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 : 운명을 읽다 - 기초편 명리 시리즈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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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인 일인지 어젯밤 잠자리를 설쳤다.  꿈이 기괴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자다 깨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서 오랫만에 커피를 끓여 놓고 간단한 업무를 처리하다가 최근에 읽은 몇 권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서 알라딘에 들어왔다.  일전에 Big Island에서 코나커피를 사왔는데, 지금 마시고 있는 것은 비록 마트에서 산 싸구려에 미리 갈아놓은 것이지만, 그럭저럭 마실만 하다.


남자라면 흔히 십대에서 이십대 사이에는 내공이나 장풍 같은것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보다 조금 윗대의 이야기지만, 김정빈의 소설 '단'이 가져온 정신세계에 대한 열품적인 관심도 그랬고, 김용의 무협지에서 보여준 기인이사들의 무림세계에 한창 빠져 지낼 때엔 정말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다가 나이가 조금 더 들고, 이런 이야기들을 조금은 가려서 받아들이기 시작할 무렵엔 음양오행이니, 운수는 하는 사주와 명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동양의학과 함께 이 분야도 무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함께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실체가 불분명한 덕분에 굉장히 쉽게 다가오는 내공이나 장풍, 전문분야로써 체계가 잘 잡혀있는 의학과는 달리 명리라는 것은 굉장히 어렵게 생각된다.  한문도 그렇고, 음양오행과 십간십이지도 그렇고, 뜯어서 몇 가지를 아는척 할 수는 있지만, 연결시켜서 보는 것은 꽤 집중된 공부를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에서 돌려보는 책은 주로 토정비결이나 당사주 같이 기초적인 정보 - 생년월일, 시 등 - 을 input하면 통계적인 답이 나오는 계통이 많다.  이건 결국 '점'을 보려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거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려는 노력인데, '명리'에서 강헌선생이 주장하는 바는 많이 다르다.


강헌 선생이 말하는 '명리'공부의 목적은 쉽게 말하면 삶에 대한 공부인 것 같다.  '이렇게 될 것이다, 저렇게 안 하면 난리난다'는 투의 운명론, 그리고 주기적으로, 아니면 자주 점을 보면서 마약처럼 여기에 기대게 되는 것을 무척 강한 어조로 경계하고 있는 이 책의 명리론이 그간 오랜 시간 이쪽으로 관심을 갖고 책을 보고, road-test(?)해온 나에겐 아주 신선하게 다가온다.  


강헌 선생은 지난 4-50년을 호호탕탕 살아왔다고 한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늘 사람과 돈, 그리고 술이 떠나지 않았던 그는 그러나 40대 중반에 찾아온 동맥박리로 정말 죽다 살아나고, 한 동안 자리보전을 하면서 인생의 깊은 허무와 슬픔을 맛보면서 명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  그가 말하는 '명리'해석, 나아가 '운명론'은 참으로 그의 인생여정을 닮은 것 같다.  거침없고, 당당하고, 솔직하다.  진짜 공부는 물론 제대로 할 능력이 없는지라, 그저 한번 쭉 읽어내는 정도로 마쳤다만, 강헌 선생의 강의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역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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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16-02-14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주역관련 책을 잠시 보았는데 관심가는 책이네요, 그리고 주역은 의존성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역시 점이 맞는 것 같아요.

