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매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일단 매주 due date을 정해놓고 끝내가야 하는 큰 케이스들을 하나씩 치워나가는 부분이 있어 하루의 일정시간은 늘 머리를 써야했고, 다른 자투리 케이스나, 작은 일감들은 나머지 시간에 적절히 업무량과 강도에 따라 배분하여 일을 했기 때문에 매일 출근해서 작업하다가 시계를 보면 퇴근할 시간이 되어버리곤 했다.  물론 나 정도의 스케줄이야 한국 직장인의 흔한 격무 스트레스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느끼는 것이 다르니만큼, 어쨌든 퇴근해서 집에 가면 머리가 띵~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수-목요일을 거쳐 어느 정도 이번주의 할당량이 정리가 되고해서 금요일인 오늘은 가볍게 오전에 잡무를 하고 오후에는 책을 읽을 계획이었다.  마침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이래저래 좋았던 것 (이 가사를 아는 당신의 나이는??).  


그러나 나의 바램은 계속해서 들어오는 이메일과 전화, 그리고 갑작스런 방문상담신청에 가볍게 날아가버리고, 난 지금에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면서 오후의 미팅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월 말에 주문한 책과 CD가 막 도착한 참이라서 '그네와 꽃'이나 '가을방학' 아니면 '나희경'을 틀어놓고 그렇게 나른한 봄날의 독서를 즐기려고 했는데...


읽는 내내 책을 손에서 내려놓기 힘들 정도로 나를 깊이 사로잡은 책이다.  누구나 가끔씩은 느끼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만의 인생, 업적, 불안함, 그리고 모자람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드는, 특히 한 방향으로만 꾸준히, 한눈팔지 않고 걸어간 사람일수록, 그가 이룬바와는 상관없이.  


그레고리우스는 50여년을 잘 살아왔다.  물론 여느 사람들처럼 후회되는 순간, 아팠던 일들, 즐거움 모두 적절히 경험했을만큼 비교적 평범한 삶이었을게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말이다.  꾸준한 공부와 학구열로 학교에서 이미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고문헌/고어선생님인 그의 인생은 하지만, 어느 비오는 날 아침, 어느 여자의 자살시도(?)를 말리려다가 매우 급작스럽고도 급진적으로 다른 turn을 시작하게 된다.  


불면증이 있는 주인공은 매우 쓸쓸하게 긴 밤의 끝과 동시에 아침의 시작을 맞는다.  아무것도 생각할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는다.  밤에 잠을 못자게 하는건 소설에서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가본 길, 그리고 가보지 못한 길, 다른 인생여정에 대한 반추가 아닐까 싶다.  그런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같은 그의 정신은, 아주 우연히 자기 손에 들어온 한 권의 책, 그 책을 쓴 저자의 삶으로 들어가는 여행을 시작하는데, 그 동기만큼이나 격정적인 그 시작은 익숙한 일상, 2-30년은 그렇게 살아왔을듯한 그의 일상을 한꺼번에 drop해버리는 지점에 맞물려 있다.  


아주 금방 나는 이 책의 이야기속으로, 정확하게는 그레고리우스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와 함께 긴장하고 갈구하고 실망하고, 때론 잠시잠깐의 승리감도 맛보면서 한 권의 인생을 살아야했다.  나답지 않은,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표현이지만, 조금만 참아주시길.  정말 내 맘이 그러했으니까.


