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책을 직접 읽어 보지는 못했다.  그전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인가 하는 책을 보관함에 담아 놓기는 했는데, 그 뒤로는 직접적인 관심보다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때로는 악행의 의지가 없이도, 악이 행해진다는 법칙으로 한 동안 자주 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단순해 보이는 법칙이 의외로 역사속의 많은 사건, 그리고 인물들의 행위나 변명을 설명해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겉도는 이야기 말고, 따라서 한나 아렌트를 구해서 읽어봐야 할 것이다.


하인츠 구데리안은 독일의 군인으로서, 현대의 전차전을 사실상 정립하고 전술을 만들어낸 명장으로 알려져 있다.  밀덕들이 롬멜과 함께 자주 거론하는 전차전의 아버지 같은 사람인데, 군인집안에서 태어났고, 2차대전에서는 히틀러 휘하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  특히 그때까지 전차를 보병의 보조유닛정도로 보던 시각을 완전히 뒤엎고 전차를 주력으로 하여 보병과 포병부대를 지원배치하고 함께 움직이는 기동전술로 2차대전 초기에 특히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인간으로서의 구데리안도 일견 특별히 흠잡을 만한 것들이 없어 보이기는 한다.  언제나 군인으로써 국제법에 준수하여 전쟁을 수행하려고 했고, 전쟁중에 일어난 포로학살이나 민간인학살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1) 우발적이거나 (2) 상세한 안내가 전달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방의 격렬한 저항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났거나 (3) 자질이 모자란 나치극렬분자의 문제 또는 (4) 게릴라전에 대한 결과물로써, 애초에 희생자들이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회고하고 있는 점을 보면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  


더구나 이 책을 쓴 것은 그가 전범재판에서 책임을 면한 후, 그 증언과의 일관성을 배제할 수 없었을 상황에서 쓰여졌을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난 그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다.   


여기에 유태인 학살에 대한 그의 기억이나 입장이 사실상 거의 표명된 것이 없고, 나치당의 집권에 따른 민주주의의 후퇴나 자유민권의 압살, 전쟁으로 나아간 독일의 운명에 대한 성찰도 거의 보이지 않는 이 회고록에서는 그저 군인으로써, 군인의 눈으로 본 2차대전의 이야기와 간간히 나오는 전쟁 중의 대량학살과 고문에 대한 유감 외에는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한 군인이 전차를 이용한 전략전술, 여기에 관련된 성공과 실패의 복기가 내용의 전부가 된다.  


누구나 자기가 살았던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로 변명을 하기에는 좀 구린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구데리안은 물론 자기의 기준 안에서 최대한 국제법을 준수하고 합리적인 전쟁과 후속처리를 위해 노력했겠지만, 극단적으로 미국과의 빅딜을 통해 처벌을 피하고 전후에는 사업가로 변신하여 부귀영화를 누렸던 731부대의 수뇌부와 구데리안과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대를 바꾼 그의 천재성을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이 책을 보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일종의 '악의 평범성'을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앞과 뒤를 모두 잘라내고 보면, 아메리칸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은 전쟁영웅이고, 국가가 자신을 필요로 하던 시기에 열과 성의를 다해서 군인으로써의 의무를 다한 용사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 사람의 관점은 그 왜곡이 매우 심각한데, 특히 철저한 이분법적 사고에 기인한 선악논리는 전투상황에서 자신의 임무수행을 위해 필요했을 정신무장의 단순함을 뛰어넘는 오만하고 무지한 미국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하여 매우 불편하고, 또 매우 안타깝기 그지없다.  


부시의 임기 동안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전쟁터로 나갔으며, 중산층은 무너져버렸다.  그 시기를 살아낸 내가 볼 때 미국이 벌인 수 많은 전쟁들 중에서도 2차 이라크 침공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정당화가 불가능한 범죄인데, 이 범죄와 애국을 버무린 거짓말에 속아 삶과 목숨을 바친 이들의 선의는 이해하지만, 그 정신에 박힌 신념의 근거는 빈약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되지 못한다.  


