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퀸의 사전적(?) 의미에는 광대도 있고, 한국의 록밴드도 있다. 게다가 '할리퀸 소설'이라는 여성취향의 로맨스 소설과 할리퀸 새우라는 어종으로도 풀이가 나온다. 하도 '할리퀸'이라는 생소하지만 익숙한 단어를 여러 곳에서 접했던 바, 이번 크리스트 소설 '신비의 사나이 할리퀸'을 보면서 도대체 '할리퀸'이 뭔가, 크리스티 소설이 '할리퀸'이라는 말이 시작된 첫 지점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방금 찾아보면서 스펠링을 검색하니 여기서의 할리퀸은 할리 Queen이 아니라 Quinn이라는 전형적인 영국의 last name이다. 그러니까 할리퀸이 아니라 할리 퀸이라고 해야 옳겠다. 크리스티가 가장 좋아한 케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등장하는 작품은 모두 단편이며 특히 새터스웨이트가 등장하는 단편에서 그에게 영감을 주고 사라지는 정도의 역할만 볼 수 있다. 소설을 보면 실제 인물인지 새터스웨이트가 상상하는 가공의 인물이지 모호할 때도 있는데, 원제인 The Myterious Mr. Quinn을 음미해보면 처음부터 작정하고 이런 생제르맹 같은 인물을 만들어 낸 듯.
자주 이야기 하지만, 호흡이 긴 추리를 재미있게 읽다가 조금 늘어지는 감이 없지않아 지칠 때에는 이렇게 알맞은 단편모음집이 등장하는 구성은 최고라고 하겠다.
인생 황혼기의 노인 새터스웨이트의 특기는 관찰이다. 타인의 행불행과 깊은 속마음을 짐작하면 엿보는 것을 즐기는 그는 할리퀸의 등장과 함께 사건의 전면에 탁월한 타이밍으로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데, 알고보면 이미 모든 것을 보았고, 알고 있었던 것을 할리퀸의 한 마디로 영감을 얻거 풀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그리고 언제나 돌아보면 사라진 할리퀸을 보면서 나는 그가 새터스웨이트의 머릿속에만 있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물론, 할리퀸을 보고 듣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나마 할리퀸은 실존하는 케릭터 같다. 언뜻 저녁 노을과 함께 떠올랐다가 달과 함께 사라지는 우리 머릿속의 번득임을 의인화한 인물일까? I will never know....
이 작가를 접한 것은 '김두식-황진영'이 함께 진행하는 podcast를 통해서였던 것 같다. 인터뷰 때 하던 말이 인상적인데, 생활고에 대한 질문에 적게 쓰기 때문에 지금의 벌이로도 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 같다. 젊은 작가이고 목소리가 맘에 들어 작품을 사보게 되었다.
여자. 한국땅에서 여자라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여자가 아닌 남자인 내가 보아도 답답한 그 차별, 한, 집착, 외로움, 이런 것들을 견뎌내면서 우리의 어머니들은 우리를 낳고 키워서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으로 길러냈다. 때로는 무능한 남편에 시달리고, 유능하면 유능한대로 말썽부리기를 주저않던 아버지들까지도 다독여내고 견뎌내는 어머니로서의 여자는 그 우상화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더욱 여성차별의 상징이 되어버린 감도 없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때로는 외화벌이의 역군으로, 현모양처로, 강한 전사로, 일꾼으로 그렇게 정작 여성이 원하는 것과는 큰 상관없이 시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가르치는 여성의 진정한 이야기는 아직도 제대로 시작되지는 못한 것 같다는 것이 이 소설을 읽고나서 새삼 가슴에 박힌다. 쓰고 나니 무척 유치한데, 달리는 내가 느낀 것을 표현할 수가 없어 아쉽다.
전집의 시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시대는 모르겠지만,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중반까지도 '전집'세트는 책에 돈을 조금이라도 쓰는 집이라면 하나씩은 있었는데, 주로 외판원 아주머니들이 발품을 팔아 공급되는 고급상품이었다. 금성출판사 같은 인지도 있는 곳에서 '위인전기' '공상과학' '문학' '백과사전'의 형태로 세계유수의 좋은 책을 선별하여 낸 것들의 구성은 지금 보아도 무척 뛰어난 부분이 있어, 자유롭게 한 권씩 책을 사보는 것이 주류인 지금에도 헌책방을 통해 꽤 활발히 구매되는 것 같다. 2006-7년 언제인가 그렇게 나도 짝이 맞지 않는 금성출판사의 '전집' 한 세트를 꽤 좋은 가격에 아벨서점에서 구입하여 보관하고 있다. 문고본과는 다른 하드커버로 만든 진한 청색바탕에 금색으로 박은 제목과 저자의 이름을 보면 지금과는 다른 그 멋과 맛을 느낄 수 있기에 책장에 꽂아놓기만 해도 좋은 것이다.
