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게을러졌기 때문일까.  잠시 책읽기가 주춤했었다.  간만에 게임을 잡은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주말에는 잠시 부모님을 모시고 어딜 다녀온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을 붙잡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많은 일을 처리하지 못한 오늘.  운칠기삼의 의미를 또다시 되새긴 오늘.  한 일주일만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지내면서 푹 쉬고 싶다.  


글을 쓰다가 말다가 하면서 이어지니까, 이렇게 조각을 모아놓은 것 같은 페이퍼만 나온다.  다음 주에는 거의 모든 미국사람들의 휴가기간이니까 너무 스케줄이 나쁘지 않다면 나도 사무실을 조금 떠나서 있어볼 생각이다.


'우주 전쟁'은 어릴 때 소년소녀문고로 접한 이후 처음으로 다시 읽었다.  그간 영문으로 몇 번 읽은 적은 있는데, 국문으로 (미국에서 20년을 넘게 산 나에게 영어는 국어, 한국어는 모국어로 분류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읽은 건 대충 따져봐도 25년만에 처음이다.  


이렇게 어린 시절에 읽은 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면 간혹 '이런 책이었나' 싶을 정도로 다르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우주 전쟁'이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쌓인 생각과 경험, 그리고 HG 웰즈, 아니 SF 장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덕분일 것이다.  그러니까, 더 이상 그냥 '공상과학'썰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


사회적인 관점에서, 정치적인 관점에서, 혹은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등등 수 많은 다른 시각으로 이 책을 조명할 수 있는데, 이렇게 보면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보다도 훨씬 더 그 해석이 복잡하고 다각적이다.  우주인을 만나게 되면 벌어질 수도 있는 하나의 이야기라는 점은 그 전보다 확실한데, 상대적으로 월등히 뛰어난 문명이 그렇지 못한 인류와 만났을 때 지금까지는 후자의 운명이 그리 밝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실 정말로 외계인이 있고, 차원이나 시공간이동이 가능한 문명이라면 그들과 우리의 기술적인 간극은 백인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차이수준을 훨씬 뒤어넘을 것이고, 그들이 우리의 반의 반, 아니 그 반만 같아도 지구멸망은 거의 확실한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미지의 문명과의 조우에서 적대적인이 우호적인지도 판단하지 못하고, 아무런 정보가 없이 우왕좌왕하는 한 시기 영국의 타운사람들의 모습과 앞으로 다가올 지도 모를 이계와의 조우 때 우리가 보일 모습이 그리 다르지도 않을 것 같고, 오히려 그간의 인구증가와 도시확장을 보면 훨씬 더 큰 혼란이 예상된다.  일단의 외계인 신봉자들이 이야기하듯 초고도로 발달한 문명은 선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극선이나 극악이나 초고도문명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고 보고, 또 그들의 선과 우리의 선은 그 기준이 다를 수도 있기에 어쩌면 지금처럼 UFO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편이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나온 하루키의 여행에세이.  언제나처럼 큰 임팩트는 없이 잔잔한 그만의 필체로 과거의 여행을 다시 밟아간 이야기.  재탕이 종종 이뤄지지만, 이번의 이야기는 그가 8-90년대에 방문했거나 잠시 살았던 곳을 비교적 최근에 다시 돌아보면서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친했던 사람이나 즐겨찾던 장소를 찾는 등 다른 책에서 보지 못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어 더욱 반가웠다.  워낙 이전의 여행과 이번의 재방문사이의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없어진 곳도 있었고, 대를 이어 운영하는 숙박시절도 있었는데, 우조를 너무 많이 마시면 안된다던, 가끔은 생선을 손질해주기도 하던 친절한 모씨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만날 수 없었다고 하니, 맘이 착잡하기도 했을 것이다.  잘 나가는 작가란 직업이 부러운 건 무엇보다 이렇게 어디든 쉽게 떠날 수 있다는 점.  게다가 잘하면 책을 쓰는 조건으로 비용지원까지 받을 수 있으니까 금상첨화다.  하루키도 이제 60대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젊은 시절만큼 힘있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점점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여행기도 좋고, 잡문도 좋고, 그저 주기적으로 새로운 글을 써주었으면 한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읽을 땐 미처 몰랐는데, 윤성근씨의 글솜씨나 풀어내는 이야기의 소재들은 남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헌책방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부러움도 있고 해서, 그가 쓴 책을 모두 구해보게 되었다.  지금 배송중인 두어 권도 받으면 바로 읽어낼 생각이다.  전문작가의 글도 보았고, 상당히 이런 쪽으로는 많은 글을 읽어봤는데, 윤성근씨의 글은 (1) 작가들의 독서평론처럼 빛이 나는 점은 없지만, (2)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 일부 젊은이들이 시도하는 책출판경력서 따위의 글보다 훨씬 더 좋다.  책을 쓰기 위한 글이 아니고,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쌓인 것들이 술술 글로 풀려 모인 느낌이랄까?  한달 한번씩 심야책방을 열기도 한다는데, 아마 하루의 업무를 마친 늦은 밤, 혼자 조용히 책상앞에 앉아 낮의 번잡스러움과 벌이의 고달픔을 뒤로 하고 한땀씩 정성들여 새기지 않았을까?  특히 '탐서의 즐거움'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혼자 부엌 한켠의 작은 식탁에 노트를 펼쳐놓고 글을 쓰는 모습이 떠오르게 하는 무엇인가가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그려낸 그의 모습이었다.