transient-guest 2016-02-16 03:03   좋아요 0 | URL
`점`의 특성은 기실 `미래`를 보려는 모든 시도, 이를테면 교회/성당에서 보는 예언기도를 받는 것에서도 볼 수 있는데, 중독되면 매사 여기에 매달리게 되는 것 같아요. 역술은 길이 두 갈래가 있는데, 둘 다 좋거나 둘 다 나쁜, 그러니까 어떻게 해도 판단이 어려운 기로에서 이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2016-02-16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6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8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9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9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0 0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에 관한 글, 책장, 서재, 서점, 아니 책에 관련된 글이라면 이것 저것을 모아들인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 책읽기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되었고, 유명한 작가들의 서평집이나 에세이를 읽는 것에서, 서재와 서점소개, 좀더 깊은 내용의 책읽기 에세이 등 여러 방면으로 뻗어나간 결과 지금은 못해도 이에 관련된 책들이 200권 정도는 모인 것 같다.  처음에는 좋은 책을 만날 확률이 높았지만, 많이 알려진 책들을 두루 읽고 나니 요즘은 좋은 책보다는 보통의 책을 만날 확률이 훨씬 더 높고, 가끔은 정말 실망스러운 책에 낚이는 일도 있다.  특히 지난 5-6년 간 정말 많이 쏟아져 나온 책읽기를 가장한 성공학책이나 자계서에 몇 번 낚이고 나니, 저자도 뜯어보고, 특정한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살펴보게 된다.  일단 책과 성공, 커리어, 직업 등, 책을 '현실'적인 성공 혹은 이를 위한 적용의 도구로써 접근하는 책들은 무조건 내버려두게 된다.  워낙 부화뇌동하는 부분도 있고, 주관적이지 못할 때도 많아서 이런 책들도 초기에는 꽤 호의적으로 바라보았으나, 지금은 마치 자기관리를 열심히 해서, 아름다움을 잘 가꿔서 유곽에 내놓아 비싸게 팔라는 소리로 들릴 때가 더 많다.  그런데 이번에느 꽤 좋은 책을 여러 권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읽은 서경식 교수의 세 번째 책.  다 구해볼 작정이니까, 절판되지 말고 좀 기다려주었으면 좋겠다.  앞서 몇 번 얘기했지만, 이분의 글에서는 깊이 가라앉은 허무가 느껴진다.  프리모 레비에 집착하는 것도 그랬고, 조선사람으로서, 일본의 말과 글을 쓰고, 그곳에 살되, 일본인이 아닌, 그러나 한국이나 북조선사람도 아닌 평생의 이방인으로서의 삶에서 생긴 상처와 막막함.  그리고 윗 형들 두 분이 조국정부의 모략에 의해 사상범으로 만들어져 40년 가까이 수형생활을 하던 시간동안의 투쟁, 아니 삶이 그냥 바깥의 부조리함과의 싸움, 정체성이 무엇인지의 내면적인 싸움이었던, 그러면서도 일상을 유지하였고 커리어를 만들어간 지난함까지 너무도 많은 이유로 이 분의 글은 읽을때마다 나를 먹먹하고 절절하게 만든다.  


재미있는 점은 이 책에서 나온 여러 책들, 어린 서경식에서 출발해서 십대와 이십대를 거치고, 지금까지 그의 기억에 남은 많은 일본의 근현대소설과 작가들이 눈에는 꽤 익숙했다는 점이다.  작년에 갑자기 관심을 갖고  일본근대소설과 작가들을 살펴본 덕분일게다.  좋은 책을 쓰는 사람이라도 자기가 살아온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 무척 힘든 일임을 몇 작가들의 '식민지 조선'언급의 일화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식민시대를 전후하여 일본인들이 가졌던 조선에 대한 인식을 살필 수 있고, 증거로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같은 시대의 소설 등 일차적인 사료를 읽는 것이라고 할 때, 이들을 사들여 모으는 것은 현재 일본이 취하고 있는 과거사에 대한 자세와 인식을 비판하고 그들의 거짓됨을 반박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서, '그래서 뭐 어쩌란 말야?'라는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는데, 이번이 그랬다.  무엇인가 심오한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우 주관적인 방법의 책정리 접근인데, 굳이 그렇게 해야하나 싶다.  책장을, 정확하게는 책장의 종류와 위치 및 구성을 편집해서 지금 읽고 있는 책, 보관하는 책, 다시 보지 않을 책 등으로 따로 모아두면 정리도 편하고 일목요연하게 자신의 thought-process를 볼 수 있다는 등, 그럴듯한 이론이긴 하다.  게다가 저자 또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고, 90년대 초, 36살의 나이로 일본 IBM의 총책임자가 되었던 센세이션의 주인공이었으니만큼 한번 정도 귀를 씻고 들어줄 수는 있겠다.  예전에 그가 쓴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는 많이 공감을 했었는데, 막상 지금와서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다.  사람이 늙는 것처럼 책도 늙어간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은 나이를 먹고, 생각과 경험이 늘지만, 책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도 생각된다.  20대에 강렬한 인상을 준 책을 40대에 만나면 덜 자란 아이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나는 특별히 저자의 방식을 따를 생각이 없다.  하지만, 자리가 부족해서 책을 이중삼중으로 꽂아 정확히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 지금, 한 눈에 책이 눈에 들어오도록, 말아자면 외장형 두뇌처럼 보이는 책장의 구성은 좀 부럽다.  


