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뇨 덕분에 시원한 여름을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한 주 내내 오후에만 잠깐 덥고,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5시부터는 다시 바람이 불고 선선해지던 날찌 덕분이다. 사실 켈리포니아의 여름은 아무리 북쪽이라고 해도, 샌프란시코처럼 완전히 해안지대가 아닌 경우 꽤 덥다. 내리꽂는 햇살 때문에 한낮에는 한국의 습한 찜통더위와는 사뭇 다르지만, 굉장히 뜨겁고, 주차 되어있는 차에 타면 순간온도는 35도까지도 쉽게 올라간다.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여름인데, 습도가 50% 미만으로 유지되는 덕분에 그럭저럭 버티고 살 수 있다. 여기서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 내려가면 나오는 LA와 OC지역은 화씨로 평균 10-15도가 더 높은데, 직장 때문에 그곳으로 처음 내려갔던 첫 1-2년은 정말 죽다 살아난 것처럼 힘들게 지낸 기억이 있다. 조금 늦게 퇴근해서 들어가면 낮 동안 쏟아진 태양열을 고스란히 받은 건물을 때맞춰 식히지 못한 죄로 아무리 AC를 돌려도 새벽 3-4시까지는 푹푹 찌는 아파트에서 잠을 설치곤 했는데, 나중에 그곳 기후에 익숙해지고 사는 곳이 좋아진 다음에도 더위 때문에 종종 새벽에 깨어나서 뒹굴거리던 기억이 난다. 올라온 다음에는 그곳에 내려간 적이 거의 없는데, 지금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는 속도, 그리고 워낙 이런 저런 책을 한꺼번에 조금씩 읽는 습관 때문에 어느 특정한 시점에는 완독하는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같은 이유로 어떤 때에는 한 주 동안 한 권도 다 읽지 못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6월 첫 주간이 딱 그랬던 모양이다. 일요일을 기점으로 이번 주에는 다시 몇 권씩 읽은 것들을 토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오늘이면 한국에서 주문한 책이 도착하는 날이다. 열심히 읽고 생각하면서 더운 여름을 이겨낼 것이다. 다행이지만, 내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이 워낙 오래된 건축물이라서 요즘에 마구잡이로 지어대는 합판건물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안정적이고 시원하다. 비록 중앙냉난방이지만, 계절에 맞춰 비교적 날씨에 맞는 냉방과 난방 덕분에 사무실에 나와 있으면 추위와 더위를 잊는 편이다.
American Sniper는 그냥 단순한 후기 보다는 좀더 느낀 바를 따로 끄집어 내고 싶어서 계속 리뷰를 미루고 있다. 영화에서는 꽤 영웅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포장된 듯 한데, 이스트우드도 점점 찰튼 해스턴 같이 되어가나 싶다. 내가 본 American Sniper는 그런 것이 아닌데. 영웅몰이는 IS같은 놈들이 활개치면서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에 서점에서 보니 American Sniper의 wife가 책을 냈더만. 무슨 할 얘기가 있을까 싶다.
79권까지의 완역본 완독에서 31권이 남았다. 다 읽으면 난생 처음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완독하고 소유하게 된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몇 권의 미발표집인가 해서 4-5권을 추가로 구매했는데, 이렇게 해서 한 작가의 작품을 거의 모두 갖게 되었다. 아시모프처럼 500권이 넘는 글을 쓰고 편집한 작가라면 모든 작품을 모으는게 매우 힘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완역하여 한 출판사가 맡아서 기획하면 다 사들일 것이다.