기실 나에게 어쩌면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인생을 되짚어가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레고리우스를 보면서, 그의 50평생을 보면서, 나 자신의 이야기, 나 자신의 50대를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말썽이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다.  어려움도 겪고, 부모님을 속상하게 해드린적도 있었지만, 정말이지 그 흔한 사춘기 한번 제대로 겪지 않고 지나왔었고, 큰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하고 조신하게 풀어짐 없이 살아왔다.  그 덕분에 모자란 실력으로 그나마 남들이 쬐끔은 부러워하는 직종에 들어왔고, 초기에 고생은 좀 했지만, 점점 나아지는 실적으로 하는 일의 양에 비해서는 훨씬 좋은 대우를 받고 있으며, 상황은 더욱 좋아질 수도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꽤 건전한 취미와 건전한 생활, 건강하고 균형잡힌 생활 덕분에 나이에 비해 몸도 건강한 편이고 또래보다 어려보이는 편이다 (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항상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인생을 던질만한 무엇.  정열적으로 나를 던질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답은 정해져있다.  그것도 딱 정답수준의 답으로.  그레고리우스처럼 언제 어디서 무엇을 계기로 나 또한 그렇게 radical하게 갑자기 모든 것을 던져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그레고리우스가 학교를 뒤로하고 리스본으로 떠날때부터 끊임없이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그간의 생을 새겨보고 있을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레고리우스는 한 여자를 찾아서 떠났지만, 그 끝에서 얻은 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여정의 깊은 이야기, 그리고 그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자신의 이야기만이 세상의 전부였던 사람에게 그것은 그 나름대로 큰 의미였을 터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끝까지 그가 찾아 떠난 여인을 만났는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 큰 떡밥을 그렇게 가볍게 날려버리고, 그레고리우스는 다시 베른으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다.  그게 다다.  


어떤 의미를, 깊은 무엇인가를 찾는건 실패했지만, 어쩌면 그레고리우스의 여행은 그 자체로써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치 내가 이 책에서 깊은 철학적 사유를 끄집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레고리우스의 모습에 나 자신을 투영시켰던 것처럼.  간만에 깊은 사고를 하게 만드는 책을 읽은 듯 감동아닌 감동같은게 계속 내 마음속에 부유하고 있다.  


'의천도룡기'를 보면 초반에 주인공인 장무기의 엄마, 은소소가 자결하면서 하는 말이 있다. '여자는 사람을 잘 속인단다.  예쁜 여자일수록 더 잘 속인단다'라는 취지의 말인데,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장치로써의 아름다운 여인은 정말, 그 미모나 매력에 정비례로 문제가 많다.  단순히 거짓말이라면 그 시대의 애교로 봐주겠지만...이렇게 말하고 나니 스포일러가 쏟아지는 느낌이다.  



페이퍼를 시작한건 오후 2시.  이렇게나마 마무리하는건 5시.  그 동안 두 건의 상담과 업무처리, 그리고 세금정산을 위해 회계사와 만나는 부분까지 정신없이 돌아간 3시간이었다.  


언젠가 정말 다 던지고 나갈 용기가 생긴다면 나도 우선은 기차를 타고 서부종단, 그리고 대륙횡단을 할 것이다.  그 계기를 찾기위해 비오는 날 아침 금문교를 걸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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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03-14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J Duck? ( 아닌가요? ) ha ha

transient-guest 2015-03-15 03:17   좋아요 0 | URL
ㅎㅎ 아직 젊으신 듯...

몬스터 2015-03-15 0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 대략 열 번이상 중얼중얼. DJ Duck 같은데 아닌가봐요. 누군데요?

transient-guest 2015-03-16 01:08   좋아요 0 | URL
솔리드의 `천생연분`입니다. 그때 노래방가면 다들 빙의해서 부르곤 했지요.ㅎ
 

언제 이 책을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오래 전에 gym가방에 넣고 다닌 전집의 38번째 이야기다.  요즘 다시 조금씩 자전거를 타고는 있지만, 그간 한 달 가까이 cardio운동을 전혀 할 수 없었고, 그 전에도 워낙 불규칙하게 이를 시행한 덕분에 운동을 하면서 책을 읽을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던 것이 큰 이유였지만, 아마도 자꾸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되는 나 자신의 태만도 그 이유라고 생각된다.  가능하면 운동할 때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보지 말아야 할텐데 하면서도, 이메일 때문에, 전화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이 책을 다 읽은 나는 39권을 뽑아 gym가방에 담을 것이다.  75권에 달하는 전집을 다 읽게되는 시점은 아마도 잘해야 이번 연말 정도가 아닐까?  캐드팰 전집은 구해놓고도 시작을 하지 못하고 있고, 동서 미스터리 시리즈 - 틈이 나면 조금씩 구해서 언젠가는 전집을 갖추고자 하는 - 도 전혀 손을 못대고 있다. 그나마 다른 가벼운 추리소설은 배달되면 그때 맞춰 조금씩 읽고는 있지만, 어쨌든 이 시리즈를 다 끝내야 다른 시리즈로 넘어갈 수 있을 듯하다.