크리스 카일의 묘사에 따르면 아랍인은 미군의 진주를 지지하는 평화로운 사람들과 이들을 괴롭히는 악한 무슬림으로 나뉘는데, 미국의 적인 그들을 카일은 야만인이라고 부른다.  이런 극단적인 타자화, 그리고 이에 따른 구분에 따라 그는 그가 죽인 생명에 대한 회한이나 존중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데, 이 또한 심한 불쾌감을 참을 수가 없다.  책을 보고 나서 생각하니 영화가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난 이 영화를 보지는 않을 것 같다.  이스트우드도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찰튼 헤스턴처럼 변해가고 있는 듯.  보수에서 또라이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알 권리가 있고, 알아야 할 의무가 우리는 있다.  이런 면에서 무지는 죄라는 성서말씀이 틀린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외국의 사례에서 보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일종의 법칙이 한국 근대사에도 적용이 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근대사, 특히 해방 이후 사회-정치-경제-법조-언론분야에서의 행태를 보면 확답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 (최소한 50-90년대까지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이후 김영상-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무법정치의 시기를 구분하는 것은 이런 연유로 의미가 있다.  즉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시기에는 대다수 국민의 '악의 평범성'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는데, 일단 대다수 국민에게는 결정권도, 올바른 인식을 갖추는데 필요한 정보도, 의식도, 삶도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승만-박정희 시기와 전두환-노태우 시기의 구분도 가능한데, 아무래도 좀더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의 인식도 삶의 모습도 좋아지면서,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이에 따른 민주화의 열망이나 올바른 사회의식이 자리잡여 갔다는 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정권이 겉으로나마 존재하는 지금 한국이란 나라의 '악의 평범성'은 그 정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죄, 소련과 미국이 진주하여 들어온 죄, 특히 미군정이 주도한 국가개편과정에서의 무분별한 친일파기용과 이를 업은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는 죄로 시작된 잘못 끼워진 국가재건의 단추가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은, 비록 그 시작의 책임은 타자에게 물을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만들어진 일부의 기득권화 과정, 또 이에 대한 대다수의 지향을 보면서, 한홍구 교수가 이야기하는 '책임'은 우리 모두의 것임을 느낀다.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들에 편승하는 세력을 어떻게 주도하고 가이드하느냐에 따라 국민 대다수의 정서가 발전/성장할 수도 있고, 퇴행할 수도 있다.  책임의식이 없는 자세가 국가전반으로 확대되어 국민 대다수가 자기만 잘살면 된다는 attitude를 형성하던 군부독재시기로 다시 돌아온 지금을 보면, 한홍구 교수 같은 이의 외침이 얼마나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당장 급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매사에 있어 우선순위가 된 지금이다.  보편적으로 잘 살거나 아주 못살게 되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나 바꿈에 대한 소망이 생기는데, 지금의 현상은 딱 그 가운데에 국민 대다수를 두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주의가 진화한 것처럼 군부독재도 철저한 study에 기초하여 진화한 셈이다.  마치 고용주가 어떻게든 고용인을 쥐어짜되, 딱 버틸만큼의 wage만 주는 것처럼.  


