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초에 주문한 패키지 두 박스가 오늘 도착했다.  학회차 이곳을 방문중인 선배와 점심약속이 되어있어 좀 깔끔하게 만나려고 오전에 은행에 갔다가 이발을 하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들이 배달되어 있는 것이다.  마침 꽤 한가한 일정이라서 작년말부터 새로 만들기 시작한 이름하여 '통합장서목록'에 리스트를 추가하고 중고책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다 긁어냈다.  하드커버라서 그랬는지, 잘 떨어져나가서 다행.  하지만, 나중에 구곤으로 살짝 겉을 닦아주어야 먼지와 검댕이를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포화상태인 책장에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 임시보관하고 한 권씩 읽어야지.  여름에 좀 한가한 시즌이 오면, 예산을 봐서 사무실을 다시 꾸며볼 생각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책상과 책장, 그리고 맞은편에 빈 공간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미팅은 주로 회의실에서 하기 때문에 그 빈 공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책상을 들어내고 방향을 바꾸어서 창가를 왼편에 두면 꽤나 넓은 공간이 확보돠는데, 지금 왼쪽에 있는 책장들 - 내 서재사진참조 - 을 재배치해서 두 면의 벽을 해방(?)시킨 후, 이 벽에는 다시 7단 정도되는 좁은 책장을 겹쳐놓고, 방 중간에 이들 둘을 벽과 직각으로 놓으면 도서관처럼 내 책상을 문에서 가려주는 역할과 장식장, 책장 및 서류보관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하든간에 좁은 방에서는 불가능하고, 가구같은건 다 바깥에서 조립해서 들여와서 마치 소쿠반 (80년대 도스게임)을 하는 것처럼 한쪽을 정리하여 자리를 내면 다시 그쪽에 무엇인가를 들여놓는 식으로 하나씩 해야하기에 꼬박 하루를 잡아먹을것이라는 점.  그래서 원래 연말에 계획했으나 흐지부지되어버린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렇게 하면 부모님댁에 보관하고 있는 책들도 사무실로 대부분 옮겨놓고, 거기에는 일단 미디어만 보관할 수 있다.  이렇게 하다가 좀더 넓은 곳으로 옮기면서 확장해나가면 언젠가는 김갑수의 July Hall부럽지않은 나만의 작업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날까지 '띠를 꽉 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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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4-08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럽 부럽네요..책보니 눈이 희둥그레.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4-08 08:25   좋아요 0 | URL
한국에 계시면 언제든지 헌책방을 둘러보시면서 한 권씩 구할 수 있으니 오히려 제가 부럽습니다. ㅎㅎ

다락방 2015-04-0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남부럽지 않은 작업실을 만드는 그날까지 화이팅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4-09 03:20   좋아요 0 | URL
네. 계획하고 있는바가 따로 보글보글 끓고 있어요.ㅎ

해피북 2015-04-0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상에 놓인 비블리아와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을 보니 반갑네요 ㅎ 멋진 서재로 탄생되길 화이팅 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4-09 03:2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잡지는 한 달이 넘어서 받았고,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은 영화가 좋아서 샀어요. 어제 읽었는데 잔잔하니 좋네요. 감사합니다.

붉은돼지 2015-04-08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합장서목록 좋습니다.
저도 언제부터인가 제가 가지고 있는 도서의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엄두가 안나서요 계속 미루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도 통합장서목록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불끈^^

transient-guest 2015-04-09 03:21   좋아요 0 | URL
저는 세 번째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ㅎㅎㅎ 자꾸 이런 저런 생각들이 바뀌더라구요.

몬스터 2015-04-08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띠를 꽉꽉 묶으세요 , 나만의 작업실을 가질 때 까지. 응원할게요.!!!

transient-guest 2015-04-09 03:2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언제나 `띠를 꽉 묶어!`입니다. 마음을 다잡고!
 

마음을 다시 먹었다.   


계속 몸이 아팠고, 짜증이 늘어갔으며 매사에 힘겨워하고 있었던 것이 지난 2주간 나의 모습이었다.  운동을 해도 근육량이 줄어드는 것을, 옷을 입어보면 확인할 수 있었으며, 기분을 전환하려고 이런 저런 노력을 해도 소화불량에 불면증을 떨어낼 수가 없었다.  일도 겨우 해냈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혹시 만성적인 우울증이라도 생겼을까봐 걱정을 하기도 했다.  우울증이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이를 받아들이고 다양한 경로로 이를 조정하면서 몰아내야 하지만, '병'으로 자리잡을 수 없도록 이를 무시하고 여기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어떤 징후를 내가 놓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책읽기가 재미없어졌다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된 것은 결국 전반적인 일상의 슬럼프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었나 한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바쁘게 꾸준한 성장을 위해 달려왔고, 여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이르지만, 어느 정도 걱정과 안정의 사이에 위치한 사무실, 그리고 거의 10년을 비슷한 일을 해온 나의 모습, 하지만 갈 길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 그리고 직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자유도에 비례한 책임감과 불안정한 삶.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어떤 계기로 나에게 쏟아진 결과, 지난 2주간 그렇게 고생을 하게 된 것.  