모든 용의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죽었다.  희생자와 용의자가 모두 한 시공간에 모여있는 상태에서 발생한 이 사건의 배후를 캐보니 모든 사람이 나름대로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고, 희생자는 쉽게 말하면 꽤 나쁜놈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운동을 하면서 틈틈히 읽는 크리스티의 책은 요즘 기승전결을 제대로 파악하면서 읽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전개를 즐기는 편이기 때문에 포와로의 추리를 따라간 기억은 없다.  매우 꼼꼼하게 추리소설을 분석하는 글을 찾는 분은 http://hansang.egloos.com으로 가시면 매우 좋은 리뷰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작품의 특이했던 점이라면 아주 마지막 순간까지 투척된 범인떡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중으로 장치되어 끝까지 정확한 추론이 어려웠다는 점이 신선했다.


1992년에 타계한 아시모프의 유작에 가까운 이야기집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매우 유명한 추리소설작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아시모프는 약 400여권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는데, 워낙 다작에 다양한 주제를 건드린 덕분에 이렇게 추리소설도 60여편 이상을 남겼고, 그들은 Black Widowers (흑거미 클럽으로 번역됨)라는 책으로 5-6권 정도가 출간되었다.  한국어로 나온 책을 한 권, 그리고 우연한 득템에 따라 읽은 이 책으로 겨우 두 권만 보았을 뿐이지만, 온라인을 뒤져서 나머지도 다 구해내리라 다짐하고 있다.  


Black Widowers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전형적인 armchair detective장르인데, 범죄이야기도 있고, 단순한 미스테리를 한달에 한번씩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모임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늘 그렇듯이 멤버가 추천한 그날의 guest에게 자신의 존재이유를 정당화할 것을 묻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이 클럽의 멤버이자 매우 유능한 웨이터인 헨리의 혜안으로 답을 찾는 것으로 끝나는데, 진지한 추리소설이나 일본풍의 호러색채가 강한 이야기가 아닌, 매우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읽다가 보면,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도 새록새록 올라오는데, 내가 직접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책이 어떤 목적성을 갖고 달려드는 존재가 되기전, 오히려 tv만큼이나 흥미와 오락의 수단이었던 시절, 매우 활발한 도서경기와 독서, 라디오의 시절까지 만날 수 있다.  


너무 바쁘게 지내고는 있지만, 책값을 벌 수 있는건 바쁘게 일하는 덕분이다.  새삼 다행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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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모프는 SF소설도 유명하죠. 최근에 <파운데이션>이 완역되었을 뿐이지 다른 걸작들은 거의 절판되었고 온라인 중고샵에서 고가로 나옵니다. 저도 아시모프의 책을 구하는 중인데 생각보다 가격이 쎄서 그저 군침만 삼키고 있습니다. ^^;;

transient-guest 2015-03-11 01:42   좋아요 0 | URL
은영전 정식판 전집과 함께 파운데이션은 저를 불안하게 하는 책입니다. 절판되기 전에 주문해야 하는데, 해외배송에 뭐에 값이 상당히 올라가서 계속 미루고 있거든요. 한국에서 SF장르는 확실히 고전문학에 비해서 천대받는 듯 합니다. 금방 절판되고 잠깐 붐이 왔다가 사라지고...