엘러지가 심해지니까 여느 기침감기와 다를 바가 없다.  1-2분에 한번씩 기침을 하고 그렁그렁하게 맺힌 가래를 닦아낸다.  좀더 심각한 증상일까봐 걱정이 되는건 확실히 나이를 먹은 탓이다. 가라앉지 않으면 조만간 다시 병원에 가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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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6-2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루키 진짜 읽고 싶네요 ㅋ 기침 조심하세요 ㅠ 저도 가래가 너무 심해서 금연약 치료 받아서 챔픽스 먹으며 금연하고 있어요 담배를 안 피니 괴롭네요 ㅋ 알러지가 좀 없어지시면 좋겠어요

transient-guest 2016-06-24 00:5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요즘은 어디가 아프면 확실히 예전보다는 만성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aging...이죠..ㅎ 저는 담배를 피지 않고, 유일한 vice는 술이랍니다. 사실 술을 끊으면 만사형통인데 말이죠..ㅎㅎ 건강관리는 필수입니다.

cyrus 2016-06-2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 감기가 제일 무섭습니다. 지난주에 통풍이 무릎, 손목에 재발했는데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몸이 아프면 책 읽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집니다.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드러눕고 싶습니다. ㅎㅎㅎ

transient-guest 2016-06-24 00:57   좋아요 0 | URL
저는 5-6월엔 알러지가 심해질 때가 있어요. 증상이 심해지면 감기나 진배없어서 의사한테 가도 잘 모르더라구요.ㅎ 요즘 제가 딱 그래요. 만사가 귀찮고..책더미를 디벼서 읽기 쉽고 신나는 막소설을 찾아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ㅎㅎ 통풍은 정말 괴롭죠...약을 먹으면 멍해진다고 한창 고생하던 선배가 말하더라구요. 식이요법과 다이어트로 극복하고 꾸준히 관리해야한다고 들었습니다. 통풍이 치료되었으면 합니다.

