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위대하고 조심스럽다.  점보는 남자라고 쓴 것을 잘못 해석하면 jumbo=남자 또는 남자라면 jumbo같이 시덥잖은 농담이 되어버린다.  어쩌면 점보는 남자가 아니라 점을 보는 남자로 써야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든 이런 저런 생각이다.


전직 가카 MB씨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세해왔다.  그의 삶의 궤적과 예수의 가르침과는 지구에서 우주의 끝자락 만큼이나 멀어 보이지만 뭐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사업을 하면서/말아먹으면서, 정치를 하면서 주기적으로 풍수와 사주명리학에 의지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증거도 없고 그럴 만한 이유도 없기에 이것은 논리적인 추리라기 보다는 믿음에 가까운 얼치기의 확신이다.  다른 사례는 내가 모르지만 정책을 통해 알려진 그의 행각을 볼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1.  청계천 복원: 말이 복원이지 가짜로 물길을 만들고 하루에 수십억을 퍼부어 강물을 역류시킨 장난감에 다름아닌 청계천 복원을 통해 시내버스 시스템 개혁과 함께 서울시장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다.  서울시장이 되기 전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 채 미국으로 날아가서 골프를 치던 그의 과거는 어리석고 몽매한 국민들의 기억속으로 사라져 버렸더랬다.  복원을 하기 전후로 많은 문제가 있었고 공사과정에서의 문화재 파괴도 심했건만 도맷금으로 쳐 함부로 말하자면 한국에서 젤 어리석을 때가 있고 젤 멍청할 때가 있는 서울시민 다수의 성원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근데, 왜 갑자기 이걸 했을까 궁금했다.  사익과 공익을 합치기에는 시내버스/도로공사가 더 좋은 방향인데 말이다.  


'이'씨는 알다시피 물이 필요한 성씨다.  내 미천한 사주명리학 지식으로 그 이상의 풀이는 어렵지만, 상식적으로 이를 통해 자신의 사주에 물을 댔다고 하면 억지스러운데로 왜 그런 이상한 공사를 벌였는지 이해할 수도 있다.  억지로 만든 물길의 힘을 얻었기에 그랬는지 그의 재임기간 내내 한국은 억지스러운 일들에 시달려야 했다.  


2. 4대강 훼손: 그럴듯한 사기에 다름아닌 이 미친짓 또한 그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 그러나 증명할 수 없는 - 채워주는 효과 외에도 역시 사주명리학으로 풀면 청계천보다도 훨씬 더 센 운발을 위한 물지랄이 아니었을까 싶다.  망가지고 썩어버린 강물마냥 MB씨의 남은 삶도 그러하시길...


남대문이 불에 타버린 사건도 잊을 수 없다.  불기운을 다스리는 남대문 방화된 시점이 하필이면 MB씨의 치세가 시작되기 직전이라니 그의 찢어진 눈웃음만큼이나 참으로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걸 그가 사주했다는 말은 아니고 그냥 불길한 전조였다는 것이 기억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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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입에 붙은 말이지만, 이곳의 금년 날씨는 거의 정확하다 싶을만큼 한국의 음력절기를 따라가고 있다.  금요일인 오늘은 여름의 마지막인 말복이자 가을의 첫 날인 입추답게 날씨는 딱 내가 좋아하는 꿀꿀하고 음울하게 흐린 가운데 옅은 비를 뿌리고 있다.  술맛나는 날인데, 요즘은 일주일에 딱 두 번만 마시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미 한번을 마셨기 때문에 오늘 마시면 토요일인 내일 밤이 아쉬울 것 같아 아끼려고 한다.  


5시에 일어나서 동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서 들어오는 길에 맥도널드 커피를 하나 뽑아왔다.  잠깐 large coffee를 1불에 팔던 것이 의외로 좋은 부수효과를 얻게했는지 지금은 any size coffee가 모두 1불이다.  장사가 잘 되는 곳이라서 그랬는지 매우 fresh한 커피를 마시면서 이렇게 글을 쓰는 기분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변방의 작은 사무실이라서 금요일에는 급한 경우가 아니면 전화가 많이 오는 경우는 드물고, 기존의 client들은 메일로 소통을 하기도 하여 낮에는 카페에나 나가있을까 생각하고 있다.


