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만큼 책읽기에 대한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마찬가지로 글쓰는 것, 리뷰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덜 하게된다일정부분은 인정하고, 일정부분은 포기하고, 그러면서 읽기와 쓰기는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사실, 내가 읽는 방식이나 이를 통해 무엇인가 남기는 방식이 남들과 다르거나 못하다고 해서, 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끝에 독서도 글쓰기도 다 던져버리는 것 보다는,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추구하는 그 무엇인가의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갖고 계속 행하는 것이 진리라고 본다

 

이번에 읽은 책들 중 상당수가 책읽는 이야기와 글쓰기에 대한 것들이 되어버렸는데, 순전히 우연이다예전부터 다른 분들의 서재에서 추천글을 읽고 모아두었던 것들을 구하게 되어 다른 책들은 잠시 미루고 이들을 위주로 지난 한 주간 책을 보았더니 순식간에 리뷰가 밀리게 된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연말이라서 그런지 지치기도 하여 읽기는 어찌어찌 했지만, 글을 쓸 맘은 잘 생기지 않았던 것도 이유이긴 하다

 

 

 

 

 

 

 

 

 

 

 

 

 

 

 

찾아봤더니 출판된 순서는 위의 순서에서 거꾸로 2005-2009-2013년이다우습게도 읽은 순서는 지금와서 기억하니 2013-2009-2005년이 되어버렸는데, 그런 이유였던지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에서는 다소 공감도와 몰입도가 떨어졌고, 작가의 글이  '퇴보'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결국 책을 출판된 순서에서 거꾸로 읽은 탓에 가장 발전한 글을 먼저 보고나서 상대적으로 4년전, 그리고 8년전의 솜씨를 보았기 때문인 듯 싶다.

 

이권우의 책은 '호모부커스'로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나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호모부커스 2.0' 함께 두 번 정도는 읽은 것 같다당시 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던 때라서 이런 저런 저자의 의견을 밑줄 그어가면서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비추어 보던 추억이 있다.  

 

'여행자의 서재'는 저자가 다른 이의 눈을 통해그러니까 그들의 글을 통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감상을 독서후기의 형식을 빌려 정리한 이야기들이다방구석에 앉아 세계일주가 된 셈인데, 지난 5년 간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더구나 여기에서 다룬 많은 책들 중에서 네 권은 나도 읽은 바 있어, 더욱 반갑게 저자의 생각을 나의 그것과 반추해 보았다.  

 

"여행을 촉발한 동기가 바로 문학이 탄생한 그 자리다그러니, 문학하는 자는 당연히 월경을 꿈꾸는 자다..."  이런 저런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아서 일일이 옮겨적지는 못하겠지만, 많은 밑줄을 긋게 만든 이 책에서 여행과 문학의 본질, 그러니까 이야기로써의 본질을 잘 표현한 말이라 여겨 특히 기억에 남았다또 삼국유사의 길을 따라 여행한 '고운기의 삼국유사 길 위에서 만나다' 매우 흥미있는 여행의 한 방법으로 보이는데, 조금 작게 생각하면 좋아하는 책이나 작가의 행로를 따라 가보는 것도 좋겠지 싶다물론 말은 이래도, 아직 지척에 있다는 스타인벡의 생가에도 가보지 못한 , 늘 생각과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자신이 참 불만스럽다.  

 

'죽도록 책만 읽는'이 출판되던 시기의 한국은 가카치세의 둘째 해가 되던, 그러니까 그 때만 해도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되던 때였다그래서 그랬나, 이권우의 머리말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치열하다본인도 스스로 밝혔듯이 이 책은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얼마나 치열한 정신으로 마주섰는지, 지은이의 문제의식을 오늘의 우리 삶과 관련시키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되새겨보는 의미를 갖는다.  '여행자의 서재'가 여행과 문학을 함께 생각해보는 일종의 독서여행이야기라면 이 책은 그 보다는 더 깊고 치열한, 아니, 너무 깊어 우울하기까지 한 책을 통한 구도이다.  여담이지만, 이 책에서 다룬 책들 중 어느 한 권도 아는 것이 없었는데내가 책을 적게 읽는것은 아니니까, 결국 그간 무엇을 읽었는가, 찾아왔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단순히 세상에는 참 많은 책들이 있구나를 넘어 이권우같이 공신력이 있는 독서평론가가 읽은 책을 왜 나는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을까, 그와 나는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2005년의 책이다.  2013년에서 보면 8년이나 젊은 이권우가 읽은 책, 그리고 거기서 배운것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앞서 말한 것처럼 몰입도나 공감도가 떨어졌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고, 아마도 2013-2009-2005년으로 이어지는 순서에서 온 일종의 피로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쓴 글 몇 가지를 보면서 떠올린 것들이 있어 적어본다.