yamoo 2015-03-11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하영웅전설, 파운데이션, 로봇 시리즈...전 90년대에 다 봤습니다. 그런데 다시 장만하려고 하니 가격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재밌게 읽었던 책들이 갑 중에 갑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transient-guest 2015-03-11 13: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전 파운데이션은 아직 영어책으로만 갖고 있고, 은영전은 을유문화사에서 나온게 있어요. 아무래도 정식판이 나오니까 갖고 싶고, 얼마전에 보니까 다나카 요시키의 아루슬란 전기도 다시 정식판이 나왔더라구요. 열심히 벌어서 열심히 사들일 생각입니다.ㅎㅎㅎㅎ 지금보다 PC게임도 그렇고 오락기도 그렇고 저도 90년대가 갑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문득, 그건 제 나이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ㅎ
 

일화 1:

이젠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겨울이 되면 반마다 나무난로를 설치하고 주번이 아침에 일찍 나와서 양동이에 땔감을 받아와서 불씨를 만들어서 난로를 땠었다.  그 나무는 어디선가 트럭 하나에 왕창 싣고와서 학교에서 이때마다 야적장으로 쓰는 공간에 아무렇게나 부려놓고서 가면, 이를 다시 고학년 남자애들이 반별로 체육시간을 이용해서 정리하도록 했었다.  이런 방식은 중학교에 가서도 비슷하게 이어졌었는데, 지역별로 차이는 있었겠지만, 아마도 대동소이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일화 2:

이 역시 옛날이야기 (였으면 한다). 신생학교를 가는 것은 (1) 선생님들의 낮은 질적수준, (2) 신개발지역이라는 특성상 다소 공포(?)스러운 구성원, 그리고 (3) 3년 내내 예상되는 이사와 노가다 때문에 부모님들의 기피대상이 되곤 했었다.  나는 다행히도 이런 경험을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나대로 이야기가 있다), 어떤 고등학교에 1회로 입학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첫날 학교에 가니 건물이 한채 덩그러니 서있더란다, 운동장이라고는 아무리 화장을 해도 말할 수 없는 그런 들판같은 자리에 말이다.  1학년 개교와 동시에 학교는 2학년 건물을 짓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학생들의 체육시간은 운동장 자리를 고르는 노동과 건축 노가다에 고스란히 사용되었고, 그렇게 3년을 다녀 학교를 짓고 졸업했다고 한다.  


일화 3:

외국에서는 보통 사립학교라고 하면, 말썽쟁이들을 수용하는 military school계통의 기숙학교가 아닌 다음에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다니는 좋은 학교를 말한다. 역시 지역과 학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왜 그런지 이 사립학교가 한국에서는 종종 더 못한 학교를 의미했었다.  겉모양은 번드르르하고, 지역에 따라 좀 사는 사람들의 아이들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때만해도 참 거지같던 것이 사립학교였다.  뭐든지 공립보다 더 받아가고, 더 원하고, 더 내는데, 시설은 공립만 못한 것이 사립학교였는데, 선생들의 수준은 말로 할 수 없을만큼 저열하고 저급했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대놓고 촌지와 선물을 요구하던 교사부터, 생활이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은 따로 관리를 하면서 학부모를 만나서 이런저런 청탁을 하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중간고사나 기말시험을 보면 짧아진 하루의 스케줄 덕분이었는지, 학교가 파하기 전에 술을 마시던 교사도 있었다.  거기에다 애들을 패면 진짜 지금 생각하면 죽을까봐 걱정될 정도로 두들겨 패는 교사에, 요즘 같았으면 성추행으로 고소당할 수준의 장난(?)을 학생들에게 치는 선생도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한국의 교육과정에 좋은 기억을 같고 있지 않은 나이기에 물론 왜곡도, 그리고 감정적인 부분도 당연히 있는, 그러니까 온전히 객관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난 사립학교를 생각하면 그런 기억밖에 갖고있지 못하다.  사학재단의 폐혜는 이제 전국구적인 이야기고, 개혁을 반대하는 집단은 재단의 당사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또는 그들에게 속고있는 교단사람들이니, 나의 어린 시절과는 조금이나마 달라졌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이제는 젊은이도 아니고, 이런 저런 곳에서 사회를 움직이는 나이가 되어있다.  위치에 따라 갑을관계를 너무도 당연히 여기는 우리들의 교육은 그렇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고, 역시 교육에 따라 너무도 당연하게 이곳저곳에서 삥을 뜯거나 돈을 해먹는 관행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체득되었다.  일화 1, 2에서 그 비용이 과연 처음부터 책정되지 않았을까?  아마도 아주 낮게는 학교의 일개 선생에서 높게는 교육구나 그 상위기관까지 누군가는 그 돈을 해먹고, 이 때문에 부족해진 부분은 학생들이 고스란이 떠맡았을 것이다.  사학재단개혁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물건너간 이야기니까 3은 말할 가치도 없겠다.