효율이 좋아서 일도 빠르게 처리되어 책도 그만큼 열심히 읽을 수 있었다.  지난 7월 8권을 읽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는데, 이번 달에는 벌써 4-5권을 읽은 것 같다.  마중물을 퍼부어준 것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역시 가을과 함께 책도 열심히 읽게 되려나?  사실 미국의 전통적인 독서계절은 여름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길고 지루한 여름을 보내기 때문에 휴가를 겸한 독서 catch-up의 계절이라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혼자 책 읽는 시간 (원제: Tolstoy and the Purple Chair)'를 쓴 니나 상코비치도 어린 시절부터 늘 여름은 온 가족이 모두 책을 읽는 시즌이었다고 회술했다.  참고로 이 아줌마의 블로그는 http://www.readallday.org/blog인데, 여전히 매일 열심히 읽고 있는 것 같다.  책과 인생, 사랑, 삶과 죽음, 기억, 추억, 가족 등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책으로 녹여낸 그녀의 책은 영어로도 읽고 한국어로도 읽었으며 내 주변에 열심히 퍼뜨렸을 만큼 개인적으로는 깊이 들어갔던 책이다.


일전에 podcast에서 저자의 강연과 책 소개를 듣고 벼르다가 구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은 이래 현대인의 교양, 그러니까 구시대의 교양인 문학이나 외국어 같은 의미로써, 교양의 기본이라는 자연 과학분야의 지식이 너무 부족함을 느끼면서 항상 과학분야의 독서를 늘려갈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로 이 책과 함께 파인만의 책을 몇 권 함께 주문했는데, 나의 분야가 아니라서 그런지 좀 어렵다.  


수학과 과학과목을 싫어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에는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대학교에 가서는 졸업을 위한 교양으로만 겨우 때운 나이기에 지금은 산수가 아니면 수학은 멀고 과학분야는 그보다도 훨씬 더 멀리하고 있는 폐해가 들어나는 것이다.  대학교를 다닐 때 교양에서 과학을 때우려고 인류학 w/ 약간의 실험과목과 논리학을 들었고, 수학을 때우려고 통계학을 들었던 이래, 매우 오랜 시간동안 수학/과학을 깨우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공부를 하려면 아마도 매우 기초적인 과목부터 하나씩 배워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간단하게 표현하면 천문학 연구와 발전과정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어떻게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가, 우주의 나이가, 빅뱅 등등이 바뀌어 왔는가를 서술하면서 연구, 천문학자, 그리고 시대에 얽힌 에피소드와 함께 풀어냈다.  우주는 지구별에 사는 많은 사람에게 흥미와 관심의 대상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는 드라마나 영화의 측면이 더 강할 것 같다.  왜냐하면, 현실 고고학과 인디애나 존스의 고고학 사이의 괴리만큼이나 천문학에서 이야기하는 기초지식이나 관측과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이야기와의 거리감 때문일 것이다.  


읽는 내내 재미있어 하면서도 복잡한 (나에게는) 공식과 기호 때문에 마치 어려운 한자를 섞어 쓴 예전 소설책 같이 놓치고 지나간 부분이 많았고 피곤했다.  내 업무상 소위 박사 등급 이상의 학자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종종 있는데, 딱 그 느낌이다.  그러니까, 저자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기초지식이나 상식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할 것이라는 assumption.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그의 능력은 그 내용을 얼마나 쉽게 풀어서 보통 사람들이 널리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지가 측정의 척도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상당히 많은 분들이 거기에 미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저자의 경우는 희안하게도 이야기는 그렇게 재미있고 쉽게 풀어서 했는데, 책은 좀 어렵다는 점인데, 이건 객관성이 결여된, 나만의 주관적인 느낌에 그런 것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EBS드라마 '명동백작'을 보고 나서 이름으로만 들었던 '목마와 숙녀'가 박인환이라는 멋쟁이 요절시인의 작품임을 알았다.  사람마다 기질에 따라 성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나는 김수영 - 작품으로 만난 적은 없다.  그건 박인환도 마찬가지 - 의 사상지향성보다는 박인환의 댄디즘이 더 좋다.  단순한 허영도 아니었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 위한 자기만의 방편으로서의 멋이라고 이 책의 저자가 평하는 듯 한데, 그런 복잡한 이야기나 의미가 아닌 그의 멋이 좋다.  