 

"지은이는 창보다는 문이 더 좋다고 한다창은 관조의 자리이지만, 문은 실천의 현장과 연결되어서란다..." (신영복의 엽서).  그래서였을까 나쓰메 소세키는 그래서 문보다는 창을 통해 세상을 보면서 단절을 즐겼던 것일까.  이 글과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가 함께 겹쳐 떠오르는데, 소세키의 문은 '실천의 현장과 연결'되는 행동으로써의 문이라기 보다는 '관조의 자리'인 창으로써의 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명작이니 좋은 책이니 하는 것을 무조건 수긍해야 할 이유는 없다...(하지만남들이 입을 모아 명작이라 하는 작품에는 분명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요소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어쩌면) 책 읽기의 가치는 남을 이해하는데 있다...(그래서) 나는 다시 읽으며 이번에는 작품을 쓴 작가가 아니라, 그 책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을 이해하기로 한 것이다..." (암흑의 핵심에 대한 이야기).  고전문학이나 명작이라고, 남들은 다 재미있다고, 깊다고 극찬하는데, 나에게는 잘 닿지 않는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다.  독서수행의 길에서 이런 책을 종종 만나는 것은 희귀한 일이 아니다그럴 때, 어쩌면 그 책 자체를 이해하기보다는 그 책을 쓴 사람, 나아가서 그 책을 고전으로 만든 사람들을 읽는 자세로 마음을 낮추고, 자신을 비워내면, 그 공간은 오롯히 하나의 책이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낸 내공을 흡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하는 글이었다.

 

독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하나의 방편이다방편으로써 경영되고, 관리되고, 조직화되고, 분석되어야 하고, 공부되어야 하는, 그들이 설파하는 길, 가고자하는 길을 가기 위한 교통편이다그런 의미로써의 독서도 분명한 메리트가 있고, 공부로써의 방법론도 배울 부분이 있다하지만,  개인적인 기호로는 이권우식의 서평이 좋다장정일식의 극단적인 칭찬이나 비난도 아니고독서경영학파의 분석과 경영이 아닌, 간간한 선비의 글처럼, 책에 대한 사랑과 마음이 그 자체로 느껴지는 그의 글을 앞으로도 즐겨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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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4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와 함께
우리 이웃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책 하나에서 만날 테지요

transient-guest 2013-12-26 02:03   좋아요 0 | URL
책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이야기마다 배우고 볼 것이 많지요.ㅎ

노이에자이트 2013-12-25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권우 씨 문장이 점잖고 묵직해서 좋죠.뭔가 남을 찍어내고 공격하려는 글은 많이 못읽겠더라고요.

transient-guest 2013-12-26 02:03   좋아요 0 | URL
장정일씨의 책은 간혹 원색적인 비난이 많아서 특히 독서일기 시리즈는 중간중간 불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권우님의 글은 내면을 향하는 글이지, 누군가를 비평하는 글이 아니고, 깊은 맛이 있더라구요.
 

성소수자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소수자들의 인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적어도 종교의 가르침을 근거로하여 그들을 박해하는 것은 그 가르침에 위배된다는 결론을 맺었다.  천주교와 개신교를 망라한 기독교인들이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근거는 성서상의 가르침이다.  구약에서 몇 번, 신약에서는 없다고 본다는데... 

 

종교의 목적은 신의 경배가 아니라 사람간의 평화와 사랑이다.  신은 사람이 경배하고 사랑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다.  신을 경배하는 것을 호도하여 사람에게 증오를 가르치고 재물을 갈취하는 것은 신을 이용한 자리보전이나 영리행위에 다름아니다. 