사회곳곳에서 발견되는 부조리와 비법, 불법, 폭력의 근저에는 이런 교육과정이 있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회사에서 쫓겨나면 바로 자영업자가 되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기업의 명함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미래이기도 할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를 겁박하는 갑질행태, 소위 노른자위 보직에 앉으면 어떻게 하든 한탕 해먹으려는 행태는 이렇게 어릴때부터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무의식속에 깊이 새겨지는 것이다.  


미군철수를 원하고, 작전권환수를 원하는 마음은 분명히 주체적인 대한민국을 원하는 마음일것이다 (적어도 대다수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대한민국의 군대만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북한만을 주적으로 상정하더라도 아마 전면전을 벌이면 대한민국 군대는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단계마다 붙어서 해먹는 군납비리, 방산비리를 보면 내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오늘 당장 전쟁이 나고 전투가 벌어지면, 보병은 군수품 부족으로, 탱크, 전투기, 함정을 비롯한 기계를 운용하는 병단은 기름이 없어서, 정비가 안되어서, 개발이 되지 않아서, 부품이 가짜라서, 또는 개발했다는 무기가 아예 개발조차 되지 않아서 아마도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씨를 위시한 좌우여야의 대다수는 이승만처럼 국민총력전을 외치면서 나라를 떠날 것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역사교육, 특히 한국사교육의 부실은 더 말할 수 없을만큼 심각한데, 이건 여기서 다루기에는 할 말이 좀 많다.  


아주 어린 시절의 교육은 이렇게 중요하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결국은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이 개판이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 박근혜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다 죽어 없어져도 그 행태는 이 새로운 세대로 고스란히 전승되어 새로운 '그들'을 만들것이다.  


일베가 어떤 지나가는 현상이라고 이해하던 때가 잠깐 있었다.  하지만, 요즘 보면 이 또한 하나의 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 잘난 한국의 교육 시스템 (또는 부재)도 최소한 일부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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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0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닌 중고등학교 모두 사립이었는데요, 중학교때 유독 그렇게 가슴 부분의 명찰을 본인이 손수 빼주겠다고 한 선생이 있었어요. 가슴 부분 주머니에 명찰을 넣고 다니면 일루 오라고 해서는 굳이 그걸 빼주는 거죠. 학생이 스스로 빼려고 하면 가만있어 하면서 빼주는.. 아 ..너무 욕나오네요 갑자기. 이런 성추행은 아주 빈번하게 일어났고 아무도 거기에 대해 말할 수 없었어요. 학생들끼리 그저 `병신 싫어..`라고 할 뿐이었죠. 이럴때 제가 좀 더 뭔가 힘이 있었다면, 좀더 알았다면, 뭔가 깨어있었다면 드러내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때문에 너무 속상해요. 저 역시 학생이긴 했지만 너무 무지했던 것 같아요. 너무 무지해서 고스란히 당하고, 당하는 걸 보기만 하는거죠.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 그거 죽일놈이었는데, 라고 생각하면서요. 하아-

마음이 아프네요.