그저 읽고 생각하고 나누는 수밖에 없는데, 그런 행위조차도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생각하는 방법이, 사고관이 다른 지금의 20-30대의 사회의식은 어떤 형태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것이 다라는 사고를 갖다보면 어느새 늘어난 나이와 함께 꼰대가 될 수 있음이다.  열린 마음으로, 그리고 언제나 겸손하게 세상을 바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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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에 온 후 처음으로 친구가 한국에서 놀러온 지난 2주간 즐겁게 주지육림에 빠져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부어대는 시간을 보냈다.  내일 그녀석이 가고나면 다시 건강하고 지겨운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2주간 얼마나 부어댔는지, 집에 쟁여놓았던 거의 모든 재고가 바닥이 나고야 말았고, 그녀석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오픈하지 않았을 빈티지도 다 먹어버렸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을 읽다보면 크게 다소 지겨운 스토리 또는 처음부터 확 잡아끄는 전개로 나뉘는 것 같다.  보통 미스 마플이나 포와로, 그리고 토미와 터펜스 베레스퍼드 부부가 나오는 이야기들은 아주 잘 읽어지는데, 가끔씩 미스 마플은 단편에 더 어울리기는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는 오랫만에 베레스퍼드 부부와 만나서 그들의 모험을 즐겼다.  추리보다는 확실히 액션/어드벤처에 가까운 이들의 이야기는 1차대전 당시 젊은 그들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독일스파이를 잡기 위해 함께 뛰던 시절부터 노년의 지금까지 이어지는데, 나이를 먹어도 호기심은 주체할 수 없는 터펜스와 여전히 정보부에 선이 닿아있는 토미의 이야기는 몇 번 더 나와주어도 좋겠다.   살인이나 사건의 단서를 의심하자마자 심심한 일상을 잠시나마 벗어날 생각을 하는 할머니가 과연 정상일지는 모르겠지만, 노년의 터펜스는 처음 크리스티의 세계에 등장하던 발랄한 모습 그대로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이번에 영화화되는 빅스톤갭의 작은책방.  석탄채굴의 경기가 지나간 폐광촌은 아니지만, 한국에도 충북 괴산하고도 산골에 이런 작은책방이 있다.  예쁜 곳에 예쁜 모습으로 지어졌지만, 철저한 영업 마인드를 갖고 살아남기 위해 유지되는 이 서점의 주인은 은퇴한 부부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구상을 갖고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작은 서점들의 모습과 그들만의 고민, 그리고 살아남기위한 노하우를 보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인데, 여기에다 서점운영초기에 발생한 문제점과 이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 마인드셋을 잡아가는 에피소드는 이상+현실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서점이든, 무엇이든, 결국은 살기 위한 방편일 수 밖에 없고, 이런 영리행위는 아무리 포장을 해도 결국 돈이 벌어지지 않으면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파악과 행동이 없다면 오래 갈 수가 없다.  이런 의미로 자기 일에 대해서 '난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을 나는 결코 인간적으로나 일적으로나 신뢰할 수가 없다.  계속되는 이야기가 조금은 지겹기도 하지만, 이런 모습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준 책이다.


여전히 한홍구 교수의 책과 구데리안은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딱 무엇인가 잡힐 때 예전에 읽고 역시 미뤄버린 American Sniper와 함께 리뷰를 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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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0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31 0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지막으로 리뷰를 쓴 것이 꽤 지난 듯 한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글을 써보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  일은 꾸준히 하는 것인데, 요 최근의 내 모습은 언제나 머리가 복잡하고, 심정적으로 힘이 드는 것이다.  그간 새로 받은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간략하게라도 정리하지 않으면 내용도 잊어버릴 것이고, 글도 점점 쓰기 싫어질까봐 애를 써보기로 했다.


서점운영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은퇴하면, 또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에는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작은 서점과 선술집인데, 둘 다 이런 저런 이유로 현실성은 없다.  서점의 경우에는 자본도 그렇고, 책이 팔리지 않는 세태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전문성의 결여가 큰 문제가 된다.  물론 일이란게 어찌어찌하면 다 배워서 하게 마련이지만, 헌책방의 경우라면 특히 고서적에 대한 지식과 가격을 책정하는 솜씨와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별로 없이 우연한 기회에 꿈을 이루어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만났다.  


'소소책방'은 2013년에 문을 연 헌책방인데, 참고서나 문제집은 취급하지 않으면서도, 지금까지는 살아남아서 돌아가고 있는 작은 서점이다.  돈벌이는 신통치 않은 듯 한데, 이 책이 나오던 2015년에는 운영되고 있고, 회보를 만들어 팔며,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책과 서점경영에서 오는 에피소드를 잘 버무린 말 그대로 소소한 책인데, 왠지 읽으면서 가끔씩 마음이 따뜻해진다.


