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늘 마음이 급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근 몇 주간을 밤 늦게 자게 되어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허겁지겁 출근하는 것을 반복했다.  원래의 생활패턴을 되찾기 위해서 다시 새벽 이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을 시작했는데, 결과만 얘기하자면 별 문제 없이 일어나서 책을 보다가 다시 잠이 들어서, 8시가 넘은 시간에 부랴부랴 씻고 회사로 가야했다.  몇 번 이러다보면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어인 일인지 지난 주간에는 크게 바쁠 것도 없었는데도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그래서 작심하고 주말을 위해 금요일 오후에 퇴근하면서 책을 몇 권 싸들고 집에가서 주말 내내 짬짬히 읽어냈다.  꼭 의무감이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쌓아놓은 책을 한 권씩 읽어내려가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맛과 멋이 있다.  한가로운 주말 오후에 TV를 켜놓고, 또는 늦은 밤에 마트에 나가서 사온 와인을 마시면서 책을 읽는 것은 나의 된장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예전과는 달리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은 그다지 즐기지 못하는데, 우선은 서점 카페의 배치와 구조가 오래 앉아있기에는 불편해진 것도 있고, 서점 내 곳곳에 있던 편안한 일인용 소파도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에는 지난 3년 간 근처에 있던 반스앤노블 서점 4군데가 2군데로 줄어들만큼 악화된 경영난이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오래 앉아만 있는 사람보다는 책을 살 사람이 필요한 것일게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개인 사무실을 차린 2012년 이후, 누군가를 상사로 모실 일이 없어졌다.  그 전에도 기실 작은 사무실의 no. 2의 자리에서 5년간 일을 했기 때문에 상하좌우로 촘촘하게 얽힌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그저 구본형의 책이라는 것과 앞으로 누군가를 고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좋은 상사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좋은 이야기도 있고, 도움이 될 만한 phrase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의 관심을 충분히 끌만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부하직원의 관점에서 상사를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점은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역시 구체적으로 맘에 와 닿지는 않은 것을 보면, 역시 현실에서 경험하면서 답을 찾는 것이 선행학습보다는 훨씬 더 나은 공부방법인 것 같다.  아마도 일반적인 환경에서의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직접적인 공부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앞서의 책보다 훨씬 더 통상의 자계서에 가까운 책이다.  인생의 성찰이나 하루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구본형의 모습은 그리 많이 느낄 수 없는 책이기도 하다.  물론 전적으로 나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반 정도 읽다가 말았는데, 업무효율과 강점의 극대화를 위해서 task를 20가지로 규정하여 나누고, 잘하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그렇지 못한 일에는 잘해야 평균정도만 유지하라는 말에는 일견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만, 과연 조직생활에서 이런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다.  자계서의 특성상 지극한 일반화를 통해 단순한 모델을 제시하는 형식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앞서의 책과 함꼐, 자계서를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완벽한' 세상이라면, 모든 이가 룰을 지키는 그런 곳이라면 아마도 조금 더 실행이 용이한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쿵후영화를 보면 소위 '합'이라는 것을 맞춰가면서 고수의 대결이 이어지고, 고수와 저잣거리 건달의 싸움에서도 일정한 '합'이라는 법칙이 유지된다.  하지만 현대 MMA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애초에 '합'이 정해진 싸움은 없는 것이다.  실전에서는 뒤엉켜 난리를 치면서 치고박는 것이 더 일반적인 모습인데, 아쉽게서 자계서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합'이 성립할 수 있는 환경의 '가정'이다.  이런 점에서 어떤 자계서라도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환경에 맞춘 rephrasing과 적용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설사 구본형의 책이라해도 말이다.


보통 자계서를 읽으면 읽는 당시에만 그렇다해도 적정수준의 motivation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라는 책에는 더 이상 공감하기가 어렵다.  내가 더 깨인 탓인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덜 절박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정체기에 오른 나의 인생에서 다시금 한번 inspiration을 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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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참사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수 많은 구조적인 문제와 행정이슈, 그리고 사람의 문제를 한꺼번에 날려버리려는 듯,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꼼수로 덮을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경해체라는 초강력 꼼수로 대처하는 박근혜씨의 대국민담화.  어떻게 생각해도 제정신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워낙에 좋은 글들이 많아서 길게 얘기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선장 이하 승무원 구속, 청해진 해운을 비롯한 유병언과 구원파 때리기, 그것도 안되니까 해경-언딘-해수부 마피아를 거론하였고, 여전히 들썩거리는 여론을 잠재우지 못하자 내세운 그들의 한 수.  


