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나 여기나 연말연시에는 어디를 가도 엄청난 인파로 북적거린다.  이곳의 경우에는 특히 크리스마스를 30일 정도 앞둔 시점부터 쇼핑시즌이 열리는데,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받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크리스마스 쇼핑시즌은 늘 대목이다.  서점도 예외가 아니라서 이 기간동안에는 오프라인 서점이 망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희망을 품게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서점을 점령한다.  카페의 긴 줄은 물론이고, 책도 엄청나게 팔리는 것으로 보면서 내가 뿌듯할 정도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꺼리는 나 같은 사람은 갈 곳이 없다는 것.  


일을 좀더 몰아서 끝내기 위해서 어제와 그제는 꽤 오래 사무실에 있었다.  밤에 쌉쌀한 공기내음을 맡으며 불이 꺼진 사무실 건물을 나서는데 문득 아주 오래 전에 대학교 신입생 시절이 떠올랐다.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던 그 시절 세상은 내 앞에 활짝 열려 있었고, 모르면 용감한 것처럼 불가능은 없어 보였었다.  첫 학기부터 읽을 것이 많았고, 당시 미국에 온지 3년 남짓의 영어실력의 나는 모자란 공부 때문에 늘 도서관에 늦게까지 남아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캠퍼스는 깊은 산 숲속 한 가운데 있어서 밤의 차가운 공기가 나무숲을 통해 걸러져 나오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밤 10시 정도에 그렇게 도서관을 나서면서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10분 정도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혼지 웃으면서 행복해 했었다.  걸어가다가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던 너구리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었고, 밤에 떼로 돌아다니던 사슴가족을 만나면서 더욱 혼자만의 조용한 행복속에 머물 수 있었다.  그건 매우 오래 전의 기억이지만, 지금도 가끔 떠올리는 행복한 순간이다.


인터넷은 텔넷을 통해 학교로 접속해서 무료로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이메일 말고는 달리 용도가 없었기 때문에 집에 들어오면 PC는 주로 게임을 하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그땐 무엇을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깊이 들어갔던 것 같다.  지금은 책읽기를 빼고는 2-3시간 이상 계속 하는 것이 없지만, Warcraft 2를 늦게 구해서 오후 3시에 play를 시작하고서 한숨을 돌리려고 시계를 보니 밤 11시였을 정도로 하나를 잡으면 굉장히 오래 갖고 놀곤 했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서 고전게임을 돌리는데, 화려한 그래픽의 요즘 게임보다 더 재미있게 느끼는 것은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도 그때는 너무 어렵게 구했기 때문에 그랬는지, 지금의 1/5도 안되는 양이었지만, 늘 읽고 또 읽곤 해서 지금도 그때 읽었던 책들의 경우는 세세한 부분까지 꽤 많이 기억하고 있다.  많은 것들이 넘치는 지금의 시대답게, 그리고 어른이 된 유일한 이점이랄까, 원하는 것은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사들이게 되었지만, 양에 반비례해서 소중함은 좀 줄어든 것은 아닌가 싶다.


주말부터 일을 해서 그런지 이번 주는 꽤 길게 느끼면서도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다.  


미스 마플의 추억 얽힌 모험담.  예전에 다른 작품에서 한시적으로 협업했던 부유한 노인네가 죽으면서 마플에게 엄청난 유산을 조건부로 남겨 놓았다.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사건을 해결하면 이 유산은 온전히 미스 마플에게 돌아오게 된다.  잠깐 고민하지만, 사건의 밑조사를 하고나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  추리를 하기 보다는 그저 방관자의 입장으로 스토리를 즐긴 나는 아직 진지한 추리소설의 마니아라고 볼 수는 없을 듯. 


주말에 운동하면서 열심히 읽어냈다.  이제 9권이 남았는데, 다른 것을 다 제껴놓고 이 시리즈만 읽으면 모를까 2016년으로 넘어갈 것 같다.  아니면 정말 이것만 정주행할까?  고민이다.  이미 부족한 사무실 공간을 정리하여 크리스티 전집은 보관모드로 돌려놓았고, 다음 시리즈의 캐드파엘을 앞으로 빼놓았다.  이들과 함께 물만두님의 책을 읽고 자극을 받아 박스에 따로 꺼내놓은 동서미스테리 시리즈, 그리고 주문한 다른 추리소설들과 함께 2016년은 추리소설을 위주로 살아볼까 또한 고민중이다.