호서기 2016-09-02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방금 우주 전쟁을 읽었습니다. 임종기 씨가 옮긴 2005년 책세상 판으로요. 다큐멘터리 같았다는 님이 표현이 아주 적절한 것 같군요. 오죽하면 라디오 오페라를 듣던 사람들이 실제 상황인지 착각했겠나 싶더라구요. 암튼 전에 몰랐던 깊이가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9-03 03:04   좋아요 0 | URL
SF를 흔히 어릴 때 읽는 책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우리나라엔 특히 강한 것 같습니다. 저도 늘 그렇게 생각했었구요. 그런데 알고 보면 세태풍자나 미래예측, 사회상을 반영하는 등 수준이 높은 소설이 많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다시 읽는 SF의 맛이 더욱 각별한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ㅎ
 

몸상태가 좋지 않을 때 가끔 막걸리를 마신 다음날 뻥~ 뚤린 경험이 있어 사러 나가려고 했더니 벌써 한국마트는 문을 닫을 시간이다.  지금이야 traffic도 심하지 않고 해서 빨리 갈 수 있지만, 그래도 20분은 잡아야 하는데, 여름해가 길어서 시간이 지나가는 걸 잘 모르고 있었다.  오후 4시에 방문상담이 잡혀버려서 점심운동을 싱겁게 했더니 좀 부족한 듯.  그런데 정작 오후 2시에 취소연락이 와버렸다.  가끔이지만 한국인 고객들, 특히 한국에서 갖 넘어온 사람들은 시간관념이 좀 부족한 것 같다.  심지어 전날 오후에 급하다고 생떼를 쓰길래 다음날 오전출근에 맞춰 약속을 잡아줬더니 밤새 맘이 바뀌었는지, 출근시간전에 전화를 해서 오지 않겠다고 메시지를 남기는 사람도 있었는데, 역시 잠시 방문중인 사람이었다.  이게 얘길 잘못하면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데, 확실히 경험상 아직 한국-중국의 경우 (1) 지식정보에 대한 비용지불개념이 없는 경우, 그리고 (2) 같은 맥락에서 타인의 시간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것을 자주 본다.  중국계 변호사들하고 얘기하면 내가 한국인들에게서 느끼는 점과 싱크로율 거의 100%.  물론 근대시민의식은 우리가 좀더 앞선 부분이 있지만, 그거야 산업화가 더 빨리 되었고 그만큼 현대적인 의미에서 에티켓 같은데 더 정착된 것일뿐, 큰 부분에서는 아직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다보면 역시 이곳에서 오래 살았구나 하는 생각과, 그리운 고국이지만, 뭐랄까 아련한 기억속의 첫사랑 같은거라서 지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사는 건 무리라는 생각을 한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봐야 별볼일 없을 것처럼.  그러고보니 마지막으로 한국을 갔던 것도 거의 4년 전.  빠르게 변하는 도시는 얼마나 더 많이 변했을까.  주변에 산과 언덕을 다 깎아버리거나 빌딩으로 가려버린 삭막함을 넘어선 서리얼한 풍경에 가슴이 답답했었는데...


다시 운동을 가려고 하다가 컴을 켜고 나니 바깥은 너무 춥다...그렇다.  엘니뇨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밤 8시 40분인 지금의 온도는 섭씨 17도.  바람도 간간히 불어서 꽤 춥게 느껴진다.  원래 추위에 강한 사람이지만, 나이와 엘러지 앞에는 장사가 없는 듯.  문무겸전, 무림천하, 일통강호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엄청난 속도로 읽어내던 책도 한풀 꺾여 요 근래엔 만화책만 붙잡고 있다. 여름 중에 로맹 가리와 소세키를 전작해보는 것을 목표로 삼기는 했는데, 현실은 소설과 SF, 그리고 만화라는...


밤이 되니 다시 차분하게 맘이 가라앉고, 어제 마시다 남긴 와인을 홀짝거릴까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이틀 연속은 너무하잖아...이젠 몸이 버텨내질 못하니, 참아야한다.  제때 끼니를 챙겼으면 딱 이시간 정도에 오는 술허기가 없을 것을...건강한 생활은 역시 좋은 습관에서 오는 것 같다.