일거에 가장 책임이 큰 세력의 한 축인 해양경찰을 해체하면, 책임을 묻기 위한, 아니 더욱 중요한 제도개혁과 안전장치마련을 위한 모든 노력은 아예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해경의 문제를 해결해서 나은 조직으로 만들기 위한, 그러니까 어렵고도 복잡한 노력 대신에 조직 자체를 날려버리는게 무슨 도움이 될런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는 건지.  해경을 해체하면 해양경비와 순찰 및 치안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이렇든 저렇든, 그간 해경에 전담되었던 업무수행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는, 사람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정치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을 정치로 덮기 위한 박근혜씨의 이번 발표를 보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  이 사람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는 기본적인 전제를 차치하고라도 이번의 이벤트성 아니면 노브레인성의 담화를 보면서 문득 다음의 말이 떠올랐다.


병신육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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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향료전쟁'을 읽고서 든 생각이지만, 그리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물론 특이한 주제를 찾아서 이야기로 만든 재주는 탁월하지만, 그리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책을 덮으면서 하게되는 생각은 'so what?'이다.  


멘드빌 경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있다고 한다.  '여행기'라는 책을 저술하여 후대의 모험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 그의 기담은 작가의 정체만큼이나 의혹 덩어리가 된다.  어떤 곳은 진짜로 다녀온 듯한 정황적 증거로 인한 추론이 가능하지만, 어떤 곳에 대한 주장은 당시에 유행하던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다른 이의 책에서 차용한 것이라서 신빙성이 없다.  그러나 그의 정체를 밝히려는 노력과 함께 당시 여행했다고 주장하는 곳을 방문하여 최소한 긍정적인 추론이 나올 수 있는 정황적 증거를 찾는 것이 책의 주된 내용인데, 역시 재미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거리를 찾아서, 즉 이슈화하여 다시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은 책을 쓰는데 있어 기막힌 재주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다소 엉뚱하게도 작가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고, 그 이름부터 범상치 않음에 살짝 놀랐다.  작가의 이름은 Giles Milton이다.  필명이 아닌 실제 이름부터 그는 작가의 숙명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싶다.  가일스와 발음이 비슷한, 독일어-프랑스에서 파생된 오랜 영어단어인 Guile은 "insidious cunning in attaining a goal; crafty or artful deception; duplicity"라고 풀어지고, 성씨가 되는 밀턴은 실락원의 그 유명한 저자와 같다.  이쯤해서 보면 멘드빌 경이라는 인물 자체의 정체가 모호해진다.  그런 인물자체가 작가의 창작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여담이지만, 요즘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를 보면 온갖 떡밥으로 가득차있어 거의 prequel 영화만 만드는 느낌인데, 수수께끼로 가득찬 그의 영화는 그의 이름에서 연상되는 riddle과 너무도 잘 들어맞는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우연이라도 희안한 우연이다.


자계서와 일상의 성찰, 그 중간에 위치한 저자가 아닌가 싶다.  다른 자계서 저자나 강사들과는 뚜렷이 차별되는 구본형의 포인트는 인간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저술과 강연으로 먹고사는 사람, 아니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일에 대한 자세와, 그보다는 더 진실한 자신 본연의 모습이 있고, 그 둘이 꼭 일치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난 구본형의 글과 강연이 100% selfless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나이가 들어서, 그리고 2004년 당시에도 벌써 초기보다 더 나아간 그의 글을 보면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계통의 다른 저자들과는 다르게 사회문제에 대한 발언과 이슈제기까지 하는데, 이는 여타 다른 저자들의 '네 문제나 신경써라' 또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론으로 일관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그 역시 마음먹기에 따라 삶의 태도가 변하고 이를 통해 보다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일 할 수 있음을 역설하지만, 그의 다른 생각과 말을 종합해서 판단해보면, 이 역시 한 분야에서 뛰어나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정도로 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구본형은 김XX, 공YY, 이ZZ, 등등의 유명한 이 계통의 인사들과는 다르다.  그의 합리적인 면 또한 좋다.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고, 이들 또한 구본형이 걸어간 길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그들 중 일부의 글에서 구본형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데, 표현까지 선생과 비슷하게 가는 제자라면 더욱 노력하여 선생의 것을 털어내고 온전한 자기만의 것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부터 좋게 보면서도 가끔은 뭐랄까 조금은 자신의 모습보다는 다른 이의 허울을 쓴 것 같은 이 계통 저자의 글을 보면서 느끼던 불편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번 책을 읽고나서야 알 수 있었다.  제자가 스승의 영향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일정 수준에 이르러서도 이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늦잠을 자고 급히 나오느라 원하는 책을 들고 오지 못했고,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반나절 일을 할 생각이라서 손에 잡힌 것이 없으니 오후에는 또 다른 구본형의 책을 볼 생각이다.  참고로 이 책이 나온 때는 2004년인데, 그로부터 약 9년 후 구본형은 폐암으로 별세했으니 희망에 가득찬 그의 이야기들이 이제는 쓸쓸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새삼 그의 이른 귀천이 아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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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이제서야 구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5권까지 나와있으니 앞으로도 중고를 노려봐야 할 듯.  이곳에서 받는 한국책의 값은 꽤나 높고 본국의 D/C나 특가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일단, 비판적인 입장으로 서구문명과 종교, 그리고 미국의 패권주의를 보는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관점으로 십자군 운동의 전후를 서술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책의 구성도 좋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방식도 깔끔하다고 생각되나, 바로 그런 비판적인 입장, 특히 당시 9-11이후 부시행정부가 주도하던 더러운 침략전쟁의 근본 내지는 기원을 중세의 십자군 전쟁에 맞추다 보니 다소 무리가 발생하기도 한다.  현대의 정쟁과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에서 분명한 연관성도 있을 것이고 유사한 점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비교하면서 풀어나가다 보니 전개가 산만하고 어떻게 보면 조금은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는 듯 하다.  부시가 밉긴 미웠을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시오노 나나미 식의 마초스러운 이야기 형태에서 벗어나 아랍권의 입장, 나아가서는 후대에 만들어진 fact가 아닌 당시의 기록과 사건사실에 의거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맘에 든다.  이 십자군 전쟁은 기실 한국에서는 선교라는 이름으로 계속 자행되고 있는 종교폭력의 다름 아니기에 꾸준한 연구와 관심이 필요한 주제라고 본다.


