문에 당황할 이유도, 필요도 없지만, 어쨌든 이번 주는 초반부터 열심히 달리고 있다.  살짝 짜증을 유발하는 일부 업무와 고객 때문에 혼자서 입에 욕을 달고 있을 때도 있지만, 그건 특정한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니고, 다행히 듣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저 내 인격이 살짝 깎이는 경험으로 비용을 치루고 만다.   단 어느 정도의 예상에 따라 예정된 스케줄을 잡았던 것보다 좀더 급하게 처리될 일이 밀려들어오는 바람에 조금씩 더 일하고, 조금씩 더 밀린 일정을 견디는 것이 생각보다 피로도가 높다.  일례로, 어제 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보통은 무리가 없었을 5시 기상 후 새벽운동이 전혀 가능하지 않았던 것.  중간에 잠깐 일어나긴 했지만, 밤에 하필이면 꿈도 많아서 숙면을 취하지 못했고, 덕분에 8시까지 늘어져 자버렸다.   지각출근 후 열심히 일하다 보니 벌써 오후 4시.  더 짜내도 나올 것이 없는 남은 시간이라서 밀린 책정리나 하기로 했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일년 52주를 휴가 없이 열심히 일했다고 할 때의 billing hour는 2080시간이 된다.  그런데, 대형로펌의 경우 연간 변호사 일인당 부과된 required billing hour는 평균 2400에서 2500시간이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규모가 작을수록 billing hour는 내려가서 연평균 1500에서 2000시간 사이 정도로 보는데 이 정도면 꽤 상식적이다.  billing hour라고 하면, 고객에서 청구할 수 없는 내부회의, 점심시간, 기초정리 및 리서치 등은 제외하고 계산하게 되어있고, 직급이 낮을수록 고객의 항의에 맞춰 시간을 깎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초기 3-5년은 대형로펌에서 살아남는 것이 매우 힘들다.  공부를 잘해서 바로 대형로펌에 채용됐던 내 친구들 대부분이 첫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나왔는데, 실제로 top 10 로펌의 경우 입사한 신입 변호사들의 90%이상이 첫  해를 넘기지 못하고 퇴사한다.  


딱 한 명이 남아서 거의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 녀석은 늘 우울하고 피곤해한다.  일 자체는 자기가 너무 좋아하는 분야라서, 그리고 그 분야가 대형회사들이 관련된 법이라서 작은 사무실로 옮기거나 자기회사를 차릴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언젠가는 나올꺼야' 하면서 버틴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대단한 이 친구가 작년에 billing hour만 2800시간을 채웠고 한달에 반 이상을 출장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고, 아마도 지금 상태에서는 갈 수도 없는 곳이지만, 별로 궁금하지 않은 삶이다.   안정적이고 높은 pay와 대형로펌에 소속된 상대적인 자부심을 빼면 그나 나나 결국 고객을 위해서 일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난 내가 원하는 시간에 퇴근하고 운동할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상대적으로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본다.  


포와로도 미스 마플도 등장하지 않는 이 간막극은 그 나름대로 훌륭하다.  중간의 플롯설정에 중요한 clue가 들어있는데,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완벽하고 빈틈이 없는 사람은 그만큼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 힘을 주체할 수 없이 한순간에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점을 새삼 상기시켜주는 설정이었다.  죽은 바보가 불쌍한건지, 죽인 사람이 불쌍한건지 아직도 확실하게 맘을 정할 수가 없다.


'아스나로'는 우리식으로 옮기면 '될성싶은 떡잎'정도가 되려나?  아스나로가 대성하지 못하면 그저 아스나로로, 아니면 그만도 못한 소시민으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 그리고 패전까지 아유따라는 주인공의 눈으로 바라본 일본의 평범한 풍경을 엿보았다.  기분이 나쁘게도 전쟁의 잔인함이나 식민지조선의 비참함은 주제가 아닌데, 이건 이들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아예 그런 방향으로 생각을 하지 않았을 터.  그런 불쾌함을 그나마 달래준 부분은 다음이다.


"종전 발표가 방송되던 날 아유따는 종전 바로 그날의 거리 모습을 기사로 작성했다...기사의 내용은 아유따 자신조차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그것은 아유따가 지난 몇 년간 그럴 듯하게 써온 기사들과는 달리 어떠한 의도도 주장도 갖지 않는 가장 기사다운 기사였다...필승의 신념이란 말도, 조국을 지키는 황군이란 말도 필요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유따가 신문기자가 되어 쓴 최소의 기사다운 기사라고 해야 할 지도 몰랐다."