다시 일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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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로 먹고사는 사람도 아닌데, 왜 마감에 시달리는 기자마냥 읽은 책에 대한 정리가 자꾸 밀려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확실히 읽는 속도가 사들이는 속도를, 후기를 남기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그래도 한 권씩 남기는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있고, 나도 그렇게 내 흔적을 남기는 것이 버릇이 되다보니 밀리면 부담스러운 것이다.   


작가의 이름이나 다른 작품들은 종종 서친들의 리뷰로 접했지만, 줌파 라히리의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라는 막연한 생각에, 그리고 그간의 궁금함이 함께 동기가 되어 이 책을 읽었다.  벵골어를 쓰는 인도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작가가 되었고, 다시 이탈리아어와 사랑에 빠져 다년간 이를 배우고 연습한 후 글을 쓰면서 느낀 그간의 사정이 잔잔하게 이야기된다.  소설로 먼저 접해보았으면 좋았을 작가라는 생각이 막연하게 든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고 지금도 열심히 쓰고 읽지만, 실생활에서는 영어로 말하고 쓰고 읽는 나지만, 이런 깊은 고민을 해본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때 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우던 괴로움과 언듯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스페인어를 영어로 번역하고 모르는 단어일 경우 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야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까.  스페인어는 발음이 매우 정직하기 때문에, 그리고 선생님이 푸에르토리코 출신 특유의 된소리 발음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영어에 특화되지 않았던 내 발음은 반 최고라고 칭찬을 받았지만, 공부하고 몇 마디 말하는 수준을 넘어서 문장을 쓰려고 했다면 아마 줌파 라히리 이상 힘들어했었을 것이다.  벵골어-영어-이탈리아어에 대한 그녀의 고찰은 마치 핏줄을 느끼는 친부모에게 정작 사랑받지 못하고, 입양부모에게 사랑을 느끼면 살다가 외국인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 느끼는 그런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에도 미성년자나 동물이 죽는 장면은 영화나 소설 모두에서 지양되는 일종의 금기사항이다.  미국의 경우 이 경향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는데, 정작 다른 나라에다가는 무자비한 폭격세례를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민간인 희생자 (아이들 포함)를 부수적피해로 타자화하는 것을 용인하는 인간들의 double standard같다.  

어쨌든 그런 금기를 확연히 어기는 이번의 작품에서는 상당히 무식한 방법으로 살해되는 희생자들은 모두 십대 아이들이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을 찾기 위한 두뇌싸움을 깊이 즐기지는 않기 때문에 놓친 단서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선가 의심이 가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범인 두 명 중 한 명의 정체는 밝혀낼 수 있었다.  이제 드디어 70권에 들어간다.  2년이 넘도록 이어온 긴 여정도 거의 끝이 나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2년이 넘도록 이어진 '마의 산' 등정도 언젠가는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다.  


김영하 작가에게는 어느 정도 mixed feeling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참신해보이는 작품세계나 시도가 좋아 보일때가 있고, 때론 다소 "재수없어"보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책이나 글을 보면 왜 이런 글을 썼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그간 '보다', '말하다'까지 보고, 이번에 '읽다'를 봤는데, 굳이 이야기하자면 '보다'보다는 좋았고, '말하다'보다는 조금 별로.  책을 읽은 것에 대한 그만의 이야기인데, 김영하 작가 특유의 '~체'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읽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강의 같은 글이고, 장정일이나 다른 작가들의 책 이야기와는 많이 다른 점이 있다.  


사건이나 책이 나온 순서에 따라 읽는 것이 아닌, 순전히 책이 내 손에 들어오는 순서로 읽는 덕분에 뒤죽박죽으로 배경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는 Jack Reacher시리즈.  "Personal"은 내가 읽은 네 번째 Jack Reacher가 된다.  언제나 눈에 들어나는 사건 이면에는 다른 진정한 모티브와 목적이 있음이 끝에 가서 발견되는데, 생각처럼 뻔한 수작이 아니라서 조금씩 의심을 했지만, 끝내 마지막까지 이를 잡아내지는 못했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혼노사를 둘러싸고 막상 '적은 혼노사에 없다!'라고 외치는 듯, 늘 사건을 해결하는 시점에 반전 한 방으로 모든 것이 바뀐다.  그래도 워낙 르와르 풍의 일인칭 화자가 끌고가는 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새로운 Jack Reacher를 얻는 날이면 만사 제껴놓고 이것부터 정주행하곤 한다.  BN을 가면 신구간을 이리 저리 둘러보다가 얻는 우연의 재미다.