내가 가진 세트는 문학과 과학, 고전, 사상, 사회,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유수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을 한 것이라서 정말 다양한, 그러나 단권으로 만나기 힘든 이야기들도 여럿 만날 수 있는데, 드디어 읽기 시작한 전집 (이라고 해야 짝이 다 빠져서 15권 정도가 될락말락하는)의 첫 번째는 HG 웰스가 쓴 '세계문화대소사'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다른 이의 '나의 신념'이라는 에세이.
HG 웰스는 대략 SF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혜안과 통찰은 지금도 많은 이들이 숭배하는 고전의 대가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아니 그의 시대에서 10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웰스의 작품들 또한 고전이라 해야 마땅하다.
혹자의 말을 빌리면 우리 시대의 교양은 자연과학지식이겠으나, 20세기 초입만해도 젠틀맨의 관심은 정치, 경제, 사회를 망라한 역사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작가가 1920년에 출간한 세계문화사대계의 축약본격인 이 책은 그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역사서술과 함께 저자의 의견이 들어가는 부분의 글은 HG웰스의 대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몇 가지 quote과 함께 나의 생각을 적어본다.
우리 모든 인종은 자유롭게 한데 섞이고, 구름처럼 만났다 흩어졌다 다시 만났다 하는 존재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이 사실을 잊지 않을 때 극단적인 오류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피부색이나 출생국가에 기인하는 인종차별은 지금까지도 완전하게 해소되지 못한 인류의 극악들 중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연히 같은 백인종끼리의 차별도 당연시되던 당시의 사회적인 인식에 비춰보면 파격적이다 못해 혁명적인 발언이라 하겠다.
(유태인들이) 단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성서를 얻었기 때문이다...유태인이 성서를 만들었다고 하기보다는 성서가 유태인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성서를 매체로 해서 단결해 있었다. 예루살렘은...이름만의 수도에 불과했고 그들의 사실상의 수도는 성서 안에 있었다...
-->이스라엘을 건국한 현대 유태인의 본류는 아슈케나지 유태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의 혈통과 팔레스타인을 기반으로 했던 2000년 전의 셈족 유태인과는 다른 인종이며 중세무렵 (이 부분은 여러가지 설이 있다) 집단개종한 '백인'계 민족이다. 오히려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인종이 혈통상으로는 성서의 '이스라엘'사람에 가까운, 그러니까 2000년 전에 로마에 의해 완전히 망한 유대왕국의 후손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을만큼, 유태인이라 함은 결국 그 혈통이나 인종적인 의미에서의 그룹이 아니라 '믿음'과 '시스템'을 공유하는 그룹이라 하겠다. 실제로 Chinese Jew라는, 중국계 혈통이면서 유태교를 받아들인 '유태인'도 있고, 다른 경우도 있다고 하니, HG웰스의 요점정리는 역시 탁월하다고 하겠다.
공간과 시간에서 시작하여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축약정리한 이 책은 1차대전 후의 세계에서 멈춰있는데, 1946년에 작고한 웰스가 왜 그 뒷 이야기를 마저 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다. 어떤 이야기는 시대적인 한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대가의 혜안이 돋보이는 Classic이다.
뒷 장에 짧게 삽입된 HJ 레스키의 이야기도 생각할 것들을 던져주는데, 사회주의라는 것이 센세이션이던 시대에서 반국가적인 시대, 그리고 낡은 것으로 치부되던 시대를 거쳐 현재 그 말기증상을 보여주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대안적인 아이디어로 재조명되는 지금 더욱 한번 정도 깊이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들이다.
HJ 래스키는 영국의 정치사상가로써 20세기 초에서 중반까지 살아있었던 사람이다. 다음은 이 책에서 건진 그의 말이다.
정치적 자유가 금권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한 추상적인 정치적 자유라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계급은 결코 자진해서 그 권력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윤을 산출하는 힘에 대한 도전이 있다면...주인들은...사람이나 운동을 압살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좋은 글을 모아놓은 전집은 더 이상 시대가 요구하는 형태의 출판은 아닌 듯 하다. 그것보다는 자기가 찾은 reference를 바탕으로 하나씩 작품을 모으는 형태로, 어떻게 보면 덜 대중적인 방향으로 출판이 움직이고, 더 이상 만들어진 구성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시대에 뒤쳐지기 싫은 잠재적 고객을 위해 출판시장은 끊임없는 광고와 조정을 통해 구매자의 마음을 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전집류도 지금와서 보니 충분히 헌책방에서 노려봄직 하다. 무엇보다 나름 당시 유명하던 학자와 편집자들의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구성이니만큼,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유수작품들을 만날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ㅣ
PS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 전집은 60권으로 이루어진 금성출판사의 현대인 교양총서고, 내가 가진 녀석들은 약 30권이 조금 못되는 것 같다. 나중에 분명히 헌책방에 마주치면 한질로 되어 있을테니 그냥 사들여서 중복되는 것들과 함께 보관해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