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확실히 다르다.  바쁜 탓도 분명히 있지만, 책읽기가 조금씩 막혀가는 느낌이다.  잠깐이지만 슬럼프가 온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플루토'라고 무척 재미있는 만화책이 있다.  아톰을 원작으로 하여 우라사와 나오키가 그 일부를 차용한 작품인데, 처음 읽으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대단했던 작품이다.  그간 쌓아놓았다가 뜯어서 한 권을 읽었는데,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무려 '우라사와 나오키', '아톰', 거기에 오마쥬한 엄청난 작품인데 말이다.  딱 그런 상태가 불안하게 이어지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는것이 2015년 현재의 모습이다.  그래도 집에 가면 'American Sniper'원작을 조금씩 읽는 등 노력아닌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신경쓰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흠뻑 빠져서 재미있게 책을 붙잡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중물을 부어도 안되면 어쩌지...


일단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이 양반이 워낙 신비주의 잘 가져다가 소설인지 경험담인지를 알 수 없게 버무리는 재주가 뛰어난지라 특히 그런 부분을 가리는 것은 쉽지 않겠다.  그의 작품을 많이 접하지는 않았지만, 한때 특히 유행했던 것은 알고 있고, 지금도 꾸준히 잔잔한 이야기들을 퍼뜨리고 있다는 정도의 익숙함은 있다.  


지금말고, 예전에, 그가 젊었을 무렵에는 특히 서양인들이 신비주의에 심취했던 시절이었을게다.  흔히 말하는 히피들의 전성시대.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은 하루에 갈 수 있는 평균치의 길마다 역참이 잘 준비되어 있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그때만해도 수도원아 아니면 가난한 마을에로 점점이 이어져있었던 시절의 이야기.  내면의 무엇을 찾는 여행이라기보다는 신비주의 결사에서 부여된 어떤 과정을 수행해나아간 듯한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는데, 불교의 선종처럼 카톨릭에도 이런 방향에 좀더 중점을 두는 분파 또는 비밀단체가 없지는 않을 것이고, 그 뿌리는 아마도 저 먼 옛날 사막의 성자들이나 영지주의까지 거슬러올라갈 것이다.  


개념으로만 보면 선이나 악이나 홀로 존재할 수가 없다.  많은 것들처럼 이들도 상대적인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선하기 위해서 악을 밟기보다는 내면적으로 이를 다스리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이 종교적인 논리로 가면 이원론에 닿게 된다.  어떤 균형적인 개념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이 책에서 내부의 악마와 대화를 시도하고 도움을 구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맘속의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투영하여 균형을 잡고, 총체적인 자아완성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주인공의 산티아고 순례가 아니었나싶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선의 개념도 아마 이 시절 서양인에게는 매우 새로운 배움이었을게다.  


차분하게 다시 읽으면서 한 구절씩 음미하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바로 다시 읽게 될 것 같지는 않고, 다른 여느 책들처럼 어느 날, 어느 순간에 다시 운명적으로 손에 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벌써 22권째다.  그런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스쳐가는 나그네께서는 여전히 이런 저런 사건에 휘말려 극강의 상류층 귀족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만든 Sacred Ancestor, 말 그대로 성조를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eternal 순례라고 하겠다.  


완전한 우연이지만 위의 책과 함께 '순례'에 대한 책을 읽은 것이라고 억지를 부려본다.  이 세상것이 아닌 차가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모든 여자가, 아니 남자도 반하게 만드는 D는 이번엔 무려 10000년간 땅속에 봉인되었다가 튀어나온 귀족과 싸워야 한다.  그냥도 강한데, 벰파이어들이 지배하던 시절에 있었던 외계인류와의 전쟁에서 얻어진 과학기술과 생명공학을 접목시킨 강력한 상대이다.  D가 이기면 인간세상이 이어지고, 그가 이기면 다시 벰파이어들의 세상이 될 수도 있는 전투에서 당연하게도 D는 또 이긴다 (22승 무패).  그저 재미로 읽는 소설인데, 딱히 뭘 배우거나 느끼는건 없지만, 그래도 읽던 관성이 있어 항상 신간을 기다리게 된다.  기괴한 상상력은 언제나처럼 맘에 딱 든다.  서기 120하고도 수세기라니.  인류문명이 붕괴하고, 이때를 틈타서 나타난 흡혈귀들의 엄청난 과학문명과 인간노예/음식화, 그런데 이것도 시간의 흐름속에서 쇠퇴하고 다시 인간들이 득세하지만, 세상은 잔존하는 흡혈귀들과 그들이 만든 괴생물체와 왜곡된 자연환경 때문에 중세와 서부개척시대를 합친 거칠고 험한 곳이다.  이곳을 마치 현상금 사냥꾼처럼 돌아다니는 D와 그와 얽힌 사건/인물의 구성/구도는 늘 높은 재미를 선사한다.  한국어로는 나오다가 끊겼는데,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권수가 딱히 중요하지는 않지만, 꾸준함의 척도정도의 의미는 있다.  이번 해에는 처음으로 200권을 넘기지 못할만큼 더딘 한 해의 수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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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3-26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라사와 나오키 말씀하시니 20세기 소년 생각납니다. 정말 재미있게 봤고 책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처분했습니다 ㅜㅜ 일본 만화들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했습니다. 뭐... 갈때까지 간다고나 할까 상상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고 할까
하여튼 보다보면 놀랠 때가 많았던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다시 보면 또 어떨지 모르죠