이런 책을 이제서야 읽다니!  서재를 꾸린 것은 2010-11년 사이니까 인연이 닿기에는 어려웠겠지만, 공연히 아쉽다.  추리소설하면 '설홍주'시리즈를 쓴 한모덕후의 블로그도 좋지만, 이분만큼의 넓고도 깊은 지식은 아닌 듯하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평생 읽을 추리소설에 대한 reference가 되는데, 읽으면서 흥미가 가는 책 일부, 그러니까 2000건에 가까운 리뷰에서 추린 200건의 글에서 고작 몇 십권을 장바구니에 담아봤더닌 금새 600불이 넘은 금액이 올라온다.  내가 읽은 작품도 간간히 볼 수 있어서 더욱 반가운 시간이었다.  르콕탐정이 한 권만 나왔다는 아쉬움도 같았고, 찰리 챈에 대한 흥미도 나눌 수 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뤼팽 전집, 그리고 홈즈 전집에 대한 반가움도 역시.  

장르를 가리지 말고 책을 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사회적인 시각으로 보면 추리소설을 SF, 판타지와 함께 main에서 꽤나 천대받는 분야가 된다.  팬들은 꾸준히 늘어가고 있겄만, 정작 저 위에 계신 분들의 대가리는 역시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닌텐도를 만들어내라고 하는 2MB짜리 뇌와 같은 분들이 다스리던 시절에서 5-6년이 지났건만, 세상은 더욱 나빠진 듯.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은 출판사에서 꾸준히 마쓰모토 세이초를 출간해주고 있고, 비슷하게 이런 저런 경로로 오래된 책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서동판에서 절판시키지 않고 계속 동서미스테리 시리즈를 내주는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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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5-12-12 0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추리소설에 꽂혔는데 물만두의 추리 책방 이거 너무 좋은데요? 덕분에 저도 이 책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 ㅎㅎ

transient-guest 2015-12-12 05:50   좋아요 1 | URL
정말 좋은 책입니다. 이분의 서재는 계속 유지되고 있는데, 맘 같아서는 글을 따로 모두 출력하여 바인딩하고 싶을 정도에요.ㅎㅎ

[그장소] 2015-12-1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

transient-guest 2015-12-13 01:39   좋아요 1 | URL
ㅎㅎ 감사합니다. 님도 좋은 밤 되시길!

재는재로 2015-12-13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물만두의추리책방보는것같네요책장에꽂아놓고한동안안읽었는데 추리소설은계속읽어야되는데 아가사추리소설이완결돼는데아직3/1 남아내요79권남은책20권마져읽어야되는데 역시저는포와로보다미스마플이더좋네요

transient-guest 2015-12-14 05:09   좋아요 0 | URL
책이 거개 그렇지만, 추리소설은 정말 다야한 소재/시재/국가/작가의 성향을 반영하죠. 좀 안다 싶으면 새로운 것이 계속 나오는 듯 합니다.ㅎㅎ
 

드디어 엘 니뇨가 그 효력을 발휘하려는지 오늘부터 주말까지 계속 비가 온다고 한다.  목요일인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 on-off로 계속 비가 오는 덕분에 아침부터 소녀감성에 흠뻑 취해 있었다.  오전부터 어두운 바깥을 보면서, 잔잔하게 우효의 노래를 듣다가 내친김에 아이유까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슬프게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슴이 설렐 일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낄 때가 있는데, 오늘 만큼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소년이 되어 설레는 맘으로 하루를 보냈다.  물론 정신 없는 하루였지만, 배경에 이렇게 예쁜 소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슈베르트의 '숭어'를 듣고 있다.  비는 잠시 멈춘 듯.  경쾌한 5중주가 사뭇 즐거운 듯 하지만, 오늘의 감성에는 맞지 않는 것을 느낀다.  곡을 바꾸려고 하였으나 막상 떠오르는 것이 없어 그냥 두었다.  우효와 아이유 CD는 회사에 두고 왔기 때문에 미니컴퍼넌트를 켠 후 CD를 꺼내고 기계에 넣거나 아니면 미니 LP Player를 연결해서 판을 얹는 ritual은 생략된다.  


