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까지, 그리고 다음 주 중반에서 다시 주말까지는 집안일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부모님댁이 근처인데, 자동차로 한 30분이면 갈 수 있는 이 곳은 도시와는 달리 무척 맑은 산속의 공기, 그리고 한 10분 정도만 더 내려가면 나오는 바닷가를 즐길 수 있는 좋은 동네이다. 고속도로가 좀 꼬부랑길이라서 출퇴근이 용이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가끔씩은 평온한 낮을 보내는 것도 참 좋다. 어쩌면 정돈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사무실 공간 보다도 더 집중해서 케이스 처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일이 밀리면 이렇게 들어와서 한 나절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겠다. 전화는 사무실 전화를 언제든지 forward하여 개인전화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virtual office를 구현한 셈이다. 앞으로도 이런 형태의 근무를 지향하고 싶다. 낭만이 사라져가는 인터넷 시대는 유감이지만, 그나마 이런 virtual concept을 통해 혜택이라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책 한 권을 읽는 것에 한 달도 넘게 시간을 지체시켰다. 한 동안은 자전거 대신에 뛰겠다고 못보고, 바쁠 때에는 자전거를 아예 건너 뛰어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늦어진 것 같다. 그 덕분에 이번 '목사관 살인'에는 전혀 집중을 하지 못했고, 따라서 몰입도 역시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로 겨우 읽어냈다.
이번에도 크리스티의 셋팅은 탁월하다 못해 신묘했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고 몸에 체득하여 오마쥬 소설을 쓴 한동진님 같은 분은 보자마자 알아낼 수도 있었을 트릭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교묘한 장치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쟝르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나올 수 밖에 없어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정신없이 읽어나가는 와중에도 아니 이럴수가 하는 탄사가 절로 나왔다는 점은 말하고 싶다.
다음 책꾸러미가 들어오면 수 십권의 추리소설이 더 늘어나는데, 이렇게 되면 읽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추리소설군이 못해도 70여 권은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벼르고 벼르던 캐드팰 전집과 동서 미스테리 문고의 책들이기에 기대가 된다. 생각해보니 크리스티 전집도 65권 정도까지만 구매했기 때문에 나중에 남은 부분을 마저 갖춰야 한다.
마이클 더다 선생의 이 책도 이번에 구입해서 바로 읽어버렸다. 원제는 이 보다는 덜 낭만적인데, 번역에 약간의 낚시도 있었음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번역 중간에 눈에 띈 오류 몇 가지는 저자가 영문학을 전공했다고는 하지만, 많이 모자라는 솜씨라고 생각된다.
이 책을 통해 코난도일이 홈즈 시리즈와 SF시리즈 몇 권 정도가 아닌 - 물론 그들만해도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 실로 다양한 쟝르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음을 알게 되었다. 또 작가, 판사, 검사, 의사, 회사원,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으로 이루어진 셜로키언들이 Baker Street Irregulars라는 이름의 단체를 조직하여 오랜 세월 막후에서 활동을 이어왔다는 점도 재미있다.
조사에 의하면 코난도일은 그의 선배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후대에 사용될 상당한 모티브를 만들어 냈음을 저자는 말한다. storytelling의 art에 대한 기술은 별로 머리에 남지 않았지만, 코난도일이 다작을 했다는 점이 기억에 남아 amazon.com을 뒤져보니 상당부분 킨들이 아니면 구하기 용이하지 않았음에 살짝 실망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오늘 간만에 들려 책을 둘러본 Logos서점에서 더다가 거론한 코난도일의 많은 책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오늘 그렇게 해서 구매한 책은 다음과 같다.
'Exploits and Adventures of Brigadier Gerard'
'The Horror of the Heights & Other Tales of Suspense'
'Round the Fire Stories'
'The Supernatural Tales of Sir Arthur Conan Doyle'
책 마지막에 리스팅 되어있는 더다의 목록에는 한참을 못미치지만, it's a good start...
여기에 덤으로 HG Wells의 lesser known책들 몇 권을 구했는데 다음과 같다.
'Experiment in Autobiography' 1934년책인데, 먼저번 주인 혹은 그 전 주인이 1934년 12월 6일에 구매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어 신기하다.
'Tono Bungay'
두 권 모두 HG Wells의 다른 유명한 작품들과는 달리 전혀 모르는 책이고, 내가 구매하지 않은 몇 권 또한 그러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또 한분의 수집가께서 passing을 하신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짠했다. 언젠가 내 책도 이렇게 흩어지리라는 생각을 하면 열심히 벌고 모아서 도서관 하나 정도를 기부하고 내 책을 거기에 모셔놓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생각하지 못한 행운은 아시모프의 'Murder at the ABA'라는 책을 산 것인데, 몇 안되는 아시모프의 추리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맞다면 흑거미 클럽과 함께 아시모프가 쓴 두 권의 추리소설을 갖게 되는 것이다.
번역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다음 문장을 보자.
"How the Brigadier Captured Saragossa"
이는 준장이 어떻게 사라고사를 "captured"하였는가라고 해석해야 옳다. 그런데 이 번역에서는 '준장이 어떻게 사라고사에서 포로가 되었나'로 되어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래도 돈을 받고 하는 일에서 번역자나 편집자나 이런 황당한 실수를 하다니.
여기에다가 미국 네바다 주에 있는 리노 (Reno)라는 도시를 스페인어를 읽듯이 레노라고 써 놓은 것도 내가 보기엔 너무 무지스럽다. 세련되지 못한 번역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멋진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발자크 평전을 통해 그를 접한 후 읽은 몇 권의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되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고, 승자에 의해, 세월에 의해, 정치적인 이유로, 또 그 외에도 구역질나는 한기총이나 교학사스러운 이유로도 fact는 왜곡되고 변질된다. 특히 당대의 역사는 첨예한 정치적인 대립과 해석의 차이로 인해 사실상 정설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인데, 츠바이크는 이런 측면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과 죽음, 프랑스 대혁명과 그 주변인물의 드라마를 만든 것 같다.
보통의 부잣집에 시집갔더라면 잘 살았을 한 사람. 또는 교육을 잘 받아 좋은 시작을 했더라면 좋았을 사람. 큰 문제가 없이 부부관계가 시작되었더라면 적어도 왕가가 몰락하는 큰 이유가 되지는 말았어야 할 사람. 이렇게 다양한 what if를 전제로 하면서, 그녀가 그렇지 못했음을, 그리고 그로인해 루이 16세의 치세 말년의 혼란과 혁명을 야기하는 무능을 그려내는 이 책은 츠바이크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역작이다.
역사적인 fact의 정확성은 판단할 수 없지만, 인간 본연 그대로의 모습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솔직한 표현으로 구현한 것은 역시 츠바이크의 탁월함이리라.
'빵을 달라'는 국민에게 '빵이 없으면 비스켓'을 먹으라 했다는 무지함으로 대변되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하지만, 요건이 주어졌더라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그리고 비교적 선하게 수행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리고 '혁명'이라는 깃발 아래 모인 다양한 인간군상에 의한 폭력을 수반한 협잡과 배신을 보면서, 내가 아는 정설의 역사를 한번 뒤돌아보기도 하였다.
한 호흡에 읽기 좋은 책, 다시 말하면 정열적으로 써내려갔으리라 생각되는 책이다. 역시 슈테판 츠바이크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