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면서부터는 쉽게 극장에 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여름에도 어찌하다 보니 대작들을 다 놓쳐버렸는데, 천상 BR로 나오면 하나씩 찾아볼 생각이다. 처음 나올 때만 피하면 값도 상당히 낮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를 모으는 건 옛날보다 쉬워진 셈이다. 값도 떨어졌지만, 물가상승률에 대비하면 전체적인 단가자체가 낮아진 느낌이다.
트럼프 같은 놈이 미국대통령이 되면 안되는데, 공화당의 막장드라마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상당부분 내부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겠지만, 어찌됐든 그는 명실상부한 공화당의 대통령후보가 되었다. 멜라니아 같은 골드디거가 영부인이라. 상상도 하기 싫은 미래가 아닌가. 뚜껑은 열러보아야 하겠지만, 힐러리가 이기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힐러리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점도 있고, 워낙 능수능란하게 정국을 헤쳐온 커리어가 정치꾼으로 묘사되는 등의 악성흑색선전의 탓인지 힐러리는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이를 정치적인 능력 뿐만 아니라 매력으로 어필해야 하는데,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수의 유권자들은 감정적인 투표를 하기 때문에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최고가 아닌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정치란 점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이는 매우 중요한 선거전략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이번 공화당 경선후보들의 면면을 볼 때, 정국을 주도할 만한 인물은 없었다고 보며, 이 무주공산을 트럼프라는 희대의 대형사기꾼이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힐러리가 이겨야 그간 힘겹게 쌓아온 오바마의 진보정책과 미래의 포석이 살 수 있다.
의욕이 나지 않았던 탓에 책읽기도 그랬지만, 글을 남기는 것이 점점 시들해지고 있다. 잘 나오든 그렇지 못하든 그저 꾸준히 읽고 써야 한다. 질도 좋지만 양적인 면의 공, 나아가서 이를 매일 밥먹고 씻듯지 쌓는 행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장개석의 전기와는 매우 다른 접근으로 그의 삶과 중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공산당에게 아깝게 패한 위대한 영웅이 아닌 마치 이승만을 연상시키는 장제스의 권력으로의 의지, 측근들의 부정부패, 그리고 실력보다는 개인에 대한 충성심을 위주로 편성된 그의 군대의 모습은 물론 장제스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중국의 군벌이란 것이 대체로 그랬었으니까. 다만 막바지에 가서 세력을 거의 통합했을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싸움인 홍군과의 전쟁시기에도 이를 타파하지 못한채 유능한 장군들은 지원이 거의 없이 어려운 작전으로 내몰고 무능한 자신의 부하들은 무기를 팔아 뒷배를 채우도록 한 점, 외국의 원조만 계속 협상하고 뜯던 것까지, 정말 중요한 시점에도 결정적인 한방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만약 중국이 장제스에 의해 통일이 되었더라면 어쩌면 한국이 두 동강 나는 일도, 한국전쟁도 없었을지 모른다. 아니 전쟁이 일어났더라도 일차반격으로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시점에서 공산정권의 궤멸로 끝났을 것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장제스가 망친 것은 중국만이 아닌 것이다. 매우 잘 쓴,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머리가 좀 굵어진 다음에 든 생각이지만, 사실 장제스보다 더 흥미가 가는 사람은 장쉐량 (장학량)이다. 동북삼성을 호령한 만주의 호랑이 장쭤린 (장작림)의 아들로 태어나 장쭤린이 일본군에게 폭살당한 후 백만대군을 이어 받은 그는 상당히 멋진 인물이었던 것 같다. 일설에 의하면 장제스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결혼한 (세 번째 결혼이다) 당시 중국최고의 재인 쑹메이링이 진심으로 평생 사랑했던 남자라고 하는데, 이들의 인연이 결국 서안사변 때 장제스를 살렸고, 이후 장제스에 의해 평생 구금되었던 장쉐량의 목숨이 붙어있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장쉐량에 대한 책은 아직 제대로 나온 것이 없는 것 같다. 상당히 매력적인 영화나 책의 소재가 될 법한 인생이라서 한 동안 이 젊은원수에 대한 기록을 뒤져봤는데, 신통한 것이 없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책은 SF의 팬이라면 꼭 읽어봐야 한다. SF역사에서의 위치도 그렇고 걸작들의 경우 작품성은 정말 대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는 조금 이상한 쪽으로 나간 듯 하지만 - 전적으로 아시모프의 자서전에 의하면 - 하인라인의 위치와 업적은 SF의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영제국과 식민지미국 혹은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시작된 지구와 달세계의 관계가 무려 슈퍼컴퓨터의 조력을 통해 다시 정립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미래의 서사로 그린 재미있는 작품이다. 'The Moon is a Harsh Mistress"라는 영어원제목은 이후 수 많은 패러디를 낳기도 했다.
어느 매체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를 통해 한국의 좋은 SF로 추천을 받아 읽은 책이다. 한국사람이 외국을 무대로 쓴 작품이라서 그런지, 배경장치는 미국이고 등장인물도 모두 미국사람지만, 뭐랄까 한국사람이 보는 듯한 미국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는 묘한 괴리감을 빼면 꽤 재미있는 정치풍자 같기도 하다. 혁명이 일어날 필수요건들 중 하나인 '피'의 희생에 대한 고찰이 흥미롭다만, 정답이 나오기 어려운 이슈라고 본다.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그러니까 만들어진 고귀한 희생이라는 연출이 혁명의 기폭제가 되는데, 이는 사실 많은 과거의 역사에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쉽게 인정하지 않지만 역사에 우연이란 없는 것이다. 힘은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것에서 나온다는 이야기 또한 많은 실제사례를 찾을 수 있는 일이다. SF-F의 토양이 매우 척박한 한국에서 그래도 이렇게 작품이 나오는 것이 반갑다.
아마 다음주부터는 다시 정상적인 마인드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설렁설렁 일하면서 신경쓰면서 그렇게 7월을 보냈고, 이에 대한 지겨움을 느끼고 있으니까.
PS 장쉐량을 아끼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고 하는데, 장제스도 서안사변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고 하고, 특히 저우언라이 (주은래)는 장쉐량이 장제스를 따라 남경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울면서 슬퍼했다고 전해진다. 최근에 나온 책에서는 저우언라이가 게이였을 것이라는 학설이 있는데, 맞다면 아마 매력적인 청년원수 장쉐량에게 느낌 감정은 더욱 각별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