사람이 모두 떠난 후쿠시마에 버려진 동물을 돌보는 한 아저씨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았다.  사람이 필요에서 키우다가 방사능에 오염되어 먹을 수 없게 되고, 함께 할 수 없게 되니 살처분만이 답인 것처럼 접근하는 것에 반발하여 소중한 생명들을 돌보기 위해 남은 이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그렇게 고양이도, 개도, 타조도, 소도, 무엇도 손이 닿는대로 거두어 먹이고 함께 살아가는 걸 보면 잔잔하지만 깊은 감동을 느끼다 못해 이상한 부러움까지 느껴진다.  다만 구체적인 이야기보다는 짧은 사진집에 가까운 책이라는 점에서는 이 사람의 삶에 깊에 다가갈 수 없기 때문에 아쉬움 부분이 있다.  이 의인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들은 기억이 있는데, 책을 보고 혹시나 이런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산 것.  


차를 한 잔 마시고 일찍 잘 생각이다.  엘러지 약을 먹으면 기침도 좀 잦아들테니까 잠이 오겠지?

이렇게 저렇게 하루씩 보내고 나니 벌써 또다시 목요일이다.  소중한 6월의 반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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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6-16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때 끼니를 정말 잘 챙기는 사람이지만 술허기는 언제나 오던걸요.....

transient-guest 2016-06-17 01:41   좋아요 0 | URL
저는 배가 부르면 술이 안들어가는 타입이라서 가끔은 술허기가 오지 않게 밥을 넉넉하게 먹을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밤이 늦어지면 싹 소화되고 다시 허기가..-_-:

북깨비 2016-06-16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는 무엇을 읽고 계신가요?

transient-guest 2016-06-17 01:41   좋아요 1 | URL
라즈웰 호소키의 `술 한잔, 인생 한입`을 보고 있습니다. 다 보면 다른 책을 보다가 `진격의 거인`을 볼 생각입니다.

수이 2016-06-16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술허기는 매일밤......

transient-guest 2016-06-17 01:42   좋아요 0 | URL
술 마시는 건 좋은데, 전 술이 들어가면 폭식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조심해야합니다.ㅎ
 

정신없는 4월과 5월, 그리고 신산스럽기 짝이 없는 6월의 반을 열심히 뛴 결과, 이번 주는 조금 slow down된 일정으로 보내고 있다.  보통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눈을 뜨면 출근해서 - 회사에서 차로 5-10분 거리 - 12시까지 열심히 그날의 목표치를 처리하고, 오후에는 조금 일찍 퇴근하면서 일거리를 들고 통상의 퇴근시간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서 전화를 받거나 메일을 처리하는 식의 가벼운 일을 한다.  사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물론 다소 넉넉한 일정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처음 사무실을 시작할 때 텅빈 공간이 싫어서 책으로 채워놓은 공간이 이제는 내 책상을 제외하고는 그간 마구 사들인 책과 4년 이상 쌓인 케이스파일 - 주에 따라 다르지면 보통 최하 5년 이상은 보관할 의무가 있다 - 탓에, 내 방은 점점 집중력을 저해하는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연말에는 이를 좀 정리할 계획인데, 책을 창고로 보내기는 싫으니까, 실질적으로는 조금 더 정리하고 다 본 책은 부모님 댁의 내 방에 가져다 놓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다.  운동을 하고 들어온 지금은 산뜻한 맘으로 남은 업무시간을 채우고 있는데, 엘니뇨 덕분에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어 '술 한잔, 인생 한입'이 술술 읽히고 있다.


