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오래 키워본 경험으로 말할 수 있는데, 심지어 개도 염치라는 것을 안다(고 느낀다). 생물학이나 동물학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다른 이야기를 할 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개도 아는 것이 염치라는 것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친일부역자들이나 그들를 떳떳하게 내세우는 후손들, 정상모리배들, 독재부역자들 같은 부류들을 보면 확실히 개만도 못한 것이, 그들에겐 염치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부끄러움도 알고, 후회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일이나 독재부역을 보자. 과거 그 시절, 나 같아도 적극적인 부역은 아니겠지만, 수세에 몰리거나 자신과 가족의 안전과 밥줄을 위해서, 또는 그냥 겁이 나서라도 어쩔 수 없는 부역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나만 해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감히 이야기하겠다. 다만, 시절이 바뀌고 과거의 행위를 반성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최소한 내가 살아온 길에 대한 미안함, 떳떳하지 못함을 반성하고 남은 생은 이를 반추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용서란 행위를 정당하게 구할 수 있고, 베풀어진 용서는 나를 떳떳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개만도 못한 것들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유린해온 것이 광복 후 70년이 넘는다. 부패하고 무능했던 역대 정권은 그런 자들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어왔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위 말하는 '태극기'집회는 쓰레기들 중에서도 찌꺼기 같은 자들을 다 쓸어모아 놓았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돈을 받고 나오는 노인들이나 노숙자들은 오히려 나은 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진자로 문제가 되는 건 어쩌면 정말로 박근혜로 대표되는 국기문란세력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자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들은 정말로 답이 없는 인간들이다. 이런 자들을 볼 때마다 루쉰 선생의 말씀이 떠오른다. '물에 빠진 미친개는 몽둥이로 두들겨 패라'는 말씀은 가히 촌철살인의 일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권교체 후 한바탕 피바람이 불기를 희망해본다.
박정희놈과 그의 부역세력이 독재를 위해 저지른 무수히 많은 나쁜 짓들 중에서도 아주 악질인 사건이 재일교포대학생간첩단 사건이다. 일본에서 제2국민만도 못한 대접을 받는 경계인으로 힘들게 살아온 이들이 품고 있던 조국이라는 환상을 산산조각내버린 이 조작사건은 박정희놈의 정신과 사상의 뿌리가 다이니뽄데이고꾸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피해자들 둘을 형으로 둔 서경식 교수의 책은 그래서 한국현대사속 비극의 축소판이고, 현대 일본국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던 역사의 문제이자 해결점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배경을 갖고 미술과 사회, 정치, 음악, 역사까지 여러 분야를 들여다보면 그가 쓰는 그 절절한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고, 조금은 (감히) 공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름다운 것만 그리는 한국의 현대미술에 대한 우려와 비평은 결국 진정한 아름다움이 배제된 거짓스러운 아름다움, 아픔이 품어지고 승화되지 못한, 미의 cliche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해준 책이다. 벌써 이분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다 모아놓으면 꽤 근사한 서경식 collection이 될 것 같다. 프리모 레비도, 사이드도, 에른스트 톨러 (국문판이 없어 아마존에서 영문판을 구했다) 등 많은 사상가들과 작가들을 접하는 건 보너스다. 책읽기와 장서주의자는 그렇게 한 작가를 중심으로 종으로 횡으로 흐르는가보다.
지금까지 나온 '탈레랑'은 모두 네 권이고, 이들을 한번에 사들였다가 한번에 다 읽어냈다. 역시 특별하거나 번득이는 추리보다는 라이트 노벨스러운 잔잔하고 가끔은 이쁜 추리극 수준으로 무난한 reading이다. 아직까지는 이름부터 멋져버린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를 넘는 건 못 봤다만, 그래봐야 아직 세 시리즈를 비교하는 정도니까 적절히 균형이 잡힌 객관성이 보이는 평가라고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시계점' 시리즈와는 달리 이 책은 다음 권이 기다려진다.
열정적으로 쓰여진 책은 한 호흡에 읽어내려갈 수 있다는, 바꿔 말하면 한번에 푹 빠져서 읽게 만드는 책은 한숨에 쓰여진 책이라던 어떤 이의 말이 맞다면, 이 책은 강헌 선생이 앉은 자리에서 쭉 한번에 써내려갔을 것 같다. 물론 현실은 벙커강연을 다시 정리한 것이니까, 그렇게 로맨틱하지는 않겠지만 - 강헌 선생의 업계평판에 따르면 아마도 여러 편집자들이 고생을 했을 것이다 - 이 책은 정말 잘 읽힌다. 여기엔 한국 문화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외에도 강헌 이라는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사상, 그가 젊은 시절부터 품어왔을 이상까지 많은 것들이 한데 녹아들어 있다.
어린 시절과는 달리 - 이젠 젊은 시절이라고 하지 않게 된다 - 점점 구수한 노래가 좋아진다. 홍진영이나 박은빈, 장윤정이 부리는 그런 뉴트로트 말고, 트로트로 보기엔 사실 훨씬 더 재즈나 소울스러운 예전의 노래들을 youtube으로 가끔씩 듣는다. 안다성, 남인수를 비롯한 고전가요들도 좋고, 한국의 대중음악이 공장도생산형식으로 바뀌기 전, 음악적인 열정과 관심 하나로 가수가 나오던 시절의 노래들도 아주 좋다. 한대수나 신중현의 그 시절 노래를 들어보면 비록 외국의 팝을 흉내냈을지언정 무척 높은 수준의 음악성을 보여준다. 소위 뽕짝도 그리 나쁘지 않다. 일본 엔카의 왕이라던 모씨가 죽기전에 '일본 엔카의 뿌리는 조선'이라는 소리를 해서 한 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엔카의 뿌리가 조선이라기 보다는 일본 엔카를 만든 어떤 요소들에 조선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 모씨가 조선민요나 가락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 강헌 선생의 해석인데,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뽕짝도 괜찮게 들린다는 말씀. 강헌 선생의 입담이나 경계가 없는 해박한 지식은 벙커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글로 읽어도 덕분에 역시 아주 재미있고 흥미있는 이야기를 들여준다. 이런 잡담스러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구해 읽을 책이다.
한국은 박근혜와 부역세력, 그리고 찌꺼기들 때문에, 미국은 트럼프와 그를 업은, 국가주의를 표방하는 백인우월주의자들 때문에 시끄럽다. 빨리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었으면 한다.