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복의 '책인시공', 그리고 '파리의 장소들'과 함께 파리 3부작을 이루는 책이 아닌가 싶다. 부제로 '도시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단순한 파리관광이나 여행예찬이 아닌 걷고 사색하며 느끼는 장소로써의 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여행이나 단순한 방문을 통해, 또는 하릴없이 파리의 매력에 빠진 예찬으로 일관하는 글이기에는 정수복의 파리체류시기가 너무도 길고 또 다른 시대를 건너왔다고 생각한다. 그는 1980년대 유학을 와서 파리에서의 첫 7년을 보냈고, 이후 귀국했다가 다시 2002년에 파리로 왔다. 소소한 일상을 벗어난 산책을 통해 파리의 전 지역을 도보로 순회할 수 있었고 이 책은 그 행각을 통해 얻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다.
아직까지 파리를 가본적이 없는 나이기에 큰 공감을 얻기는 어렵고 '책인시공'처럼 파리이야기지만 책이라는 공통분모를 저자와 갖지 못했기에 더더욱 그때의 감동은 받지 못했다. 파리 곳곳에 대한 이야기와 다른 도시의 차별성, 그리고 찬사로 가득하면서도 이를 내면화한 이 책을 보면서 또한 한편으로는 사람사는 곳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유럽 특유의 폐쇄성이나 살색 외국인에 대한 무지에 대한 것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때로는 저자의 잔잔한 말투와 파리 구석의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지기도 하는 등, 가끔씩 펼쳐서 저자와 대화하고 그를 이해해게 할 것만 같은 책이다.
갈수록 낮아지는 책의 판매량과 서점숫자에 비해 상대적은 높은 것인 독서에 대한 열망이나 방법론에 대한 책이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들은 자계서의 또다른 이름에 다름아닌 냄새가 강하다. '독서'를 표방하고 있건만 결국은 '성공'이난 '관리', '경력', '인생' 등의 화려한 단어로 일관하는 이들과는 달리 정말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그것도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읽어봄직한 책이다.
너무 오래전의 책이라서 요즘의 현실과 대입하여 생각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무엇보다 '성공'과 '자기계발'이 전부가 아니던 시대의 책이라서 좀더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최근에 빨간책방에서 이동진씨가 '월간 히가시노'라고 우습게 표현했을만큼 다작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인데,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살인자나 범인이 없다는 점이 매우 특이했다. 오히려 이 책에서 아주 나중에까지 감춰둔 미스테리는 전혀 다른 이슈였다는 것.
몇 작품은 나름대로 깊은 사회적 통찰 또는 다양한 인간성의 내면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재미있는 책을 쓰는 작가로서의 모습이 어떤 의미를 부여할만한 작품을 쓰는 글쟁이로써의 모습보다 더 강하게 어필되는 것 같다. 워낙에 다작이라서 아직 그의 작품들은 반도 못 읽었지만, 이렇게 기회가 될때 한 권씩 구해서 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1993년에 나온 책이고, 주인공이나 주변인물들이 모두 고등학교 2학년 동급생들인데, 이들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30대 후반을 달리고 있을터이니 지금에와서 이 책을 읽는 기분은 마치 응답하라 1994를 책속에서 만나는 느낌이다.
지금 한창 잘나가는 '글쓰는' 허지웅의 두 번째 에세이집. 블로그에 올라왔던 글과 함께 모은, 여전히 맛깔스럽고 때로는 시원하게 직설적인 허지웅의 글은 무엇인가 비주류이면서도 인정을 받는 사람의 자신감이 느껴지는데, 이 부분은 첫 에세이집을 읽을때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그전의 글을 보면서는 외부인의 비애랄까 싶은 점도 많이 보였다면 이번의 글들은 확실히 자신있고 강한 모습이다. 사실 그가 나오는 TV프로그램을 별로 본 적이 없어서 방송에서의 모습은 익숙하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그저 강용석 같은 사람과 함께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은 있었는데, 묘하게 그런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느낌도 이번의 어떤 글에선가 받았다.
어렵게 학교를 다니고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인생은 '버티는' 삶 그 자체였던 듯, 그의 메인테마가 되었는데, 지금처럼 방송을 타는, 제법 스타대접을 받는 요즘도 이는 변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듯하다. 어짜피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살면 욕을 먹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인데, 이렇게 맘편하게 할 말을 하면서도 생계를 이어가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재주가 아닌가 싶다. 언제나처럼 재미있게, 또 생각해볼 꺼리를 던져주는 그가 나보다 어리다는 것이 가끔 신기하다.
최민수 사건에 대한 글을 예전에도 읽고 한참 부끄러웠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 마음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최민수의 껄렁한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당시 신문에서 터진 가십성 기사를 보면서 '니가 그러면 그렇지'수준의 생각과 발언을 마구 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이 자리라도 빌어서 미안함을 표시하고 싶은 것이다. 나아가서 함부로 말하고 판단하고 재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이렇게 해서 또다시 최근에 읽는 네 권을 연달아 남겨보았다. 몸부림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읽을 책이 쌓여있으니 즐겁기 그지없다만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일은 많아지는 것에 앞이 살짝 캄캄할때가 없다면 거짓말일것이다. 그저 이렇게 하루를 살아가면서 걸어가는 것으로 부지런함이나 열정을 대신하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