멋진 책이다.  상하이 교통대학교 교수인 장샤오위안의 책과 서재에 대한 이야기.  젊은 시절을 문혁 속에서 보냈고, 그 삼엄한 시절에도 열심히 책을 구해서 읽고 중개했다고 한다.  이 시절 금서를 구해 돌려보던 그와 친구들의 일화는 마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의 주인공들 같아서 다이 시지에가 저자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전해 듣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문혁을 생각하면 참 무지막지한 시간인 듯 한데, 역시 책과 문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시련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만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여기에 견줄 수 있는 것이 나찌의 분서인데, 그래도 진시황보다는 훨씬 못한 2등이다.  


문과와 이과를 두루 익히라는 좋은 말씀도 감사하고, 책을 이렇게 많이 사들여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에 '그럼 괜찮고 말고'라고 말하는 듯, 그간 모아들인 장서가 3만 권이 넘는다는 이야기도 좋았다.  몇 가지 좋은 말씀을 여기에 적어서 나누고 싶다.


"눈 내리느 밤, 문을 닫고 금서를 읽는' 것은 중국 문인들이 줄곧 사랑해 온 경지다.  수많은 책이 금지됐던 그 시절, 문을 닫고 갖가지 '봉자수'의 '독초'를 읽는 것은 얼마나 자극적인 일이었는지!"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옛날에 부모님 몰래 TV를 보던 것.  금요일 저녁이면 성당모임에 6-7시 정도 가셨다가 10-11시에 돌아오시곤 했는데, 이때 열쇠를 다 걸어잠그고 한쪽 귀는 엘리베이터 소리에, 한쪽은 TV에 걸어놓고 평일엔 금지된 TV시청을 즐겼던 기억이 있다.  볼거리가 없었고, 그 시간대에 하던 한국방화 - 그래, 한국영화는 '영화'가 아닌 '방화'였다 - 를 본 덕분에 지금은 가끔씩 영화사에 등장하는 의미있는 한국영화 몇 편은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수재는 군사를 논한다'라는 중국 문인의 전통적인 취미도..." 이 구절을 보고 나도 군사학이나 전쟁사 책을 읽고 이에 대한 논하고 싶어졌다.


"나는 대개 조용히 경청만 했지만 듣는 내내 상쾌한 봄바람을 맞는 듯 선생의 말씀에 깊이 감화되었다" 이런 표현은 현대 한국소설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자문화권 특유의 비유같다.  지난 시절에는 진부한 표현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주 신선하게 들린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그 기분이 어떤 것인지는 조금 알 것 같다.


"역사를 공부할 때는 역사서만 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한쪽에는 연표, 다른 한쪽에서 역사 지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이해하고 싶다면 이 점은 필요 불가결하다."  공감 100%


"난 이런 충동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한다.  중년으로 접어들수록 더욱 귀하게 느껴져서 이런 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소중히 하려고 한다.  젊을 때는 지식욕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걸 모른다...어떤 일에 흥미가 생기고 그 분야에 좀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할 때는 관련된 책을 읽는 편이 좋다...지금까지 독서는 나의 낙이었다.  내 인생의 정신적 지주였다.  나는 독서를 통새 나 자신을 지탱하고자 했다.  독서는 나 자신이 진실로 꽉 차 있다고 느끼게 해 주었고 허황되지 않았다."  정말 용기를 주는 말씀이다.  내가 가끔 미친듯이 한 작가를 파는 것도, 어떤 분야에 잠깐이지만 푹 빠지는 것도 결국은 '중년'의 나이에 더욱 귀한 지적 충동인 셈이다.  내 독서행각에 든든한 멘토이자 우군을 얻은 듯하다.


"책을 모아서 가장 직접적으로 좋은 점은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찾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나는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주지 않는 편이다.  돌려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탓이다.  책에 대한 나의 애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책을 빌려 가고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굴리다가 책을 잃어버리면 없어졌나 하고 만다." 실제로 겪은 일이다.  그래서 나도 또한 부모님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책을 빌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불안하다.  여러 권을 한꺼번에 빌려드렸더니 집에 있는 책꽂이네 넣어놓고 돌려주지 않고 계시기 때문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책장을 보는 일이 무척 즐거울 것이다.  하루 종일 나가지 않아도 된다면,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재에서 보낼 것이다" Me too, me three, me four...