어린 시절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씀에 저는 아주 강하게 동의합니다.

transient-guest 2015-03-06 10:03   좋아요 0 | URL
정말 군대나 경찰조직처럼 학교도 합법적으로 변태들이 숨어들 공간이 많은 곳 같아요. 유별나게 물건 받아먹고 변태같은 짓을 많이 하던 선생이 있었는데, 이제 세월이 흘러 이런 놈도 `장`급 선생이 되었을거에요. 근데, 이놈이 지금도 옛날하고 똑같이 그대로라는 말을 모교생들이 만든 게시판에서 보고 깜짝 놀란적이 있어요. 여학교는 훨씬 더했을거라는 생각, 그리고 주류에서 보는 성의식이나 개념은 판례나 변명을 보면 여전히 그대로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도 더욱 매사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yamoo 2015-03-06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그시절 떠 올리면 욕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단체로 얼차려받고, 선생들에게 빠따맞던 생각이 나네요. 전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전부 사립 중고등학교를 나왔는데...별로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나마 고등학교가 괜찮았던 거 같고...

어쨌든 좋은 글, 아주 공감하며 읽고 갑니다!

transient-guest 2015-03-07 02:2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왜들 그렇게 두들겨 팼었는지 참 알 수가 없네요. 특히 감정기복이 심한 선생들은 반 아이 하나를 때리다가 전부 때리는 것도 자주 봤거든요.

아무개 2015-03-06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근혜씨를 위시한 좌우여야의 대다수는 이승만처럼 국민총력전을 외치면서 나라를 떠날 것이다.˝
가슴에 그냥 팍! 와닿는 말씀이네요.

초중등학교는 기억이 안나고
사립 고교때 참 많이도 맞았던것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도대체 왜그렇게 많이들 맞아야 했는지 이해할수가 없어요.
별명이 `예측불허`인 선생이 있었는데
왜 때리는지 언제 때릴껀지 알수가 없는 선생이라 그렇게 불렀었지요.

transient-guest 2015-03-07 02:25   좋아요 0 | URL
중학교때는 아이들 귀를 무는 선생도 있었고, 따귀도 막 때리고, 그랬네요. 지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요. 뭐가 그리 화나고 미웠는지..그들 말이죠.

몬스터 2015-03-06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교육의 중요성. 특히 어릴 때 받은 교육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몸에 스며들어서 화석화되는 것 같아요. 한 인간이 나서 자라는거 , 주위 환경에 너무나 크게 영향을 받아요.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그 결과들은 또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지고.

제가 가진 trauma도 가끔 고개를 불쑥 들이미닌데 , 그러지 않을려고 하지만, 지금 제 인성에 영향을 주고 있을 거예요. 조심할 수 밖에요. lol

transient-guest 2015-03-07 02:53   좋아요 0 | URL
그래서 수구세력이 그렇게 무리수를 두어가면서 역사도 무엇도 교육을 장악해서 뒷세대를 만들려고 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가끔씩 옛날 생각을 하면 참 싫은 기억만 많이 나네요.
 

특별히 스케줄이 꼬인건 아니고, 그냥 일이 쌓여가면서, 정신적으로 피곤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자영업자가 일이 많아지는걸 불평할 수는 없는 일이고, 조금 더 밀린 케이스들이 처리되어 나가야 잠깐이나마 편해질 듯.  이런 일상을 보내면서, 운동은 어떻게든 하고 있지만 책읽기는 좀 어렵다.  일단 너무 머리가 복잡해서 굳이 활자를 들여다보고 싶지 않고, 길게 시간을 잡고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일부러 테마를 정한 것도 아닌데, 지난번 책들에 이어 이렇게 어린 아이 또는 십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십대가 겪는 내면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게 되었다.  둘 다 꽤 좋은 책인데, <달과 게>가 초등학생의 마음속의 미묘한 감정과 그의 눈과 감성으로 들어오는 세상의 이야기라면, <열일곱...>은 좀더 성숙한, 하지만, 아직은 다 자라지 않았기에 많은 혼란을 겪을 수도 있는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의 teenager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  

줄거리를 요약하는 버릇을 갖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으나, 딱 여기까지만 쓸 힘만 남은 것 같다.  '다음엔 더 잘 한다'고 해놓고서는 핑계만 대는 지금이 좀 한심하지만, 일단 정말로 달리 할 말이, 읽을 당시에는 많은 생각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떠오르지 않느다.  조금은 지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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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3-0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과 게 어때요? 우연히 생겼는데 읽을만 할까요?