책을 통해 무엇인가 배우고 삶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배경과 동기,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싣고 있다.  내 입장에서 그리 뚜렷하게 맘에 와 닿았던 이야기는 없었으나 다양한 배경과 성별, 나이, 교육수준, 직업의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는 재미와 함께 나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어떻게 읽고 있는가, 쓰고 있는가를 생각해봤는데, 지역특강이나 계몽활동이 한국의 지자체처럼 높고 활발한 수준이 아니라서 이곳에서는 이들처럼 그대로 해보는 것은 큰 무리가 따른다.  절차탁마가 비단 무술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닐진데, 나는 이 절차탁마의 기회가 참으로 아쉽다.  읽은 것을 나누고 분석해보는 재미, 그리고 그 이상의 인간관계가 아쉽다.  


'구데리안'과 한홍구 교수의 '역사와 책임'은 둘을 짝지워 좀더 진지한 글을 써봐야겠다.  오늘은 여기까지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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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25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방을 운영하려면 손님들의 가격 흥정에 아랑곳하지 않는 엄격한 가격 책정 기준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어떤 손님들은 터무니없는 근거로 책값을 깎아달라고 부탁해요.

transient-guest 2015-09-29 01:41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 읽고 있는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는 냉정한 상인의 자세를 말합니다. 저는 서점에 가서 책값을 흥정하지 않습니다.

Forgettable. 2015-09-25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술집은 왜 안되나여... ㅠ

transient-guest 2015-09-29 01:41   좋아요 0 | URL
같은 요리를 일관성 있게 맛을 낼 수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입니다.ㅎㅎ
 

폭풍전의 고요라고나 할까.  업무가 쌓여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정작 자료와 정보가 제대로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뤄지는 케이스가 늘어가고 있다.  여기에 신규로 계약된 케이스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시점에서 이들이 폭발하는 일만 남았다.  이렇게 되면 한 1-2달은 정말 정신없이 일만하게 되는데,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이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늘상 반복되는 이 패턴을 어떻게 좀더 바람직하고 형평성있는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지는 항상 고민하고 있다.  내가 좀더 부지런하면 되는데, 업무효율상 띄엄띄엄 일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모든 것이 셋팅이 된 다음에 한번에 밀어나가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사실 하루에 조금씩 진척시킬 수 있는 일부터 찾아서 하면 좀 나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몰아서 하면 끔찍해 보이는 양이라도, 하루에 조금씩 처리하여 3주 정도를 진행하면 상당한 양의 업무를 큰 부담이 없이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으름과 무기력증이 결국 가장 큰 문제인 듯.


그냥 천천히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 공부하기로 했다.  개신교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최소한 그들의 모태가 되는 천주교에 대해서, 또 그 이상 서양의 종교와 신비주의 전통에 대해서 어느 정도 기본적인 이해를 깔고 있다면, 현대 무슬림, 이슬람, 그리고 극단적인 종파의 테러와, 그 배경이 되는 침략전쟁과 독재, 등등 여러 가지에 대한 기본지식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적인 배경이나 정치적인 문제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이해와 입장을 갖고 있다면,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서는 사회교과서 수준의 지식만 갖고 있기 때문에 서구로 대변되는 하나의 문명과는 분명히 많이 다른 또 하나의 문명체계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IS문제만 해도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는 이슈들이 많은데, 이들은 현재의 IS를 비롯한 극단주의자들의 범죄와는 다른 각도로 접근되어야 한다.  이 근간에는 결국 이슬람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분석이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survey로 읽을 책을 두 권 구입했는데, 그들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이 분야에서 매우 유명한 카렌 암스트롱.  종교로써의 이슬람의 발원과 발전과정, 여기서 나타난 역사적인 의미와 배경 등 포괄적인 정리가 잘 되어 있다고 본다.


간만에 읽은 김영하의 소설.  개정판이 나오기 전의 판본을 중고로 살 수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모티브의 전승이 발견된다는 '아랑전설.'  그러나 '아랑전설'하면 내가 떠올리는 건 Fatal Fury시리즈나 King of Fighters 시리즈다.  무식이 넘치면 뻔뻔해지는 법이라더니, 내가 딱 그 꼴이다.