가끔은 이런 날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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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16-06-15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듣고만 있어도 산뜻해요 ㅎㅎ

transient-guest 2016-06-16 01:21   좋아요 0 | URL
오늘은 다시 정상영업(?)입니다.ㅎ

수이 2016-06-1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그런 날이면 좋겠어요. :)

transient-guest 2016-06-16 01:22   좋아요 0 | URL
좀 유유자적하는 삶을 원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네요.ㅎ

cyrus 2016-06-15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텅 빈 공간이 생기면 새 책을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이렇게 인간은 부질없는 욕심에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ㅎㅎㅎ

transient-guest 2016-06-16 01:22   좋아요 0 | URL
딱 그렇습니다.ㅎ 비우면 채우고 차면 비우고...ㅎ
 

Orlando, FL에서 9-11이래 최악의 본토테러가 터졌다.  하필이면 LGBT를 타깃으로 하여 300여명이 모여있는 클럽에서 총기를 난사했고 50명 사망에 53인 부상으로 현재까지 알려져있다.  범인은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사살됐는데, 아프간계 미국인으로 보도되고 있고 범행을 시작한 후 20여분 후 911에 전화해서 ISIS추종자임을 밝혔다고 한다.  우리 조상님들이 일제와 싸울땐 가급적 상징적이고 센놈을 골라 싸움을 걸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이놈들은 꼭 약자나 사회적인 소수자를 타깃으로 한다. 미국이 그간 중동의 정치-경제에 깊숙히 관여한 패악질도 알고, 중남미에 끼친 해악도 안다만 이런 목불인견의 테러라니.  누가 더 나쁜걸까. 


[건곤불이기]라는 다소 희안한 제목은 아직도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다. 역시 한국신무협의 특징이라면 특징인 loose한 인과관계나 깔끔한 사건의 마무리가 아쉽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꽤 재미있게 읽은 책.  이런 책은 보통 한 시간이면 한 권을 읽을 수 있으니까, 권수만 늘어날 뿐, 의미는 1/4정도로 봐야한다.  스토리의 거의 반 권 이상을 주인공을 숨기고 세월을 보내는데, 보통 주인공은 처음부터 '내가 누구다'하는 수준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 무협소설에서 이는 나름 신선하다.  약간의 기연을 얻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바로 고수로 성장하지 않는 점도 좋았고, 세가나 무가출신의 주인공다운 인간이 아닌, 소박한 객잔의 아들내미가 고수로 성장하는 모습도 좋았다.  무술의 묘사 같은 건 좀 떨어지는 편이고, 굳이 가자면 고룡처럼 환상적인 무공표현을 좋아하는 듯, 검강이나 검망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펼쳐지는 주술에 가까운 무술과 함께 강호의 2-3류에 해당할 듯한 무예가 함께 섞이는 듯.  여기에 객잔의 아들답게 요리의 이야기도 나오고, 나쁜 등장인물들은 적절하게 벌을 받기도 하는 등 중간중간에 속이 시원한 결말도 좋다.  다만 복잡한 인과관계나 마음의 얽힘과 끊어짐에 대한 전개와 묘사는 좀 많이 부족했기에 기왕에 다시 나오는 책이라면 이런 부분을 조금 더 보강하면 좋았을 것 같다.  PDF로 본 수많은 한국과 중국의 무협지에 포함되지 않았던, 처음보는 책이다.  고룡이나 와룡생, 그리고 양우생의 작품들도 좀 다시 나와주면 좋겠다.  어떤 기연을 얻어야 [다정검객무정검]을 책으로 만나볼 수 있을까?