일제시절,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이승만 독재까지의 극악한 시대를 훤칠한 키와 멋진 옷, 샹송과 시, 그리고 문학에 취해 살아간 박인환은 비록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심한 서구지향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한국에서 필요한 것을 당시 훨씬 더 발전한 모습을 보였던 서구에서 찾아 이를 한국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는 저자의 해석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물질문명의 극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 서구를 비판하고 이를 지양한 것에도 역시 역설적으로 더욱 한국지향적인 그의 모습이 멋지다.


이번에 그의 시집도 한 권 샀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대낮의 사무실을 어둡게 꾸며놓고 소리내어 읽으면서 음미봐야겠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명동백작'에서 박인환을 연기한 배우의 키가 작아 170cm의 이정숙 여사 - 박인환의 부인 - 를 연기한 키 큰 여배우와 대조를 이루었던 것이 생각나는 건 사족이다.


하루종일 이렇게 흐린 날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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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4-08-09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력이 정확한것 같아요. 이곳도 며칠전 입추이자 말복이었는데 오늘도 태풍영향이긴 해도 선들선들해요. 참 다양한 책을 부지런히 읽으시는 것 같습니다. 상코비치 블로그가 있군요. 여름은 온가족 책읽는 시기. 우린 꼭 더위가 절정인 이 시기에 휴가들 가느라 땀뻘뻘인데요^^

transient-guest 2014-08-10 05:0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제는 무더위에 멀리 나가느라 고생하지 말고 시원하게 집을 꾸며놓고 책을 읽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8-09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분들이 24절기를 음력이라고 여기더군요.하지만 양력입니다.작년 달력을 보면 되죠.작년에도 입추는 8월 7일입니다.하지만 말복은 올해와 달리 12일이었죠.말복은 24절기가 아니어서 음력으로 재니까요.그래서 해마다 날짜가 다릅니다.

다른 24절기도 작년 달력으로 확인해 보세요.


transient-guest 2014-08-10 05:08   좋아요 0 | URL
오호...24절기가 양력이라니요. 처음 듣는 말씀입니다. 입추와 말복은 같은 음력절기가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네요. 노자님 지식의 끝은 어디인가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14-08-10 21:40   좋아요 0 | URL
방송 퀴즈 프로그램에 잘 나오는 문제라서 기억하고 있기도 하고, 농사 짓던 조부모님이 알려주기도 했어요.
 

이번 주말까지, 그리고 다음 주 중반에서 다시 주말까지는 집안일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부모님댁이 근처인데, 자동차로 한 30분이면 갈 수 있는 이 곳은 도시와는 달리 무척 맑은 산속의 공기, 그리고 한 10분 정도만 더 내려가면 나오는 바닷가를 즐길 수 있는 좋은 동네이다.  고속도로가 좀 꼬부랑길이라서 출퇴근이 용이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가끔씩은 평온한 낮을 보내는 것도 참 좋다.  어쩌면 정돈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사무실 공간 보다도 더 집중해서 케이스 처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일이 밀리면 이렇게 들어와서 한 나절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겠다.  전화는 사무실 전화를 언제든지 forward하여 개인전화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virtual office를 구현한 셈이다.  앞으로도 이런 형태의 근무를 지향하고 싶다.  낭만이 사라져가는 인터넷 시대는 유감이지만, 그나마 이런 virtual concept을 통해 혜택이라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책 한 권을 읽는 것에 한 달도 넘게 시간을 지체시켰다.  한 동안은 자전거 대신에 뛰겠다고 못보고, 바쁠 때에는 자전거를 아예 건너 뛰어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늦어진 것 같다.  그 덕분에 이번 '목사관 살인'에는 전혀 집중을 하지 못했고, 따라서 몰입도 역시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로 겨우 읽어냈다.  


이번에도 크리스티의 셋팅은 탁월하다 못해 신묘했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고 몸에 체득하여 오마쥬 소설을 쓴 한동진님 같은 분은 보자마자 알아낼 수도 있었을 트릭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교묘한 장치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쟝르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나올 수 밖에 없어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정신없이 읽어나가는 와중에도 아니 이럴수가 하는 탄사가 절로 나왔다는 점은 말하고 싶다.


다음 책꾸러미가 들어오면 수 십권의 추리소설이 더 늘어나는데, 이렇게 되면 읽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추리소설군이 못해도 70여 권은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벼르고 벼르던 캐드팰 전집과 동서 미스테리 문고의 책들이기에 기대가 된다.  생각해보니 크리스티 전집도 65권 정도까지만 구매했기 때문에 나중에 남은 부분을 마저 갖춰야 한다.  