"독서에서 가장 좋은 경지는 놀이 삼아 읽다가 역사 자료를 발견하는 것이다"


"좋은 서평에는 세 가지 의무가 있다.  첫째, 책을 소개한다...둘째, 책을 평가한다...셋째,...책에서 재미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 독자와 공유하는 작업이다..."  이건 어렵다.  나는 고작 소개하는 수준인데, 이건 매우 쉬운, 그러니까 가장 낮은 수준의 서평이다.


"관심이 있다면 시간은 생기기 마련이며, 문과와 이과를 두루 익히겠다는 목표는 평생을 들여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요금 공부하는 젊은이는 달달 들볶이거나 경비가 없어 학술회의조차 참가하지 못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각양각색의 비교 평가를 하지 않으면 처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빠진다...베이징대학교의 리링교수는 대학을 양계장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작금 한국의 현실이 이렇다.  아니 이것보다 더하면 더할 것이다.  대학교는 학사과정 뿐만 아니라 석박사과정도 결국 '취업학원'의 구성과 목표를 따르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무엇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결국 높은 수준의 학문이 불가능해지고,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비판하는 것도 어려워질 것이다.  그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국가의 재화를 좌지우지하고, 심지어는 신앙생활까지 주도하고 있으니 개탄할 노릇이다.  


"어떤 상식 (혹은 진리)이라도 적용 범위라는 게 있고 이 범위를 넘어서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되는 대로 아무거나 가져다 붙인 사회-정치-경제이론이 횡횡하는 지금의 시대에.


"인생의 고수는 사람을 볼 때 대체로 작은 데에서 큰 것을 아는 법이다"  so true!


김용소설의 마니아를 자처하는 나에게 너무도 반가운 일화도 소개되었는데, 저명한 학자의 김용소설탐독과 비평이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과거에 나온 판본 외에는 갖고 있지 못한 내 처지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알라딘에서 김용의 작품들을 보관함에 담아놓기는 했는데, 예전에 그랬으나, 자꾸만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장샤오위안의 책사랑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영화사랑인데, 영화를 즐기면서 이를 모아들인 그는 2-3년 사이에 금방 3천편이 넘는 DVD를 모았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VHS-DVD-BRDVD로 모아들인 나도 그 정도는 안 될 것이다.  정말이지 고수를 만난 기분이다.  이런 분과 말이 통해서 '무공'을 절차탁마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전에 "물만두의 추리책방"을 읽고 저자를 추억하고 싶어 이 책을 읽었다.  일면식은 커녕 내가 서재에 제대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이라서 교류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분의 일상에서 큰 공감을 얻거나 하지는 못했다.  다만, 하루가 지나면, 그만큼 삶에서 멀어지는 듯한 (이젠 결말을 알고 있으므로) 그의 삶이 안타까웠다.  이 글을 통해서 그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작은 사회생활을 한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황우석은 참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이들을 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람.  지금도 이를 둘러싼 음모론에 무엇에 말이 많지만, 확실한 것은 황우석이 연구를 하지 않았고, 그의 조장 또는 묵인하에 가짜연구가 이루어졌고, 이를 성공으로 포장하여 널리 선전했다는 점이다.  현 시대 과학기술발전의 상징과도 같은 생체공학과 robotics, 이 두가지 길이 서로 공존하고 경쟁하면서 치명적인 병이나 사고로 신체의 일부 또는 기능을 잃은 사람들을 치료하고자 하고, 이는 AI와 big data를 비롯한 컴퓨터공학과 접목되어 더욱 큰 발전을 이룰 것임을 볼 때, 황우석 박사가 좀더 차분하게 먼 미래를 바라보고 연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만, 어쨌든 그는 참 나쁜 짓을 했다.  