transient-guest 2015-03-27 02:02   좋아요 0 | URL
20세기 소년은 참 재미있게 읽었죠. 2012년에서야 겨우 봤지요. 만화의 수준으로만 보면 일본이 세계최고인 듯합니다. 이제 그 인프라가 쌓이고 또 쌓여서 오마쥬로만 해도 플라토 같은 대작이 나오나봐요.

몬스터 2015-03-2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적이겠지만 , 제게는 transient-guest님 정도면 우와 ....하는 독서량인데. lol

일하고 와서 머리 비우고 책을 잡는게 제게는 어렵네요.

transient-guest 2015-03-27 02:03   좋아요 0 | URL
갯수는 좀 되지만, 확실히 깊은 reading은 어렵고, 이를 제대로 남기는 것은 더욱 어렵네요. 저도 일하고 들어오면 그냥 퍼져서 tv보면서 unwind합니다.ㅎㅎ

Forgettable. 2015-03-27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그렇게 권태기가 오기도 하더라구요.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책을 만나면 확 빠져들게 돼서, 아 내가 문제가 아니라 책이 문제였군 뭐 이러면서 핑계 ㅋㅋㅋ 플루토 저는 굉장히 재미있게 봤는데.. 20세기 소년은 보다가 기다리다 지쳐 중간에 관뒀네요. 다시 시작하기엔 전 내용이 기억 안나고;; 암튼 요즘 신작 나오는 것 같긴 하던데 한국에서 번역 됐는진 아직 모르겠네요. 여튼 좋은 책 곧 만나시길!

transient-guest 2015-03-27 03:4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문제는 인터발이 자꾸 짧아지는 거죠. 암튼 늙어가는건 서럽네요.ㅎㅎㅎ 어릴때 만화책을 잘 안사줘서 그런지, 지금은 가능하면 다 사들이고 싶은거에요.ㅎㅎ 우라사와 나오키도 몇 작가들과 함께 작품을 다 갖고싶은 작가입니다.

해피북 2015-03-27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그런날들이 있더라구요 아무리 읽어도 머리에 안들어오고 같은 곳을 읽고 또 읽고 반복만하다가 짜증이 확 솟구치는 날들.
몇시간 쉬다 읽어도 안되고 잡생각과 글들이 부딪치는게 느껴지는 날 저는 밥을 굶는거 처럼 책을 굶겨 버려요 몇날 몇일 책을 안보다가 막 읽고싶어질때 얼른 가서 읽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때까지 그럴땐 미친듯이 읽기도하곤 하는데...지금이 딱 그런 시점인가 봐요 머리에 안들어오는 ㅠㅠ

파울로코엘료에 대한 말씀 공감이 확 되네요 ㅎ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부터 그 모호한 경계사이를 경험하면서 참 심오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transient-guest 2015-03-27 23:46   좋아요 0 | URL
그냥 책 자체가 읽으면 그런대로 재미가 있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거에요. 폰이나 들여다보거나 tv만 보고...그런데 또 책을 읽지 않으면 뭔가 이상하고...이럴 땐 정말 밖으로 뛰쳐나가서 다른걸 하고 머리를 풀어야 할까봐요.. 코엘료는 많이 읽은 작가는 아니에요. 다만 서양인의 관점에서 보는 어떤 신비주의를 잘 가져다 쓰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yamoo 2015-03-27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루토는 정말 재밌었지요. 5권인가 읽고 그담 잊혀졌습니다. 하도 나오지가 않아서요..주위에 책 대여점이 다 망하는 바람에 플루토 연재가 어디까지 출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와키 이토치의 <히스토리아>와 함께 목빠지게 기다리는 작품들입니다. <베르세르크>는 아예 포기했습니다..ㅎㅎ