능청스러운 세설의 대가 빌 브라이슨의 또다른 책이다.  지금까지 간간히 구해서 읽은 이야기에서 그의 어린 시절의 전부였던 Des Moines, Iowa를 주무대로 펼쳐지는 미국의 마지막 good old days라 할 수 있는 1950년대의 좋았던 한 시절의 이야기다.  흑인인권이나 사상의 자유에 있어 암흑기와 다름없던 이 시기는 하지만 많은 백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메리카제국의 last great period로 인식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51년인가를 기준으로 세계 부의 95%를 직접 생산하고 소유했던 미국인들은 당시 90%이상이 냉장고를 갖고 있었고, 모든 집에는 자동차가 한대씩 있었으면 많은 suburban 아메리칸들은 집도 한채씩 갖고 있었다.  모든 것은 미국에서 생산된 것들이었고, 워낙 다양한 home appliance들이 쏟아져나온 덕분에, 가정에서는 철마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사들여 즐겼다고 한다.  월남전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였고, 중산층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두터웠으며 고졸의 보통직장을 가진 가장은 온가족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빌 브라이슨의 익살맞은 회고와 멋진 미국의 과거의 이면에는 물론 흑인을 잔인하게 린치해서 죽이고도 무죄로 풀려난 백인들이 있었고, 중남미의 정치에 깊숙히 개입해서 사회민주주의를 탄압하던 미국의 CIA와 우파정권이 있었으며, 매카시의 진두지휘하에 미국 전역을 작살낸 Red Scare의 광풍이 몰아쳤음을 담담하게 하지만 그 특유의 sarcasm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매우 특별한 시기였고, 백인 미국인들 대다수에게도 일과 휴식과 호사가 적절히 어우러진 시절이었음은 강조되고 있는 듯.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휴식과 호사 대신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벌고, 그렇게 번 돈은 물건을 사는 것으로 여유를 대체한 미국이 되어버렸고,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franchise가 점령하기 시작한 지역상권은 미국 전역을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당연히 지역상권과 지역만의 특색은 함께 사라졌고, 지금 Des Moines, Iowa는 다른 중서부처럼 쇠퇴하는 과거의 도시가 되어버렸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은 빌 브라이슨의 어조에서는 쓸쓸함이 묻어나고, 이젠 고향에 가도 고향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그의 현실은 거의 모든 개발국가의 지구인(?)들이 함께 맞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50년대는 과연 좋은 시절이었을까? 선악의 구분이 확실하고 모든 것을 흑백으로 나눠볼 수 있던 시절이었음은 확실한데.  그럼 지금처럼 다각화된 세계보다 냉전시대가 더 나은 시기였을까?  도무지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보통 그의 책을 읽으면 유쾌한 웃음이 가득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서글픔과 약간의 분노, 그리고 지나간 한시절에 대한 상상의 향수만 잔뜩 느낀 건 이런 복잡한 마음 탓일지도 모른다.


이상북스와 저자를 스쳐간 수많은 헌책들 중, 글이 남겨진 책을 추려모은 것.  얇은 소책자정도의 양으로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다양한 책꾼들의 모습을 추릴 수 있다.  젊은 시절이 지금처럼 취직과 서바이벌 대신 진리와 대의를 추구하던 위험하고 슬프던 때의 모습도, 누구의 말처럼 깃발은 쓰러지고 동지만 남았던, 아니 동지는 흩어지고 깃발만 남았던 한 시절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책을 선물하지 않은지도 꽤 되었다.  책을 선물하는 것이 낭만이고 가벼운 주머니로 멋진 선물이 되어주던 시절이 지나간 것이 벌써 못해도 15년은 넘은 듯 하니 말이다.  가난했지만, 당당하고 낭만이 넘치던 한 때의 모습은 역시 클리셰에 가까울 것이지만, 그래도 이젠 20년 하고도 4-5년은 더 전, 싸늘한 늦가을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리운 그때의 나,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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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회사에 쌓아두고 읽지 못하던 책들을 집에 가져다 거실 탁자위에 가져다 놓고 마음 내키는 대로 뽑아서 읽고 있다.  여름 중으로 사무실도 조금 정리하고 부모님 댁에 가져다 놓은 책도 다시 정리해서 읽은 책들은 가져다놓고, 읽을 책들을 주로 근처에 둘 생각이다.  시간이 날때 제작년엔게 구한 Star Trek도 한번 완주하고 싶은데, 느린 진행도 그렇고 아무래도 조금은 유치한 설정이라서 한번에 두 편도 보기 어렵다.  The Big Bang Theory의 팬이 되어 geek흉내를 내고 싶어 조금씩 Star Trek, Firefly, Babylon 5, Battlestar Galactica를 완판으로 구해놓고 시기를 보고 있는데, 여유롭게 앉아서 볼 시간은 아무래도 쉽지 않기도 하지만, 역시 내 취향은 SF보다는 판타지가 아닌가 싶다.  부실한컨버젼으로 일찍 종료된 Dresden Files을 우연히 보고 팬이 되어 Jim Butcher의 Dresden Files시리즈를 모두 재미있게 읽은 것을 보면 역시 과학보단 마법과 판타지의 세상이 더 좋다.  밀린 책을 읽다 보니 더더욱 tv와는 담을 쌓게 되는 매우 바람직한 기현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NBA Final이 끝나면 cable을 끊고 안테나와 인터넷을 이용해서 tv를 reset해볼 생각도 하고 있는데, 유일한 고민이라면 8/9월에 돌아올 college football과 NFL...