그럭저럭 읽은 책들 중 두 권을 빼고는 읽은 기록을 남겼다.  잠깐 한숨을 돌리고 또 일하고...챗바퀴속으로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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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한번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벌써 2월이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을 블록으로 나누어 보는 관점이 생겼는데, 3월이면 벌써 한 해의 1/4이라는 식이다.  멀리 LA에서 SF를 운전하고 다닐 때에도 분기를 나눠서 시간/거리를 보면서 지루함을 견뎠었는데, 아마 시간을 블록으로 나누는 버릇도 그 즈음에 생긴 것 같다.  직장이라는게 원래 놀러가는 곳은 아닌데, 당시 남의 집살이가 참 힘들었던 모양이다.  이상도 재화도 시간도 보람도 없었던 LA시절, 그래도 좋은 분들을 몇 알게 되어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평생의 밥벌이도 이때 솜씨를 키운 것인데, 이건 회사의 덕보다는 내 덕이 더 크다는게 나의 의견이니까, 특별히 고맙지는 않다.  아무튼, 이런 계산으로 하루의 업무를 진행하고 결과를 내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한 해의 반 정도는 정말 금방 지나가버린다.  


77권까지 드디어 독파했다.  그런데, 막판으로 가니까, 한 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소품집처럼 짧고 흥미있는 이야기들로 단편집이 꾸며져 있다.  지금 읽고 있는 78권도 그렇고, 이런 방식으로 짜여진 것도 꽤 좋다.  특히 예전에 등장했던 인물들을 짦게 다시 만나는 기분도 묘하다.  잠깐이지만 새터스, 할리 퀸, 갑자기 떠올리니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해결사 양반까지, 2년 하고도 반은 넘는 시간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게 된 것 같은 반가움?


분명히 잠시 캐드펠을 읽지 않으려고 했다.  뚜렷하게 반복됨에 따른 패턴의 지겨움 내지는 익숙함 때문이었는데, 다시 붙잡게 되었다.  그간의 진행도 궁금했고, 복잡한 머리를 풀어주기 위해서이다.  같이 시기에 읽기 시작한 '흑사관 살인사건'은 동서동판이 아닌 다른 출판사의 번역인데, 여전히 읽기에는 버겁다.  일전의 판본은 번역의 문제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저자가 글을 쓰는 방식의 문제가 더 큰 이유인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다시 이 시리즈를 잡았는데, 크리스티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 역시 끝가지 가볼 생각이다.  


1편에서 시작된 내전은 계속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복잡한 상황에서도 상속, 영토확장을 위한 정략결혼 같은 소규모의 음모는 계속 이어진 모양이다.  여기에 황후를 위해 차출된 재화를 전달하기 위해 탈출하였으나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은 -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여기에 영지를 탈출한 농노가 함께 일종의 생계형 사기행각을 벌이고, 이 과정에서 부수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등, 전쟁은 비껴갔지만, 시루즈베리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역시 추리보다는 시대극을 읽는 마음으로 즐긴 작품이다.  


황후에게 불리한 전황이 계속되는 동안 이를 돕기 위해 모인 재물을 품고 포위된 성을 탈출했던 밀사가 재물과 함께 사라진 사건, 부근의 왕당파 영주의 아들이 수도원에 맡겨져 있는 동안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영주가 죽고, 손자를 데려다가 정략결혼을 시키려는 할머니와 아이를 보호하려는 수도원의 대립,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성인'같은 은수자와 그의 종자, 농노를 잡으러 온 다른 지역의 영주와 그의 아들, 그리고 매 사냥꾼.  이들이 이번 책의 배경이자 사건을 구성하는 인적 요소라고 하겠다.  


보통은 둘 중 하나가 싫어했을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한 정략결혼이 사실은 당사자들 모두가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었는데, 현대판 왕후장상이라는 재벌가나 고위 정치가집안의 정략결혼도 이런 형태가 아닐까 싶다.  공공연히 서로 맞바람을 피우고 부부관계만 유지시킨다는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는데, 그럭저럭 맺은 부부간, 일종의 동맹이라고도 하겠다.    


생각이 조각조각 나서 좋은 flow를 가진 글이 나오지 않는다.  서평이 무엇인지, 독후감은 또 무엇인지, 이들을 잘 쓰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잘 쓰는건 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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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기 2016-02-1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 독파! 진심 축하드립니다.

transient-guest 2016-02-12 03:53   좋아요 0 | URL
거의 다 왔습니다. 감사합니다.ㅎㅎ 이제 한 권 남았네요. 마지막 몇 권이 계속 단편집이라서 진도가 빠릅니다.
 