마이클 더다 선생의 이 책도 이번에 구입해서 바로 읽어버렸다.  원제는 이 보다는 덜 낭만적인데, 번역에 약간의 낚시도 있었음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번역 중간에 눈에 띈 오류 몇 가지는 저자가 영문학을 전공했다고는 하지만, 많이 모자라는 솜씨라고 생각된다. 


이 책을 통해 코난도일이 홈즈 시리즈와 SF시리즈 몇 권 정도가 아닌 - 물론 그들만해도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 실로 다양한 쟝르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음을 알게 되었다.  또 작가, 판사, 검사, 의사, 회사원,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으로 이루어진 셜로키언들이 Baker Street Irregulars라는 이름의 단체를 조직하여 오랜 세월 막후에서 활동을 이어왔다는 점도 재미있다.  


조사에 의하면 코난도일은 그의 선배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후대에 사용될 상당한 모티브를 만들어 냈음을 저자는 말한다.  storytelling의 art에 대한 기술은 별로 머리에 남지 않았지만, 코난도일이 다작을 했다는 점이 기억에 남아 amazon.com을 뒤져보니 상당부분 킨들이 아니면 구하기 용이하지 않았음에 살짝 실망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오늘 간만에 들려 책을 둘러본 Logos서점에서 더다가 거론한 코난도일의 많은 책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오늘 그렇게 해서 구매한 책은 다음과 같다.


'Exploits and Adventures of Brigadier Gerard'

'The Horror of the Heights & Other Tales of Suspense'

'Round the Fire Stories'

'The Supernatural Tales of Sir Arthur Conan Doyle'


책 마지막에 리스팅 되어있는 더다의 목록에는 한참을 못미치지만, it's a good start...


여기에 덤으로 HG Wells의 lesser known책들 몇 권을 구했는데 다음과 같다.


'Experiment in Autobiography' 1934년책인데, 먼저번 주인 혹은 그 전 주인이 1934년 12월 6일에 구매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어 신기하다.  

'Tono Bungay'


두 권 모두 HG Wells의 다른 유명한 작품들과는 달리 전혀 모르는 책이고, 내가 구매하지 않은 몇 권 또한 그러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또 한분의 수집가께서 passing을 하신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짠했다.  언젠가 내 책도 이렇게 흩어지리라는 생각을 하면 열심히 벌고 모아서 도서관 하나 정도를 기부하고 내 책을 거기에 모셔놓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생각하지 못한 행운은 아시모프의 'Murder at the ABA'라는 책을 산 것인데, 몇 안되는 아시모프의 추리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맞다면 흑거미 클럽과 함께 아시모프가 쓴 두 권의 추리소설을 갖게 되는 것이다.


번역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다음 문장을 보자.

"How the Brigadier Captured Saragossa"

이는 준장이 어떻게 사라고사를 "captured"하였는가라고 해석해야 옳다.  그런데 이 번역에서는 '준장이 어떻게 사라고사에서 포로가 되었나'로 되어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래도 돈을 받고 하는 일에서 번역자나 편집자나 이런 황당한 실수를 하다니.  


여기에다가 미국 네바다 주에 있는 리노 (Reno)라는 도시를 스페인어를 읽듯이 레노라고 써 놓은 것도 내가 보기엔 너무 무지스럽다.  세련되지 못한 번역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멋진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발자크 평전을 통해 그를 접한 후 읽은 몇 권의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되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고, 승자에 의해, 세월에 의해, 정치적인 이유로, 또 그 외에도 구역질나는 한기총이나 교학사스러운 이유로도 fact는 왜곡되고 변질된다.  특히 당대의 역사는 첨예한 정치적인 대립과 해석의 차이로 인해 사실상 정설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인데, 츠바이크는 이런 측면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과 죽음, 프랑스 대혁명과 그 주변인물의 드라마를 만든 것 같다.


보통의 부잣집에 시집갔더라면 잘 살았을 한 사람.  또는 교육을 잘 받아 좋은 시작을 했더라면 좋았을 사람.  큰 문제가 없이 부부관계가 시작되었더라면 적어도 왕가가 몰락하는 큰 이유가 되지는 말았어야 할 사람.  이렇게 다양한 what if를 전제로 하면서, 그녀가 그렇지 못했음을, 그리고 그로인해 루이 16세의 치세 말년의 혼란과 혁명을 야기하는 무능을 그려내는 이 책은 츠바이크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역작이다.