10년간 나름대로 바쁜 전문직 생활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케이스와 사람들을 만난 것 같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nice한 고객의 경우 배웠거나 덜 배웠거나, 있거나 없거나 그 모양새가 비슷한데 반해서, 질이 나쁜 고객들의 경우 많이 배운 사람들이 더 저질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95%정도는 최소한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고, 좀 귀찮게 굴더라도 내가 그런 걸 신경쓰지 않기에 오히려 다른 사무실보다 더 친절하다는 소리도 듣고 하는데, 아주 가끔 뭘해도 좀처럼 control하기 어려운 인간이 없지는 않다.  박사, 사업가, 중역이면서 그 찌질함과 감정적이고 유치한 언사, 그리고 너무도 자기중심적인 행동으로 나를 괴롭히는 모씨가 딱 그렇다.  제작년엔가 한바탕 하고 케이스가 깨진줄 알고 좋아하고 있다가 이듬해 연초에 다시 왔길래 좀 나아졌을까 싶었는데, 역시 개꼬리는 아무리 오래 묻어두어도 족제비 털이 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몸소 깨우쳐주고 계시다.  빨리 진행을 마무리하고 모쪼록 개보다 조금 못한 너에게 좋은 결과가 와서 나와는 인연이 끊어지길...99%에 달하는 나의 성공률을 위해서 말이다...


괴도 20면상은 원래 에도가와 란포가 괴도신사 뤼팽을 모티브로 하여 일본색을 가미해 창조한 캐릭터다.  추리도 좋지만, 란포의 매력은 역시 약간은 서리얼한 기괴함이 깃든 이야기들인데, 20면상도 원래는 '소년탐정단'에서의 이야기처럼 살인을 피하고 사뭇 유쾌한 면도 있는 호인(?)이 아니다.  작품 속에서 언뜻 보이지만, 란포는 에드가 앨런 포를 충실히 계승하여 일본풍으로 재창조한 괴상하기 그지 없는 괴도 20면상을 만들어냈는데, 잔인하고 독랄하기 짝이 없는 범죄자에 더 가까운 인물일 것이다.  이 시리즈는 어린 독자들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라서 일종의 각색버전이고, 특히 아케치 고고로의 활약도 간간히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아케티 고고로의 조수인 고바야시군과 그가 이끄는 국민학생 탐정단이라서 소설의 내용도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권이라도 더 란포의 작품을 접하고 싶은 마음에 사 읽었는데, 추리소설을 이렇게 아이들이 읽기 좋은 수준으로 유쾌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어린이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렇게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본의 책문화가 부럽기도 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에도 충실하여 다양한 트릭이 등장하기 때문에 단순한 동화가 아니고, '소년탐정단'책에 대한 이야기는 내 기억에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나 도서관의 주인 시리즈에서도 다뤄지기 때문에 더욱 각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란포의 팬이라면 꼭 구할 것.


