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밤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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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연상시키는 장치를 간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추리소설에느 조금은 못 미치는 듯한 전개를 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도 역시 결론을 알기 전에 트릭을 간파하는 것은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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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기 위해 이번 주말에는 따로 나가서 샌프란시스코 Union Square과 인근의 Chinatown을 돌아다녔다.  쇼핑을 하지 않고서 이 부근을 구경하는 것은 대략 2-3시간이면 충분한데, 이번에도 딱 그 정도를 걸어다니면서 정신없이 도시의 경치를 눈에 담았다.  60년대 말부터 천편일률적으로 재단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는 미국사회 중산층의 상징이 되고 있는 Suburban Life는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그리 exciting하지는 않고, 어떻게 보면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때문인지 이제는 이렇게 차고가 딸린 집과 자동차, 고속도로를 이용한 출퇴근보다는 도시의 삶 혹은 이를 모방한 주상복합단지가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어떤 이들은 향후 10년 이내에는 이런 경향이 가속화되어 지금과 완전히 역전이 되면 도시에는 부촌과 함께 중산층이 이주하고 교외는 다시 빈민층이 거주하는 식으로 바뀔 것이라고도 한다.  

 

확실히 도심 한복판을 돌아다니는 것은 강한 체력과 각력이 필요하지만, 걸어다니면서 내내 볼 것이 많아 눈이 즐거운 덕에 피곤함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같은 거리라도 교외지역을 걷는 것은 가혹한 노동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한 일이다. 

 

이런 저런 high-end mall도 돌아보고, Chinatown에서 dim sum도 먹었지만, 정작 가려던 Chinatown 내에 위치한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egg custard tart집과 City Lights Books에는 가지 못했다.  빵가게는 장난이 아니게 긴 줄 덕분에 포기했고, City Lights Books는 아무래도 주차가 어려울 것 같아서 다음에 Cartrain이라는 광역기차를 타고 SF에 와서 지하철과 뮤니를 타고 놀면서 가보기로 했다. 

 

한 개인의 행위와 그의 사상과는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검도교사로 체육교수로 오랜 기간 활동을 한 저자의 검도사상, 건강, 철학 등은 배울 것이 많았지만, 검도와 유교적인 사고관, 무사도와 군인정신을 '일본의 정신'으로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검도예찬으로 끝나지 않고, 많은 부분에 있어 2차대전 전의 일본무부의 생각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평균적인 일본인들의 사고로 보이는데, 답답함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나를 불편하게 하였다.

 

좋은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 그대로 받아들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나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와는 다르다고 하여 부조건 배척하면서 공감하는 부분이나 나와 같은 생각에만 고개를 끄덕이면 크게 배울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어떤 책이든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지에 좀 더 치중하여 읽는 것은 2014년 독서의 화두가 될 것이다.  계발서조차도 배척하기 보다는 냉정하게 분석하여 어떤 것을 얻을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정리하는 것도 공부로써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이야기를 접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책을 구해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지한 과학논평이나 과학계에서는 여기서 주장되는 이야기는 '의사과학'으로 분류하는데, 이 '의사과학'의 범주는 사실 기존의 과학으로 증명되지 못한 모든 현상이 포함되기 때문에 사실 일반대중의 관점에서 볼 때, 그렇게 배척할 수만은 없는 이야기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과학적인 실험에서는 동일조건에서 같은 방법을 사용할 때,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는 증명되었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할 때, 단전호흡이나 기공, 선도, 기도, 종교 등 거의 모든 현상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비과학'이거나 '의사과학'이 된다. 

 

물이 얼마다 답을 알고 있는가 또는 저자가 정말 genuine한 실험을 통한 증명을 하였는가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는 과학적인 증빙보다는 믿음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여기서 주장되는 것처럼 존중하고 감사하며 사랑하는 마음은 비록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마음안에서는 큰 작용을 한다는 점이다.  이런 마음을 갖고, 아니 의식적으로 갖기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얻고, 하루의 생활에 임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으며 이는 다시 올바르고 밝은 행동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실제로 나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인데, 좋은 말씀, 기도나 말을 입에 머금고 가만히 마음을 살펴보면 심장의 박동이 차분해지거나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부분에서 가슴의 답답한 기운이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는 '과학' '의사과학'의 논쟁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이다.  나에게 적용하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면 이는 중요한 이슈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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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3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은 '진공'을 상황으로 놓고 따지는데,
우리 삶에서 '진공'은 없어요.
그러니 '의사과학'이든 '유사과학'이든
이런 이름을 붙여 보았자
'과학이 아닐' 수 없겠지요.