코엘료 책들은 어느 순간 딱 멈췄습니다. 그의 책이 8권 쯤 있는데, 몇 권 읽어보니 비슷비슷한 내용이라 손이 안갑니다. 어느 순간 처분해야 할 듯싶어요~^^

뱀파이어 헌터가 아직까지 나오는군요~ 저는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의 극장판을 마지막으로 뱀파이어 헌터는 빠이빠이 했습니다~

그나저나 트랜지언트 님때문에 플루토가 생각났습니다. 몇 권까지 나왔는지 알아보고 구매해야 하 듯합니다~ 엔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 페이퍼에요!!^^

transient-guest 2015-03-27 23:48   좋아요 0 | URL
플루토는 완결됐구요, 베르세르크는 저도 포기, 일단 작가가 오늘 내일 한다는 얘기를 전부터 들어서도 글쿠, 조금은 드래곤볼 같이 마냥 늘어지는 떡밥느낌도 나구요. 원래 한 작가의 책을 다 보는게 그래서 좀 어렵더라구요, 계속 읽다보면 비슷한 모티브에...

벰파이어 헌터 D 1편으로 만든 80년대 OVA를 처음 봤을땐 충격 그 자체였죠..ㅎㅎ 시리즈로 애니메를 시도해볼만한 작품인데 극장판만 두 편이네요.
 

술이 센 편이다.  꽤 즐겨 마시는 편이기도 하고.  물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음식조절이상 술도 조절해서 적절히 띄엄띄엄 마셔야 한다는 것을 느끼기에 조금씩 먹도록 노력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St. Patrick's Day가 아닌다.  아무리 찾아도 초록색 옷이 없어서 코디는 포기하고, 출근길에 마트에 들러 기네스 맥주와 간단한 안주가 될 것들을 사들고 사무실로 기어들었다. professional로 가득찬 건물에서 주정뱅이 찍히지 않도록 물론 종이백에 숨겨들고 말이다.  아침부터 술을 먹은 기억은 딱 두 번정도.  97년에 한양대 후문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저녁 7시에 호프로 시작해서 다음 날 아침 해장술까지 달린 기억, 그리고 대학졸업을 앞둔 마지막 수업 오전 7시에 당시 즐겨 마시던 싸구려 맥주 - red dog - 를 병째 마신 기억이 난다.  


나이를 먹어서 좋은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어느 정도는 재량껏 사고싶은걸 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나같은 자영업자, 그것도 늘 사람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 가끔은 이런 일탈을 즐길 수 있다는거다.  

기네스를 마시는 두세가지 잔이 있는데, 모두 pint사이즈의 투박한 유리잔이다.  솜씨있는 바텐더가 제대로 따라주면 마시는 내내 저 크라운이 조금씩 가라앉기만 하면서, 사라지지 않는 신기함을 볼 수 있다.  그래도 플라스틱잔에 내가 따른 이 녀석도 그런대로 신선함이 유지된 (질소팩이 들어간 캔이다) 듯, 아직까지는 거품이 남아있다.


Happy St. Patrick's Day...

작년에도 비슷한 포스팅을 했는데, 어느새 일년이 지나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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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18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저도 건배 하고 싶네요.
건배!

transient-guest 2015-03-19 02:22   좋아요 0 | URL
덕분에 오후에는 조금 피곤했지만, 딱 적당한 양이었네요.ㅎ

icaru 2015-03-18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유치원에서 초록색 옷 입고 오라고 해서, 성인 패트릭 씨가 누군데?? 했던 기억이 피어오르네요 ㅎㅎ

transient-guest 2015-03-19 02:2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확실히 아이리시 이민이 많긴해요.

