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솔직하게 말하면, 이 책은 '제목에 낚여서' 책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교과서처럼 보여줄 수 있는 구매를 통해 내 손에 들어왔다. 늘 혼자의 시간을 찾아 헤메이는 일종의 자유노매드라고 자신을 규정하는데, 정말이지 혼자라서 외로운 것과 자유로운 나의 삶을 저울에 놓고 달아본다면, 내 저울은 자유쪽으로 기울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이 책은 '혼자 산다는 것'을 어떤 클리셰를 통해 외롭고 꿀꿀한 것, 또는 마치 '신사들의 품격'이나 'Sex and the City"류의 화려한 모습으로 재단하여 각기 특이한 모습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보편적인 내용을 기대하고 펼쳤으나, 나온 것은 매우 진지하고 학구적인 '혼자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고찰이었다. 조금은 과장일까?
'혼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통해 변증법적인 분석으로 그 의미와 대상을 규정하고난 뒤의 이야기는 적어도 나로써는 한번 읽고나서 간결하게 정리하여 쓸 수 있을 정도로 간편하고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인 고찰, 존재론적인 접근, 제도적인 접근, 사회통념 등등의 다양한 방향에서 '혼자 산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그의 밥줄이기도 한 사회학 박사/교수로서의 재주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는 때로는 너무 분석적이라서 피로감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아카데미아의 사람이기 때문이고, 작가로서는 아직도 신인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한번 이야기 한 것을 다시 펼쳐서 이야기 하거나, 굳이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학계 특유의 현학성이 아닐까 싶다. 독신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해보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하지만, 기대하는 것이 '신사들의 품격'이나 'Sex and the City'의 도시 이야기라면 이 책의 제목에 낚이지 말 것.
'Life is a Trip' 그러니까, '인생은 여행이다'가 직역이라면 이 제목은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제목을 번역하면서 마케팅 측면에서의 고려와 책의 내용을 잘 갈무리 하는 것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고 할 때 이 번역은 매우 훌륭하다.
헐리우드의 영화/텔레비전 스크립 작가인 저자는 어느 날, 반복적인 일상에 지쳐 모든 것을 던지고 (는 조금 과장이지만)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다. 돌아오기 위한 여행이라기 보다는 노매드로써의, 그러니까 떠돌아다니는 그 자체의 여행을 통해 자신에게 내재된 오랜 샤먼의 피를 깨우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고생도 하면서, 2013년 현재 우리들 대다수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방법을 통한 의사적인 연결이 아닌 진정한 행동을 통한 아날로그적인 연결로 세상과 소통한다.
편견을 깨고 싶다면, 깊이 다른 것들 속에 가라앉고 싶다면, 책 읽기와 여행 이 두 가지가 답의 큰 기초를 준다. 여기서 책 읽기는 깊이 자신만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라면, 여행은 광주리에 담가 불려놓은 감자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다른 이들과 다른 존재들과 다른 모든 것들과의 섞임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일게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나는 확실히 50% 부족하다. 독서를 통해 채우는 나머지 50% 또한 완전한 50%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는 내가 행하고 있는 방편이지만, 여행은 확실히 부족한 나머지 반쪽이 아닌가 싶다. 늘 낭만적일 수는 없겠지만, 내 생애 처음 가본 이탈리아와 반도 남쪽에서 배를 타고 건너던 지중해와 아드리아 해, 그리고 메주고리예까지의 여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게는 신화와 고대사의 현장이기만 하던, 책속의 그 바다를 건너면서 잠깐 트로이의 목마와 오딧세이아를 떠올렸다면 심한 과장일까? 여행은 그렇게, 집에서는 좀체 열 수 없는, 자신의 껍질을 단밖에 부숴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어느 정도 삶의 먹거리를 채우고나면 사무실을 접고 한 일 년정도 떠나고 읽는 것이 소원인데, 아직은 요원하기만 하다.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삶은 그래서 늘 부럽기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8-6에 묶인 직장인들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살고는 있지만, 역시 부족하게만 느낀다.
그간 참으로 많은 서평집을 읽었다. 장정일, 이권우, 표정훈, 다치바나 다카시, 파란여우, 김애리, 이희석, 이지성 등등. 이 밖에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독서론과 리뷰를 읽어왔는데, 여느 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저자는 오랜 시간 책 편집과 외주교정자로 일해온, 사십 대의 끝 줄의 독신자이다. 그가 살아온 시간은 아마도 그를 386으로 규정할 것 같다.
서평 중간중간 어떤 교육을 받으면, 아니 어떤 연습을 하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투영하여 책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전문 서평가의 책처럼 밑줄 그을 말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raw한 어느 한 사람, 작가가 아닌, 한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보게 하는 책은 흔하지 않다. 내가 읽은 서평가들 중 글솜씨는 아마추어지만, 교묘한 포장과 그럴듯한 구성으로 전문가의 옷을 입은 글쟁이들이 몇 있었다. 마치 공장에서 담근 기계적인 숙성을 거쳐 그 맛이 포장된 공장표 된장과도 같은 글이었다. 반면 이모부의 글은 그런 의미에서의 아마추어리즘이 아닌, 마치 우리들 중 누군가가 세월을 지나면서 그대로 깊어진 듯한, 마치 전문가는 아니지만 어머니가 집에서 담근 구수한 된장같은 그런 풍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글에서 깊은 몰입과 공감을 끌어낼 수는 없었다. 저자의 나이와 내 나이의 차이, 그리고 그의 삶과 나의 삶과 그 깊이의 간극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잔잔하고 담담한 이 책은 아마도 어느 한가로운 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땡땡이 치기 위해 사무실을 벗어나서 즐겨 찾는 허름한 카페 한 구석에 앉아서 읽으면 다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