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가 좋은 날'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지난 번에 주문했던 책들 중에서 '아톰의 슬픔'이라는 괴상한 제목이 붙은 책이 있었는데, 순전히 데즈카 오사무라는 이름을 보고 주문한 것이다. 아톰으로 가장 유명한 데즈카 오사무는 일본만화의 신이라고 할만한 사람이다. 그가 쓴 에세이려니 하고 중고가 나와서 마침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우연히 정말 의미가 깊은 책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절판이 된 것은 아니라서 지금도 구할 수 있는 책이지만, 중고를 뒤적이지 않았으면 그 존재를 알 수 없었을 책이다.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찾을 일은 있어도 그가 쓴 글을 찾지는 않았을테니까. 이 책을 보고서야 그가 1989년 2월 9일에 위암으로 타계했다는 것을 알았는데, 새삼스럽지만, 너무 이른 죽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1928년 11월 3일 생이니까 60을 겨우 채우고 죽은 것이다. 살아있었더라면 1989년부터 지금까지 26년 간 엄청난 작품을 다시 각색하고 애니메션으로 복간했을 것이다. 사망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일할래. 일하게 해줘"였다고 하니, 참으로 아쉬운 것이 이런 분의 짧은 수명이다. 책을 보면 본인의 몸이나 생명에 대해 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서 다소 방만하게 관리한 것 같은데, 때늦은 후회를 자신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꽤 늦은 후회였던 셈이다.
의사자격을 갖고 있었지만, 체계적인 현대식 교육을 받은 이공계 학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불타는 상상력은 상당히 정확한 미래예측을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로보트 만화를 그렸지만, 사실은 자연주의자에 가까웠던 사람이었다고 하는 그의 면모는 이 책에 수록에 에세이에 잘 나와 있다. 전쟁을 겪은 일본사람 특유의 평화주의가 엿보이지만, 다른 일본인들과 마찬가지로 패전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의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합리적 의구심이다. 본인 스스로도 말했지만, 몸이 약한 사람들을 가둬놓고 훈련시키던 특수수용소에서 괴롭게 지내던 시절에도 군국주의 교육을 받고 세뇌된 흔적이 그의 일기에 남아있다고 하니 2차대전에서 일본이 이겼더라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라사와 나오키가 아톰의 에피소드를 차용하여 만든 작품인데, 여덟 권으로 되어 있다. 읽고서 어릴 때 본 아톰의 플루토 에피소드 생각도 나고, 또 이를 멋지게 개량한 것을 보고서는 역시 우라사와 나오키라고 감탄을 연발하면서 천천히 하나씩 음미했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사고와 상상력을 부리던 데즈카 오사무의 시대와는 달리, 많은 과학/공학/기술에 대한 내용이 전문화되어야 하는 요즘의 SF트렌드를 완벽하게 피해갈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참 잘 만든 오마쥬라고 본다.
데즈카 오사무의 다른 작품들은 다행히 많이 복간되어 나왔고, 이들은 절판되지 않고 있다. 내가 사들일때까지는 그 상태가 유지되어야 할텐데...
아톰은 미국판으로 'Astro Boy'를 거의 다 모으다가 말았고,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다섯 권을 다 읽었다. 이들 외에도 사이보고 009도 좀 봤고, 몇 가지 생각나지 않는 작품들도 기억난다.
일단은 마구 사들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니다. 그저 절판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