Alicia 2015-03-1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페이퍼 기억나요, St. Patrick`s Day. 그 때 저는 도서관에 있었어요. 그리고 일 년 뒤,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죠... 가끔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저도 그런 자유를 꿈꿉니다. 옛날엔 저렇게 나와 남들 일하는 시간에 커피 한 잔 하는게 가장 행복했는데, 샐러리맨이라 그럴 수 없으니 요즘은 사진 찍을 때 그런 자유와 충만감을 가장 많이 갖게 돼요. :-)

transient-guest 2015-03-19 02:29   좋아요 0 | URL
기억하고 계시네요.ㅎㅎ 정말 일년만에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가끔 외근나가시면 그런 여유를 찾아보셔요.ㅎㅎ

cyrus 2015-03-18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소주, 맥주, 양주 가릴 것 없이 마실 정도로 좋아했는데 작년부터 취업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술모임 횟수가 줄어드니까 소주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 예전 같지 않았어요. 쓴맛이 강해진 느낌이 들었어요. 요즘 소주보다는 맥주, 막걸리를 찾습니다.

transient-guest 2015-03-19 02:29   좋아요 0 | URL
막걸리가 은근히 괜찮은 술인 듯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래도 줄여나가게 됩니다.ㅎ

2015-03-19 0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9 0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9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0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몬스터 2015-03-1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아요. 술이 센 편이시군요. 저는 오리지널 보다 드라우트가 맛이 좋더라구요. GP가 빈혈에 좋데서 와인으로 옮겨오기 전에는 자주 즐겼는데 , 이젠 와인이 ㅎㅎ 술은 좋아요.

transient-guest 2015-03-20 01:35   좋아요 0 | URL
저도 드라우트를 좋아합니다. 기네스가 빈혈에 좋다는 말은 처음 듣구요. 와인은 조금씩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 들었습니다만, French paradox를 실천하기에는 너무 많이 마시게 되는지라...ㅎ
 

고작 월요일인데, 융단폭격을 당하는 것처럼 몰려드는 일거리가 장난이 아니다.  어려운 시대에 바쁜 것은 좋은 것이지만, 아무튼 아침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일하고 있다.  오후도 거의 저물어가는 지금에서야 겨우 한숨 돌리고 주말에 읽은 책을 정리하기 위해 들어왔다.  


마중물이 되어준 책이 두 권이다. 워낙 쉽고 빨리 읽히는 책이라서 아무런 부담없이 쭉 읽어내고, 그 덕분에 힘을 얻어서 다른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되는데, 독서행위라는 것도 여느 다른 취미들처럼 분명히 지칠 때가 있기 때문에 만화책과 함께 이런 가벼운 재미를 주는 책들도 종종 읽곤한다.  물론 이들을 폄하하거나 순전히 어떤 쉬운 독서로만 여기는건 절대 아니고, 다만 상대적으로 무겁고 복잡한 책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 뽕구라 같은 책은 아닌 작품들은 하나씩 구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친구의 스케줄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자영업자인 나름대로의 업무강도와 업무 외적인 일에 대한 부담이 늘 있어, 이것도 그리 만만하게 여길 수는 없다.  일례로 첫 2년 동안은 다음날이 월요일이라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는 일요일밤을 보냈지만, 이제는 일요일밤이 되면 다가오는 한주의 업무량과 일정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독일어로는 모르겠고, 영어로는 Magic Mountain이라는 이 책, '마의 산'은 말 그대로 나에게는 마성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듯하다.  작년 2월 말경에 그때까지 반 조금 넘게 읽은 이 책을 과감히 덮고 다시 시작하는 출정식(?)을 신고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한 해가 다시 돌아오고도 3주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이번의 시도에서는 거의 다 읽고 마지막 8-90페이지 미만까지 갈 수 있었는데, 어느 시점에 또다시 책을 놔버려서 머릿속에 남은 내용의 구성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고, 이를 억지로 한번 끝내버리면 아주 오랜 시간동안 다시 손에 들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저녁때 이 책을 다시 reset해버렸다.  확실히 두 번째 읽을 때의 느낌은 처음보다 나았기에 세 번째 읽게 되는 이번에는 더 깊은 reading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성서도 아니고 왜 자꾸 다시 읽게 되는건지 알 수가 없어서 묘한 공포감 같은걸 느끼게 된다.  나도 한스나 요양원의 다른 환자들처럼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돌아오기를 반복하게 된 것인지의 여부는 사실 모르겠지만, 우연히도 그렇게 등장인물들의 행보를 따라가는 독서행각이 우습기도 하다.  과연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다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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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3-17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딱딱한 책들 읽다가 지칠땐 저도 가벼운 책들 보는것으로 한숨 돌리곤해요.


<마의 산> 하아...오늘 아침에도 책장에 꽂혀 있는 마의 산을 가져올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다른 책을 가져왔어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한번 중간에 덮고 나니 좀처럼 다시 손이 가질 않네요.