여기에다가 이런 저런 부상, 그러니까 운동을 오래하면 누구나 갖게되는 만성적인 피로와 아픈 증세 때문에 운동을 신나게 하기보다는 밀리기 싫은 마음에 어렵게 수행해낸 것도 지난 2주간의 힘든 부분이었는데, 덕분에 마음이 많이 약해졌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이번 주말을 계기로 인식전환이 중요하단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시 맘을 다잡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특별한 일이나 깨달음은 없고, 늘 힘들다가도 용기를 내면서 특히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맘을 다잡을 때에는 '마음이 죽으면 몸도 죽는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만화나 책이나 심지어 영화같은데서도 자주 나오는 이 싸구려성 맨트가 나의 화두가 되곤 한다.  그렇게 어제 아침부터 다시 이를 악물고 힘든 운동을 견뎌냈고, 책을 붙잡고 읽어냈으며, 생활을 다잡고 있다.  고작 하루가 지난 월요일이지만, 결과는 I fee so good이다.


덕분에 주말에만 그간 미뤄두었던 책을 두 권이나 읽어냈다.  비록 깊은 내용을 선사하는 문학이나 철학책은 아닐지라도 그 나름대로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작위를 얻기 위해 가난한 바람중이 영국귀족과 결혼한 미국인 대부호의 딸이 여행중이던 특급열차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시작은 보석을 둘러싼 절도모의로 보았는데, 갑자기 살인사건으로 발전한 전개는 뜻밖이었는데, 워낙에 많은 장치적인 인물들 때문에 이번에도 마지막까지 범인이 누구인지는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간 읽어온 것을 바탕으로 유추하기는 했지만, 보기좋게 속아넘어간 것이다.  40권째를 읽었으니 반은 확실히 넘은 셈이지만, 여전히 35권정도를 더 읽어야 다음 추리소설전집으로 넘어갈 수 있겠다. 

오전에 기분좋게 근육운동을 마치고 cardio시간을 늘이기 위해서 걷다 뛰다 20분 후 약 40분 정도 실내자전거를 타면서 다 읽을 수 있었다.  띄엄띄엄 읽었지만, 한번에 많이 읽어낸 덕분에 내용을 다 파악할 수는 있었다.



어떤 문학적인 가치를 비록 한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나는 SF야말로 어쩌면 우리 현재와 미래의 투영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고전문학의 철학적인 고찰이나 사회상의 반영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그것들 또한 그 시절의 소설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결국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상대적으로 더 젊은 소설들의 위치와 평가가 변할 것이기 때문에 SF의 장르적인 특성때문에 이를 무시하는건 옳지 않다.  단지 문학 vs. SF의 구도뿐만 아니라 유독 한국에서는 문학 vs. 나머지의 대립구도가 강하게 enforce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점점 나아지리라 믿는다.

어슐러 K 르 귄의 책은 흥미를 위주로 읽기에는 더 깊은 의미와 그리고자 하는 바가 있는데, 이것을 SF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그 뛰어남을 본다.

 

책에서였나 다른 온라인 블로그에서였나, 이 책의 모티브를 미국이주민/개척민들과 인디언들의 역사에서 찾았다는 이야기를 본 것 같다. 확실히 생각해보면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다만, 그리고 좀 엉뚱하지만, 내가 헤인시리즈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우주의 광활함과 변하는 시간속에서 적응해가고 변해가는, 우주로 뻗어나간 사람들의 모습이다.  항성간 여행으로 우주선 승무원의 짧은 시간이 떠나온 곳에서는 많은 변화를 거친 수십년 후가 되고, 여기에 따라 바뀐 문화와 인식에 따라 바뀌는 명령을 수행하는 모습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언젠가 우리에게도 현실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SF라도 영화처럼 액션 외에는 모든 것을 배제하기 보다는 어쩌면 밥짓고 빨래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처럼 별것 아닌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 매일의 문제들이 무시되지 않고 묘사되는 부분이 참 흥미로운거다.  