생각해보면 카세트 테잎으로 음악을 듣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LP를 사고, 토요일 오전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 빈 집에 혼자 있을 때면 거실 한 쪽을 거의 차지하던 인켈전축의 문을 열고 기기를 하나씩 켠 후 워밍업이 되면 LP에 판을 올려 놓던 시절의 예식은 스트리밍으로 그때의 필요에 따라 음악을 찾아 듣는 요즘에는 거추장스러운 호사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게 물리적인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포기할 수 없는 나는 예나 지금이나 과거의 유물 같은 사람이지 싶다.


그때 사들인 LP는 지금도 대부분 갖고 있지만, 잦은 이사와 관리부실 덕분에 판이 자주 뜬다.  버릴까 하다가 혹시 이걸 어떻게 좀 잘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갖고 있다.  CD로 듣는 소리와 LP로 듣는 소리는 지금와서 들어보면 너무도 큰 차이가 있어 가능하면 LP로 듣고 싶다.  책도 많은데 김갑수 선생처럼 판을 사들일 수도 없고, 그 정도의 귀를 갖지 못해서 그냥 기회가 될 때 한 두개씩 복각되어 나온 물건을 사거나 중고상점에서 몇 개씩 구하는 정도다.  넉넉한 공간이라면 책과 음반, 그리고 엄청 많이 갖고 있는 영화 비디오/DVD를 잘 펼쳐놓고 즐기련만.  남자는 역시 작업실이 필요한게다. 


페이퍼를 연 것은 책을 남기기 위해서였는데 모처럼 다른 얘기를 하게 되어 이대로 남기고 싶다.  오늘의 여운이 조금만 더 길게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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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12-12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당시 LP를 들으려면 집안의 어르신이 음악에 관심이 있어야 가능했죠. ^^

transient-guest 2015-12-12 04:23   좋아요 0 | URL
부모님이 모두 음악을 좋아하세요. 전축은 어머님의 영향이 컸을 것 같습니다. 살림살이였으니까요.ㅎㅎ 작은게 좋은 줄 알았는데, 요즘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보니 그때의 큰 전축단지(?)를 갖고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bigger the better이라고 하더라구요.

비로그인 2015-12-12 04:30   좋아요 0 | URL
네. 집안 살림살이의 일부처럼 간주되었죠. 친구네 집에서 본 마돈나의 라이커버진 엘피 자켓에 압도되었던 게 생각나네요.
 

비가 오면 추워졌다가 2-3일 활짝 핀 날씨가 이어지면 따뜻한 햇살에 다시 가을날씨로 바뀌고 하면서 내 몸을 데웠다가 식혔다가 냉동하는 탓에 감기가 도무지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주말에는 이것 저것 일도 처리하고 쉬면서 NFL도 즐기면서 자투리 시간에 책도 열심히 읽었다.   여기에  정리할 두 권 외에도 서점에서 또 Lee Child의 Jack Reacher소설 구간이 염가판매인 것을 보고 냉큼 집어와 저녁 내내 읽었다.  '축의 시대'도 간간히 읽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조금 들여다보고, 그렇게 보냈더니 벌써 12월의 두 번째 월요일이다.  2016년에는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고 싶다.  나 자신도, 회사도, 삶도, 무엇도 모두.


목수정 작가 내지는 activist는 예전에 벙커 딴지 팟캐스트에서 강연하는 것을 몇 번 들었다.  특별히 달변은 아니고, 활동 바깥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넓은 의미의 진보진영 내에서도 이견이 좀 있는 듯 하다.  게다가 한국 남자의 관점으로 볼 때 절대로 편하게만 바라보지는 않을 삶의 형태까지 보면, 확실히 목수정은 좌파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강남좌파니 하는 세력권이나 언론의 유명세를 입고 조금이나마 힘을 갖춘 사람이 아닌 말 그대로 좌파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 듯 하다.  그런 사람에게, 여자에게, 대한민국은 진보와 보수를 따로 구분짓지 않고 상당히 답답한 면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녀가 쓴 책을 일단 한 권이라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런 목적이었다면 이 책보다는 저자의 다른 책을 봤어야 했다.  그러니까, '파리의 생활 좌파들'은 목수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목수정에 의한 파리에서 좌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역시 제목만 보고 책을 사면 이렇게 된다.  


