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나의 분야는 6-7-8월이 비교적 한가하다. 어느 정도냐면, 예전에 있었던 사무실의 대표는 6-7월 사이에는 매년 20-30일 정도 사무실을 비우고 한국에 나가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런 호사는 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어서 일용직처럼 부려지던 비정규직 사무원들에게는 no work = no pay라서, 샐러리인 나에게는 쉬고 싶을 때 편하게 쉬고 정해지지는 않았던 휴가일정이라서 전~혀 해당한 적이 없었다. 지금도 자칭 노빠에 사회주의성향이라는 그 유체이탈인을 생각하면 18금이 나온다. 하지만, 이 페이퍼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이 많으면 무척 빠르게 기계적으로 그리고 매우 효율적으로 하나씩 그들을 처리한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일이 적은 요즘이다. 그간 쌓인 일의 규모때문에 어차피 일은 늘 있지만, 하나씩 둘씩 천천히 진행하게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하루에 조금씩 일을 하면서 내부정리도 하면 하루가 천천히, 그러나 보람차게 지나갈 것을, 2-3일에 몰아서 할 생각으로 다른 1-2일을 게으르게 보내는 것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다. 작년에만해도 그저 일이 즐거워서 하루를 보내곤 했는데.
쉬는 김에 읽은 책, 끝자락에 와있던 책들이 한꺼번에 다 읽혀서 갑자기 늘어난 권수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딱히 손이 또는 맘이 가는게 없다.
워낙 다작이고 오랜 기간동안 작품을 써온 작가라서 그런지, 작중인물들도 작가와 함께 늙어간 것을 본다. 그렇게 1차대전을 전후하여 활약했던 토미와 터펜스 부부는 히틀러의 전쟁 중에는 아들딸을 전쟁에 보내놓고 늙은이 취급을 받는 40대 중반이 되어 있다. 그들은 전쟁 초기, 영국의 내부를 교란시키기 위해 파견된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하여 스콧트랜드로 보내지는데서 스토리가 시작된다. 본격추리보다는 앞서 나온 몇 편처럼 스파이물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머리 아픈 추리보다는 활극에 가까운데, 이번에는 나도 몇 가지 단서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M과 N에서 나머지 하나의 정체는 조금 의외였다. 알면서도 속는 것이다. 범인은 늘 가까운 곳에서 아주 평범하게, 사건에서 가장 멀어보이는 곳에 있는데도 말이다.
Jack Reacher 두 권째. 왜 그가 소령에서 예편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회상소설. 미국의 20세기는 진주만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 21세기는 9-11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을 소설의 묘사에서도 보게된다.
속이 시원한, 그리고 중간중간에 매우 에로틱한 Lee Child의 소설에 점점 빠져들어가고 있다. 보관해놓은 것을 뒤지면 한 두 권정도 더 나올 것이다. 군대의 주둔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파헤치는데, 정작 그를 파견한 수사본부에서는 사건을 덮을 것을 주문하고, 그 과정에서 추가로 2명이 더 살해되고, 갈수록 미궁으로 빠져드는 사건은 그 이전의 살인사건들 때문에 더욱 복잡해진다. 내가 Jack Reacher였다면 그토록 쉽게 커리어를 던져버릴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헉! 이건 뭐지 싶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마치 종이를 씹는 듯한 맛이 나는 하얀 식빵을 뜯어먹은 기분이다. 그러니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나조차도 뭐 이런게 다 있어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소품집. 몇 개의 긴 에세이에서는 언제나처럼 훗날 장편으로 나오는 것들의 모티브를 볼 수 있겠지만, 그 외에는 한심할만큼 이상하고 짧은 글과 글의 중간지점들로 가득하다. 그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집을 하나 더 수집에 보탰음에 만족할 뿐이다.
예전에 읽은 19-20세기의 모험과 탐험, 그리고 발굴과 인양에 대한 책에서 다룬 20세기 최후의 모험가라는 우에무라 나오미가 거의 2년에 걸쳐 북극을 개썰매로 단독완주하면서 남긴 일기. 왜 어떤 사람은 그렇게 위험한 곳으로 기어코 떠나버리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데, 원주민 마을에서의 따뜻한 환대를 빼면 낭만도 무엇도 없이 극한상황에서의 생존을 위해 벌이는 사투만 있을 뿐이다. 개를 잃어가면서 동상에 시달리고, 날고리를 뜯어가면서 그렇게 북극을 완주한 그는 결국 매킨리 동계단독등반 후 내려오는 길에 실종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이 한 인간을 그토록 극한의 매혹으로 내모는가에 대한 답은 없지만, 정말 평범한 한 사람이 난관을 뚫고 목표한 바를 이루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그 자체로 무척 매력적이다. 세상의 어떤 성공학 책보다도 먼저 읽어봐야할 책이 아닐까?
빨간책방을 듣고 구입해 읽은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는 따로 글을 남길 생각이다. 짧게 적어내기엔 아까운 무엇들이 좀 남아서인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버리면 싹 머릿속에서 사라질테네 근시일내에 생각을 정리하고 키보드를 때려야한다.
쉴때 쉬고, 일할때 일하고, 여유롭게 살면 격양가라도 부르면서 한 세상 살아가련만, 무엇때문에 이렇게 아둥바둥거리면서 가고 있는 것인지 가끔은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