transient-guest 2015-03-07 02:54   좋아요 0 | URL
네 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름 긴장도를 높이는 부분도 있었구요. 제 후기는 형편 없지만요..ㅎ

몬스터 2015-03-06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뚱한 말인데요, transient-guest님 , 달과 게 책 표지는 손으로 그림자 놀이 했던 거 생각나요. 그거 있잖아요. 두 손으로 왈왈 짖는 개 입모양 그림자 만드는거. ( 외국생활 오래하셔서 모르실지도 )

책 읽는거에 점점 재미들이고 있어요. 선택폭이 좁은데 ( 대부분의 영어책은 아직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 , 아이패드 ibook이 제 거의 유일한 책이거든요. 가끔 좋은 책 읽고나면 며칠동안 사는게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transient-guest 2015-03-07 02:55   좋아요 0 | URL
예전에 tv에서 보고 많이 따라했었죠. 독수리도 만들고...ㅎ
좋은 책을 만나면 정말 그렇게 읽는 내내 즐겁고 행복하더라구요. 특히 생각하지 못한 아주 우연한 만남이라면 더더욱..ㅎ
 

아버지와 누나가 읽을 수 있도록 책을 집에 두고 왔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는 기억을 다시 더듬을 방법이 지금은 없다.  좀더 후기를 미루려다가 더욱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란 걱정, 특히 느낌까지도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듯 하여 급하게 짧은 정리를 하기로 했다.


세부적인 내용의 줄거리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히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측면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이야기들은 상당부분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강하게 남는다.  친구가 된 아이의 집이 강을 떠도는 작부의 배라는 설정, 아버지의 커리어를 위한 이사도 그렇고, 지금은 단편 7-8개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읽은 책은 비록 지금은 대단한 무엇인가를 남겨주지 못했지만, 우연하게 어느 날, 기분에 따라 다시 읽게 되는 몇 년 후에는 아마도 다른 느낌으로 신선하게 다시 다가올 것임을 알기에 조급해하지는 않기로 했다.  


나의 독서취향이나 접근방법, 그리고 글쓰기는 딱 이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읽기는 그런대로 불만이 없는데, 글쓰기는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상하게 대학생 시절만큼의 글이 나오질 않는다.  로스쿨 기간동안 책읽기의 단절이 있었고, 아무래도 역사를 공부하면서 essay를 써내던 학부시절보다는 업무적인 글쓰기만 계속 하게 되어 그런 것인지, 아무튼, 줄거리와 내 마음, 그리고 생각이 버무려진 글을 쓰고 싶은데, 현실은 주구장창 내 생각만 이야기하고 있는거다.  문제다.


영화로만 알고 있었고, 동양인 비하가 흔했던 옛 시절의 분장만 기억나는 이 작품이 소설이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대단한 작품이라고는 말 할 수 없겠지만, 당시 서양사람들이 갖고 있던 동양사람에 대한 편견을 교묘하게 인물의 장점으로 부각시킨 점, 그리고 비록 하와이 사람이지만, 어쨌든 중국계를 주인공으로 만든 점은 특이한 점이다.  작품에서도 나오지만 뻑하면 '차이나 맨'을 씨부려더던 시절을 무대로 삼아 신비스러운 느낌의 경감 찰리 챈은 겸손하게 그러나 냉철하게 자신만의 수사를 펼치는 것을 보는건 매우 즐겁다.  추리가 논리적이거나 하지는 않고, brain game도 없으니, 그저 classic을 즐기는 마음으로, 마치 편하게 누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즐기면 딱 좋겠다.



마음만 바쁘고 실상 일은 게으르게 풀어간 2월 한 달이었다.  책읽기도 딱 그 정도.  3월부터는 조금 더 달라져야 한다.  밀린 일도 빨리 처리하여 원상태를 회복시키고, 더 열심한 마음으로 업무를 대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부터는 더 잘 할게요"라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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