과학만으로 살아가면 삶이 메마르기 일쑤잖아요.
왜냐하면, 과학은 '사랑'도 '꿈'도 증면하지 못하니까요.
사랑과 꿈이 있는 삶은 그저
사랑과 꿈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transient-guest 2014-01-01 03:08   좋아요 0 | URL
다치바나 다카시에 의하면 과학은 현대 교양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지식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아직 꿈과 환상의 세계가 더 좋아요.ㅎ 물론 과학교양을 높이는 것도 독서의 큰 목표 중 하나입니다만..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 독서법, 본깨적
박상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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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분류하자면 독서보다는 자기계발서에 가까운 이런 종류의 책을 사는 경우는 요즘 드물다.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던 때도 있었고, 비판도 해 본 결과, 결국 읽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히로뽕 마냥 읽는 순간에만 잠깐 미래에 대한 장미빛 희망을 품게 해주는, 그러나 행동으로 도통 연결되기 어려운 마음의 마약이 될 수도 있음이다. 

 

책에 대해 소개받고 읽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코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자의 인생유전과 함께 한 책 소개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현재 독서 경영컨설턴트인 저자는 안경사로 나름 안정된 인생을 살다가 지인의 배신으로 큰 위기를 맞고 자살직전까지 갔던 인생에서 독서를 통해 완전한 U턴을 그리고 지금은 저자로, 강사로, 연구원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다.  같은 계통의 김병완이란 분의 연구소에 들어가면서 방법론을 연구하고 배우면서 독서를 체계화하는 것을 통해 이를 다시 현 생활을 개선하는데 적용할 수 있었다는 내용, 다시 말하면 독서를 단순한 취미가 아닌 삶의 한 방편으로 삼아, 절박했던 본인의 상황을 역전시켰다는 내용에서 문득, 책을 많이 읽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자체로 늘 만족한다고 여기지만, 가끔씩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는 나에게 어떤 계기가 되어주거나 내가 미처 모르던 점을 짚어줄 수 있을까 싶어 흥미를 갖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책은 무엇을 읽으라고 강권하거나 이 방법만이 최고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나아가서 분석과 공부라는 방편으로써의 독서론에서 발췌독을 권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모든 장르의 책을 읽는것에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기 때문에, 다른 독서경영관련도서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좋은 균형을 갖고 있다. 

 

또한 방법론적인 가이드를 제시함에 있어 매우 꼼꼼하고 단계적인 한 설명과 구체적인 예를 통해 모호한 접근론이 아닌 바로 현장에서 시도할 수 있는 분석과 정리방법을 보여주는데, 아직도 조금은 미심쩍고, 특히 문학이나 소설에 그대로 사용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서도, 계발서, 개론서, 방법론 등 무엇인가를 배우고 적용하기 위한 독서를 하는데에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밑줄긋기와 약간의 노트를 끼적거리는 것이 전부인 나의 공부독서에 다른 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자기계발서들이 자주 그렇듯이 이 책도 주장에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무리한 사건사실적용 혹은 살짝 비틀린 해석을 통한 사례인용 - 간혹 본말이 전도되거나 배경을 무시한 사건해석 - 이 심하지는 않지만 종종 눈에 띄는데,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은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자기계발서 계통의 독서는 독서라는 큰 우주의 일부가 될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모든 것을 포함하는 세계는 아니기 때문에 이를 읽고 여기서 이야기 하는 방법이 모든 독서에 통용되거나 여기서 말하는 대로만 하면 독서를 완전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서툴고 위험한 망상이다.  초보라면 읽는 그 자체에 치중하면서, 약간의 재미를 느끼면서, 조금씩 깊이 읽는 방법이나 노트하는 것을 시도하다가 다시 조금 더 높은 레벨의 배움을 추구하는 것이 좋겠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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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길로 가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여러 가지를 보여주면서
스스로 찾도록 이끌 때에 비로소
길잡이가 되리라 느껴요.