어느 고을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부임하는 신임사또마다 첫 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비명횡사를 한다.  이유도 없고, 경과도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수령이 없어 질서가 무너진 마을에 용감한 머시기가 부임하여 첫 밤을 지내는데, 귀신이 나타난다.  수령은 귀신에게 겁먹지 않고, 그 정체를 묻고, 억울하게 죽은 '아랑'임을 알아내고, 사건을 파헤친다.  기지로 범인을 잡아내고 억울함을 풀어준 수령은 '아랑'을 찾아서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그 뒤로 행복하게 산다는 정도의 결말이 대충의 줄거리가 된다. 


김영하는 이를 좀더 현대적인 관점에서 추리하고 각색해본다.  '아랑'은 왜 죽었을까?  '아랑'은 누구일까?  '사또'들은 과연 귀신이 죽였을까?  '진범'은 누구였을까?  이런 추리과정에서 소설이 나오고, 정말 엉뚱하게도 '아랑'의 정체와 '진법'이 밝혀진다.  물론 여기에는 영웅도 없고, 기지에 넘치는 사또도 없다.  그저 추악한 욕망과 벼슬아치 양반의 무관심과 폭력, 그리고 마름에 해당할 아전바치들의 권력과 이를 이어가려는 행위만 보인다.  정말 김영하스럽다.  


드디어 59권을 읽었다.  딱 20권을 더 읽으면 이 시리즈가 끝난다.  정말 많이도 썼고, 많이도 팔렸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과거사건을 파헤쳐야 하고, 그 사건을 건드린 사람의 모티브 또한 파악해야 한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고 생각한 포와로는 기꺼이 이 사건을 맡아 탐문하고 그만의 회색세포를 가동하는데, 과거의 사건이면서도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주요인물들과 대화했다는 점을 빼면 움직이기 싫어하는 포와로에게는 딱 맞는 사건이다.  결말이 참 특이했다.


아침을 굶었더니만, 머리가 돌아기지 않는다.  커피만 좀 마셨는데, 이렇게 하면 점심이나 저녁식사때 폭식을 하게 된다.  습관적으로 그렇지 말아야한다.  그저 기분좋게 술이나 한 잔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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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5-09-1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을 미리 조금씩 하지 않고,
기다리던 자료들이 다 도착해야 착수하는 편이예요.
사전에 갖고 있던 것들로 조금씩 해두면,
분명 마감에 몰려서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게는 안되더라구요.

비록 시간에 쫓기느라 마음은 급하지만,
모든 조각이 모여야 사소한 부분부터 차분하게 맞춰갈 수 있더라구요.

transient-guest 2015-09-18 06:0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일단 이를 조금씩 하다가 말다가 하면서 진행하면 매번 다시 들여다봐야하는 부분이 생기니까요. 저는 효율 때문에라도 가능하면 한꺼번에 진행하는 편입니다. 그나저나 어제 컴이 날아가서 한 일주일은 XP backup PC로 일을 하고 있는데, 꽤 불편합니다.ㅎㅎ
 

노동절 연휴로 3일을 내리 쉬면서, 책을 몇 권 읽고 일도 조금 보고, 운동하고, 이렇게 달리 어딜 가지는 않고 보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우연과 필연이 겹쳐 그렇게 되었는데, 난 사실 별 불만이 없다. 그래도 이번에는 간만에 부모님이 친척어른들과 함께 Yellow Stone에 관광을 다녀오시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이 대부분 그랬지만, 먹고사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자녀를 부양하면서 정작 당신들은 어디 한번 제대로 다녀오지 못하시고 시간이 지나가버린 걸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기회에 좀더 주기적으로 어딜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원래도 좀 나이가 있었지만, 미스 마플은 이제 늙은 노처녀가 아니라 몸 이곳저곳이 아프고, 보살핌이 필요한 할머니가 되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의 등장인물들 중 나이를 먹었다 젊어졌다 하는건 에르큘 포와로 뿐이고, 나머지는 비교적 linear하게 작품과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젊은 커플로 나와서 1차대전을 전후로 큰 활약을 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부부도 나중에 2차대전 중에 등장하면서는 20대의 자녀를 둔 나이든 부부로 나왔듯이 미스 마플도 이젠 많이 늙은 것을 보면서, 이 작품이 나오던 시절, 작품과 함께 나이를 먹어갔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추리극 자체는 사실 보통 정도로 재미있었는데, 상당히 unfair한 clue만 주어지기 때문에 전혀 범인이 누군지 감을 잠을 수가 없었다.  의외로 밝혀진 트릭과 범인에는 살짝 이게 뭔가하는 생각도 했는데, 어쩌면 역시 이는 내 집중력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미스 마플이 또 등장하는 날이 있을지, 혹시 포와로처럼 작중에서 또 한면의 beloved character를 떠나보내야 하는 날이 될지.  마틴옹의 작중인물의 학살극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정든 등장인물이 사라지는걸 보는건 전혀 즐겁지 않다.