이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순서에서 좀 밀렸고, cardio를 게을리한 덕분에 엊그제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엔 확 잡아끄는 것이 부족한 느낌이었으나 몇 페이지를 더 읽고서부터는 계속 결말을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시리즈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이야기라서 주인공의 setup이 없이 바로 본편으로 들어가는 설정이라서 그의 과거는 조금씩 언급되는 이야기에서 추측해야 하지만, 이야기가 워낙 훌륭해서 flow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도 나중에 눈에 띄는 대로 구해볼 생각.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구성도 상당히 내가 좋아하는 것인데, 피리 레이스의 지도에 얽힌 전설, 샹그릴라나 샴발라로 흔히 알려진 이상향, 절대지식, 선과 악의 극성의 추구하는 여정 등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책 이야기도 하고 푸념도 하고, 좋은 글도 읽고, 다른 분들과 교류하고.  알라딘이 없었으면 이런 건 꿈도 꾸지 못했을게다.  게으름 탓이기도 하지만, 사생활에 까발겨지는 걸 싫어해서 facebook도 안하고, 트위터는 그저 귀찮을 뿐인 나에게 알라딘은 내가 하는 유일한 SNS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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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6-12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배운 사람들이 더 저질인 경우가 많다, 그게 현실이군요. 씁쓸해지네요.

transient-guest 2016-06-12 10:26   좋아요 0 | URL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좀 그런 듯 합니다. 좀더 저질이고, 좀더 뻔뻔스럽고, 그런 느낌? 일반화하기엔 좀 어렵지만요..

수이 2016-06-12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익으면 익을수록 숙여지는 벼와 달리 공부 오래 하고 가방끈 길고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를 망쳐나가는지 보고 있노라면 한숨만 나와요.

transient-guest 2016-06-13 13:53   좋아요 0 | URL
사실 좋은 분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쁜 놈들만 놓고 보면 배우고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 야비하고 못된 것 같습니다. 거기에 더 나쁜 건 군자연하면서 나쁜 짓은 도맡아하는 놈들이죠..-_-:

Alicia 2016-06-12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 푸념이라고 쓰셨는데 글이 재미져요 히히. 여전히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탐독하고 계시고 바쁘게 지내고 계시네요~ 사람 상대하는 일들이 피곤하지요. 일 자체는 그렇게 힘들단 생각이 안드는데 사람 상대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어요. 진상들은 온 몸의 기를 다 빨아먹는 느낌. 그래도 십 년 경력이시면 그런 인간들에 휘둘리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이미 잘 하고 계신 것 같고요.

저는 Nicoloas Cage가 나온 The Rock이란 옛날 영화를 한 편 봤어요. 요즘 책은 거의 못읽어요. ICJ Case들과 씨름하고 있지요. 다음주까지 써내야 하는 페이퍼가 있구요. 이렇게 주말이 가네요. ^^

transient-guest 2016-06-13 13:55   좋아요 0 | URL
보통은 알아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지는데, 모씨의 경우는 갈수록 망나니짓이네요.ㅎㅎ 쉽지 않아요..자영업자의 애환이죠..ㅎ the rock이 SF를 무대로 한 영화라서 더욱 기억에 남네요. Cage씨의 리즈시절이기도 하구요. 님께서도 업무에 뭐에 많이 바쁘신듯..ㅎ

몬스터 2016-06-13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 이리 많은 일을 하시면서, 책도 꾸준히 ( 많이 ) 읽으시는지.....저는 독서를 좀 더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TV도 없앴는데 , 누워서 daydreaming하는 시간만 점점 더 늘어가는 듯 합니다. 그래도 이번 주말에는 레드 로자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 두 권이나 읽었어요. ㅎㅎㅎ

글 자주 써 주셔서 좋아요. ㅎㅎ

transient-guest 2016-06-13 13:56   좋아요 0 | URL
쉬운 책을 많이 읽는 듯 합니다, 저는.ㅎㅎ TV가 없으면 확실히 TV말고 다른걸 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요즘엔 또 컴이나 폰으로 다 볼 수 있어서 예전같이 확실한 차단효과는 떨어지는 것 같아요. ㅎ 읽고 일하고 운동하고...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