저도 이만 일하러..^^

yamoo 2015-03-17 16:29   좋아요 0 | URL
<공중그네> 저두 정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라부는 제가 정말 많은 웃음을 선사해 줬습니다..

<마의 산>은....지루해서 읽다가 디져부렀습니다~ㅜㅜ

transient-guest 2015-03-17 16:53   좋아요 0 | URL
오쿠다 히데오는 비교적 최근에 접한 작가인데,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게 역시 지칠때 읽기 좋은 듯 합니다. `마의 산`은 일단 다 읽어야 무엇인가 할 얘기가 생기겠지 싶네요. 일단 작가양반의 스타일이 매우 디테일하고 꼼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게 역시 어렵네요.

해피북 2015-03-1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가끔씩 묵직한 책을 읽다보면 기분 전환을 위한 책이 필요하더라구요

마의산 세번째 도전은 꼭 성공하시길 바래요 ^~^

transient-guest 2015-03-17 16:54   좋아요 0 | URL
곧 다시 시작할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성공했으면 좋겠네요.ㅎ

Alicia 2015-03-1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tran님이 마의 산을 정복하신 이야기를 꼭 듣고 싶네요. ㅋㅋㅋ 언젠가 페이퍼에서도 마의산을 언급한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고 하셨잖아요. ㅎㅎㅎㅎㅎ
마중물 독서가 필요하긴 한데 저는 요즘 의욕도 없고 책이 통 손에 잡히질 않아서 문학수 기자의 클래식 강의를 듣고 있답니다. 지기님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밑줄그어 올려주시는 걸 가끔 읽는데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가벼운 독서, 늘 꿈꾸는 거지만 제 독서는 항상 진지하고 조금은 무거운 듯 해서 걱정이예요. ㅠ

transient-guest 2015-03-17 16:56   좋아요 0 | URL
정말 여러번 `마의 산`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요..ㅎㅎ 그런데 책을 사들인 2012년에서 지금까지 결국 한번도 완독을 하지는 못했네요. 문학수 기자님의 강의를 듣고 사서 읽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도 좋았고, 최근에 나온 책도 꽤 좋았습니다. 늘 reference할 수 있는 책 같은데, 겉멋도 없고 뭐랄까 거품을 싹 거둬낸 알찬 책 같습니다. 독서를 오래 가져가는 방법은 역시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ㅎ

다락방 2015-03-1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개님과 게스트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어쩐지 [마의 산]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네요? 책 검색 들어가봅니다. 훗.

yamoo 2015-03-17 16:3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마의 산 읽다가 지루해서 디져부렀어요~ 것두 3번씩이나...토마스 만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 젤루 재밌었던 거 같아요...근데, 뭐...토마스의 소설은 소설이 아닌 교양서 같아서...서사가 정말 지루합니다..네..

transient-guest 2015-03-17 16:58   좋아요 0 | URL
작가님께서 읽고나면 멋진 리뷰가 나오겠지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ㅎㅎ

yamoo님: 토마스 만의 소설은 확실히 서사가 길어서 깊이 들어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듯 합니다. `마의 산`은 정말 힘이드네요..

icaru 2015-03-17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껏 살면서 마의 산을 완독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러면서 성장소설 이야기가 나오면, 성장소설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토마스만의 마의 산이 있다고들 하고요..
시시종종 도전 의지를 불태우지만 요양원 생활만 재독삼독하다가 만 1인입니다.;;

다락방 2015-03-17 10:39   좋아요 0 | URL
아니, iacru님까지...
아, 정말 완독에의 욕망이 솟네요. 불끈불끈. ㅎㅎ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3-17 16:59   좋아요 0 | URL
정말이지 이번에도 요양원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절망할 듯..ㅎㅎ 계속 읽다가 어떻게 하면 환자를 오래 keep하면서 쥐어짜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일어날 듯 합니다.ㅎ

다락방님: 꼭 완독하시길! 너무 어렵고, 길어서 집중도 그렇고, 일단 한번에 다 읽기가 쉽지 않네요.ㅎ

붉은돼지 2015-03-17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십여년전에 작심하고 세계문학전집 읽을 때 마의 산 읽은 기억이 납니다. 내용은 가물~~무슨 병원에서 환자들끼리 어쩌고 저쩌고 하던 세기말적인 분위기... 그런 기억만 어렴풋이...그때는 범우사 세계문학전집이었는데요. 죄와 벌이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소설을 무슨 도닦듯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transient-guest 2015-03-18 01:16   좋아요 0 | URL
일단 내용이 너무 길고, 작가 특유의 서사도 그렇고 쉽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세번째 읽는 것이니까 내용이 좀더 잘 파악되고, 따라서 의미를 더 잘 생각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죠..ㅎㅎ 저도 도를 닦듯이 읽게 될 것입니다.

