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오늘 페이퍼를 정리하면서 읽은 책을 다 남긴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두 권을 까많게 잊고 빼먹었다. 머리가 나빠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대 이전에 읽은 책들은 상당부분 지금까지도 특정 장면과 문장을 그대로 기억하는 반면에 이후에 읽은 책들은 잊어버리는 빈도와 정도가 심해진다. 특히 30대에 들어 읽은 책들은 여러 번을 읽어도 문장 같은것들은 거의 다 잊어버리고, 잘해야 책제목과 읽었는지 여부 정도만 기억할 수 있다. 술이 문제인지, 외우기를 예전에 멈춘 탓인지. 독서와 글쓰기 못지않게 암기능력을 다시 일정한 수준이상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탤런트 뺨치게 예쁜 엄머와 그 엄마를 닮은 깜찍한 딸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이 책은 이를 완벽하게 배신해줄 것이다. 표지의 디자인과 색상 때문인지, 중립적인 제목의 '엄마의 도쿄'는 이들과 어우러져 매우 처연한 느낌을 주었다. 예전부터 이 책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최근에 주문해서 읽었다.
이 책은 단순히 동경의 맛집이나 가볼만한 곳을 소개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닌만큼, 정보를 얻기위함이라면 읽을 이유가 없다. 다만, 이제는 성인이 되어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된 한 여자가, 자식과 함께 한창의 나이에 남편을 잃고 동경으로 와 살면서 겪은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자신의 관점에서, 때로는 과거의, 때로는 현재의 시점에서 서술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고 기리는 글이다.
마치 니나 상고비치의 책처럼 이런 행위를 통해 어머니의 삶은 저자의 기억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구성되며, 다시 한번 살아진다. 그리고 세상에 남은 저자는 이를 통해 어머니를 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늘 우리의 부모님 세대, 아니 정확하게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비록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이 책을 그저 그런 가벼운 에세이들 중 하나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 독서, 이론과 같이 여러 번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어진 이야기를 넘은 다른 고민과 해결책을 지향하는 책이다. 내용은 조금 평이하고 예로 든 사례나 작가/책도 그러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나누는 독서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하여 구매했다.
독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기실 모든 공부나 수양은 나눔을 통해 깊어지고 명확해짐은 law school시절 토론을 통한 판례분석에서 경험했던 바 있다. 혼자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제한된 개인의 경험과 머리로는 한계가 생기는데, 나눔까지 가지 않고, 그저 이에 대한 이해나 문제점을 다른 이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서 깨달음이 오는 경험은 일상에서 무척 흔하게 접한다. 회의의 목적이 상하수직적인 보고와 지시전달이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다만, 조금은 다른 독서이론의 책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구성이나 조금은 얕은 내용이 아쉽기는 했다. 모임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방법, 토론을 이끌어나가면서 중재하고 조정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자세하게 다루었으면 하고, 성공사례에 대한 참가자의 에세이는 조금 지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내 업계에서 간혹 client의 자필편지형식을 이용한 변호사의 마케팅을 보는데, 심한 경우 짜고치는 고스톱이 극명하게 보이는 이런 방식은 지독하게 치사하고 낮은 수준의 광고라고 생각하는 내 성향상 그렇다는 것이다.
가벼운 라이트 노벨과도 같은 느낌이 묻어나는 책이다. 우연한 기회에 우연한 이유로 일본을 떠나 낯설고도 먼 핀란드에 정착한 31세의 주인공, 자신을 찾고 싶어 무작정 떠나기로 한 나라가 하필이면 핀란드가 되어버린 중년의 여자. 그리고 또다른 일본여자. 이렇게 셋이 모여든 갈매기 식당의 붙박이가 된 독수리 오형제 덕후 핀란드 청년이 주가되어 벌이는 일상의 모습이 이 책의 거의 전부이다. 영화로 본 후 책을 구했는데, 솔직히 영화의 영상미로 보여지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도 든다.
글자체가 크지 않았더라면 문고판 50여 페이지로 꾸며졌을 정도의 적은 분량이지만, 그래도 좀처럼 가보기 어려운 북유럽의 핀란드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조금이나마 엿보게 해주었다는 점은 positive하다.
간만에 읽은 세이초의 또다른 작품이다. 실제로 일어났다고도 하는 2차대전 말기에 있었던 일단의 일본제국 내에서 이미 진 전쟁을 되도록이면 빨리, 그리고 가급적이면 패전국이 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끝내려던 온건파 세력의 공작이 있었다는 전제를 두고, 이에 연루된 외교관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여 쓴 책이다. 세이초의 작품들을 보면 순수한 창작도 있지만, 유명한 작품들의 경우 특히 정부나 고위관료 또는 흑막이 되는 우익세력이나 미군정청의 입김이 닿았던 사건들의 진위를 유추하는 형식의 책이 많은데, 이 책 또한 같은 계통의 책인 듯 싶다. 과연 사회파의 시조라고 할 만하다.
요즘처럼 사건사고가 많은 한국에도 이런 작가가 한 명 정도는 있어서, 세월호참극, 2012부정선거를 전후한 저축은행사건, 뽕쟁이 wife의 법인, 우익세력의 준동, 일베지원, 국정원 같은 굵직한 이슈들을 작품으로 또는 논픽션으로 다루어주었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국가였다면 BBK사건은 적어도 스무명 이상의 다른 작가들이 각각 논픽션으로 또는 다큐멘터리로 다루었을 것이라던 장정일의 말이 절실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내가 읽은 판본은 우측의 것이고 2014년에 다시 나온 듯 싶다. 욕을 먹던 말던 스테디셀러가 되고 볼 노릇이다.
나는 늘 이 책과 '먼 북소리...'어쩌고 하는 하루키의 그리스-이탈리아 여행기를 헷깔려했었는데, 이번에 읽으니 완전히 다른 시기, 다른 여행을 다루었음을 알겠다.
폐쇄적인 성격이 강한 봉쇄수도원에는 미치지 못해도, 이런 '오지'에 틀어박혀 있는 수도원에서 평생 사람을 멀리하면서 자기 속으로 신과 함께 들어가버린 사람들의 경향은 (1) 타인에게 매우 친절하거나 (2) 괴팍하거나 하는 두 가지 중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흔히들 시골에 가면 볼 수 있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따뜻하거나 마치 "여긴 뭐하러 왔어?"라고 묻는 듯한, 만사가 귀찮고 짜증나기만 하는 촌로의 두 가지 모습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작년 이맘때였던가 가을이 되었으니 문학을 읽어야지 하다가, 하루키를 다시 전독해야지 하다가 겨울이 되어 러시아 문학을 파들어가야지 하면서 정작 아무것도 못하던 것이 기억한다. 이번에는 조금 더 자신을 단련하여 문학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는게 정확한 나의 심정인데, 이미 못읽은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지금,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다는 것 또한 현실적인 고민이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