어제 연초에 주문한 책을 넘겨 받았다.  갑자기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들 중 내가 갖고 있지 못한 책들을 모아들여야겠다는 강박증(?) 같은 것으로 인한 충동구매였는데, 결과적으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새로 나온 것이 없어서 몇 권 못 사고 나머지는 '박람강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나온 북스피어의 책 몇 권과 이런 저런 책에 관한 책들, 그리고 마태우스님의 추천으로 산 '사십사'였다.  그런데, 다치바나 다카시의 다음의 두 권이 문제였다.


그냥 제목을 보면, 다른 책이다.  제목만 보면.  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제외하면 그러나 이 둘은 완전히 같은 책이다.  나오기로는 '청춘...'이 2011년 12월로 먼저였고, '스무 살...'은 2012년에 나왔다.  나온 시기를 보면 왜 '청춘...'이 제목으로 먼저 쓰였고, 원제로 추정되는 '스무 살...'로 바뀐 것인지 감이 온다.  물론 이건 순전히 추리이고, 사실 정확한 원제도 그렇고, 내가 말하는 것은 어떤 확실한 물증을 갖고 그러는 것이 아님은 분명히 해둔다.  어쨌든.  그렇게 '제목'장사에 놀아난 꼴이 되었다.  그것도 제목에 낚인 것도 아닌, 순전히 내가 좋아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모두 소장하고 읽어보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제대로 걸린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출판사에 같은 역자이니, 이건 완전히 당시 유행하던 '청춘 거시기'에 편승했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화도 나지 않고, 그냥 허탈하고 황당한 이 맘이라니.   다치바나 다카시와 나의 독서노선이나 철학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그의 책사랑을 존경하고 특히 건물을 짓고 책을 모아들여 작업실로 쓰는 부분은 부럽기 그지 없다.  김갑수의 July Hall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생각되어도, 기실 음악이나 커피보다는 책에 더 꽂힌 나 같은 이에게는 '고양이 빌딩'이야말로 천국 그 자체가 아닐까?   참고로 내가 갖고 있는, 그러니까 읽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뇌를 단련하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멸망하는 국가 - 다치바나 다카시의 일본 사회 진단과 전망

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우주로부터의 귀환

임사체험 ()

지식의 단련법 - 다치바나 식 지적 생산의 기술

천황과 도쿄대 1 - 현대 일본을 형성한 두 개의 중심축

천황과 도쿄대 2 - 현대 일본을 형성한 두 개의 중심축

청춘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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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길어도 아프지 않다 - 다치바나 다카시와 혁신 리더 16인의 청춘 콘서트

스무 살, 젊은이에게 고함 - 다치바나 다카시와 일본 지식인 16명의 스무 살 인터뷰

지의 정원

 

'임사체험'은 황당하게도 '하'편이 절판이라서 도무지 구할 수 없게 되어 버렸는데, 출판사로써 좀 무책임한 것은 아닌가 싶다.  이를 포함하여 너무 읽고 싶은데 절판이 되어 고가의 회원중고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책들은 다음과 같다.









아무튼 졸지에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집가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아무렴 판본이 특별히 다른 것도 아니고, 원본을 복각한 표지 디자인도 아닌, 순전히 장사치의 '제목'장난 때문에 고작 일년 사이에 새로 나온 판본을 초본과 함께 사게 된 것은 정말 장난질에 놀아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모두들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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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2-0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이런 -_-

transient-guest 2016-02-03 08:57   좋아요 0 | URL
진짜 황당했어요.ㅎㅎ 한 달을 기다려서 받았는데. 글구 문제삼지는 않았지만, 오면서 박스가 파손됐었는지, 아니면 다른 것들이랑 같이 왔다가 분리된 것인지, LA 알라딘에서 여기로 오면서 다른 박스에 담아서 보내졌더라구요. 근데, 내부에 제대로 처리를 안해서 책이 이리 저리 쏠리고 흔들린 흔적이...-_-:: 가끔 좀 그래요