역시 스토리를 요약하는 연습이 부족하다.  줄거리는 스포일러라서 쓰기 싫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늘 피해가고 있지만, 기실 짧게 요약하고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잘 버무리는 글을 쓰는것은 아직도 진행형인 과업이다.  


모처럼 두 권을 읽어냈다.  그 전에 읽은 American Sniper의 리뷰는 따로 날을 잡아 끼적거리고 싶다.  할 얘기가 많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그렇지는 않겠고, 아무리 맘을 먹고 '우주의 기를 끌어들여' 난리를 친다고 해도 내것이 아닌 것들이 나에게 갑자기 쏟아져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많은 것들은, 특히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내 맘에 달려있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이렇게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기어가고 걷고 뛰고 사력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내가 아는 삶이다.  그렇게 사는거다.  


세상은 마치 개새끼들의 전성시대인 마냥 돌아가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의 마음만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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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4-07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덕끄덕) 네. 내 마음은 내 꺼니까요. 기운냅시다!

transient-guest 2015-04-07 08:0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나아갑니다.ㅎㅎ (화보 찍으시면 연락 주세요)ㅎㅎㅎㅎㅎㅎ

보물선 2015-04-07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기운 전해주셔서 감사^^ 힘내요, 우리~

transient-guest 2015-04-07 08:0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읽는분들을 서재로나마 여럿 알게되어 종종 힘을 받네요 저도.

hnine 2015-04-07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맘을 다잡고 인식전환을 하실 수 있는 ˝힘˝이 있으시군요! 그럼 됐지요.
저도 실내자전거 타면서 책을 보던 때가 있었는데 어떤 생각거리가 있을땐 책 없이도 혼자 머리 속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지어내다 보면 시간이 잘 가더군요. 저도 운동을 거의 억지로, 간신히 하고 있답니다.

transient-guest 2015-04-07 08:07   좋아요 0 | URL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는것이 매우 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그렇게 억지로라도 운동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살다보면 계속 할 수 있겠지요?ㅎ

blanca 2015-04-07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운됐었는데 어제 오후에 정신차렸어요. 그러기엔 인생 너무 짧고 나중에 후회할 듯 싶어서요. 파이팅!!

transient-guest 2015-04-07 08:07   좋아요 0 | URL
네! 열심히 즐겁게 살아도 짧은 인생입니다. 계속 해야지요. 화이팅!

붉은돼지 2015-04-07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 fee so good 이시라니 다행 입니다....˝무엇인가를 꾸준히 하는 것이 매우 잘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은 정말 공감합니다...그게 그리 만만하고 쉬운 일이 아니어서 문제지만요.. 벽에 크게 써 붙여놓아야 겠어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4-08 02:50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 남보다 좀 나은점이 있다면 그나마 꾸준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쉽지 않지요. ㅎㅎ 우리 모두 노력하자구요.

몬스터 2015-04-0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기운 내셔서 기뻐요. 가끔하는 생각인데요, 결국 내가 가진 전부는 나 자신이 아닐까하는. 그래서 내게 의미있는 일을 하는게 중요한게 아닐까하는. 내 마음은 지금 잘 살아있나 한 번 생각해볼게요.

transient-guest 2015-04-08 02:53   좋아요 0 | URL
그렇게요. 정말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가진건 자기 자신 하나에요. 모든건 거기서부터 시작하는게 아닌가해요. 내가 잘돼야 남도 도울 수 있고, 내가 건강해야 남도 지킬 수 있는거죠. 물론 비약적으로 해석해서 사회도 남도, 아픔도 다 제껴두자는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건 아니구요...

cocomi 2015-04-07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sf에 대해 잘 모르지만 70, 80년대 한국 문예사상사에서 민족주의 리얼리즘의 경향이 강해서 포스트모던한 경향이 있는 sf쪽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것 같아요. 좋은 작품 있으면 계속 소개해주세요.^^

transient-guest 2015-04-08 02:53   좋아요 0 | URL
네. 잘은 모르지만 다음에 페이퍼로 한번 적어볼께요.ㅎㅎ

icaru 2015-04-0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란 무엇인가3을 읽다보니, 그녀의 사회인류학적 관심이랄까 하는 게 아버지의 영향이 참 컸던 거 같아요,, 아버지가 미국최초 인류학박사를 받은 사람이라던데요,,

transient-guest 2015-04-10 04:2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인류학은 꽤 흥미로운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job market이 너무 제한되어 있어 어려움은 있지만, 그건 인문사회계열 전체의 문제니까 어쩔수는 없구요. 지난 시대, 그러니까 100여년전만 해도 이런 분야에도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했었는데 말이죠. 어슐러 르귄의 작품세계도 그렇고 참 다양하고 깊네요.
 

