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보다'에 이은 '말하다.' 그런데, 책의 구성이 강연과 Q&A형태로 되어있었기 때문인지, 그전에 읽은 그의 산문이나 기행문에서의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사실 관심가는 작가나 구성 때문에 간혹 사서 읽기는 하지만, 원래 강의나 강연 또는 프로그램을 다시 책으로 구성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녹취록도 아니고, 좀 심하게 말하면 쉽게 책 한 권이 나오는, 그러니까, 거저 먹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게 포장하고, 기존의 구성에서 누락된 것을 업데이트해서 나와도, 기본적으로는 한번 이미 공개된 것을 책으로 만든 정도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도 사서 보는 넌 뭐니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예전에 그의 팟캐스트에서 들은 기억이 있는데, 열 살 때 겪은 연탄가스사고 때문에 10년의 기억이 고스란이 없어져 버렸다는 말이 새삼 충격이다. 옛날에 중학교 시절 속칭 깎쫑이라고 불리던 미술선생 이라고 쓰고 개새끼라고 말하게 되는 도 그런 에피소드를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사고 덕분에 그 이전의 기억이 사라져버렸고, 부모/친구/형제 모두 남들이 그렇다고 해서 그런줄로 알고 있다고 하는 말에 꽤 놀란 적이 있는데, 김영하 작가는 어떻게 자기 부모와 친구, 그리고 다른 기억들을 가지고 왔을까.
언제나 숨이 가빠질 무렵, 이렇게 소품집 같은 모음으로 한번 쉬어가는 구성이 너무 맘에 든다. 작가의 의도였는지, '황금가지'의 멋진 구성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긴 호흡에서 잠시 벗어나서 단막극을 읽는 재미 덕분에 여전히 이 시리즈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추리소설의 팬이라면 한질 꼭 구해서 간직하고 가보로 삼아야 할 시리즈의 전집이 곧 내 서재에서도 완성이 될 것이다. 다 읽으면 캐드펠 시리즈를 시작하려고 벼르고 있다.
바쁘면 바쁜 대로 일이 빨라지고 느리면 그만큼 느려지는걸 보면 천상 조직생활을 할 팔자는 아닌 듯. 이렇게 스케줄이 빌 줄 알았더라면 캔맥주라도 사들고 와서 간만에 모닝을 한잔 빨았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