일본의 오사카는 세키카하라 전투 이후 세력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도쿄 천도 이전까지 일본의 물산을 좌우하던 도시였다.  도쿠가와 치세 이후 완전히 굳은 도쿄의 지역적인 힘 때문에 이제 오사카는 불량스럽게 그려지는 곳이기도 하지만, 현재까지도 이곳의 상권은 대단하다고 한다.  


어떤 fact의 나열이랄까, 지식적인 면에서 일독은 괜찮은 책이다.  하지만, 종종 이런 종류의 책에서 보듯이 cause와 correlation을 혼동하는 경향이 눈에 띄어 공감을 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많았던 것 같다.  


또 함부로 의심하여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표현을 보면 너무도 일본색이 강해서 과연 이것이 저자의 own wording일까하는 의구심도 종종 들었는데, 예를 들어 일본을 '천하'로 지칭하는 따위의 어법이라고 하겠다.  일본 열도를 '천하'로 지칭하는 것은 그네들 밖에 없을 것인데도 굳이 '천하'를 제패한다는 표현을 쓴 것은 아무리 좋게 봐도 일본사료의 글을 그대로 옮긴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런 지엽적인 문제들 외에도 역시 가장 큰 문제는 Cause와 Correlation을 혼동하는 듯한 부분인데, 역사가 아닌 자계서의 접근 방법에서 발생하는 오류가 아닌가 싶다.  Cause와 Correlation혼동의 예는 다음과 같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나온 통계에 의하면 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리는 해에는 상어공격에 의한 상해수치가 높아진다고 한다.  이때 아이스크림 판매증가와 상어공격의 빈도증가는 Correlation의 관계이고 이것을 Cause로 혼동하면 마치 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리면 상어의 연안출몰이 늘어난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실상은 아이스크림 판매증가 = 더위 = 더 많은 사람들의 beach출입 = 더 빈번한 사고기회 = 상어상해증가로 보는 것이 맞다고 하겠다.  즉 여기서 Cause는 더운 날씨에 의한 beach행락객 증가로 보는 것이다.


뉴라이트의 역사조작에 대한 학술적 고찰인데, 이 또한 오랜 기간 구해보려고 기다린 끝에 중고로 얻는 책이다.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특정한 관점을 갖는 것은 fact의 해석에 있어 용인된다.  하지만, 이들의 행태는 fact 그 자체를 왜곡하는데 문제가 있고, 이는 역사라는 틀에서의 목적이 아닌, 정치적인 목적, 그러니까 특정주의나 특정한 세력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기에 큰 문제가 있고, 진지한 학문적 고찰이나 토론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요컨데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상태에서 역사를 억지로 끼워맞추는 격이니 궤변이 아닐 수 없다.  


기실 상대방의 주장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진지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자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읽을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또 그런 참을성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비판을 할 뿐이다.  김기협씨의 시도는 따라서 학자적인 관점에서 본받아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마저도 현상을 해석하기 위한 cause와 correlation의 오류에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저자의 모든 해석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날이 더워지고 있다.  운동과 책읽기, 그리고 일에 매진하여 더위를 잠시나마 잊어야겠다.


PS 갑자기 떠오른 책의 한 귀절인데, 잊고 있었다가 오늘에서야 떠올렸다.  