금년은 확실히 다르다.  바쁜 탓도 분명히 있지만, 책읽기가 조금씩 막혀가는 느낌이다.  잠깐이지만 슬럼프가 온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플루토'라고 무척 재미있는 만화책이 있다.  아톰을 원작으로 하여 우라사와 나오키가 그 일부를 차용한 작품인데, 처음 읽으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대단했던 작품이다.  그간 쌓아놓았다가 뜯어서 한 권을 읽었는데,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무려 '우라사와 나오키', '아톰', 거기에 오마쥬한 엄청난 작품인데 말이다.  딱 그런 상태가 불안하게 이어지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는것이 2015년 현재의 모습이다.  그래도 집에 가면 'American Sniper'원작을 조금씩 읽는 등 노력아닌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신경쓰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흠뻑 빠져서 재미있게 책을 붙잡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중물을 부어도 안되면 어쩌지...


일단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이 양반이 워낙 신비주의 잘 가져다가 소설인지 경험담인지를 알 수 없게 버무리는 재주가 뛰어난지라 특히 그런 부분을 가리는 것은 쉽지 않겠다.  그의 작품을 많이 접하지는 않았지만, 한때 특히 유행했던 것은 알고 있고, 지금도 꾸준히 잔잔한 이야기들을 퍼뜨리고 있다는 정도의 익숙함은 있다.  


지금말고, 예전에, 그가 젊었을 무렵에는 특히 서양인들이 신비주의에 심취했던 시절이었을게다.  흔히 말하는 히피들의 전성시대.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은 하루에 갈 수 있는 평균치의 길마다 역참이 잘 준비되어 있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그때만해도 수도원아 아니면 가난한 마을에로 점점이 이어져있었던 시절의 이야기.  내면의 무엇을 찾는 여행이라기보다는 신비주의 결사에서 부여된 어떤 과정을 수행해나아간 듯한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는데, 불교의 선종처럼 카톨릭에도 이런 방향에 좀더 중점을 두는 분파 또는 비밀단체가 없지는 않을 것이고, 그 뿌리는 아마도 저 먼 옛날 사막의 성자들이나 영지주의까지 거슬러올라갈 것이다.  


개념으로만 보면 선이나 악이나 홀로 존재할 수가 없다.  많은 것들처럼 이들도 상대적인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선하기 위해서 악을 밟기보다는 내면적으로 이를 다스리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이 종교적인 논리로 가면 이원론에 닿게 된다.  어떤 균형적인 개념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이 책에서 내부의 악마와 대화를 시도하고 도움을 구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맘속의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투영하여 균형을 잡고, 총체적인 자아완성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주인공의 산티아고 순례가 아니었나싶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선의 개념도 아마 이 시절 서양인에게는 매우 새로운 배움이었을게다.  


차분하게 다시 읽으면서 한 구절씩 음미하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바로 다시 읽게 될 것 같지는 않고, 다른 여느 책들처럼 어느 날, 어느 순간에 다시 운명적으로 손에 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벌써 22권째다.  그런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스쳐가는 나그네께서는 여전히 이런 저런 사건에 휘말려 극강의 상류층 귀족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만든 Sacred Ancestor, 말 그대로 성조를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eternal 순례라고 하겠다.  


완전한 우연이지만 위의 책과 함께 '순례'에 대한 책을 읽은 것이라고 억지를 부려본다.  이 세상것이 아닌 차가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모든 여자가, 아니 남자도 반하게 만드는 D는 이번엔 무려 10000년간 땅속에 봉인되었다가 튀어나온 귀족과 싸워야 한다.  그냥도 강한데, 벰파이어들이 지배하던 시절에 있었던 외계인류와의 전쟁에서 얻어진 과학기술과 생명공학을 접목시킨 강력한 상대이다.  D가 이기면 인간세상이 이어지고, 그가 이기면 다시 벰파이어들의 세상이 될 수도 있는 전투에서 당연하게도 D는 또 이긴다 (22승 무패).  그저 재미로 읽는 소설인데, 딱히 뭘 배우거나 느끼는건 없지만, 그래도 읽던 관성이 있어 항상 신간을 기다리게 된다.  기괴한 상상력은 언제나처럼 맘에 딱 든다.  서기 120하고도 수세기라니.  인류문명이 붕괴하고, 이때를 틈타서 나타난 흡혈귀들의 엄청난 과학문명과 인간노예/음식화, 그런데 이것도 시간의 흐름속에서 쇠퇴하고 다시 인간들이 득세하지만, 세상은 잔존하는 흡혈귀들과 그들이 만든 괴생물체와 왜곡된 자연환경 때문에 중세와 서부개척시대를 합친 거칠고 험한 곳이다.  이곳을 마치 현상금 사냥꾼처럼 돌아다니는 D와 그와 얽힌 사건/인물의 구성/구도는 늘 높은 재미를 선사한다.  한국어로는 나오다가 끊겼는데,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권수가 딱히 중요하지는 않지만, 꾸준함의 척도정도의 의미는 있다.  이번 해에는 처음으로 200권을 넘기지 못할만큼 더딘 한 해의 수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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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3-26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라사와 나오키 말씀하시니 20세기 소년 생각납니다. 정말 재미있게 봤고 책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처분했습니다 ㅜㅜ 일본 만화들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했습니다. 뭐... 갈때까지 간다고나 할까 상상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고 할까
하여튼 보다보면 놀랠 때가 많았던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다시 보면 또 어떨지 모르죠