cyrus 2015-03-17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넘기 힘든 문학의 산이 토머스 만의 <마의 산>과 조정래의 <태백산맥>일 겁니다. ^^

transient-guest 2015-03-18 01:17   좋아요 0 | URL
태백산맥은 오히려 참 쉽게 읽었는데, 마의 산은 너무 어렵네요.
 

이번 주는 매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일단 매주 due date을 정해놓고 끝내가야 하는 큰 케이스들을 하나씩 치워나가는 부분이 있어 하루의 일정시간은 늘 머리를 써야했고, 다른 자투리 케이스나, 작은 일감들은 나머지 시간에 적절히 업무량과 강도에 따라 배분하여 일을 했기 때문에 매일 출근해서 작업하다가 시계를 보면 퇴근할 시간이 되어버리곤 했다.  물론 나 정도의 스케줄이야 한국 직장인의 흔한 격무 스트레스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느끼는 것이 다르니만큼, 어쨌든 퇴근해서 집에 가면 머리가 띵~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수-목요일을 거쳐 어느 정도 이번주의 할당량이 정리가 되고해서 금요일인 오늘은 가볍게 오전에 잡무를 하고 오후에는 책을 읽을 계획이었다.  마침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이래저래 좋았던 것 (이 가사를 아는 당신의 나이는??).  


그러나 나의 바램은 계속해서 들어오는 이메일과 전화, 그리고 갑작스런 방문상담신청에 가볍게 날아가버리고, 난 지금에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면서 오후의 미팅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월 말에 주문한 책과 CD가 막 도착한 참이라서 '그네와 꽃'이나 '가을방학' 아니면 '나희경'을 틀어놓고 그렇게 나른한 봄날의 독서를 즐기려고 했는데...


읽는 내내 책을 손에서 내려놓기 힘들 정도로 나를 깊이 사로잡은 책이다.  누구나 가끔씩은 느끼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만의 인생, 업적, 불안함, 그리고 모자람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드는, 특히 한 방향으로만 꾸준히, 한눈팔지 않고 걸어간 사람일수록, 그가 이룬바와는 상관없이.  


그레고리우스는 50여년을 잘 살아왔다.  물론 여느 사람들처럼 후회되는 순간, 아팠던 일들, 즐거움 모두 적절히 경험했을만큼 비교적 평범한 삶이었을게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말이다.  꾸준한 공부와 학구열로 학교에서 이미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고문헌/고어선생님인 그의 인생은 하지만, 어느 비오는 날 아침, 어느 여자의 자살시도(?)를 말리려다가 매우 급작스럽고도 급진적으로 다른 turn을 시작하게 된다.  


불면증이 있는 주인공은 매우 쓸쓸하게 긴 밤의 끝과 동시에 아침의 시작을 맞는다.  아무것도 생각할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는다.  밤에 잠을 못자게 하는건 소설에서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가본 길, 그리고 가보지 못한 길, 다른 인생여정에 대한 반추가 아닐까 싶다.  그런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같은 그의 정신은, 아주 우연히 자기 손에 들어온 한 권의 책, 그 책을 쓴 저자의 삶으로 들어가는 여행을 시작하는데, 그 동기만큼이나 격정적인 그 시작은 익숙한 일상, 2-30년은 그렇게 살아왔을듯한 그의 일상을 한꺼번에 drop해버리는 지점에 맞물려 있다.  


아주 금방 나는 이 책의 이야기속으로, 정확하게는 그레고리우스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와 함께 긴장하고 갈구하고 실망하고, 때론 잠시잠깐의 승리감도 맛보면서 한 권의 인생을 살아야했다.  나답지 않은,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표현이지만, 조금만 참아주시길.  정말 내 맘이 그러했으니까.