아무개 2016-02-03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 ㅡ..ㅡ

transient-guest 2016-02-03 08:58   좋아요 0 | URL
넵! 딱 그렇습니다.ㅎ

붉은돼지 2016-02-03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그건 그렇고요 ㅎㅎㅎㅎ
고양이 빌딩 오랜만에 들어봅니다.......아마도 장서가 수집가들이 꿈꾸는 꿈의 빌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만....그러니까 그 책이 집에 어디 있었던 것 같은데.....요즘은 거의 못본듯하고...
집에가면 한번 찾아봐야겠어요..그리고 꺼져버린 꿈의 불씨을 다시 살려봐야겠어요. ㅎㅎㅎㅎ

transient-guest 2016-02-04 02:48   좋아요 0 | URL
`솔직히 내부구조는 좀 답답할 것 같기도 하지만, 건물 하나를 통채가 책으로 가득찬 공간이라니 도시속에서 기인이 은거하기엔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ㅎㅎ

해피북 2016-02-03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정말 황당하셨겠어요. 이건 알라딘 고객센터에 이야기해야하는게 아닐까요? 개정판이라는 글이 있어야하는거 아니냐면서요 ㅜㅜ

transient-guest 2016-02-04 02:4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근데, 또 알라딘에 따져서 뭐하나 싶기도 하구요.ㅎ
 

작년부터 일년에 다섯 군데는 돌아다니자는 계획을 세웠다.  일단은 여행이든 일이든 구분없이 다섯 군데를 채워넣기로 했다.  그 결과, 작년에는 이런 저런 일로 (1) 뉴욕 두번, (2) DC 한번, (3) Oahu 한번, (4) 나파밸리 두번, (5) 샌프란시스코 두번 - 그간 가보지 못했던 곳들로 일정을 잡았으니 여행으로 계산했다.  써놓고 보니 계획을 세우는 것, 이를 통한 시간화와 구체화가 꽤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금년에도 다섯 군데 이상을 돌아다니자는 여전히 막연한 계획을 세웠다.  물론 그 외에도 세부적으로 정말 많은 것들을 목록에 올려 놓았다.  일단 시작은 좋다.  


한번 여행의 재미를 느끼고 나니, 가끔은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아니, 남은 삶을 reset해서 책에서만 읽는 노마드가 되고 싶기도 하고 (5년씩 세계를 돌면서 일하다 여행하다를 반복하는 등),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삶을 살고 싶다.  물론 현실은 남은 생을 위해서 열심히 벌어 축적해야 하는 아.저.씨.  꿈이라도 꾸는 것이 그나마 아직은 내 마음이 살아있다는 증거겠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개개인의 이유로 일본에서 유학생이나 관광객이 머무는 것 이상의 시간을 그들 속에서 살아본 매우 생생한 이야기들.  그런데, 이것을 책으로 엮어낼만큼의 가치는 솔직히 모르겠다.  블로그에 올리는 수준의 글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지만, 책으로 모을 만큼의 수준인지는 모르겠다.


'한 번쯤 일본에서 살아본다면'이라는 담담하면서도 감성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에서는 기획의 냄새도 나고.  책이나 책의 내용이 특별히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일고 나서의 허탈감은 좀 그렇다.  뭐랄까, 마치 성공학 독서모임이나 세미나의 마지막 강의시간에 쓴 수강생들의 글짓기를 모아서 책으로 냈다고 하면 너무 박한 평가일까?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이 책에서 다뤄진 삶에 그리 공감하지 못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꽤 흥미롭게 다가왔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 간다는 것, 이런 것들이 모이면 나도 언젠가는 꼰대가 될 수도 있음이다.  그래도 이 책은 그저 그랬다는 점이 온전히 내 탓은 아닌 것 같다.  


일단은 대단한 용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 다음, 관광이 아니었을, 말 그대로 '여행'이었을 이 아이의 첫 세계여행에서 큰 공감을 얻지는 못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어린 시절에 많은 곳을 떠돌아보지 못한 것이 큰 미련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런 여행에 대한 모호한 동경이 없지는 않지만,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돈을 적게 들이고 어떻게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떠돎은 일견 멋지다고 보이기도 하지만, 무엇인가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하고, 보다 더 편견을 갖고 이 아이의 여행을 들여다보게 했다.  그래도 좋은 팟캐스트에서 추천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기에 더더욱 조금이지만 꾸준히 느껴진 실망감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젊은 사람의 시간을 질투하는 노인네의 심정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왜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이 와 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끔, '이건 좀 아닌데'하는 생각을 하게 했을까?  의문이다.  