transient-guest 2015-03-27 02:02   좋아요 0 | URL
20세기 소년은 참 재미있게 읽었죠. 2012년에서야 겨우 봤지요. 만화의 수준으로만 보면 일본이 세계최고인 듯합니다. 이제 그 인프라가 쌓이고 또 쌓여서 오마쥬로만 해도 플라토 같은 대작이 나오나봐요.

몬스터 2015-03-2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적이겠지만 , 제게는 transient-guest님 정도면 우와 ....하는 독서량인데. lol

일하고 와서 머리 비우고 책을 잡는게 제게는 어렵네요.

transient-guest 2015-03-27 02:03   좋아요 0 | URL
갯수는 좀 되지만, 확실히 깊은 reading은 어렵고, 이를 제대로 남기는 것은 더욱 어렵네요. 저도 일하고 들어오면 그냥 퍼져서 tv보면서 unwind합니다.ㅎㅎ

Forgettable. 2015-03-27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그렇게 권태기가 오기도 하더라구요.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책을 만나면 확 빠져들게 돼서, 아 내가 문제가 아니라 책이 문제였군 뭐 이러면서 핑계 ㅋㅋㅋ 플루토 저는 굉장히 재미있게 봤는데.. 20세기 소년은 보다가 기다리다 지쳐 중간에 관뒀네요. 다시 시작하기엔 전 내용이 기억 안나고;; 암튼 요즘 신작 나오는 것 같긴 하던데 한국에서 번역 됐는진 아직 모르겠네요. 여튼 좋은 책 곧 만나시길!

transient-guest 2015-03-27 03:4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문제는 인터발이 자꾸 짧아지는 거죠. 암튼 늙어가는건 서럽네요.ㅎㅎㅎ 어릴때 만화책을 잘 안사줘서 그런지, 지금은 가능하면 다 사들이고 싶은거에요.ㅎㅎ 우라사와 나오키도 몇 작가들과 함께 작품을 다 갖고싶은 작가입니다.

해피북 2015-03-27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그런날들이 있더라구요 아무리 읽어도 머리에 안들어오고 같은 곳을 읽고 또 읽고 반복만하다가 짜증이 확 솟구치는 날들.
몇시간 쉬다 읽어도 안되고 잡생각과 글들이 부딪치는게 느껴지는 날 저는 밥을 굶는거 처럼 책을 굶겨 버려요 몇날 몇일 책을 안보다가 막 읽고싶어질때 얼른 가서 읽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때까지 그럴땐 미친듯이 읽기도하곤 하는데...지금이 딱 그런 시점인가 봐요 머리에 안들어오는 ㅠㅠ

파울로코엘료에 대한 말씀 공감이 확 되네요 ㅎ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부터 그 모호한 경계사이를 경험하면서 참 심오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transient-guest 2015-03-27 23:46   좋아요 0 | URL
그냥 책 자체가 읽으면 그런대로 재미가 있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거에요. 폰이나 들여다보거나 tv만 보고...그런데 또 책을 읽지 않으면 뭔가 이상하고...이럴 땐 정말 밖으로 뛰쳐나가서 다른걸 하고 머리를 풀어야 할까봐요.. 코엘료는 많이 읽은 작가는 아니에요. 다만 서양인의 관점에서 보는 어떤 신비주의를 잘 가져다 쓰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yamoo 2015-03-27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루토는 정말 재밌었지요. 5권인가 읽고 그담 잊혀졌습니다. 하도 나오지가 않아서요..주위에 책 대여점이 다 망하는 바람에 플루토 연재가 어디까지 출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와키 이토치의 <히스토리아>와 함께 목빠지게 기다리는 작품들입니다. <베르세르크>는 아예 포기했습니다..ㅎㅎ