"국민들의 눈에서 시대의 흐름을 오랫동안 가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들이 시도할 일은 한 가지다.  시대의 흐름을 진짜로 뒤집어놓은 것이다"

지난 부정선거가 떠오르면서 이미 자정능력도 의지도 잃어버린 정치권을 모습과 함께 모골이 송연할 수 밖에 없는 혜안이다.  총체적인 부정선거의 모든 정황과 증거 및 관련자가 속속 들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도, 문재인도, 안철수도, 어느 그 누구도 결정적인 한 마디, 부정선거로 인한 박근혜의 당선무효로 사퇴하라는 그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역시 총대를 매는 사람이 부재한 대한민국이고 그 적나라한 꼴은 세월호 대참사에서 드러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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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 정신없이 책을 읽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 오후까지 케이스와 씨름하다고 틈틈히 쉬면서, 그리고 집에서 남는 시간을 모조리 책읽기에 쓴 것이다.  그리 어려운 책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깊이 읽기보다는 읽던 책을 끝내거나 소설을 읽은 것 정도...


제정 러시아 시대의 계급은 크게 귀족, 관료, 상인과 농노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유럽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농노제도가 실시된 나라답게 매우 전근대적이던 러시아는 그러나 문학사의 보고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의미있는 많은 작품은 러시아 출신의 작가들에 의해 쓰여진 것들이 적어도 제정러시아의 전 근대성을 생각할 때 다른 유럽 제국들에 비해 많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도스토옙스끼의 초기작품인 '분신'은 그리 큰 찬사를 받지는 못했지만 훗날 그의 대작들에서 볼 수 있는 자아분열의 모티브를 사용한 것으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스토리는 역시나 두서없고 즉흥적이며 연관성이 없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주인공의 도플갱어 같은 인물이 주인공의 모든 것을 하나씩 빼앗아간다.  약간의 clue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주인공이 정신분열을 일으킨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환상주의적인 모티브로써 또다른 주인공이 나타난 것인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깊은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저 한 권의 스토리를 음미하는 것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었다.  문학, 아니 어지간한 소설은 처음 읽을때에는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를 재독을 하면서 알아가는 것은 그렇게 일단은 구성을 알고나서부터 깨달음이 시작되기 때문이리라.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나서는 작가의 대작을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역자가 번역한 같은 책이 이처럼 경쟁하는 두 군데의 문학전문 출판사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나?

 

내가 본 것은 맨 왼쪽의 '하얀 성'이다.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예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작품을 읽는 것은 처음이다.

 

재미있는 것은, 비록 내용과 구성은 다르지만, 이 작품 역시 일종의 자가분열 또는 정체성 분열을 다룬 것 같다는 점이다.

 

알고서 읽은 것은 아니고, 읽다보니 주인공=호지 : 호지=주인공화가 되어 종국에는 떠난 그가 누구인지, 남은 자는 누군인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거짓말이 예언이 되고, 예언이 현실이 되는 이야기만큼이나 화자의 정체가 끝내 궁금해는 이 구조는 정말 특이했다. 

 

종종 하는 생각인데, 이렇게 전혀 접하지 못했던 문화권의 책을 읽는 것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다.  스토리를 구성하는 방법이나 전개, 모티브까지 기존의, 익숙한 문화권의 책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읽는 내내 내가 그린 상상의 세계는 유럽이 아닌 이스탄불과 추상적인 이슬람의 그림과 문양으로 가득 찼더랬다.  흥미가 가는 작가이다.

 

전후 일본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찬사가 어울리는 작품이다.  아사다 지로는 요시카와 에이지만큼 무겁지 않은 가벼운 글체로 잔잔하게 감동적인, 그러나 이렇게 간혹 엉뚱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아마도 일본의 버블붕괴시대의 일인 듯 한데, 경영악화로 그 달의 어음결제를 위해 여행사는 고급상품을 두 개로 나눠 초고급 파리여행과 초저급 파리여행상품을 만들고 각각 positive와 negative그룹으로 나눠 팔아먹는다.

 

각각 사연이 가득한 등장인물, 그리고 책속의 책처럼, 등장인물이 쓰는 책의 스토리가 전면에 다른 이야기로 등장하는 등, 특이한 재미를 선사한다.  '바람의 검 신선조'의 원작인 '칼에 지다'를 쓴 아사다 지로는 '철도원'이라는 작품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이 사람의 책, 나라면 무조건 구해보는 편이다. 

 

바쁜 와중에도 찾아오게 마련인 잠깐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마구잡이식의 독서를 했다.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과 여유의 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  일이 아니면 일이 없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시키기 위해 일을 주는 따위는 없는 것이 내 현재 직업의 좋은 점이라고 하겠다. 

 

다음 책으로 진격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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