기실 나에게 어쩌면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인생을 되짚어가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레고리우스를 보면서, 그의 50평생을 보면서, 나 자신의 이야기, 나 자신의 50대를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말썽이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다.  어려움도 겪고, 부모님을 속상하게 해드린적도 있었지만, 정말이지 그 흔한 사춘기 한번 제대로 겪지 않고 지나왔었고, 큰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하고 조신하게 풀어짐 없이 살아왔다.  그 덕분에 모자란 실력으로 그나마 남들이 쬐끔은 부러워하는 직종에 들어왔고, 초기에 고생은 좀 했지만, 점점 나아지는 실적으로 하는 일의 양에 비해서는 훨씬 좋은 대우를 받고 있으며, 상황은 더욱 좋아질 수도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꽤 건전한 취미와 건전한 생활, 건강하고 균형잡힌 생활 덕분에 나이에 비해 몸도 건강한 편이고 또래보다 어려보이는 편이다 (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항상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인생을 던질만한 무엇.  정열적으로 나를 던질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답은 정해져있다.  그것도 딱 정답수준의 답으로.  그레고리우스처럼 언제 어디서 무엇을 계기로 나 또한 그렇게 radical하게 갑자기 모든 것을 던져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그레고리우스가 학교를 뒤로하고 리스본으로 떠날때부터 끊임없이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그간의 생을 새겨보고 있을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레고리우스는 한 여자를 찾아서 떠났지만, 그 끝에서 얻은 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여정의 깊은 이야기, 그리고 그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자신의 이야기만이 세상의 전부였던 사람에게 그것은 그 나름대로 큰 의미였을 터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끝까지 그가 찾아 떠난 여인을 만났는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 큰 떡밥을 그렇게 가볍게 날려버리고, 그레고리우스는 다시 베른으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다.  그게 다다.  


어떤 의미를, 깊은 무엇인가를 찾는건 실패했지만, 어쩌면 그레고리우스의 여행은 그 자체로써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치 내가 이 책에서 깊은 철학적 사유를 끄집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레고리우스의 모습에 나 자신을 투영시켰던 것처럼.  간만에 깊은 사고를 하게 만드는 책을 읽은 듯 감동아닌 감동같은게 계속 내 마음속에 부유하고 있다.  


'의천도룡기'를 보면 초반에 주인공인 장무기의 엄마, 은소소가 자결하면서 하는 말이 있다. '여자는 사람을 잘 속인단다.  예쁜 여자일수록 더 잘 속인단다'라는 취지의 말인데,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장치로써의 아름다운 여인은 정말, 그 미모나 매력에 정비례로 문제가 많다.  단순히 거짓말이라면 그 시대의 애교로 봐주겠지만...이렇게 말하고 나니 스포일러가 쏟아지는 느낌이다.  



페이퍼를 시작한건 오후 2시.  이렇게나마 마무리하는건 5시.  그 동안 두 건의 상담과 업무처리, 그리고 세금정산을 위해 회계사와 만나는 부분까지 정신없이 돌아간 3시간이었다.  


언젠가 정말 다 던지고 나갈 용기가 생긴다면 나도 우선은 기차를 타고 서부종단, 그리고 대륙횡단을 할 것이다.  그 계기를 찾기위해 비오는 날 아침 금문교를 걸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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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03-14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J Duck? ( 아닌가요? ) ha ha

transient-guest 2015-03-15 03:17   좋아요 0 | URL
ㅎㅎ 아직 젊으신 듯...

몬스터 2015-03-15 0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 대략 열 번이상 중얼중얼. DJ Duck 같은데 아닌가봐요. 누군데요?

transient-guest 2015-03-16 01:08   좋아요 0 | URL
솔리드의 `천생연분`입니다. 그때 노래방가면 다들 빙의해서 부르곤 했지요.ㅎ
 

언제 이 책을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오래 전에 gym가방에 넣고 다닌 전집의 38번째 이야기다.  요즘 다시 조금씩 자전거를 타고는 있지만, 그간 한 달 가까이 cardio운동을 전혀 할 수 없었고, 그 전에도 워낙 불규칙하게 이를 시행한 덕분에 운동을 하면서 책을 읽을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던 것이 큰 이유였지만, 아마도 자꾸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되는 나 자신의 태만도 그 이유라고 생각된다.  가능하면 운동할 때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보지 말아야 할텐데 하면서도, 이메일 때문에, 전화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이 책을 다 읽은 나는 39권을 뽑아 gym가방에 담을 것이다.  75권에 달하는 전집을 다 읽게되는 시점은 아마도 잘해야 이번 연말 정도가 아닐까?  캐드팰 전집은 구해놓고도 시작을 하지 못하고 있고, 동서 미스터리 시리즈 - 틈이 나면 조금씩 구해서 언젠가는 전집을 갖추고자 하는 - 도 전혀 손을 못대고 있다. 그나마 다른 가벼운 추리소설은 배달되면 그때 맞춰 조금씩 읽고는 있지만, 어쨌든 이 시리즈를 다 끝내야 다른 시리즈로 넘어갈 수 있을 듯하다.