일본이란 나라의 근대화는 군국화에 다름 아니었다고 볼 때, 패전 이후의 일본이야말로 민주적인 자각을 갖게 되는 국가의 형성이 시작된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항목이다.  이리 저리 쏠리다가 전쟁이라는 인식이 없이 전쟁에 차출되어 죽어나가고, 한쪽에서는 그 전쟁을 찬양하고, 일왕의 자식이 되어 군민일체로 죽고 죽이던 일본의 모습이 수 많은 아스나로들에서 보인다.  거기에 비록 식민지조선의 비참함, 그 상태에 대한 죄의식은 볼 수 없겠지만, 그나마 이 정도라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스토리 자체도 꽤 재미있게 쓰여 있어서 매우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생각해보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국의 공장장 김성모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없지 않다.  다작이고 과작이고 매우 빠른 작품생산을 자랑하는 이 두 사람.  김성모는 자타가 공인하는 공장장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아직 그 작업형태가 밝혀진 바는 없다.  이른바 ghost writer나 대리필진이라는게 예전부터 공공연히 있어왔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는 대략의 구성과 인물구도를 잡아 놓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작업한다 해도 놀랄 것 같지는 않다.  이미 한국의 많은 베스트셀러 작가들, 특히 non-fiction이나 art계열의 writer들이 이렇게 책을 팔아먹은지 오래다.  


책에서 보여진 모티브는 TV 드라마나 영화, 또는 서구의 근대소설에서 많이 다룬 바 있어 하나도 새롭거나 신선한 점은 없었다.  다만 그 반전에 더해진 또 하나의 반전만이 특이했을 뿐이다.  쉽게 머리를 식히면서 읽을 정도의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중에서 특이한 작품도 많고 보다 더 치밀하게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것들도 많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 싶다.


토니 세바의 '에너지 혁명 2030'은 다른 책들과 함께 모아 쓰는게 낫겠다 싶어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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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5-10-09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티 전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 몇권 정도 제목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ㅎㅎ 이북으로도 있어서 몇권 사두려구요.

transient-guest 2015-10-09 08:33   좋아요 0 | URL
2013년부터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제목은 잘 생각나지 않는 것들이 더 많구요. 지금은 ABC 살인사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 떠오릅니다. 베레스퍼드 부부가 처음 나온 비밀결사도 좋았구요. 다 생각나지는 않아요.ㅎ

Forgettable. 2015-10-0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한 10권 정도는 읽었는데 애크로이드는 정말 재밌었어요! 비밀결사는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평을 보면 대부분 중간 이상은 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그나마 나은 것들이 있나 해서 여쭤봤습니당 ^^

transient-guest 2015-10-10 06:44   좋아요 0 | URL
지금 62권째 읽고 있는데, 워낙 오래되어서도 그렇고, 자꾸 잊어버리네요. 미스 마플이 나오는 것도 좋았고, 지금 생각하니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인가 하는 작품도 좋았네요.ㅎ
 

이번 주에 다시 책주문을 시작했다.  그간 너무 많은 책을 주문하여 사무실에 쌓아놓은 덕분에 약간의 자성을 하게 되었고, 9월 중순에 와서 이번 주에 귀국한 친구 덕분에 책보다는 술에 집중하다 보니 9월 한달간은 책주문을 자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술쟁이가 술을 끊는게 쉽고, 애연가가 담배꽁초를 분질러버리는 것이 훨씬 쉬운법.  좀더 쉽고 거친 표현으로는 "개가 똥을 끊지"가 된다...


이번 주에 갑자가 몇 권의 책을 보고서는, 해외구매에 적용되는 배송료면제와 세금에 해당하는 $20을 받기 위한 200불 단위의 주문을 하다보니 두 건으로 나눠서 또다시 책을 사들였다.  알라딘 공지에 의하면 4주배송, 정확하게는 6주 혹은 anything goes배송이니까, 11월 이맘 때에 열심히 배송조회를 하고 있게 될 것이다.  


책을 둘 곳이 없어서 이리저리 분산해놓았는데, 이걸 다 모아서 하나의 서재로 꾸미는 날을 꿈꾸고 있다.  작지만 땅이 넓은 집을 사면, 마당 안에 중고 airstream rv라도 하나 사다놓고 서재로 쓰면 좋겠다.  책은 집과 rv에 나눠서 보관하고, rv를 home office겸 서재로 쓰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어제 했다.


하와이로의 이주계획은 당분간 보류.  집값대비 산업규모가 너무 보잘것 없고, 시험도 다시 봐야하고, 마켓접근성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미국과 한국의 딱 중간거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니까 세부적인 내용을 조사하다보니 좀더 은퇴에 가까워지는 시점이 아니면 힘들겠다는 결론을 했다.


