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상은 소위 말하는 professional직종이지만, 사실상 자영업자로서 독립 사무실을 꾸려나가는 입장에서 일이 많은 것을 불평하는 것은 사치를 넘어 뇌가 없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다. 그저 바쁜 일상이 감사할 뿐이다. 그래도 잘하면 이번 주말을 고비로 한 시름 놓을 수 있으니까 책도 좀 더 보고 연말 사무실 내부 정리도 하고 그러면서 조금 쉴 수 있겠다.
활자중독에 장서중독인 나이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full day schedule을 소화하고 나면 머리가 빡빡해지는 덕분에 책을 들여다보기 힘들어진다. 화장실에 앉아서 잠깐 한 두 페이지 들여다보는 정도가 지난 2주간의 독서행각의 전부였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나니 11월 중반에 갑자기 미친듯이 주문했던 책들이 도착할 때가 되어간다. 받으면 언제나처럼 기분이 확 좋았다가 언제 다 이들을 읽을 수 있을까 하면서, 왜 난 또 이렇게 많은 책을 사들였을까 생각할 것이다. 그나저나 이들이 오기 전에 일단 사무실에 있는 책들의 목록정리를 마쳐야 하는데 시간이 좀체 나지 않는다.
그간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이 미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터졌다. 이곳 소식이야 Wallstreet Journal을 간간히 읽고, 최근 주문한 Economist를 읽으면서 한가한 주말이나 밤에 뉴스를 보는 것으로 적당히 업데이트가 되는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그런 것들이 아니다.
국썅: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신형기종을 많이 구입하여 상대적으로 노후기종이 많은 아시아나보다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크레딧 카드부터 회원카드에 연동하여 옮겨 탈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의 일로 싹 접었다. 그 댁의 딸은 어떤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받았길래 지들의 본거지도 아닌 미국 땅에서 terrorist나 다름없는 행각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만큼 위아래도 없는 짓을 할 수 있었을까? 검찰조사를 하네, 사의를 표하나 쇼를 하지만 적어도 이 정권하에서는 justice를 기대하지 않는다. 하도 빡쳐서 FAA나 DHS에 항의메일을 보낼까 생각했다. 미국땅에서, 그것도 주정부의 관할이 아닌 연방정부의 관할인 공항에서 일어난 일인데, 9-11테러이후 이 나라의 연방법, 그것도 공항이나 비행기에서의 unsafe conduct이 이슈가 되는 범죄는 매우 엄하게 처리한다. 이게 조모씨가 아닌 일반승객이었다면 바로 연행되어 구금되고 재판에 회부되었을법한 일인데, 당연히 대한항공 승무원은 신고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해할만하다.
기실 이번 사건에서 내가 궁금한 것은 일등석, 그래도 좀 사는 사람들이나 난 사람들이 다수 포진해있었을 일등석에서 한 명도 이에 대한 강력한 항의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 금력이나 권력에 알아서 긴 것이든, 의식구조가 막돼먹어 그랬든, 매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같이 속이 좁고 겁많은 인간은 바로 911을 걸어 신고했을텐데, 내가 그 자리에 없었음이 쬐끔 아쉽다.
그나저나 예전에 모 정치인이 국썅이라는 칭호를 받은 적이 있는데, 이를 공식적으로 계승할만한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일베준회원의 테러:
이 정권은 매우 위험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야 말았다. 애초에 일베같은 녀석들을 이용해서 유리한 온라인 여론을 형성하겠다는 생각자체가 정상이 아닐텐데, 이제는 테러를 조장했다. 정권유지와 권력, 그리고 이에 딸려오는 돈을 위해서는 아마 개똥을 항문으로 흡입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인간들이지만, 두고 보자. 너희들이 시작한 이 폭력은 결과적으로 너희들의 모가지를 따는 수단이 될 것이다.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듣고 로맹 가리의 책을 마구 사들였었다. 그런데 실제로 읽은 것은 3-4권 정도가 다인데, 지금 search하면서 알았지만, 더 많은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생텍쥐페리의 완성형이자 그 자체로도 진행형이었던 로맹 가리는 영원한 내 흥미의 대상이자 일정부분 부러움의 대상이다. 최고의 작가, 문필가, 2차대전의 전쟁영웅이면서, 정치가였던 그는 아마도 남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때까지 자기의 자아를 찾아 헤메였을것이다. 언젠가 쓴 적이 있는데, 어떤 것이 정말로 자기가 원한 자신의 모습, 자신의 인생이었는지 아마 평생 찾지 못하고 세상을 버렸음이 이번의 책 '가면의 생'에서 진하게 느껴진다. 어머니가 소망하던 '위대한 내 아들'의 인생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한 자아의 분열이 이 정신없는 책에, 근 3-40년을 들여 완성한, 녹아있는 것이 아닐까. 내용만 보면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보다도 난해하고, 무엇보다 아직 그의 모든 작품을 여러 번 읽지 못했기에 작중인물과 줄거리를 마구 섞어놓는 메타포를 거의 catch할 수 없었다. 권하건데, 이 책을 읽기전에 가능하면 로맹 가리의 모든 작품을 여러 번 읽어 통달하도록. 그러면 좀더 깊은 독서가 가능하리라.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듣기로 오쿠다 히데오는 한국에서 매우 잘 팔리는 작가인 이유가 읽기 쉬운 책을 쓰기 때문에 한 권을 다 읽었다는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라는 survey가 있었다고 한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either this or 김중혁작가의 말일 것이다). 말처럼 잘 읽히고, 쉽게 빨리 읽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만큼의 깊이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오쿠다 히데오를 많이 읽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의 가벼운 소설 특유의 재미도 있으니까, 나쁘지는 않았다. 강박증을 모티브로 하여 이런 저런 인물이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는 것만 지금은 남았다. 그런데, 31회 나오키상 수상이라니 뭐. 내가 산 것은 중고라서 띠지가 없어 몰랐다 (사실 난 책을 사면 띠지는 버린다). it's ok book.
간만에 서재에 글을 남기는데, 역시 이런 글은 밤에 써야 제맛인듯, 술술 풀렸다. 물론 잡설이지만서도, 낮에 바쁘게 신경써서 일할 때에는 이 정도의 잡다한 글도 써지지 않으니까, 감사할 따름.
끝으로 국썅사건에 대한 생각 한 가지 더.
우리 제발 좀 천하게 살지 말자. 돈이 있던 없던 품위있게 살자는 말이다. 많이 배웠던 좀 덜 배웠던 인간답게 처신하자 이 말이다. 그리고 너 테러범 일베! 니가 그러게 사는동안 널 충동질한 인간들은 등 따습고 배부르게 잘 살고 있다는 걸 상기하길. 이담에 나이들어 job도 못잡고, 연애도 못하는 loser로 남기 싫으면 정신 차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