일단 고생하면서 다니기엔 나이도 시간도 부족하다는 점도 있고, 없으면 그냥 안 다니는 체질이라는 점도 있고, 카우치서핑이든, 우연이든, 남의 신세를 지는 것도 그다지 맘에 내키지 않는 성격도 있고, 외국에 대한 동경이랄까, 꼭 유색인종이 아닌 백인종에게만 느껴지는 듯한 동경이나 연애감정도 그렇고, 예전에 손미나의 책을 보면서 잠깐 느낀 그런 것들을 어김없이 이 여인네의 책에서도 느꼈는데, 내가 한국을 떠난지도 굉장히 오래되었고, 보수적인 부분과 리버럴한 부분이 묘하게 섞여있는 사고를 갖고 있지만, 유독 아시안 여인네의 눈에서 보는 훤칠한 백인 남정네에 대한 묘사는 불편함을 넘어 불쾌할 때가 있는데, 왜 여인네들의 여행기에서는 이런 것들이 빠지지 않을까.  (이 아이가 연애질을 했다는 소리가 아니다.  했으면 또 뭐가 문제인가 사실?)  


살아오면서, 자신의 내면을 감추던 가식의 껍데기가 힘든 여행을 통해서 벗겨졌다는 것만으로도 이 여인네의 여행은, 성공이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고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보다 큰 시각 또한 부수적인 이득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돌아다닐 필요가 있다.  내가, 지금의 내가 공감을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도 이 여인네의 또래였다면 이 책에 혹해서 험지로 일부러 달려갔을 수도 있음이다.   


그래.  내 감정은 질투일게다.  이제 그렇게 못한다는 아쉬움과 그렇게 하지 못했음에 후회하는 질투.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도 철이 제대로 드는건 힘든 일이다.   그래도 인도는 갈 생각이 없다.  평생 돌아다녀도 다 못 돌아다닐 터.  좋은 곳들만 골라서 다녀도 죽을 때까지 다 못볼 것이니까.   고생을 해야만 집나간 영혼이 돌아오는 것도 아닐 것이니까.  내 고생스러운 여행은 산티아고 순례나, 존 뮤어 트레일 정도, 좀 무리하면 애팔라치아 트레일 정도가 상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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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6-01-3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생명이 얼마 안 남아서 꼭 한 군데만 갈 수 있다면 저는 다시 인도에 갈 겁니다. 인도=고생? 모호한 `영혼` 그런 것 말고 좀 다른 게 많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잘 읽고 갑니다.

transient-guest 2016-01-31 02:12   좋아요 0 | URL
저는 더운 날씨를 일단 너무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도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쪽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를 것이니까, 님의 의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cyrus 2016-01-30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기는 아니지만 이탈리아에서 오래 생활했던 시오노 나나미는 에세이에 가끔 이탈리안 남성의 우월함을 찬양해요.

transient-guest 2016-01-31 02: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조금 일반론으로 보면 동양여성에겐 그런 환상이 있는 듯. 전, 특별히 백인종에게 우월함을 보고 있지는 않은데 말이죠, 다만 문화적으로 또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부러운 경우는 많지만, 그것을 어떤 인종 내지는 인종+성별의 우월함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모르겠네요. 이런 부분은 조금 삐딱하게 다가옵니다.ㅎㅎ

LAYLA 2016-02-01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국인에 대한 동경은 성별을 불문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어릴적부터 다양한 인종이 섞여 생활하지 않은 경우에는 더더욱이요. 최근에 백인 남성을 옆에서 보니 새벽에 불러내는 한국인 여자들이 많아서 조금 문화 충격을 받았는데... 거꾸로 생각해보니 동양인 남성들도 백인 여성에 대한 환상이 큰 거 같더라구요. 꼭 인종을 떠나.. 일본인 여성에 대한 환상도 있구요.

transient-guest 2016-02-01 03:49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아무래도 글을 쓰면서 제 관점과 기준에서 말을 하게 되니까, 이건 이렇다는 식의 일반론 많이 보이는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백인여성이나 일본여자에 대한 환상이 없어서리..-_-:: 어쩌면 백인남성에 대한 환상은 책 같은 매체로 드러내도 되는, 하지만, 반대의 관점에서 나오는 환상을 드러내면 안되는 그런 인식의 틀도 없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