누군가 왔다가 가면 다 좋은데, 일상으로의 복귀에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그전부터 미뤄오던 일을 좀 손봐야 하는데, 자꾸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이번 주까지만의 게으름이라고 다짐해 보는데, 이게 또 말처럼 쉬우면 좋겠다만...


흥미있는 책을 읽을때마다 책에서 나온 내용을 생활에 반영하고 싶어지는데, 지금 읽고 있는 미래학자의 글을 보니 집을 사면 젤 먼저 집을 환경역학에 맞춰 고치고 태양열판을 달아야할 것 같다.  그 다음 단계는 tesla S...물론 이 차의 값은 베터리값의 하락과 함께 계속 떨어질테니 기다릴수록 유리하긴 하다.   오랜 소망인데, 가솔린 의존도를 0%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태양열판을 달고 전기로 모든 것을 바꾸고, 차도 전기차로 바꾸면 아주 좋겠다.  요리는 가스그릴이 좋은데, 이건 천상 마당에 설치할 BBQ 그릴을 좀 큰 것으로 구해서 가스버너가 들어간 제품을 사면 어느 정도 해결될 듯.  


일하기 싫어서 이렇게 잡념모드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알라딘 서재가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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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10-0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부모님도 제가 다녀가서 다!! 좋았다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먹고 마시고 , 다 귀찮네 하면서 지냈던 2주간의 휴가가 이제 끝나가네요. 마음이 복잡합니다. ㅎㅎ

transient-guest 2015-10-05 03:08   좋아요 0 | URL
아무렴요. 2주간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기를...이제 다시 시작입니다..ㅎ

2015-10-03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5 0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10-03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가 있어서 저도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먼 데 있는 분들의 생활및 독서와 일상도 엿볼 수있으니 말예요.

transient-guest 2015-10-05 03:09   좋아요 0 | URL
저도 독서지평도 넓어지고 배우는 것이 많아요. 또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다시 책을 잡게 만드는 역할도 합니다.ㅎ
 

한나 아렌트의 책을 직접 읽어 보지는 못했다.  그전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인가 하는 책을 보관함에 담아 놓기는 했는데, 그 뒤로는 직접적인 관심보다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때로는 악행의 의지가 없이도, 악이 행해진다는 법칙으로 한 동안 자주 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단순해 보이는 법칙이 의외로 역사속의 많은 사건, 그리고 인물들의 행위나 변명을 설명해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겉도는 이야기 말고, 따라서 한나 아렌트를 구해서 읽어봐야 할 것이다.


하인츠 구데리안은 독일의 군인으로서, 현대의 전차전을 사실상 정립하고 전술을 만들어낸 명장으로 알려져 있다.  밀덕들이 롬멜과 함께 자주 거론하는 전차전의 아버지 같은 사람인데, 군인집안에서 태어났고, 2차대전에서는 히틀러 휘하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  특히 그때까지 전차를 보병의 보조유닛정도로 보던 시각을 완전히 뒤엎고 전차를 주력으로 하여 보병과 포병부대를 지원배치하고 함께 움직이는 기동전술로 2차대전 초기에 특히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인간으로서의 구데리안도 일견 특별히 흠잡을 만한 것들이 없어 보이기는 한다.  언제나 군인으로써 국제법에 준수하여 전쟁을 수행하려고 했고, 전쟁중에 일어난 포로학살이나 민간인학살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1) 우발적이거나 (2) 상세한 안내가 전달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방의 격렬한 저항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났거나 (3) 자질이 모자란 나치극렬분자의 문제 또는 (4) 게릴라전에 대한 결과물로써, 애초에 희생자들이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회고하고 있는 점을 보면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  


더구나 이 책을 쓴 것은 그가 전범재판에서 책임을 면한 후, 그 증언과의 일관성을 배제할 수 없었을 상황에서 쓰여졌을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난 그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다.   


여기에 유태인 학살에 대한 그의 기억이나 입장이 사실상 거의 표명된 것이 없고, 나치당의 집권에 따른 민주주의의 후퇴나 자유민권의 압살, 전쟁으로 나아간 독일의 운명에 대한 성찰도 거의 보이지 않는 이 회고록에서는 그저 군인으로써, 군인의 눈으로 본 2차대전의 이야기와 간간히 나오는 전쟁 중의 대량학살과 고문에 대한 유감 외에는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한 군인이 전차를 이용한 전략전술, 여기에 관련된 성공과 실패의 복기가 내용의 전부가 된다.  