이 책에서 소개된 15인의 삶은 확실히 주류의 삶이 아니다.  좌우를 가르기 전에 일단 그들은 굳이 분류하면 체제안에 간신히 머물러 있는 변방인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데, 그것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가난, activism 혹은 투쟁인으로서의 outsider라는 점이 삶이나 인생에 밀려 한쪽을 선택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과 다르다.  일부 공감하고, 또 어떤 부분에는 동의할 수 없는 삶의 모습과 철학인데, 이런 사람들이 많다면 사회는 최소한의 건강은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들의 '좌'파적인 삶과 철학이 과연 백인이 아닌 다른 프랑스인들, 예컨데 피부색이 다른 이민자들, 그것도 좀 사는 나라 출신이 아닌 아랍계에게도 extend되는지 확답할 수가 없다.  


이 책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봤고, 생각할 만한 것들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목수정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다음 기회에 그녀가 쓴 그녀에 대한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김영하 작가의 팟캐스트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를 받았던 책인데, 빨간 책방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2012년 언젠가였는데, 이제서야 내 손에 들어왔고, 주말에 바로 읽었다.  바로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책이 주는 긴박감 때문인데, 담담하게 시간순으로 당시의 일을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는 박력은 대단했다.  


에베레스트로 대표되는 극한산악등반은 꽤 최근까지도 전문가들만의 영역이었다.  거의 국가대표와 동일시되던 극소수의 모험가들만이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자격이 있었고, 초기에는 특히 다수의 용기있는 산악인들은 이 과정에서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고상돈이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올랐는데, 그 역시 79년 북미최고봉인 매킨리 등정 직후 조난사했는데, 극한산악등반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수 많은 사례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랬던 에베레스트가 어느 때부터인가 돈만 있으면 그리고 약간의 체력만 된다면 숙련된 가이드와 셸파로 이루어진 팀의 서포트를 받고 오를 수 있는 '관광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전문가라고 해도 성공적인 등반과 귀환을 보장할 수 없는 이 극한의 최고봉이 이제는 줄을 서서 올라가는 도봉산 자락처럼 붐비게 되었고, 당연히 업체간에, 그리고 스폰서간에 경쟁도 생긴 덕분에, 이제는 높은 봉우리를 극적인 방법과 루트로 오르는 대신, 이 전문가들은 서로 더 많은 비전문인들을 한번에 성공적으로 산꼭대기에 올려놓기 위한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것이 저자가 에베레스트에 오르던 시점을 전후한 이 바닥의 fact였다.  


전문가도 어렵다는 고산지대에서의 적응을 시작으로 캠프에서 캠프로 이동하는 다양한 업체와 국가의 '관광객'들과 리더들 사이의 불협화음과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늘어가는 업무강도 덕분에 아주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사고위험이 임계점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은 저자가 이 끔찍한 사고 - 유수의 전문가들과 관광객을 포함한 등반객들이 조난사한 - 를 겪고도 한참이 지난 시점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운도 끔찍하게 나빴다.  직접적인 조난원인이 된 정상에서의 눈폭풍이 딱 두 시간만 더 늦게 왔더라면 모두 한숨을 돌리면서 이번에는 정말 위험할 뻔했다고 하면서 등반성공을 축하하고 있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스케줄에 맞춘 등방 또는 하산이 이루어지기만 했더라도 눈폭풍이 오기전에 이미 지원캠프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사고를 겪은 후 지금까지도 완전히 이 경험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1997년 당시).  어려운 일을 함께 겪으면서 친해진 cool guys들이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이 죽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발을 동동 굴렀는데, 어떻게 그것을 잊어버리고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의미를 찾기 위한 책이 아니다.  그저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을 더듬고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하여 복기한 책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있는 그대로의 조난당한 사람들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추억이 되어 걸러진 이야기가 아닌 매우 raw한 그대로의 이야기 말이다.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한 생각을 한번 더 해보게 되었는데, 나처럼 체력도 용기도 부족한 사람은 이런 극한스포츠에 대한 동경이 별로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더구나 난 90년대의 가격으로 6-7만불을 지불하면서까지 에베레스트를 올라갈 이유도 마음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것보다 훨씬 덜한 모험이라도 일단 떠난다면 최악의 경우를 미리 생각해 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나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운명은 희생자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긴박감 이상, 안타까움에 젖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내 자신을 투영해 보았던 것 같다.  김영하 작가 혹은 빨간 책방이 소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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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 비타 악티바 : 개념사 5
노명우 지음 / 책세상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아방가르드에 대한 간략한 이론적 개론서. 노명우의 이름을 보고 구입했는데, 시공사나 창해 ABC과의 책인줄 알았다면 조금 더 고민했을 것이다.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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