영어 표현에 "stupid as fox"라는 말이 있다. 모르는척 하면서 필요할 때에는 다 알아듣고 귀찮은건 피하는 습성을 비꼬는 말인데, 예전에 김병현이 MLB에서 활동할 때 같은 팀의 에이스인 커트 실링이 그의 영어능력을 표현한 기억이 난다. 이번의 범인을 찾아내는 key가 여기에 있다. 워낙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라서 내가 생각한 용의선상에는 없었던 등장인물이 범인이었다. 이중삼중으로 엮어놓은 덕분에 더욱 찾을 수가 없었다. 살인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 더욱 매력적인 반전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네 번째 단편 모음을 읽었다. 확실히 초창기 보다는 훨씬 더 나은 정보력과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이해가 반영되어 좀더 복잡해지고, 좀더 사실적으로 변한 것 같다. 30-70년대까지의 SF작품을 보면 그야말로 상상력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데, 90년대 이후로는 사실주의에 근거하여 나오는 작품들이 태반이라서 작가들의 학력과 과학기술의 전문적인 지식습득도 꽤나 그 레벨이 높아졌다. SF는 사실적인 상상이나 구성이 꼭 필요한것은 아닌데, 시장이 그렇게 형성되어 있는 지금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요즘의 사실성이 풍부하거나 철학적인 작품도 재미있지만, 그래서인지 난 예전 황금시대의 기괴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단편들이 훨씬 더 맘에 든다. 아시모프가 편집한 황금시대 이전의 SF단편모음집이 두 권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어 맘에 든다.
무정부주의로 흔히 해석되지만 정확한 번역이 아니라서 요즘은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일본의 아나키스트로서 한국의 사상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오스기 사카에의 자서전이다. 일본이 근대국가로 들어가면서 short cut으로 채택한 병영국가가 형성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유년시대부터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아나키스트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성향도 무시할 수 없고, 형태야 어찌 되었던 엘리트 교육과 독서, 그리고 성찰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끝까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후대에도 종종 나오는 형태인데, 이런 인기(?)인들의 연애관이다. 결혼 후에도 다른 여자들과 연애를 하고, 삼각관계 때문에 죽을 뻔하고, 시대의 억압에 대한 반발작용으로써의 자유연애라고도 볼 수 있겠지. 어떤 주도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사람에게 이성이 끌리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인물은 자기중심을 갖고 이런 점을 감안하여 배려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런 연애관은 그간 여자문제로 물의를 빚은 카리스마 목사들의 후안무치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이 자서전은 거창한 사상문집이 아닌 한 개인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죽기 전까지의 삶을 기록한 내용이라서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의 서술이 주를 이루고 있어, 마치 신변잡기적인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멋진 문구는 없지만, 역시 같은 의미로 평범한 감상에서 비범한 사회평론을 볼 수 있다. 관동대지진 때 군부에 의해 살해되어 유기된 사람인데, 예전부터 역사책에 그 이름을 볼 수 있었기에, 그리고 우리 조선인들처럼 그도 관동대지진의 희생자가 되었기에 더욱 반가운 이름이 아니었나 싶다.
미국의 직업 스테레오타입에 언제나 등장하는 변호사는 늘 돈은 잘 버는데, 매우 해피하지 않고, 항상 이혼과 별거에 시달리면서 병과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늘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닌데'하면서 돈 때문에 포기한 다른 삶을 그린다. 이 정형화된 공식은 늘 변하지 않는 편인데, 여기서도 그대로 차용되었다.
우발적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그의 아이덴티티를 도용해서 다른 삶을 살아보려고 한 주인공. 그런데, 문제는 하필, 그가 그토록 원하던 삶을 살게 된 그때 그의 사진가로써의 탤런트를 인정 받게 되어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살짝 비틀린 논리는 그가 죽은 것으로 믿고 있는 전처, 그리고 그가 훔친 아이덴티티의 주인과 바람을 피우던 전처가 하필이면 사진계에서 유명한 사람과 hook-up이 되어 나타나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여러모로 치밀한 논리는 아니지만, 매우 재미있게 what if를 생각하면서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사실 다 헤집고 따지면 논리가 완벽한 소설이 어디 있겠는가?
여름이 되면 업무가 조금 slow down되는 것이 이제까지의 trend였는데, 일이란게 build-up된 부분도 있고 해서, 완전히 놀고 먹을 수는 없고, 그저 좀 덜 바쁜 주간에는 좀 천천히, 바쁜 주간에는 바쁘게 일하면서 페이스를 조절하는 수밖에 없다. 바쁘니까, 노는게 즐겁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패러독스는 그러니까 여전히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