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최근에 읽은 책 한 권이 더 있다. 리뷰를 써본다고 하면서 그냥 잊고 지나갔는데, 그 기억조차도 믿지 못하기에 다른 창으로 서재를 띄우고 확인해보기까지 했다. 결론적으로 잊고 있었다는 것.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책과 여행을 맺어 함께 생각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책과 여행은 적대적이면서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아닌가 싶다. 여행을 하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 책을 읽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 책과 관련된 곳을 찾는 재미를 여행 틈틈히 느끼는 사람, 여행을 하면서 일상의 번잡함을 떠난 덕분에 더 많은 책을 읽게 된 사람 등등, 책으로 엮이는 것만 해도 꽤 많다는 것을 느낀다.
저자는 내 나이정도에서 보면 참 깜찍해 보이는 이십대 처자다. 특이한 인생유전 때문인지 어린 나이에 인도로 가게 되었고, 다시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히말라야 인근의 기숙사 학교로 갔고, 거기서 어쩌면 다가올 앞으로의 인생의 방향을 보여줄 도서관, 그것도 무엇인가 비밀스러운 승원결사의 장경각과도 같아보이는 지하 도서관을 발견한다. 그 후, 그녀의 일상에서 책은 항상 함께하는 친구가 되었고, 여행을 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 정적인 행위 하나와 동적이 행위 - 것을 즐기면서 세상을 여행하고 읽은 것에 비추어 사유한다. 도입부는 조금 믿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젊은 사람이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가식적인 면이 거의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예전에 본 젊은 작가가 '책'에 '미쳐' 보냈다는 '청춘'이야기보다는 훨씬 기획의 냄새가 덜 난다. 내용 그 자체로는 대단한 신선함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것이기를 바라는 오랜 사색의 내음 덕분에 잘못하면 매우 generic했었을지도 모를 책에 저자만의 그 무엇을 넣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나도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젊은 시절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여러 문명의 이기 덕분에 이렇게 책을 쓰고 출판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은 일이 되었고, 역시 내 젊은 시절 갖 유행이 시작되던 해외여행이 이제는 보편화 되어 어쩌면 학창시절에 유럽여행 정도는 다녀와야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럴수록, 그렇게 변화가 다가올 수록, 한 편의 나는 바깥으로 돌고 싶고, 변화에 순응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반면, 다른 내면의 나는 세상 한 귀퉁이에 내 자리를 찾아 나의 책들과 음악과 함께 숨어들고 싶어진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으니 진정한 잠행과는 한참 멀지만, 그렇게 조용하게 사그러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처음에 제목을 잘못 읽고서는 '독거노인'이라고 쓴 줄 알았다. 서평집 같은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는 책의 제목이 희안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독서독인'인다. 책읽기와 책읽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주로 그 평이 좋게 남지 못한 사람들의 책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의 이야기를 섞는다. 여기서 독서의 독인은 그 어감의 외로움이 남는데 저자의 인생관, 또는 사고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것을 비판하는 사람은 외롭다. 독서도 무엇도 다 비판의 대상이 된다면 더구나 그 독성에서 오는 피로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인지 힘이 들었다. 기실 신화화 된 인물이나 사건의 본질을 살피면 허탈할만큼 알려진 내용과 많이 다른 것은 종종 본다. 문제는 이런 것들에 눈뜨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매사를 비판적인 눈으로 보게 되면 세상살이가 힘들어 진다는 것이고, 덩달아 모든 것을 비딱하게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 자체로써 문제라기 보다 삶이 힘들 수도 있는 것이니까 사실 개인의 선택이다.
박교수님의 말씀처럼 모든것을 상대화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어디에서 그 선을 그어야 하는지는 개인이 판단해볼 문제다. 나아가서 나쁜 사상이나 사건사실을 왜곡하거나 곡해하는 책이 아니라면 읽은 사람이 좋은 부분을 추려서 양식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이 책의 내용을 중간중간 보면 나오는 저자의 극단적인 순혈주의와도 같은 순결성은 조금 버겁다. 가끔 강신주 박사의 강연을 들을 때에도 느끼지만, 나 빼고 다 이상한 놈이라는 논리로 흐를 수도 있는 부분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자신부터 상대화 하고 볼 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이렇게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들이 있다면 세상에는 그만큼 더 희망을 가질 수 있겠다. 진중권처럼 이런 분들은 툭하면 입바른 소리를 해서 모든 이의 빈축을 사는데, 그런 외로움을 딛을 수 있다면 독야청청한 흉내라도 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이런 사고는 나의 노선은 아닌 것 같다.
간만에 자기 캐릭터가 확실한 책을 읽었는데, 그 반가움 만큼이나 불편함이 남기도 했고 무엇보다 책의 마무리, 그러니까 끝맺음이 맘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것은 겉멋으로 치부할 지도 모르겠지만, 한 권의 책을 읽은 독자로써, 그리고 이를 사들인 장서가로써 불만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두 권 모두 푹 빠져서 읽었는데, 장정일의 의견을 차용하면 이 두 권은 매우 열정적으로 쓰여진 책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