누구나 자기가 살았던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로 변명을 하기에는 좀 구린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구데리안은 물론 자기의 기준 안에서 최대한 국제법을 준수하고 합리적인 전쟁과 후속처리를 위해 노력했겠지만, 극단적으로 미국과의 빅딜을 통해 처벌을 피하고 전후에는 사업가로 변신하여 부귀영화를 누렸던 731부대의 수뇌부와 구데리안과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대를 바꾼 그의 천재성을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이 책을 보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일종의 '악의 평범성'을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앞과 뒤를 모두 잘라내고 보면, 아메리칸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은 전쟁영웅이고, 국가가 자신을 필요로 하던 시기에 열과 성의를 다해서 군인으로써의 의무를 다한 용사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 사람의 관점은 그 왜곡이 매우 심각한데, 특히 철저한 이분법적 사고에 기인한 선악논리는 전투상황에서 자신의 임무수행을 위해 필요했을 정신무장의 단순함을 뛰어넘는 오만하고 무지한 미국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하여 매우 불편하고, 또 매우 안타깝기 그지없다.  


부시의 임기 동안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전쟁터로 나갔으며, 중산층은 무너져버렸다.  그 시기를 살아낸 내가 볼 때 미국이 벌인 수 많은 전쟁들 중에서도 2차 이라크 침공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정당화가 불가능한 범죄인데, 이 범죄와 애국을 버무린 거짓말에 속아 삶과 목숨을 바친 이들의 선의는 이해하지만, 그 정신에 박힌 신념의 근거는 빈약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되지 못한다.  


크리스 카일의 묘사에 따르면 아랍인은 미군의 진주를 지지하는 평화로운 사람들과 이들을 괴롭히는 악한 무슬림으로 나뉘는데, 미국의 적인 그들을 카일은 야만인이라고 부른다.  이런 극단적인 타자화, 그리고 이에 따른 구분에 따라 그는 그가 죽인 생명에 대한 회한이나 존중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데, 이 또한 심한 불쾌감을 참을 수가 없다.  책을 보고 나서 생각하니 영화가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난 이 영화를 보지는 않을 것 같다.  이스트우드도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찰튼 헤스턴처럼 변해가고 있는 듯.  보수에서 또라이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알 권리가 있고, 알아야 할 의무가 우리는 있다.  이런 면에서 무지는 죄라는 성서말씀이 틀린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외국의 사례에서 보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일종의 법칙이 한국 근대사에도 적용이 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근대사, 특히 해방 이후 사회-정치-경제-법조-언론분야에서의 행태를 보면 확답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 (최소한 50-90년대까지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이후 김영상-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무법정치의 시기를 구분하는 것은 이런 연유로 의미가 있다.  즉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시기에는 대다수 국민의 '악의 평범성'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는데, 일단 대다수 국민에게는 결정권도, 올바른 인식을 갖추는데 필요한 정보도, 의식도, 삶도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승만-박정희 시기와 전두환-노태우 시기의 구분도 가능한데, 아무래도 좀더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의 인식도 삶의 모습도 좋아지면서,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이에 따른 민주화의 열망이나 올바른 사회의식이 자리잡여 갔다는 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정권이 겉으로나마 존재하는 지금 한국이란 나라의 '악의 평범성'은 그 정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죄, 소련과 미국이 진주하여 들어온 죄, 특히 미군정이 주도한 국가개편과정에서의 무분별한 친일파기용과 이를 업은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는 죄로 시작된 잘못 끼워진 국가재건의 단추가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은, 비록 그 시작의 책임은 타자에게 물을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만들어진 일부의 기득권화 과정, 또 이에 대한 대다수의 지향을 보면서, 한홍구 교수가 이야기하는 '책임'은 우리 모두의 것임을 느낀다.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들에 편승하는 세력을 어떻게 주도하고 가이드하느냐에 따라 국민 대다수의 정서가 발전/성장할 수도 있고, 퇴행할 수도 있다.  책임의식이 없는 자세가 국가전반으로 확대되어 국민 대다수가 자기만 잘살면 된다는 attitude를 형성하던 군부독재시기로 다시 돌아온 지금을 보면, 한홍구 교수 같은 이의 외침이 얼마나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당장 급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매사에 있어 우선순위가 된 지금이다.  보편적으로 잘 살거나 아주 못살게 되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나 바꿈에 대한 소망이 생기는데, 지금의 현상은 딱 그 가운데에 국민 대다수를 두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주의가 진화한 것처럼 군부독재도 철저한 study에 기초하여 진화한 셈이다.  마치 고용주가 어떻게든 고용인을 쥐어짜되, 딱 버틸만큼의 wage만 주는 것처럼.  


그저 읽고 생각하고 나누는 수밖에 없는데, 그런 행위조차도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생각하는 방법이, 사고관이 다른 지금의 20-30대의 사회의식은 어떤 형태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것이 다라는 사고를 갖다보면 어느새 늘어난 나이와 함께 꼰대가 될 수 있음이다.  열린 마음으로, 그리고 언제나 겸손하게 세상을 바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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