transient-guest 2013-12-28 02:47   좋아요 0 | URL
그런 의미에서도 이미 앞서간 분들의 책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입니다. 처음부터 자기만의 방법을 찾는 천재도 있겠지만, 대부분 이전의 것들을 답습하면서 이를 통해 자신의 길을 찾지요.

2013-12-30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31 0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움직이는 손가락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도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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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송자 미상의 편지가 무작위로 배달되는 것에서 시작되는 작은 마을의 추측성 추문. 추문때문에 벌어진 자살, 그리고 살인사건. 언제나처럼 미궁에 빠진 사건은 미스 마플의 추리로 한 번에 해결된다. 설득력이 조금은 약했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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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솔직하게 말하면, 이 책은 '제목에 낚여서' 책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교과서처럼 보여줄 수 있는 구매를 통해 내 손에 들어왔다.  늘 혼자의 시간을 찾아 헤메이는 일종의 자유노매드라고 자신을 규정하는데, 정말이지 혼자라서 외로운 것과 자유로운 나의 삶을 저울에 놓고 달아본다면, 내 저울은 자유쪽으로 기울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이 책은 '혼자 산다는 것'을 어떤 클리셰를 통해 외롭고 꿀꿀한 것, 또는 마치 '신사들의 품격'이나 'Sex and the City"류의 화려한 모습으로 재단하여 각기 특이한 모습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보편적인 내용을 기대하고 펼쳤으나, 나온 것은 매우 진지하고 학구적인 '혼자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고찰이었다.  조금은 과장일까? 

 

'혼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통해 변증법적인 분석으로 그 의미와 대상을 규정하고난 뒤의 이야기는 적어도 나로써는 한번 읽고나서 간결하게 정리하여 쓸 수 있을 정도로 간편하고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인 고찰, 존재론적인 접근, 제도적인 접근, 사회통념 등등의 다양한 방향에서 '혼자 산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그의 밥줄이기도 한 사회학 박사/교수로서의 재주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는 때로는 너무 분석적이라서 피로감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아카데미아의 사람이기 때문이고, 작가로서는 아직도 신인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한번 이야기 한 것을 다시 펼쳐서 이야기 하거나, 굳이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학계 특유의 현학성이 아닐까 싶다.  독신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해보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하지만, 기대하는 것이 '신사들의 품격'이나 'Sex and the City'의 도시 이야기라면 이 책의 제목에 낚이지 말 것.

 

'Life is a Trip' 그러니까, '인생은 여행이다'가 직역이라면 이 제목은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제목을 번역하면서 마케팅 측면에서의 고려와 책의 내용을 잘 갈무리 하는 것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고 할 때 이 번역은 매우 훌륭하다. 

 

헐리우드의 영화/텔레비전 스크립 작가인 저자는 어느 날, 반복적인 일상에 지쳐 모든 것을 던지고 (는 조금 과장이지만)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다.  돌아오기 위한 여행이라기 보다는 노매드로써의, 그러니까 떠돌아다니는 그 자체의 여행을 통해 자신에게 내재된 오랜 샤먼의 피를 깨우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고생도 하면서, 2013년 현재 우리들 대다수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방법을 통한 의사적인 연결이 아닌 진정한 행동을 통한 아날로그적인 연결로 세상과 소통한다. 