 

구약의 원본인 토라를 다시 해석해서 연구해볼 일이다.  과연 성서에서의 해당 귀절이 게이나 레즈비언 또는 트렌스젠더를 언급한 것인지를...  어쩌면 성서의 귀절은 성의 타락 그 자체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  남색을 호모섹슈얼리티로 생각하기 쉽지만, 성서상의 의미는 성적 방만과 타락이 극에 달하여 이성관계를 진부하게 여긴 나머지 동성의 관계에서 쾌락을 찾는 이들에 대한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런 해석도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종교에서 지양하는 성적타락과 호모섹슈얼리티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북한 그리고 연예인 성매매 수사:

북한의 사건은 진위를 떠나 이용하기 좋은 이슈다.  당장 조선의 매설가들은 온갖 자극적인 추측성 기사들을 찍어내고 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지난 어맹뿌 정권부터 시작된 정치공작으로 약화된 국정원의 해외정보력을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밤의 대통령의 후예들답게 거북하고 거지같은 사건들에 유독 발군의 능력을 보이는 조선의 매설가들은 그러나 그 죄값은 누군가가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공안검찰 역시 마찬가지.  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온갖 자극적인 사건은 언제난 정치적으로 여당이 사면초가에 몰리는 시기에 터진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안다.  SOB들아!

 

김규열 선장의 영면을 빌면서:

도대체 외국의 한국공관에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일까 의문이다.  얼마전 자체평가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샌프란시스코의 총영사관만해도 개판 오분전이니 말이다.  내 개인적인 수 차례의 경험인바, 창구의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대화하기 바쁘고, 사람이 바로 앞에 서있어도 외면하면서 자기들끼리 떡을 쳐먹고 야부리를 떨기 바쁘다.  무슨 일이 있으면 결국 영사가 개인적으로 사과를 하는 선에서 끝나고, 특히 현지채용직원들의 안하무인 - 누가 우릴 자르겠어 하는 -은 이루 말할 수 업을 만큼 그 도가 지나치다. 

 

필리핀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억류되는 또는 힘든 일을 겪는 한국인들에 대한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 듯한 외교부에게...최소한 필리핀의 담당자들에게 나의 거룩한 한 손가락을 드리오니 FXXK YX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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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구하기에는 주문이 귀찮아서 한국어로 구했다.  너무도 외진, 탄광촌이 널린, 그러니까 지금은 많이 쇠락한 애팔래치아의, 인구 5000의 깡촌에, 큰 프렌챠이즈라고는 월마트 하나뿐인 빅스톤갭이라는 동네에 한 부부가 아주 낡은 집을 사들이고는, 아무런 대책도, 경험도 없는 헌책방 장사를 시작한다.

 

이들의 유일한 바램은 적당히 밥을 굶지 않고, 밟고 밟히는 삶을 떠나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4-5년의 고생끝에 그들은 그 꿈을 이루고, 이를 책으로 써낸다.

 

소소한 에피소드가 재미있지만, 사실 이 책에는 귀농이나 작은 타운으로의 이주에 대한 환상 못지않게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작은 공동체 특유의 사건들에 대해 냉철한 충고를 준다.  또 이의 연장선상에서 organic하게 산다는 것이 사실 그 매력과 political correctness만큼이나 꾸준하고도 깊은 금전적인 희생, 부지런함, 그리고 지역적인 조건을 요한다는 것도 이야기해준다.  비록 헌책방을 열고 먹고살 자신은 없지만, 유기농에 대해, local market운동에 대해, 지속가능한 작은 공동체에서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부수적인 교훈을, 이들 부부와 이웃의 알콩달콩한 에피소드의 재미와 함께 얻을 수 있었다.

 

그저 재미를 위해, 그리고 SF적인 관점에서의 정리가 맘에 들어 구매했다.  내용은 다소 실망스러운데, 파토님의 글솜씨나 말빨은 워낙 화려한 바, 그저 딴지일보에 연재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편집한 정도라는 점이 그러한 것이다.  책으로 펴낸 이상 조금 더 내용을 보강하고 새로운 포인트를 추가했더라면 보다 더 가치있는 책이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대의 고대문명의 기원, UFO, 달, 화성, 지구, 등등에 대한 진지한, 하지만 엔터테인먼트임이 분명하다고 주지하는 썰은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데, 당연히 그 답은, 적어도 지구적인 관점에서는 없다.  기록도 없고, 온갖 추리가 다 가능한 고대문명의 기원이나 외계인 이야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처럼 큰 재미를 선사한다.  혹시 아는가.  이 책을, 이런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된 한 아이가 나중에 자라나서 아시모프나 하인라인처럼 위대한 작가가 될 지, 아니면 루카스같은 감독이 될지, 아니 천재과학자로 자라나서 화성이주계획의 중추가 될지 말이다.  비전을 주고 갈 곳을 가리키는 것만으로도 SF구라는 그 존재의 가치가 있다.