코엘료 책들은 어느 순간 딱 멈췄습니다. 그의 책이 8권 쯤 있는데, 몇 권 읽어보니 비슷비슷한 내용이라 손이 안갑니다. 어느 순간 처분해야 할 듯싶어요~^^

뱀파이어 헌터가 아직까지 나오는군요~ 저는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의 극장판을 마지막으로 뱀파이어 헌터는 빠이빠이 했습니다~

그나저나 트랜지언트 님때문에 플루토가 생각났습니다. 몇 권까지 나왔는지 알아보고 구매해야 하 듯합니다~ 엔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 페이퍼에요!!^^

transient-guest 2015-03-27 23:48   좋아요 0 | URL
플루토는 완결됐구요, 베르세르크는 저도 포기, 일단 작가가 오늘 내일 한다는 얘기를 전부터 들어서도 글쿠, 조금은 드래곤볼 같이 마냥 늘어지는 떡밥느낌도 나구요. 원래 한 작가의 책을 다 보는게 그래서 좀 어렵더라구요, 계속 읽다보면 비슷한 모티브에...

벰파이어 헌터 D 1편으로 만든 80년대 OVA를 처음 봤을땐 충격 그 자체였죠..ㅎㅎ 시리즈로 애니메를 시도해볼만한 작품인데 극장판만 두 편이네요.
 

술이 센 편이다.  꽤 즐겨 마시는 편이기도 하고.  물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음식조절이상 술도 조절해서 적절히 띄엄띄엄 마셔야 한다는 것을 느끼기에 조금씩 먹도록 노력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St. Patrick's Day가 아닌다.  아무리 찾아도 초록색 옷이 없어서 코디는 포기하고, 출근길에 마트에 들러 기네스 맥주와 간단한 안주가 될 것들을 사들고 사무실로 기어들었다. professional로 가득찬 건물에서 주정뱅이 찍히지 않도록 물론 종이백에 숨겨들고 말이다.  아침부터 술을 먹은 기억은 딱 두 번정도.  97년에 한양대 후문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저녁 7시에 호프로 시작해서 다음 날 아침 해장술까지 달린 기억, 그리고 대학졸업을 앞둔 마지막 수업 오전 7시에 당시 즐겨 마시던 싸구려 맥주 - red dog - 를 병째 마신 기억이 난다.  


나이를 먹어서 좋은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어느 정도는 재량껏 사고싶은걸 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나같은 자영업자, 그것도 늘 사람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 가끔은 이런 일탈을 즐길 수 있다는거다.  

기네스를 마시는 두세가지 잔이 있는데, 모두 pint사이즈의 투박한 유리잔이다.  솜씨있는 바텐더가 제대로 따라주면 마시는 내내 저 크라운이 조금씩 가라앉기만 하면서, 사라지지 않는 신기함을 볼 수 있다.  그래도 플라스틱잔에 내가 따른 이 녀석도 그런대로 신선함이 유지된 (질소팩이 들어간 캔이다) 듯, 아직까지는 거품이 남아있다.


Happy St. Patrick's Day...

작년에도 비슷한 포스팅을 했는데, 어느새 일년이 지나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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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18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저도 건배 하고 싶네요.
건배!

transient-guest 2015-03-19 02:22   좋아요 0 | URL
덕분에 오후에는 조금 피곤했지만, 딱 적당한 양이었네요.ㅎ

icaru 2015-03-18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유치원에서 초록색 옷 입고 오라고 해서, 성인 패트릭 씨가 누군데?? 했던 기억이 피어오르네요 ㅎㅎ

transient-guest 2015-03-19 02:2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확실히 아이리시 이민이 많긴해요.

Alicia 2015-03-1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페이퍼 기억나요, St. Patrick`s Day. 그 때 저는 도서관에 있었어요. 그리고 일 년 뒤,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죠... 가끔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저도 그런 자유를 꿈꿉니다. 옛날엔 저렇게 나와 남들 일하는 시간에 커피 한 잔 하는게 가장 행복했는데, 샐러리맨이라 그럴 수 없으니 요즘은 사진 찍을 때 그런 자유와 충만감을 가장 많이 갖게 돼요. :-)

transient-guest 2015-03-19 02:29   좋아요 0 | URL
기억하고 계시네요.ㅎㅎ 정말 일년만에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가끔 외근나가시면 그런 여유를 찾아보셔요.ㅎㅎ

cyrus 2015-03-18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소주, 맥주, 양주 가릴 것 없이 마실 정도로 좋아했는데 작년부터 취업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술모임 횟수가 줄어드니까 소주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 예전 같지 않았어요. 쓴맛이 강해진 느낌이 들었어요. 요즘 소주보다는 맥주, 막걸리를 찾습니다.