역사적인 fact의 정확성은 판단할 수 없지만, 인간 본연 그대로의 모습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솔직한 표현으로 구현한 것은 역시 츠바이크의 탁월함이리라.  


'빵을 달라'는 국민에게 '빵이 없으면 비스켓'을 먹으라 했다는 무지함으로 대변되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하지만, 요건이 주어졌더라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그리고 비교적 선하게 수행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리고 '혁명'이라는 깃발 아래 모인 다양한 인간군상에 의한 폭력을 수반한 협잡과 배신을 보면서, 내가 아는 정설의 역사를 한번 뒤돌아보기도 하였다.


한 호흡에 읽기 좋은 책, 다시 말하면 정열적으로 써내려갔으리라 생각되는 책이다.  역시 슈테판 츠바이크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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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8-08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거서 크리스티 완전 좋아합니다.^^;; 추리소설 아닌 것도 요새 나오는데 다 좋더라고요. 발자크 평전은 분량의 압박으로 시작조차 안했는데 권장하시는지요. 최근에 다시 나와서 알림이 왔는데 페이지 수 보고는 슬쩍 포기했거든요. 바닷가가 있는 집.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네요.

transient-guest 2014-08-08 13:52   좋아요 0 | URL
크리스티도 다른 쟝르의 글을 썼군요. 저도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츠바이크가 쓴 발자크 평전은 완전 강추입니다. 바닷가 앞은 아니지만 산자락에서 바닷가를 향한 동네라서 금방 beach까지 갑니다. 부동산 전망은 모르겠지만, 저는 이곳이 참 좋아요.ㅎ

2014-08-08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09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4-08-0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때 애거서 크리스티를 탐독하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되어 희미하긴하네요. 츠바이크의 앙투와네트 담아갑니다. 쌩스투유.

transient-guest 2014-08-10 05:09   좋아요 0 | URL
추리소설을 읽으면 fantasy나 SF를 읽을 때처럼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보면 그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네요..ㅎ
 

이상하다.  세월호 참사같은 사건이 외국에서 났더라면 아마도 진즉에 난리가 나고, 정부 각 부처가 뒤엎어졌을 것이다.  아니, 이곳이었다면 세월호 참사는 사고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비상시기에는 제대로 function하는 기관이 한 두개는 있었을 테니까.  한국에서 911 테러 같은 사건이 일어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경찰/소방관은 멀리서 '질서정리'를 하고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분주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건물은 붕괴되고 사람들은 죽었을 것이다. 


세월호-유벙언-국정원. 

이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한번 유추해보았다.  


유병언이 죽었다고 가정할 때, 그가 살해되었을 것이라면 김어준 총수의 추리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그는 죽어서 얻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300억 재력가이자 수천 수만의 추종자를 거느린 교단의 총수는 자살하지 않는다.  아니, 부자는 어떤 사건이 닥치더라도 적어도 한국의 풍토에서는 자살할 이유가 없다.  세월호 참사의 직간접적인 책임론이나 감정에 입각한 책임론과는 달리 법정에서 그의 유죄를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장남 유대균이나 교단의 중심인물에게 적용되는 죄를 보면 알다시피 세월호와 관계가 있는 것보다는 횡령이나 유용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 때문에 유병언이 형을 살게 된다한들, 세월호 참극의 책임보다는 기업-돈에 대한 죄값일 가능성이 높았는데, 그나마 그의 나이와 한국의 법정관행을 보면 집행유예로 끝났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게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자살했을리는 더더욱 만무하다.  


국정원이 세월호 개조에 깊숙히 관련되었을 수도 있다는 정황이 laptop에서 나왔다.  단순한 관리차원이 아닌 세부적인 지침까지 조달했을 만큼 그들은 깊이 개조에 관여하였다.  왜?  난 여기서 국정원-유병언의 연결지점을 추리한다.  


세월호는 국정원의 공작선이 아니었을까?  세모와 국정원이 공동출자하여 배를 사들이고 편법/불법적인 개조를 한다.  이렇게 하면 통상의 기대이익에서 3-4배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었을 것이고 적어도 일부의 이익금은 국정원의 비공식 공작금으로 쓰이지 않았을까?  


세월호는 적자선박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짐을 많이 싣고 승객을 초과승선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번 다녀오면 이익금이 적법한 운행보다 3-4배가 넘었을텐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세모측에서도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원래 부정한 장사를 하는 업체와 역시 은밀한 공작을 주특기로 삼는 정부기관은 배가 잘 맞는다.  


