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능하면 일정을 잘 조절하여 금요일에는 힘들거나 복잡한 일을 진행하지 않는다. 또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최대한 지양하는 편이다. 따라서 아무리 바쁜 경우라도 내 사무실을 시작한 이후에는 금요일까지 용을 쓰면서 일한 기억이 없다. 혼자서 모든 것을 맡아 일하는 solo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이랄까, 일종의 적응력을 키운 것이다. 아무리 내가 일을 비교적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처리하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매주 그렇게 달리면 배겨낼 도리가 없을 것인데, 이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적정한 수준에서 조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누구나 어느 정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능력을 키우는 것 같다. 오늘도 오전에 간략한 업무를 조금 처리하고 오후에는 책을 읽을 예정이다.
언제나처럼 이번 주중에 읽은 책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Jack Reacher은 영화로 처음 접했고, 가끔 헌책방에서 눈팅만 하다가 이번에 한 권을 사서 읽어보았다. 순서상으로는 18번째 같은데, 나에게는 첫 권이 된 덕분에, 생각보다 꽤 늙어있는 Jack Reacher를 만나게 되었다. 젊은 종마같던 시절은 이미 지난 상태지만, 그는 최고의 컨디션과 판단력, 마치 기계와 같은 psyche를 지닌 작품의 세계에서는 최고의 고수라고 하겠다. 더욱 중요한 것은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영화 Jack Reacher에서 Reacher로 연기한 배우가 톰 크루즈라는 것은 아이라니를 넘어선 완벽한 미스캐스팅이란 사실. Jack Reacher는 키가 크다. Jack Reacher는 덩치도 크다. 이런 사람들은 특별히 무술의 고수일 필요가 없다. 우선 앞도적인 체구로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이미 제압하는 경우가 많은 과인데, 톰 크루즈는 말 그대로 neither이다. 게다가 이 영화를 찍을 당시의 톰 크루즈는 50대가 거의 다 되어가는 나이답게 늙은 몸을 보여주었는데, 덕분에 아직도 영화를 생각하면 관리가 매우 잘 된 그의 쳐진 갑빠가 떠오른다. 다 그네 탓이다.
소설은 긴박감있는 전개와 적당한 수준의 추리를 요구한 덕분에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군대의 상부요직에 있는 부패한 장성들이 아프간에서 테러리스트 무장조직에게 무기를 팔아먹어왔고, 이 꼬투리를 잡은 소령이 16년 전, LA풀린 군수무기를 추적했던 Jack Reacher를 떠올리고 연락하는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조직이, 그것도 군대처럼 막강한 무력과 금력을 동원할 수 있는 조직의 상층에서 몇 명이 모의하여 이상한 짓을 벌이면 이처럼 잡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수사하던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물론 현실에서는 소설처럼 일이 잘 마무리되기 보다는 보통 선한 세력이 큰 피해를 입고 사라진 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리고 운이 매우 좋다면 그 사건과 배후세력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최소한 속이라도 시원하게 해준다. 남은 Lee Child의 Jack Reacher작품들도 한 권씩 읽어볼 생각이다. 르와르의 전통도 잘 이어주고 있기 때문에 멋진 남자와 멋진 여자가 늘 등장하고, 나쁜 놈들은 언제나 두들겨 맞는게 맘에 쏙 든다. 다 그네 덕분이다.
드디어 30권만 읽으면 이 고지를 넘게 된다.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의 속도로 보면 내년 이맘 때면 다 끝내게 될 것 같다. 캐드파엘은 여전히 책장에서 조용히 빛을 볼 자신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기차가 겹치면서 창문을 통해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한 시골할머니의 친한 친구가 하필이면 미스 마플이었다는 점이 범인의 첫 번째 불운이었다면, 미스 마플이 자신을 대리하여 움직여줄 사람으로 뽑은 사람의 재기발랄함이 두 번째 불운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범인의 정체를 짐작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워낙 많은 인물들을 곳곳에 장치해놓은 덕분이다. 덕분에 난 마치 MERS에 대응하는 그네처럼 우왕좌왕하다가 추리를 그냥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그네는 대단하다.
History buff라고 자부하고는 있지만, 역사책을 열심히 읽던 시기도 어느덧 십 년이 훨씬 지나버렸다. 어쩌면 역사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관련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지 않고 있어, 이는 순전히 어릴 때의 기억에서 나온 내 머릿속의 생각일런지도 모르겠다. 난 내가 history buff라고 믿으면서 마치 그네가 이 옷, 저 옷, 꼬까옷을 기웃거리는 것처럼 책과 책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발칸이라는 지명을 가진 지역은 현대의 코소보,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루마니아, 고색창연하기 그지없는 마케도니아 (제국과는 상관이 없다) 등을 포함한 곳인데, 민족주의의 대두와 함께 종교문제와 문화, 그리고 독립정권을 수립과정에서 20세기의 화약고가 되었던 지역이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 발칸이라는 지명과 발트와 섞어버렸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발칸이라는 이름과 함께 늘 발트3국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역의 역사를 정리한 좋은 개론서 정도라고 생각된다.
더 클래식 두 번째 이야기는 처음보다 좀더 나은 서술을 보여주는데, 덕분에 내용의 flow가 매우 좋다. 음악을 들어가면서 한 구절씩 읽었으면 더욱 좋겠는데, 현실적으로는 워낙 다양한 명반을 소개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저 충동적으로 첫 쳅터에서 소개한 3개의 음반을 아마존에서 주문했는데, 가능하면 이렇게 조금씩 사 모아서 음악과 함께 한 쳅터씩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중에 많이 모이면 문학수 collection이라고 따로 보관해서 책과 함께 두면 좋겠다.
엘니뇨 덕분에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데, 주말에 시간이 괜찮으면 좀 널널하게 책을 보면서 게으른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