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12월은 연말연시의 특수에 따라 또는 연휴계획에 따라 바쁘기도 하지만, 사실 업무에 있어서는 특별한 것이 없는 절기가 아닌가 싶다. 어제까지 밀린 일을 다 처리해서 결제하고 오늘은 큰 맘을 먹고서 근 일년만에 이곳 Santa Cruz 다운타운에 있는 Cafe Perolasi에 나와있다. 책이나 좀 보면서 커피도 마시고, 그냥 유유자적하면서 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전화는 개인전화로 forward해놓고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다.
어려운 고전문학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만, 대부분의 교양서적이나 인문서적, 역사책 등은 비교적 빨리 읽는 편이다. 아무렴 내 기억이 간직하고 있는 나의 가장 오래된 모습부터도 책이 빠진 적이 없으니까, 그 동안 해온 독서가 어디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이런 것만 생각해도 난 부모님께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누구는 신앙교육, 누구는 경제교육, 등등, 자신의 가치관에 있어 최우선이라 생각하는 것을 자식에게 가르치려고 노력할텐데, 그것이 독서였다는 점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종교를, 그것도 특정종교, 특정지도자, 특정회당을 인생의 전부인 양 가르친 부모의 자식이 아니었음이, 맹신과 광신, 거의 병적인 수준으로 붕 떠있는 상태로 사회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간 약 열 권 정도를 더 읽었는데, 읽기에 바빠서 정리하는 것이 많이 늦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당히 묶어서 추천해보아야겠다.
조정래 선생은 한국 문학사에 있어 그 찬란하고도 깊은 상징성에 비해 매우 험난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다. 그저 솔직하게 있었던 일을 소설로 구현했을 뿐인데, 군사반란과 군사독재, 그리고 그의 사생아들의 박해를 받으면서 지금까지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문민정부시절에 군복무를 마친 아드님이 단지 조정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목 디스크가 걸릴만큼 자주, 많이, 그리고 심하게 구타를 당하면서 군생활을 했다는 일화를 보면, 일반화는 나쁘지만, 이때만큼은 군발이는 또라이라는 생각을 하게한다.
선생이 워낙 글을 쓸만큼 쓴지라, 사실 아리랑과 태백산맥 이후의 작품들은 아무래도 그 힘이 빠진 것을 느끼는데, 그래도 이번 정글만리에서는 약간이나마 필력이 회복된 것 같아서 반갑기 그지없다.
그가 보는 중국은 우리의 과거이며, 현재의 투영이고, 미래의 예측인 동시에, 다시 세계를 2강구도로 몰아가는, 작가의 바램으로는 미국보다는 더 가까웠으면 하는 대국이다. 그들의 천민자본주의와 구조적인 부패는 과거 우리의 모습이었고, 지금 우리의 모습에서 그 스케일만 수천배로 클 뿐이다. 하지만 그 사이즈 덕분에 구조적으로 편입된 부패라는 점이 우리의 단순히 구조적인 부패, 그러니까 사회의 역동성과 발전을 저해하는, 그런 부패와는 다른 점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중국이 부정부패를 지탱할 수 있는 생산성과 국민의식, 그리고 아직은 낮은 소득분배를 토대로 현시대의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 구조가 무너지는 시점, 그러니까, 중국인민의 의식이 더 깨이는 시점에는 거대한 구조적인 파국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생각한다. 절대강자는 내가 사는 골목보다는 옆동네에 있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은 것처럼, 패권주의라는 점이 같지만 그 힘의 운용에 있어 그리고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어, 중국보다는 미국이 강국으로 남아주는 것이 더 좋다고. 한때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21세기의 종횡가를 꿈꾼 적이 있는데, 이때 삼국정립론을 본따 중국이라는 거대한 솥을 미국이 그 뒤를 받치고 있는 한-일-동남아의 느슨한 동맹으로 안정화켜야 한다는 21세기 동양평화론을 구상해봤다. 이는 당연히 현재 나와 미국, 나와 한국의 관계를 십분 반영한 것이지만, 중국의 무조건적인, 너무 자주는 무법적인 패권주의보다는 형식이나마 논리와 협상의 여지가 있는 미국이 파트너로는 더 낫다는 생각이다.
한국이 통일이 되면 중국은 무역/지역 파트너인 동시에 국경을 맞댄 경쟁자가 된다. 거기에 우리 민족의 고대사와 고토회복이라는 염원을 두고 보면, 그리고 인접지역의 모든 역사와 영토를 자국에 편입시키려는 무제한팽창주의를 놓고 보면 장기적인 견지에서는 일본보다도 큰 한국의 가상적국이 될 수 있다. 논리를 떠나, 중국특수가 일어나면서 나라가 들썩거리던 그 시절부터 쭉 주장해온 내 대중국관인데, 이곳에 살면서 접하는 본토출신의 충성스러운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을 보면, 가까운 시일에 수정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