한림/소화출판에서 나온 일본현대문학대표작 두 권을 읽었다.  이번의 느낌의 큰 줄기는 작중설정과 묘사의 촌스러움이라고 생각된다. 작품의 깊이나 작품성은 논외로 하고, 요즘보다는 비교적 촌스러운 어투와 구성이 눈에 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에서도 우메자키 하루오의 '사쿠라지마'를 비롯한 단편에서도 태평양전쟁을 전후로 한 일본인들의 의식단면과 생활상이 묘사되는데, 작품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내 감정은 매우 복잡하다.  반전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많은 일본작가들이 정작 가해자로서의 자신의 모습은 외면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을 이번에도 조금 떠올렸다.  너무 허황된 소리는 굳이 파악할 필요가 없겠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는 일본의 정신세계를 살펴볼 필요가, 한국사람은 분명히 있다.  그런 의미에서 꾹 참고 읽은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노력은 하는데, 역시 줄거리를 요약하고 이를 바탕으로 무엇인가 이야기를 끌어내는 솜씨는 내게는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좀더 천천히 읽으면서 줄거리와 그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slow reading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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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5-09-08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거기는 메이데이 5월 1일이 아니라 9월이 노동절인가요?

저도 집에서 쉬는 날 편안히 책 좀 읽고 싶어요.
주말에도 계속 여기저기 쫓아다니느라 책 한 권을 3주째 붙들고 있네요. ㅠㅠ

transient-guest 2015-09-09 01:16   좋아요 0 | URL
네 9월 첫째 월요일이 늘 노동절로 연휴입니다. 바쁘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한달 정도 조용히 책읽고 운동하면서 쉬고 싶네요.ㅎㅎ 저도 요즘은 고전문학이나 생각이 필요한 다른 책은 잘 못읽고 있네요.

blanca 2015-09-0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지금 읽는 책에 미국 노동절이 9월 첫째 주라 해서 아 이맘 때구나, 했어요. 그런데 transient 님 계신 곳이 미국인가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에서 미스마플이 늙어가는 이야기가 있었군요!!

transient-guest 2015-09-09 01:17   좋아요 0 | URL
네 미국입니다. 첫째 주 월요일이 노동절이구요.ㅎㅎ 58권까지 읽었는데요, 갈수록 늙어가는 미스 마플입니다.ㅎㅎ 변하신 도시와 마을모습이랑 사회풍경도 흥미롭구요.

몬스터 2015-09-09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에는 못 느끼다가 , 노는 날이 다르거나 , 난 굿모닝하는데 , 저쪽에서 굿이브닝 할 때 , 아...이분들은 다른 나라에서 지내시고 계시는구나 펑! 느껴요. ㅎㅎ 잘 지내시죠?

transient-guest 2015-09-09 04:4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ㅎㅎ 특히 한국에 계신 분들과도 그렇지만 몬스터님처럼 유럽에 계신 분과 이야기하면 그런 느낌이 확 오죠.ㅎㅎ 덕분에 잘 지냅니다. 님도 열심히 운동하시고 일하고 계시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