 

책의 시작은 그간의 휴가생활에 돈이 다 떨어진 샤이러 가족이 베를린 특파원직을 맡으면서 독일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이미 히틀러의 나찌스가 정권을 잡은 30년대 말기, 오스트리아가 병합되기 직전의 베를린이 공기와 히틀러의 bluff를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본 생생한 기록은 물론, 그 당시 서방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세밀한 히틀러의 묘사, 독일국민의 인식 등 흥미로운 일차사료들로 가득한 책이다.  자료로써 뿐만 아니라 이 책은 그 문장 자체로도 훌륭한 읽기가 된다.  샤이러는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Nightmare Years"와 "제 3제국의 흥망" 같은 대작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약 600여 페이지로 상당히 긴 책이기는 했지만, 긴박한 당시 정세를 사건의 한 가운데서 기자의 눈으로 풀어낸 그 내용과 묘사로 지겹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번역이 되지 않아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렵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영문으로 도전해도 무방할 만큼 쉬운 단어를 사용했다.  다만 중간중간에 나온 독일 단어는 거의 추측해가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작금에 대두되는 한국형 파시즘의 전초작업을 생각하면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조금씩 국민을 호도하면서 반대세력은 반동으로 몰아가는 - 그러니까 우리의 종북프레임 - 과정이 귀태정권의 모습과 참으로 닮았다.  다른점이라면 그들에게는 유대인이 있었고, 우리에게는 '종북'이 있다는 점인데, 비합리적인 불만의 대상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이거나 '반대당'이 되는데, 종북이 없어지면 그들이 휘두르는 백정의 도끼는 아마도 '외국인 - 가난하되 피부색이 하얀 사람이 아닌 '과 '성소수자'들을 향할 것이다.  여러모로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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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2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과 정치가 있으면, 권력과 정치를 지키려고 그들은 늘 '적'을 만들고 '군대와 경찰'을 키우며, 여느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요.

transient-guest 2013-12-12 10:51   좋아요 0 | URL
늘 가상의 적이 필요하죠. 주로 나란 밖의 약자는 너무 멀고, 주변부의 소수그룹을 대상으로 테러가 자행되는 것 같아요.
 

이덕일 박사 (그는 숭실대학교 사학과에서 동북항일군 연구로 역사학 박사를 취득한 정통 사학자이다)의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한국 사학계의 소극적인 과거사 접근, 나아가서 노골적인 식민지사관 계승을 보면서 앓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진정으로 내가 한국인으로서의 피를 자각한다면 이런 연구는 꾸준히 서포트 되어야 하고, 나아가서, 미국의 한국사 강단에서도 친한국적인, 그리고 대륙시각적인 한국의 고대사 연구가를 키워내어야 한다.  A급 친일파이면서 조선사편수회의 개 노릇을 한 이병도가 해방 후 한국 사학계의 대부가 됨에 따라 식민지사관의 세력이 강단의 주요세력을 이루고 있는 만큼, 현재 한국에서 한국사를 공부하여 박사가 되는 외국인들 또한 그 사관이 자연스럽게 식민사관을 계승하게 되는 점이 심히 우려가 된다.

 

 

 

 

 

 

 

 

 

 

 

 

 

 

이 책들의 시작은 1999년이다.  이때에 제기된 이슈들은 다시 이덕일씨의 다른 책들에서 조금 더 깊이 연구되어 논증된다.  이 당시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 고대-고려-조선-근대사의 재미있는 의문들을 최대한 사료적인 접근을 통해 해석해보는데, 소모적인 환빠-환까의 키보드 베틀과는 달리 정통교육을 받는 사학자의 입장에서 논리적인 분석과 해석을 하는 것이 특히 빼어난 점이다.  이전까지 소위 강단사학에서 그들의 식민사관-실증주의사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아마추어로 몰아 논쟁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었지만, 이덕일 박사와 같은 정통사학자의 등장으로 인해, 최소한 이런 것은 핑계가 되지는 못할 것이나, 모 대학 모 교수로 이어지는 connection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새로운 핑계가 되는 것 같다.  이 책들에서 다룬 내용들중 특히 흥미를 끈 것은 (1) 환단고기의 진위에 대한 논리적인 방어, (2) 처용의 아랍인설, (3) 삼국시대에 신라에 전파된 경교 (네스토리우스 파의 초기 기독교로 보면 되겠다), (4) 한사군의 위치, 실재, (5) 한국 땅에 존재했던 '왜'라는 수수께기의 국가 (일본 열도로 몰리기 전의 한국사/한국민족의 세력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등등인데, 앞서 말했듯이 여기서 다뤄진 많은 역사적인 이슈들은 십 수년후 다시 보다 더 심혈을 기울인 사서의 대조판독과 비교를 통해 훨씬 더 강력한 사료적인 논리를 갖게 된다.  

