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을 꿈꾼다. 아무리 타인지향적인 사람도, 혼자이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간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자신만의 왕국을 꿈꾸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그것이 서울에서 가장 좋은 대지에 지은 성, 그 속에서도 누각과도 같은 곳일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이에게는 한 평 남짓한 작은 방이 될 수도 있음이다. 이 남자, 김갑수는 약 36평 정도가 되는 자신만의 왕국을 갖고 있다.
마포의 한 건물 지하실을 통째로 개조하여 음악을 듣기 위한 자기만의 공간으로 개조한 것으로써 4번째 이사를 마무리한 김갑수의 왕국. 그 이름은 July Hall이다. 별다른 생각은 없이 당시 들렸던 guest의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고 하는데, 김갑수가 말하는 인생이나 사랑관을 보면 July라는 여인은 꽤 한 미모했을 것이다.
어쨌든. 자신만의 공간에서 3만장의 LP와 그보다는 좀 못하지만 필경 2-3000개는 될 듯한 CD, 그리고 앰프와 스피커를 갖고 음악과 함께 김갑수의 이대병기인 커피우리기를 하면서 글을 쓰고 인터뷰를 다니고 강연을 다녀 번 돈으로 다시 앰프와 스피커를 사들이여 비싼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면서 산다. 집에서는 일주일에 1-2일 정도 가서 살고, 나머지는 이 공간에서 살고 있으니 podcast로 들은 그와 wife의 관계는 정말 특이한 동거 또는 파트서쉽이 아닌가 한다.
커피는 모르겠고, 음악도 이렇게 비싼 취미로는 즐기지 않을 나는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그저 책과 미디어, 게임 소프트로 채워놓고 그렇게 혼자서, 때로는 친한 친구와 함께 가끔씩 숨어들고 싶다. 날씨나 일기를 비롯한 일체의 방해물이 없도록 지하로 파고든 그의 왕국을 보면 포가 창조한 오귀스트 뒤팽과 그의 친구의 서식처가 떠오른다. 데카당적이기도 하고 벰파이어를 연상시키는 그들처럼 김갑수도 그렇게 낮과 밤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같다. 부럽기 그지없다.
같은 책이 두 권이 있게 된 연유는 역시 모르겠다. 아마도 처음에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읽고나서 바로 사들이고, 다시 어느 날 기억해서 또 사들인 것이겠지라고 짐작만 하고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러시아 문학이라는 거창한 상징성을 걷어내고 보면, 적어도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이전의 작품들은 막소설에 가깝게 읽힐 수도 있겠지 싶다. 이 무슨 무식한 소리냐고 반문한들 내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읽고 나면 시대상을 보는 것과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약간의 상징적인 은유 외에는 특별하게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도 딱 그렇게 읽힌다. 시대적인 배경과 한 사나이의 기행에서 나오는 남자의 인생에서 경험하는 사랑의 단계, 모습, 이에 따라 변하는 그 남자의 사랑관 정도가 내가 본 전부. 책 자체도 그리 어렵지 않고, 특별하게 까다로운 묘사도 없다. 어쩌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특히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실 문학성이 아니라 심리묘사, 그러니까 간질병의 경험이 가져다준 부산물로써의 복잡하고 극악한 분열적인 자아이탈의 심리묘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최소한 어떤 러시아 문학의 '정수'들은 그리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집중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읽었기 때문에 그저 장자의 고사가 떠올랐던 점, 그리고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점 외에는 기억할 수가 없다.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의 독대. 도시 이야기. 나중에는 누가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는지, 누가 누구인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 선문답을 하는 듯 아리송하다.
나중에 다시 천천히 읽어볼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