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시 먹었다.
계속 몸이 아팠고, 짜증이 늘어갔으며 매사에 힘겨워하고 있었던 것이 지난 2주간 나의 모습이었다. 운동을 해도 근육량이 줄어드는 것을, 옷을 입어보면 확인할 수 있었으며, 기분을 전환하려고 이런 저런 노력을 해도 소화불량에 불면증을 떨어낼 수가 없었다. 일도 겨우 해냈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혹시 만성적인 우울증이라도 생겼을까봐 걱정을 하기도 했다. 우울증이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이를 받아들이고 다양한 경로로 이를 조정하면서 몰아내야 하지만, '병'으로 자리잡을 수 없도록 이를 무시하고 여기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어떤 징후를 내가 놓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책읽기가 재미없어졌다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된 것은 결국 전반적인 일상의 슬럼프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었나 한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바쁘게 꾸준한 성장을 위해 달려왔고, 여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이르지만, 어느 정도 걱정과 안정의 사이에 위치한 사무실, 그리고 거의 10년을 비슷한 일을 해온 나의 모습, 하지만 갈 길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 그리고 직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자유도에 비례한 책임감과 불안정한 삶.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어떤 계기로 나에게 쏟아진 결과, 지난 2주간 그렇게 고생을 하게 된 것.
여기에다가 이런 저런 부상, 그러니까 운동을 오래하면 누구나 갖게되는 만성적인 피로와 아픈 증세 때문에 운동을 신나게 하기보다는 밀리기 싫은 마음에 어렵게 수행해낸 것도 지난 2주간의 힘든 부분이었는데, 덕분에 마음이 많이 약해졌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이번 주말을 계기로 인식전환이 중요하단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시 맘을 다잡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특별한 일이나 깨달음은 없고, 늘 힘들다가도 용기를 내면서 특히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맘을 다잡을 때에는 '마음이 죽으면 몸도 죽는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만화나 책이나 심지어 영화같은데서도 자주 나오는 이 싸구려성 맨트가 나의 화두가 되곤 한다. 그렇게 어제 아침부터 다시 이를 악물고 힘든 운동을 견뎌냈고, 책을 붙잡고 읽어냈으며, 생활을 다잡고 있다. 고작 하루가 지난 월요일이지만, 결과는 I fee so good이다.
덕분에 주말에만 그간 미뤄두었던 책을 두 권이나 읽어냈다. 비록 깊은 내용을 선사하는 문학이나 철학책은 아닐지라도 그 나름대로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작위를 얻기 위해 가난한 바람중이 영국귀족과 결혼한 미국인 대부호의 딸이 여행중이던 특급열차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시작은 보석을 둘러싼 절도모의로 보았는데, 갑자기 살인사건으로 발전한 전개는 뜻밖이었는데, 워낙에 많은 장치적인 인물들 때문에 이번에도 마지막까지 범인이 누구인지는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간 읽어온 것을 바탕으로 유추하기는 했지만, 보기좋게 속아넘어간 것이다. 40권째를 읽었으니 반은 확실히 넘은 셈이지만, 여전히 35권정도를 더 읽어야 다음 추리소설전집으로 넘어갈 수 있겠다.
오전에 기분좋게 근육운동을 마치고 cardio시간을 늘이기 위해서 걷다 뛰다 20분 후 약 40분 정도 실내자전거를 타면서 다 읽을 수 있었다. 띄엄띄엄 읽었지만, 한번에 많이 읽어낸 덕분에 내용을 다 파악할 수는 있었다.
어떤 문학적인 가치를 비록 한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나는 SF야말로 어쩌면 우리 현재와 미래의 투영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고전문학의 철학적인 고찰이나 사회상의 반영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그것들 또한 그 시절의 소설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결국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상대적으로 더 젊은 소설들의 위치와 평가가 변할 것이기 때문에 SF의 장르적인 특성때문에 이를 무시하는건 옳지 않다. 단지 문학 vs. SF의 구도뿐만 아니라 유독 한국에서는 문학 vs. 나머지의 대립구도가 강하게 enforce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점점 나아지리라 믿는다.
어슐러 K 르 귄의 책은 흥미를 위주로 읽기에는 더 깊은 의미와 그리고자 하는 바가 있는데, 이것을 SF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그 뛰어남을 본다.
책에서였나 다른 온라인 블로그에서였나, 이 책의 모티브를 미국이주민/개척민들과 인디언들의 역사에서 찾았다는 이야기를 본 것 같다. 확실히 생각해보면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다만, 그리고 좀 엉뚱하지만, 내가 헤인시리즈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우주의 광활함과 변하는 시간속에서 적응해가고 변해가는, 우주로 뻗어나간 사람들의 모습이다. 항성간 여행으로 우주선 승무원의 짧은 시간이 떠나온 곳에서는 많은 변화를 거친 수십년 후가 되고, 여기에 따라 바뀐 문화와 인식에 따라 바뀌는 명령을 수행하는 모습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언젠가 우리에게도 현실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SF라도 영화처럼 액션 외에는 모든 것을 배제하기 보다는 어쩌면 밥짓고 빨래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처럼 별것 아닌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 매일의 문제들이 무시되지 않고 묘사되는 부분이 참 흥미로운거다.
역시 스토리를 요약하는 연습이 부족하다. 줄거리는 스포일러라서 쓰기 싫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늘 피해가고 있지만, 기실 짧게 요약하고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잘 버무리는 글을 쓰는것은 아직도 진행형인 과업이다.
모처럼 두 권을 읽어냈다. 그 전에 읽은 American Sniper의 리뷰는 따로 날을 잡아 끼적거리고 싶다. 할 얘기가 많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그렇지는 않겠고, 아무리 맘을 먹고 '우주의 기를 끌어들여' 난리를 친다고 해도 내것이 아닌 것들이 나에게 갑자기 쏟아져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많은 것들은, 특히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내 맘에 달려있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이렇게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기어가고 걷고 뛰고 사력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내가 아는 삶이다. 그렇게 사는거다.
세상은 마치 개새끼들의 전성시대인 마냥 돌아가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의 마음만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