 

여기서는 보다 더 심도있게 한중일의 고대사서를 비교해서 우리 민족의 대륙기원설을 논리적으로 증명한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고조선과 고구려의 활동무대가 만주였음은 상식이다 (물론 역사교육이 일주일 한 시간으로 줄어든 지금의 세대는 큰 걱정거리이다).  하지만, 대륙백제설을 유추할 수 있는 중국의 고대사서의 내용은 비록 그 내용이 와전되고 뒤틀린 상태로 항간에 퍼져 우스갯소리가 되고는 있지만, 그 에센스를 보면 훌륭한 논증이 가능하다.  

 

또한 한국의 독립운동사가 80년대까지는 연구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처음로 이 책과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식민지의 주구가 되었던 자들이 해방 후, 그리고 5-16 군사반란을 거쳐 한국의 주류기득권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너무도 당연한 처사가 된다.  

 

분명하게 말하거니와, 이덕일 박사의 접근은 고도의 전문성에 기반한 학술적인 주장이지, 혹자가 비난하는 것처럼 '믿쑵니다~' 수준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덕일 박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 자신은 기실 역사학을 전문으로 공부하지 않았고, 지엽말단적인 부분을 침소붕대하는데, 자신의 주장이 '실증주의'에 기반했음을 주장하는 것에 비해, 전혀 실증적이지 못한 인신공격에 다름아니다.  환단고기를 비롯한 고대사서의 진위성은 학술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지 이렇게 난장을 처버려야 할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류사학계나 강단사학에서는 한국의 고대사를 중국과 일본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심히 노력하는 것 같아 한국민족의 일원으로서 한탄스럽기 짝이 없다.  

 

주류사학에서 극도로 축소되고 왜곡된 한국의 근대 독립운동역사를 심도있게 다룬 책이다.  

 

해방 이후 독부 이승만의 세력확대를 위한 맹목적의 반공정책과 친일세력 재등용, 5-16군사반란을 통해 사회의 주요기득권으로 급부상한 일군/만군 출신 군바리들, 12-12정변을 통해 이어진 이들의 기득권, 그리고 지난 부정선거를 통한 노추의 귀환을 보면서, 우리 손으로 이루지 못한 독립의 슬픔이 뼈져리게 느껴진다.  

 

다카키 마사오가 반신으로 추앙받고, 백선엽 같은 이가 훈장을 받으며 그의 이름을 딴 상이 생기고, 백두산과도 호랑이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던 친일파 칼잡이 군인 김종원 같은 이들이 쌓이고 쌓인 한국 사회에서 아마도 좌/우가 모두 어우러져 치뤄낸 독립운동의 역사는 부정되어야 할, 아니 감춰야 할 치부인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는 한국의 국가/민족적인 정체성이 훼손되고 흔들리는 시대이다.  미국에서 한 발 멀찌기 떨어져 살면서 이렇게 한국의 문제에 대해 지사연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이런 책이 널리 읽히고, 사람들이 역사에 더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 길게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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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2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일 씨가 있기 앞서 뜻있는 학자들이 독재정권 사슬에서도 씩씩하게 연구를 한 바탕이 있어, 이러한 책이 나올 수 있다고 느껴요. 그리고, 일본에는 제국주의자도 있지만, 슬기로운 사람도 있어, 지난날 일본 소장학자들이 한국 옛 역사를 잘 밝히고 건드려 주기도 했답니다. 다만, 이런 책을 한국에서는 이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울 뿐이에요.