 

편견을 깨고 싶다면, 깊이 다른 것들 속에 가라앉고 싶다면, 책 읽기와 여행 이 두 가지가 답의 큰 기초를 준다.  여기서 책 읽기는 깊이 자신만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라면, 여행은 광주리에 담가 불려놓은 감자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다른 이들과 다른 존재들과 다른 모든 것들과의 섞임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일게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나는 확실히 50% 부족하다.  독서를 통해 채우는 나머지 50% 또한 완전한 50%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는 내가 행하고 있는 방편이지만, 여행은 확실히 부족한 나머지 반쪽이 아닌가 싶다.  늘 낭만적일 수는 없겠지만, 내 생애 처음 가본 이탈리아와 반도 남쪽에서 배를 타고 건너던 지중해와 아드리아 해, 그리고 메주고리예까지의 여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게는 신화와 고대사의 현장이기만 하던, 책속의 그 바다를 건너면서 잠깐 트로이의 목마와 오딧세이아를 떠올렸다면 심한 과장일까?  여행은 그렇게, 집에서는 좀체 열 수 없는, 자신의 껍질을 단밖에 부숴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어느 정도 삶의 먹거리를 채우고나면 사무실을 접고 한 일 년정도 떠나고 읽는 것이 소원인데, 아직은 요원하기만 하다.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삶은 그래서 늘 부럽기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8-6에 묶인 직장인들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살고는 있지만, 역시 부족하게만 느낀다.

 

그간 참으로 많은 서평집을 읽었다.  장정일, 이권우, 표정훈, 다치바나 다카시, 파란여우, 김애리, 이희석, 이지성 등등.  이 밖에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독서론과 리뷰를 읽어왔는데, 여느 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저자는 오랜 시간 책 편집과 외주교정자로 일해온, 사십 대의 끝 줄의 독신자이다.  그가 살아온 시간은 아마도 그를 386으로 규정할 것 같다.  

 

서평 중간중간 어떤 교육을 받으면, 아니 어떤 연습을 하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투영하여 책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전문 서평가의 책처럼 밑줄 그을 말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raw한 어느 한 사람, 작가가 아닌, 한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보게 하는 책은 흔하지 않다.  내가 읽은 서평가들 중 글솜씨는 아마추어지만, 교묘한 포장과 그럴듯한 구성으로 전문가의 옷을 입은 글쟁이들이 몇 있었다.  마치 공장에서 담근 기계적인 숙성을 거쳐 그 맛이 포장된 공장표 된장과도 같은 글이었다.  반면 이모부의 글은 그런 의미에서의 아마추어리즘이 아닌, 마치 우리들 중 누군가가 세월을 지나면서 그대로 깊어진 듯한, 마치 전문가는 아니지만 어머니가 집에서 담근 구수한 된장같은 그런 풍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글에서 깊은 몰입과 공감을 끌어낼 수는 없었다.  저자의 나이와 내 나이의 차이, 그리고 그의 삶과 나의 삶과 그 깊이의 간극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잔잔하고 담담한 이 책은 아마도 어느 한가로운 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땡땡이 치기 위해 사무실을 벗어나서 즐겨 찾는 허름한 카페 한 구석에 앉아서 읽으면 다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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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2-26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ransient-guest 님께서는 서평집을 정말 많이 읽으시는군요. 저는 그런 종류의 책들은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좀체로 손에 잡히지 않더라구요. 좀 더 심하게 얘기하면 저자가 읽어보라고 선물을 해 준다고 하더라도 과연 내가 읽기나 할까 싶은 생각도 들구요.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정말로 '여행지에서만 보이는 것들'이 있긴 있더라구요. 그게 무엇인지는 정말 예측하기조차 어렵지만요.

* * *

나는 여행을 즐기는 이유를 물어 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버리고 떠나는 것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나, 이제부터 찾아보려는 것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몽테뉴)

transient-guest 2013-12-27 03:06   좋아요 0 | URL
서평집이나 독서에 관한 글을 읽기 시작한 것은 잘 읽고 잘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면서부터였어요. 서재생활을 하면서 다른 분들의 깊거나 재치있는 정리를 볼 때마다 모자란 자신을 보게되구요. 다른 이들의 '평'이 궁금하다라기보다는 읽고 쓰는 것이 궁금해서 자꾸만 보게 됩니다.

낯선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니 그런 상태에서만 촉발될 수 있는 마음 속 깊은 곳의 그 무엇인가는 여행을 가지 않는다면 끄집어 낼 수가 없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