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게을러졌기 때문일까. 잠시 책읽기가 주춤했었다. 간만에 게임을 잡은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주말에는 잠시 부모님을 모시고 어딜 다녀온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을 붙잡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많은 일을 처리하지 못한 오늘. 운칠기삼의 의미를 또다시 되새긴 오늘. 한 일주일만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지내면서 푹 쉬고 싶다.
글을 쓰다가 말다가 하면서 이어지니까, 이렇게 조각을 모아놓은 것 같은 페이퍼만 나온다. 다음 주에는 거의 모든 미국사람들의 휴가기간이니까 너무 스케줄이 나쁘지 않다면 나도 사무실을 조금 떠나서 있어볼 생각이다.
'우주 전쟁'은 어릴 때 소년소녀문고로 접한 이후 처음으로 다시 읽었다. 그간 영문으로 몇 번 읽은 적은 있는데, 국문으로 (미국에서 20년을 넘게 산 나에게 영어는 국어, 한국어는 모국어로 분류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읽은 건 대충 따져봐도 25년만에 처음이다.
이렇게 어린 시절에 읽은 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면 간혹 '이런 책이었나' 싶을 정도로 다르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우주 전쟁'이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쌓인 생각과 경험, 그리고 HG 웰즈, 아니 SF 장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덕분일 것이다. 그러니까, 더 이상 그냥 '공상과학'썰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
사회적인 관점에서, 정치적인 관점에서, 혹은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등등 수 많은 다른 시각으로 이 책을 조명할 수 있는데, 이렇게 보면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보다도 훨씬 더 그 해석이 복잡하고 다각적이다. 우주인을 만나게 되면 벌어질 수도 있는 하나의 이야기라는 점은 그 전보다 확실한데, 상대적으로 월등히 뛰어난 문명이 그렇지 못한 인류와 만났을 때 지금까지는 후자의 운명이 그리 밝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실 정말로 외계인이 있고, 차원이나 시공간이동이 가능한 문명이라면 그들과 우리의 기술적인 간극은 백인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차이수준을 훨씬 뒤어넘을 것이고, 그들이 우리의 반의 반, 아니 그 반만 같아도 지구멸망은 거의 확실한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미지의 문명과의 조우에서 적대적인이 우호적인지도 판단하지 못하고, 아무런 정보가 없이 우왕좌왕하는 한 시기 영국의 타운사람들의 모습과 앞으로 다가올 지도 모를 이계와의 조우 때 우리가 보일 모습이 그리 다르지도 않을 것 같고, 오히려 그간의 인구증가와 도시확장을 보면 훨씬 더 큰 혼란이 예상된다. 일단의 외계인 신봉자들이 이야기하듯 초고도로 발달한 문명은 선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극선이나 극악이나 초고도문명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고 보고, 또 그들의 선과 우리의 선은 그 기준이 다를 수도 있기에 어쩌면 지금처럼 UFO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편이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나온 하루키의 여행에세이. 언제나처럼 큰 임팩트는 없이 잔잔한 그만의 필체로 과거의 여행을 다시 밟아간 이야기. 재탕이 종종 이뤄지지만, 이번의 이야기는 그가 8-90년대에 방문했거나 잠시 살았던 곳을 비교적 최근에 다시 돌아보면서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친했던 사람이나 즐겨찾던 장소를 찾는 등 다른 책에서 보지 못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어 더욱 반가웠다. 워낙 이전의 여행과 이번의 재방문사이의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없어진 곳도 있었고, 대를 이어 운영하는 숙박시절도 있었는데, 우조를 너무 많이 마시면 안된다던, 가끔은 생선을 손질해주기도 하던 친절한 모씨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만날 수 없었다고 하니, 맘이 착잡하기도 했을 것이다. 잘 나가는 작가란 직업이 부러운 건 무엇보다 이렇게 어디든 쉽게 떠날 수 있다는 점. 게다가 잘하면 책을 쓰는 조건으로 비용지원까지 받을 수 있으니까 금상첨화다. 하루키도 이제 60대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젊은 시절만큼 힘있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점점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여행기도 좋고, 잡문도 좋고, 그저 주기적으로 새로운 글을 써주었으면 한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읽을 땐 미처 몰랐는데, 윤성근씨의 글솜씨나 풀어내는 이야기의 소재들은 남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헌책방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부러움도 있고 해서, 그가 쓴 책을 모두 구해보게 되었다. 지금 배송중인 두어 권도 받으면 바로 읽어낼 생각이다. 전문작가의 글도 보았고, 상당히 이런 쪽으로는 많은 글을 읽어봤는데, 윤성근씨의 글은 (1) 작가들의 독서평론처럼 빛이 나는 점은 없지만, (2)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 일부 젊은이들이 시도하는 책출판경력서 따위의 글보다 훨씬 더 좋다. 책을 쓰기 위한 글이 아니고,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쌓인 것들이 술술 글로 풀려 모인 느낌이랄까? 한달 한번씩 심야책방을 열기도 한다는데, 아마 하루의 업무를 마친 늦은 밤, 혼자 조용히 책상앞에 앉아 낮의 번잡스러움과 벌이의 고달픔을 뒤로 하고 한땀씩 정성들여 새기지 않았을까? 특히 '탐서의 즐거움'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혼자 부엌 한켠의 작은 식탁에 노트를 펼쳐놓고 글을 쓰는 모습이 떠오르게 하는 무엇인가가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그려낸 그의 모습이었다.
엘러지가 심해지니까 여느 기침감기와 다를 바가 없다. 1-2분에 한번씩 기침을 하고 그렁그렁하게 맺힌 가래를 닦아낸다. 좀더 심각한 증상일까봐 걱정이 되는건 확실히 나이를 먹은 탓이다. 가라앉지 않으면 조만간 다시 병원에 가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