transient-guest 2013-12-12 10:52   좋아요 0 | URL
네. 이덕일 박사가 언급한 사서를 직접 살펴보고 싶은 맘이 들더라구요. 공정한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사실 이덕일 박사의 논점을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13-12-15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대사를 다룬 소설 중 이덕일 씨의 설에 가까운 것이 몇 권 생각나는군요.
김진명<천년의 금서><코리안닷컴>---환단고기를 지지하는 내용.
이문열<대륙의 한>윤영용<근초고대왕>---백제가 요서지방을 지배했다는 내용.둘 다 대하장편.

transient-guest 2013-12-15 15:56   좋아요 0 | URL
이문열씨와 윤영용씨의 소설은 못 봤지만, 김진명씨의 소설은 읽어봤습니다. 그 깊이가 조금 아쉽고, 뭐랄까, 조금 부족한 느낌이더군요. 하지만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해서 대중이 자꾸 관심을 갖게 되면 좋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3-12-15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노자 씨 전공이 임나일본부라서 <거꾸로 보는 고대사>를 썼는데 여기에서 환단고기 같은 책들을 사정없이 비판했죠.그래서인지 환단고기 지지자들이 박노자를 맹공격하죠.아무래도 보수적 민족주의자들은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박노자 씨가 거슬렸던 모양입니다.강만길 이이화 등도 한가람연구소의 연구가들에게 공격받고 있죠.

transient-guest 2013-12-16 02:35   좋아요 0 | URL
이런 비판이 생산적인 쪽으로 가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측면이 더 많다고 이덕일 박사는 주장하더군요. 주객이 전도된 논리로 환단고기 전체를 위서화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듯 해요. 내부적인 다툼은 잘 모르던 부분이네요. 강만길/이이화 vs 한가람 연구소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양쪽의 의견을 모두 읽어보고 싶고, 나아가서 사실 고대사서를 제대로 보면서 이덕일 박사의 이론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더라구요.

노이에자이트 2013-12-16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만길 이이화 씨는 고조선의 영토를 넓게 잡는 사람들을 비판했기 때문에 환단고기 지지자들에게 공격당하고 있어요.강만길 이이화는 고대사 전공자도 아닌데 왜 아는 척하느냐 하는 공격이 대부분이죠.

고대사서를 직접 읽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박노자 위의 책은 분량이 많지 않고 문체가 쉬워서 읽는 데 편합니다.현재 논쟁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있고요.그리고 박노자는 전공 자체가 한국고대사니까 비전공자라는 비난은 피할 수 있습니다.아무래도 트란 님 성향으로 볼 때 박노자가 잘 맞을 듯해서 권해봅니다.

transient-guest 2013-12-17 00:34   좋아요 0 | URL
다음번에 책을 구할때 강만길-이이화-박노자의 책을 봐야겠네요. 말씀처럼 환단고기나 대륙사관을 비판하는 많은 분들이 사실 역사를 정식으로 전공하지는 않았구요. 박노자선생의 경우라면 그의 논리가 궁금합니다. 이덕일씨도 최근의 책은 무작위로 주장하는것이 아닌 나름대로 역사적 사료에 근거한 주장을 하거든요.

노이에자이트 2013-12-1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단고기나 백제요서경략설 비판자들은 역사를 정식으로 전공하는 대학교수들이 많습니다.그래서 환단고기 지지자들이 대학의 한국사학과가 식민사관에 물들었다고 공격합니다.당연히 한국사 교수들은 환단고기 지지자들이 정식으로 한국사를 전공하지 않았다고 공격하고요.

transient-guest 2013-12-18 01:23   좋아요 0 | URL
일반적으로는 그런 것이라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웹사이트에서 이덕일씨 같은 사람들을 비판하는데 앞장서는데 상당히 유명하신 모 블로거님을 비롯하여 사학전공과는 관련이 없는 분들도 많이 있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2-18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하신 모 블로거가 누군지 알려주세요.한번 글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2013-12-19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19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20 0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12월은 연말연시의 특수에 따라 또는 연휴계획에 따라 바쁘기도 하지만, 사실 업무에 있어서는 특별한 것이 없는 절기가 아닌가 싶다.  어제까지 밀린 일을 다 처리해서 결제하고 오늘은 큰 맘을 먹고서 근 일년만에 이곳 Santa Cruz 다운타운에 있는 Cafe Perolasi에 나와있다.  책이나 좀 보면서 커피도 마시고, 그냥 유유자적하면서 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전화는 개인전화로 forward해놓고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다. 

