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에서 악녀 이인방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나오는 사람이 둘 있다. 한고조 유방의 여태후와 당나라 고종의 첩에서 황제의 자리까지 갔던 측천무후가 그들인데, 둘 다 여자의 몸으로 황제 또는 이에 버금가는 지위에 올라 권력을 호령했다는 공통점 외에도 정적 또는 질투의 대상을 매우 잔인하게 멸했다는 점이 근 1000년 가까이 떨어져 있는 그들의 비슷한 점이라고 하겠다. 여기에 현대의 중국인들, 특히 국공내전에서 문화혁명을 거친 세대의 중국인들에게 한 명을 더 꼽으라 하면 역시 주저없이 그들은 장칭을 거론할 것이다.
특히 장칭은 문화혁명의 최전방에서 이를 전파하고 이용하여 권력을 정점에 올랐던 것으로 비춰지는데,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일리가 있는 해석일게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는, 문화혁명, 또 그 전에도 후에도 그녀 역시 모택동이나 다른 세력에게 이용당한 면이 없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막연히 문화혁명의 악녀로만 알던 장칭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포괄적인 정보를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번역본답게 매우 충실하고 꼼꼼한 fact와 해석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진도 곁들였기에 장칭의 주요시기마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우기질이 있는 사람 또는 배우가 권력의 정점에 근접하면 문제가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레이건이나 극동의 다른 배우출신의 정치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내 생각에 타당성이 있다고 느껴진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레이거노믹스를 부르짖으면서 사실은 빚을 엄청 늘려버린 레이건 전 대통령, 두번째 임기의 마지막 2-3년은 대중에게는 감춰졌던 심각한 노망으로 사실상 얼굴마담역할만 매우 훌륭하게 해낸 그의 이미지정치 및 정치적야욕의 시작은 헐리우드에 몰아치던 red scare의 바람을 타면서부터였는데, 이때에도 영화배우로써의 이미지 메이킹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자기아버지의 웬수의 딸 밑에서 의원노릇을 하는 모씨나, 어림도 없는 깜냥주제에 장관자리까지 차지했던 모씨를 생각해보면, 무대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이를 통해 자아실현을 play하는 배우가 정치판으로 무대를 넓히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장칭의 삶에서 정치는 그녀의 자아실현의 다른 방법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결과는 - 물론 모택동의 교묘한 교사와 권력상층부의 이용이 큰 역할을 했지만 - 문화혁명이라는 어마어마한 희생이었다. 2007년부터 시작된 내 모국의 퇴보와 퇴행이 새삼 떠오른다.
'프로방스'에 대한 책을 한번 검색해보라. 국내저자들의 책만해도 꽤 많은 종류와 양이 알라딘에 나온다. 이름이에 애저녁부터 들어봤지만, '프로방스'라는 곳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정수복님의 책으로 처음 접했는데, 그 책에서도 소개되었고, 다른 경로로도 소개를 받았는데, '프로방스에서의 1년'이야말로 이 모든 책들의 할아버지격이 될 것이다.
'프로방스'라는 곳을 외부에 소개하고 신드롬을 일으킨 책답게, 이 책에는 우울한 날씨와 더욱 비관적인 음식을 자랑하는 영국에서 이곳으로 정착한 매우 첫 단계인 집구매부터 수리, 그리고 이웃과 알아가는 모습까지, 매우 덜 상업적으로 솔직하게 쓰여있다. 물론 이 책이 다른 의미로는 미화된 묘사덕분에 욕을 먹기도 했었다는데, '시골은 그런 곳이 아니다'라는 류의 환상타파/현실직시의 뭐랄까 수정주의적인 시각으로 보면 분명 낭만을 오버하는 면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도대체 집을 고치는데 일년이 넘도록 일군과 담당자가 자기들의 필요에 스케줄에 따라 on-off를 하는것이나, 미스트랄이라는 지역 특유의 광풍이 불어오는 날씨에도 수리가 중단된 덕분에 구멍이 숭숭 뚤린 집에서 버텨내야 하는 것이 낭만적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행성을 조장하는 류, 또는 오버한 프랑코필의 관점이 휘몰아치는 류의 책보다 훨씬 높은 down-to-earth의 시각을 보여주는 내용이라서 그런 반감을 느끼지 못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오래된 돌집이 자아내는 낭만과 내가 agree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영국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구르메라고밖에 말 할 수 없을 음식과 엄청난 양까지 한땀 한땀 '프로방스'라는 곳의 묘사를 볼 수 있는데, 특히 지금처럼 프로방스가 유명해져서 아마도 상당히 오염되었을 locality가 남아있던 초기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욱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책이 옛날엔 6000원이었다니. 그나마 절판이 되었다고 나오는데, 나는 운좋게 중고를 구했다. me very lucky... (지금보니 '나의 프로방스'라는 제목으로 다시 2004년에 재간되었으니 또다시 절판되기 전에 필히 구해볼 것)
김탁환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소설가이다. 예전에 무슨 행사에서 고마운 사람들을 거론할 때 언급된 이름을 보면서 이 사람도 무슨 라인을 타기는 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기실 상도 한번 받지 못한 작가가 라인을 타야 얼마나 탔겠는가...
한국의 역사속의 이야기들과 허구를 기묘하게 이용하여 낸 소설들은 큰 재미를 주는데, 특히 그를 처음으로 접했던 '불멸의 이순신'이나 '백탑파'시리즈를 비롯하여 내가 구할 수 있는 작품들은 모두 구매했고, '압록강'은 OC에 있을때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이 책은 소설반, 자기 얘기반 정도로 꾸린 소품집 같은 느낌을 주는데, 데모학생들의 전방입소와 한반도 핵기지화에 반대하면 분신한 김세진/이재호 열사의 이야기를 각색한 '열정'을 보기 전까지는 이런 일이 있었던 사실조차 몰랐으니,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무엇인가 중요한 역사의 인물을 소개받았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거기에다 그의 사회관이 비교적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함에 닿아있음을 trace할 수 있었기에 더욱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으니 김탁환작가는 적어도 나라는 한 사람의 독자를 생각하면 크게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내가 평생 모를 좋은 책도 많을 것이고 쟁여놓고 제대로 손을 못대는 책은 계속 늘어만 갈 것인데, 그래도 경제적으로 가능하다면 꾸준히 책을 사들여 쌓아놓고 싶은것은 이런 우연을 기대하기 때문일게다. 그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서 별 생각없이 구해서 꽂아놨다가 역시 특별한 기대없이 집어 읽고 즐거워하게 되는 우연말이다. 역시 책읽기와 사들이기는 멈출 수가 없는 나의 addictio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