transient-guest 2015-03-19 02:29   좋아요 0 | URL
막걸리가 은근히 괜찮은 술인 듯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래도 줄여나가게 됩니다.ㅎ

2015-03-19 0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9 0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9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0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몬스터 2015-03-1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아요. 술이 센 편이시군요. 저는 오리지널 보다 드라우트가 맛이 좋더라구요. GP가 빈혈에 좋데서 와인으로 옮겨오기 전에는 자주 즐겼는데 , 이젠 와인이 ㅎㅎ 술은 좋아요.

transient-guest 2015-03-20 01:35   좋아요 0 | URL
저도 드라우트를 좋아합니다. 기네스가 빈혈에 좋다는 말은 처음 듣구요. 와인은 조금씩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 들었습니다만, French paradox를 실천하기에는 너무 많이 마시게 되는지라...ㅎ
 

고작 월요일인데, 융단폭격을 당하는 것처럼 몰려드는 일거리가 장난이 아니다.  어려운 시대에 바쁜 것은 좋은 것이지만, 아무튼 아침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일하고 있다.  오후도 거의 저물어가는 지금에서야 겨우 한숨 돌리고 주말에 읽은 책을 정리하기 위해 들어왔다.  


마중물이 되어준 책이 두 권이다. 워낙 쉽고 빨리 읽히는 책이라서 아무런 부담없이 쭉 읽어내고, 그 덕분에 힘을 얻어서 다른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되는데, 독서행위라는 것도 여느 다른 취미들처럼 분명히 지칠 때가 있기 때문에 만화책과 함께 이런 가벼운 재미를 주는 책들도 종종 읽곤한다.  물론 이들을 폄하하거나 순전히 어떤 쉬운 독서로만 여기는건 절대 아니고, 다만 상대적으로 무겁고 복잡한 책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 뽕구라 같은 책은 아닌 작품들은 하나씩 구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친구의 스케줄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자영업자인 나름대로의 업무강도와 업무 외적인 일에 대한 부담이 늘 있어, 이것도 그리 만만하게 여길 수는 없다.  일례로 첫 2년 동안은 다음날이 월요일이라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는 일요일밤을 보냈지만, 이제는 일요일밤이 되면 다가오는 한주의 업무량과 일정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독일어로는 모르겠고, 영어로는 Magic Mountain이라는 이 책, '마의 산'은 말 그대로 나에게는 마성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듯하다.  작년 2월 말경에 그때까지 반 조금 넘게 읽은 이 책을 과감히 덮고 다시 시작하는 출정식(?)을 신고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한 해가 다시 돌아오고도 3주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이번의 시도에서는 거의 다 읽고 마지막 8-90페이지 미만까지 갈 수 있었는데, 어느 시점에 또다시 책을 놔버려서 머릿속에 남은 내용의 구성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고, 이를 억지로 한번 끝내버리면 아주 오랜 시간동안 다시 손에 들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저녁때 이 책을 다시 reset해버렸다.  확실히 두 번째 읽을 때의 느낌은 처음보다 나았기에 세 번째 읽게 되는 이번에는 더 깊은 reading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성서도 아니고 왜 자꾸 다시 읽게 되는건지 알 수가 없어서 묘한 공포감 같은걸 느끼게 된다.  나도 한스나 요양원의 다른 환자들처럼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돌아오기를 반복하게 된 것인지의 여부는 사실 모르겠지만, 우연히도 그렇게 등장인물들의 행보를 따라가는 독서행각이 우습기도 하다.  과연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다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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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3-17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딱딱한 책들 읽다가 지칠땐 저도 가벼운 책들 보는것으로 한숨 돌리곤해요.


<마의 산> 하아...오늘 아침에도 책장에 꽂혀 있는 마의 산을 가져올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다른 책을 가져왔어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한번 중간에 덮고 나니 좀처럼 다시 손이 가질 않네요.

저도 이만 일하러..^^

yamoo 2015-03-17 16:29   좋아요 0 | URL
<공중그네> 저두 정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라부는 제가 정말 많은 웃음을 선사해 줬습니다..

<마의 산>은....지루해서 읽다가 디져부렀습니다~ㅜㅜ

transient-guest 2015-03-17 16:53   좋아요 0 | URL
오쿠다 히데오는 비교적 최근에 접한 작가인데,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게 역시 지칠때 읽기 좋은 듯 합니다. `마의 산`은 일단 다 읽어야 무엇인가 할 얘기가 생기겠지 싶네요. 일단 작가양반의 스타일이 매우 디테일하고 꼼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게 역시 어렵네요.