 

어려운 고전문학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만, 대부분의 교양서적이나 인문서적, 역사책 등은 비교적 빨리 읽는 편이다.  아무렴 내 기억이 간직하고 있는 나의 가장 오래된 모습부터도 책이 빠진 적이 없으니까, 그 동안 해온 독서가 어디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이런 것만 생각해도 난 부모님께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누구는 신앙교육, 누구는 경제교육, 등등, 자신의 가치관에 있어 최우선이라 생각하는 것을 자식에게 가르치려고 노력할텐데, 그것이 독서였다는 점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종교를, 그것도 특정종교, 특정지도자, 특정회당을 인생의 전부인 양 가르친 부모의 자식이 아니었음이, 맹신과 광신, 거의 병적인 수준으로 붕 떠있는 상태로 사회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간 약 열 권 정도를 더 읽었는데, 읽기에 바빠서 정리하는 것이 많이 늦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당히 묶어서 추천해보아야겠다.

 

 

 

 

 

 

 

 

 

 

 

 

 

 

 

조정래 선생은 한국 문학사에 있어 그 찬란하고도 깊은 상징성에 비해 매우 험난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다.  그저 솔직하게 있었던 일을 소설로 구현했을 뿐인데, 군사반란과 군사독재, 그리고 그의 사생아들의 박해를 받으면서 지금까지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문민정부시절에 군복무를 마친 아드님이 단지 조정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목 디스크가 걸릴만큼 자주, 많이, 그리고 심하게 구타를 당하면서 군생활을 했다는 일화를 보면, 일반화는 나쁘지만, 이때만큼은 군발이는 또라이라는 생각을 하게한다.  

 

선생이 워낙 글을 쓸만큼 쓴지라, 사실 아리랑과 태백산맥 이후의 작품들은 아무래도 그 힘이 빠진 것을 느끼는데, 그래도 이번 정글만리에서는 약간이나마 필력이 회복된 것 같아서 반갑기 그지없다.   

 

그가 보는 중국은 우리의 과거이며, 현재의 투영이고, 미래의 예측인 동시에, 다시 세계를 2강구도로 몰아가는, 작가의 바램으로는 미국보다는 더 가까웠으면 하는 대국이다.  그들의 천민자본주의와 구조적인 부패는 과거 우리의 모습이었고, 지금 우리의 모습에서 그 스케일만 수천배로 클 뿐이다.  하지만 그 사이즈 덕분에 구조적으로 편입된 부패라는 점이 우리의 단순히 구조적인 부패, 그러니까 사회의 역동성과 발전을 저해하는, 그런 부패와는 다른 점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중국이 부정부패를 지탱할 수 있는 생산성과 국민의식, 그리고 아직은 낮은 소득분배를 토대로 현시대의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 구조가 무너지는 시점, 그러니까, 중국인민의 의식이 더 깨이는 시점에는 거대한 구조적인 파국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생각한다.  절대강자는 내가 사는 골목보다는 옆동네에 있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은 것처럼, 패권주의라는 점이 같지만 그 힘의 운용에 있어 그리고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어, 중국보다는 미국이 강국으로 남아주는 것이 더 좋다고.  한때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21세기의 종횡가를 꿈꾼 적이 있는데, 이때 삼국정립론을 본따 중국이라는 거대한 솥을 미국이 그 뒤를 받치고 있는 한-일-동남아의 느슨한 동맹으로 안정화켜야 한다는 21세기 동양평화론을 구상해봤다.  이는 당연히 현재 나와 미국, 나와 한국의 관계를 십분 반영한 것이지만, 중국의 무조건적인, 너무 자주는 무법적인 패권주의보다는 형식이나마 논리와 협상의 여지가 있는 미국이 파트너로는 더 낫다는 생각이다.  

 

한국이 통일이 되면 중국은 무역/지역 파트너인 동시에 국경을 맞댄 경쟁자가 된다.  거기에 우리 민족의 고대사와 고토회복이라는 염원을 두고 보면, 그리고 인접지역의 모든 역사와 영토를 자국에 편입시키려는 무제한팽창주의를 놓고 보면 장기적인 견지에서는 일본보다도 큰 한국의 가상적국이 될 수 있다.  논리를 떠나, 중국특수가 일어나면서 나라가 들썩거리던 그 시절부터 쭉 주장해온 내 대중국관인데, 이곳에 살면서 접하는 본토출신의 충성스러운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을 보면, 가까운 시일에 수정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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