모든 용의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죽었다.  희생자와 용의자가 모두 한 시공간에 모여있는 상태에서 발생한 이 사건의 배후를 캐보니 모든 사람이 나름대로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고, 희생자는 쉽게 말하면 꽤 나쁜놈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운동을 하면서 틈틈히 읽는 크리스티의 책은 요즘 기승전결을 제대로 파악하면서 읽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전개를 즐기는 편이기 때문에 포와로의 추리를 따라간 기억은 없다.  매우 꼼꼼하게 추리소설을 분석하는 글을 찾는 분은 http://hansang.egloos.com으로 가시면 매우 좋은 리뷰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작품의 특이했던 점이라면 아주 마지막 순간까지 투척된 범인떡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중으로 장치되어 끝까지 정확한 추론이 어려웠다는 점이 신선했다.


1992년에 타계한 아시모프의 유작에 가까운 이야기집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매우 유명한 추리소설작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아시모프는 약 400여권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는데, 워낙 다작에 다양한 주제를 건드린 덕분에 이렇게 추리소설도 60여편 이상을 남겼고, 그들은 Black Widowers (흑거미 클럽으로 번역됨)라는 책으로 5-6권 정도가 출간되었다.  한국어로 나온 책을 한 권, 그리고 우연한 득템에 따라 읽은 이 책으로 겨우 두 권만 보았을 뿐이지만, 온라인을 뒤져서 나머지도 다 구해내리라 다짐하고 있다.  


Black Widowers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전형적인 armchair detective장르인데, 범죄이야기도 있고, 단순한 미스테리를 한달에 한번씩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모임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늘 그렇듯이 멤버가 추천한 그날의 guest에게 자신의 존재이유를 정당화할 것을 묻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이 클럽의 멤버이자 매우 유능한 웨이터인 헨리의 혜안으로 답을 찾는 것으로 끝나는데, 진지한 추리소설이나 일본풍의 호러색채가 강한 이야기가 아닌, 매우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읽다가 보면,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도 새록새록 올라오는데, 내가 직접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책이 어떤 목적성을 갖고 달려드는 존재가 되기전, 오히려 tv만큼이나 흥미와 오락의 수단이었던 시절, 매우 활발한 도서경기와 독서, 라디오의 시절까지 만날 수 있다.  


너무 바쁘게 지내고는 있지만, 책값을 벌 수 있는건 바쁘게 일하는 덕분이다.  새삼 다행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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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모프는 SF소설도 유명하죠. 최근에 <파운데이션>이 완역되었을 뿐이지 다른 걸작들은 거의 절판되었고 온라인 중고샵에서 고가로 나옵니다. 저도 아시모프의 책을 구하는 중인데 생각보다 가격이 쎄서 그저 군침만 삼키고 있습니다. ^^;;

transient-guest 2015-03-11 01:42   좋아요 0 | URL
은영전 정식판 전집과 함께 파운데이션은 저를 불안하게 하는 책입니다. 절판되기 전에 주문해야 하는데, 해외배송에 뭐에 값이 상당히 올라가서 계속 미루고 있거든요. 한국에서 SF장르는 확실히 고전문학에 비해서 천대받는 듯 합니다. 금방 절판되고 잠깐 붐이 왔다가 사라지고...

yamoo 2015-03-11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하영웅전설, 파운데이션, 로봇 시리즈...전 90년대에 다 봤습니다. 그런데 다시 장만하려고 하니 가격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재밌게 읽었던 책들이 갑 중에 갑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transient-guest 2015-03-11 13: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전 파운데이션은 아직 영어책으로만 갖고 있고, 은영전은 을유문화사에서 나온게 있어요. 아무래도 정식판이 나오니까 갖고 싶고, 얼마전에 보니까 다나카 요시키의 아루슬란 전기도 다시 정식판이 나왔더라구요. 열심히 벌어서 열심히 사들일 생각입니다.ㅎㅎㅎㅎ 지금보다 PC게임도 그렇고 오락기도 그렇고 저도 90년대가 갑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문득, 그건 제 나이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