만약 여기까지의 내 추리가 성립한다면, 유병언이 '만나'기 위해 운전기사 양모씨를 물리고 나갔을 때 그 상대는 국정원의 누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후 김총수의 추리처럼 딜이 성립되지 않았고, 유병언은 제거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치 까마귀가 날아 오르자 떨어지는 배처럼, 그간 그렇게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측근들이 줄줄히 잡힌다.  약 7일 정도안에 일망타진 되는 것이다.  그럼 그 전에는 그들 역시 모 기관의 보호를 받고 있었을 수도 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혼자 추리해 본 내용이다.  추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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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을 꿈꾼다.  아무리 타인지향적인 사람도, 혼자이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간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자신만의 왕국을 꿈꾸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그것이 서울에서 가장 좋은 대지에 지은 성, 그 속에서도 누각과도 같은 곳일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이에게는 한 평 남짓한 작은 방이 될 수도 있음이다. 이 남자, 김갑수는 약 36평 정도가 되는 자신만의 왕국을 갖고 있다.


마포의 한 건물 지하실을 통째로 개조하여 음악을 듣기 위한 자기만의 공간으로 개조한 것으로써 4번째 이사를 마무리한 김갑수의 왕국.  그 이름은 July Hall이다.  별다른 생각은 없이 당시 들렸던 guest의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고 하는데, 김갑수가 말하는 인생이나 사랑관을 보면 July라는 여인은 꽤 한 미모했을 것이다.  


어쨌든.  자신만의 공간에서 3만장의 LP와 그보다는 좀 못하지만 필경 2-3000개는 될 듯한 CD, 그리고 앰프와 스피커를 갖고 음악과 함께 김갑수의 이대병기인 커피우리기를 하면서 글을 쓰고 인터뷰를 다니고 강연을 다녀 번 돈으로 다시 앰프와 스피커를 사들이여 비싼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면서 산다.  집에서는 일주일에 1-2일 정도 가서 살고, 나머지는 이 공간에서 살고 있으니 podcast로 들은 그와 wife의 관계는 정말 특이한 동거 또는 파트서쉽이 아닌가 한다. 


커피는 모르겠고, 음악도 이렇게 비싼 취미로는 즐기지 않을 나는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그저 책과 미디어, 게임 소프트로 채워놓고 그렇게 혼자서, 때로는 친한 친구와 함께 가끔씩 숨어들고 싶다.  날씨나 일기를 비롯한 일체의 방해물이 없도록 지하로 파고든 그의 왕국을 보면 포가 창조한 오귀스트 뒤팽과 그의 친구의 서식처가 떠오른다.  데카당적이기도 하고 벰파이어를 연상시키는 그들처럼 김갑수도 그렇게 낮과 밤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같다.  부럽기 그지없다.


같은 책이 두 권이 있게 된 연유는 역시 모르겠다.  아마도 처음에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읽고나서 바로 사들이고, 다시 어느 날 기억해서 또 사들인 것이겠지라고 짐작만 하고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러시아 문학이라는 거창한 상징성을 걷어내고 보면, 적어도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이전의 작품들은 막소설에 가깝게 읽힐 수도 있겠지 싶다.  이 무슨 무식한 소리냐고 반문한들 내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읽고 나면 시대상을 보는 것과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약간의 상징적인 은유 외에는 특별하게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도 딱 그렇게 읽힌다.  시대적인 배경과 한 사나이의 기행에서 나오는 남자의 인생에서 경험하는 사랑의 단계, 모습, 이에 따라 변하는 그 남자의 사랑관 정도가 내가 본 전부.  책 자체도 그리 어렵지 않고, 특별하게 까다로운 묘사도 없다.  어쩌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특히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실 문학성이 아니라 심리묘사, 그러니까 간질병의 경험이 가져다준 부산물로써의 복잡하고 극악한 분열적인 자아이탈의 심리묘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최소한 어떤 러시아 문학의 '정수'들은 그리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집중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읽었기 때문에 그저 장자의 고사가 떠올랐던 점, 그리고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점 외에는 기억할 수가 없다.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의 독대.  도시 이야기.  나중에는 누가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는지, 누가 누구인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 선문답을 하는 듯 아리송하다.  


나중에 다시 천천히 읽어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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