해피북 2015-03-1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가끔씩 묵직한 책을 읽다보면 기분 전환을 위한 책이 필요하더라구요

마의산 세번째 도전은 꼭 성공하시길 바래요 ^~^

transient-guest 2015-03-17 16:54   좋아요 0 | URL
곧 다시 시작할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성공했으면 좋겠네요.ㅎ

Alicia 2015-03-1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tran님이 마의 산을 정복하신 이야기를 꼭 듣고 싶네요. ㅋㅋㅋ 언젠가 페이퍼에서도 마의산을 언급한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고 하셨잖아요. ㅎㅎㅎㅎㅎ
마중물 독서가 필요하긴 한데 저는 요즘 의욕도 없고 책이 통 손에 잡히질 않아서 문학수 기자의 클래식 강의를 듣고 있답니다. 지기님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밑줄그어 올려주시는 걸 가끔 읽는데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가벼운 독서, 늘 꿈꾸는 거지만 제 독서는 항상 진지하고 조금은 무거운 듯 해서 걱정이예요. ㅠ

transient-guest 2015-03-17 16:56   좋아요 0 | URL
정말 여러번 `마의 산`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요..ㅎㅎ 그런데 책을 사들인 2012년에서 지금까지 결국 한번도 완독을 하지는 못했네요. 문학수 기자님의 강의를 듣고 사서 읽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도 좋았고, 최근에 나온 책도 꽤 좋았습니다. 늘 reference할 수 있는 책 같은데, 겉멋도 없고 뭐랄까 거품을 싹 거둬낸 알찬 책 같습니다. 독서를 오래 가져가는 방법은 역시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ㅎ

다락방 2015-03-1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개님과 게스트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어쩐지 [마의 산]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네요? 책 검색 들어가봅니다. 훗.

yamoo 2015-03-17 16:3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마의 산 읽다가 지루해서 디져부렀어요~ 것두 3번씩이나...토마스 만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 젤루 재밌었던 거 같아요...근데, 뭐...토마스의 소설은 소설이 아닌 교양서 같아서...서사가 정말 지루합니다..네..

transient-guest 2015-03-17 16:58   좋아요 0 | URL
작가님께서 읽고나면 멋진 리뷰가 나오겠지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ㅎㅎ

yamoo님: 토마스 만의 소설은 확실히 서사가 길어서 깊이 들어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듯 합니다. `마의 산`은 정말 힘이드네요..

icaru 2015-03-17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껏 살면서 마의 산을 완독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러면서 성장소설 이야기가 나오면, 성장소설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토마스만의 마의 산이 있다고들 하고요..
시시종종 도전 의지를 불태우지만 요양원 생활만 재독삼독하다가 만 1인입니다.;;

다락방 2015-03-17 10:39   좋아요 0 | URL
아니, iacru님까지...
아, 정말 완독에의 욕망이 솟네요. 불끈불끈. ㅎㅎ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3-17 16:59   좋아요 0 | URL
정말이지 이번에도 요양원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절망할 듯..ㅎㅎ 계속 읽다가 어떻게 하면 환자를 오래 keep하면서 쥐어짜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일어날 듯 합니다.ㅎ

다락방님: 꼭 완독하시길! 너무 어렵고, 길어서 집중도 그렇고, 일단 한번에 다 읽기가 쉽지 않네요.ㅎ

붉은돼지 2015-03-17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십여년전에 작심하고 세계문학전집 읽을 때 마의 산 읽은 기억이 납니다. 내용은 가물~~무슨 병원에서 환자들끼리 어쩌고 저쩌고 하던 세기말적인 분위기... 그런 기억만 어렴풋이...그때는 범우사 세계문학전집이었는데요. 죄와 벌이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소설을 무슨 도닦듯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transient-guest 2015-03-18 01:16   좋아요 0 | URL
일단 내용이 너무 길고, 작가 특유의 서사도 그렇고 쉽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세번째 읽는 것이니까 내용이 좀더 잘 파악되고, 따라서 의미를 더 잘 생각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죠..ㅎㅎ 저도 도를 닦듯이 읽게 될 것입니다.

cyrus 2015-03-17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넘기 힘든 문학의 산이 토머스 만의 <마의 산>과 조정래의 <태백산맥>일 겁니다. ^^

transient-guest 2015-03-18 01:17   좋아요 0 | URL
태백산맥은 오히려 참 쉽게 읽었는데, 마의 산은 너무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